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스콜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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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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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 · 2006-07 |
폴 스콜스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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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퍼드 시티 FC | ||
Salford City Football Club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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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폴 스콜스 Paul Scho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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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본명 |
폴 애런 스콜스[1] Paul Aaron Scho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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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4년 11월 16일 ([age(1974-11-16)]세) | |
잉글랜드 그레이터맨체스터 주 솔퍼드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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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68cm / 체중 70kg | |
직업 |
축구 선수 (
미드필더[2],
공격수[3]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경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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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18번, 22번 잉글랜드 대표팀 - 8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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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000> 선수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1~1994 / 유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4~2013) |
지도자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4 / 코치) 솔퍼드 시티 FC (2015 / 임시 감독) 올덤 애슬레틱 AFC (2019) 솔퍼드 시티 FC (2020 / 임시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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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 솔퍼드 시티 FC (2014~ / 구단주)[4] | |
국가대표 | 66경기 14골 ( 잉글랜드 / 1997~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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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였다.유스부터 프로까지 커리어 전부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보낸 원클럽맨으로, 맨유의 1998-99 시즌 트레블과 UCL 2회 우승, PL 11회 우승에 기여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713경기 153골 76도움 |
2.2. 국가대표 경력
1997년 남아공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19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 명단에 선발되어 조별 리그 튀니지전에서 득점을 기록하였으며, 이후 유로 2000, 2002년 한일 월드컵, 유로 2004에 모두 주전으로 참가하였다.
투박한 뻥축구를 주로 구사하는 잉글랜드에서 창조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선수[5]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맨유에서와는 달리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고, 유로 2004 이후 맨유에 집중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훗날 이 은퇴 선언을 너무 빠르게 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그의 은퇴 이후 잉글랜드의 뻥축구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심각해졌고, 유로 2008 당시 지역예선 탈락의 위기에 놓인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스티브 맥클라렌이 그에게 국대 복귀를 요청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고, 결국 잉글랜드는 유로 2008 예선에서 탈락하며 본선 무대조차 밟지 못하고 망해버렸다.[6]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직전 파비오 카펠로 감독 또한 복귀 제의를 했지만 역시나 거절.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 대표팀 복귀 요청을 거절한 것을 후회한 것 같다고 밝혔고, 코칭 스태프의 요청이었고 감독이 직접 요청했으면 복귀할 의사가 있었다고 했다.
3. 플레이 스타일
[442.masterclass] 폴 스콜스: 패스 마스터가 되고 싶다면?주 포지션은 포맷 4-4-2의 중앙 미드필더로, 전성기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나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뛴 적도 있다. 맨유가 트레블을 이룰 당시에는 로이 킨과 짝을 이루곤 하였는데, 로이 킨이 뒤쪽으로 깊게 빠지면 그 앞쪽에 포진하는 다이아몬드 대형을 이루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스콜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에 있다. 동료들을 잘 이용했는데 간결한 볼 터치로 볼을 안정적으로 컨트롤하고 주변 동료들에게 건네고 다시 받는 포지셔닝이 매우 좋았다. 발도 느리고 피지컬도 평범한 스콜스가 90분 내내 안정적인 볼 소유를 가져갈 수 있던 비결은 이 영리한 움직임에 있다. 그러다가 전방에 좋은 위치를 잡고 있는 동료가 있다면 언제든 날카로운 롱패스를 넣어주었다.
전성기 시절엔 주로 로이 킨과 스트라이커 및 윙어들 사이에 위치하여 그 사이를 마치 프리롤처럼 움직였는데, 바로 그 위치에서 스콜스의 유니크한 재능이 더욱 부각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각 상황에 맞춰 남들보다 빠르게 판단을 내리며 그 순간에 가장 효율적인 플레이를 가져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들을 실제 플레이로 실현할 수 있는 준수한 발기술과 뛰어난 킥력, 패싱력, 행동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편, 스콜스의 이런 능력은, 경기장에서 드러나게 보이진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축구팬들이 이런 능력을 파악하긴 쉽지 않다. 알렉스 퍼거슨 조차도 처음 스콜스를 봤을 땐 "기술은 뛰어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작다"라며 마음에 안들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스콜스가 지닌 가치를 알아보며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고 한다. 퍼거슨이 평하길 스콜스의 진가는 '패싱게임에 있어서의 지능과 조직화 능력'에 있으며 이건 순전히 타고난 재능이며, 본인은 스콜스에게 내린 첫 혹평[9]을 반성해야 했다고 한다.[10]
상술한 장점들 덕분에, 나이가 들어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낮은 위치에서 플레이 했을 때도 여타 선수들과 다르게 곧바로 적응할 수 있었다. 이게 대단한 이유가 뭐냐면 전성기에는 주로 전방을 드나들며 활약했음에도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서도 충분히 완성된 수준이었다는 의미니까, 스콜스의 천재성과 다재다능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나이가 들어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전향하는 미드필더들은 많지만, 그 위치에서 '확실히 성공했다'고 할만한 미드필더는 스콜스를 포함해 피를로, 알론소, 레돈도 등 매우 소수라는 점이다. 이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라는 포지션이 이상론에 가까운 포지션이기 때문인데, '상대의 압박이 약한 후방공간에서 최전방의 공격작업을 주도한다'는 일을 실현하기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는 뜻.[11] 게다가 일견 안전해보지만, 후방에서의 공격작업은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실점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한 듯 보이면서도 치명적인 리스크를 동반하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12] 스콜스의 은퇴 이후, 당시 노장이었던 긱스도 이 역할에 도전했지만 완벽히 대체하진 못하여[13][14], 퍼거슨이 결국 스콜스를 다시 복귀시킨 계기가 됐다는 걸 생각하면, 스콜스의 자연스러운 전향이 실로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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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으로는 비교적 평범한 스피드와 작은키, 다혈질인 성격에서 오는 악질적인 파울과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괴한 반칙들이 있다. 종합적인 수비력은 알려진 것과 다르게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태클을 하는 타이밍과 강도가 문제였다. 태클로 공을 빼앗는 것이 불가능한 각도에서 태클을 시도하다가 상대의 다리를 걷어차 어처구니없이 퇴장당하거나 상대방에게 부상을 입힐 때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에게 가한 백태클. 보다시피 동업자 정신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살인 태클이었다. 때문에 챔피언스 리그 통산 최다 옐로카드 보유자이기도 하다. 2006-07 시즌 막바지 노스웨스트 더비에서 샤비 알론소를 주먹으로 가격하려 해 퇴장당한 적도 있다. 2007-08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는 클로드 마켈렐레의 머리에 팔꿈치 가격을 해 놓고는 오히려 자신이 튕겨져 나가 잔디밭에 나뒹굴어 눈썹 위가 찢어졌고 응급처치 직후 경고를 받은 바 있다. 고의성이 다분한 악질적인 핸드볼 파울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정신 나간 태클 연발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스콜스의 태클은 왜 그 따위인지 모르겠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죽하면 다른 선수들이 거친 태클을 하면 의아하지만 스콜스가 거친 태클을 할 때는 "쟨 원래 저러니까 뭐..."하고 만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후에 웹예능 프로그램 맨인유럽에서 박지성과 에브라는 스탯별 맨유 최고의 선수를 뽑을 때 태클 부문에, 에브라는 "태클을 걸자면 '스콜스'는 절대 아니야", "태클할 때 가장 어설펐던 선수야"라고 말했고 박지성은 "태클 못하는 선수를 뽑으라고 하면 스콜스지"라고 말했다. # 팬들뿐만아니라 동료선수들과 감독도 스콜스의 태클을 보면 답답했던 모양이다.
