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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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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 TV 드라마 제외
분노의 주먹 (1980) Raging Bu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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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4500> 장르 | 드라마, 전기, 느와르, 스포츠, 액션 |
감독 | 마틴 스코세이지 |
각본 | 폴 슈레이더 |
원작 | 제이크 라모타 - 회고록 《Raging Bull: My Story》 |
제작 | 피터 세베지, 할.W.폴레어, 어윈 윙클러 |
출연 |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캐시 모리어티, 프랭크 빈센트, 니콜라스 콜라산토 外 |
촬영 | 마이클 채프먼 |
편집 | 델마 스쿤메이커 |
음악 | 볼로냐 시립극장, 짐 헨릭슨 |
의상 | 존 복서, 리차드 브루노 |
제작사 | 차토프-윙클러 프로덕션스 |
배급사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
개봉일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1980년 12월 19일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1981년 3월 11일 [[영국| ]][[틀:국기| ]][[틀:국기| ]] 1981년 2월 19일 [[일본| ]][[틀:국기| ]][[틀:국기| ]] 1981년 2월 7일 |
촬영 기간 | 1979년 4월 16일 ~ 1979년 12월 |
화면비 | 1.85 : 1 |
상영 시간 | 129분 (2시간 9분 1초) |
제작비 | 1,800만 달러 |
월드 박스오피스 | $23,406,933 |
북미 박스오피스 | $23,383,987 |
상영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clearfix]
1. 개요
1980년에 개봉한 마틴 스코세이지의 7번째 장편 영화. 미국의 프로 복서이자 세계 미들급 챔피언 제이크 라모타(Jake LaMotta, 1922~2017)의 회고록《레이징 불: 나의 이야기(Raging Bull: My Story)》를 원작으로 하여, 제이크 라모타의 전기를 다룬다.2. 예고편
예고편 |
3. 시놉시스
1941년 제이크 라모타는 그의 매니저 동생 조이와 함께 미들급 챔피언을 향해 훈련하고 있다.
라모타는 그의 경력을 조정하려는 지역 마피아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기도 한다. 그의 첫 사랑은 15살된 비키와 함께 시작된다. 결국 라모타는 비키와 결혼하기 위해 부인과 이혼한다. 그러나 의처증을 가진 라모타는 그의 동생과 부인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라모타는 챔피언이 되지만 곧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슈거 레이 로빈슨과 6번 싸워 5번을 지고 만다. 그의 복싱 경력의 실패는 개인적인 삶에서의 실패도 의미했다. 결국 그의 동생 내외와 사이가 틀어지고 그는 개인적인 구원을 위해 긴 여정에 들어간다. |
4. 출연진
5. 줄거리
5.1. 성장
1964년 뉴욕시의 한 디너쇼. 대기실에서 전직 프로 복서 제이크 라모타( 로버트 드 니로)가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면서 영화가 시작된다.제이크의 무용담은 19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링 위에서 지미 리브스와 데뷔전을 벌이는 제이크. 제이크는 리브스를 7번이나 쓰러트리지만, 판정패를 당하고 만다. 관중들은 이에 항의하면서 잡동사니를 던지고, 경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뉴욕시 브롱스. 제이크는 집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아내와 사소한 것으로 싸우고 분노한다. 제이크의 동생이자 매니저 조이 라 모타( 조 페시)는 제이크를 진정시키고 충고를 해준다. 조이는 체육관에 마피아 친구 살비( 프랭크 빈센트)를 데려와 제이크에게 마피아 연줄을 이용해 타이틀을 갖게 해준다고 제안하나 제이크는 오히려 화를 내면서 내키지 않아 한다.
제이크는 야외 수영장에 갔다 15살 소녀 비키(캐시 모리어티)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1] 이미 아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키와 사랑에 빠진 제이크는 조이의 중개로 비키와 데이트를 하고 사랑을 나눈다.
