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가이젤 도서관4.2. 눈물의 성모 마리아 성당4.3. 러시아 국립 종양의학 연구센터4.4. 롯코 집합주택4.5. 머드 센터4.6. 버팔로 시 지방법원 청사4.7. 부블리크4.8. 빛의 교회, 물의 교회, 물의 절4.9.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 버나비 캠퍼스4.10. 세르비아 육군 의과대학4.11. 소크 생물학 연구소4.12. 알렉산드라 로드 이스테이트4.13. 에드가 후버 빌딩4.14. HAW 베르게도프 캠퍼스4.15. AT&T 롱 라인스 빌딩4.16. 워털루 대학교 MC 빌딩4.17. 오브닌스크시 시립병원4.18. 웨스턴 시티 게이트4.19. 트렐릭 타워4.20. 필립스 엑시터 도서관4.21. 한국 서울고속버스터미널4.22. 한국 유민미술관4.23. 호텔 파노라마 리조트
브루탈리즘의 개념은 1950년대
영국에서 정립되었으며 전후 유럽의 재건 과정에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2차대전 이전의
모더니즘이 추구하던 기능성과 효율성을 한층 더 극대화시켜 외장 없이 노출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건축물에 규칙적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적은 창문 노출과 기하학적인 건물 구조를 조성해 표현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브루탈리즘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어로
노출 콘크리트를 의미하는 베통 브뤼트(Béton brut)에서 유래됐으며, 이는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어원에 대한 정보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보니 브루탈리즘의 어원을 '잔혹한', '야성의'를 뜻하는 영단어 'Brutal'로 오인해 '잔혹주의'로 오역하기도 하며, 이는 영미권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실수이다.
1950년대~1960년대
영국, 1950년대~1970년대
미국, 1960년대~1970년대
이탈리아, 1960년대~1980년대
일본, 1950년대~1960년대
소련 건축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브루탈리즘으로 유명한 건축가로는
오번 대학교 출신 유명 건축가 폴 루돌프,
러시아계 미국인인
루이스 칸, 캐나다인
아서 에릭슨, 월터 넷취(Walter Netsch), 일본의
안도 다다오 등이 있다. 특히 이 무렵 이탈리아의 건축가들은 기능성을 중시하는 당대 브루탈리즘 내에서도 예술성 표현을 시도했던 특징 때문에 오늘날에도 주목받는다.
콘크리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근-현대 건축의 과도기에 등장한 건축 사조인지라 1920~30년대 미국에서 많이 지어진
아르데코식 고층 건물, 1930~40년대 독일에서 많이 지어진
나치식 대형 건축물, 즉
아돌프 히틀러의 지원 하에
알베르트 슈페어가 주도한
베를린 개조 계획
세계수도 게르마니아,
세븐 시스터즈로 대표되는 1930~40년대 러시아의 스탈린식(Сталинская, 스탈린카) 고층 건물들이 '브루탈리즘'과 혼동되기도 한다.
사실 이런 건물들은 고전주의 건축에서 브루탈리즘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건축 양식으로, 당대 유행하던 모더니즘 사조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은 것들이다.[1] 이러한 건축물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미국과 러시아는 빅토리아 양식이나
보자르 등 고전-근대 양식을 기반으로 한 장식적인 외양에 고층으로 쌓은 건축물이 많았고[2], 독일 건축물들은 로마식 건축물을 거대하게 뻥튀기한 형태였다. 이들은 '브루탈리즘'이라고 분류하기엔 지나치게 장식적이며, 동시에 고전주의 건축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고전주의의 영향은 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30년대 후반~1940년대에 들어서야 에어컨의 발달과 전쟁으로 폭탄 파편을 피하기 위해 창문들이 적어지고, 요란한 장식의 건물 외장도 물자 문제나 유지보수의 편의성을 위해 사라지면서 '브루탈리즘'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보편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건축들이 브루탈리즘의 범주에 속하며, 그 이전의 건축물들은 브루탈리즘이라기보단 브루탈리즘의 이전 단계로 보는 것이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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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특유의 질감으로 인해 삭막함이 느껴진다거나 마치 군사요새 같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관리를 안해서 콘크리트에 금이 가거나 이끼가 끼거나
그래피티 같은 낙서가 있으면 외관이 더욱 좋지 않다. 브루탈리즘이 1990년대 이후로 쇠퇴하고
커튼 월이 대세가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당대에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고 콘크리트 특유의 단조로운 색감과 거친 질감을 상쇄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시도되기도 했다. 인테리어적으론 하단의 필립스 도서관처럼 나무 등의 자연재료를 이용해 콘크리트의 거친 느낌을 중화시키거나 베르게도르프 캠퍼스처럼 모더니즘적인 부분 페인트 도색으로 내부의 단조로움을 보완하였다. 외장 면에서 나타나는 삭막함은 조명이나 자연적 조경을 이용해 상쇄했다. 사실 브루탈리즘이 아니더라도
에펠탑이나
오스탄키노 탑과 같이 과거에 지어져 오래된 유럽의 건축물들은 야간이나 날씨가 안좋으면 조명을 켜서 삭막함을 상쇄하고 화려하게 만든다. 미국의 경우
그래피티가 예술로 발전하여 삭막하다고 민원이 들어오는 옛날 브루탈리즘 양식 건물에 전문 그래비티 예술가를 초빙해 멋진 벽화를 그려넣어 명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다만 거주구역이나 병원은 이렇게 하기 힘들어서 주변에 나무와 꽃밭, 분수 등을 만들어 공원을 조성하거나 아예 건물에 식물들을 길러서 삭막함을 상쇄한다. 아래 예시의 알렉산드라 로드 이스테이트나 국립 종양의학 연구센터가 이런식으로 주변을 조성했다. 한국의
은평구립도서관 역시 입구의 네개 기둥에 덩굴식물을 길러 삭막함을 줄였다.