4. 지도자 경력
2014년 4월 23일 구단 공식 홈페이지로 코치진에 합류한다고 발표했다. 스콜스는 맨유의 원클럽맨이자 레전드로 현재 1군 코치직을 맡고 있는 니키 버트, 필 네빌과 함께 1군 코치를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의 경질 이후 라이언 긱스가 남은 기간 동안 감독 대행을 맡게 되어 그를 보좌하기 위해 시즌 종료 시점까지 코치직을 수행했다.2019년 1월 20일 EFL 리그 2의 올덤 애슬레틱과 감독직 협상 중이라는 기사가 떴다.
결국 2019년 2월 중순 올덤 감독에 부임했으나, 첫 경기 승리 후 한 달간 3무 3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31일 만에 사임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3~2011, 2012~2013)
- 프리미어 리그: 1995-96, 1996-97, 1998-99, 1999-00, 2000-01, 2002-03, 2006-07, 2007-08, 2008-09, 2010-11, 2012-13
- FA컵: 1995-96, 1998-99, 2003-04
- 풋볼 리그컵: 2008-09, 2009-10
- FA 커뮤니티 실드: 1996, 1997, 2003, 2008, 2010
- UEFA 챔피언스 리그: 1998-99, 2007-08
- 인터컨티넨탈컵: 1999
- FIFA 클럽 월드컵: 2008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18 챔피언십: 1993
5.2. 개인 수상
- PFA 올해의 팀: 2002-03, 2006-07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03년 1월ㆍ12월, 2006년 10월, 2010년 8월
- 프리미어 리그 10시즌 어워즈 내국인팀 (1992-93~2001-02)
- 프리미어 리그 20시즌 어워즈 (1992-93~2011-12)
- 팬 선정 팀: 2012
- 패널 선정 팀: 2012
- FA 커뮤니티 실드 MOTM: 2003
- 지미 머피 올해의 영플레이어: 1992-93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올해의 골: 2006-07
- FIFA 100: 2004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8
- FWA 공로상: 2012
5.3. 클럽 기록
<rowcolor=#ffe500> 시즌 | 클럽 | 리그 | FA컵 | 리그컵 | 대륙 대회[15] | 기타[16] | 전체 | |||||||
<rowcolor=#fff> 부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93-94 | 맨유 | 프리미어 리그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994-95 | 17 | 5 | 3 | 0 | 3 | 2 | 2 | 0 | 0 | 0 | 25 | 7 | ||
1995-96 | 26 | 10 | 2 | 1 | 1 | 2 | 2 | 1 | - | 31 | 14 | |||
1996-97 | 24 | 3 | 2 | 2 | 2 | 1 | 4 | 0 | 1 | 0 | 33 | 6 | ||
1997-98 | 31 | 8 | 2 | 0 | 1 | 0 | 7 | 2 | 1 | 0 | 42 | 10 | ||
1998-99 | 31 | 6 | 6 | 1 | 1 | 0 | 12 | 4 | 1 | 0 | 51 | 11 | ||
1999-00 | 31 | 9 | - | 0 | 0 | 11 | 3 | 3 | 0 | 45 | 12 | |||
2000-01 | 32 | 6 | 0 | 0 | 0 | 0 | 12 | 6 | 1 | 0 | 45 | 12 | ||
2001-02 | 35 | 8 | 2 | 0 | 0 | 0 | 13 | 1 | 1 | 0 | 51 | 9 | ||
2002-03 | 33 | 14 | 3 | 1 | 6 | 3 | 10 | 2 | - | 52 | 20 | |||
2003-04 | 28 | 9 | 6 | 4 | 0 | 0 | 5 | 1 | 1 | 0 | 40 | 14 | ||
2004-05 | 33 | 9 | 6 | 3 | 2 | 0 | 7 | 0 | 1 | 0 | 49 | 12 | ||
2005-06 | 20 | 2 | 0 | 0 | 0 | 0 | 7 | 1 | - | 27 | 3 | |||
2006-07 | 30 | 6 | 4 | 0 | 0 | 0 | 11 | 1 | - | 45 | 7 | |||
2007-08 | 24 | 1 | 3 | 0 | 0 | 0 | 7 | 1 | 0 | 0 | 34 | 2 | ||
2008-09 | 21 | 2 | 2 | 1 | 3 | 0 | 6 | 0 | 3 | 0 | 35 | 3 | ||
2009-10 | 28 | 3 | 0 | 0 | 2 | 1 | 7 | 3 | 1 | 0 | 38 | 7 | ||
2010-11 | 22 | 1 | 3 | 0 | 0 | 0 | 7 | 0 | 1 | 0 | 33 | 1 | ||
2011-12 | 17 | 4 | 2 | 0 | 0 | 0 | 2 | 0 | 0 | 0 | 21 | 4 | ||
2012-13 | 16 | 1 | 3 | 0 | 0 | 0 | 2 | 0 | - | 21 | 1 | |||
20시즌 | 통산 | 499 | 107 | 49 | 13 | 21 | 9 | 134 | 26 | 15 | 0 | 718 | 155 |
6. 논란 및 사건 사고
6.1. 한국 비하 발언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나중에 박지성이 맨유에서 입단하여 활약하던 도중에 재발굴되어 이슈가 되었다. 국내 맨유 팬들을 위시한 국내 스콜스 팬들은 "스콜스가 그랬을 리가 없다. 잉글랜드는 일본에서 경기했으니 일본을 지칭한 말이다"라고 의문을 제기하였으나, 2004년 5월 더 가디언의 기사에 따르면 한국 비하를 한 것이 확인되었다.'Korea,' said Paul Scholes in January, is a stupid country where the World Cup should never have been played...'
