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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01:42:12

비주권군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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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체 및 정체의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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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主權君主制
Non-sovereign monarchy

1. 개요

군주이지만 주권자, 즉 국가원수는 아닌 경우를 뜻한다. 지방군주제(Subnational monarchy) 또는 구성군주제(Constituent monarchy)라고도 한다. 한 나라에서 국가원수 외에 또 다른 군주가 재위하였지만 국가원수의 자격을 가지지 않고 있으며 일단 왕권을 일부 쥐었다는 점에서 왕위 요구자와는 다르다. 물론, 왕위 요구자인 비주권 군주도 엄연히 있다. 명목상으로만 주장하는 작위를 제외하더라도, 비공식적으로 그 나라 정부로부터 군주 대접은 받지만, 일단 군주제 자체는 인정하지 않을 때, 비주권 군주가 그 나라 전체의 군주를 자칭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청나라 소조정 시기의 아이신기오로 푸이[1]나, 현대 몬테네그로 루마니아, 알바니아 왕실이 대표적이다.[2] 또한 군주나 왕으로 불리지 않더라도 족장, 백작, 영주, 기사단장 등 봉건적 지위를 가지고 별도의 영토를 거느리는 경우도 비주권군주제로 간주된다.

본국이 군주제인지 공화제인지는 상관이 없으며 대표적으로 독일 제국, 말레이시아 연방제 군주국의 지방 군주들이나 프랑스의 해외 영토인 왈리스 퓌튀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등이 이에 해당된다. 국가의 처우에 따라 어느정도 참정권 또는 자치권을 가지거나 명예직에 불과한 신세가 되기도한다. 간혹 뉴스나 다큐멘터리 등에서 분명히 국왕이 멀쩡히 있는데 혹은 분명히 대통령이 국가원수인 공화제인데 국가원수 외에 별도의 군주가 존재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비주권 군주가 나오는 이유는 전통적인 이유가 있거나 연방군주제이거나 또는 다민족국가에서 원래 자신들이 모셨던 군주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민족 갈등이 생겨 이에 대한 방안으로 생겨난 경우 등이 있다.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전환된 후 여전히 구 왕실에 대한 지지하는 여론이 있어 왕실을 폐지하기에 부담스러운 경우 일종의 예우 차원에서 정부와 별도로 분리하여 법적인 왕으로 유지하는 사례도 있다.

괴뢰국 군주의 경우는 명목상 주권은 있다는 점에서 엄연히 다르다. 입헌군주제와도 헷갈릴 수 있지만, 입헌군주제는 권리 권력 국민 정부에게 주어졌을 뿐, 주권은 명목상으로나마 여전히 군주에게 있다는 차이가 있다. 명확한 차이점은 군주가 내각수반 임명권, 의회 해산권, 법률 제정권 등의 국사행위를 (명목상으로라도) 수행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초소형국민체로서 본국의 비주권왕조를 선언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본국에서 인정한 것이 아니므로 포함되지 않는다.

2. 사례

2.1. 오늘날

2.1.1. 가나

아샨티 제국 가나 공화국의 행정구역 아샨티 주로 편입된 뒤에도 아샨티헤네(아샨티 군주)는 명목상 아샨티 주의 지방 군주로서 재위하고 있지만 행정수장은 아니며 정치서열상 주지사(Regional Minister, 직역하면 지방장관)가 더 높다. 이외 다그본 왕국의 군주였던 다그본 왕도 현재까지 세습되고 있다.

2.1.2.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는 공화국이지만 언어가 무려 525개나 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지역마다 부족별로 족장이 존재하며, 공식적인 정치적 권한은 없으나 여전히 많은 공동체에서 높은 존경을 받고 있으며 상당한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주정부가 자기 주 산하에 있는 기존 (藩)을 병합하거나 분할할 수 있다. 가령 2019년 카노 주는 카노 에미르국에서 비치, 카라예, 가야, 라노 에미르국을 분할시켜 5개로 쪼갰다.

2.1.3.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국명대로 공화국이지만 줄루족의 왕이 존재하며, 이 외에도 다른 부족의 왕이 존재한다. 로베두족의 여왕인 모자지가 유명.

