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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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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물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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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NG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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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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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ィルム
201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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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の外へ
201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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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らない
2012.11.28
정규 4집 일부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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ギャグ
201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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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015.05.27
정규 5집 일부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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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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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Song
201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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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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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e Thing
2019.10.14
LIGHTHOUSE
2023.09.08
싱글
アイデア
2018.08.25
折り合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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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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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思議
2021.04.27
CUBE
2021.10.18
喜劇
2022.04.08
生命体
2023.08.14
[ 주요 출연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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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 {{{#!wiki style="font-size: .85em"
'''예능''' }}} || {{{#!wiki style="font-size: .85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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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25%> {{{-1 호시노 겐의 레디컬 아워 (2013)}}} ||<width=25%> {{{-1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호시노 겐의 올 나잇 닛폰]] (2016 ~)}}} ||<width=25%> {{{-1 [[오겐상과 함께]] (비정기 / 2024)}}} ||<width=25%> {{{-1 [[호시노 겐의 음악 공론]]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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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2> {{{#!wiki style="font-size: .85em"
'''콘서트''' }}} ||
||<-2><|2> [[라이트하우스(예능)|라이트하우스]][br](2023) ||<-2> {{{-1 [[호시노 겐/공연 및 행사#돔 투어|DOME TOUR 'POP VIRUS' in TOKYO DOME]]}}} ||
||<-2> {{{-1 [[호시노 겐/공연 및 행사#리컬렉션|Gen Hoshino Concert Recollections 2015 -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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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주요 영화 / 애니'''}}} }}} ||<width=525><-3>{{{-1 [[지옥이 뭐가 나빠]](2013) '''·''' 묻지마 사랑(2013)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애니메이션)|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2017) '''·''' [[미래의 미라이]](2018) '''·''' [[죄의 목소리|罪の声]] (죄의 목소리,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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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주요 드라마'''}}}}}} ||<width=525><-3>{{{-1 [[코우노도리(드라마)|코우노도리]](2015 / 2017) '''·''' [[사나다마루(드라마)|사나다마루]](2016) '''·'''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드라마)|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2016 / 2021) '''·''' [[플라쥬]](2017) '''·''' [[이다텐 ~도쿄 올림픽 이야기~]](2019) '''·''' [[MIU404]](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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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주요 예능'''}}}}}} ||<width=525><-3>{{{-1 LIFE! 〜인생에 바치는 콩트〜 (2012 ~ 2017)}}} ||
[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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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tablecolor=#373a3c,#ddd><rowbgcolor=#083354> {{{-1 {{{#fff '''관련 문서'''}}}}}} ||
||<width=175><colbgcolor=#083354> {{{#!wiki style="font-size: .85em"
{{{#fff '''연혁 및 활동'''}}} }}} ||<width=525><-3>[[호시노 겐/생애 및 활동|생애 및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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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겐/음악 변천사|음악 변천 과정]] '''·''' [[호시노 겐/공연 및 행사|공연 및 행사]] '''·''' [[호시노 겐/디스코그래피|솔로 디스코그래피]] ([[호시노 겐/노래방 수록 목록|한국 노래방 수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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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겐/수상 경력 및 기록|수상 경력 및 음반 주요 기록]] ||
||<width=25%> {{{#!wiki style="font-size: .85em"
{{{#fff '''팬클럽 관련'''}}}}}} ||<width=525><-3>[[YELLOW MAGAZ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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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부캐'''}}}}}} ||<width=525><-3>[[니세 아키라]], [[오겐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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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이전 소속 그룹'''}}}}}} ||<width=525><-3>[[SAKEROCK]] '''·''' [[야마다 이치로(그룹)|야마다 이치로]] ||
||<width=25%> {{{#!wiki style="font-size: .85em"
{{{#fff '''그 외'''}}}}}} ||<width=525><-3>[[호시노 겐/음악적 특징 및 가치관|음악적 특징 및 가치관]] '''·''' [[호시노 겐/어록 및 평가|어록 및 평가]] '''·''' [[호시노 겐/여담|여담]] ||
호시노 겐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역대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파일:20210222_223227.jpg
스포니치 그랑프리 신인상
제67회
( 2012년)
제68회
( 2013년)
제69회
( 2014년)
히가시데 마사히로
미요시 아야카
호시노 겐
하마다 코코네
토사카 히로오미
코마츠 나나

역대 일본 아카데미상
파일:japan-academy-prize.png
신인배우상
제36회
(2013년)
제37회
(2014년)
제38회
(2015년)
니카이도 후미 외 6인 호시노 겐 외 7인 코마츠 나나 외 5인

역대 갤럭시상
파일:ギャラクシー賞_logo.jpg
라디오 DJ 퍼스널리티 상
제53회
(2015년)
제54회
(2016년)
제55회
(2017년)
오기우에 치키
(오기우에 치키·Session-22)
호시노 겐
(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무라야마 히토시
(아사카라!)

