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바르뎀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역대 칸 영화제 | |||||||||||||||||||||||||||||||||||||||||||||||||||||||||||||||||||||||||||||||||||||||||||||||||||||||
남우주연상 | ||||||||||||||||||||||||||||||||||||||||||||||||||||||||||||||||||||||||||||||||||||||||||||||||||||||||
제62회 ( 2009년) |
→ |
제63회 ( 2010년) |
→ |
제64회 ( 2011년) |
||||||||||||||||||||||||||||||||||||||||||||||||||||||||||||||||||||||||||||||||||||||||||||||||||||
크리스토프 왈츠 (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
→ |
하비에르 바르뎀 ( 비우티풀) 엘리오 게르마노 (우리의 인생) |
→ |
장 뒤자르댕 ( 아티스트) |
||||||||||||||||||||||||||||||||||||||||||||||||||||||||||||||||||||||||||||||||||||||||||||||||||||
역대 베니스 영화제 | ||||
볼피 컵 - 남우주연상 | ||||
제56회 ( 1999년) |
→ |
제57회 ( 2000년) |
→ |
제58회 ( 2001년) |
짐 브로드벤트 (뒤죽박죽) |
→ |
하비에르 바르뎀 ( 비포 나잇 폴스) |
→ |
루이지 로 카치오 (내 눈 속의 빛) |
제60회 ( 2003년) |
→ |
제61회 ( 2004년) |
→ |
제62회 ( 2005년) |
숀 펜 ( 21 그램) |
→ |
하비에르 바르뎀 ( 씨 인사이드) |
→ |
데이비드 스트라탄 ( 굿나잇 앤 굿럭) |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 ||||
남우조연상 - 영화 | ||||
제64회 ( 2007년) |
→ |
제65회 ( 2008년) |
→ |
제66회 ( 2009년) |
에디 머피 ( 드림걸즈) |
→ |
하비에르 바르뎀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
히스 레저 ( 다크 나이트) |
역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 ||||
남우조연상 | ||||
제60회 ( 2007년) |
→ |
제61회 ( 2008년) |
→ |
제62회 ( 2009년) |
알란 아킨 ( 리틀 미스 선샤인) |
→ |
하비에르 바르뎀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
히스 레저 ( 다크 나이트) |
영화부문 남우조연상 | ||||
제13회 ( 2007년) |
→ |
제14회 ( 2008년) |
→ |
제15회 ( 2009년) |
에디 머피 ( 드림걸즈) |
→ |
하비에르 바르뎀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
히스 레저 ( 다크 나이트) |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 ||||
남우조연상(영화) | ||||
제12회 ( 2007년) |
→ |
제13회 ( 2008년) |
→ |
제14회 ( 2009년) |
에디 머피 ( 드림걸즈) |
→ |
하비에르 바르뎀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
히스 레저 ( 다크 나이트) |
역대 새턴 시상식 | ||||
영화 남우조연상 | ||||
제33회 ( 2007년) |
→ |
제34회 ( 2008년) |
→ |
제35회 ( 2009년) |
벤 애플렉 (할리우드 랜드) |
→ |
하비에르 바르뎀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
히스 레저 ( 다크 나이트) |
역대 고야 시상식 | ||||
남우조연상 | ||||
제8회 ( 1994년) |
→ |
제9회 ( 1995년) |
→ |
제10회 ( 1996년) |
후안 에카노베 (마더 길다) |
→ |
하비에르 바르뎀 (지나간 날들) |
→ |
루이스 시게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
남우주연상 | ||||
제9회 ( 1995년) |
→ |
제10회 ( 1996년) |
→ |
제11회 ( 1997년) |
카르멜로 고메즈 (지나간 날들) |
→ |
하비에르 바르뎀 (보카 보카) |
→ |
산티아고 라모스 (Como un relámpago) |
제16회 ( 2002년) |
→ |
제17회 ( 2003년) |
→ |
제18회 ( 2004년) |
에두아르드 페르난데스 (파우스트5.0) |
→ |
하비에르 바르뎀 (햇빛 찬란한 월요일) |
→ |
루이스 토사 (테이크 마이 아이스) |
제18회 ( 2004년) |
→ |
제19회 ( 2005년) |
→ |
제20회 ( 2006년) |
루이스 토사 (테이크 마이 아이스) |
→ |
하비에르 바르뎀 ( 씨 인사이드) |
→ |
오스카 자에나다 (카마론) |
제24회 ( 2010년) |
→ |
제25회 ( 2011년) |
→ |
제26회 ( 2012년) |
루이스 토사 (셀 211) |
→ |
하비에르 바르뎀 ( 비우티풀) |
→ |
호세 코로나도 ( 언포기븐) |
제35회 ( 2021년) |
→ |
제36회 ( 2022년) |
→ |
제37회 ( 2023년) |
마리노 카사스 (크로스 더 라인) |
→ |
하비에르 바르뎀 ( 굿 보스) |
→ |
데니스 메노쳇 (더 비스츠) |
{{{#!wiki style="margin:-10px -10px" | <tablewidth=90%><tablebordercolor=#fff,#1c1d1f>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 화이트.svg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colbgcolor=#d4a1a1><colcolor=#fff,#000> 이름 |
하비에르 바르뎀 Javier Bardem |
|
분야 |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 심볼.jpg 영화 | ||
입성날짜 | 2012년 11월 8일 | ||
위치 | 6834 Hollywood Blvd. | }}}}}}}}} |
}}} ||
<colbgcolor=#0C0000><colcolor=#ffffff> 하비에르 바르뎀 Javier Bardem |
|
|
|
본명 |
하비에르 앙헬 엔시나스 바르뎀 Javier Ángel Encinas Bardem |
출생 | 1969년 3월 1일 ([age(1969-03-01)]세) |
스페인국 그란 카나리아 섬 라스팔마스 | |
국적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거주 | 스페인 마드리드 |
신장 | 181cm |
직업 | 배우 |
활동 | 1974년 ~ 현재 |
부모 | 어머니 필라르 바르뎀[1] |
형제 |
형 카를로스 바르뎀[2] 누나 모니카 바르뎀[3] |
배우자 | 페넬로페 크루즈 (2010년 결혼 – 현재) |
자녀 |
아들 레오 엔시나스 크루즈 (2011년생) 딸 루나 엔시나스 크루즈 (2013년생) |
종교 | 무종교[4] |
링크 |
[clearfix]
1. 개요
스페인의 배우.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할리우드와 유럽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연기 활동을 하고 있으며, 폭넓은 스팩트럼의 연기로 유명한 배우다.