2022년 1월 12일에는 코이산족의 왕이 남아공의 공용어에 코이산어를 포함해 달라면서, 대통령궁 앞에서 대마초를 재배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3명의 시위자들과 함께 체포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2.1.4. 뉴질랜드

뉴질랜드는 명목상 영국 국왕 뉴질랜드 국왕으로서 재위하는 영연방 왕국이다. 그러나 과거 유럽계 백인들과 마오리족의 오랜 충돌 과정에서 북섬 중부의 마오리 부족들을 중심으로 영국 국왕처럼 자신들의 군주를 모셔야 한다는 운동(Māori King Movement)이 일어났다. 그 결과 1858년에 와이카토족의 족장 포타타우가 첫 군주로 선출되었다. 마오리 왕은 뉴질랜드 정부에서 그 나름대로 존중을 받지만, 뉴질랜드 국왕과는 달리 뉴질랜드 내에서 어떠한 법적 지위가 없는 관습적인 직위이다.

마오리 왕이 서거하면 장례식장에서 부족장들이 새 왕을 선출하는 선거군주제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세습군주제다. 현 7대 왕 투헤이티아 파키(Tūheitia Paki)도 전 여왕의 아들이었다.
2.1.4.1. 쿡 제도
뉴질랜드의 속령인 쿡 제도는 아리키(Airiki)라 칭해지는 고위 추장들로 구성된 아리키 의회('Are Ariki)가 존재한다. 각 아리키들은 세습으로 계승하지만 아리키 의회의 의장은 이들을 후보로 선출하는 선거군주제다. 각 아리키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 뒤에 Ariki가 붙는다. 역대 아리키 의장 목록

2.1.5.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는 연방 입헌군주국으로서 9명의 지방 군주들이 있으며 차기 국왕 후보로 출마할 수 있는 선거군주제지만 실제로는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즉위한다. 행정구역으로 넓혀보면 느그리슴빌란 주에서도 본국과 똑같이 여러 군주들이 순번제로 제위하는 비주권군주제 내의 또다른 비주권군주제가 존재한다.

2.1.6. 몬테네그로

몬테네그로는 공화국으로 2011년 7월 12일 의회에서 왕실을 재건하고 공화국의 틀 안에서 제한된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법률을 통과시켰다.

2.1.7. 보츠와나

발렛족(Balete people)의 세습 지도자 직은 2023년 기준으로 여성인 뮤리엘(Muriel)[3]이 맡고 있다.

2.1.8. 소말리아

소말리아는 공화국으로 마제르테인 술탄국(Suldanadda Majeerteen)이 명목상 존속 중이며 현재 군주는 2014년 5월 24일에 재위한 부르한 보코르 무세(Burhan Boqor Muse)다.

2.1.9. 아랍에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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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자 라스 알카이마 움 알쿠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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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자이라 }}}}}}}}}


아랍에미리트는 연방제 전제군주국이다. 국가원수의 호칭이 대통령이고 5년 임기로 연방 최고 평의회에서 선출하여 공화국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연방 구성 국가인 토후국 별로 아미르라고 하는 지방 군주들이 존재하며 대통령도 이들 중에서 선출은 하지만 사실상 가장 큰 권력 가문인 아부다비의 왕가인 알나얀의 아미르가 선출되고 있다.

2.1.10. 영국

영국 왕실령 건지 섬의 부속 도서인 사크 섬에는 영국 국왕이 겸임하는 노르망디 공작이 임명하는 영주(Seigneur)가 존재한다.

2.1.11. 우간다

우간다는 공화국으로 여러 자치 왕국이 존재하지만, 해당 왕국의 군주는 상징에 불과한 입헌군주제다. 독재자 이디 아민에 의해 한때 폐지되었지만 1993년 복고됐다.

2.1.12.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공화국이고 각 주들은 선출직 주지사가 행정을 관장한다. 다만 욕야카르타의 경우 특별히 세습 술탄이 주지사직을 독점하는 것을 인정받아 실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 외에 지역의 상징적인 군주(주로 술탄)가 존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수마트라섬의 팔렘방 술탄, 자바섬 서부의 반텐 술탄, 자바섬 중부의 수라카르타 술탄, 파쿠알라만 공작, 망쿠네가란 공작, 보르네오섬의 폰티아나크 술탄 등이 있으나, 욕야카르타의 부지사직을 겸하는 파쿠알라만 공작을 제외하면 모두 상징적인 지위에 불과하다.