월드컵을 개최하지 말아야 했던 멍청한 나라
해당 발언은
유로 2004를 앞두고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 유로 2004의 우승 후보를 묻는 질문에
프랑스를 언급하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조기 탈락은 월드컵이 열려선 안 되는 stupid country에서의 일시적 부진이라고 말한 것이다. 당시 최강으로 불리던 프랑스의 뜻밖의 조별리그 탈락에 놀라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당시 장마를 피하려고 더운 날씨 속에 진행된 일정에 불만이 있었다는 해석이 많다.월드컵을 개최하지 말아야 했던 멍청한 나라
이후에도 스콜스는 비슷한 내용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는데, 2017년에는 "한일 월드컵 이후 당신은 그런 더운 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것에 불평했었는데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자신은 거기( 카타르)에 안 가서 다행이고, 한일 월드컵 때도 한국과 일본은 너무 더웠고 카타르는 45도가 넘는다는데 이런 기온에선 팬들도 선수들도 좋지 않다는 등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 역시 부정적으로 말했다. #
6.2. 왓츠앱 사임 통보 사건
올덤 에슬레틱 감독으로 부임한 지 31일 만에 사임했다. 7경기에서 1승밖에 못 거둔 성적과 구단주와 마찰이 있었다는데, 본인의 첫 프로 커리어라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경질 과정에서 미성숙한 행동을 보여 비판을 받고 있다.스카이 스포츠, 데일리 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스콜스가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왓츠앱(WhatsApp)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왓츠앱은 대중적인 SNS 메신저로, 우리나라로 치면 카톡 한 통으로 사임을 통보했다는 뜻이다. 스콜스는 메시지를 보내고 구단 수뇌부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성적이 부진하거나 구단 수뇌부와 사이가 틀어질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사임 통보를 하는 것은 본인과 함께 한 코칭 스태프, 선수들, 팬들에게 보여야 할 예의가 아니다. 아르바이트도 이런 식으로 사임 통보를 하면 욕 먹는 마당에 한 클럽의 감독이란 사람이 이런 식으로 사퇴한 것에 비판이 일고 있다.
어처구니 없게도 스콜스는 과거 은퇴하고 싶은 팀으로 올드햄을 뽑았다. 같은 지역 팀인 올드햄에 애정을 갖고 있으며, 2017년에도 감독으로 일할 기회가 있었으나 무산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팀에 감독으로 부임한지 1달 만에 문자 통보로 사임한 것이다. #
6.3. 아들의 폭행 논란
본인보다는 아들에 대한 논란인데, 스콜스 또한 욕설을 하면서 이를 가중시켰다. #스콜스의 아들이 2018년 6월 학교 친구에게 주먹질을 하고 웃으며 영상을 찍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스콜스는 재판장에서 기자들에게 그래서, 오늘은 뭔 개소리를 쓸거지?[17]라고 욕설을 했다는 후문인데, 명백하게 아들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건에서 사과는커녕 기자에게 화풀이를 한 점은 충분히 논란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시기상으로 위의 왓츠앱 사임 통보 시기와 비슷하게 맞물리면서 비판이 가중되었다.
6.4. 불법 도박 논란
2019년 4월 16일,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협회 규정에 반하여 축구 경기에 베팅을 한 폴 스콜스에게 징계를 하겠다고 밝혔다. 협회에 따르면 스콜스는 2015년 8월 17일부터 2019년 1월 12일 사이에 열린 축구 경기들에서 140차례나 협회 베팅 규정을 어겼다고 한다. #7. 여담
- 키가 168cm로 축구 선수가 아니라 영국 평균 키로 봐도 평균보다 많이 작다. 여성 평균 키 정도일 정도. 맨유, 잉글랜드 국대 시절 지나갈 때 보면 유독 확실히 덩치가 많이 작게 느껴 진다. 그래서인지 후배들에게 횡포를 일삼았던 에릭 칸토나에게 많이 맞았었다고 한다.
- 노화로 경기력이 떨어지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명실상부 맨유의 에이스 취급이었다. 선수들에게 노발대발 화를 내기로 유명한 퍼거슨 감독도 스콜스에게만큼은 화를 내지 않았다는 모양. 다른 선수들도 스콜스가 실수를 해도 "그래 스콜스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넘어갔을 정도라고.
- 경력과 팀 내 위상을 봐서는 주장을 맡아도 손색없지만, 스콜스 본인이 주장직이 싫다고 한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을 이끄는 역할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듯. 실제로 스콜스는 몇 안 되는 그의 인터뷰에서 그의 이상적인 하루가 "아침에 훈련하고,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오고, 아이들이랑 함께 논 후, 차를 한 잔 하고 애들을 재운 뒤 TV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매우 조용한 성격이어서, 박지성도 자서전에서 신사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18] 워낙에 남들에게 주목받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무조건 경기, 훈련, 집밖에 모르고 구단 공식 행사 및 우승 셀레브레이션에도 거의 나서지를 않고 어쩔 수 없이 참석할 땐 대개 슬그머니 뒤로 빠져버린다.[19]
- 이런 주목받는것을 꺼리는 성격탓에 실력과 커리어에 비하면 스타성이 떨어지는 편이라 국내 해축팬덤 사이에선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여론이 가장 치열하게 부딪히는 선수이다.
- 은퇴 복귀할 당시 U23팀 코치로 있으면서도 매일 훈련을 계속해서 몸상태가 괜찮았다고 한다. 첫 복귀날 작은 헤프닝이 있었는데 라커룸에 스콜스의 유니폼은 있었지만 축구화가 없었다고 한다. 구단에서 스콜스가 축구화가 없을꺼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스콜스는 나이키에 요청할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출전이 밖으로 새어나갈 수 있을꺼라 생각해서 동네 스포츠용품점(JJB)에 나가서 40파운드(한화 약 58,000원)짜리 축구화를 사서 신고 뛰었다고 한다. 당시 느낀 생각은 '축구화가 꽤 비싸네?'였다.
