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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Gott ist tot. Gott bleibt todt. Und wir haben ihn getodtet. Wie trosten wir uns, die Morder aller Morder?)
- 프리드리히 니체[1]
허무주의(
虛
無
主
義) 또는 니힐리즘(Nihilism)은 신, 구원, 진리로 대표되는 추구해야 할 절대적 가치 및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다.(Gott ist tot. Gott bleibt todt. Und wir haben ihn getodtet. Wie trosten wir uns, die Morder aller Morder?)
- 프리드리히 니체[1]
허무주의(Nihilism)는 허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능동적 허무주의(Active Nihilism), 수동적 허무주의(Passive Nihilism)로 나뉜다. 쉽게 분류하자면, 무엇을 하려고 하는 쪽이 능동적 허무주의이고[2], 염세적인 반응을 보이며 염세적 행위 이외에 딱히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 쪽이 수동적 허무주의다.[3]
수동적 허무주의는 니체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더없이 추악한 자(Der hässlichste Mensch)'라고 부르며 비판한 유형이다. 더없이 추악한 자는 자신의 치욕과 추함 같은 더러운 구석까지 파고들어와 연민하는 목격자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참고 견딜 수가 없어 신을 죽여버린다.[4]
창작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허무주의는 수동적 허무주의지만, 이 문서는 일단 능동적 허무주의에 중점을 둔 내용이다.
2. 역사
허무주의는 근대 회의주의 사상에서 출발했다. 이전까지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어졌던 것들(예를 들어 절대왕정, 중상주의적 통제 경제, 신분 제도, '기적'과 숭배에 의해 유지되던 지역 사회의 문화)은 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여겨지게 되었고, 그 결과 18~19세기 유럽에서는 절대성과 신에 대한 믿음이 점차 퇴조했다. 또한 과학적 탐구를 통한 합리주의 사조에 의해 신의 자리는 점차 좁아져 이신론, 무신론에게까지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데이비드 흄은 회의주의 사상을 내세우면서 귀납법의 한계를 분명히 제시하였기 때문에 경험론의 한계성 또한 대두되었고, 이로 인해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현상 탐구 또한 인간의 감각에 의존하니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퍼져 나갔다.물론,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철학자들에게 믿을 구석이 남아 있었다. 합리주의 철학자들과 독일의 관념론 철학자들은 이성에 의한 연역적 추론을 통해 절대적인 진리에 대해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르네 데카르트와 같은 철학자들은 때때로 이러한 인간의 이성을 신과 등치시켰다.[5] 그리고 더 나아가, 헤겔과 같은 철학자들은 간혹 이것을 '국가'와 같은 경험적 현상 세계의 문제에 투영시켰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들어서면, 이러한 합리주의에 대해서도 금을 가게 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인간이 경험 세계에 사는 존재라면, 경험 세계가 불확실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인 이상, 이성을 사용해 파악한 세계관 또한 절대적일 수 없지 않은가? 애초에 인간의 이성이 불완전한 것이라면, 인간의 이성보다 완전한 것을 인간의 주관적 합리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완전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
결국 19세기를 거치면서 합리주의에 대한 믿음조차 사그라졌고, 이러한 사고는 중세의 절대신과 합리주의 사조가 추구하던 절대 진리가 모두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상으로 귀결되었다. 그 결과 인간이 의존할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고가 확산되었고,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프리드리히 니체 등이 근대 허무주의의 구도를 잡았다. 니체는 투르게네프의 허무주의 관념을 본격적으로 철학에 도입하여 방향을 상실한 유럽 세계의 단상을 지적하였다. 산업화와 잦은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열악한 유럽 사회의 시대상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허무주의는 때때로 혁명적(또는 더 열악한 경우, 단순히 파괴적인) 사고 방식으로도 이어졌다(이후 시대에서의 역사적 발전에 대해서는 아래 '정치사상으로서의 허무주의' 단락으로). 철학적으로는 19세기의 현실이 합리성의 결과물인 것처럼 포장되었지만, 실제로 19세기의 국가는 그 반대편의 사람들이 보기에 그 이전부터 이어진 권위주의와 사회적 차별, 수단화된 종교 등이 혼재되어 이성적 사고라는 포장지에 싸여 있는 혼종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쇼펜하우어나 니체가 가장 싫어했던 철학적 상대가 이런 사고의 정점에 있었던 헤겔이었다.
허무주의적인 현실 비판론은 일각에서 염세주의로도 이어졌으며, 대중적으로는 이러한 시각이 많이 퍼져 있다. 그러나 니체를 위시한 철학자들은 그러한 시각을 '수동적 허무주의'라고 비판하면서, 허무주의 사상을 결국 인간이 궁극적으로 의존하거나 추구할 외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이 가진 삶의 생동감을 일깨워야 한다는 주의주의(主意主義)와 실존주의 사조로 발전시켰다. 즉, 근대 허무주의는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의 삶은 인간 바깥의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무언가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며,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과 가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 것이다('능동적 허무주의'). 따라서 철학사에서 허무주의는 절대성의 해체를 통한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의 출발점으로서 의미가 크다.