2.1.13. 프랑스령 왈리스 푸투나

프랑스 공화국이지만 해외 영토 왈리스 푸투나의 우베아, 알로, 시가베 이 3개의 왕국에서 각자의 군주를 옹립하고 있다. 그러나 세습제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 왕이 자주 바뀐다. 다만 프랑스 대통령 하에 임명되는 고위행정관이 왈리스 푸투나의 실질적인 행정을 담당하므로 이로 인한 문제는 없는 편이다.

2.1.14. 볼리비아

볼리비아 흑인 군주

2.1.15. 콩고민주공화국

나이지리아와 마찬가지로 인구가 많은 편이기에 부족별로 자치가 행해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콩고 왕자'로 알려진 욤비 토나도 본래는 자치 부족 중 키토나(Kitona) 부족의 왕자였다.[4]

2.1.16. 탄자니아

탄자니아는 공화국으로 키고마주 우지지 마을에 자치 술탄국인 우지지 음웨네 음본웨안 술탄국(Usultani wa kienembonwe wa Ujiji)이 존재하며 군주가 직접 자치권을 행하는 전제군주제다.

2.1.17. 트리니다드 토바고

산타로사 원주민 커뮤니티(Santa Rosa First Peoples Community)에서 선출하는 카리브족의 여왕(Carib Queen)은 1875년에 창설되었으나, 선거군주제 혹은 지명군주제이다.

2.1.18. 필리핀

필리핀은 공화국으로 여러 술탄들이 존재하며 이외에 라나오 지역의 각지 술탄들로 구성된 라나오 연방(Lanao confederates)이 존속 중이다. 라나오 연방에 속하는 각 술탄들은 세습군주제지만 연방의 수장은 해당 술탄들을 후보로 선출하는 선거군주제다.

2.2. 과거

2.2.1. 네팔 왕국

네팔 왕국은 내부에 여러 번국을 두고, 번국의 군주들이 비주권군주로 군림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2008년 네팔 군주제가 폐지되면서 네팔 왕국에 속한 번국들 역시 폐지되어, 번왕들은 모두 비주권군주도 아닌 작위 요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2.2.2. 누에바에스파냐

1521년 아즈텍 제국이 멸망한 후 그 영토는 스페인 식민지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이 되었지만, 스페인은 가톨릭으로 개종한 아즈텍 황족 후안 벨라스케스 틀라코친[5] 틀라토아니로 추대하여 비주권군주로 군림하게 했다.

이러한 체제는 1565년까지 지속되었으나, 이후에는 폐지하여 스페인의 일개 귀족으로 격하시켰고, 지금까지 아즈텍 황실의 후예는 '목테수마 데 툴텡고 공작'[6]이라는 스페인의 귀족으로 살고 있다.

2.2.3. 대영제국

2.2.3.1. 인도 제국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인도 번왕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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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동인도 회사 를 통해 간접 통치하던 영국령 인도 세포이 항쟁 이후 영국 정부 직할령으로 전환되었는데, 영국 국왕이 인도 황제를 겸하며 인도 전체의 군주 역할을 했고, 영국에 협력하는 대가로 제한적인 자치권을 인정받은 토착 군주들은 인도 황제의 제후로서 비주권군주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47년 인도 제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뉘어 독립하자, 인도 번왕국 가운데 인도에 속하게 된 번왕국들은 대부분 즉시 폐지되었고, 파키스탄에 속하게 된 번왕국들은 인도보다는 오랫동안 존속했지만, 1970년대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독립 당시에는 기존 번왕들에게 편입 대가로 내탕금 지급과 자지춴 보장같은 특권을 보장해주었지만 1970년대에 번왕국 왕족에 대한 특권을 철폐한것이다.

오늘날 인도 파키스탄들은 지역에 따라 처지가 다른데, 일부 지역에서는 공식적인 지위만 없을 뿐 지역 유지로서의 영향력은 계속 행사하는 번왕이 있는 반면, 번왕이 완전히 몰락하여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듣보 취급당하는 지역도 있다.
2.2.3.2. 남아라비아 연방
남예멘 일대에 위치했던 남아라비아 연방 영국 국왕이 연방 전체의 군주를 맡고, 구성국 군주들은 비주권군주로 군림하는 나라였는데, 영국이 철수하여 남예멘이 사회주의 국가로 독립하면서 폐지되어, 현지인 군주들은 모두 작위 요구자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2.2.4. 독일 제국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독일 제국/구성 제후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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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 해체 이후 분열 상태가 지속되던 독일어권 군주국들이 통합하여 결성된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이 단독으로 다른 구성국들을 압도하고, 제국 전체에 적용되는 헌법이 존재했으며, 대부분의 구성국 군대가 독일 제국군으로 통합되었기에 통일성이 매우 강했다.