- 은퇴 후 BT 스포츠에서 전문가로 맨유 경기를 분석, 평가하려고 초대될 때가 많다. 맨유가 부진하자 온갖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반 할 감독이 성명을 내든 반박을 하든 전혀 개의치 않으며 "쟤 왜 저래?"라는 반응까지 추가로 내비치며 이기든 지든 간에 맨유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적 시장에서 내보낸 선수는 수준이 높은데 데려온 선수는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 최근 부진에 빠진 루니의 문제, 반 할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 경기가 지루하고 퍼거슨 시대의 색채가 전혀 없다는 점들을 주로 언급한다. 선수 시절 매우 조용한 성격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의 행보다.[20] 게다가 맨유는 그의 말대로 노잼 축구만 주구장창 보여 주고 있고 반 할의 인성 문제까지 드러나며 까이고 있다. 근데 사실 스콜스는 오히려 반 할에게는 비판의 수위가 낮은 편이다. 한 번도 반 할이 경질되어야 한다는 소리는 한 적이 없고, 오히려 경질 자체는 반대한다. 그저 팀과 반 할의 변화를 원하는 편이다. 그러나 결국 반 할은 시즌 종료 후 경질된다.
- 그러나 무리뉴 시절에도 열심히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어서 무리뉴 감독에게도 반발을 샀다. "비난만 하는 스콜스, 내 성과 25%만 해봐!" 결국 즐라탄도 퍼기의 아이들이 TV 나와서 불평만 늘어놓는다며 맨유에 직접 들어가서 도움되는 일은 안 하고 팀 레전드라는 이유로 밖에서 말참견만 한다는 식으로 지적했다. 퍼기의 아이들이라고 통틀어 말했지만, 사실상 TV에서 맨유 비판에 앞장서는 스콜스와 네빌로 타겟이 좁혀진다. 그리고 결국 이 둘은 감독으로서 실패를 맛보며 TV에 나와서 입 터는 것과 현실은 다르다는 조롱이나 듣게 되었다.[21]
- 운동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천식, 한쪽 눈 실명 위기 등을 이겨내고 맨유의 원클럽맨, 레전드 미드필더가 되었다. 특히 눈 실명 때에는 은퇴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나, 초인적인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 핸드볼 반칙을 자주 저지르는 편인데, 이게 자세가 안 좋다거나 운이 나쁜 문제가 아니라 고의적으로 손을 쓰는 일이 많다. 100% 골 확정인 슛을 양팔을 쭉 뻗어 선방해내며 퇴장+PK를 헌납했다. 올라오는 크로스를 손으로 후려갈겨 상대 편 골망을 흔들고 퇴장당하는 개그장면을 연출하면서 배구선수냐고 욕먹은 바 있다.
- 논란 문단에 서술된 것처럼 한국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것 같지만 별개로 동료였던 박지성을 자주 언급하는 편이다. 해설 도중 박지성 같은 선수의 필요성을 언급하거나 훈련할 때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동료로 박지성을 뽑은 적이 있다. 박지성도 자서전에서 처음 맨유에 입단할 때 주위에서 스콜스와의 관계를 걱정했지만 스콜스가 워낙 내성적인 양반이기도 하고 서로 잘 지냈다고 한다.
7.1. 그말싫
일부 강성 맨유팬들이 스콜스를 지단과는 동급이고, 사비보다 한 수 위라는그리고 여기서 알싸의 유명한 드립 중 하나인 그말싫이 터져나왔다. # 누군가가 "스콜스는 역대급 중미다"라고 주장하자 다른 이가 "(스콜스의) 발롱도르 순위는 몇 위가 최고였나요?"라고 반문한 것. 그러자 글쓴이는 "그건 말씀 드리기 싫습니다"라고 답변을 회피했다.
물론 선수 비교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등의 개인 커리어와 팀 커리어(특히 대표팀 커리어), 매체들이 내놓는 축구 선수 순위 등의 자료들을 종합했을 때 지단과 사비가 스콜스보다 훨씬 앞서는 평가를 받고 있음은 자명하다.
7.2. 레전설
누군가가 아프리카 TV에서 경기를 보는 도중 스콜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이라는 말을 하여 큰 웃음을 주었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7.3. vs 제라드 or 램파드
대부분의 해축팬들이 축구를 보기 시작한 시점의 스콜스의 전성기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롤을 본격적으로 맡기 시작한 30대 초중반이기 때문에 나이 차가 꽤 나지만 같은 잉글랜드인이자 동시대 월드클래스 미드필더였던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와 자주 비교된다. 이는 세 선수 모두 은퇴한 지금도 간간이 언급되는 떡밥인데, 스콜스를 위로 치는 사람들은 팀 커리어를 내세우고 제라드와 램파드는 각종 수상 기록과 스탯을 내세우며 비교할 때가 많다. 이런 선수들의 비교 자체가 병림픽이기도 하고 스콜스는 제라드와 램파드보다는 몇 년 앞서서 보냈기에 전성기를 기준으로 할 때 정확한 비교가 어렵다.[22] 그리고 이 셋의 팀에서의 역할도 각각 다르기에 미드필더라도 퉁쳐서 비교하는 건 억지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런 떡밥이 유효한 건 스콜스가 우선 눈에 보이는 스탯이 부족하고 제라드, 램파드가 각각 리버풀, 첼시를 대표했던 미드필더들이기 때문이다.이 세 선수의 비교는 유난히 개인 수상을 언급할 때 불이 붙는데 그 이유는 스콜스가 제라드와 램파드에 비해 개인 수상 기록만큼은 정말 초라하기 때문이다.[23]
가장 권위있는 개인상인 발롱도르로 비교하면 램파드는 2위, 제라드는 3위까지 해본 적이 있지만 스콜스는 순위권은 커녕 커리어 내내 단 한 표도 받지 못 했다. 또한 제라드는 리그 MVP라 할 수 있는 PFA 올해의 선수와 FWA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고, 램파드는 FWA 올해의 선수와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거기에 리그 베스트 11에 해당하는 PFA 올해의 팀에 각각 제라드가 8회, 램파드가 3회 뽑혔지만 스콜스는 2회 선정되었고, 이것이 스콜스의 몇 안되는 개인 커리어다.[24]
그와 반대로 프리미어 리그 사무국에서 발표한 프리미어 리그 10주년, 20주년 베스트 XI에서 스콜스는 긱스, 슈마이켈과 함께 모든 팀에 이름을 올렸지만 제라드는 팬 선정 팀에만 뽑혔고, 램파드는 어디에도 뽑히지 못했다. 또한 20주년 베스트 플레이어 10명의 후보에도 스콜스만 올랐다.[25] 하지만 최근 BBC에서 주관한 프리미어 리그 25주년 올타임 XI 패널 선정 팀에는 스콜스가 빠지고 제라드와 램파드가 들어갔다. # # 세 선수의 개인 수상 기록 세 선수의 통산 스탯
축구 해설가들의 말을 빌리면, 스콜스는 단순히 램제에 비해 나이가 몇 살이 많은 것이 아니라 PL의 위상 자체가 낮을때 활약을 하였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트레블을 달성하면서 PL이 세계 정상의 리그로 올라온 이후가 램제의 전성기였다. 특히 2010년대는 라리가가 리그 랭킹 1위를 고수하고, 월드 XI도 거의 라리가에서 나온 것[26]을 보면 알 수 있듯 제라드와 램파드는 리그의 위상이 올라온 후에 PL에서 활약하였기에 여러 개인 수상에 있어서 스콜스보다 유리했다는 점도 비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스콜스가 개인 수상 기록이 부족해도, 초라했던 PL의 위상을 끌어올리는데에 저 셋 중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스콜스의 득점과 어시스트가 두 선수에 비해 부족한 점에서는, 스콜스는 두 선수에 비해 볼을 배급하는 역할을 더 많이 수행했기 때문에 참작할 여지가 있다. 남는 것은 결국 개인 커리어나 스탯이기에 스콜스가 후대에는 둘에 비해 평가가 밀릴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벌써부터 스콜스에 대한 평가가 뒤로 밀려야만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이다. 후대에 밀릴것 같으니 지금부터 맨 뒤에 두자는 주장은 이미 그 자체로 오류다.