쾌락만을 추구하는 향락주의자도 넓게 보면 허무주의자에 속한다. 향락주의자는 진리, 선, 질서 등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기껏해야 쾌락을 위한 도구적 가치로만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언급하는 종말의 인간도 '세상 왜 이따구냐.'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행복을 발견했다.'라고 말한다.이러한 허무주의가 바람직한 것인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허무주의자이면 무조건 염세주의자인 건 아니며, 허무주의는 현대에 생각보다 훨씬 넓게 퍼져있다고 볼 수 있다.
3. 정치사상으로서의 허무주의
독자들은 왜 이 사상적 경향이 니힐리즘이라고 불렸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이데올로기의 당파가 다른 사람들에겐 자연스럽게 간주되는 신성한 것(가족, 사회, 종교, 예술, 전통 등)에 대한 아무런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받아 들입니까? 당신에게는 당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권리가 있거나 당신이 의무감을 가져야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까?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아무것도"(nihil, 無). 그렇기에 그는 "니힐리스트"인 것이다.
― Anarchist Encyclopedia: Nihilism (Voline)
일반적인 염세주의가 아닌 사상으로서의 허무주의는 한국에는 거의 명맥이 끊겼다.― Anarchist Encyclopedia: Nihilism (Voline)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정당이 결성될 정도 융성했던 사회사상이기도 하다. 허무당이라고 했는데, 혁명적 민주주의의 한 분파로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며 암살과 테러 등을 통해 혁명을 이루려 했다. 아나키즘의 전술적 기초를 제공하였으며, 현재에는 '직접행동'이라 불리는 전술의 원류로 평가된다.
본래 니힐리즘은 19세기 러시아의 극도로 반동적이고 압제적인 현실에서 파생되었던 일종의 "자유사상"이었다. 이 자유사상, 즉 니힐리즘은 유물론과 개인주의라는 두개의 사상에 기반했고 그것을 극한으로 추구했다.
니힐리스트들은 유물론자로서 모든 종교, 미신, 형이상학 등 물질적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무언가, 과학으로 분석되지 않은 것, 실질적인 유용성을 가지지 않은 것을 부정했다. 한편으로 개인주의자로써 그들은 완전한 개인의 자유를 위하여 모든 족쇄, 의무, 그리고 가족, 사회, 관습, 규범, 신앙 등의 개인에게 부과된 전통을 부정했다. 이런 입장들이 니힐리즘의 가장 근본적인 사상이었고, 이 니힐리즘은 개인의 완전한 자유라는 신성한 권리와 불가침한 사생활을 옹호했다. 이 니힐리즘이 오늘날 떠올리는 음울한 극단적 혁명이론으로 각인되게 된것은 전적으로 네차예프라는 인물의 역할이다.
그냥 "이것저것 다 허무하니 다 망해라."라는 사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그전의 구 체제를 완전히 말소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쉽게 말해 세계를 포맷해야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사상적 계보로 따지면 제정 러시아 시기의 혁명적 좌파 내에서 극좌로 통했던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도 진짜 상종 못할 정도라고 불렸던 그 미하일 바쿠닌이 극단적이라 부른 세르게이 네차예프의 <혁명가의 교리문답>에서 기원한다.
한국에서는 1926년 허무당 선언 사건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그 전술적 유사성 때문에 아나키즘과 혼동되었으나 엄밀히 말하면 허무당은 개인의 상호부조나 자발성을 인정하기 보다는 혁명 그 자체에 집중했고, 아나키즘은 자주적인 개인들의 공동체를 이상으로 제시했다는 차이가 있다. 현실 역사 속에서는 제정 러시아 시절만 해도 사제 관계였던 위의 미하일 바쿠닌과 세르게이 네차예프가 시사하듯 혁명적 테러리즘이란 수단을 공유 한다는 점에서 겹친 면이 있었으나, 네스토르 마흐노의 우크라이나 농민 혁명과 이를 승계한 스페인 내전 당시 CNT의 아나코생디칼리슴이 일단 철학적으로 파괴보다는 교육, 여성 해방, 반인종주의, 공동체 자치 등 '실질적인 사회 문제의 건설적인 해결'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면서 노선 또한 제대로 갈라졌다.