2. 생애
El Pícaro에서 6살이었을 때 | 가족과 함께 |
하비에르가 어렸을 때 스페인은 파시스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다스리던 시대였다. 그의 삼촌인 '후안 안토니오 바르뎀'[5]은 예술 작품에 대한 검열이 가장 심했던 프랑코 정권 체제를 비판했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자 공화당원이었고, 그의 어머니 역시 좌익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고 공화당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지라 하비에르의 집안은 프랑코 정권 아래 쫓기거나 감시를 당하며 살아야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하비에르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때때로 뜨거운 물, 음식, 전기 없이 궁핍하게 지내야 했으며, 그는 파시스트들에 의해 폭력으로 가득 찬 거리와 정치적 탄압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던 어머니를 보는 등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했지만 우리 가족은 매우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늑대 무리와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홀어버이였고 배우였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할 수 있는 곳에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아침에는 텔레비전을 하고 저녁에는 연극을 하고 밤에는 카바레를 하고 집에 와서 두 시간 동안 잠을 자고 다시 일했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가 없었고 나는 우러러 볼 지배적인 남성상이 없었습니다."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버지, 이혼 후 가정을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던 어머니를 보면서 그는 10대 때 아버지에 대한 많은 분노를 품고 자랐다.[6] 10대 때 품었던 분노는 학교 생활보다는 운동에 관심을 돌리게 했다. 그는 권투, 역도, 럭비 등 다양한 운동을 했으며 특히 20세 미만 스페인 주니어 럭비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기도 했다.[7]럭비팀 시절 사진 |
집안이 여러 세대에 걸쳐 영화 산업에 종사했고 친가와 외가 대부분이 배우이거나 감독이었다. 그러나 그는 영화를 보는 것에는 흥미가 있었지만 연기라는 직업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그림을 좋아했다. 그는 화가가 되고 싶어서 Escuela de Artes y Oficios에서 4년 동안 그림을 공부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학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연기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점차 자신이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결국 화가의 길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3. 연기 활동
배우였던 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영화 촬영장과 텔레비전 세트장을 자주 드나들곤 했다. 그의 첫 번째 연기 활동은 1974년 Fernando Fernán-Gómez의 «El Pícaro» 시리즈였다. 영상[8] 그 후 1989년 스페인 TV 쇼 'The Day Ahead'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했다.본격적인 연기 활동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오디션을 보러 가는 누나의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동행했는데, 오디션장 대기실에 앉아 누나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영화 관계자의 눈에 띄었다. 간단히 테스트 해보면 안되겠냐는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따랐는데 그 자리에서 캐스팅이 되었다.[9] 그렇게 스무살에 비가스 루나의 영화 «룰루»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되었다.[10][11] 이후로도 그의 외모와 연기를 인상 깊게 본 비가스 루나는 자신의 다음 영화인 «하몽 하몽»에서 지금의 아내인 페넬로페 크루즈를 꼬시는 마초맨으로 다시 캐스팅했다.[12]
영화 «하몽 하몽» |
첫 주연을 맡은 영화 «하몽 하몽»이 흥행에 대성공하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고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비가스 루나의 영화 «골든 볼»에도 출연했다. 연기파 배우로 알려진 지금과는 달리 초기 경력에서 그는 근육질의 섹시한 나쁜 남자 역할을 맡아 섹스 심벌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이 성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스타가 아니라 배우가 되고 싶었고 1차원적인 마초 역할을 반복하면서 오게 되는 배우로서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골든 볼을 마지막으로 의도적으로 마초 역할을 피했다. 그리고 1994년 영화 «지나간 날들»에서 마약 중독자 역할로 첫 '고야상'[13]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하몽 하몽»부터 시작해 «골든 볼», «보카 보카», «라이브 플래쉬» 등 몇년 동안 꾸준히 스페인 영화에 출연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97년 존 말코비치는 당시 27세였던 그에게 영어를 쓰는 배역을 제안했지만 영어가 서툴러 거절해야 했다. 그는 영어 번역가이자 자신의 연인이었던 크리스티나 팔레스에게 영어 과외를 받았고, 처음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영화 «프레디타»에 출연했다.