한편, 스콜스의 화려한 커리어는 조정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스콜스의 화려한 팀 커리어는 사실 스콜스 이름을 지우고 당시 맨유 스쿼드의 누구를 넣어도 성립할 수 있다는 것. 스콜스의 화려한 팀 커리어는 평가할 때 분명 중요한 부분이지만, 자신의 위상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시 맨유의 선수단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커리어를 이끌어낸 퍼거슨 감독뿐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27] 스콜스 대신 제라드 혹은 램파드가 있었어도 맨유의 전성기는 여전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퍼거슨이 아닌 다른 감독이였다는 가정을 깔면 맨유의 전성기의 존재여부는 매우 회의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맨유의 화려한 선수단을 고려했을 때, 맨유의 성공이 오로지 스콜스 덕분이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스콜스가 그저 맨유 전성기에 버스를 탔을 뿐이라는 주장은 더욱 말이 안된다. 스콜스는 그만큼 맨유의 트레블에 매우 중요한 '키'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실제 스콜스의 전성기 시절(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 플레이를 직접 목격한 축구 해설가 한준희는 '원투펀치' 방송에서, 맨유의 성공에 있어서 대체하기 어려운 필수적인 존재로 스콜스를 꼽았다. # 그러므로 당시 스콜스 자리에 누구를 넣어도 맨유의 성적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보다는, 오히려 스콜스의 존재 덕분에 맨유의 전성기가 성립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또한 스콜스의 재능은 램제와는 다소 다른 성격의 것이었기 때문에 과연 스콜스 대신 램제가 들어갔어도 맨유의 성공이 가능했을지는 쉽사리 단언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맨유 신화의 공로를 주장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인 퍼거슨이 본인 은퇴하는 날까지 끝까지 집착한 선수가, 많고 많은 스타 플레이어들 중 오직 긱스와 스콜스 뿐이었다는 점도 생각해 볼 문제다. 알다시피, 스콜스 은퇴 이후 스콜스의 대체자를 찾을 수 없었고, 맨유의 중원이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하자 퍼거슨은 은퇴한 스콜스를 다시 불러들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스콜스의 복귀 시즌에 아깝게 리그를 2위로 마감하고, 다음 시즌에 다시 리그 우승컵을 탈환하였다.[28] 퍼거슨의 이전까지의 행보(특정선수에 집착하지 않는 성격)을 보았을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또한 뭔 짓을 해도 혼나지 않았던 선수가 스콜스 뿐이었다는 퍼디난드의 증언을 봤을 때, 퍼거슨의 스콜스에 대한 애정은 남다른 측면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
이와 별개로 스콜스는 맨유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함께한 만큼, 스콜스 개인의 기량으로 중요한 경기에서 클러치 능력을 발휘해 임팩트를 준 순간을 찾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1998-99 시즌 트레블 당시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라는 우승후보들을 상대로 중요한 골들을 기록하고, FA컵 결승전에서는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우승을 이끈 바 있으며, 2007-08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는 바르셀로나를 침몰시킨 결승골을 기록한 선수가 바로 스콜스다. 스콜스 역시 여느 월드클래스 선수들 못지 않게 훌륭한 클러치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
또 흔히 스콜스의 약점이라 지목되곤 하는 또 다른 부분은 팀 주축으로서의 리더 역할에 대한 의문이 있다. 화려한 팀에서 영광스러운 역사를 함께한 것은 그의 행운이지만, 불우한 환경에서도 팀의 리더로서 제 역할을 해낸 라이벌과 비교했을 때 과연 스콜스가 한 선수로써 그에 대응할 수 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감안해야 될게 당시 맨유에는 이미 칸토나, 슈마이켈, 킨이라는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베테랑들이 있었고, 이후로도 긱스, 베컴이라는 화려한 스타일의 선수들이 나왔기에 스콜스 본인이 맨유의 얼굴을 자처하기는 힘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와 별개로 팀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는 결코 긱스, 베컴, 킨에 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과 25%씩 동등한 지분을 갖는다는 한준희의 주장을 고려했을 때, 미드필드 진영에서 스콜스의 영향력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29] # 또 생각해보면, 스콜스의 플레이 스타일 상 공을 오래 갖고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팬들의 주목을 받기 어려운 측면도 존재한다. 다시 말해, 스콜스에게 리더십이 부족해보이는 이유는 본인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선수단 전체를 아우르고 이끄는 '주도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웠고, 플레이 스타일도 스포르라이트를 받기 어려운 수수한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콜스는 경기 내적으론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키 플레이어'였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스콜스의 경우 눈에 보이는 개인 기록이나 수상 이력 면에서 램제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팬들은 주로 축구인들의 리스펙트성 발언이나 평가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30]
8. 스콜스에 대한 헌사
26년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뛴 내 제자들 중 월드클래스 선수는 오직 4명이다.
