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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23:03:52

두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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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자이라 }}}}}}}}}

두바이 아미르국
إمارة دبيّ
파일:두바이 시기.svg 파일:두바이 국장.svg
국기 국장
역사
1833년 6월 9일 건국
1892년 영국과의 보호국 조약 채결
1971년 12월 2일 영국으로부터 독립 및 토후국 연합 가입
수도 두바이
정치체제 전제군주제
국가원수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현 아미르)
언어 아랍어
면적 4,114 km²
두바이 (아랍에미리트)
파일:두바이 로고.svg
국가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인구 약 355만 명[1]
면적 4,144 km²
시간대 UTC+4
서울에서 10시간[2]
한국과의 시차 -5시간
두바이
두바이 토후국

1. 개요2. 성장사
2.1. 개발 이전2.2. 태동2.3. 위기2.4. 부활
3. 문제점
3.1. 거품경제3.2. 환경 파괴3.3. 성매매3.4. 빈부격차3.5. 샤리아
4. 지역
4.1. 제벨 알리4.2. 주메이라4.3. 데이라
5. 관광6. 교통7. 여담8.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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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두바이 로고.svg
파일:두바이 시기.svg
두바이 토후국의 국기
파일:K5xLbJL.jpg 파일:Pojd7Jmr.jpg
주메이라 레이크 타워스 (JLT) 다운타운 (비즈니스 베이)[3]
파일:external/ppcdn.500px.org/2048.jpg 파일:dubai-skyline-at-dusk-jpg_header-144981.jpg
파일:Dubai-e1434096715956.jpg
마리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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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 Dubai.
두바이를 방문하세요.
You say that money can't buy happiness? Habibi[5], come to Dubai.[6]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그대, 두바이로 오세요.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의 토후국 중 하나이자 아랍에미리트의 최대도시.

21세기 들어 급속한 발전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도시답지 않게 인구가 350만 정도로 적어 보이지만, 두바이 동북쪽에 위치한 인구 180만의 샤르자와 인구 50만 가량인 아지만과의 도시연담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제 도시권 인구는 580만에 육박하여 아랍에미리트 인구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인구가 집중되어있다. 하지만 전철이나 노면전차는 쥬메이라, 데이라 지역에 국한되어 있어 샤르자와 아지만으로 연장되지 않아 두바이에서 샤르자-아지만 지역 간의 이동은 절대다수가 버스와 자가용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라이벌이자 국내 두 번째 규모의 도시인 아부다비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드넓은 사막을 건너 대략 1시간 반 정도 주행해야 아부다비가 나타난다.

기후는 다습한 사막기후[7]라서 겨울철[8]에는 그나마 버틸 만하지만 여름철에는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의 날씨다. 5월부터 밤중 온도가 30도를 넘나들고, 6월부터 낮 평균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어메이징한 도시이다. 설상가상으로 바닷가에 인접한 탓에 습도 또한 엄청나게 높다. 사람들이 밀집되어 사는 해안 지역의 경우 습도가 보통 60%~80% 안팎이다. 이러한 살인적인 더위 탓에 시내의 모든 아파트 단지에는 수영장 건설 의무를 법제화했고, 에미레이츠 몰, 마리나 몰 등 빵빵한 냉방으로 중무장 한 온갖 몰들이 시내에 즐비하게 건설되어 있다. 어찌나 더웠는지 엄청난 자본을 이용하여 에미레이츠 몰[9] 내부에 크고 아름다운 스키장을 때려 박아놓았다. 뿐만 아니라 버스 정류장도 캡슐식으로 만들어 내부에 에어컨이 나오는 등, 살인적인 더위를 견디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놨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도시답게 비는 1년에 정말 1주일 정도 이슬비가 내릴까 말까 한 수준이다.

아랍에미리트 자체는 최고라고 손꼽히는 산유국이지만 사실 그 석유는 아랍에미리트의 다른 토후국인 아부다비에서만 나오고 두바이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원래 두바이의 특산품은 대추야자와 양식 진주로, 최근처럼 뜨기 전에는 가난한 어촌 취급을 받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두바이는 대신 부동산 산업과 투자 산업으로 발전하는 계획을 세웠으며 21세기 초에 엄청난 개발을 시작하여, 한때는 경제 규모가 아부다비를 능가하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 단기간에 급격한 발전과 개발을 해서 그런지 어딘가 많이 텅 빈 느낌은 지금도 강하다. 물론 지금도 개발 중이며 2000년대 이후로는 대중교통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시내에 트램, 모노레일을 모두 포함해 4개의 노선이 운영 중이다. 그러나 대중교통 노선 구획이 시내를 주로 연결하다 보니, 교외 지역이나 주거 지역으로 출퇴근 하는 인구는 여전히 자가용을 선호하는 비율이 높은지라 여느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출퇴근 시간에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는 건 마찬가지이다. 수두룩 빽빽한 높은 건물이 즐비한 두바이 심장부를 가로 지르는 셰이크 자예드 로드는 출퇴근 시간에 엄청난 교통체증을 경험할 수 있다.

2008년경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휘청인 탓에 개발 열기가 상당히 수그러들게 되고 건설, 도시 계획에서 상대적으로 더 부유한 아부다비의 눈치를 많이 보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전보다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중동에서 가장 교통과 인프라가 우수하며 지구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수한 지리적 위치를 선점한 덕에 현재진행형으로 중동 지역의 종주 도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 성장사

파일:jumeirah-archaelogical-site.jpg
주메이라의 중세 도시 유적과 부르즈 칼리파. 두바이의 과거와 현재를 극명히 대비시킨다.
파일:2560px-UAE_Dubai_Al_Fahidi_Fort_img1_asv2018-01.jpg
두바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알 파히디 성채