으레 자국에서 주목을 받는 유망한 배우들이 헐리우드 진출을 꿈꾸던 것과 달리 영어도 못할 뿐더러 미국 문화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는 그에게 헐리우드는 자신과 완전히 무관한,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스페인 밖에서 그를 배우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기회가 오는데, 그것이 영화 «비포 나잇 폴스»였다.[14][15]
영화 «비포 나잇 폴스» |
하비에르는 쿠바의 동성애 시인이자 소설가인 '레이날도 아레나스' 역할을 위해 머리를 염색하고 약 13kg을 감량하고 시인의 모든 작품을 읽었다. 그리고 쿠바식 영어 억양을 마스터하기 위해 쿠바에 가서 영어를 배웠고 그곳에서 실제 게이 및 트렌스젠더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했다. 그는 성 소수자였던 작가가 처한 삶의 곤경을 가슴 아프게 그려내며 관객과 비평가 모두를 사로잡았다. 실존 인물인 시인의 감정적 깊이와 연약함을 강렬하고도 세밀하게 구현한 연기로 그는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스페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이렇듯 모든 비평가 및 대중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하게 감동받지 않은 사람은 다름 아닌 하비에르 본인이었다. 그는 당시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거의 자살할 뻔했다."라고 고백했다. 일반인이나 다름없던 무명에서 갑작스런 국제적인 명성에 따라오는 카메라 플래쉬 세례와 어딜 가든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관심과 추앙이 불편했고, 그러면서 도리어 배우라는 직업에 회의가 들었다. 그리고 가끔씩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아프리카에 가서 사람들을 돕는 게 어때?"라고 자문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연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신 그는 허울뿐인 역할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 마이너리티 리포트»[16], «블로우», « 007 어나더데이»와 같은 헐리우드 영화 감독들의 러브콜을 모두 거절하고 작은 역할이더라도 해고된 노동자, 죽음을 갈망하는 사지마비자같은 도전적이고 복잡한 캐릭터가 있는 영화를 선택했다. 특히 « 씨 인사이드»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끝낼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지마비 환자 '라몬 삼페드로'의 실제 이야기를 설득력 있고 진심 어린 연기로 그려냈고, 주인공의 내적 혼란과 흔들리지 않는 결단력을 놀랍게 묘사하여 비평가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아 두 번째 베니스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영화 «씨 인사이드» |
영어에 점차 말문이 트이게 된 하비에르는 2000년대 후반부터 «댄서 업스테어즈»[17], «고야의 유령»,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 같은 헐리우드 영화에 출연했으나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고야의 유령» 촬영 후 2007년 코엔 형제로부터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 역할을 제안 받게 된다. 그는 평소 코엔 형제의 영화를 좋아했으나 영어를 잘하지 못하고, 운전을 못하고, 폭력을 싫어하고, 총을 무서워하는 등 여러 이유에서 출연을 망설였다.[18] 더구나 스케쥴 문제로 거의 하차할 뻔하였으나 코엔 형제는 하비에르를 캐스팅 1순위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를 기다렸고 다행히 스케쥴 문제가 해결되어 출연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소름 끼칠 정도로 사악한 연쇄살인마이자 사이코패스로, 차갑고 감정 없는 태도로 시종 관객을 두렵고 불안하게 만드는 파격적인 악의 화신을 완벽히 표현하였다. 하비에르는 안톤 쉬거를 자신이 세운 논리와 규칙에 따라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악이자 재앙 그 자체이며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 생각하여 연기했다고 한다.
당시 연기에 있어서는 알 파치노, 잭 니콜슨, 로버트 드 니로의 뒤를 잇는 배우라고 평가될 만큼 비평가들로부터는 인정 받았지만 상업영화에는 나오지 않고 대체적으로 작가주의의 저예산 비주류 영화에 나오다보니 대중에게는 낯선 배우였고 인정받을 기회가 적었다. 그런 면에서 대중성 및 작품성은 물론이고 영화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악역 연기를 선보인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이후 2010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 준 « 비우티풀»은 동시에 그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시험에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마약 밀매 및 이민자를 밀수하여 불법 가방 제조 공장에 알선하는 범죄자이자 암에 걸려 곧 죽을 운명에 처한 현실을 알게 되어 무너지기 시작하는 두 아이의 아버지인 '욱스발'은 그의 연기 경력에서 가장 깊고 복합적인 연기를 요구하는 캐릭터였다. «비우티풀»에서 그는 내면의 어두움, 도덕적 갈등, 삶의 고단함, 감정적 격렬함을 탁월하고 생생하게 그려 낸 연기로 또 다시 평단의 찬사를 받았으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뒤이어 그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영화 «비우티풀» |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는 줄리아 로버츠의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이혼남 '펠리페'를, «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는 각기 다른 성격의 세 여자와 동시에 사랑에 빠지는 바람둥이 예술가 '안토니오'를 연기하여 그간 어두운 역할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재치 있고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2012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흥행 이후, 다니엘 크레이그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초대형 규모의 영화 « 007 스카이폴»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는 여기서 기존의 007 시리즈 악당의 전형[19]과 달리 자신을 버린 M[20]을 향한 애증과 오로지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관심을 불러 일으킬 목적으로 무차별 살상과 테러를 무자비하게 감행하면서도 M의 사랑을 갈구하고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는 매우 유아적인 양면성을 지닌 악당 라울 실바를 훌륭하게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 라울 실바는 007 시리즈 중 가장 잘 만들어진 악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007 스카이폴» |
2013년 « 카운슬러»를 기점으로 스페인 영화에 찬조 출연 하는 등 활동이 뜸하다가 2014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을 비난하는 공개 서한을 EU에 보낸 것을 이유로 수많은 헐리우드 업계 인사들의 질타를 받았다.[21] 그는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한동안 헐리우드에 발을 못 붙였고, 친분이 있는 관계자들이 기획, 제작한 영화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참여한 영화들은 대부분 혹평을 받았고, 그 중 «라스트 페이스»는 그의 경력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은 작품이 되었다.
2017년 « 에스코바르»와 2018년 « 누구나 아는 비밀»에 연달아 아내인 페넬로페와 동반 출연하였다. 연기적인 면에서 늘 그렇듯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었으나 작품적인 면에서는 평이한 내용과 고루한 전개로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진 못했다.
