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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티베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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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티베트
1. 개요2. 중국인과 별개의 티베트 민족 정체성3. 티베트 독립운동4. 티베트 난민 문제5. 서남공정6. 관련 문서

1. 개요

티베트 망명정부와 중국의 관계를 정리한 문서. "中 언론공세" vs "달라이라마 평화공세"

2. 중국인과 별개의 티베트 민족 정체성

티베트인은 위구르인과 마찬가지로 중국 내에서 가장 독립 열망이 높은 민족이다. 티베트는 중세 토번 제국을 기점으로 독자적인 티베트 문화를 확립하였으며, 중국 명나라 때는 형식적인 조공 관계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다시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 체제가 성립되었고, 청나라 때는 만주족들의 우대로 한족보다 더 높은 권리를 인정받으며 상당한 수준의 자치를 누렸다. 동아시아 지역은 서구보다 민족주의가 먼저 확립되고 발전한 지역으로[1] 티베트인들 역시 전근대부터 자신들이 티베트인이라는 고유의 정체성을 자각했다. 게다가 티베트는 중국 지배의 영향으로 동아시아로 여겨지고 있을 뿐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남아시아에 가깝기 때문에 한족과 동화되기 어렵다.

비교하자면 중국의 다른 소수민족들 이를테면 중국 최대 소수민족 좡족이나 원나라, 명나라 때 윈난성으로 편입되었던 대리국의 후손들 바이족 등등은 동화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독립을 주장할 의지가 없는 상황이며,[2] 1950년대 초반 중국에 무력으로 강점된 티베트의 상황과 다르다.

남방의 먀오족, 야오족, 로로족 등은 한족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청나라 말기 때까지도 중국에 대항하곤 했으나, 전근대 당시 이들은 화전민으로 따로 중앙집권화된 정권을 가진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같은 부족들끼리 연대의식이 발전하는데 이르지 못했고 다시 독립해서 국가를 만든다는 생각이 없다. 대조적으로 티베트의 경우 토번 제국이 분열된 지 수백여 년 이후 근세 달라이 라마 5세 이후 안정적인 중앙집권 통일 국가를 확립하면서 티베트인 부족들 사이에 연대의식이 강화되었고 이는 현대 티베트 독립운동의 근간으로 이어졌다.

3. 티베트 독립운동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독립운동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002년부터 2010년 사이에 약 7차례에 걸쳐 티베트 망명정부 측과 중국 정부간의 공식적인 대화가 이루어졌다. 티베트 망명정부 측에서는 국가무신론 성향의 중국 정부 성향에 맞추어 티베트 정부는 정교분리가 이루어질 것이며, 완전한 분리독립 문제는 유보하고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였으나,[3] 중국 정부 측은 사실상 이러한 입장에 대한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였다. 이에 티베트 망명정부 내 강경파인 티베트 청년회 측은 달라이 라마 14세의 자치권 확대 노선을 비판하고, 직접적인 독립운동으로 방향을 선회할 것을 주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티베트 청년회의 주장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준비 당시 티베트 전역의 반중 봉기로 이어졌다. # 1989년 이후 평화적인 시위만 소극적으로 벌여왔던 티베트인들이 2008년 봉기에서는 한족과 회족 상인들을 구타하고 가게를 약탈하는 방식으로 갑자기 폭력적인 방식으로 반중 감정을 표출 #하였던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4]