2.1. 개발 이전

하단의 관광 문단에 나오듯 두바이 일대는 청동기 시대에 주거지가 있었고, 중세 압바스 왕조기에도 주메이라에 (한국의 원 정도에 해당하는) 역참 도시가 세워지기도 했다. 석유가 나기 이전 걸프 해안 어민들의 주요 수입원은 진주였고, 1590년 베네치아의 진주 상인 가스파로 발비는 두바이 (디베이)의 진주가 유명하다는 기록을 남겼다. 다만 근대 들어서는 작은 어촌 정도로 유지되고 있었고, 18세기 기준 아부다비의 알 나흐얀 왕가와 마찬가지로 바니 야스 연맹에 속하는 아부 팔라사 가문이 두바이를 통치했다. 1787년 그 궁전인 알 파하디 성채가 세워졌고, 1799년 서방측 기록에 아부다비 토후국의 속령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1820년 1월, 영국과의 트루셜 스테이트 협정 조인에 있어 두바이의 셰이크 (토후)는 아부다비와 따로 서명했다. 이는 두바이가 영국에게서 독자적인 정치체로 인정되었다는 것을 뚯한다. 그러던 1833년, 아부다비에 거주하던 800여 바니 야스 연맹 소속 베두인들이 두바이 해안으로 이주하여 친척이기도 한 아부 팔라사 가문을 대체하는 통치 세력이 되었다. 그중 셰이크 막툼 빈 부티와 오베이드 빈 사이드가 공동으로 통치했는데, 1836년 연로한 후자가 사망한 후 막툼이 집권하여 현재까지 이어지는 알 막툼 왕가를 창설했다. 1841년 천연두의 창궐로 주민들은 현 두바이 크릭인 와디 건너편으로 이주했고, 이것이 현 데이라이다.

1894년 데이라에 대화재가 나서 기존 시가지 대부분이 전소했으나, 곧 재건되었고 셰이크 막툼은 안보 확보를 위하여 영국의 보호령이 됨과 함께 외국 상인들에 대한 전면적인 면세 정책을 통해 도시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20세기 들어 두바이는 걸프에 진입하는 영국 선박들의 주요 기착지 중 하나가 되었고, 주민의 1/4 가량은 외국인이었다. 두바이 상인들은 페르시아만 건너편 이란의 링가 ( 반다르렝게)와 꾸준히 교류했고, 그 지명인 바스타크를 차용해 구도심의 북부를 바스타키야라 명명했다. 1912년 즉위한 셰이크 사이드 빈 막툼은 1929년 대공황과 인공 진주 생산으로 지역 경제가 위기에 처하자, 무관세 항구를 최대한 이용해 중개 무역에 나섰다. 다만 이는 임시 방편에 불과하여 1938년 민중 봉기가 벌어져 5개월간 상인들의 공화정 (코뮌)이 세워지는[10] 등 20세기 중반은 두바이의 암흑기였다.[11]

1940년대에는 아부다비와의 국경 분쟁이 무력 충돌로 번졌고, 1949년 영국의 중재 하에 라스 하사인 해안에서 시작하는 완충 지대가 설정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양측의 경계는 아랍에미리트 연방 성립 후에도 계속 분쟁이 벌어지다갸 1979년에야 합의가 이루어진다.[12] 1959년 셰이크 사이드 사후, 아들 셰이크 라시드가 집권했다. 그는 1963년 두바이 크릭의 준설을 통해 대형 선박의 출입을 용이하게 하려 했고, 이를 위해 한해 예산을 초과하는 돈을 빌리는 도박을 했다. 대범한 투자는 성공하여 두바이는 금 중개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되었고, 현재까지 두바이의 금시장은 아랍 전역에서 알아주는 명성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침체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던 두바이의 운명은 1966년 석유의 발견과 함께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트루셜 스테이트의 가장 좋은 항구였던 두바이는 1969년을 시작으로 아부다비 등지에서 발견된 석유를 세계 각지로 수출하는 거점이 되었다. 이미 1968년에 걸프 국가들에게 독립을 약속했던 영국은 1971년, 눈물을 머금고 물러났다. 뒤이은 아랍에미리트 건국 후, 알 나흐얀 왕가가 대통령직을 사실상 독점하는 대가로 2인자 위치인 알 막툼 왕가는 부통령 및 국방부 장관직을 독점하게 되었다. 두바이가 아부다비 다음가는 영향력을 가지고 함께 UAE의 실권을 나눠갖게 된 것은, 두바이의 영토가 2번째로 컸던 것 외에도 경제의 근간인 석유의 수출이 두바이를 통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즉, 아부다비가 아무리 많이 석유를 생산해도 두바이가 수출하지 않으면 그만이었기에 사실상 아부다비의 목줄을 잡고 있는 샘이었다. 두바이는 40석의 의회 의석 중 8석을 차지하고, 라스 알카이마와 함께 아부다비 외에 독자적인 사법권을 유지한 유이한 토후국이다. 1979년에는 향후 두바이의 경제 중심지로 발돋움할 제벨 알리 경제 자유 구역이 설정되었다.

2.2. 태동



두바이의 이러한 엄청난 성장은 아랍계 자본과 서방 자본간에 안전한 접점 지대를 찾고자 하는 양측 자본 세력의 이해가 일치했으며, 이에 따라 돈이 돈을 낳는 인프라 과열 투자가 일어나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한 결과로 엄청난 고속 성장을 보고 세계 각국에서는 유사한 사업 모델을 추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속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당시 2006년 두바이에서 열린 동포, 경제인 간담회에서 "두바이 와서 충격을 받았다", "지금 이곳에서는 한강의 기적보다도 더 놀라운 기적이 진행되고 있다", "두바이는 활력이 넘치고 있다"라며 두바이의 '기적'에 대해 극찬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도자의 상상력과 리더십”을 들어 두바이의 성공에 찬사를 보내며,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에 데이비드 엘든 두바이국제금융센터 회장을 임명한 바가 있다. 두바이의 '기적'에 대해 한국언론은 보수진보의 구분이 없었다. 2006년과 2007년에는 한겨레, 중앙, 동아, 한국일보 등이 두바이의 '기적'을 취재하고 찬사를 보내는 기획물을 쏟아냈을 지경이다.

