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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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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제27대 국왕
충숙왕 | 忠肅王
출생 1294년( 충렬왕 20년) 7월 30일
즉위 1313년 3월 28일
고려 개경 정궁 강안전
(現 경기도 개성시)
사망 1339년 5월 3일 (향년 44세)
고려 개경 침전
(現 경기도 개성시)
능묘 의릉(毅陵)
재위기간 고려 제27대 국왕
1313년 4월 20일 ~ 1330년 2월 18일[1] (15년)
고려 제27대 국왕 (복위)
1332년 3월 21일 ~ 1339년 5월 3일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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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본관 개성 왕씨
고려: 도(燾) → 만(卍)
: 아라트나시리(阿剌忒訥失里)
부모 부왕 충선왕
모후 의비
형제자매 3남 1녀 중 2남
배우자 복국장공주, 조국장공주, 경화공주, 명덕태후
자녀 3남
종교 불교
의효(宜孝)
봉호 강릉대군(江陵大君)[2]
시호 고려: 의효대왕(懿孝大王)
: 충숙왕(忠肅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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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체성3. 생애4. 평가5. 기타6. 가족관계7. 대중매체에서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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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의 제27대 군주.

묘호는 없고 시호는 '충숙의효대왕'(忠肅懿孝大王). 원래 이름은 '도'(燾)였으나 군주로 즉위한 후에 '만'()으로 개명했다. 자는 '의효'(宜孝), 몽골식 휘는 '아라트나시리'(阿剌忒訥失里)였다.

2. 정체성

최초의 한•몽 혼혈 군주였던 제26대 충선왕의 차남이자 충혜왕, 공민왕의 부왕이었다. 그리고 충숙왕의 어머니는 충선왕의 제1비 계국대장공주 보르지긴 부다시리가 아니고, 제2비인 의비(懿妃) 예수진(也速眞, 야속진)이었다. 의비 예수진은 몽골인이었는데 원나라 보르지긴 오복 키야트 씨족, 즉 황금씨족 출신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와 자식들보다도 고려인 혈통이 옅은 혈통적으로는 고려사에서 몽골계에 가장 가까운 고려왕이었지만[3][4],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은 역대 혼혈 고려 왕 중 가장 강한 왕이었다.

재위 기간 고려보다 원에 머무른 기간이 더 많은 아버지와 달리 충숙왕은 그래도 고려에 머물며 통치하였으며, 상왕이 되어 원나라로 가던 도중 황주에서 아들 충혜왕을 만나게 되었는데, 충혜왕이 자신에게 몽골식 복장을 입고 몽골식 예법인 호례를 올리자 아들을 엄하게 꾸짖기도 했다.
네 아비와 어미가 모두 고려 사람이거늘[5] 어찌 내게 호례를 행하느냐? 그리고 옷은 또 뭐가 그렇게 사치스럽느냐? 다른 이에게 보이기 민망하니 어서 갈아입거라!
말이 꾸짖은 것이지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충숙왕의 훈계에 충혜왕이 눈물까지 흘리며 물러났다고 적혀있는지라 무진장 혼이 난 것으로 보인다.

3. 생애

<colcolor=#670000> 역대 강릉(江陵)의 가신
1대 강릉대군(江陵大君) 왕만(王卍)
2대 강릉부원대군(江陵府院大君) 왕전(王顓)
3대 강령부원대군(江寧府院大君) 왕우(王禑)