에릭 칸토나와
라이언 긱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폴 스콜스가 그 주인공이다.
어린 재능인 긱스와 스콜스는 환상적인 재능이었다. 두 선수는 오랫동안 뛰면서 수준을 증명했다. 그렇게 리그에서 오랫동안 수준 높은 경기를 한 선수는 없었다.
- 알렉스 퍼거슨
어린 재능인 긱스와 스콜스는 환상적인 재능이었다. 두 선수는 오랫동안 뛰면서 수준을 증명했다. 그렇게 리그에서 오랫동안 수준 높은 경기를 한 선수는 없었다.
- 알렉스 퍼거슨
만약 그가 나와 함께 뛰었다면, 난 훨씬 더 많이 득점을 기록했을 것이다.
- 펠레
- 펠레
지난 15~20년 동안 내가 본 최고의 미드필더는 스콜스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갖춘 환상적인 선수입니다. 난
사비 알론소와 여러 차례 스콜스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스펙타클한 선수입니다. 만약 그가 스페인 사람이었다면 더 높은 평가를 얻었을 것입니다.
- 사비 에르난데스
- 사비 에르난데스
제 커리어에서 스콜스와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기회가 없던 것이 후회됩니다.
- 지네딘 지단
- 지네딘 지단
그는 언제나 다른 선수들의 관심사였다. 심지어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을 때조차 선수들은 나에게 와서 '스콜스가 좋아하는 건 뭐야?'라고 물었다. 그들은 다른 위대한 축구 선수들을 존경하는 것처럼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
- 데이비드 베컴
- 데이비드 베컴
의심의 여지없이 스콜스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여야 한다. 그는 모든 것을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 티에리 앙리
- 티에리 앙리
(대한민국 국대에 맨유 동료 한 명을 데려올 수 있다면 누굴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폴 스콜스.
- 박지성
- 박지성
그가 하는 플레이 중 몇몇은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훈련장에서 그에게 접근할 선수는 아무도 없다. 연습 경기를 할 때면 모두가 스콜스와 한 팀이 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가 있는 팀이 항상 승리하기 때문이다.
(함께 뛰었던 선수들 중 최고의 선수가 누구였냐는 질문에) 스콜스가 바로 떠오른다. 누구나 스콜스를 당연히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긱스도 마찬가지다.
- 대런 플레쳐
(함께 뛰었던 선수들 중 최고의 선수가 누구였냐는 질문에) 스콜스가 바로 떠오른다. 누구나 스콜스를 당연히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긱스도 마찬가지다.
- 대런 플레쳐
스콜스는 뛰어난 테크닉과 패싱력을 갖춘 것 이외에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립니다.
-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스콜스는 내가 본 최고의 미드필더다. 그는 오른발, 왼발, 머리 등 어느 부위로도 득점과 패스를 할 수 있다.
- 나니
- 나니
나와 같은 모든 미드필더들은 스콜스만큼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두가 스콜스에게 배워야 한다.
- 에드가 다비즈
- 에드가 다비즈
그는 풍부한 특성과 퀄리티를 가진 올라운드 미드필더이다.
- 마르셀로 리피
- 마르셀로 리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폴 스콜스는 그의 세대 중 최고의 선수다.
- 펩 과르디올라
- 펩 과르디올라
(스콜스, 램파드, 제라드 중 누가 최고냐는 팬의 질문에) 폴 스콜스.
- 토니 크로스
- 토니 크로스
전문가들이 그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물론 그는 내 드림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지만, 또한 개인적으로 경기 관점에서 그는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 데쿠
- 데쿠
그 세대에서 정말 뛰어난 미드필더. 그냥 경기를 뛰는 것이 아니라 경기를 설계했다. 모든 패스들이 그의 지능과 경기 이해도에서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안드레아 피를로
- 안드레아 피를로
스콜스다. 호날두와 함께 리오넬 메시가 최고의 선수로 평가를 받지만, 나는 내가 맨유에서 뛰던 당시에는 스콜스가 정말 훌륭했다. 스콜스가 공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지만, 너무 날카로워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내 커리어에서 후반부에서 미드필더로 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를 연구했고, 훈련과 경기에서 그를 지켜봤다. 직접 그를 보고 배우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스콜스는 우리를 위해 경기를 컨트롤하는 것에 대해 더욱 신경 썼다. 아마 팬들이 보지 못하는 일을 더욱 능숙하게 수행했다. 그가 팀을 위해 했던 작은 일들에 대해선 값을 매길 수 없다.
- 웨인 루니 (함께 뛰었던 선수들 중 최고의 선수가 누구였냐는 질문에)
- 웨인 루니 (함께 뛰었던 선수들 중 최고의 선수가 누구였냐는 질문에)
매일 스콜스가 훈련하고는 것을 보고, 패스하는 데 곁에 있고, 또 같이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지금까지도 생각한다. 어찌나 잘 하는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 마이클 캐릭
- 마이클 캐릭
9. 같이 보기
1
제임스 · 2
G. 네빌 · 3
A. 콜 · 4
제라드 · 5
테리 · 6
캠벨 · 7
베컴 ⓒ · 8
스콜스 · 9
루니 10 오언 · 11 램파드 · 12 브리지 · 13 로빈슨 · 14 P. 네빌 · 15 킹 · 16 캐러거 · 17 버트 18 하그리브스 · 19 J. 콜 · 20 다이어 · 21 헤스키 · 22 워커 · 23 바셀 |
스벤예란 에릭손 |
[1]
캐나다/
미국 이중국적의 유명 경제학자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와 스펠링은 같으나 다르게 읽는다. 국내에서 마이런 숄즈의 인지도가 먼저 있었고, 그 영향인지 폴 스콜스가 국내에 처음 알려지던 무렵에는 "폴 숄즈"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2]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3]
세컨드 스트라이커
[4]
지분 10% 소유
[5]
포포투에서는 브라질인처럼 축구하는 영국인이라고 표현했다.