역대 CD샵 대상
파일:cd샵대상.png
대상
2015년 2016년 2017년
BABYMETAL
< BABYMETAL>
호시노 겐
< YELLOW DANCER>
우타다 히카루
< Fantôme>
2018년 2019년 2020년
요네즈 켄시
< BOOTLEG>
호시노 겐
< Pop Virus>
Official髭男dism
< Traveler>
오리사카 유타
<平成>
카네코 아야노
<燦々>

엘란도르상 신인상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95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1956년 이케우치 준코, 이시하라 유지로, 카와구치 히로시, 쿠사나기 고지로, 시라카와 유미, 스기타 히로코, 타카쿠라 켄
1957년 단 레이코, 에하라 신지로, 키타자와 노리코, 나카다이 타츠야, 시라카와 유미, 모리 미키, 츠구바 히사코, 카와사키 케이조
1958년 아사오카 루리코, 카노 준코, 아사오카 루리코, 쿠와노 미유키, 오오조라 마유미, 사토 마코토, 치노 카쿠코
1959년 혼고 코지로, 호시 테루미, 미즈키 조, 나카타니 이치로, 나츠키 요스케, 시미즈 마유미, 야마모토 토요조 }}}}}}}}}
196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1960년 아카기 케이이치로, 후지마키 준, 호시 유리코, 카와구치 토모코, 마츠카타 히로키, 미카미 신이치로, 요시다 테루오
1961년 이와시타 시마, 카야마 유조, 미타 요시코, 타미야 지로, 야마자키 츠토무, 요시나가 사유리
1962년 바이쇼 치에코, 하마 미에, 하마다 미츠오, 스가타 미치코, 치바 신이치, 야마모토 케이
1963년 이즈미 마사코, 카가 마리코, 키타오오지 킨야, 나카가와 유키, 나카오 미에, 타카다 미와, 타카하시 코지
1964년 후지무라 시호, 혼마 치요코, 마츠모토 하쿠오, 카토 고, 카야마 요시코, 마츠바라 치에코, 요시무라 지츠코
1965년 에나미 쿄코, 후지 스미코, 나이토 요코, 오가와 마유미, 타케와키 무가, 와타리 테츠야
1966년 구리주카 아사히, 구로사와 토시오, 오오하라 레이코, 야마구치 타카시, 야마모토 요코, 오오쿠스 미치요
1967년 아즈사 에이코, 쿠리하라 코마키, 나카야마 진, 오가와 토모코, 사카이 와카코, 스기 료타로
1968년 이쿠타 에츠코, 미네기시 토오루, 나카야마 마리, 오카 미츠코, 타카하시 에츠시, 타니 하야토
1969년 아츠미 마리, 오키 마사야, 오자키 나나, 타이치 키와코, 타카하시 노리코, 타치바나 마스미 }}}}}}}}}
197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1970년 하라다 다이지로, 모리타 겐사쿠, 나츠 준코, 오카다 유스케, 오카모토 노부토, 사카이 마사아키, 사토 오리에, 타케하라 에이코, 우메다 토모코, 와타세 츠네히코, 야나미 에이코
1971년 미개최
1972년 이케 레이코, 콘도 마사오미, 사카키바라 루미, 타카하시 케이코, 미후네 시로, 야마구치 카린, 요시자와 쿄코
1973년 우츠노미야 마사요, 스기모토 미키, 시가키 타로, 마츠자카 케이코, 무라노 타케노리, 야마모토 센, 타나카 마리, 후지오카 히로시, 혼다 미치코, 마키 히로코
1974년 아사다 미요코, 코즈에 히토미, 시마다 요코, 세키네 세츠코, 니시나 아키코, 하기와라 켄이치, 미우라 토모카즈, 모모이 카오리, 다이몬 마사아키, 타카하시 요코, 나카지마 유타카
1975년 아키요시 쿠미코, 쿠사카리 마사오, 이케가미 키미코, 단 후미, 시호미 에츠코, 나카무라 마사토시, 하기오 미도리
1976년 히가시 테루미, 오카다 나나, 오오타케 시노부, 다나카 겐, 카타히라 나기사, 네즈 진파치, 미츠바야시 쿄코, 카츠노 히로시, 사오토메 아이, 타키가와 유미
1977년 아사지 요코, 이와키 코이치, 에토 준, 하라다 미에코, 마야 쿄코
1978년 아라이 하루미, 아사노 유코, 이노우에 준이치, 시미즈 켄타로, 나츠키 요코, 타케시타 케이코, 타케다 테츠야, 나가시마 에이코
1979년 쿠니히로 토미유키, 나가시마 토시유키, 후지 마리코, 모리시타 아이코, 유리 치카코 }}}}}}}}}
198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1980년 쿠마가이 마미, 코테가와 유코, 시바타 쿄헤이, 마츠다이라 켄, 미야우치 준
1981년 카네다 켄이치, 칸자키 아이, 키시모토 카요코, 타키타 사카에, 히구치 카나코
1982년 카가 다케시, 사나다 히로유키, 다나카 유코, 나츠메 마사코, 후루오야 마사토
1983년 카자마 모리오, 콘노 미사코, 나카이 키이치, 나토리 유코, 류 다이스케
1984년 사토 코이치, 토키토 사부로, 나카이 키에, 하라다 토모요, 야쿠쇼 코지
1985년 이시하라 마리코, 에노키 타카아키, 와타나베 토루, 후지타니 미와코