아이러니하게도 달라이 라마 14세가 온건파인 것과는 별개로, 티베트 독립운동 관련해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 달라이 라마이다 보니 중국의 티베트 독립운동 때리기 역시 달라이 라마 14세 때리기에 집중되어 있다.[5] 중국 내외의 친중국계 민간 단체에서는 티베트 망명 정부 및 티베트 독립운동의 아이콘 달라이 라마 14세를 Da"Lie" Lama라는 멸칭으로 비하 지칭하며, 서구권에서 티베트 인권 문제 관련하여 티베트인들이 시위를 벌일 때마다 어용 단체들을 동원하여 달라이 라마 14세를 비하하는 맞불시위를 놓는다. 물론 달라이 라마 14세가 완벽한 인간일리는 없으나[6] 과연 이런 시위에 참여하는 친중단체에서 달라이 라마 14세를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이유가 티베트 불교의 개혁이나 티베트의 발전과 티베트인의 인권 향상과 관련이 있을지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레비야 카디르를 대상으로 "위구르의 달라이 라마"라고 지칭하는데, 이는 중국 정부 차원에서 달라이 라마라는 명칭을 오늘날의 중공 내에서 혐칭, 멸칭 수준으로 격하시키려는 운동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쓰촨대학 한족 교수도 "국제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달라이 라마가 살아있기에 티베트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진 티베트인이 오늘날까지 일사불란한 시위를 벌일 수 있는 것은 달라이 라마가 절대적 지도자로 자신들을 이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며 "달라이 라마가 죽으면 한동안 티베트문제는 서구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략)
#

달라이 라마 14세는 1935년생으로 이미 고령에 접어든 상태이다. 그리고 68운동 히피 문화가 유행하던 시절이면 몰라도 티베트 불교 겔룩빠 특유의 달라이 라마의 환생 관련한 교리나 계승권이 티베트 불교 신도가 아닌 여타 세계인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기는 힘들다. # 중국 입장에서는 관영 언론에서 중국 인민들에게 달라이 라마를 때리는 방송만 주구장창 보내놓고, 팔짱 끼고 달라이 라마가 늙어 죽을 때까지만 기다려도 유리한 상황인 것이다.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유리해졌다는 생각이 들자 티베트 망명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 제안한 말을 전부 다 바꾸어 버렸다. 00년대 초반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독립을 완전 포기한다면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발언했으며, 예샤오원 중국 국가종교국장도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독립을 포기한다는 견해를 명확히 밝히면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귀환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 때문에 달라이 라마 14세 역시 잠시나마 티베트인들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할 것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물론 오늘날 시진핑 정권에서 코로나 19 사태나 2021년 미얀마 쿠데타 당시 보여준 외교정책으로 보았을 때, 이런 약속을 신의 있게 지킬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

4. 티베트 난민 문제

우리나라의 탈북자 문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매년 약 2,500명의 티베트인 난민이 히말라야를 건너 네팔을 거쳐 인도에서 망명을 요청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히말라야를 거쳐 망명하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티베트 자치구-네팔 국경 경비가 더욱 삼엄해진 이후, 망명자 수가 감소하였는데 다람살라에 도착하는 티베트인 난민은 1년 평균 1,000명 미만이라고 한다. 망명 과정에서 중국 국경에서 체포된 티베트인들은 라싸에 있는 감옥에 수용된다고 한다. #

티베트인 난민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혐오와 차별 행위는 온라인 상에서도 이어진다. 2022년 7월 11일, 프랑스 북부의 한 중국 식당에서 티베트인 직원이 중국인 사장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현지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중국 국적의 식당 고용주와 그의 아내, 주방장 등 3인을 지목했다. 문제는 해당 사건에 대한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이었다. 티베트인과 한족은 같은 하나의 중국 안의 중화민족이라는 주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내선일체 이론이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서 서로 다르게 이해되었던 것 비슷하게 양측으로부터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사건을 접한 일부 중국인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티베트인) 직원이 죽으면 다른 노동자로 대체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는 조롱 일색의 반응을 보이면서 티베트인들은 크게 분노하는 양상이다. 티베트 행정중앙사무소 측은 “티베트인들이 크게 분노하는 이유는 이 사건을 대하는 중국인들의 태도 때문”이라면서 “(중국인)그들은 티베트인의 생명과 인권을 조롱하고 있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
이번 사건 이후 해외에 거주 중인 티베트인들이 처한 열악한 생존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다. 이 매체는 약 8000~1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프랑스에 거주 중이며, 이 중 4분의 3이 정치적 난민 신분이라고 집계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현지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탓에 사실상 프랑스 내의 중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에 취업해 또 다른 착취를 당하고 있는 실정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프랑스에 거주 중인 티베트인의 약 60%가 중국 국적의 중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에 취업해 있는 상태다.