2020년 코로나19의 여파로 촬영이 중단되거나 예정된 작업이 철수되는 등 업계에 불황이 닥친 것과 달리 그에게 여러 영화에 출연 제의가 들어왔는데, 이때 찍은 « 인어공주»나 « 라일 라일 크로커다일»은 지금껏 찍은 영화들과는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른 가볍고 가족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22]
위와 같은 해에 찍고 개봉한 «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에서는 1960년대 최고의 TV쇼였던 «I Love Lucy»의 공동출연자인 '루시 아르나즈'의 남편인 '데시 아르나즈'를 연기했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유머와 카리스마를 동시에 지닌 인물로서 쿠바식 영어를 구사하고 봉고, 기타와 같은 악기를 다루고 노래까지 불러야 하는 굉장히 까다로운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실존 인물을 잘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2022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 |
역시 위와 같은 해에 찍고 개봉한 « 굿 보스»는 그가 아주 오랜만에 참여한 스페인 영화였다. 코로나19의 영향에도 자국 내 흥행에 성공했고, 직원에게 한없이 인색한 얄미운 꼰대 사장 역을 연기한 그 역시 언론에서 마스터피스라는 극찬을 받으며 고야상[23] 역사상 가장 많은 부문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고 고야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2021년에는 « 듄», 2024년에는 « 듄: 파트 2»에 출연하였다. 25살에 프랭크 허버트의 « 듄»을 읽고 소설에 매료되었기에 원작을 기반으로 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출연 제의는 그에게 매우 기쁘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원작 줄거리상 파트 1에서는 별다른 행적이 없기에 활약은 없었지만 짤막한 씬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인물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외모와 첫 등장에서 보여준 프레멘 지도자로서의 위엄과 기세만으로도 관객들로 하여금 스틸가라는 인물에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 «듄: 파트 2» |
본격적으로 비중 있는 주조연으로 등장한 파트 2에서는 파트 1에서 보여준 북부의 프레멘을 이끄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서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를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광신도로 전락하게 되는 인물을 연기하였다.
스틸가는 영화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영웅주의의 위험성과 폐해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인물로, 그의 연기는 종교적 믿음에 지배된 인간 정신의 무력화와 나약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광신도 특유의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통찰력 있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그의 주요 대사인 " 리산 알 가입"은 밈이 되어 수많은 짤이 생성되었고 스틸가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가 되었다.
4. 특징
젊은 시절의 모습들 |
남자다운 외모와 큰 체구가 특징이며 얼굴 면적이 큰 편이다. 미국의 배우 제프리 딘 모건(Jeffrey Dean Morgan)[24]하고는 얼핏 보면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닮았다. 다만 하비에르가 좀 더 이국적인 느낌이 들며 코가 더 크고 뭉툭한 편. # 또한 영국의 배우 알프레드 몰리나와도 꽤 닮은 편인데, 알프레드 몰리나 쪽은 나이가 더 많고, 키도 더 크다.
과거 우리나라에서의 인지도는 눈물 날 정도였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007 스카이폴과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에서의 악역 연기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이후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가 화사에게 킴 카다시안 스타일의 메이크업을 받았는데 의도치 않게 안톤 쉬거 닮은 꼴로 거론되었고 결국 나 혼자 산다 레전드 캐릭터로 등극하면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졌다. 또한 놀면 뭐하니?와 바른치킨 CF에서 권오중이 안톤 쉬거로 등장했는데 도플갱어가 아니냐고 할 정도로 똑같이 생겨 큰 화제가 되었다.
우리나라 대중에게는 주로 박나래와 권오중 닮은 미친 초코송이로 각인이 되어 있고, 가끔 " 단발로 잘랐는데 하비에르 바르뎀됐다(
연기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 카멜레온같은 배우라 불린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이미지가 달라져서 그가 출연한 상당 수의 작품이 동일 인물이 연기한 줄 모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영화를 보고 난 후 "이 사람이 하비에르 바르뎀이었어?"라고 뒤늦게 아는 편이다. 실제 자신의 헤어스타일로 나온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로 금발, 백발, 단발, 장발, 대머리 등등 안해 본 스타일이 없고 괴상한 헤어스타일로 주로 나오다보니 원래 얼굴을 보여줘도 영화 속 캐릭터와 동일 인물이라는 인식을 잘 못한다. 그런 이유로 영화 밖 하비에르 바르뎀이란 사람보다는 영화 속 캐릭터 자체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마다 다른 얼굴의 하비에르 바르뎀 |
5. 사생활
첫 번째 연인이었던 크리스티나, 그리고 현재 아내인 페넬로페 |
사생활 노출을 기피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그의 영어 과외 선생님이자 첫 번째 연인이었던 크리스티나 팔레스와는 1991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교제를 해 왔지만 몇번 공식석상에 함께 나타났던 것을 제외하곤 알려진 바가 없다.[26] 또한 두 번째 연인이자 현재 아내이기도 한 페넬로페 크루즈와의 교제가 파파라치들에 의해 밝혀졌을 때도 모든 언론 및 방송 등 인터뷰에서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워낙 노출을 꺼리는 터라 2007년 교제 후 공식석상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2010년 2월 '고야상'에서였고, 교제 중 페넬로페에 대해 유일하게 입을 연 것은 2010년 5월 칸 영화제에서였다. 당시 '비우티풀'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수상 소감에서 객석에 있는 페넬로페를 향해 나는 이 기쁨을 내 친구, 내 파트너, 내 사랑 페넬로페와 나누겠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며 당신을 매우 사랑합니다. 라고 말해 화제가 되었다.
2010년 7월 언론 발표없이 바하마에서 양가 가족들만 참석한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사생활을 지키려는 성향은 결혼 후에도 이어져 인터뷰에서 가족과 관련한 질문을 받으면 "나는 내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라며 답변을 하지 않았고, 사생활을 캐묻는다면 인터뷰를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하거나 인터뷰어가 에둘러 '가족'의 '가'라도 입 밖으로 꺼낼라치면 가족 얘긴 하지 않을 거라며 사전 경고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름조차 언급하길 꺼리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조금씩 오픈을 하는 편이다. [27]
대중의 관심과 파파라치들의 눈을 피해 가족과 함께 은밀하고 조용한 생활을 유지하길 원하며 찍히는 사진들도 아내와 외출을 하거나 가족과 노는 모습이 전부다. SNS도 그린피스 캠페인의 홍보 목적으로 이용해서 아내와 아이들의 사진이 없다.
가정을 중시해서 다작하지 않고 아내와는 서로 필요한 만큼만 영화를 찍는다고 한다. 촬영 스케쥴도 서로 겹치지 않게 한 명이 영화를 찍으면 한 명은 쉬는 식으로 교대로 일한다. 늘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을 원해서 한 명이 일을 쉴 때는 배우자의 촬영 지역에 아이들과 가서 가족 모두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는 "나에게는 아내와 함께 공주와 용이 되어 아이들과 몇 시간 동안 노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촬영 때문에 2주 이상 집을 비우게 되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라고 밝히기도 했다.