1986년 키쿠치 모모코, 킷카와 코지, 사와구치 야스코, 야나기사와 신고
1987년 사이토 유키, 진나이 타카노리, 나카야마 미호, 야스다 나루미, 와타나베 켄
1988년 고쿠쇼 사유리, 토미타 야스코, 고토 쿠미코, 미나미노 요코, 나카무라 토오루
1989년 아소 유미, 오가타 나오토, 타카시마 마사히로, 미카미 히로시, 와카무라 마유미 }}}}}}}}}
199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1990년 이모리 미유키, 스즈키 호나미, 미나미 카호, 모토키 마사히로, 야나기바 토시로
1991년 쿠도 유키, 타카시마 마사노부, 나카지마 토모코, 노무라 히로노부, 마키세 리호
1992년 이시다 히카리, 센도 노부코, 와쿠이 에미, 나가세 마사토시, 요시오카 히데타카, 다나카 미노루
1993년 카토 마사야, 시미즈 미사, 아카이 히데카즈, 유키 나에, 카라사와 토시아키
1994년 사쿠라이 사치코, 와시오 이사코, 스미다 유키, 츠츠이 미치타카, 하기와라 마사토, 무라타 타케히로
1995년 야마구치 토모코, 스즈키 안즈, 하다 미치코, 키시타니 고로, 토요카와 에츠시, 기무라 타쿠야
1996년 토키와 타카코(대상), 츠루타 마유, 잇시키 사에, 나가사와 토시야, 타카하시 카츠노리, 시이나 킷페이
1997년 마츠 다카코(대상), 이이지마 나오코, 세토 아사카, 카미카와 타카야, 니시무라 마사히코
1998년 칸노 미호(대상), 키무라 요시노, 다나카 미사토, 아사노 타다노부, 우치노 세이요
1999년 마츠시마 나나코(대상), 카시와바라 타카시, 카네코 켄, 사카이 미키, 후카다 쿄코 }}}}}}}}}
200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2000년 나카타니 미키(대상), 이케우치 히로유키, 이시이 마사노리, 카토 하루히코, 나카무라 슌스케
2001년 이토 히데아키, 쿠보즈카 요스케, 오이카와 미츠히로, 이케와키 치즈루, 카토 아이, 야다 아키코
2002년 쿠니나카 료코, 사카구치 켄지, 다케우치 유코, 츠마부키 사토시, 후지키 나오히토, 요네쿠라 료코
2003년 오자와 유키요시, 키쿠카와 레이, 시바사키 코우, 나카마 유키에, 후지와라 타츠야
2004년 우에토 아야, 오다기리 조, 코유키, 테라지마 시노부, 나카무라 시도, 야마다 타카유키
2005년 이시하라 사토미, 이토 미사키, 나가사와 마사미, 나리미야 히로키, 야마모토 코지
2006년 이토 아츠시, 우치야마 리나, 사와지리 에리카, 하야미 모코미치, 호리키타 마키
2007년 아오이 유우, 아야세 하루카, 우에노 주리, 게키단 히토리, 타마키 히로시, 마츠야마 켄이치
2008년 아라가키 유이, 오구리 슌, 칸지야 시호리, 단 레이, 오오모리 나오
2009년 에이타, 쿠로키 메이사, 토다 에리카, 마츠다 쇼타, 미우라 하루마, 미야자키 아오이 }}}}}}}}}
201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2010년 에이쿠라 나나, 오카다 마사키, 시다 미라이, 타베 미카코, 마츠다 류헤이, 미즈시마 히로
2011년 키치세 미치코, 키리타니 켄타, 사토 타케루, 마츠시타 나오, 미츠시마 히카리, 무카이 오사무
2012년 코라 켄고, 이노우에 마오, , 하세가와 히로키, 요시타카 유리코
2013년 소메타니 쇼타, 오노 마치코, 마츠자카 토리, 타케이 에미, 모리야마 미라이, 마키 요코
2014년 아야노 고, 키무라 후미노, 히가시데 마사히로, 노넨 레나, 후쿠시 소타, 하시모토 아이
2015년 이케마츠 소스케, 키타가와 케이코, 사이토 타쿠미, 쿠로키 하루, 스즈키 료헤이, 니카이도 후미
2016년 에모토 타스쿠, 아리무라 카스미, 스다 마사키, 츠치야 타오, 타마야마 테츠지, 요시다 요
2017년 사카구치 켄타로, 타카하타 미츠키, 딘 후지오카, 하루, 호시노 겐, 히로세 스즈
2018년 타카하시 잇세이, 카도와키 무기, 타케우치 료마, 스기사키 하나, 무로 츠요시, 요시오카 리호
2019년 시손 쥰, 아오이 와카나, 다나카 케이, 나가노 메이, 나카무라 토모야, 마츠오카 마유 }}}}}}}}}
2020년대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5f5f5f><colcolor=#fede58> 2020년 카미키 류노스케, 안도 사쿠라, 요코하마 류세이, 키요하라 카야, 요시자와 료, 하시모토 칸나
2021년 카쿠 켄토, 이토 사이리, 키타무라 타쿠미, 카미시라이시 모네, 쿠보타 마사타카, 하마베 미나미, 나리타 료, 모리 나나
2022년 나카노 타이가, 에구치 노리코, 야기라 유야, 카와구치 하루나, 야마다 유키, 히로세 아리스
2023년 나카가와 타이시, 아시다 마나, 마츠시타 코헤이, 키시이 유키노, 마미야 쇼타로, 나오
2024년 이소무라 하야토, 이마다 미오, 마에다 고든, 코시바 후우카, 메구로 렌, 홋타 마유 }}}}}}}}}
}}}}}}}}} ||

