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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2:31:50

남양 홍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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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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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유래3. 당홍계(唐洪系)
3.1. 항렬3.2. 실존 인물
3.2.1. 항렬 미상3.2.2. 20세손3.2.3. 26세손3.2.4. 27세손3.2.5. 30세손3.2.6. 31세손3.2.7. 32세손3.2.8. 33세손3.2.9. 34세손3.2.10. 35세손3.2.11. 36세손3.2.12. 37세손3.2.13. 38세손
4. 토홍계(土洪系)
4.1. 항렬4.2. 실존 인물
4.2.1. 12세4.2.2. 21세4.2.3. 22세4.2.4. 24세4.2.5. 25세4.2.6. 26세4.2.7. 27세4.2.8. 28세4.2.9. 29세4.2.10. 30세
5. 미상

1. 개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본관으로 삼는 한국의 성씨 중 하나이다. 2015년도 기준 487,488명으로 성씨 본관 중 인구수 16위.

남양 홍씨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를 지낸 홍은열(洪殷悅)을 기세조(起世祖)로 하는 남양 홍씨 당홍계(南陽 洪氏 唐洪系)와 고려 시대 금오위 별장동정을 지낸 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하는 남양 홍씨 토홍계(南陽 洪氏 土洪系)의 두 계통으로 나뉜다.

2. 유래

홍씨는 절대다수의 한국 성씨와 같이 중국 유래설이 전승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중국 남방을 다스리던 신이자 농사, 의학, 약초의 신 염제신농의 후손으로, 간쑤성 서북부에 있는 둔황(敦煌)이 홍씨가 탄생한 지역이다. 처음 홍씨가 탄생한 것은 돈황 지역에 살고 있는 공공씨(共工氏·요순시대 형벌을 다루는 관리)의 후손이 원수의 추격을 피해 (共) 자에다 (水) 자를 붙여 홍(洪)이라는 성씨를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에 홍씨가 생겨난 것은 당나라 태종 때 고구려 영류왕의 요청에 의해 당나라 8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인 홍천하(洪天河)가 고구려에 입국한 것에서 연유한다. 고구려에 들어온 홍천하가 연개소문이 일으킨 반란에 반대하며 다시 신라로 건너가 삼국통일 이후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진 것을 계기로 홍씨가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8학사의 실체가 불분명하며 다른 성씨들의 전승과 맞지 않는 부분도 많으므로 중국 유래설은 여느 성씨들과 마찬가지로 후대인들이 시조 미화를 위해 지어낸 것이라 봄이 타당할 것이다.

남양 홍씨는 동성동본이나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보가 있는데, 세칭 당홍(唐洪)과 토홍(土洪)이 그것이다. 당홍은 당나라에서 귀화한 홍천하 후손이고, 토홍은 고려 고종 때 금오위별장을 지낸 홍선행의 후손으로 일컬어 온다. 당홍과 토홍이라는 속칭도 이처럼 당나라 귀화파와 토착파의 구분에서 연유한 것이다. 귀화파인 당홍의 역사가 300여 년 이상 길다는 데서 실제로는 모두 한 조상의 관계가 아닌가 여겨진다. 두 집안의 조상이 비록 달리 내려오나 동성동본이니만큼, 한 집안으로 보아 통혼하지 않으며[1], 양 계통은 현재까지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3. 당홍계(唐洪系)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충선왕 제정 재상지종 15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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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남양 홍씨 종문.svg
南陽 洪氏 唐洪系
남양 홍씨 당홍계
}}}
관향 <colbgcolor=#fff,#191919>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시조 홍천하(洪天河)
중시조 홍유(洪儒)[2]
집성촌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삼척시, 원주시, 춘천시
경기도 화성시, 양주시, 이천시, 안성시, 평택시, 동두천시, 의정부시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리
충청남도 논산시, 천안시
충청북도 옥천군, 보은군, 청주시
전라북도 완주군, 고창군, 부안군, 익산시
전라남도 곡성군, 무안군, 함평군
경상북도 안동시, 영주시, 군위군, 의성군, 청도군, 성주군, 구미시, 문경시, 봉화군, 고령군
경상남도 의령군, 남해군, 산청군, 진주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서귀포시
인구 379,708명(2015년)
당홍의 시조 홍천하(洪天河)는 고구려 27대 영류왕 때 중국 당나라에서 8학사의 한 사람으로 고구려에 들어와 유학과 문화를 혁신시켰다.[3]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유학의 발전에 공을 세워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고 태자태사(太子太師)가 되었으며 본관을 당성으로 하였다. 당성이 후에 남양으로 지명이 바뀌어 본관을 남양으로 하고 있는데, 현재는 경기도 화성시 서부 일대( 서신면, 남양읍 등)이다. 고려 개국공신이며 삼중대광태사인 홍은열(洪殷悅)을 중시조로 1세 조상으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공교롭게도 고려에서 강동성 전투가 발발할 시기에 인주도령(麟州都領)[4]이었으나 거란군에 패배해 카진(哈眞/합진), 쟈라(札剌/찰날)가 이끄는 몽골군에 투항하고 몽골이 살리타이(撒禮塔/설례탑)를 보내 1차로 고려를 침공할 때 자발적으로 길안내를 한 홍대순(洪大純), 몽골이 다시 한 번 살리타이를 보내 고려를 침공할 때 서경을 갖다바치고 반란까지 일으켰다가 후에 몽골 제국을 계승한 원나라의 대대적인 침공 시기에 부역자 겸 길잡이 노릇을 한 홍복원(洪福源), 원나라의 일본원정 시기에 고려의 물자를 대거 뜯어가고 김방경과 같은 장수들을 헐뜯어 다시금 원나라가 고려를 침공하게 만들려고 수작을 부렸던 홍다구(洪茶丘) 등이 남양 홍씨 당홍계의 인물들이다.[5] 또한 충숙왕의 4비이자 충혜왕 공민왕의 어머니인 명덕태후와, 명덕태후의 먼 친척으로 공민왕에게 총애를 받았으나 공민왕을 시해한 홍륜이 남양 홍씨(당홍계) 가문이다.