따라서 말이 하나의 나라지 여러 독립국들의 집합에 불과했던 신성 로마 제국[7]이나 그 이후의 라인 동맹[8], 독일 연방[9], 북독일 연방[10] 시절과 달리, 독일 제국에서는 황제가 곧 명실상부한 독일 전체의 주권자이며, 개별 구성국들의 군주 지역 유지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독일 11월 혁명으로 인해 독일 황제 뿐 아니라 구성국 군주들도 모두 폐위되어, 작위 요구자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2.2.5. 아일랜드

6세기부터 도니골 주 토라 섬[11]에서 선거군주인 토라 왕(Rí Thoraí)이 존재했으나 1993년부터 재위했던 패치 댄 로저스(Patsy Dan Rodgers)가 2018년에 서거한 뒤 현재까지 후계자가 나오지않아 공석이 된 채 사실상 폐지된 상태다. #

2.2.6. 이탈리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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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이탈리아 왕국군 로마에 진주하면서 교황령은 공식적으로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고 이탈리아 통일이 완수되었다.

이탈리아 왕국 치하에서 교황 바티칸에서 제한적인 자치권을 행사하긴 했으나 국제 사회에서 외교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주권군주에 불과했고, 통일 당시의 교황인 비오 9세[12]와 그 이후의 교황들은 스스로를 바티칸 포로라 칭하며 이탈리아 정부와의 대화를 거부했다.

검은 귀족이라 불리는 로마의 전통 귀족들과 상당수의 가톨릭 성직자들 역시 이에 동조하여 역사적 극우파[13]라는 파벌을 이루어 이탈리아 왕국에 저항했기에, 이탈리아 왕국과 교황청의 험악한 관계가 장기간 지속되었는데,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체결하여 바티칸 시국을 수립한다는 타협이 이루어지면서, 교황은 비주권군주에서 벗어나 다시 주권국가의 군주가 되었다.

2.2.7. 일본 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류큐[14] 1872년에 정식 영토로 합병하여 류큐 번으로 강등하는 제1차 류큐 처분을 감행했다.

이후 류큐 국왕이었던 쇼타이는 류큐 번왕이라는, 후대의 왕공족과 유사하게 화족보다 지위가 높은 비주권군주로서의 지위는 인정받았으나, 1879년에 제2차 류큐 처분이 일어나 오키나와현이 설치되면서 도쿄로 압송되어 후작으로 강등되었고, 이로써 비주권군주 지위마저 잃고 일본의 일개 귀족으로 전락했다.

일본의 비주권군주는 상술한 류큐 번왕이 유일하다. 1910년 합병 대한제국은 류큐와는 비교도 안 되는 오랜 독립국으로서의 역사와 광대한 영토,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였기에, 대한제국 황제에게 이왕 칭호를 수여한 것을 비롯하여 황족들에게 왕공족 지위를 부여하긴 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황족 다음으로 높은 특수한 지위로 대우했을 뿐, 비주권군주제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일제의 이왕은 특정 영토를 영지로 받지도 않았고, 특정 지역민들이 군주로서 섬겨야 할 대상으로 지정되지도 않았다.[15] 청나라 소조정처럼 외국의 군주 취급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만약 비주권군주로 취급하려 했다면 상술한 류큐 번왕과 같이 조선왕 또는 조선 번왕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한편 일제가 만든 왕공족과는 별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제정한 헌장에는 구 황실의 우대를 명시한 조항이 있었다. 이는 1910년대까지는 남아있던 복벽파의 영향이다. 그 영향력이 크지 않다보니 대한제국으로의 회귀가 아닌, 공화정 체제 하에서 구 황실에 대한 우대만 인정받았다.

복벽파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이유에는 구 황족들 본인들의 태도가 원인이 되었다. 아직 복벽파의 영향력이 있던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고종 의친왕 등 황족의 해외 망명 시도가 있었다. 아직 황실에 대한 민중의 지지가 남아 있던 시기라 망명에 성공한다면 독립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일제의 저지로 실패했다. 이후 고종이 사망한 후에는 대한제국 황실 독립운동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일제가 부여한 왕공족 신분에 안주했다.