부블리크(бублик, BUBLIK), 러시아
브루탈리즘은
냉전시기
동구권에서도 영향력 있는 양식이었다. 고전주의 색채가 큰 스탈린 양식 이후
니키타 흐루쇼프 정권 하에서 실용성과 효율성이 극대화한 진짜 브루탈리즘에 해당하는 흐루숍카(хрущёвка) 건물들이 많이 건설되었는데, 지금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동유럽쪽에 많이 남아있는 독특한 형태의 아파트나 관공서들이 있다. 또한 소련의 영향으로
동독,
폴란드,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북한 등 여러 공산권 국가에서는 브루탈리즘 양식이 사회주의 건축의 가장 보편적인 양식으로 인식되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대한민국 서울
한국에서는 흔히 유리궁전이라 칭하는
커튼월 방식이 유행하기 전 고도성장기인 1970~80년대에 많이 지어졌으며, 현재는 도색을 하여 잘 드러나지 않지만 초기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역시 브루탈리즘 방식의 거대한 콘크리트 피라미드 구조라 외국 잡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브루탈리즘은 1990년대 이후로 흉물스럽다는 대중의 비판과 함께 깔끔한 외관을 보여주던
커튼 월 양식에 밀려 사장되었고 한동안 잊혀진 건축이 되었다. 그러나 2020년대 이후로
커튼 월 방식의 단점이 대두되고 복고 흐름이 건축계에도 영향을 미치며 브루탈리즘 역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콘크리트는 햇빛을 직방으로 받으면 반사광으로 주변에 온갖 민폐를 끼치는
유리로 만든 커튼 월 양식에 비해 광공해가 적으며, 현대의 발전한 건축기법 덕에 과거 문제시되었던 콘크리트 특유의 칙칙한 색감을 완화시킬 수 있게 되었고, 외장이 망가지면 흉물스러워 보이는 건 커튼 월도 마찬가지인데다 빛이 안비치면 삭막함이 느껴지는건 고전주의나 모더니즘 건축물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에 재조명된 브루탈리즘 양식은 네오 브루탈리즘으로 발전했다. 네오 브루탈리즘은 현대 건축에서 보편화된 적극적인 유리의 사용을 일부 수용해 고전 브루탈리즘보다는 유리가 더 잘 드러나는 특성을 보인다. 기하학적이고 강렬한 원색이나 무채색 위주의 색감을 이용하는 디자인 방식을 아울러
네오 브루탈리즘이라고도 칭하기도 한다. 2023년 공사를 시작한
성수동의
젠틀몬스터 사옥이 이러한 네오 브루탈리즘 양식의 파격적인 형태를 잘 보여준다.
[1]
나치 독일은
나치의 고위간부
알베르트 슈페어의 주도로 25만명이 수용 가능한 국민대회당이나 나치전당대회장 등이 들어선
세계수도 게르마니아를 구상한다. 전후 이 계획은 중단되지만 몇몇 건물은 건설되어 현재
독일에서도 쓰인다. 이들은
아돌프 히틀러가 선호했던 나치 독일식 고전주의 건축의 특성이 강하게 드러났다.
소련에서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선호하던 스탈린 양식의 건물들이 여럿 구상되었고, 몇몇은 실제로 건설되기도 하였다. 소련 당국은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소비에트 궁전이라는 거대한 건물을 구상하였다. 소비에트 궁전의 경우는 세계수도 게르마니아처럼 설계만으로 끝난 게 아니라 실제로 공사에 착수했으나 전쟁 때문에 결과적으로 공사 중단되었다. 또한 당시
모스크바에 지어진
세븐 시스터즈로 불리는 거대 건축물들은 현재
러시아 연방의 모스크바의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스탈린 양식은
고전주의의 영향이 남아있긴 해도 기능성을 추구하던
모더니즘의 영향 역시 강하게 받은 서구식 건축에 비해 훨씬 고전주의적인 웅장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2]
그래서 창문도 길고 높은게 특징이다. 당시엔 에어컨이 대중화되지 않아서 환풍을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