1943년 2월, 디트로이트에서 제이크는 슈거 레이 로빈슨과 재대결을 한다.[2] 제이크는 당시 40전 40승 무패를 기록하던 로빈슨을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나 3주 후 3번째 경기에서는 패배한다. 조이는 로빈슨이 다음 주에 입대하기 때문에 이러한 판정을 내린 것이라 하면서 분해하고[3], 제이크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1945년, 제이크는 비키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다.[4] 또한 다른 선수들과의 경기에서도 승리해 나가면서 타이틀을 향해 점점 다가간다.
5.2. 챔피언
제이크는 식탐 때문에 경기를 앞두고는 따로 훈련 캠프를 차려야 할 정도로 점점 체중 조절에 어려워하는데, 자신이 훈련하러 집을 비운 사이 비키가 다른 남자들과 바람 피우지는 않을지 의심한다. 그러던 1947년 브롱스, 제이크는 비키가 다음 경기 상대인 토니 자니로[5]가 잘생겼고 인기가 많다고 하자 제이크는 질투를 느끼고 조이에게 비키를 감시하라고 지시한다. 비키와 함께 클럽에 간 제이크는 살비와 마피아 보스 토미 코모(니콜라스 콜라산토)를 만난다. 비키가 토미와 얘기를 나누고 오자 제이크는 비키를 추궁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서도 비키에게 왜 자니로를 칭찬했냐며 비키를 압박한다. 제이크는 자니로와의 경기에서 그를 무자비하게 때리고 쓰러트린 뒤 승리한다.[6] 한편 조이는 비키가 살비와 함께 클럽에 놀러온 것을 보고 비키에게 화를 내다 살비를 폭행한다. 결국 토미 코모의 중재로 조금이나마 살비와 화해하고 토미는 조이의 입을 빌려 제이크가 자신의 도움 없이는 타이틀을 딸 수 없을 것이라면서 타이틀을 원한다면 빌리 폭스와의 경기에서 져달라고 말한다. 제이크는 이를 받아들여 경기에서 초반에만 열심히 싸우다 4라운드부터 아예 대놓고 싸우지 않고 KO패 한다. 결국 경기가 끝난 후 제이크는 성의 없는 경기로 인해 관객들로부터 욕을 먹고 라커룸으로 돌아와 마피아들에게 굴복하고 승부 조작을 했다는 사실에 수치심이 들어 매니저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위원회는 승부 조작 혐의로 제이크의 출전 자격을 정지한다.[7]1949년 디트로이트. 자격이 회복된 제이크는 프랑스의 마르셀 세르당을 상대로 그토록 바라던 미들급 타이틀전 기회를 갖게 된다. 제이크는 여전히 부정망상에 시달려 대기실에서 비키를 추궁하고 결국 손찌검까지 하며 화를 낸다. 또한 이를 말리려는 조이에게도 분노를 내뱉는다. 비키와 조이를 뒤로 하고 경기에 임한 제이크는 세르당을 KO시키고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다.[8]
5.3. 몰락
1950년 펠햄 파크웨이. 제이크는 망가진 TV를 고치다 조이에게 3년 전 살비와 싸운 이유가 비키 때문이었는지 물어본다. 심지어 조이에게 비키와 바람을 피웠는지 묻자 조이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조차 안 하고 제이크에게 욕을 하고는 집을 나간다. 곧이어 영화를 보고 온 비키에게 제이크는 조이와 잤냐고 폭력을 휘두르며 화를 낸다. 열 받은 비키도 조이는 물론 모두와 같이 잤다면서 괜히 없는 말을 지어내어 제이크에게 분노하자 이를 또 진심으로 받아들인 제이크는 조이의 집에 쳐들어간다. 가족들과 식사 중이던 조이를 폭행하고 따라온 비키에게도 주먹을 날려 기절시킨다.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온 비키는 짐을 싸서 떠나려고 하나 제이크는 비키에게 사과하고 포옹하면서 비키를 막는다. 디트로이트에서 프랑스 출신의 로랑 도튀와 챔피언 방어전을 치른 제이크는 치열한 접전 끝에 챔피언 방어에 성공한다.[9] 경기가 끝난 후 비키가 제이크에게 조이한테 전화로 사과하라고 하자 제이크는 조이에게 전화를 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조이는 마피아 쪽 사람이 전화한 줄 알고 욕을 하고 전화를 끊는다. 조이 역시 마피아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나 제이크의 성공을 위해 마피아들과 친하게 지냈음을 뒤늦게 깨달은 제이크는 점점 쇠퇴해 결국 1951년 슈거 레이 로빈슨에게 챔피언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10]1956년, 마이애미로 이주한 제이크. 