역대 빌보드 재팬 뮤직 어워드
파일:빌보드 재팬 로고.svg
올해의 아티스트
<rowcolor=#000000> 2016년 2017년 2018년
AKB48 호시노 겐 요네즈 켄시
Hot 100 of the Year
<rowcolor=#000000> 2016년 2017년 2018년
AKB48
翼はいらない
호시노 겐
요네즈 켄시
Lemon

이타미 주조상(伊丹十三賞)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ffff>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이토이 시게사토
(카피라이터, 에세이스트, 게임 제작자)
타모리
( 게닌, MC)
우치다 다쓰루
(철학 연구자, 무도가, 사상가)
모리모토 치에
(아트 디렉터, 그래픽 디자이너)
<rowcolor=#ffffff>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이케가미 아키라
(언론인, 저널리스트)
릴리 프랭키
(소설가, 디자이너, 배우)
아라이 토시노리
(편집자, 인터뷰어)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감독)
<rowcolor=#ffffff>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호시노 겐
(배우, 음악가, 문필가)
이소다 미치후미
(역사학자, 에세이스트)
타마가와 나나후쿠
(낭곡사)
쿠도 칸쿠로
(각본가, 배우)
<rowcolor=#ffffff>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시미즈 미치코
(탤런트, 배우)
코이케 카즈코
(디렉터, 카피라이터)
미타니 코키
(각본가, 감독, 배우)
}}}}}} ||