3.1. 오해와 다른 사상과의 비교
앞서 부분부분 언급되었듯, 이러한 허무주의는 대중적으로는 비관주의, 염세주의 등과 동의어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좋든 싫든 한국에서 아나키즘의 맥락이 끊겨 버린 데다가, 대중적인 철학서에서 허무주의에 대한 설명 없이 실존주의, 생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이 사상의 일면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다시 말해, 좋은 이미지는 '실존주의, 생철학'이 가져가고, 나쁜 이미지만 직관적인 단어 그대로 보이는 대로 '허무주의'가 가져갔다).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한국에서는 이런 부정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사고 또한 허무주의 사조에 부합하는 경향이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한국 사람은 종교와 관련된 일부 문제를 제외하면 '절대적인 믿음'에 의존하지 않는 성향을 보이고, 그나마도 종교인의 수에 비해 무신론자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어 종교의 권위는 약해지고 있다. 개인의 성공은 교육과 노력에 따른 것이라는 의식을 뚜렷히 갖고 있다. 물론 2010년대에 들어 금수저론을 비롯해 이러한 교육과 노력에 의한 성공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도 늘어났지만, 이 또한 탈권위주의적 시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생각이 전혀 철학적이지는 않고 (사회적) 자유지상주의, 일시적 쾌락주의 등 사상적으로 체계화되었다고 볼 수 없는 사고 방식으로 이어질 따름이다. 되려 반지성주의로서 허무주의적 사고 방식이 더 뚜렷하다. 때문에 한국에서의 자국 혐오는 이러한 사고와도 관련이 깊고, 여기에 종교적 요소만 한 스푼 얹어주면 기복신앙이 되고 한 스푼 더 얹어주면 사이비 종교가 된다(물론 한국 사회에서 주류는 아니다. 적어도 후자는).
공(空)을 추구한다는 불교를 허무주의와 비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허무주의/불교 문서로.
4. 예시
- 가네코 후미코
- 고르기아스
- 김영하
- 김훈
- 나관중 - 삼국지연의와 (그가 썼는지 논란이 있지만) 수호전은 모두 결론이 허무주의적이다.
- 닉 랜드
- 레이 브라시에
- 마광수 - 절대적 진리를 배격하고 허무주의 관점에서 쾌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이문열 - 초기작은 허무주의적이다. 그런데 그의 허무주의는 주로 변혁운동에 대한 냉소로 나타난다. 쉽게 말해 " 그놈이 그놈"이다.
- 이시노모리 쇼타로 - 자신이 스무 살이 되던 해(1958년)에, 어릴 때부터 자신이 만화를 그리는 것을 응원해준 누나 요시에가 지병인 천식으로 입원했을 때 의료 사고로 사망하면서 현실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 이후의 만화들은 허무주의에 입각한 스토리 전개와 다소 찜찜한 결말을 많이 냈다.
- 이영도 - 폴랩 이후 작품부터 니체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티가 난다. 시우쇠나 폴랩의 신, 치천제의 말에서 허무주의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6] 절대적 진리의 예로 국가를 상당히 자주 제시하는 걸 보면 아나키즘 성향 역시 존재한다. 추가로 오버 더 호라이즌의 티르 스트라이크 역시 지평선을 넘을 것이라는 호라이즌을 향해 허무주의적 색채의 발언[7]을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 능동적 허무주의자임에 주의할 것. 수동적 허무주의자[8]는 오히려 니체가 가장 혐오하던 사람들이다.
- 최승자
- 토머스 리고티
- 어니스트 헤밍웨이 - 대표적인 능동적 허무주의자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저서에서도 능동적 허무주의가 잘 드러나는 편.
5. 여담
백괴사전에 허무주의를 검색하면 하얀 화면 외에 아무것도 출력하지 않으며, 이것은 모든 언어 공통이다.[9][10] 또한 각 언어마다 구현 방식에 있어 약간의 차이는 있다. 영어판, 일본어판허무주의는 회의주의나 상대주의가 그러하듯이 메타적으로 접근하면 자기 자신을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는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유사한 역설에 빠진다.
6. 관련 문서
[1]
허무주의의 핵심을 요약한 말.
[2]
기존 가치가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의 특성과 합쳐져 능동적 허무주의는 엄청나게 철학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다.
미래주의와 비슷하다.
[3]
즉 수동적 허무주의의 특성상
염세주의와도 연결이 된다.
[4]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곳곳에서 수동적 허무주의에 대한 비판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서 시니컬하게 말할 시간 있으면 그 도시를 떠나거나 아니면 그럴 시간에 도시를 좋게 바꾸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한다든가.
[5]
그 유명한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문구는, '생각은 존재한다' → '존재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다' → '절대적으로 옳은 명제가 존재할 수 있다' → '절대적으로 옳은 신이라는 존재도 있을 수 있다' → '신이 보증하는 이성적 영역에서의 탐구가 가능하다' → 는 식으로 자신의 논증을 확장시켜 나간다. 데카르트 본인과는 관련이 없지만,
이신론이 말하는 지점도 얼마만큼은 이와 닮아 있다.
[6]
본인은 등장인물은 자신이 아니라는 투의 인터뷰를 하긴 했지만 집필한 작품마다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캐릭터가 나오고, 그 캐릭터들이 대부분
신,
십만년 단위를 예측하는 천재,
완전한 존재의 찌꺼기,
세상의 주인 등의 초월적, 절대적 존재들이라는 걸 보면...
[7]
가 닿을 수 없는 지평에의 도약대
[8]
그의 저서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나귀"나 "낙타" 와 같은 사람들을 말한다.
[9]
F12를 누르고 코드를 자세히 보면 "이 내용을 보고 있는 너는 변.태.다!!!"라고 적혀있다(...).
[10]
현재 나무위키에 대한 언급이 작성되어있다... 뭐긴 뭐야 나무위키 보고 들어왔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