체중이 급격히 불어난[11] 제이크는 권투를 그만두고 클럽을 세워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데, 가정일은 뒷전으로 내팽겨친 채 클럽일에만 몰두하면서 이에 비키는 이혼을 통보하고 아이들의 양육권을 가져간다. 심지어 제이크는 미성년자 소녀를 남자들에게 소개시켜줬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제이크는 뇌물을 주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급히 자신의 챔피언 벨트에 박힌 보석을 빼내 팔려고 하지만 실패한다.[12] 클럽을 운영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인맥을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제이크 본인이 정말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주러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돈을 마련하지 못한 제이크는 1957년 교도소에 수감되고 감옥 안에서 절망하면서 눈물을 흘린다.[13]
5.4. 결말
1958년 뉴욕시에 돌아온 제이크는 작은 술집에서 사람들을 상대로 스탠딩 코미디를 이어가지만 예전처럼 호의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던 중 조이를 다시 만나 사과를 하지만 조이는 탐탁지 않아 하면서 차를 타고 떠난다.다시 1964년, 제이크는 대기실에서 거울을 보면서 영화 워터프론트의 대사[14]를 따라하고 섀도 복싱을 한다. 그리고 나는 보스다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요한복음 9장의 일부를 인용하며 막을 내린다.
이에 유대인들은 소경이 됐던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하나님 앞에 진실을 말하라. 우린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이에 그가 대답하기를,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 아는 건 한 때는 소경이었지만 이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을 말하라. 우린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이에 그가 대답하기를,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 아는 건 한 때는 소경이었지만 이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6.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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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질투를 가장 비통하게 그려낸 영화
로저 이버트
로저 이버트
<
택시 드라이버>와 <성난 황소>에는 <무셰트>가 감돈다.[15]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운명이 주어진 데로 이끌리다가 마지막 순간에 거의 자포자기하듯이 그것을 껴안으려 들 때 이상하게도 영혼이 숭고해진다는 사실이다.
정성일
정성일
택시 드라이버, 좋은 친구들 등과 함께 마틴 스코세이지 - 로버트 드 니로 콤비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평론가들이 역사상 최고의 영화 10선을 꼽을 때도 종종 들어갈 정도의 걸작.
이 영화에서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는 영화 역사상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선수 시절의 제이크 라모타와 자기관리에 실패하여 몰락한 중년의 라모타를 실감나게 연기하기 위해 약 8주 동안 몸무게를 27KG 증량할 정도로 연기에 몰입했다. 그 결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본 작품도 드니로 어프로치의 대표작으로 인식된다.
7. 기타
-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을 사용한 오프닝이 백미다.