역대 호치영화상
파일:호치영화제.jpg
남우조연상
제44회
(2019년)
제45회
(2020년)
제46회
(2021년)
나리타 료
( 사랑이 뭘까 / 굿바이, 입술 / 치와와)
호시노 겐
( 죄의 목소리)
스즈키 료헤이
(고독한 늑대의 피: 레벨 2)
}}} ||
호시노 겐의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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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오 스즈키 쿠도 칸쿠로 카오다 카오히코 아베 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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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도 미와코 네코제 츠바키 타무라 타가메 히라이와 카미
코바야시 키나코 나카이 치사토 아라이 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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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배우 활동 한정 소속. [A] 배우 활동 한정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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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카 사키 사잔 올 스타즈 엘리펀트 카시마시
포르노 그라피티 호시노 겐[A] 후지와라 사쿠라
후쿠야마 마사하루 YU-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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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IST
s**t kingz 타케우치 요시에 토가시 유키
AGENCY[B]
CRAVITY IVE

[A] 가수 활동 한정 소속. [B]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일본 활동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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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KEROCK|
SAKE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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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다이치
타나카 케이
노무라 타쿠시
하마노 켄타

[ 정규 및 미니 앨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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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TA|Y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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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03. 10.
[[YUTA|Y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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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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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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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08.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을 포함한 전체 음반 목록은 SAKEROCK/디스코그래피 문서 참고
<colbgcolor=#00b1eb><colcolor=#fff>
호시노 겐
[ruby(星, ruby=ほし)][ruby(野, ruby=の)] [ruby(源, ruby=げん)]|Gen Hoshino
파일:호시노 겐_티파니 원더.jpg
출생 1981년 1월 28일 ([age(1981-01-28)]세)
사이타마현 와라비시
출신 사이타마현 카와구치시[1]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68㎝, 60㎏, AB형
가족 아버지, 어머니
배우자 아라가키 유이 (2021년 결혼 ~ 현재)
학력 지유노모리가쿠엔고등학교[2] (졸업)
직업
장르
소속사 음악 아뮤즈 (2015년 ~ )
배우|극단 오토나케이카쿠 (2003년 ~ )
{{{#!folding [ 이전 소속사 펼치기 · 접기 ]
레이블 SPEEDSTAR RECORDS[3](2011년 ~)
데뷔 음악 2003년 3월 10일 SAKEROCK
정규 0집
(데뷔일로부터 [dday(2003-03-10)]일, [age(2003-03-10)]주년) (그룹)
2010년 6월 23일 정규 1집
(데뷔일로부터 [dday(2010-06-23)]일, [age(2010-06-23)]주년) (솔로)
배우 무대공연: 2001년 「ワークインタイムマシン」
미디어: 2003년 「WATER BOYS」

(미디어 데뷔일로부터 [dday(2003-07-01)]일, [age(2003-07-01)]주년)
활동 2000년[4] ~ 현재
담당 악기 기타[5], 마림바[6], 만돌린[7], 밴조[8], 산신[9], 드럼[10], 베이스 기타[11], 글로켄슈필, TR-808[12], 토이 피아노, MPC
건반 악기[13], MIDI Recording
대표작 음반 | YELLOW DANCER, POP VIRUS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 츠자키 히라마사
MIU404 - 시마 카즈미
부캐 니세 아키라, 오겐상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4]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시나 웨이보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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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더 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b1eb><colcolor=#fff> 팬클럽
멤버십
(前) YELLOW PASS (2016년 ~ 2023년 4월 23일)
(現) YELLOW MAGAZINE+ (2023년 6월 1일 ~)
한국에서의 별명 호시노 재석[15], 최악의 가수[16], 브로콜리[17]
그룹 SAKEROCK (2000 ~ 2015)
야마다 이치로
좋아하는
사람
'보통의 감각'을 잊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는 사람, '그 사람밖에 낼 수 없는 표현'을 내는 아티스트
싫어하는 것 스노비즘 부심, 세간에 자신을 더 크게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 사행성 도박[18]
취미 음악 듣기, 영화·다큐멘터리·드라마·애니메이션·라디오 감상, 게임, 책 읽기
(관련된 상세 내용은 호시노 겐/여담 문서 참고)
}}}}}}}}} ||