구 황족의 태도에 민중들은 회의감을 느꼈으며, 이는 해방 이후에는 계급투쟁을 추구하는 좌익은 물론이고 중도파 우익마저 대다수가 공화정을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 이승만 정부는 황실을 전혀 대접하지 않고 오히려 냉대했다.[16] 일절 지원을 하지않다보니 국내에 남은 황족 의친왕은 영양실조로 죽었고, 영친왕 덕혜옹주의 귀국를 불허하여 일본에서 궁핍한 생활을 지낸다. 결국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승인하면서 환국할 수 있었지만 그나마도 영친왕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서 돌아왔다. 덕혜옹주는 조현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대한제국 황실 복원론은 이렇다할 정치적인 담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인들도 복벽파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거나, 가끔 언론에 보도될 때 가십거리로 치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2.2.8. 중화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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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중국 최초의 공화국 중화민국이 건국되면서 청나라는 멸망했다. 중화민국 임시정부는 청을 상대로 군사적 승리를 거둔 게 아니라, 청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북양대신 위안스카이와의 협상을 통해 민국을 수립했기에, 청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 외국의 군주로 우대하여 자금성 내에서 황제 노릇을 계속하게 하는 합의를 해야 했다.

이와 같은 청 황실에 대한 민국 정부의 우대는 위안스카이의 칭제 시도 복벽파의 일시적인 제정복고 쿠데타 등의 사건사고를 겪으면서도 지속되었지만, 1924년 북경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공화파 군벌 펑위샹에 의해 선통제가 자금성에서 축출당하면서 폐지되었다.

이후 선통제는 일본 관동군 협력하여 만주국이라는 괴뢰국 황제가 되는 실책을 저질렀고, 비록 처형은 면했다고 하지만 완전한 민간인으로 강등되어 비주권군주제의 형식으로나마 제정복고가 실현될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졌다.

2.2.9. 튀르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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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킨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정치적 권위를 가진 황제는 폐지했으나, 이슬람 세계 전체의 수장이라는 종교적 권위를 가진 칼리파는 존치했다.

그래서 마지막 황제 메흐메트 6세의 사촌동생이자 후계자였던 압뒬메지트 2세가 칼리파로 즉위하여 튀르키예 공화국 정부와 공존하며 비주권군주 역할을 했다.[17]

그러나 튀르키예의 집권여당인 공화인민당 내에서 급진적인 정교분리를 추구하는 강경 세속주의 세력은 아무리 정치적 권한을 박탈당했다지만 칼리파제를 유지하는 것 자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여, 칼리파에게 공화국 정부가 지급하는 예산 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문제 삼았고, 해외 이슬람 단체들이 칼리파에게 충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튀르키예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까지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1924년 튀르키예 대국민의회에서 칼리파제 폐지를 공식적으로 의결함으로써, 튀르키예의 비주권군주제는 짧은 존속기간을 마감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압뒬메지트 2세는 프랑스 망명하여 1944년 파리에서 사망했고, 오스만 황족들에 대한 추방령은 아타튀르크가 사망하고 36년이 지난 1974년에 해제되었는데, 영구귀국은 2004년이 되어서야 이뤄졌다.

2.2.10.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프랑스 식민제국 치하의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베트남[18], 라오스, 캄보디아의 현지인 군주들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비주권군주로 군림하게 하고, 실권은 프랑스 정부가 파견한 총독이 행사하는 체제가 유지되었다.

이러한 체제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점령한 후에도 일본 제국 비시 프랑스의 암묵적 합의를 통해 유지되다가, 2차 대전 말기에 일본군이 총독을 비롯한 현지 프랑스인들을 감금하고 베트남 제국을 비롯한 여러 괴뢰국을 수립하면서 해체되었다.

종전 이후 인도차이나 연방의 식민지가 각자 독립함에 따라 각국 군주들의 운명 역시 갈렸다. 베트남 황제 바오다이 남부에서 프랑스의 괴뢰 군주 노릇을 하다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패한 프랑스군이 철군하자 응오딘지엠에 의해 폐위되어 망명하고, 라오스 국왕은 독립국 군주가 되었으나 공산 반군과의 내전에서 패하여 왕정이 폐지되었다. 반면, 캄보디아 국왕은 비록 왕정이 폐지된 이후 여러 우려곡절을 겪었으나 현재는 왕정복고되어 자국의 군주로 군림하고 있다.