1299년 강릉군에 봉해졌고, 이후 강릉대군(江陵大君)으로 진봉되었으며 그의 친형인 세자 왕감이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해 1310년 부왕인 충선왕에게 살해당한 뒤에 정식으로 후계자가 되었다. 1313년 원나라 심왕 자리를 지키던 아버지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지만 아버지 충선왕은 이후 아들의 발목을 잡는 결정을 하고 만다. 안 그래도 충선왕이 상왕으로 건재하여 충숙왕의 왕권이 약한 상황에서 충선왕이 1316년 자신의 원나라 작위인 심양왕, 즉 심왕 자리와 고려의 세자 자리를 이복형 강양공[6]의 차남인 연안군 왕고에게 물려준 것이다. 물론 온전한 자의가 아닌 정치적 압력을 받은 탓에[7] 조카에게 물려준 것으로 보이나 이는 충숙왕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한동안 고려의 정사를 어지럽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으며, 명목상으로 포괄하게 된 동군연합 요동의 영토 역시 사실상 날라가게 된다.[8] 심왕 왕고는 고려 국왕 자리에 욕심을 품고, 지속적으로 사촌인 충숙왕을 모함했다. 결국 왕이 주색에 빠져 정치를 소홀히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충숙왕은 원나라에 소환되었다가 풀려나기를 반복했다.[9]

하지만 업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1318년의 업적이 특히 많다. 원나라에 보내는 무리한 세공을 삭감하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보기도 했으며, 당시 백성들의 큰 고통이었던 공녀 환관들을 원나라로 보내는 것을 줄여 달라고 청원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사용(使用, 또는 士用)·김성(金成)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검교평리 송영(宋英)을 보내어 안무하게 하였다. 같은 해 폐단이 많았던 사심관 제도를 폐지하였으며, '제폐사목소'(除弊事目所)를 설치했다가 ' 찰리변위도감'(察理辨違都監)으로 고쳐 권문세족이 점령한 땅을 색출한 뒤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했다. 채무에 있어서 고리대금업을 막아 이자가 원금에 상당할 때는 정지시키는 등 단속에 힘을 기울였다. 고려에 남송의 대학자 주자의 성리학을 들여 온 안향 문묘에 배향했으며, '화자거 집전민추고도감'(火者據 執田民推考都監)을 설치했다. 최소한 고려 국왕이라는 책임감이 부족해 대도에서 원격 통치를 하며 자신의 학문 사업과 원나라의 정치 싸움에만 몰두하던 부왕 충선왕보다는 충숙왕의 치세가 그나마 나았다.

1321년 원나라 영종의 명령으로 인해 충숙왕이 끌려가자 심왕 왕고가 2년간 고려 국왕을 자칭하기까지 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충숙왕이 잘 해보겠다는 의욕을 상실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왕위에 제대로 실증이 난 충숙왕은 왕 노릇을 못 하겠다며 자신을 위협하던 심왕 왕고에게 양위할 뜻을 내비쳤지만 중신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충숙왕은 이전에도 왕고의 형제들에게 작위를 주는 등 심왕파에게 유화적인 자세로 나갔었다. 그러나 왕고는 지속해서 사촌 충숙왕을 모함했으며 1323년 심지어는 원나라 황제에게 "고려를 (省)으로 만들고 원나라가 직접 통치하죠"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는데 이를 입성책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입성책동'은 굳이 비교적 안정된 정국에 괜히 평지풍파를 일으킬 필요가 있냐는 원나라 조정 내부 반대 의견과 대학자 이제현의 노력 등으로 무산되었다.[10] 이때 고려가 원나라의 직할령 시도를 방어하는데 내세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원종과 세조 쿠빌라이 칸이 각자 태자 시절[11] 맺은 협약인 세조구제였다. 실제로 원나라가 몇 차례나 고려를 완전 합병하려 할 때마다 '세조구제'는 가장 확실한 방어막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도 심왕 왕고와의 알력이 계속되자 1330년 충숙왕은 아들 왕정에게 양위하고, 원나라로 건너 갔는데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이 바로 고려사 최악의 폭군인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의 막장 짓을 보다 못한 원나라는 결국 2년만에 충혜왕을 폐위시키고, 다시 충숙왕을 복위시켰으나 정사에 의지를 잃은 충숙왕은 신하도 만나지 않고, 사냥과 음주가무로 소일하는 것만 반복하다가 8년만인 1339년 3월 향년 46세의 보령으로 승하했다. 시호는 '충숙의효대왕'(忠肅懿孝大王)이었다.[12]