1. 개요2. 음악가
2.1. 생애 및 활동2.2. 음악적 특징2.3. 음악 스타일 변천 과정2.4. 디스코그래피2.5. 콘서트 및 이벤트2.6. 음악가로서의 호시노 겐
2.6.1. 흑인음악과 J-POP의 일체화2.6.2. 상당한 행동력과 작업량2.6.3. 빛 속의 어둠과 고독
2.7. NHK 홍백가합전
3. 배우
3.1. 연혁3.2. 필모그래피
3.2.1. 무대3.2.2. 영화3.2.3. 드라마3.2.4. 애니메이션3.2.5. 나레이션
3.3. 이야깃거리
4. 작가
4.1. 저서 / 대담집4.2. 연재
5. 미디어 활동
5.1. 예능 / 교양5.2. 라디오5.3. 광고 / CF5.4. 잡지 표지5.5. YELLOW MAGAZINE+
6. 연예계의 돌연변이7. 수상 경력 및 음반 주요 기록8. 배우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
8.1. 관련 이야깃거리
9. 사건사고
9.1. 아베 신조 총리 관련 피해
10. 어록 및 평가11.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호시노 겐 일렉기타.jpg
{{{#!wiki style="margin: -20px -10px -16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b1eb,#033E8C>
세계가 점점 변화하면서 제 역할도 계속 달라지겠죠. 그 순간순간마다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싶습니다.

}}}||
일본 멀티 엔터테이너.

싱어송라이터,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19], 편곡가, 음악 프로듀서, 비트메이커, DJ이며, 배우, 문필가, 라디오 진행자, 방송인, 유튜버[20]이다.

배우와 음악, 집필, 이 모든 분야에서 인디 및 무명 생활을 다 거쳐[21] 당시 대중가요 및 연예계를 꽉 잡고 있던 일본 아이돌 시장의 튼튼함 속에 파죽지세로 올라와[22] 음악, 배우, 방송인, 작가 이 모든 부분에서 상을 타고 메가히트친 대표작들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모두 다 성공해본 입지전적 멀티 엔터테이너이다.

상당히 암흑기였던 '2010년대 일본 음악'의 국민적 팝 아이콘 중 한 명이었고, 그 당시를 이야기할 때 호시노 겐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력이 상당했었던 인물이라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샤라웃을 받고 있으며, 요네즈 켄시와 함께 일본 솔로 싱어송라이터 입지 확립의 재시작을 열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2019년 종합 33만명을 동원한 '5대 돔 투어'를 예매 당일 전석 매진시키며 일본 내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 중 한 명[23]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부터는 음악 및 배우 활동에 이전과 다른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으며, 2021년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을 발표해 큰 화제가 되었고, 2023년 현재도 메이저 멀티 엔터테이너 중 한 명의 입지[24]를 가지고 있다. 호시노 겐의 라디오 청취자가 10대부터 60대까지 있을 정도로 청년층부터 중장년층까지 고루고루 팬이 많은 연예인이기도 하다.

2. 음악가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033E8C>
'음악적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본다면 일본의 201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은 호시노 겐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뮤직 매거진 2021년 3월호, ' 2010년대 일본 음악 앨범 베스트 100 특집'의 24위 YELLOW DANCER 선출에 관한 코멘트 #
}}}||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033E8C>
후지하라 사토시: 홍백가합전에서 호시노 겐님을 처음 만나서, 저희 CD를 드리고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중략)

나라자키 마코토: 저는 긴장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마츠우라 마사키: (저도) 엄청 긴장해서... 학창시절부터 팬이었고, 노래방에 가서도 (그의 곡을) 노래했고, 그의 존재는 저에게 있어서 마치 같은 존재기 때문에요.

오오이즈미 요: 다가가기 힘든 그런 아우라 같은 거랑 다르지 않나요? 후쿠야마 마사하루처럼 그런 것도 아니고.

후지하라 사토시: 그 분위기는.. 엄청나게 대중적이고 유명한 음악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건 그 사람밖에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무서워요.