2.3. 위기

두바이의 지나친 팽창은 이미 수많은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거품 붕괴의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었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전세계를 휩쓸자 두바이의 발전을 지속시켜 오던 자금줄이 마르게 되어 순수하게 외부 자금에 의존해오던 두바이의 발전은 급속한 둔화를 겪게 되었다. 결국 2009년 11월 26일 우려대로 두바이 국영 기업인 두바이 월드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해 버렸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두바이를 본받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한때 거의 도시 전체가 커다란 폐건물이나 다름없어지고, 부르즈 할리파도 거의 개점 휴업 상태였다. 메르스의 위험이 큰 국가라는 점도 한몫했다.

또한 중동의 허브라는 컨셉을 가장 먼저 선점해버려 아니꼽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발전상의 뒤만 졸졸 따르던 아부다비로서는 이 참에 두바이를 제대로 손봐주려는 눈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부르즈 두바이도 아부다비 자본에 팔려 이름도 부르즈 할리파가 되었으며 두바이 국영 항공사인 에미레이트 항공을 넘기라는 조건부터 시작하여 심지어 경찰권[13]을 요구했다는 이야기까지 현지에서는 돌고 있다.

지금의 두바이를 보면 비록 마천루들이 즐비해도 여기저기가 텅텅 빈 듯한 좀 어색한 느낌을 피할 수 없는데, 기본적으로 두바이는 일부 지역에만 마천루를 집중해서 건설하고, 그 외의 지역엔 상대적으로 저층으로 개발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그나마 예정된 프로젝트들이 경제위기 등을 거치면서 상당수가 보류되거나 폐기된 바 있다. 그리고 실제나 지도로 보았을 때는 건물이 밀집된 곳도 군데군데 텅 빈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비즈니스 베이 지역에서 확실하게 볼 수 있다. 그나마 최근 개발로 채워지고는 있다.

우리나라의 건설업체들은 이미 두바이의 상태를 파악하고 두바이 월드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기 전에 이미 거의 다 빠져나가서 피해는 별로 없다고 한다.

2.4. 부활

파일:부르즈 칼리파 두바이.jpg

파일:두바이 스카이.jpg

파일:두바이 5.jpg
두바이 금융가 전경

그러나 세계 경제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된 후에는 다시 활발한 경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구와 동북아시아의 글로벌 기업들이 가장 주목하는 시장이 중동과 남미인데 두바이가 지정학적 위치 및 정부 정책상 중동 비즈니스의 베이스 캠프로 가장 적당하기 때문이다.

당장 지도를 펴고 중동 지역을 들여다 보면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 적합한 베이스 캠프가 마땅치 않다. 중동 비즈니스의 핵심은 서아시아 아랍계 국가이므로, 북아프리카 국가 및 비아랍계인 튀르키예· 이란· 이스라엘은 각국의 상황을 차치해도 메리트가 적어 탈락.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아직은 와하브파의 본산인 이슬람 파티 국가라 샤리아를 위시한 각종 규제로 도배되어 있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며, 쿠웨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요르단의 경우 각지에 분포한 문화 유적들이[14] 개발에 발목을 잡는 데다 지리적으로도 외항이 아카바밖에 없어 아무래도 불편하다. 레바논[15], 이라크, 시리아, 예멘은 뭐...

그렇다면 남은 후보는 기껏해야 오만, 카타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정도다. 여기서 오만의 경우 이 부분에 관심이 없다 보니 인프라가 형편없다. 그나마 이에 관심 있는 카타르와 바레인이 돈을 쏟아 부으며 마천루를 마구마구 세우고 있기는 하나 아직은 인프라가 한참 뒤처진다.

결국 기업들이 베이스를 잡을 만한 도시는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내지는 아부다비 말고는 없다.

그러나 두바이로서는 같은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다른 토후국은 물론 카타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외국들마저 경쟁 상대인 게 버겁다. 우선 상기한 바와 같이 두바이의 뒤를 쫓아다니던 아부다비가 이 기회에 막강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두바이의 위치를 위협하고 있으며 두바이 공항의 개축에 맞서 제주공항만 하던 아부다비 공항을 대대적으로 개축하려고 하고 있으며 양 도시의 대결이 볼만할 듯. 아부다비도 공항이 작아서 그렇지 기후나 인프라 등 여러 면에서 나은 점도 많다. 거기에 두바이는 상당 부분 아부다비에게 부채를 지고 있고, 아부다비보다 면적이 좁아[16], 성장에 제약이 걸려 있는 리스크가 있다. 또한 푸자이라가 호르무즈 해협을 앞에 두고 있는 점을 이용하여 아부다비의 석유 파이프 라인을 2012년 30억 달러를 들여 아부다비와 합작으로 만들었는데, 이로 인해 두바이 등 여타 토후국은 항만 시설 이용에 타격이 갔지만 아부다비로서는 이 파이프 라인 제작에 많이 투자를 하여 다른 항만 시설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이런 기세에 힘입어 푸자이라에서 두바이를 제칠 것을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해외로 눈을 돌리면 사우디아라비아가 2018년 이후로 실세가 된 빈 살만 왕세자의 주도로 각종 개혁 정책을 펼치면서 해외 투자자를 끌여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다가 2024년 이후부터 사우디에 중동 지역 본부나 지부를 두지 않은 기업은 사우디에서의 거래를 할 수 없도록 제도도 손보고 있는 실정이라 두바이의 미래를 마냥 장밋빛으로 볼 수 없다.

2013년에 두바이 경찰청에서 신규 경찰차를 도입했는데, 그 차종들이 BMW M6 그란 쿠페, 메르세데스-벤츠 SLS AMG, 페라리 FF,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애스턴 마틴 One-77, 포르쉐 918 스파이더, BMW i8, 맥라렌 MP4-12C, 닛산 GT-R, 벤틀리 컨티넨탈 GT, 셸비 머스탱 로쉬 에디션, 아우디 R8, 메르세데스-벤츠 브라부스 G700뿐만 아니라 초기형 부가티 베이론 16.4까지 있는 어마어마한 컬렉션이며 인터넷상에 떠도는 이미지로는 람보르기니 에고이스타, 코닉세그 원, 부가티 시론에 두바이 경찰차 랩핑을 한 일종의 팬아트도 있다. 이에 대해, 외신에선 숨통이 트인 두바이가 그것을 과시하기 위해 벌인 대외 선전용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슈퍼폴리스카로 시속 300km/h 이상으로 달리는 속도위반 슈퍼카를[17] 82건이나 단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에 2020 두바이 엑스포 유치에 성공했다. 이로써 두바이는 중동 지역에서 최초로 엑스포를 개최하게 되었으며 등록엑스포[18]로 유치했기 때문에 두바이의 특성상 스케일도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추가로 8년 안으로 중동 지역 최초로 올림픽[19] 개최에 도전하겠다고 뜻을 밝혔었지만, 지금은 큰 관심을 두지는 않고 있다.