상술했듯이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몸이 버틸 수 있는 기한이 2주라고 밝혔다. 그래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촬영을 했던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 당시에는 3주간 촬영을 하다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져 가족을 보기 위해 스페인으로 돌아 갔고, 다시 미국으로 와서 나머지 3주 분량의 촬영을 마쳤다.
몇볓 배우들처럼 평상시엔 전혀 꾸미지 않고 편하게 입고 다닌다. 방금 자다 일어난 듯한 부스스한 머리칼과 면도하지 않은 덥수룩한 수염, 대충 주워 입은 듯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자주 보인다.
6. 성격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와 무서운 영화 속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따뜻하고 호쾌한 성격이다. 터프해보이는 인상 탓에 직접 그를 만나기 전 사람들은 한결같이 '강하고 대하기 어려운 사람'일 것이라 추측한다. 이렇듯 실제 성격과 보여지는 이미지 간의 괴리가 커 첫인상에서 오해를 자주 받았다.줄리아 로버츠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상대역이 하비에르 바르뎀인 것을 알고 그가 어둡고 강한 성격일 거라 짐작했지만[28] 만나 본 후 스윗하고 재미있어 금방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멜리사 맥카시 역시 악역 이미지가 강한 하비에르와 같이 작품을 찍는다는 걸 알게 되자 긴장했지만 막상 만나 보자 다정다감해서 바로 악역 이미지가 지워졌다고 한다.
또한 크리스티나 팔레스는 하비에르가 찍은 '룰루'와 '하몽 하몽'이 문란한 영화고[29], 여자를 거칠게 다루는 폭력성을 가진 캐릭터 때문에 처음에 하비에르를 보자마자 싫어했다고 한다.[30] 하지만 하몽 하몽의 촬영이 끝난 후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실 상냥하고 매우 수줍어하는 성격인데다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31]
위와 관련된 비슷한 일화로 조시 브롤린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촬영 당시 처음 4~5일 동안은 하비에르가 너무 조용했고 혼자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32] 그래서 조시는 하비에르를 데리고 우디 해럴슨과 같이 놀자고 제안했는데, 바에서 하비에르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어느 순간 무대 아래로 다이빙 하는 모습을 보고는 조시와 우디는 배를 잡고 바닥을 구르며 웃었다고 한다. 조시는 그 모습을 보고 "하비에르의 내면에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또는 머라이어 캐리와 같은 디바가 있다."고 말했다. (
노래에 격렬히 반응하는 흥부자 |
한편으론 본인의 소신에 대해선 눈치 보지 않고 거침없이 말하는 편이다. 2005년 스페인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되자 "내가 게이라면 교회를 엿 먹이기 위해 내일이라도 결혼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우디 앨런 감독에 대해서 "나는 소문과 의혹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는 천재다. 그가 부른다면 바로 비행기를 탈 수 있다.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면 나는 그와 함께 일하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유죄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타인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이상은 소문이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
스페인에서 기후를 위한 행진 연설 중 마드리드 시장인 호세 루이스 마르티네즈-알메이다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바보라고 표현하였다.
2018년 칸 영화제에서 누구나 아는 비밀 기자회견 도중 한 칠레 기자로부터 "세상에서 아내와 함께 일하는 것을 즐기는 유일한 남자란 어떤 기분입니까?"라는 질문에 "지독하게 수준 떨어지는 질문이다."라고 답했다.
페넬로페에 대한 질문과 대답 |
7. 여담
1992년 영화 «하몽 하몽» |
2007년 영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
페넬로페 크루즈와는 만남에서부터 결혼까지가 운명적이다. 두 사람은 1992년 영화 '하몽 하몽'에서 커플 역할로 처음 만났고,[34] 이후 2007년 영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 이혼한 부부 역할로 다시 만났다. 15년이 흘러 같은 작품으로 재회한 두 사람은 영화 촬영을 시작하면서부터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게 되었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두 사람은 상대방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느끼고 있었지만 하비에르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장난을 치며 친밀하게 지내던 다른 출연자들과는 달리 페넬로페에게는 말도 잘 못 걸고 일부러 냉담하게 대했다고 한다. 그렇게 촬영 마지막 날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세상에,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구나!'라고 깨달은 하비에르는 촬영이 끝난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마침내 페넬로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고백을 들은 그녀의 대답은, "때가 됐어. 바보야."
한편 '하몽 하몽'을 본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페넬로페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 이후 자신의 영화 '라이브 플래쉬'에 그녀를 캐스팅했다.[35] 극 중 버스 안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어린 미혼모로 등장하는데 공교롭게도 그녀의 출산을 돕는 사람이 하비에르의 어머니인 필라르 바르뎀이다.
커리어면에서도 공통점이 많다.
1. 총 8편의 영화에 같이 출연했다.
2. 영화 '하몽 하몽'이 두 사람의 첫 주연작이다. 이 영화로 배우로서 세계에 이름을 알리면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3. 2004년 유럽 영화상에서 각각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4. 스페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5. 2008년 하비에르가 먼저 스페인 남자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그 다음 해인 2009년 페넬로페가 스페인 여자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6. 2011년 페넬로페가 먼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고, 그 다음 해인 2012년 하비에르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다.
7. 캐리비안의 해적4에 페넬로페가 출연했고, 그 다음 시리즈인 캐리비안의 해적5에 하비에르가 출연했다.
8. 똑같이 아카데미상에 4번 후보에 올랐고 1번 수상하였다. 그 중 둘 다 두 번째 후보 지명에서 수상하였다.