Official髭男dism이 출연한 2022년 6월 23일자 SONGS
}}}||
그가 2000년대에 데뷔한 후 그의 음악들은 당시 일본에 자리잡혀있는 대중적 음악과는 항상 거리가 계속 있고 변화를 추구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암울했던 2010년대의 팝 아이콘이 되었었고,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력이 상당했었다. 이후로도 Official髭男dism, 요네즈 켄시, YOASOBI, Creepy Nuts, imase 등 여럿 후배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에게 샤라웃을 받고 있다.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발매한 그의 대표적인 앨범들인 정규 4,5집 YELLOW DANCER Pop Virus 앨범은 2010년대 J-POP 메인스트림 팝 씬에서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졌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 이 두 앨범 모두 상업적 성공을 크게 이룬 동시에 뮤직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일본음악 명반 순위에 각각 95위, 138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다만, 앨범 판매량[25], 차트 성적, 그리고 음원 다운로드 수[26]에 비해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엄청나게 낮다. 그의 최전성기가 음원 다운로드 시대의 후반부 끝자락이었기도 하고, 해외보다는 일본 내에서만 크게 히트친 것 또한 한 몫하지만,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마치 뮤직비디오를 앨범 광고로 쓴 듯한, 노래를 건너뛰고 대신 나오는 중간 앨범 광고[27]와 곡이 끝나고 나오는 호시노 겐의 개인 코멘터리.[28]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손꼽아 기다리는 컨텐츠가 되었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음악가 측면에서, (사랑, 2016), Pop Virus(2018), 그리고 스파이 패밀리 애니메이션 1기 1쿨 엔딩곡인 喜劇(희극, 2022)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SUN, アイデア(아이디어), 不思議(불가사의), Week End 등이 그 다음으로 유명한 편이다.

그러나 음악가적인 측면으로만 한정한다면 2020년대인 지금 한국에서의 선호도는 그가 쌓아온 음악적 커리어에 비해 적은 편이다. 전반적인 일본 문화를 잘 알고 있던 한국인들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J-POP이 가장 인기없을 때 일본 내에서 메가히트친 뮤지션이고, 그가 하는 음악이 전반적으로 '2020년대 한국 J-POP 붐 이후에 한국에서 생긴 메이저 J-POP 주요 소비층'의 전반적인 수요에 잘 맞지 않는다[29]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2.1. 생애 및 활동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생애 및 활동 문서
2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문서 목차

1. 데뷔 전
2. SAKEROCK 활동 (2000 ~ 2015)
3. 솔로 데뷔와 지주막하출혈 (2010 ~ 2014)
4. ' 옐로우 뮤직'의 대중화와 대히트 (2015 ~ 2019)
5. 번아웃 증후군과 코로나 사태와 재시작 (2019 ~ 2021)
6. 마음 속 감기와 변화 모색 (2022 / 2023)
7. 2024년 ~

2.2. 음악적 특징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음악적 특징 및 가치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아래 나온 내용들은 분리된 문서의 일부 발췌 또는 요약이다.

솔로로서 지금까지 발표한 극히 일부 곡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곡들과 음반들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했다.[30]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이기도 하고, 인디 밴드 SAKEROCK의 프로듀서 역할을 하기도 했었으며, 이후로도 전반적인 편곡 및 프로듀싱을 담당하다보니, 호시노 겐 본인이 다룰 수 있는 것만 하더라도 2023년 기준, 기타, 마림바, 만돌린, 드럼, 삼선, 밴조, 베이스 기타, TR-808, 건반 악기, 신디사이저, MPC, DAW 등 다양하다. 다룰 수 없는 현악기와 관악기 등은 편곡할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는 편.