[6]
맥클라렌이 베컴 의존도를 줄이겠답시고 예선에서 베컴을 제외했는데 잉글랜드가 탈락 위기에 놓이자 그제서야 베컴을 다시 불러들였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7]
박문성 해설위원은 폴 스콜스의 경기를 보고 실제로 느낀점은 진짜 게임에서나 보던 패스를 실제로 보고 사람이 아닌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고 스콜스가 패스를 한 번씩 할 때 마다 경기장 전체가 감탄을 했다고 한다.
[8]
알렉스 퍼거슨에 따르면 한번은
게리 네빌이 훈련 도중 소변이 마려워서 50야드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그러자 스콜스가 주저 없이 공을 차서 소변을 보던 네빌의 엉덩이를 정확히 맞췄다고 한다.
[9]
"He's got no chance, he's a midget."
"그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할 거야, 난쟁이니까." [10] #, # [11] 당연하게도 상대 골대에서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찬스메이킹을 하려면 아주 정확한 롱패스가 필수적인데, 당연하게도 끊길 위험이 높고 자주 성공시키기도 어렵다. 때문에 대부분의 후방 플레이메이커는 경기 조율과 볼 배급에 집중한다. [12] 이 때문에, 감독들 역시 어지간한 재능이 아니면 이런 롤을 부여하려하지 않는다. 물론 나이가 들어 신체능력의 저하로 어쩔 수 없이 도전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성공하느냐는 별개의 문제. [13] 긱스의 중앙 미드필더 전향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특히 공격작업에 있어서 수 많은 찬스메이킹을 기록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나, 경기 조율과 미드필드 장악에 있어선 스콜스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힘들었다. [14] 루니 역시 말년에 가서는 마치 후방 플레이메이커처럼 움직이려는 시도를 했는데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15]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 [16] FA 커뮤니티 실드, UEFA 슈퍼컵, 인터컨티넨탈컵, FIFA 클럽 월드컵 [17] As he walked into the public gallery, Paul Scholes approached the press bench and said: What b******s are you going to write today then? [18] 또한 워낙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 탓에 팀 동료들 중에서는 스콜스의 전화번호도 모르는 동료들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 [19] 자기 은퇴 경기에서 주목받기 싫어서 에릭 칸토나를 부를 정도였다. 맨유 레전드인 칸토나를 부르면 그쪽으로 이목이 쏠릴 것을 노렸다고 한다. [20] 자신의 은퇴식 때도 주목받는 것을 싫어했던 사람이 이렇게 총대를 매고 나설 정도라는 상황에서 스콜스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다. [21] 돈 받고 분석 프로에 초빙된 것이니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곤 하지만, 그 수위가 강하고 빈도가 너무 잦으니 과하다는 의견이다. 선수 시절도 겪어본 사람이 감독들에게 비난만 일삼다가 결국 본인들이 감독 했을 땐 뜻대로 되지 않으니, 이들의 비판은 탁상공론 수준의 현실과 무관한 것이었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무리뉴는 네빌에게도 "경기 중에 PAUSE 버튼은 없다"라면서 현실성 없는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다는 식으로 둘러서 지적했다. 비판이나 쓴소리도 적당해야 듣는 사람도 수긍하는 법이다. [22] 스콜스가 램파드보다 4살 가까이 많고 제라드가 램파드보다 2살 가까이 어리다. 순전히 나이로 비교하자면 실바, 크로스, 포그바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한데 생각해보면 포그바와 크로스라면 몰라도 포그바와 실바를 비교하는 경우는 적다. 요컨데 롤도 다르고 시기도 차이가 있다는 것. 이때문에 한국에서 스콜스의 전성기인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을 직접 본 시청자의 수는 매우 적다. [23] 대다수의 공신력있는 언론사와 해설가 등 축구 전문가들이 선수 개개인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길 때 팀 커리어보다는 개인의 커리어나 활약상을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당장 역대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선수들만 보아도 크루이프, 디 스테파노, 호날두, 푸스카스, 플라티니 등의 선수들은 월드컵 우승이 없다. 발롱도르 드림팀에서 퍼스트팀 스트라이커로 선정된 호나우두만 해도 챔스 무관에 리그 우승도 1회에 불과하고, 랭킹 상위에 포진된 선수보다 팀 커리어가 좋은 선수는 무척이나 많지만 팀 커리어가 온전히 개인의 기량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가가 엇갈리는 것이다. 반대로, 역대 최강의 팀을 논한다면 오히려 개인의 커리어는 뒤로 밀리는데, 이는 선수단의 조합과 성과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1기는 개개인은 당대 최고였지만 팀에 대한 평가는 개개인의 평가에 비해 훨씬 박하다. [24] 축구 해설가 한준희는 같은 팀에 유명한 선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해석했다. 원투펀치에서 다룬 스램제 실제로 동시기에 초기에는 에릭 칸토나, 한창 전성기에는 라이언 긱스와 데이비드 베컴이라는 걸출한 스타들이 있었고 후방으로 내려올때는 반 니스텔루이와 루니가 포커싱을 전부 가져갔다. 게다가 당시 맨유는 윙어천국이라고 불릴정도로 뛰어난 윙어들이 많았고 동시에 웨인 루니, 루드 반 니스텔루이 등 걸출한 선수가 너무 많았다. 팀의 주장, 부주장을 맡은 제라드와 램파드보다 포커싱을 덜 받을 수 밖에 없었다. [25] 긱스가 선정되었다. [26] 주로 2010~2018년까지 [27] 이스타TV의 해설위원 3명과 감스트, 박문성의 스램제 관련 토론방송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28] 다만 맨유의 2012-13 시즌 리그 우승에 스콜스의 기여도는 미미한 편인데, 선발 출전이 8경기뿐이고 출전 시간도 장기 부상으로 800분이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29] 이는 축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견해이기도 하다. 당시 맨유의 미드필더진에서 킨과 대등한 비중을 갖고 있던 선수가 바로 스콜스였다. [30] 아무래도 스램제 논쟁 자체가 누가 더 낫냐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보니 축구 선수, 전문가, 해설위원 들의 평가를 꺼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평가 역시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대부분의 축구인들은 그 셋을 나눠서 평가하는 것 자체를 피로해하며 차이가 나도 아주 극소한 차이라고 하는 경우가 다수다. [31] 돈이 걸린 내기라면 당연히 스콜스에게 걸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할 거야, 난쟁이니까." [10] #, # [11] 당연하게도 상대 골대에서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찬스메이킹을 하려면 아주 정확한 롱패스가 필수적인데, 당연하게도 끊길 위험이 높고 자주 성공시키기도 어렵다. 