- 영화의 실제 주인공 제이크 라모타는 영화를 본 직후에 자신을 너무 나쁘게 다뤘다며 화를 냈지만 얼마 후 자신의 과거에 대해 반성하며 영화가 맞다고 인정했다.[16] 실제 제이크는 어렸을 때 소년원에 수감되었고,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총 7차례나 결혼하는 등 여성 편력도 심한데다 비키 이후의 다른 아내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TV 드라마, 연극, 영화 등에 단역 배우로 출연하거나 술집에서 스탠딩 코미디로 생계를 이어가던 제이크는 이 영화를 계기로 다시 유명세를 얻었고, 제이크의 두 번째 부인이자 전성기를 함께 한 비키 역시 유명세를 얻어 1981년 51세의 나이에 플레이보이 모델로 나왔고 자신의 이름을 딴 화장품을 런칭했다. 비키는 2005년 심장 수술을 받고 이틀 후 75세로 사망했다. 제이크는 폐렴 합병증으로 2017년 95세로 사망했고 3년 뒤인 2020년에 동생 조이도 형과 같은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17] 제이크와 비키는 슬하에 2남 1녀를 뒀는데, 두 아들은 1998년에 각각 간암과 비행기 사고로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 영화에서처럼 동생 조이가 제이크의 매니저인 건 맞지만, 조이 본인도 한때 복싱 선수로 활동한 적이 있었고 실질적으로 제이크의 매니저 역할을 한 건 피트 페트렐라라는 사람이다.[18] 영화에서 묘사하는 라모타 형제의 갈등들 대부분이 원래는 제이크와 페트렐라 사이의 갈등을 각색한 것이고 실제 라모타 형제는 사이가 돈독했다고 한다. 조이 라모타는 자신이 영화 속에서 부정적으로 그려진다고 영화를 고소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로버트 드 니로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타고 "조이 라모타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비록 저희를 고소했지만..."이라고 하여 장내 사람들 모두가 웃었다.
- 영화가 끝난 후 '헤이크 P. 마누기언을 기억하며'라는 문구가 나온다. 헤이크 P. 마누기언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대학 시절 지도 교수로, 스코세이지의 첫 장편 데뷔작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의 제작을 맡았다. 마누기언은 이 영화의 개봉을 앞둔 1980년 5월에 64세로 사망했다.
- 작중에서 라모타가 수시로 맞붙는 복싱 선수는 슈거 레이 로빈슨인데, 압도적인 전적과 더불어 현대 복싱을 정립한 역사상 최고의 복싱 선수로 꼽힌다. 실제로 라모타는 슈거 레이 로빈슨을 가장 많이 상대한 선수로, 영화에서 나온대로 로빈슨에게 프로 경력 첫 패배를 안겨줬다.
- 한국에는 정식 개봉하지 않고 1990년에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를 독점으로 내던 SKC에서 비디오로 비디오는 약 9분 정도가 삭제되어 냈다. 93년에 LD로 출시( #)했는데, 원제와 전혀 다른 ' 분노의 주먹'이라는 제목으로 고교생 이상가 등급으로 출시했다. 이후 MGM 홈비디오에서 15세 이상가로 2000년에 재출시한 비디오 또한 이 제목으로 나왔다. # 스트리밍 서비스 및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도 해당 제목으로 나온다. 2006년 DVD로 삭제된 부분이 복원되어 또 분노의 주먹이란 제목으로 나왔으며 2012년에는 블루레이 또한 분노의 주먹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최근에는 원제를 그대로 번역한 '성난 황소'로 부르는 사람들도 꽤 많으며[19] 아예 원제를 음독하여 '레이징 불'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 우베 볼이 평론가들과 권투 시합을 하는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레이징 볼(Raging Boll)이 이 영화 제목의 패러디다. 권투 시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우베 볼 항목 참조.
- 1980년 영화임에도 흑백 영화인데, 권투 장면, 글러브 색, 록키 이후 당시 유행하던 다른 권투 영화들과의 차별화 등을 고려하여 흑백으로 촬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 조 페시는 아이리시맨 뒷풀이 영상에서 이 영화를 촬영할 때의 인상깊은 일화를 언급했는데, 촬영 도중 스코세이지가 엑스트라 중 한 명의 시계가 시대 배경에 안 맞는다며 촬영을 중단시켰다고 한다. 페시는 도대체 그런 걸 누가 눈치챌 수 있냐며, 현대의 발전된 촬영 기법보다도 스코세이지의 눈썰미가 훨씬 정확하다고 극찬했다.