2020 두바이 엑스포규모가 무제한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두바이 도시 전체를 엑스포장으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두바이 도시 전체를 싹쓸이 재개발하고 있으며, 바다를 메워 새로운 인공 섬을 만드는 등 그야말로 돈 파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공식 개최 비용만 약 12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코로나 19때문에 2021년으로 연기되었다. 이후 엑스포 자체는 무난하게 잘 마무리지었으나, 엑스포 기간 중 선보이기로 했던 수 많은 최신 건축물들이 완공은 커녕 제대로 공사가 진행되지 않아 방문객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3. 문제점

3.1. 거품경제

두바이의 급속한 경제적 발전은 두바이의 지정학적 위치, 친 서구적인 개방적 정책 및 세계 경기의 호황에 따른 부동산, 금융 거품에 힘입었을 뿐 내실이 없다는 비판이 많았다. 특히 2차 산업의 발전 없이 돈의 흐름에 올라타 이득을 취하려는 정책은 경기 변동에 취약하며 부동산 가격은 거품이 많이 끼어 있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결국 그러한 우려는 세계 경기의 하강과 함께 현실이 되었다.

3.2. 환경 파괴

위의 인공 섬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위에서 줄곧 설명한 대로 원래 두바이는 순 모래밖에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자연적으로 이렇게까지 큰 도시가 형성될 만한 곳은 아니라는 것. 그런데 석유가 터져나와 오일머니가 쏟아지면서 두바이의 운명이 바뀌어버렸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사막에 나무를 심고 도시를 짓고 인공 섬까지 만들다 보니 환경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해 아부다비의 환경 중시 개발의 반면 교사 역할을 했다. 페르시아 만 서쪽의 해양 생태계 전체가 개박살이 났다는 말까지 나온 정도. 특히 산호의 경우는 씨가 말랐고, 거북 등의 연안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파괴도 심각한 수준이다.

건조 지역이다 보니 2020년대 들어 오일머니로 인공 강우를 추진했는데, 이로써 대기 순환이 불안해지며 2023년부터 폭우가 자주 내리고 있다. 2024년 4월에도 2년치 비가 하루새 내려 공항과 시가지 대부분이 침수되는 피해를 겪었다.

3.3. 성매매



도시화에 따르는 범죄 발생도 심각한 수준. 특히 중남미, 러시아, 중국, 동유럽, 동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수많은 매춘부들이 물밀듯이 몰려왔고 이들과 함께 범죄 집단 역시 유입되었다. 각국에서 몰려온 범죄 집단들이 고객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의 사업을 더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문제는 성착취 성매매 여성들의 학대, 여권 뺏고 강제 성매매 등을 시키는 경우가 빈번하며 다른 아랍 국가들이 그렇듯 부패한 경찰들도 많아 적발도 제대로 안 하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인신매매를 통해 들어온 미성년자 매춘이 꽤 심각한 수준이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보수적인 타 아랍 국가들의 빡빡한 유흥 규제에 질린 사람들이나, 자국에서는 철저히 금지된 아동 성매매에 대해 유혹을 느낀 서방 출신들이 많이 몰려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 국무부 보고서에서도 두바이의 인신매매에 대해서 심각하고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며 신나게 까고, 두바이 법제상으로도 불법이지만 정작 두바이 쪽은 적극적인 범죄단속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2021년 마리나의 빌딩 발코니에서는 러시아 모델 40명이 포르노를 찍다가 적발되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3.4. 빈부격차

고속 성장을 이룬 국가들이 대개 그렇듯 두바이의 성장 이면에도 당연히 빈부격차의 그림자가 짙다. 현재 거주자 가운데 아랍에미리트 국적자는 인구의 1/8 정도밖에 안 되며, 약 60% 가량은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문제는 이들은 평등하게 지내지 못하며, 상상 이상으로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

내·외국인의 임금 격차가 커서 인도 등의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은 한 달에 1000디르함(한화 약 30만 원)만 받고 일하기도 한다. 이 덕분에 인건비는 싸며 이 인력이 아직 두바이에 남아 있는 하인 문화를 지탱한다. 하인 문화란 잡다한 일을 아랫 사람에게 시키는 것으로, 예를 들면 푸드 코트에 식기 반납대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일어서면 직원이 알아서 치워준다. 더운 기후 탓에 걸어다니는 사람이 적어 쓰레기통이 없는 거리가 많은데 이럴 때 쓰레기는 그냥 길거리에 버린다. 그럼에도 의외로 거리가 깨끗한데 이는 앞서 말한 값싼 노동력에 의해 청소가 되기 때문이다.

건축 현장에 투입되는 인부들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집트와 같은 개발도상국 출신들이 많으며, 이들의 평균 일당은 5달러, 평균 근무시간은 12시간 2교대 근무다. 2004년 기준으로 두바이에서 일사병 등의 기타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수는 900여 명에 이른다. 또한 이들은 취업 브로커들에 의해 항공료, 입국비, 숙박비와 취업 비자 발급을 대가로 많은 빚을 반강제적으로 지게 만든 후 임금으로 깎아나가는 방식으로 이득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휴먼라이츠워치 등의 국제 인권 단체의 압박과 노동 운동이 이어지면서, 2004년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와 혹서기 4시간 노동 금지 법안을 만들었다.

이렇게 고속 성장을 했지만 선진국이라 하기엔 많이 부족한 편이다.[20] 시궁창인 인권에 넘쳐나는 부정부패 등. '잘 산다고 선진국은 아니다'라는 말을 잘 대변하는 나라이다. 마찬가지로 바레인이나 쿠웨이트, 카타르 같은 걸프 연안 산유국들도 같은 소리를 듣는다.