4. 평가

아버지 충선왕의 희한한 권력 분점과 그 후폭풍으로 왕위에 오른 후에도 원나라에 자주 왔다갔다하며[13] 귀찮은 재위 기간을 보낸 임금이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개인적으로는 글씨와 문장에 두루 능했으며, 성품은 침착하고 총명하며 결단력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 평가에 걸맞는 뚜렷한 정치적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애초에 원 간섭기의 모든 군주들이 그렇듯 뭘 해 보고 싶어도 할 수 있는 한계치가 있는 것이 현실이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상기했듯 본인이 고려인이란 정체성은 상당히 뚜렷한 왕이긴 했다.

혼란도 많았지만 총 재위 기간이 25년으로 원나라에 끌려간 기간을 빼면 20년, 충혜왕에게 물려준 기간을 더하면 22~27년으로 꽤나 길다는 것도 특이하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아버지 충선왕보단 단명했다.

여러모로 자식 농사에는 실패한 왕이라 볼 수 있는데, 장남 충혜왕은 막장 짓거리 때문에 생전부터 자주 혼냈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러고도 사이코패스화된 게 함정이지만. 충혜왕 사후엔 첫째, 둘째 손자인 충목왕, 충정왕이 왕위에 오르지만 둘 다 10대에 사망하고, 1352년에는 3남인 공민왕이 즉위했지만[14] 초반의 개혁적 행보가 무색하게 노국대장공주 승하 뒤 폐인이 되어 암군으로 타락, 끝내는 자제위에게 참혹하게 시해당하고 만다. 차남 용산원자도 어린 나이에 요절했다. 심지어 셋째 손자 우왕도 좋은 임금이 되지는 못했다.

5. 기타

그런데 "위의 편지가 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것이라는 주장은 라틴어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는 반박 주장도 나왔다. 편지를 받는 'Regi Corum'의 'Corum'을 고려인의 복수로 보는 건 라틴어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 편지를 받는 당사자는 라틴어 문법으로 보든, 당시 정황으로 보든 충숙왕일 수 없다는 것이다. 기사1, 기사2. 해당 논문을 살펴보면 'Corum'의 문법적인 형태를 고려해 볼 때 'Corum'은 'Ci'이고, 이는 'Khitan'에 더 근접해 있으며, 'Khitan'은 그런데 'Chigista'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또다른 가능성도 있는데 'Sece de Chigista'를 'Seecede Chingista'로 읽을 수 있으며, 이 경우도 고려와는 무관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편지를 받는 'Regi Corum'은 충숙왕이 아니라 원나라 황제이거나 서방 칸국의 칸들 중 한 명으로 보인다. 또한 해당 서신은 아비뇽에서 칸발리크(대도, 오늘날의 베이징)으로 가는 여정에서 여행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종의 통행증이었는데, 칸발리크보다 더 동쪽에 있는 고려의 왕에게 보내는 서신일 수 없다. 마지막으로 '고려'를 이르는 당대 라틴어 어형은 몽골어 '솔롱고스'에서 유래한 'Solangi, 또는 혹은 '高麗'의 중국어 발음 '가오리'에서 유래한 'Caule'였으므로 'Regi Corum'은 '고려 왕'이 될 수 없다는 게 논문의 요지다.