해당 사건의 결과 프랑스 내에서만 약 7,000여 명의 티베트 난민들이 항의시위를 벌였으며, 이 외에도 스위스, 벨기에, 스페인 등 유럽에 거주 중인 티베트인들이 대규모 항의 집회를 개최하였던 바 있다.

5. 서남공정

동북공정이 한국/북한이나 러시아를 타깃으로 한 것처럼 서남공정은 티베트 역사에 대한 왜곡 이외에도 인도를 겨냥한 점이 없지 않다. 중국 측에서 내외에 티베트를 무조건 시짱이라는 생소한 어휘로 부르도록 우기거나 강요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 #2 #3 #4 중국이 김치공정 과정에서 파오차이와 김치 용어 혼란 전술을 사용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
티베트는 원나라의 영토가 맞다. 다만 원나라의 몽골족들이 한족들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와중에 티베트 불교 승려들을 편애하였고, 이후 들어선 명나라의 홍무제는 중국 내 남아있던 티베트 불교 승려들을 복수 차원에서 가혹하게 박대하였다. 티베트인들과 티베트 문화는 중화 문명과 달랐다.
명나라의 외교의 기본은 조공 무역이었다. 같은 논리대로 따지면 명나라에 조공을 바쳤던 몽골, 한국, 일본, 러시아, 포르투갈 등등이 다 중국의 일부라는 궤변이 된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네덜란드인들이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친다고 주장했는데, 같은 논리대로라면 일본 극우들이 과거 네덜란드의 아시아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해도 중국인들은 할 말이 없다.

중국 명나라는 티베트에 대한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근세 티베트는 명나라보다는 오이라트 연맹의 영향력이 훨씬 더 강한 지역이었다. 명나라에서는 적군의 수급을 베어오는 군인들에게 포상을 주었는데 여기서 몽골족 수급은 1급, 티베트족과 여진족 수급은 2급, 남방의 소수민족 및 일본인의 수급은 3급, 명나라 내 농민반란군의 수급은 4급으로 분류하였다. 즉 티베트와 중국 사이의 조공 관계와는 별개로 양 지역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잦았다는 의미이다.[7] 1516년 티베트 부족들이 둔황을 합병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리고 티베트가 명나라의 일부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명나라와 코코노르(오늘날의 칭하이성) 지역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물쩡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라싸에서는 어느정도 중앙집권이 이루어져 명나라와 외교를 할 정도가 되었지만, 칭하이성의 여러 몽골 및 티베트계 부족들은 오이라트 연맹이나 달라이 라마에게 충성하였지 명나라와 별개의 구체적인 외교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칭하이성 일대가 본격적으로 중화 문명에 편입된 시기는 청나라 시대 일이다. 강희제 치세 청나라는 준가르 칸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코코노르(오늘날의 칭하이성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을 정복하고 대신 별도의 이번원을 설치한다. 청나라 조정은 달라이 라마들이 코코노르 일대에서 세금을 징수할 권리를 제한하는 대신 매년 보상으로 차 5천 근을 지불해주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강희제 이전에는 칭하이성의 (동쪽 시닝시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은 명나라에서 청나라 초반까지 티베트 달라이 라마들의 직접적인 영향권이었다는 말이 된다.
과거의 해석은, 만주족은 중국의 다른 야심찬 이민족 정복자들처럼 그들 지배의 통치나 정당화에 중국식 방법을 적용했고, 그 결과로 사실상 문명화된 중국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청나라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했다 보기 힘들다. 청 통치자들은 일인 다역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여러 부류의 신민들(만주족, 몽골인, 티베트인, 한인)을 동시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스렸다. 청나라의 황제는 중국 백성에게는 천자였고, 몽골인에게는 칸 중의 칸(대칸)이었으며, 티베트인에게는 차크라바르틴( 전륜성왕)이었다. 청나라는 다양하면서도 다민족적인 세계 제국이었다.
이번원(理藩院)은 만주어로 '바깥 지역을 통치하는 기구'를 뜻한다. 이번원은 중국 본토의 외부 지역, 즉 몽골과 티베트 등을 관리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중화제국 역사상 최초의 행정 기관이었다. 6부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이번원은 수도에 관청을 두고 있었으며, 이번원에 소속된 지방 관료들의 규모도 거대했다. 한족 지식층은 거의 모두 이번원에서 배제되었고, 대부분은 중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들로 행정이 운용되었다.
하버드 중국사 청 / 윌리엄 T. 로