3.5. 샤리아

아랍에미리트는 다른 보수적인 이슬람권 국가에 비하여 자유롭고 개방적이긴 하지만 엄연히 이슬람 종교 법인 샤리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다. 일부 항목들에 한해 법이나 규율이 상당히 엄격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아래 내용을 숙지해 두길 바란다.

이 외에도 한국과 다르게 조심해야할 게 은근 많은데, 한국처럼 경찰에서 훈방조치 하거나 경고주는 게 아니라 이 나라는 진짜로 잡아간다.

즉, 관광이나 항공 환승 쪽으로는 아부다비, 도하와 더불어 세계 최강급이지만, 거주로서의 두바이는 각종 검열 및 통제적 법률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은 싱가포르 못지않다.

그러다가 2019년 2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아부다비 방문을 계기로 타종교에 대한 관용을 강조하기 시작한 UAE는 2020년 말에 들어서 비무슬림들에게도 적용해왔던 이슬람법의 적용을 완화하는 등 제한을 더 풀었으며, 2021년 라마단에는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시작으로 라마단 기간에도 별도의 영업허가 없이도 식당과 카페들의 정상 운영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4. 지역

대표적으로 세 개로 나눌 수 있다. 최서단에 위치한 제벨 알리와 최동단 데이라, 그리고 중간에 위치한 쥬메이라. 제벨 알리의 경우 공업지역과 대규모 항구가 조성되어 있어, 한국으로 치면 인천, 평택, 부산, 광양과 같은 포지션이다. 데이라의 경우 1970년대 두바이가 처음 개척될 당시부터 원도심의 역할을 하던 동네지만, 최근에는 신도시 주메이라에 온갖 깔끔하고 고상한 시설이 집중되다 보니 어딘가 좀 구수하고 오래된 느낌이 난다. 그리고 두바이에서 유일하게 역사 유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알 파히디 역사지구가 위치하는 지역.

4.1. 제벨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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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모래만 가득하던 허허벌판이었으며, 애초에 이곳 사람들은 고기잡이나 하며 살던 게 전부였으나 1990년 제벨 알리 항구가 개항했고, 아부다비와 이어지는 허브 지역이라는 지리적 이점까지 노리면서 정부에서 대대적인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실제로 이곳은 두바이에서 가장 저개발 상태이며, 관광지도 골프장과 수영장이 딸린 아주 작은 호텔 하나만 있을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다. 때문에 일단은 지나치게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럴 만도 한게, 원래 두바이 개발의 일원으로 이곳에다가도 두바이 워터프런트라는 달과 야자수가 합쳐진 모양의 크고 아름다운 인공 섬을 계획했으나 경제위기로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여기에다가 세계 최고층 마천루를 목표로 한 나킬 타워까지 지으려다가 무산된 것을 보면 앞서 언급한 인천과 비슷하다.

주요 시설로는 알막툼 국제공항이 포화 상태에 이른 두바이 국제공항을 대체하기 위해 건설되어 있는데, 추가적으로 확장을 거칠 계획이다. 최근에 큰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두바에 피크 앤 리조트라는 호텔과 레고랜드, 발리우드 파크, 모션게이트 파크가 있고 새 테마파크가 지어지고 있다. 또 두바이 엑스포 박람회장이 이곳에 있다. 또 인공 섬 팜 제벨 알리와 주변은 방치되어 있었는데 최근 다시 천천히 개발 중인 것으로 보인다.

4.2. 주메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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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메이라는 상당한 허허벌판이었다. 애초에 두바이의 중심은 데이라로, 주메이라와 제벨 알리는 말이 두바이일 뿐 실제로는 그냥 사막 허허벌판에서 고기잡이나 하며 사는 시골동네였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 최초의 마천루인 세계무역센터가 1973년에 등장하면서 서서히 개발되기 시작했고, 이후 급격한 개발 열풍이 불면서 한순간에 두바이를 대표하는 부촌으로 급성장했다. UAE의 국부 셰이크 자예드의 이름을 딴 고속화도로인 셰이크 자예드 로드가 이 지역을 관통하며, 이 도로 주변부터 개발이 진행되어 라스베이거스의 더 스트립 혹은 서울의 강남대로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주메이라는 그 규모가 상당한 탓에 이 내부에도 다양한 지역이 위치하고 있다. 크게 나눠 보자면 바다 근처에 있는 서부 마천루 지역(마리나, 주메이라 레이크 타워스, 주메이라 비치 레지던스)과 인공 섬 팜 주메이라 지역, 랜드마크 호텔 버즈 알 아랍이 위치하나 주변부는 상대적으로 고층 빌딩이 적고 평탄한 건물이 위치한 알 쿠오즈/움 스콰임 지역, 그리고 부르즈 칼리파와 두바이 몰등 수많은 마천루가 위치한 비즈니스 베이 지역. 이렇게 3개 지역으로 나누면 편하다.

마리나와 주메이라 비치 레지던스(JBR), 그리고 주메이라 레이크 타워스(JLT) 지역의 경우 2003년을 전후해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 되었는데, 이 지역의 경우 사무용 건물보단 고급 레지던스, 호텔 그리고 아파트등 고급 주거지구와 관광지구가 조성되어 있는데, 마천루를 매우 많이 지어둬서 세계 고층 주거용 건물들을 순위로 따지면 이 지역에 상당히 많이 밀집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카얀 타워, 프린세스 타워 그리고 토치 타워 등. JBR의 경우 마리나 바로 뒤 해변을 따라 조성되어 있고, JLT의 경우 마리나 반대편 세이크 자예드 고속도로를 건너서 조성되어 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온갖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바다와 이어지지 않은 호수 타입의 운하에 건물 높이도 상대적으로 낮아 명성은 마리나에 버금가지 못하는데 마리나는 야경이 훌륭하기로 유명하다.