6. 가족관계

7. 대중매체에서

파일:충숙왕(신돈).png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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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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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권
서필 · 최승로 최제안 · 쌍기 · 최량 · 한언공 · 류방헌 · 김심언 · 최항 · 채충순
94권
서희 서눌 서공 · 유진 · 강감찬 · 최사위 · 황보유의 장연우 · 양규 ( 양대춘) · 지채문 지녹연 · 하공진 · 김은부 · 주저 · 강민첨 · 곽원 · 왕가도 · 김맹 · 류소 · 윤징고 · 위수여 · 전공지 · 이주헌 · 이주좌 · 안소광 · 조지린
9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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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권
최사추 · 김인존 · 윤관 윤언순 ( 윤언식 윤언민 윤언이) 윤인첨 윤세유 윤상계 · 오연총
97권
김부일 김부의 · 고령신 · 김황원 이궤 · 곽상 곽여 · 유재 호종단 신안지 · 김경용 ( 김인규) · 최홍사 · 한안인 · 이영 · 한충 · 임개 유녹숭 · 김준 · 류인저 · 강증 · 허경 · 문관 · 정항 정서 · 김극검 · 김약온
98권
김부식 김돈중 김군수 · 정습명 · 고조기 · 김정순 · 정극영 · 박정유 · 최사전 · 김향 · 최자성 · 김진 · 임완 · 최기우 · 김수자 · 최유 · 이숙 이위 · 허재
99권
양원준 · 최유청 최당 최린 최선 최종준 최온 최문본 최평 최옹 · 이공승 · 신숙 · 한문준 · 문극겸 · 류공권 류택 · 조영인 · 왕세경 · 이순우 · 임민비 · 최척경 · 함유일 · 염신약 · 이지명 · 유응규 유자량 · 현덕수 · 최균 최보순 최윤개 · 김거공 · 한유한
100권
두경승 · 우학유 · 노영순 · 조위총 · 방서란 · 박제검 · 기탁성 · 홍중방 · 경대승 · 진준 · 최세보 · 박순필 · 이영진 · 백임지 · 이준창 · 최충렬 · 정세유 정숙첨 정안 · 정국검 이유성 · 정방우 · 정언진
101권
민영모 민식 · 송저 · 김광중 김체 · 안유발 · 최여해 · 최우청 · 왕규 · 차약송 기홍수 · 정극온 · 류광식 · 권경중 · 김태서 김약선 김미 · 문한경 권세후 백돈명 · 노인수 · 김의원
102권
금의 · 이규보 이익배 · 유승단 · 김인경 김승무 · 이공로 · 이인로 오세재 조통 임춘 · 조문발 · 이순목 이수 · 김창 · 송국첨 · 최자 하천단 · 채송년 채정蔡楨 · 손변 · 권수평 · 이순효 장순량 · 송언기 · 김수강 · 김지대 · 이장용
<rowcolor=#670000,#fedc89> 103권 104권
조충 조변 · 김취려 김문연 김변 · 이적 · 채정蔡靖 · 박서 송문주 · 김경손 김혼 · 최춘명 · 김희제 · 이자성 · 김윤후 · 김응덕 김방경 김구용 김제안 김흔 김순 김영돈 김영후 김사형 박구 · 한희유 · 나유 나익희 · 원충갑 · 김주정 김심 김종연 김석견
105권
류경 류승 류돈 류만수 · 허공 허종 허관 허금 허부 허유 · 홍자번 홍승서 홍영통 · 정가신 · 안향 안우기 안목 · 설공검 · 유천우 · 조인규 조서 조연 조덕유 조린 조연수 조위
10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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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권
박전지 · 오형 · 이진 · 윤신걸 박효수 · 허유전 · 박충좌 · 윤선좌 · 이조년 이승경 · 이곡 · 우탁 · 안축 안종원 안보 · 최해 · 장항 · 이성 · 조렴 왕백 · 이백겸 · 신군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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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권
이공수 · 류숙 류실 · 이인복 · 백문보 · 전녹생 · 이존오 · 이달충 · 설손 설장수 · 한복 · 이무방 · 정습인 · 하윤원 · 박상충 · 박의중 · 조운흘