중국의 티베트 역사 문화 예속화 시도는 티베트 넘어 인접국이자 라이벌인 인도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 수단이다. 중인전쟁 와중에 중국은 아크사이친의 실질 지배권을 확보한 상황이며, 시킴, 아루나찰프라데시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오늘날의 중국은 청나라 시절 티베트가 폭넓은 자치를 누리고 달라이 라마가 청나라 황제에게 명목상 우대받았다는 사실을 얼버무리며, 해외에 티베트인=중국인이라는 도식을 홍보하는 것이 유리하다.

청나라 멸망 이후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기 이전까지 티베트는 사실상 독립 국가를 이룬 상태였으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미승인국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티베트가 독립국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몽장조약을 통해 몽골의 인정을 받은 것 이외에는 국제적인 인정을 공식적으로 받지는 못했다. 중일전쟁 당시 장제스가 일본하고 대신 싸워주는 마당에 서구 열강들 입장에서 굳이 장제스가 인정하지 않는 티베트를 굳이 독립국으로 인정해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장악하기 이전 중화민국의 장제스는 극단적인 중화주의자로서 중국 주변에 있는 모든 민족들이 다 한족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프로파간다를 강요하던 사람이었다. 장제스의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은 보류하더라도, 튀르크어 계통의 위구르어가 사실 중국어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주장부터 시작해서 환빠에 가까운 황당한 주장을 자주 하던 사람이다.

문제는 오늘날 친중공, 친중국 성향 인사들이 한편으로는 장제스를 무능한 파시스트라고 주장하면서 그 장제스의 주장을 그대로 갖다가 아무 비판도 없이 갖다가 티베트 이슈에 갖다붙인다는 점이다. 티베트와 위구르가 영원한 중화 민족의 영토라고 주장한 장제스는 다른 한편으로 "일제는 피부병이지만 중국 공산당은 심장병이다." "중국이 제국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망국의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노예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라는 과격한 말도 남긴 사람인데, 이런 말을 한 장제스의 의견을 그대로 갖다가 위구르 인권 탄압, 티베트 인권 탄압을 정당화하는 중뽕, 분청들과 우마오당들은 자신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듯 하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에서는 기존 인류 역사의 발전을 " 노예제-봉건제-자본제"라는 간단한 도식을 통해 설명해 왔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1950년 이전 티베트의 상황을 미개하고 불평등한 노예제 사회로 묘사했으며 중국 공산당에 의해 해당 지역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주장은 영국이 수단이나 나이지리아와 가나를 식민화할 때 그대로 사용했던 바 있다. 대표적인 제국주의 열강이었던 영국은 효율성 문제로 다른 나라보다 앞선 19세기 초반 노예제를 폐지하였고 이후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와 가나에 식민지를 만들 때 "불쌍한 흑인"(...)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고 노예제로부터 이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던 바 있다. 아니 멀리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일제강점기 일본 식민사관 역시 한국사를 봉건제를 밟지도 못한 미개한 노예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고 깎아내렸던 바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주장은 "티베트인들은 중국의 지배 없이는 노예로 살아야 하는 미개한 민족"이라는 극도로 제국주의적인 관점을 가진 혐오표현으로 악용될 소지가 매우 높다.