9.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에 동반 후보에 올랐다.[36]
본인들도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어서, 한 인터뷰에서 "계획한 일들이 아닌 우연이다. 정말 마법같은 일이다. 서로가 오랫동안 같은 경험을 공유해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라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1989년 클럽에서 한 여성에게 말을 걸었는데 얼마 후 여성의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들에게 끌려 나가 폭행을 당했다. 약 30분 동안 맞아 처음엔 눈과 코가 심하게 일그러질 정도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폭행은 후에 그가 폭력을 증오하고 두려워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37] 지금은 우스갯 소리로
안톤 쉬거에서 보인 사격 솜씨(?)와 달리 총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컷 사인이 나면 "제발 이것 좀 치워주세요!"하고 질겁을 하며 총을 건넸다고 한다. 이런 모습에 촬영 당시 총기 전문가는 그를 '스페니쉬 발레리나' 라고 불렀다.
총이 무서운 스페니쉬 발레리나 |
심지어 운전을 할 줄 모르고 자동차도 무서워 한다.[39]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 잠깐 운전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몇 미터를 이동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운전 강습을 받았다. '하몽 하몽'에서도 페넬로페 옆에 차를 세우고 멋진 척 등장하는데 실은 운전석 아래 키와 몸집이 매우 작은 사람이 대신 페달을 밟아주었다고 한다.
영화 속 안톤 쉬거 배역이 너무나 자연스러웠지만 실제로는 자신과 정반대인 성격을 연기해야 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찍으며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본인은 스스로를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여기는데 안톤 쉬거는 감정이 없는 역할이다보니 3개월의 촬영 기간 동안 우울하고 고독하게 지내야 하는 게 괴로웠다고.[40] 한편 이 영화로 친해진 조시 브롤린은 아카데미 시상식 후 뒤풀이에서 하비에르가 역할에서 벗어 나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페넬로페와 함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무차별 민간인 공격을 비판하는 소신 발언을 한 바 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 자체가 유대인 자본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니 입지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왔고 실제로 한동안 캐스팅에 불이익을 받았다.
1996년 영화 '엑스터시'에서 금전등록기를 만지는 장면을 찍는 도중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다쳤다. 이후 수술을 했음에도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굳어 펴질 못한다.[41]
알 파치노의 열렬한 팬이다. 인터뷰에서 "누구랑 작품을 함께하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신은 믿지 않지만 알 파치노는 믿는다", "아직도 그를 보면 10대 소년처럼 떨린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멀리 보이는 알 파치노를 향해 "신을 보았다!"라고 외칠 정도이니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의 감정 그 이상인 듯.
영화 '비포 나잇 폴스'를 본 알 파치노는 영화가 너무 마음에 들어 감독에게 하비에르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리곤 새벽 3시에 하비에르에게 전화를 걸어 자동응답기로 그의 연기를 칭찬하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하비에르는 "그것은 내가 받은 가장 아름다운 선물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녹음된 테이프를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 '비포 나잇 폴스'에서 '레이날도 아레나스'를 연기한 하비에르를 본 게리 올드만은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하비에르가 실제로 게이인지 물었다고 한다.[42]
페넬로페와 동반 출연한 누구나 아는 비밀에서 동일한 임금을 받았다. 부부이기는 하나 헐리우드 영화 산업에서 남녀 배우의 임금 차별이 관행이었기 때문에 동일한 임금을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화제가 되었다.
2020년 3월 엠버 허드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건 조니 뎁을 지지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하비에르는 "조니 뎁은 진정한 신사다. 그는 나와 내 가족에게 매우 관대했다."고 밝혔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다.[43][44] 하비에르는 "빌어먹을 코, 빌어먹을 목소리, 우스꽝스러운 눈조차 못 보겠다."라고 자신의 영화를 못 보는 이유를 밝혔는데, 연기를 할 때는 얼굴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괜찮다고 한다.
'코난 쇼'에서 매우 유명한 카다시안 가족을 전혀 모른다고 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죠?"라는 코난 오브라이언의 질문에 "왜 알아야 하죠!"라고 대답했다.
카다시안을 모르는 하비에르 바르뎀 |
화가가 되기 위한 등록금을 벌기 위해 경비원, 웨이터, 인부 등 다양한 일을 했는데 딱 하루 스트리퍼로 일한 적도 있다. 하비에르는 친구의 결혼 축하 파티가 열린 클럽에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클럽 주인이 매주 금요일마다 와서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술에 취한 상태여서 그 자리에서 알겠다고 말했지만 고용 테스트 당일이 되자 너무 떨렸던 하비에르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클럽에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날 쇼의 관객은 클럽 주인, 어머니, 누나 단 3명 뿐이었다.[46]
영화 에스코바르에서 페넬로페는 하비에르가 맡은 역할[47]때문에 촬영을 하지 않을 때도 남편에게 에스코바르와 같은 무서움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하비에르가 페넬로페에게 모질게 대해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촬영 후 비록 연기였지만 상처를 받은 페넬로페는 집에 돌아와"더 이상 얼굴을 보고 싶지 않으니 콧수염을 깎고 소파에서 자라"고 했다고 한다. 하비에르는 "아니야 나야 나 까꿍!" 하며 아내를 달래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고.[48]
1990년 후안 카를로스 코라자'가 설립한 연기 학원에 처음 발을 들인 학생 중 하나였다. 선생과 제자로 쭉 인연이 지속되어 30년이 지난 지금도 연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매년 세미나에 참석해 연기 공부를 한다.[49]
여러 스포츠의 팬인 것으로 보이며, 특별히 어디 팬이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FC 바르셀로나의 경기장인 스포티파이 캄 노우에서 자주 목격된 걸로 봐서는 바르셀로나의 팬인 것을 보인다. 2023년 바르셀로나의 미국 프리시즌 투어에 따라와서 바르셀로나 선수들과 사진을 찍고 유니폼을 선물받곤 매우 기뻐했다. 사진 [50]
록 음악을 매우 좋아하며 특히 AC/DC와 Pearl Jam의 팬이다.[51]
취미는 그림 그리기와 독서다. 물론 젊을 때는 럭비도 했지만 이제는
시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영화제나 시사회같은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평상 시엔 주로 안경을 끼고 다닌다.[52]
2018년부터 그린피스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스페인 사람답게 춤을 매우 잘 춘다. 이에 관련해선 함께 춤을 춘 여자가 한 고소에도 당당하게 맞대응하기도 했다.