알 쿠오즈·움 스콰임 지역은 고층 건물은 거의 없고 그냥 낮은 건물이 많아서 그다지 볼건 없다. 다만 비즈니스 베이 지역의 경우, 바로 옆에 위치한 두바이 크릭이라는 또다른 거대한 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는 터라 미래가 무궁무진한 지역이다. 마리나와 더불어 끝내주는 야경과 빌딩 숲으로 모든 이들을 혹하게 하는 원투펀치를 이루는 지역. 바다, 두바이 크릭을 둘러싼 운하와 호수를 둘러싸는 수많은 빌딩을 볼 수 있다. 부르즈 칼리파는 베이 에비뉴 파크에서 사진 찍으면 건물 전체가 나온다. 그리고 인근 사파파크에 가면 고층 건물을 배경으로 풀밭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정말로 아름다운 지역.

두바이 메트로 레드선과 마리나 지역 트램, 그리고 팜 주메이라로 가는 모노레일 등 대중교통도 이 지역이 가장 발달해 있다.

4.3. 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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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국제공항의 소재지로 사람들이 두바이에 도착하면 처음으로 만나는 곳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두바이의 모습은 영 아니며 그저 일개의 아랍풍 도시 정도로만 간주되는 곳이다. 그렇지만 원래 두바이의 전통적인 중심지로, 1970년대 초반까지는 명실공히 두바이를 대표하던 곳이었다. 오늘날 마천루들이 가득한 제벨 알리와 주메이라가 허허벌판 사막이던 시절, 데이라에는 건물들이 빼곡하게 있었고 두바이 인구의 대부분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1973년 주메이라에 두바이 세계무역센터가 완공되고 1990년대부터 주메이라와 제벨 알리에 초점을 맞춰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데이라는 죽어가기 시작했으며, 이에 데이라 팜 아일랜드라는 야자수 모양의 인공 섬을 만들어 과거의 영화를 다시 되찾으려 했으나 경제위기로 무산되면서[21] 더 이상 전진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로 치면 사대문 안 또는 강서구와 유사한 위치이다. 일단 역사적인 중심지라는 점에서는 중구 종로구와 비슷하지만, 공항 소재지라는 점은 오히려 강서구와도 비슷하다. 그리고 중구와 강서구답게 옛날에는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지금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서울의 중심이라는 지위를 갖고 있던 중구도 이제는 강남구 여의도에 빼앗겼듯이 두바이의 중심지도 주메이라나 제벨알리에 빼앗겼으며, 제벨알리에 알막툼 국제공항이 개항하면서 관문지역이라는 위치도 이제 빼앗기게 생겼으나 아직은 그래도 관문지역이라는 위치는 문제없이 갖고 있다. 지금의 두바이 국제공항(DXB)과 알막툼 국제공항(DWC)의 관계는 김포국제공항- 인천국제공항 관계와 비슷하지만, DWC는 인천처럼 처음부터 크고 아름다운 허브공항으로 개항한 게 아니라 일단은 매우 조촐하게 개항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DXB가 여전히 관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나, DWC가 개항하면 DXB는 극히 일부 노선만을 운영하게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데이라는 과거의 영화를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언급했다시피 공항 소재지인데, 이 때문에 고도제한이 걸려서 고층 건물이 없다. 물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회사 빌딩"들이 있긴 하지만, 그 스케일은 진짜로 쪼잔하기 그지없다. 때문에 마천루는 죄다 제벨알리나 주메이라에 지어지고 있으며, 마천루를 지을 수 없는 데이라는 자연스럽게 죽어가는 것이 당연지사.

더군다나 역사적으로 인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서 계획도시가 아니며, 도로망도 진짜로 엉망진창이다.

Deira Enrichment Project라는 이름으로 데이라 일대 재개발이 진행 중이며, 무산된 팜 데이라 중 이미 지어진 남쪽 섬들을 데이라 아일랜드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여 개발이 진행 중이다. 대표적으로 데이라 몰과 시장이 지어지고 있고 호텔, 고급 빌라와 마리나, 고급아파트, 레지던스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5. 관광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 부르즈 할리파의 꼭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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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의 역사를 상징하는 알파히디 역사지구 (حي الفهيدي التاريخي)[22]

두바이 관광정보 사이트

봄에서 가을에 걸친 4월부터 10월까지는 밤에도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탓에 야경 구경할 겸 마리나를 나갔다간 몰에 들어가 에어컨 바람 맞을 생각부터 하게 된다. 두바이에 이븐 바투타, 마리나,에미리트, 두바이 등 온갖 쇼핑몰들이 몰려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바깥이 너무 더워 피신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늦봄~초가을까진 해수욕을 하지 않는 이상 바깥을 돌아다니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이 지역 몇몇 국제학교는 여름에 몰로 피크닉을 가기도 한다. 이렇듯 워낙에 더운 시기라 비행기 표와 숙박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표 구하기는 쉽다. 반면, 겨울에는 한국의 봄 같은 따뜻한 기후를 경험할 수 있다. 온도가 딱 적당해서 수영이나 해수욕을 하는 데에도 큰 지장이 없다. 따뜻한 봄 기후와 아름다운 야경 및 건물 숲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에 방문하는 것이 추천된다. 두바이의 겨울밤은 좀 쌀쌀하다. 두바이는 사막에 위치한 도시이므로 낮에 덥고 밤에 춥기 때문이다.

치안은 상당히 좋은 편. 큰 건물이나 술집에는 거의 경비원이 있으며 밤이 되어 기온이 선선해지면 조깅을 하러 나오는 여자도 많다. 그리고 치안이 좋고 더운 기후 탓도 있어서 일찍 문을 닫는 유럽과 달리 아랍 국가임에도 밤 늦게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등 활동이 활발하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은 다 그렇듯 언제 무슨 사건이 발생할지 모르는 일이니 여행지에서는 항상 조심하자. 밤에 혼자 외딴 도로나 길을 돌아다니지 말고 최대한 사람이 많이 모인 곳 위주로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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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이라 중세 도시 유적