일단 전근대 티베트는 개발이 힘든 내륙 산악지역과 지나치게 높은 해발고도 등으로 문명이 발달하기 힘든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이 때문에 티베트에 잔학한 노예제가 시행된 것은 맞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이 달라이 라마의 제정일치 노예제 정권 하에서 탄압받던 티베트 인민들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해방시켰는지 살펴보자.

2010년 통계 기준 중국의 성급 및 자치구 중 가장 문맹률이 높은 지역은 티베트 자치구(37.77%)로 나왔으며 그 다음은 역시 티베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칭하이성이였다.(10.23%) # 이정도는 그나마 양반이고 지역 기준이 아닌 민족 기준으로 한 2000년 기준 통계로는 문제가 더 심각했는데 조사 시점에서 티베트족의 6세 이상(6세 포함) 전체 인구의 최종학력 비율을 살펴보면, 미취학자가 45.49%로 거의 절반에 달하는 티베트인들이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었으며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 기준으로는 ‘문맹 퇴치반’ 과정 6.07%, 초등학교 과정 35.17%, 중학교 과정 7.72%, 고등학교 과정 1.70%, 중등 전문학교 과정 2.49%, 초급대학 과정 0.95%, 대학 과정 0.38%, 대학원 과정 0.02%이다. 중국 측에서는 중국의 티베트 지배 이후 티베트인들이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고 생활 수준이 대폭 향상되었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족 및 중국 전체 인구 평균에 비하여 전반적으로 학력수준이 크게 낮았다. 15세 이상(15세 포함) 인구의 문맹률은 47.55%로서, 인구의 약 절반이 문자해독을 못했었다. 이는 중국 전체 인구 평균(9.08%) 및 한족의 문맹률(8.60%)은 물론, 중국 내 전체 소수민족 평균 문맹률(14.54%)보다도 크게 높은 비율이다. # 소련이 중앙아시아 각지의 문맹을 20년이 채 안되는 기간동안 성공적으로 퇴치한 것과 다르게 2000년 통계 기준으로 중국은 티베트를 50년을 통치하고도 문맹 퇴치에 실패하였다. 기초적인 문해 교육조차 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인민 해방을 운운한다는 자체가 코미디이다.

6. 관련 문서



[1] 출처 : 민족 / 아지 가트, 알렉산더 야콥슨 저. 해당 저서에서는 티베트의 민족 의식 발전 및 형성이 일본 및 베트남과 유사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2] 더군다가 원나라에 의해 대리국이 멸망하던 당시 난민 상당수가 태국, 라오스, 미얀마 등으로 빠져나가 태국, 라오스 등등의 토대를 닦은 상황이기 때문에 따로 독립을 주장하기 애매한 부분도 있다. [3] 애초에 달라이 라마 14세의 롤 모델이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운동 당시 온건파를 대표하던 성직자 데스몬드 투투였다. [4] 봉기 자체는 티베트 불교 승려들의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 시위가 급격히 폭력적인 방향으로 격화된 것은 티베트 망명정부 내 강경파의 영향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5] 달라이 라마 14세의 해외 방문 관련하여 무척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중국 정부이지만, 달라이 라마를 제외한 티베트 망명정부 내 여타 인사들이 한국이나 남아공, 몽골 등을 방문하는 것에는 그렇게까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6] 2023년 소년 성추행 관련해서 논란이 생기자 공식적으로 사과 성명을 발표한 바 있었다. [7] 출처 : Soldiers of the Dragon, CHINESE ARMIES 1500 BC–AD 1840 / C.J. Peers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