봉고와 드럼도 잘 친다. 영상
반면에 노래를 못 부르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53]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 지 최근에 찍은 세 작품[54]에서 모두 노래를 부르는 역할을 맡았다. 이 점을 두고 그는 자신의 커리어가 뮤지컬 배우로 전향되는 것 같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찍은 작품들이 코미디는 도통 찾아볼 수 없고[55][56]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들이 많은 데다 자살로 죽고, 병 들어서 죽고, 총 맞아서 죽는 등 극히 어둡고 비극적인 인물을 많이 연기해왔기 때문이다.
위 세 영화 중 « 인어공주», « 라일, 라일, 크로커다일»의 출연 결정은 자녀들의 영향이 컸다. 가족과 아침식사를 하면서 자녀들에게 "아빠가 인어공주에 출연할 것 같아!"라고 이야기를 하자 그의 딸은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렸고, 하비에르에게 "아빠가 에리얼을 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살면서 가장 많이 본 영화는 E.T.로 24번이나 봤다.[57] 영화를 볼 때마다 울고, 가끔 자녀들이 영화를 틀면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운다고 한다.
2024년 산 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공로상인 도노스티아상을 수상했다.[58]
2024년 1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괴물: 메넨데즈 형제 이야기[59]에 호세 메넨데즈 역으로 출연했는데 데뷔 이후 약 50년만이자 최초의 드라마 출연으로 첫 드라마 주연작이기도 하다.
8. 출연작
8.1. 영화
<rowcolor=#fff> 연도 | 제목 | 배역 |
1990 | 룰루 | 지미 |
1991 | 하이 힐 | |
1992 | 나는 너의 침대를 사랑한다 | 안토니오 |
1992 | 하몽 하몽 | 라울 |
1993 | 골든 볼 | 베니토 |
1994 | 지나간 날들 | 리사르도 |
1995 | 어머니 | |
1995 | 보카 보카 | 빅터 벤추라 |
1996 | 우정 아닌 사랑 | |
1997 | 사랑은 건강을 심하게 해친다 | |
1997 | 에어백 | 호세 알베르토 |
1997 | 라이브 플래쉬 | 다비드 |
1997 | 프레디타 | 로미오 |
1998 | 불량 경찰: 부정부패 소탕 작전 | |
1999 | 당신의 다리 사이 | 하비에르 |
1999 | 두 번째 피부 | 디에고 |
2000 | 비포 나잇 폴스 | 레이날도 아레나스[60] |
2001 | 디오스 | |
2002 | 댄서 업스테어즈 | 아구스틴 레하스 |
2002 | 햇빛 찬란한 월요일 | 산타 |
2004 | 콜래트럴 | 펠릭스 |
2004 | 씨 인사이드 | 라몬 삼페드로[61] |
2006 | 고야의 유령 | 로렌조 신부 |
2007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안톤 쉬거[62] |
2007 | 콜레라 시대의 사랑 | 플로렌티노 아리사 |
2008 |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 후안 안토니오 |
2009 | 저니 투 선댄스 | |
2009 | 밀로스 포먼: 왓 더즌 킬 유 | |
2010 | 비우티풀 | 욱스발[63] |
2010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 펠리프 |
2012 | 007 스카이폴 | 라울 실바 |
2012 | 투 더 원더 | 퀸타나 신부 |
2013 | 카운슬러 | 라이너 |
2013 | 스콜피온 인 러브 | 솔리스 |
2014 | 오토마타 | 블루 로봇(목소리) |
2015 | 더 건맨 | 펠릭스 |
2016 | 라스트 페이스 | 미구엘 레온 |
2017 |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 살라자르 선장 |
2017 | 마더! | 그 |
2017 | 에스코바르 | 파블로 에스코바르 |
2018 | 주의 나라가 임하소서 | 퀸타나 신부 |
2018 | 누구나 아는 비밀 | 파코 |
2020 | 가지 않은 길 | 레오 |
2021 | 듄 | 스틸가 |
2021 |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 | 데시 아르나스[64] |
2021 | 굿 보스 | 훌리오 블랑코 |
2022 | 라일 라일 크로커다일 | 헥터 P. 발렌티 |
2023 | 인어공주 | 트라이튼 왕 |
2024 | 듄: 파트 2 | 스틸가 |
2024 | 엘리안과 빛나는 마법 모험 | 솔론 왕(목소리) |
2025 | F1 | 루벤 |
미정 | The Loved One | 미정 |
8.2. 드라마
<rowcolor=#fff> 연도 | 방송사 | 제목 | 배역 |
1974 | El Pícaro | 아역 | |
2024 | 괴물: 메넨데즈 형제 이야기 | 호세 메넨데즈 |
8.3. 다큐멘터리
<rowcolor=#fff> 연도 | 제목 | 배역 |
2007 | 인비저블스 | 프로듀서 |
2012 | 구름의 아들: 마지막 식민지 | 프로듀서 |
2019 | 생츄어리 | 프로듀서 |
[1]
스페인의 배우. 2021년 7월 폐 질환으로 사망
[2]
스페인의 배우, 작가
[3]
스페인의 배우
[4]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지만
불가지론자다.
[5]
대표작으로는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에서 출시한 «자전거 주자의 죽음»이 있다.
네오 리얼리즘과 사회비판적인 시선으로 동료였던 '루이스 가르시아 베를랑가'와 더불어 프랑코 시대 1950~1960년대 스페인 영화의 황금기를 이룬 국민 감독으로 유명하다.
[6]
그의 아버지는 1995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7]
9세 때부터 24세까지 럭비를 했다.
[8]
어머니를 따라 놀러 간 촬영장에서 멋모르고 출연했던 시절 이때가 6살이었다.
[9]
대뜸 옷을 벗어 보라고 하고는 OK 했다고 한다.-노출을 해야 하는 역할이었기 때문-후에 그는 농담으로 나는 단지 고깃덩어리로 연기를 시작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10]
그의 어머니도 조연으로 출연했다.