113권
안우 김득배 이방실 · 정세운 · 안우경 · 최영 · 정지 · 윤가관 · 김장수
114권
윤환 · 이성서 · 이수산 이념 · 이승로 · 황상 · 지용수 · 나세 · 김선치 · 전이도 · 구영검 · 오인택 · 김보 · 변광수 · 정지상 · 임군보 · 나흥유 · 목인길 · 김유 · 양백연 · 지용기 · 하을지 · 우인열 · 문달한 · 김주 · 최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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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 우현보 · 이숭인 심덕부 · 이림 · 왕강 · 박위 · 이두란 · 남은 정몽주 · 김진양 · 강회백 · 이첨 · 성석린
<rowcolor=#670000,#fedc89> 118권 119권 120권
조준 정도전 윤소종 윤회종 · 오사충 · 김자수 }}}
121권
<rowcolor=#670000,#fedc89> 「양리(良吏)」 「충의(忠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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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 · 석주 · 최루백 · 위초 · 서릉 · 김천 · 황수 · 정유 · 조희참 · 정씨 · 손유 · 권거의 노준공 · 신씨 · 윤구생 · 반전 · 군만 유씨 · (현문혁의 처) · (홍의의 처) · (안천검의 처) · (강화부 세 여인) · 최씨 · 배씨 · 문씨 · 김씨 · 안씨 · 이씨 · (권금의 처)
122권
{{{#!wiki style="margin: -16px -11px" <rowcolor=#670000,#fedc89> 「방기(方技)」 「환자(宦者)」 「혹리(酷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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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폐행1(嬖幸一)」
유행간 · 영의 · 김존중 · 정세신 · 백승현 · 강윤소 · 염승익 · 이분희 이습 · 권의 채모 이덕손 · 임정기 ( 민훤) · 주인원 · 이지저 고종수 김유 · 인후 인승단 · 장순룡 차신 노영 · 조윤통
124권 「폐행2(嬖幸二)」
윤수 윤길보 ( 송화) · 이정 김문비 이병 · 원경 · 박의 · 박경량 · 전영보 · 강윤충 · 배전 · 민환 · 윤석 · 손기 · 정방길 임중연 강융 · 신청 박청 · 왕삼석 양재 조신경 최노성 윤현 안규 · 최안도 이의풍 김지경 이인길 · 노영서 박양연 송명리 · 김흥경 · 반복해 · 신원필
125권 「간신1(姦臣一)」
문공인 · 박승중 · 최홍재 · 최유칭 · 박훤 · 송분 · 왕유소 · 송방영 · 오잠 석주 · 김원상 · 류청신 · 권한공 · 채하중 · 신예 전숙몽 · 이춘부 · 김원명 · 김횡 · 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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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임 · 임견미 · 염흥방 · 조민수 · 변안열 · 왕안덕
{{{#!wiki style="margin: -16px -11px" <rowcolor=#670000,#fedc89> 127권 「반역1(叛逆一)」 128권 「반역2(叛逆二)」 129권 「반역3(叛逆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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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670000,#fedc89> 130권 「반역4(叛逆四)」 131권 「반역5(叛逆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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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권 「반역6(叛逆六)」
신돈
133·134·135·136·137권
신우(우왕) ( 신창(창왕)) }}}}}}}}}}}}

