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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12:15:49

시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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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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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SNS 시나 웨이보에서 발표한 중국인들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중국인' 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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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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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淸) 선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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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 초대 황제
시황제 | 始皇帝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Qinshihuang.jpg
<colbgcolor=#000> 출생 기원전 259년 2월 18일[1]
한단
(現 허베이성 한단시)
사망 기원전 210년 9월 10일[2] (향년 49세)
사구
(現 허베이성 싱타이시 광종현)
능묘 여산릉(驪山陵)
재위 진 6대 국왕
기원전 247년 7월 6일[3] ~ 기원전 221년[4]
진 초대 황제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10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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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영(嬴)
조(趙)[5]
정(政/正)[6][7]
부모 부황 태상황
모후 조희
신장 190cm 미만[8]
제호 始皇帝
시황제 | Shi Huang 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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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秦始皇本紀.jpg
《사기》에 실린 <시황제 본기>

1. 개요2. 생애3. 평가4. 분서갱유5. 여담6. 대중매체7. 같이보기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진(秦)나라의 제31대 국군이자 제6대 이며 중화라는 인식을 처음 남긴 진(秦) 제국과 중화제국(中華帝國)의 첫 번째 황제(皇帝)로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으며, 황제라는 명칭을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사용한 인물이다. 시황제는 첫 번째 황제라는 뜻으로 자칭한 것이며, 진나라의 첫 황제라는 진시황제, 또는 이를 줄여서 진시황이라 하기도 한다.

고대 중국의 6국[9]을 병탄하여 550여 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진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약 2,000년에 걸쳐 이어진 황제 중심 중앙집권제를 처음으로 통일왕조에 실현한[10] 인물이었다.

기나긴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대업을 이룬 인물이라는 점에서 굵직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 인물이지만, 통일 이후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억압적인 통일 정책을 펼쳐 결과적으로 제국의 급속한 멸망을 초래한 군주라는 점에서 폭군 또는 철권통치의 대명사로 여겨지기도 하는 등 복합적인 면모를 보인 인물이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시황제/생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평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시황제/평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분서갱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분서갱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사상책을 불싸르고 유학자를 묻어버린 이 사건 덕분에, 전근대의 유학자들에게는 가히 만세의 적 취급을 당했다.[11]

