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97년 12월 18일[1] 대구광역시 중구에서 각각 20대와 30대 남성 두 명이 동일범으로 보이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사건. #2. 경과
2.1. 1차 하서동 사건
새정치국민회의 연청[2]의 대구 북구 갑 지회장이었던 장진원(당시 33세)은 김대중 대통령 후보 선거유세를 마친 뒤 1997년 12월 18일 오전 0시께 국민회의 당원 10여명과 함께 금호호텔 20층에 있는 스카이 라운지에서 술을 마시다가 약 30분쯤 뒤에 내용 불명의 전화[3]를 받고 혼자 나간 뒤 변을 당했다. 정황상 범인이 전화로 장 씨를 불러냈을 것으로 추정되며 나가서 범인을 만난 직후 살해됐을 걸로 추정된다.1997년 12월 18일 오전 5시 25분경 인근 식당에서 새벽 동안 술을 마시고 호텔로 돌아온 장 씨의 동료 유은호(당시 33세)가 자당의 선거용 차량인 싼타모차량 내부에 무언가 있는 느낌이 들어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그 안에는 장 씨가 피를 흘린 채 반듯이 누워 있었다. 장 씨는 몇 시간 전에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며 그 사인은 흉부와 배에 각각 나 있는 두 군데의 상처로 인한 과다출혈이었다.
사건 당시 공동선거캠프를 꾸리고 있던 자유민주연합과 새정치국민회의는 장 씨가 정치적인 이유로 살해당한 것이라며 철저히 수사를 진행해 줄 것을 주문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했지만 경찰은 장 씨의 지갑이 사라진 점을 미뤄 초기에는 강도살인일 것으로만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후에 드러난 사실에 의하면 사건 현장에서 장 씨가 숨진 모양새는 마치 범인이 앞좌석의 오른쪽 조수석[4]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되었으며 이를 통해 면식범에 의한 범행인 것으로 사건 수사를 전환했다.
같은 시각 장 씨의 집전화로도 내용 불명의 괴전화가 4~5차례 걸려와 이를 장 씨의 아내 이 모씨가 받은 사실도 밝혀냈는데 역시 발신지 추적에 실패했으나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집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범인이 면식범임을 알리는 증거였다. 그러나 경찰의 조사 결과 장 씨 주변에 원한관계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5]
2.2. 2차 인교동 사건
장 씨가 피살된 채 발견된 지 정확히 2시간이 지난 오전 7시 25분경 1차 사건에서부터 불과 4백 미터 떨어진 미정구이식당 건물 화장실로 통하는 계단에서 이동규(당시 25세)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동규는 앞선 사건의 피해자인 장진원과 다르게 직업이 없는 상태였으며 최후 행적도 불명이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특이점으로는 앞선 장 씨와 다르게 이 씨의 것으로 보이는 지갑은 있었지만 그 안에 있어야 할 돈이며 신분증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이 사건도 강도살인일 것으로 추정했다.피해자의 평소 특징에서는 서로 연관점을 찾지 못했지만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는 예기에 같은 부위가 찔려 살해됐고[6] 사망 추정 시각이 앞선 사건의 피해자 장 씨와 겹치는 점, 발생 지점도 매우 가까운 점을 들어 경찰은 두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일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였으나 어떠한 단서도 얻을 수 없었다.
2.3. 용의자 체포와 헛발질
해를 넘겨 사건이 미궁으로 치닫던 1998년 1월 19일 경찰은 하사 계급의 현직 군인이자 탈영병이었던 윤 모(당시 22세)를 2차 사건의 범인이라고 발표했는데 이유인 즉슨 탈영병이었던 윤 하사가 여관에서 은거하던 중 붙잡힌 이후 경찰에게 본인이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자백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앞선 사건의 범인도 20대 남성 살인사건의 범인과 동일범일 것이라는 자체 소견에 따라 윤 하사에게 하서동 사건또한 혐의점이 없는지 추가 조사에 돌입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윤 하사가 군헌병대 수사관과 면담을 마친 후 본인의 진술을 완전히 뒤엎고 범행을 전면 부인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진술이 경찰의 강압수사에 의한 것이었다며 항의하는 한편 자신이 소속된 해병대와 부대에 자신의 행적을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조사 결과 애초에 윤 하사는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일 수 없었다. 윤 하사는 사건이 일어난 시점인 18일 새벽에 포항에 있는 본인의 부대에서 당직근무를 섰으며 윤 하사의 탈영은 살인사건과는 매우 동떨어진 시각인 19일 낮에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당시 윤 하사가 근무하던 부대의 당직일지에서 확인되었으며 동료 부대원들에게도 완벽히 일치하는 진술을 얻을 수 있어 윤 하사의 행적상 그가 이 범행들을 저지를 수 없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서로의 신상과 동선 확인에 대해 예민한 군대의 특성상 이 알리바이들의 신빙성도 보통의 진술들보다도 굉장히 높았다.