사실 역사 유적이나 자연 경관이 볼 만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아랍에미리트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채 50년도 되지 않았고, 오만이나 이란, 예멘처럼 유적지가 많은 것도 아니다. 역사 경관으로 내세울 건 옛날 조선시대 정도에 감시탑으로 활용하던 흙탑 '알 파하디'와 중세 압바스 왕조가 세웠던 상업 특구 알 주메이라 유적 정도가 유일하고, 자연 경관이라 하면 그냥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가서 전통 공연 보고 헤나 받고 낙타 타는 게 전부다. 대신 두바이 정부에서는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아래와 같이 도시 곳곳에 인공 관광지를 건설하여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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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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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공항의 경우 두바이 국제공항, 두바이 알 막툼 국제공항 두 개의 공항이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알 막툼에 가끔 화물기를 띄우는 듯 한데, 비즈니스 베이까지 대략 40분 넘는 시간이 소요될뿐더러 에미레이트 항공 역시 이 국제공항을 허브로 이용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주요 도시들에서 두바이 국제공항으로 직항편을 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으리으리한 두바이 국제공항도 주변이 시가지로 뒤덮여 더 이상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제벨 알리 지역에 알 막툼 국제공항을 열심히 짓고 있다. 곧 이곳으로 옮겨갈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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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국제공항의 A380 전용 터미널

인천에서 두바이까지는 에미레이트 항공과 대한항공이 둘 다 공평히 매일 1회 운항중에 있다. 단 대한항공의 경우 오후 1시 정도에 한국을 출발하고 두바이에서 밤 11시 경에 출발하지만, 에미레이트는 유럽으로 가고 오는 환승객들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한국에서 오후 11시에 출발해 오전·오후에 출발하는 유럽행 비행기 출발 전에 두바이에 도착한다. 즉 꼭두새벽에 도착하고 다시 인천으로 날아간다는 뜻. 피곤하지 않은 여행을 하려면 웬만하면 대한항공 이용을 추천한다. 저렇게 안 좋은 시간대에 비행기 타면 몸도 마음도 지친다.

도시철도 두바이 메트로의 경우, 두바이 시내에서 4개의 노선이 운행 중이다. 셰이크 자예드 고속도로를 따라 같이 건설되어 두바이 시내 중심부를 관통하는 레드 라인과 데이라 지역을 샅샅이 훑어주는 그린 라인, 그리고 마리나 지역에 건설된 지상 트램, 팜 주메이라를 이어주는 주메이라 모노레일 등. 가격은 그리 비싼 편은 아니지만 전철이 골드석과 일반석으로 구분된 게 특징인데 비행기로 치자면 비즈니스석과 일반석의 차이 정도 된다. 그리고 이슬람 국가답게 전철 내에 선 하나를 기준으로 여성 칸 그리고 혼성 칸 이렇게 구분이 된다. 전철에서 뭐 먹거나 마시거나 남자가 여자 칸에서 꽁냥대다가 걸리면 엄격한 율법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잡아갈 수도 있으니 조심하도록.

버스도 그럭저럭 탈 만한 정도다. 살인적인 더위를 피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은 아예 작은 컨테이너처럼 만들어져 안에서 에어컨을 틀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광역버스 같은 건 기대하지 말자. 그다지 버스 노선이 많은 편도 아니고 인프라가 좋은 편도 아니다. 그렇다고 버스가 낡거나 안에 장비가 낡거나 그건 아니다. 뭐 버스를 타면 두바이 시내 안 가는 곳이 없기는 하다. 가격은 상대적으로 전철과 비슷하거나 저렴한 편.

전철이나 버스를 잘 탈 자신이 없거나 전철이 운행하지 않는다면 택시를 타도 된다. 모든 택시에 미터기가 달려 있기 때문에 바가지나 흥정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요금도 그렇게 비싸지 않다. 기본적인 영어는 통하기 때문에 의사소통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위의 버스, 전철 등 은근 괜찮은 대중교통이 있지만, 아직까지 대다수의 통행량은 자가용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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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시내 한복판 공터의 무덤 유적. 청동기 시대 움무 앗 나르 문화 시대의 것으로, 현대의 최신형 마천루들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도시가 워낙 여기저기 서둘러 개발을 하다 보니 행정이 개발을 따라 잡지 못해 한창 개발 붐이 일고 있을 때에는 길에 주소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매일 지나던 길이 공사로 인해 막혀 왔던 길로 되돌아 가는 일도 빈번하다.

또한 한때 하수 처리 시스템이 잘 정비되지 않은 것으로 매우 악명이 높기도 했었다. 2009년에 촬영된 동영상이 대표적으로 유명한 사례인데, 당시에 두바이의 하수관들이 도시 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데다 도시 외부로 빠져나가는 시설과 처리 시설 모두 열약한 상태여서 하수를 실은 주황색 트럭들이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려고 도로에 줄을 서는 진광경이 펼쳐지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2010년 완공한 부르즈 할리파에서 나온 하수 또한 이런 트럭을 통해 외부로 나갔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런 문제와 불법 배출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여 2010년대 후반부터 하수관 확충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정부에서 시작해서 2025년까지 이런 트럭들을 도로에서 없애겠다고 발표했고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위에 언급된 대로 일부 경찰차는 물론이고 공도에 돌아다니는 차들도 꽤 비싼 차들이 많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은 조금이나마 눈호강할 수 있는 도시. 그러나 이와 반대로 공항 근처 주차장에 억대급 자동차들이 사막 먼지를 뒤집어쓴 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되어 있는 모습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는 두바이에서 차를 구입한 오너가 본인의 나라로 가져가려면 엄청난 항공료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냥 버리고 갔기 때문이다. 워낙 고가의 물건인 데다 이런 걸 실을 화물기도 그리 흔한 건 아니기 때문에[26] 추가 요금이 팍팍 붙어 항공료가 억대를 넘는다. 쉽게 말해 차주들이 호기롭게 샀다가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걸 감당 못해서 이런 진귀한 현상이 발생 중인데, 개인 사유물이라 정부 측에서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 계속 늘어만 가는 실정. 만약 처분이 되더라도 사막 먼지에 엄청 오염돼서 망가지거나 별도로 수리를 해야 되는 터라 사실상 여기 주차된 슈퍼카들이 폐차나 다름이 없다.