[11]
이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있어 연기란 단지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었기에 배우란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2]
이때 하비에르가 21살, 페넬로페가 16살이었다.
[13]
스페인의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
[14]
원래 이 영화는
베니시오 델 토로에게 먼저 제안이 갔다.
[15]
이 영화에선 쿠바식 영어를 사용해야 했는데, 당시 하비에르는 영어에 매우 서툴러서 '비포 나잇 폴스'의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감독은 하비에르가 출연하겠다고 입을 열 때까지 지구 끝까지 쫒아다녔다고 한다.
[16]
대니 위트워 역. 이 역은
콜린 파렐에게 돌아갔다.
[17]
1997년 영어 실력이 부족해 출연이 불발된 이후
존 말코비치는 다시 한 번 그에게 작품을 찍자고 제안했고 비로소 출연이 성사되었다.
[18]
코엔 형제는 그 대답을 듣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당신을 캐스팅하는 이유입니다."라고 했다.
[19]
엄청난 규모의 이익 실현이나 인류 멸망 또는 세계 제패 등의 거대한 목적 실현
[20]
MI6의 책임자
[21]
헐리우드 영화 산업과 유대인 자본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으므로.
[22]
업계에 어려움이 닥친 와중에 편하게 작품을 고르고 따지는 형편이 사치라 생각되어 다작을 하지 않는 원칙을 깨고 들어오는 작품은 마다하지 않고 참여했다.
[23]
스페인의 대표적인 영화시상식
[24]
영화
왓치맨의 코미디언 역. 드라마
수퍼내추럴에서 존 윈체스터 역을 맡고 있다.
[25]
총 13번 노미네이트(배우로 11번, 다큐멘터리로 2번)되었고 8번을 수상(배우로 6번, 다큐멘터리로 2번)하였다.
[26]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딱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다. 나는 영어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침대에서 많은 수업을 합니다
[27]
반면 "페넬로페에게 미쳐있다", "그녀를 볼 때마다 이성을 잃는다", "내가 매일 사랑하고 존경하고 감탄하고 기념하는 여성", "이 지구 상의 아름다운 생명체" 등등(...) 오글거리는
주접 멘트는 또 거리낌없이 한다.
[28]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본 후 하비에르가 무서웠다고 한다.
[29]
룰루에서 포주로 나온다.
[30]
자신이 본 제일 끔찍한 남자라고 표현했을 정도.
[31]
그 이후로 태도가 바뀌었고 호감이 생기기 시작해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32]
사실
사이코패스 역할에 몰입했기 때문이었다.
[33]
이 이야기를 들은 줄리아 로버츠는 "나는 그걸 보기 위해 산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34]
사실 '하몽 하몽'보다 이전인 1991년 영화 '룰루'에서 만났을 수도 있었지만 페넬로페의 나이가 너무 어려 출연을 거절당했다. 하비에르는 하몽 하몽을 찍을 당시 페넬로페와
케미스트리가 있었다고 밝혔지만 그녀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관계가 발전하진 않았다.
[35]
이번에도 하바에르의 상대역으로 출연할 수 있었지만 알모도바르는 여자 주인공에 비해 페넬로페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뽑지 않았고 대신 단역으로라도 출연시켰다.
[36]
같은 해에 부부가
아카데미상에 동반 후보에 오른 것은 1967년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이후 55년 만이며 이번이 통산 6번째다.
[37]
그 이후 자신을 폭행한 그 남성과 다시 마주친다면 복수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우연히 길에서 발견했을 때 몸이 얼어 붙었다고 한다. 그런 자신을 보며 폭력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38]
[39]
달리는 게 마치 총알같다고 표현했으며, 교통사고로 죽는 것이 제일 두렵다고 한다.
[40]
속으로 "집에 가고 싶어. 어머니를 보고 싶어. 친구들을 보고 싶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41]
[42]
하비에르는 이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43]
유일하게 본 것이 6살 때 찍은 TV프로그램 El Pícaro다.
[44]
공식적인 시사회 자리에선 어쩔 수 없이 보게 되기 때문에, 정확히는 자의에 의해서 본 적은 없다.
[45]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계정이 있지만
그린피스 홍보 목적으로 개설한 거라 사실상 활동이 전무하다.
[46]
쇼가 시작 되고 어머니와 누나가 박수를 치며 하비에르를 응원했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무대에서 실수를 해 그날로 스트리퍼 인생이 끝났다.
[47]
수백 명의 사람을 죽이게 한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48]
결국 그날 소파에서 잤다고 한다.
[49]
하비에르와 선생인 카를로스
[50]
아내는 레알 마드리드의 팬. 부부 클라시코
[51]
AC/DC의 노래로 영어 공부를 했다고 한다.
[52]
40대 중반까지는 전혀 쓰지 않은 걸로 보아 노안인 듯하다.
[53]
럭비를 오랫동안 한 탓에 목이 두꺼워서 노래를 못 부르고,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부끄럽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꽤 부르는 편이다.
[54]
«
인어공주», «
라일, 라일, 크로커다일», «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
[55]
그의 커리어 중 코미디 영화는 1995년 작품인 «보카 보카»가 유일하다.
[56]
수많은 작품을 찍었지만 영화 안에서 노래를 부른 적은 «골든 볼»에서 짧게 부른 게 전부다.
[57]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가 부재하여 채워지지 않은 애정을 가진 주인공 앨리엇에게 깊이 공감했고, 그런 엘리엇의 유일한 친구인 외계인 ET를 어릴 때 좋아했었다.
[58]
원래라면 2023년에 받아야 했지만 당시
SAG 파업으로 인해 수상이 연기 되어 2024년에 받게 되었다.
[59]
미국의 실제 범죄자들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로 시즌 1은 그 유명한
제프리 다머를 주인공으로 한
다머이며 메넨데즈 형제 이야기는 1989년
베벌리힐스에서 부유한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라일 메넨데즈와 에릭 메넨데즈 형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60]
제5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
[61]
제6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62]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수상
[63]
제63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
[64]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