홍은열의 손자대에서 재신공파(宰臣公派)가 나뉘어지고, 증손대에서 다시 예사공파(禮史公派)가 나뉘어진다. 그 후 6세손에서 중랑장파(中郞將派)가 나뉘어지고, 13대손에서 13파로 갈리고, 그 외에 3파가 있어 모두 16파로 나뉘어졌다. 그중 벼슬을 지낸 내력과 후손의 수가 많은 파로는 남양군파(南陽君派, 파조 홍주·洪澍), 문정공파(文正公派, 파조 홍언박·洪彦博), 판중추공파(判中樞公派, 파조 홍언수·洪彦修), 익산군파(益山君派, 파조 홍운수·洪云遂), 예사공파(禮史公派, 파조 홍복·洪復), 중랑공파(中郞公派, 파조 홍후·洪厚) 등이다. 그중에서 가장 번창한 파는 남양군파로 남양 홍씨 당홍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6]

남양 홍씨는 조선시대에 문묘 종사 대현은 배출하지 못했지만 총 2명의 종묘 배향공신을 배출했다. 당홍계 충정공(忠貞公) 익성부원군(益城府院君) 홍응(洪應, 1428~1492)은 문과에 장원급제했고 좌의정에 올라 성종의 배향공신이 되었으며, 토홍계 문희공(文僖公) 홍언필(洪彦弼, 1476~1549)은 인종 영의정까지 지내 배향공신에 올랐다.

이밖에는 총 329명(당홍 206명, 토홍 123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는데 이는 전주 이씨(884명), 안동 권씨(359명), 파평 윤씨(336명)에 이어 네 번째의 서열이지만 인구 순위를 감안하면 놀라운 강세다. 그중 당홍에서는 상신(相臣) 8명, 대제학(大提學) 3명, 왕비(王妃) 1명(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 청백리(淸白吏) 2명, 부마 4명, 공신 10여명을 배출하였다.

3.1. 항렬

대략 근현대에 분포하는 항렬자는 다음과 같으며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34~38세손 항렬자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으므로 참고하자.
27세 계()○
28세 ○영()
29세 병()○
30세 ○섭()
31세 재()○
32세 종()○
33세 순()○
34세 표(), ○식()
35세 성()○, 지()○
36세 기(), ○의()
37세 석()○, 진()○
38세 택(), ○락()
39세 근()○, 주()○
40세 ○환(), ○희()

3.2. 실존 인물

3.2.1. 항렬 미상

3.2.2. 20세손

3.2.3. 26세손

3.2.4. 27세손

3.2.5. 30세손

3.2.6. 31세손

3.2.7. 32세손

3.2.8. 33세손

3.2.9. 34세손

3.2.10. 35세손

3.2.11. 36세손

3.2.12. 37세손

3.2.13. 38세손

4. 토홍계(土洪系)

남양 홍씨(南陽 洪氏) 토홍계(土洪系)
관향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시조 홍선행(洪先幸)
인구(2000년) 30,602명 (176위)