때문에 대부분의 후방 플레이메이커는 경기 조율과 볼 배급에 집중한다. [12] 이 때문에, 감독들 역시 어지간한 재능이 아니면 이런 롤을 부여하려하지 않는다. 물론 나이가 들어 신체능력의 저하로 어쩔 수 없이 도전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성공하느냐는 별개의 문제. [13] 긱스의 중앙 미드필더 전향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특히 공격작업에 있어서 수 많은 찬스메이킹을 기록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나, 경기 조율과 미드필드 장악에 있어선 스콜스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힘들었다. [14] 루니 역시 말년에 가서는 마치 후방 플레이메이커처럼 움직이려는 시도를 했는데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15]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 [16] FA 커뮤니티 실드, UEFA 슈퍼컵, 인터컨티넨탈컵, FIFA 클럽 월드컵 [17] As he walked into the public gallery, Paul Scholes approached the press bench and said: What b******s are you going to write today then? [18] 또한 워낙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 탓에 팀 동료들 중에서는 스콜스의 전화번호도 모르는 동료들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 [19] 자기 은퇴 경기에서 주목받기 싫어서 에릭 칸토나를 부를 정도였다. 맨유 레전드인 칸토나를 부르면 그쪽으로 이목이 쏠릴 것을 노렸다고 한다. [20] 자신의 은퇴식 때도 주목받는 것을 싫어했던 사람이 이렇게 총대를 매고 나설 정도라는 상황에서 스콜스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다. [21] 돈 받고 분석 프로에 초빙된 것이니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곤 하지만, 그 수위가 강하고 빈도가 너무 잦으니 과하다는 의견이다. 선수 시절도 겪어본 사람이 감독들에게 비난만 일삼다가 결국 본인들이 감독 했을 땐 뜻대로 되지 않으니, 이들의 비판은 탁상공론 수준의 현실과 무관한 것이었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무리뉴는 네빌에게도 "경기 중에 PAUSE 버튼은 없다"라면서 현실성 없는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다는 식으로 둘러서 지적했다. 비판이나 쓴소리도 적당해야 듣는 사람도 수긍하는 법이다. [22] 스콜스가 램파드보다 4살 가까이 많고 제라드가 램파드보다 2살 가까이 어리다. 순전히 나이로 비교하자면 실바, 크로스, 포그바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한데 생각해보면 포그바와 크로스라면 몰라도 포그바와 실바를 비교하는 경우는 적다. 요컨데 롤도 다르고 시기도 차이가 있다는 것. 이때문에 한국에서 스콜스의 전성기인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을 직접 본 시청자의 수는 매우 적다. [23] 대다수의 공신력있는 언론사와 해설가 등 축구 전문가들이 선수 개개인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길 때 팀 커리어보다는 개인의 커리어나 활약상을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당장 역대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선수들만 보아도 크루이프, 디 스테파노, 호날두, 푸스카스, 플라티니 등의 선수들은 월드컵 우승이 없다. 발롱도르 드림팀에서 퍼스트팀 스트라이커로 선정된 호나우두만 해도 챔스 무관에 리그 우승도 1회에 불과하고, 랭킹 상위에 포진된 선수보다 팀 커리어가 좋은 선수는 무척이나 많지만 팀 커리어가 온전히 개인의 기량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가가 엇갈리는 것이다. 반대로, 역대 최강의 팀을 논한다면 오히려 개인의 커리어는 뒤로 밀리는데, 이는 선수단의 조합과 성과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1기는 개개인은 당대 최고였지만 팀에 대한 평가는 개개인의 평가에 비해 훨씬 박하다. [24] 축구 해설가 한준희는 같은 팀에 유명한 선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해석했다. 원투펀치에서 다룬 스램제 실제로 동시기에 초기에는 에릭 칸토나, 한창 전성기에는 라이언 긱스와 데이비드 베컴이라는 걸출한 스타들이 있었고 후방으로 내려올때는 반 니스텔루이와 루니가 포커싱을 전부 가져갔다. 게다가 당시 맨유는 윙어천국이라고 불릴정도로 뛰어난 윙어들이 많았고 동시에 웨인 루니, 루드 반 니스텔루이 등 걸출한 선수가 너무 많았다. 팀의 주장, 부주장을 맡은 제라드와 램파드보다 포커싱을 덜 받을 수 밖에 없었다. [25] 긱스가 선정되었다. [26] 주로 2010~2018년까지 [27] 이스타TV의 해설위원 3명과 감스트, 박문성의 스램제 관련 토론방송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28] 다만 맨유의 2012-13 시즌 리그 우승에 스콜스의 기여도는 미미한 편인데, 선발 출전이 8경기뿐이고 출전 시간도 장기 부상으로 800분이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29] 이는 축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견해이기도 하다. 당시 맨유의 미드필더진에서 킨과 대등한 비중을 갖고 있던 선수가 바로 스콜스였다. [30] 아무래도 스램제 논쟁 자체가 누가 더 낫냐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보니 축구 선수, 전문가, 해설위원 들의 평가를 꺼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평가 역시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대부분의 축구인들은 그 셋을 나눠서 평가하는 것 자체를 피로해하며 차이가 나도 아주 극소한 차이라고 하는 경우가 다수다. [31] 돈이 걸린 내기라면 당연히 스콜스에게 걸 것이라고도 했다.
분류
- 1974년 출생
- 1994년 데뷔
- 2013년 은퇴
- 솔퍼드 출신 인물
-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 미드필더
- 공격수
- 잉글랜드의 축구 감독
- 축구 해설자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 원클럽맨/축구
- 올덤 애슬레틱 AFC/역대 감독
- 솔퍼드 시티 FC/역대 감독
- 감독 대행/축구
- 잉글랜드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잉글랜드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0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4 참가 선수
- UEFA 챔피언스 리그 다회 우승 선수
- UEFA 챔피언스 리그 100클럽 가입 선수
-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