- 1990년부터 미국 의회도서관의 National Film Registry가 영구 보존하는 영화이다.
- 스테이크가 타버렸다고 화내는 장면이 있는데 마약 중독으로 인생을 허비한 감독 본인에 대한 자전적 요소라고 한다.
- 복싱 챔피언을 꿈꾸던 한 남자의 성공과 몰락을 다루다 보니 영화 내용과는 전혀 관계 없는 사실이지만, 제이크 라모타는 자신도 모르게 음악계에 기여한 바 있다. 제이크는 10대 시절 같은 체육관을 다니던 동갑내기 복싱 지망생을 KO시켰다. KO당한 이 지망생은 제이크와 같은 이탈리아계로, 당시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그렇듯 복싱으로 성공하고자 했지만 제이크에게 KO를 당한 후 복싱에는 영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또 다른 취미에 매진해 음악가가 된다. 그게 누구냐면 바로 아스토르 피아졸라다. #
- 영화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지만 제이크 라모타의 자서전에 따르면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아동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이웃들과 돈을 걸고 아들을 다른 이웃의 아들과 싸움을 시켰다고 한다. 어쩌면 그가 링에서 절대 쓰러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어린 시절 이러한 기억들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 대부 2 촬영 중 드 니로가 분노의 주먹에 매료되어 지속적으로 스코세이지에게 감독직을 제안했으나 흥미가 없는 스코세이지는 지루한 스포츠 영화라 생각하고 거절했는데 스코세이지가 코카인 중독으로 인한 심각한 내부 출혈로 입원하게 되자 제이크 라모타와 자신의 인생이 자기파괴적인 면이 있다는걸 깨달았다. 병원에 입원한 스코세이지에게 드 니로는 딸이 자라는 걸 보고 싶은지, 영화를 계속 찍고 싶은지 진지한 대화를 나눴고 이때 스코세이지는 분노의 주먹이 자신의 생명을 살렸다고 말했다. 스코세이지는 이 영화가 자신의 마지막 영화라 생각해 감독에 임했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의 정점이라고 평했다. # #
- 알 파치노가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 중 가장 좋아하고 뛰어났던 연기라고 밝혔다.
[1]
영화에서는 비키의 나이와 둘이 만난 시기를 각색했다. 영화와 달리 실제 제이크와 비키는 1946년에 결혼했고 당시 비키는 16살이었다.
[2]
영화에서는 생략됐지만 둘의 첫 번째 대결은 1942년 10월에 했고 그때는 로빈슨이 이겼다.
[3]
실제 로빈슨은 제이크와의 세 번째 경기를 한 바로 다음 날인 1943년 2월 27일에 입대했다.
시대상을 감안하면 남의 입대는 얘기하면서 본인의 입대에 대해서는 말 안 하는 제이크가 이상해 보일 수 있는데, 어렸을 때 유양돌기염으로 수술을 받은 후 청력 이상으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4]
원래 이 영화는 흑백 영화지만, 대사 없이 영상으로만 비춰지는 비키와의 결혼 생활은 컬러로 나온다. 이 시기가 제이크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보여주는 영화적 장치이다.
[5]
제이크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안계 미국인이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실제로도 플레이보이적 기질을 보이면서 평상시 훈련을 등한시했지만, 그럼에도 당대 최고로 손꼽히는 선수들과 여러 차례 붙을 정도로 실력은 있었다.
[6]
그를 쓰러트리고 보란듯이 비키를 향해 웃는데, 비키는 정색한다.
[7]
실제 제이크는 이 승부 조작건과 관련돼 미 상원의회에 출석했는데, 당시 져주는 조건으로 마피아로부터 2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고 증언했다.