4.1. 항렬

대략적으로 근현대에 분포하고 있는 항렬자는 다음과 같다. 여기 역시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유명한데 보통 24~29세손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많다.
24세 ○후(厚)
25세 ○유(裕), 영(永)○
26세 사(思)○, ○수(秀)
27세 ○선(善), 현(顯)○
28세 승(承)○
29세 ○화(和), 의(宜)○
30세 용(容)○, 성(性)○

4.2. 실존 인물

4.2.1. 12세

4.2.2. 21세

4.2.3. 22세

4.2.4. 24세

4.2.5. 25세

4.2.6. 26세

4.2.7. 27세

4.2.8. 28세

4.2.9. 29세

4.2.10. 30세

5. 미상

당홍계인지 토홍계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이다.
[1] 물론 관습적으로 그렇다는것이지 통혼해도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2] 홍은열(洪殷悅)로 개명하였다 [3] 다만 8학사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 모화 사상의 영향으로 있지도 않았던 중국인을 조상으로 삼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정황상 보았을 때 남양 홍씨는 영류왕의 시해를 전후로 신라에 망명한 고구려인을 뿌리로 두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4] 인주(麟州)는 오늘날의 평안북도 의주군을 의미한다. 즉 고려의 최전방 지역을 관리하던 인물이었다. [5] 홍복원의 손자이자 요양행성의 우승이었던 홍중희(洪重喜)는 충선왕과 충돌을 일으켰다가 역공을 당하자 고려를 원나라의 일개 성으로 합병하자는 입성책동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고려 입장에서는 을사5적 뺨치는 역적이었다. [6] 이 남양군파는 정치적으로 서인 노론에 속했다. 한때 흥선대원군의 측근이었던 홍순목, 홍순목의 아들로 갑신정변의 주역이었으나 피살된 홍영식,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자결한 홍만식 등이 바로 남양군파 벌족이었다. [7] 헌종의 계비이자 31세손 재(在)○ 항렬을 쓴 익풍부원군 홍재룡(洪在龍)의 딸이다. 그러므로 효정왕후는 32세손이다. [A] 연령대에 비해 항렬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A] [10] 1~4번 문단 전원. [11] 본명은 홍종표(洪宗杓)다. [A] [13] 검사시절 지검장의 권유로 개명한 이름이다. 홍이표 -> 홍판표 -> 홍준표 순서로 개명했다. [A] [A] [A] [17] 전술한 홍진기(洪璡基)의 딸이자 후술할 홍석현(洪錫炫), 홍석조(洪錫肇)의 누나다. 그러므로 홍라희는 37세손이다. [A] [A] [A] [21] 항렬자를 쓰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이 37세손 석(錫) 자 항렬을 써서 37세손 문단에 전술한 홍석현(洪錫炫)이다. 그러므로 홍정도는 38세손이다. [22] 본명은 홍영후(洪永厚)다. 형 홍석후는 세브란스병원의학교 1기생이며, 조카 홍옥임은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의 실제 주인공 중 한 명이다. [23] 본래는 홍○유로 "유" 자가 뒤에 들어가야 하지만 가운데에 썼다. [B] 본래는 홍○수로 "수" 자가 뒤에 들어가야 하지만 가운데에 썼다. [B] [26] 본명은 홍사혁(洪思赫). [27] 28세 승(承) 항렬이나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다만, 맏형 홍승호(洪承浩, 1876. 10. 28 ~ 1951. 10. 9)와 둘째 형 홍승원(洪承源, 1898. 7. 7 ~ ?)은 항렬자를 썼고, 첫째 남동생 홍용진(洪龍珍, 1908. 5. 19 ~ ?)은 남양홍씨(토홍계)세보 4권 481쪽에 일명이 홍승해(洪承海) 또는 홍승윤(洪承潤)으로 등재되어 있고, 둘째 남동생 홍학진(洪鶴珍, 1910. 8. 1 ~ ?)은 4권 482쪽에 홍승택(洪承澤)으로 등재되어 있다. [28] 남동생의 이름이 홍성달(洪性達)과 홍성만(洪性萬)이다. [29] 다음 동영상에서 남양 홍씨라고만 밝혔을 뿐 당홍계인지 토홍계인지 밝히지 않았으며, 당홍계, 토홍계 항렬자 둘 다 안 썼으므로 당홍계인지 토홍계인지 알 수 없다. 대부분 당홍계 37대손이라고만 추측할 뿐 실제로 몇대손인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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