두바이에 대해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제작의 두바이 스페셜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총 5부 제작. 1부는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 2부는 바다위의 세계지도 더 월드 3부는 세계 최고의 호텔 4부는 환상의 인공 섬 팜 아일랜드 5부는 두바이 리더십으로 구성되어 있다.

18개월간 금값이 폭등을 거듭하면서 두바이가 금 밀수의 온상으로 지목받고 있다.

2024년 4월 16일(현지시간) 두바이 전역에 새벽부터 시작된 폭풍 번개를 동반한 비가 12시간 동안 거의 100㎜ 가량 내렸으며 밤까지 최소 160㎜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졌다. 이는 평소 두바이에서 1년 반~2년 동안 관측되는 강우량에 해당한다. 아랍에미리트 국립기상센터는 이번 폭우가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49년 이후 75년 만에 가장 많은 비라고 밝혔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많은 비에 도로가 물에 잠기면서 운전자들은 자동차를 버리고 대피했으며 쇼핑몰(두바이 몰, 몰 오브 더 에미리트) 등 두바이 시내 곳곳이 침수됐다. 주택들도 침수되어 일부 주민들이 대피했고 학교는 대부분 휴교했다. 지하철역 발목까지 물이 차올랐고 전동차 운행도 중단되면서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역에 갇혔다. 일부 시민은 물에 잠긴 도로 위에 고무보트 제트스키를 띄워 이동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바쁜 공항으로 꼽히는 두바이 국제공항 활주로가 침수되어 여객기들이 마치 강에 떠가는 배처럼 물에 잠겨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됐으며 기상 악화로 인해 약 30분간 운영을 중단해 두바이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 수십편이 지연되거나 결항했다. 공항 측은 공항으로 오는 도로 대부분이 물에 잠겨 앞으로도 공항 운영에 상당 부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두바이 정부 소유 저가항공사 플라이두바이는 이날 저녁부터 이튿날인 17일 오전 10시까지 두바이에서 출발하는 모든 비행편의 운항을 취소했다.
두바이에 쏟아진 이례적인 폭우는 현재 아라비아반도를 관통해 오만만으로 이동 중인 폭풍 전선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평소 강수량이 적어 폭우와 같은 기상이변에 대응할 기반 시설이 부족해 홍수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비는 밤부터 조금씩 잦아들 전망이지만 17일까지 내릴 것으로 예보돼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기사#1 #2 #3 #4 뉴스#1 #2 #3 영상

8. 대중매체



[1] 2023년 기준 [2] 서울로 올 때는 순바람의 영향으로 8시간 반 정도 [3]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단 몇개 건물이 도시의 중추 기능을 수행하던 두바이는 이후 급속한 성장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신도시와 건물들을 도시 곳곳에 짓게 된다. 저 모든 건물이 모두 두바이 행정구역 내의 건물들. 지역 구분은 크게 제벨 알리, 주메이라, 데이라로 나뉘는데 이들 지역은 모두 신도시에 해당하는 주메이라 지역에 속한다. [4] 오른쪽에 부르즈 할리파가 보인다. [5] 아랍어로 '내 사랑(حبيبي)'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친구 사이나 가족간에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이며 잘 모르는 이방인에게도 친근함의 표시로 쓴다고 한다. 실제 아랍 남성들 간의 대화들을 들어 보면 문장의 처음이나 끝에 'Habibi'가 수시로 들어가며 외국 여성에게 'Habibi'라고 해도 문제될 거 없다. [6] 이 대사는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출신 패션모델 AlleyCripz가 말한 대사로, AlleyCripz이 TikTok에 업로드한 영상에 이 대사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두바이를 대표하는 인터넷 밈이 되어버렸다. 가끔 유튜브 쇼츠나 TikTok,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두바이가 나오는 영상을 보면 거의 이 대사 사운드가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7] 여름에는 온도 자체도 최고온도 40도~45도에 육박하며 습도도 높다. [8] 한국의 초가을 정도의 날씨다. [9] 부르즈 칼리파가 위치한 두바이 몰과 택시로 약 15분, 메트로로 4정거장(14분) 떨어져 있으며, 에미레이츠 몰과 두바이 몰 모두 메트로역까지 오래 걸어야 하므로 메트로를 이용할 경우 30분 이상 소요된다. [10] 1938년 10월 건국, 1939년 5월 셰이크 사이드가 영국의 지지 하에 베두인들과 돌아와 재집권하여 해체됨 [11] 이는 다른 걸프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12] 분쟁지를 아부다비가 갖되, 두바이가 특히 무역 분야에서 자치를 더욱 강화한 것 [13] 각 토호국의 수장이 공식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최대의 무력 권리다. [14] 대신 반대 급부로 이를 이용한 관광업이 발달했다. [15] 사실 1943~74년까지는 두바이의 포지션에 있었다. [16] 아부다비의 면적은 67,340㎢고, 두바이의 면적은 3,885㎢다. [17] 두바이의 고속도로는 커브 길이 없이 일직선이기 때문에 유턴도 없고 우회 도로를 이용해 도로를 빠져나간다. [18] 우리나라에서 열린 1993 대전 엑스포 2012 여수 엑스포는 등록박람회가 아닌 인정박람회이다. [19] FIFA 월드컵 카타르가 최초로 개최 성공했다. [20] 1990년대초 한국과 비슷한 상황 [21] 현재는 데이라 아일랜드로 대체되었다. [22] 전면에 보이는 말가프, 즉 자연 냉풍기는 13-18세기 이란 걸프 해안으로 이주했다가 19-20세기에 돌아온 카심, 하왈라 부족 등에 의해 전래되었다. [23]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제다 타워가 완공되면 2위로 밀려나며, 이 밖에도 부르즈 할리파보다 높은 수많은 빌딩들이 계획되어 있다. [24]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 쇼핑몰인 코엑스몰의 넓이 165,000㎡ 의 약 6.8배, 스타필드 하남의 넓이 156,000㎡의 약 7.1배. [25] 세계에서 가장 큰 수족관은 미국의 조지아 수족관이다. [26] 다만 에미레이트 항공에서 Emirates Skywheels라는 차량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긴 하다. 다만 장난 아니게 비싸다. 실상은 모터쇼 등의 용도로 제공되는 경우가 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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