[8]
실제로는 경기 중 세르당의 팔이 탈구되면서 세르당 측이 경기를 포기해 제이크의 TKO승으로 경기가 끝났다. 부상으로 인한 TKO여서 재대결이 예정됐으나, 이 경기로부터 4개월 후 세르당은 연인 관계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오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9]
실제로도 제이크는 경기 내내 고전하다 마지막 15라운드 때 경기 종료 13초를 남겨두고 도튀를 KO시키며 역전승을 거뒀다. 복싱 전문 잡지 링(Ring)지는 이 경기를 1950년 올해의 경기로 선정했다. 참고로 제이크는 미들급 챔피언이 되기 전인 1949년에 도튀와 경기를 가졌는데 이때도 고전하면서 판정패했다.
[10]
이 와중에 제이크가 아무리 얻어맞아도 절대 쓰러지지 않고 경기가 끝난 후 You never got me down, Ray.라고 외치며 도발하는 장면이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도 제이크가 엄청난 맷집을 보여줬고 경기가 1951년 2월 14일에 있어서 당시 '복싱판 피의 발렌타인'이라고 회자될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경기 후 제이크의 도발은 영화의 창작으로, 실제 제이크는 로빈슨에 대해 존경하는 선수라고 말했다.
[11]
실제로 미들급 챔피언에서 내려온 후 제이크는 라이트헤비급으로 월장해 활동하다 은퇴했다.
[12]
벨트를 집에 방치해두고 온 것 때문에 헐레벌떡 비키와 애들이 있는 집으로 가는데, 애들 자는데 깨지 않게 한다는 조건으로 들어와놓고는 벨트를 찾자마자 그 자리에서 망치로 마구 두들겨 보석을 빼내려 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다. 화내는 비키에게 '그러니까 누가 접시를 여기 놔두라 했나'며 적반하장으로 화내는 건 덤. 어리석게도 벨트 전체를 팔았다면 큰 가치가 있었을 텐데 벨트에 달린 보석만 빼가느라 땡전 한 푼 받지 못 하고 금은방을 그대로 나온다.
[13]
비탄에 빠져 감옥 벽에다 화풀이하는 장면이 영화 역사상 최고의 연기 퍼포먼스 중에서 하나로 뽑힌다. 이후
마스터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같은 영화에서 오마주되었다.
[14]
말론 브란도가 맡은 테리 말로이의 대사로, 극중 친형 찰리를 향해 건달로 사는 자신의 신세를 후회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이런 처지로 만든 형을 원망하는 대사이다. 그 원인이 다르긴 하지만 제이크 역시 극중 테리와 마찬가지로
승부조작에 연루되기도 했고, 프로 복서에서 건달로 전락한 극중 테리의 신세가 화려한 삶을 산 복싱 챔피언에서 별볼일 없는 술집 코미디언 신세로 전락한 제이크와 비슷하기에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15]
각본가
폴 슈레이더가 평론가 시절
로베르 브레송의 미국 내 입지를 상승시켰다는걸 생각하면 재미있는 부분.
[16]
영화가 개봉하고 제이크 라모타는 시사회에서 같이 보던 비키 라모타에게 자신이 저렇게 나쁜 놈이었냐고 물었고, 비키는 이에 "더 심했어."라고 답했다. 또, 영화 개봉 이후
데이비드 레터맨의 토크쇼에 출연한 제이크 라모타는 레터맨이 영화에서 굉장히 나쁜 사람으로 그려지던데 사실이냐, 라고 묻자 말을 돌리며 갑자기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였다.
[17]
조이는 한동안 1991년에 향년 56세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위키백과에도 1991년에 사망했다고 기재되어 있었는데, 이후 2020년 경까지 살아있었던 노년의 조이의 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던 점 등이 확인되면서 사망연도가 수정되었다.
[18]
사실 영화에 이름은 안나오지만 동생말고 제이크 라모타의 매니저로 추정되는 인물이 계속 나오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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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한국 영화의 제목도 바로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