2.2.11. 피지

피지 공화국 성립 이후에는 이전까지 피지 대추장을 겸임했던 영국 국왕을 피지의 비주권 군주로 유지하다 2012년에 추장 대평의회가 폐지되면서 피지 대추장 직위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3. 애매한 경우

현대 일본의 천황은 많은 내외국인들 사이에서 일본의 군주로 여겨지지만 정작 일본국 헌법에는 천황을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만 규정하고 있으며 그 어디에도 국가원수라는 조항이 없고 주권이 일본 국민들에게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 점만 본다면 천황을 주권자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법률 공포와 내각총리대신 임명, 중의원 해산 등 여러 국사행위가 (비록 형식상이지만) 천황의 명의로 행해지기 때문에,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다른 군주와의 차이점은 이러한 국사행위를 명목으로라도 자의적으로 수행할 수 없도록 헌법에 명시해뒀다는 점이다. 모든 국사행위는 내각의 조언에 따라 이루어지며 그 책임도 내각이 진다는 규정이 있는데 책임을 지는 쪽이 권한도 갖고 있기 때문.

19세기 미국에서는 노턴 1세라고 황제를 자칭한 인물이 있었고 그가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게 황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민간 차원에서의 존중일 뿐 공식적으로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비주권군주제의 사례라고 볼 수는 없다.


[1] 이 당시 중국 대륙의 지배자는 중화민국 정부였다. 더더욱 실질적으로는 지방 군벌들이었지만... [2] 여담으로 정부로부터도 인정을 받은 동유럽 국가의 왕실들이 아직까지도 비주권 군주정인 이유는 경제가 어려워 왕정복고 문제를 후 순위로 미뤘기 때문이다. [3] 뮤리엘은 영어 이름이고 츠와나어 이름은 'Mosadi Seboko'이다. [4] 한국으로 망명 뒤에는 그의 형이 부족장으로 재위하고 있다고 한다. [5] 원래 이름은 틀라코친이었으나,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스페인의 협력자가 되면서 후안 벨라스케스라는 스페인식 이름까지 갖게 되었다. [6] 1627년부터 1639년까지는 목테수마 백작, 1639년부터 1865년까지는 목테수마 데 툴텡고 백작이었고, 1865년에 이사벨 2세 여왕에 의해 공작으로 승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7] 처음부터 이렇게 따로 놀던 건 아니지만, (법적으로는 선출직이었던) 제위를 독점하던 합스부르크 가문 30년 전쟁에서 패하여 제후들이 사실상 독립국 군주가 되면서, 말기에는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닌 나라가 되고 말았다. [8] 프랑스 제1제국 위성국 집합에 불과했기에,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이 실패하자 급속도로 결속력이 약해져서 해체되었다. [9] 이름과는 달리 하나의 연방국가가 아닌 여러 독립국들의 집합에 불과했고, 의장국인 오스트리아 제국이 2인자인 프로이센 왕국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연방에서 축출되면서 해체되었다. [10] 프로이센 왕국이 단독으로 다른 구성국들을 압도했기에 독일 연방에 비하면 결속력이 강했으나, 아직 완전한 연방국가라기 보다는 국가연합에서 연방국가로 발전하는 과도기에 가까웠다. [11] 영어 명칭은 토리 섬(Tory Island) [12]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총리 카밀로 카보우르 파문하기까지 했는데, 국왕에 대한 파문은 당사자가 죽기 직전에 철회하긴 했다. [13] 정작 해당 파벌이 정식으로 결집하여 창당한 이탈리아 인민당과 그 후신인 기독교민주당 이탈리아 정계에서 중도 포지션을 차지하게 되었다. [14] 공식적으로는 독립국이지만 에도 시대부터 사쓰마 번의 간접 지배를 받는 사실상 속국이었다. [15] 조선, 구 대한제국의 국민들 중에는 여전히 이들을 섬긴 이들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이들이 왕공족이기 때문에 섬긴 게 아니라 구 대한제국의 황족이었기 때문에 섬겼을 것이다. [16] 다만 이승만의 구 황실에 대한 냉대는 황실에 대한 반감도 있었지만 대통령이된 자신의 지위를 황족이 위협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17] 바티칸 유수 시기 교황과 비슷한 위치다. [18] 북부( 통킹)과 중부( 안남) 한정이며, 남부( 코친차이나)는 프랑스의 직할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