결국 윤 하사는 해병대의 자체 조사로 탈영 혐의로만 영창을 가고 경찰에는 기소되지 않았으며 이 두 사건들은 용의자도, 단서도 없는 미제사건이 되었고 2012년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3. 여담
여담으로 1차 사건의 피해자인 장원식이 살해당한 채 발견된 장소였던 하서동 금호호텔은 이 사건으로부터 15년 전인 1982년에 화재가 일어나 10명이 죽고 15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현재는 철거되고 다인로얄팰리스라는 오피스텔이 들어서 있다.이 사건을 전후로 1997년 외환 위기라는 대격변과 함께 한동안 대구 중구는 그야말로 개판 5분 전 급의 우범지대가 되어 버렸다. 당장 이 사건이 일어난 지 1-2달 전후로 벌어진 사건들만 종합해 봐도 일주일새에 하나의 편의점이 2번의 강도를 당하거나[7] 대낮의 카페에 떼강도가 들이닥쳐 손님들을 제압하고 금고를 털어가는가 하면 새벽에 귀가 중이던 남성을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이 덮쳐 무려 흉기로 11차례나 찌르고 현금 15만원이 든 지갑을 챙겨 도망갔다.[8] 대구 중부경찰서는 치안을 강화하기 위해 임시반상회를 열어 주민들에게 주의와 협조를 당부하는 한편 순찰역량을 대폭 늘렸지만 대구는 물론 경북 및 타지역에서 원정강도를 오는 등 그야말로 강도의 핫플레이스가 되어 버려서 IMF 기간 동안 극심한 범죄에 주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9]
이 사건의 피해자 두 명 모두 서로 면식은 없었던 걸로 조사결과에 기록돼있으나 둘 다 전입된 주소가 대구시 달서구였다. 물론 달서구가 인구가 적은 것도,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닐 뿐더러 대구 중구가 대구시의 사람이 모이는 상권 밀집지고 번화가이기 때문에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높지만 혹여 모르는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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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이 일어난 날은
제15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2]
'새시대 새정치연합 청년회'의 줄임말로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의 산하 청년 조직이었다. 본래는 1980년
서울의 봄 정국에서
김대중 개인을 지지하는 청년조직으로 출범하였으며
문희상 국회의원이 정치를 시작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3]
후에 경찰이 이 전화의 발신지를 추적하였으나 실패했다. 당시 장 씨가 소유한
삐삐에 찍혀있던 전화번호들도 사건과 관계가 없는 걸로 드러났다.
[4]
그러니까 피해자 장 씨는 좌핸들 차량의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그 바로 옆의 조수석
[5]
장 씨는 1992년부터 연청 조직에서 활동하는 등 정치에 열성적인 사람이었으나 정당 조직 활동은 정작 사건이 일어나기 1개월 전인 97년 11월에서야 정권교체에 힘을 보태기 위해 시작했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로부터 또 1개월 전인 1997년 10월 그가 운영하던 주물공장이 부도가 나면서 자금난을 겪었다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에게 임금을 체불하거나 한 것은 아니어서 원한관계는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6]
시신에서 발견된 상처 폭이 5cm로 동일했다. 다만 가슴과 배라는 점은 같았지만 이 씨는 배꼽에서 약간 아래쪽 부분에 흉기를 맞았다.
[7]
심지어 그 편의점은 전전달에 이미 한 번의 강도를 당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이 곳에서 새벽시간 파트타임 알바를 하던 19세의 우모군이 2달 연속 강도에게 폭행당하는 불상사가 있었다.
[8]
이 남성은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6시간동안 수술 대기만 하다가 결국 사망하고 말았는데 지금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 일로 병원측과 유가족 측의 과실 논쟁이 심화되던 한편 정작 남성을 죽인 범인들은 잡지 못했다.
[9]
대구 중구 일대는 하루 유동인구가 백만 명인 데다 상권 초밀집 지역이어서 범인들의 표적이 되기는 무척이나 쉬운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중구의 상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영업 시간 동안 공기총을 반출해 곁에 두고 있는 상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 시기는 비단 대구뿐만 아니라 IMF와 그에 따른 대량실직으로 아리랑치기, 퍽치기 등 생계형 범죄와 강도의 비율이 60년대 이후 다시 전국적으로 폭증한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