5. 여담

6. 대중매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시황제/대중매체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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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7. 같이보기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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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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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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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가(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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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2><tablewidth=100%><tablebgcolor=#3d414d><width=33%><rowcolor=#ffffff> 61권 「백이열전(伯夷列傳)」 ||<-2><width=33%> 62권 「관안열전(管晏列傳)」 ||<-2><width=33%> 63권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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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으로는 1월이다. 당시 진나라에서 썼던 《전욱력》(顓頊曆)을 기준으로 이 달은 그레고리력 1월 27일부터 2월 24일까지 총 29일간이었다. 《사기》 권6 <진시황 본기> (장양왕은) 시황을 진 소왕 48년 정월에 한단에서 낳았다. 生始皇以秦昭王四十八年正月, 生於邯鄲. [2] 《사기》의 원문은 "七月丙寅, 始皇崩於沙丘平臺."라 하여 음력 7월 병인일에 죽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해 7월에는 병인일이 없었고 6월, 8월, 9월에 있었다. 9월 10일이라는 날짜는 병인일을 7월이 아닌 8월의 것으로 본 다음 그것을 양력으로 변환한 것이다. 중문 위키백과에서는 《홍범오행전》의 "六月乙丑"을 근거로 사망일을 7월 11일로 기록했다. [3] 음력 5월 26일 병오. 이 날에 장양왕이 죽었다. [4] 《사기》 권6 <진시황 본기> "(재위) 26년, (중략) 왕이 말하기를 "태 자는 떼고 황 자를 취하고, 상고의 제라는 이름을 가져다 '황제'라 부르고, 나머지는 논의와 같이 하라." 했다. 제를 내려 "좋다."라 명했다. 二十六年, … 王曰 "去泰, 著皇, 采上古帝位號, 號曰皇帝. 他如議." 制曰, "可." [5] 《사기》에 진나라의 선조가 영(嬴)성 조(趙)씨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씨와 이름을 합친 시황제의 본명은 '영정'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전국시대에 성을 쓰는 건 여자였고, 남자는 씨를 썼다. 예를 들어 초나라 왕가는 미성 웅씨여서 초나라의 역대 국왕들은 웅려, 웅장 등 씨를 썼지만 초나라 출신인 진나라의 선태후는 후궁 시절 미팔자('팔자'는 후궁의 직위)로 불렸다. 후세로 내려가며 성과 씨의 구분이 불분명해져 전한시대 쯤엔 구분이 없어졌고, 이에 후세 사가들이 '영정'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시황제는 영성 조씨이기 때문에 원래는 '영정'이 아니라 조정이 맞는 호칭이다. [6] 《사기집해》는 서광의 주석을 인용해 시황제의 이름이 “정"(正)으로 된 판본이 있다고 하면서, 성충의 주석에 따라 정월(正月, 음력 1월)에 태어나 '정'으로 지었다고 해석했다. 고대에는 '정'(正)과 '정'(政)이 하나의 글자로 혼용되었다. 일례로 '정'(正)과 '정'(政)의 동자(同字)적, 다의어적 성격을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공자의 유명한 말이 있는데 《논어》 <안연편>에 나온다. 대부 계씨(계손씨) 집안의 제7대 영주였던 계강자가 "정치란 무엇이냐?"고 묻자 “정(政)은 곧 정(正)이다.”(政者, 正也), 즉 “정치(政)란 바르게 하는 것(正)이다.”라고 말한 것. 시황제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 소수들은 원래 이름이 '정'(政)이고 '정'(政)의 앞 글자를 따서 아명을 '정'(正)이라고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7] 상술했듯 진시황의 이름은 政인지 正인지 논란이 있다. 일설로만 전해지는 이름이지만, 진짜로 시황제를 '조정'(趙正)이라고 부르는 죽간 《조정서》가 발굴되면서 신빙성이 높아졌다. [8] 태평어람》의 에 따르면 키가 8척 6촌(198cm)에 허리 둘레가 7위(120cm)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연나라의 특사가 시황제를 암살하려 했을 때, 시황제가 제때 칼을 뽑지 못해 매우 당황했다는 기록이 있다. 1974년에 진나라 유물 중 1m에 가까운 청동검이 발견되면서 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키가 190cm 이상인 사람만이 등 뒤에서 1미터 높이의 청동검을 뽑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어 시황제의 실제 키는 190cm 미만이라고 한다. 출처 물론 진시황의 키는 고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에 와서도 엄청난 장신이다. [9] 연, 조, 위, 제, 한, 초. [10] 그러나 진나라가 단명함에 따라 이 정책은 후대의 한나라에 의해 계승되어 완성되었다. [11] 다만 이 시대의 책들이 전해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시황제의 분서갱유보다 항우의 역할이 더 컸다는 말도 있다. [12] 진나라가 서융에서 시작된 나라인만큼, 화하족에 동화된 티베트계 견융족이라는 의견도 있다. [13] 다만 시황제를 비판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당시 자신에게 궁형을 내린 한무제를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14] 출처 : 《사기》 <진시황 본기>. [15] 그러나 진나라가 멸망한 후 전한 시대에 시호를 부활시켰다. 뿐만 아니라 상나라의 멸망 이후 쓰이지 않았던 묘호까지 부활시켰다. 황제라는 칭호는 이미 유용성이 입증됐다고 봐서 그대로 사용했다. 사실 진나라를 극단적으로 증오하고, 통일 제국에서 다시 전국시대로 회귀하려고 했던 복고주의자 항우도 초의제를 세우는 등 황제 칭호를 버리지는 않았다. [16] 중국의 전한 후한 한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 [17]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이 당대의 황제인 한무제를 까기 위해 의도적으로 진시황에 한무제를 덧씌운 정황이 있는 것도 이러한 표현의 원인이 된다. 실제로 《사기》의 진시황의 폭정 묘사는 한무제가 일으킨 대규모 토목 공사와 비슷하다. [18] 다만 후대인들이 영자영을 3세 황제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긴 하다. [19] 하지만 시황제의 시는 비로소 시(始, 중국식 발음은 권설음이 들어간 스<shǐ>)자인 반면 시진핑의 시(Xí)는 익힐 습(번체 習/간체 习)자의 중국 발음이다. [20] 당연하지만 이런 베트남 극우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중국 남부 지역은 현대 베트남인의 선조 격인 오스트로아시아어족 계통 민족만 살았던 게 아니라, 묘족이 속한 몽몐어족 계통 민족들과 오스트로네시아어족 계통의 민족들, 그리고 태국인 라오인, 좡족의 조상 민족인 크라다이어족 계통의 민족들이 마구 뒤섞여서 살았다. 그래서 백번 양보해서 베트남 환빠들 말대로 중국 남부 전체가 베트남계 왕조의 치하에 있었다고 쳐도, 실상은 중앙집권화가 전혀 안 되어서 수많은 민족과 부족들이 각자 다른 나라인양 따로국밥으로 노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21] 실제로 모토치카는 서장을 작성할 때 미나모토, 타이라 같이 자신의 성씨를 쓰는 곳에 하타(秦)라고 기입했다.(그러나 하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진시황의 후손이라는건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는 헤이안 시대 하타 요시토시(秦能俊)라는 인물이 그 선대가 하사받은 시나노의 땅에서 세력을 뻗치고 있었는데 1156년 호겐의 난(保元の乱) 때 패배한 세력에 소속해있었기 때문에 토사로 도망쳐 왔다고 한다.(다른 학설로 "1221년의 죠큐의 난(承久の乱) 이후로 도망쳐왔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그렇게 토사로 도망쳐온 요시토시는 토사에는 얼마 존재하지 않는 평야 지역이자 중심 지역이나 다름 없는 나가오카 군에 정착하게 되었고 자신의 성을 '소카베'(宗我部)로 바꿔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안가 옆동네 카미 군(香美郡)에도 자신들의 성을 '소카베'라고 쓰는 일족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들은 서로를 구분하기 위해 나가오카에 거주하는 소카베 일족을 쵸소카베(長宗我部), 카미에 거주하는 소카베 일족을 코소카베(香宗我部)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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