[1] 1321년부터 1324년까지 3년간 대도에 압송되어 고려 국새을 빼앗겼다. [2] 참고로 그의 아들인 제31대 공민왕 역시 같은 봉호를 받았다. [3] 어머니가 몽골인이고 아버지 충선왕은 고려-몽골 혼혈인, 쉽게 말해 친할아버지만 고려인이고 친할머니와 외조부모 모두 몽골인인, 1/4 고려인 + 3/4 몽골인이였다. [4] 참고로 충선왕은 50% 충혜왕과 공민왕은 62.5% 충목왕은 31.25% 충정왕과 우왕은 81.25 창왕은 90.625% 로 고려인 혈통이었다 [5] 모친이 고려인 명덕태후다. [6] 제25대 충렬왕과 고려인 정화궁주 왕씨의 아들. 이름은 '왕자'였다. [7] 제국대장공주 보르지긴 쿠틀룩켈미쉬나 그 소생인 충선왕이 아니었다면 고려의 왕위는 당연히 강양공 왕자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충선왕 입장에서 심왕 자리를 조카에게 준 건 미안한 마음에 챙겨준 보상 비슷한 것이었을 수 있다. 게다가 애초에 심왕 자리는 충선왕이 공을 세워 얻어낸 것이며, 원의 의사에 어긋나는 인사는 충선왕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8] 물론 실질적 지배는 애초에 아니긴 했다. [9] 심왕 왕고의 모략 때문만이 아니라 충숙왕의 아내인 복국장공주 보르지긴 이린친발라가 갑자기 승하한 일이 있었는데 충숙왕이 복국장공주를 피흘릴 정도로 두들겨 패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원나라에서 문제삼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사실 복국장공주는 고려에 올 때부터 몸이 이미 좋지 않은 상태였으며, 애당초 부부의 사이는 좋지 않아서 하루가 멀다하고 부부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10] 실제로 원나라 내부에서 고려를 간접종속국이 아닌 직할통치령, 즉 원나라 영토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의사가 있었다 한들, 이 시기의 원나라 상황을 감안했을 때 현실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원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한줌도 안 되는 극소수의 몽골인들이 절대 다수의 한족 및 소수민족들을 통치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불안정한 국가 구조를 안고 갈 수밖에 없었고, 더군다나 이 시기는 원나라 후기여서 안 그래도 허약한 행정력 때문에 내부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11] 그리고 원종은 아들 충렬왕을 쿠빌라이의 딸 제국대장공주에게 장가 보내어 사돈을 맺었다. 따라서 쿠빌라이는 충렬왕의 장인이기도 하다. [12] 원나라의 시호를 쓰지 않는 경우에는 '의효왕', 고로 '의왕'(懿王)으로 줄여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 전대인 제18대 의종과는 한자가 다르다. [13] 충렬왕과 충선왕은 대부분 제 발로 원나라에 자주 들락거렸으나 충숙왕이 원나라에 갈 때는 강제 호출된 경우가 많았다. [14] 사실 충숙왕 본인도 생전에 신하들에게 공민왕을 왕위에 올려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었다고 한다. [15] 당시 원나라 수도 대도에는 가톨릭 성직자들이 파견되어 있었으므로 고려에 가톨릭 신자가 가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16] 이 시대에는 고려인 무슬림도 있었다. 수도 개경에는 몽골에서 건너와 고려에 체류하던 튀르크계 위구르인들이 지은 마스지드가 있었고, 당시에는 그 곳을 예궁(禮宮)이라 불렀다.(출처 : 《조선불교통사》) [17] 20세기에 편찬된《신원사》에는 제31대 공민왕의 왕후 노국대장공주가 위왕 아무케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 원사》에 위왕 아무케가 제27대 충숙왕 때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기에 노국대장공주는 위왕 자리를 물려받은 아무케의 차남 베이르테무르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 즉 아무케의 딸 조국장공주는 노국대장공주의 고모인 셈이다. 위왕 아무케는 원나라 제3대 황제인 무종과 원나라 제4대 황제인 인종의 이복형이었지만, 훗날 이들과의 계승 다툼에서 밀려나 대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탐라(제주도)로 유배되어 죽었다. [18] '숙공휘령공주'라고도 한다. [19] 제26대 충선왕의 후궁 순화원비 홍씨(順和院妃 洪氏)의 친동생이다. 즉 이들은 부자지간이면서 동서(同婿)지간이 된다. [20] 실제 역사상으로 이 때 고려 군주는 제24대 원종이다. 일본 원판에서는 군주가 원종이지만 한국에 수입되면서 비스코에서 몽골과 관련된 인물들로 고려 측을 싹 갈아버려서 제27대 충숙왕이 대신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