가장 먼저 시작한 악기가 드럼이라 기본적으로 리듬과 비트를 중요시하며, 전체적으로 음악의 사운드와 악기와 리듬을 상당히 복잡하거나 컬러풀하고 풍부하게 사용하면서도 여유롭거나 부담없이 들을 수 있다[31]는 큰 특징이 있다. 애초에 그의 맨 처음 활동 시작 및 데뷔 초기(2000년) 장르는 이지 리스닝의 하위 장르인 엑소티카(Exotica)[32] 금관악기, 현악기, 건반 악기, 타악기 등 세계 여러 다양한 악기를 여럿 사용하고 세계 여러나라 음악[33]에서 영향을 받은 얼터너티브한 팝 음악, 그리고 영화 및 무대에 사용되는 음악인 오리지널 스코어였기도 하다. SAKEROCK이 전반적으로 구성과 재즈 구성의 인디 밴드(각각의 멤버들이 여러 악기를 할 수 있었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밴드의 초~중기작들이 록 또는 재즈가 아닌 팝 음악으로 분류된 요인이기도 하다. 인디 밴드 시절의 곡들이 전반적으로 복잡하고 여러 장르가 섞여있으며 뭔가 어깨 힘 빠진 분위기의 곡들이 많았는데[34], 그 이후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서는 다양한 악기가 변칙적으로 들어가거나, 미묘한 변화를 계속 주면서 곡이 진행되지만 곡이 쉽게 술술 들리는 안정감을 준다.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건강함과 담백함 속, 그의 고집이 담겨있는 리듬과 비트와 이색적인 사운드'가 그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
[ 자세한 내용 펼치기ㆍ접기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ffffff,#191919> 호시노 겐 「POP VIRUS」를 고찰, 「일본어 팝의 왕도에 숨어 있는, 국민적 스타의 트릭」
호시노 겐은 원래 인디밴드 SAKEROCK의 리더였던 셈이고, 호소노 하루오미의 노래를 즐겨 찾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로, 오리엔탈한 멜로디와 많은 소리가 담긴 컬러풀한 사운드를 좋아하는 사람에 가깝다.「 Stranger」나 「 YELLOW DANCER」앨범을 들으면, 그런 성향이 잘 들린다. 그러나, 「 POP VIRUS」앨범에서의 악곡은 기본적으로 리듬과 노래만으로도 성립할 것 같은 곡이 많아, 그 뼈대는 실로 심플하고 튼튼하다. 거기에 다양한 악기가 더해지는 셈이지만 많은 악기가 동시에 덜컹거리는 순간은 거의 없다. (중략)

그러니까 여러 악기들이 들어오고 컬러풀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참 깔끔하고 공간적으로는 상당히 심플하면서도, 수수함은 없다. (중략) 건반이 인상적으로 움직이거나 베이스나 드럼에도 미묘한 변화가 있고, 그에 수반해 코러스도 변칙적으로 들어가 있어, 반복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쉽게 술술 들린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사소한 변화가 여러 곳에 꽂혀 있어 안정감을 풍기면서도 위화감을 아주 조금만 풍긴다. (후략) ||

자신의 이야기가 너무 암울하고 설명을 나열하는 듯한 가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가사에 본인의 과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넣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하며, 그 대신 '본인의 이야기에 기반하여 생성된 가치관'으로, 본인이 느끼는 풍경과 세상을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치 시처럼 특정 주제에 대해 그가 바라보는 이미지(심상)을 떠올리게 한다. 문인다운 시적인 가사로 '문과 여고생들의 아이돌'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팝 적이면서도 댄스 음악의 요소를 넣어 몸이 가볍게 움직이는 곡들은 많지만, 그 중 일부에는 특색이 강한 춤 또는 안무가 들어가 있다. 일본의 국민 춤 중 하나로 자리잡혀 수많은 커버 영상을 파생시킨 유명한 2016년의 ' 코이댄스' 외에도 여러가지 예시가 있다.[35] 이와 관련하여 가사에 '춤추는, 춤추자'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시적인 정취나 메세지성/상징성을 내포한 가사가 많기에 이 단어 또한 특정 뜻을 함축한 표현으로 종종 쓰인다.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033E8C>
세상을 넓게 보며 사소한 사건에도 세심한 관찰력을 발휘하는 싱어송라이터 호시노 겐은, 대중적인 팝 록을 바탕으로 재즈, 힙합, 일본 전통음악, 일렉트로닉 및 이색적인 사운드를 다양한 악기를 버무려 흥미로운 사운드를 빚어내는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음악을 통해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걸 선택하는 자신의 소신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
그의 무서운 점은, 누구보다 세상의 훌륭함을 믿는 동시에, 누구보다 세상을 ' X같다'고 저주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줄 것 같은 부드러움과 한순간에 베어버릴 것 같은 잔혹함, 애정과 살의, 절망과 희망, 상냥함과 두려움. 그 양면성을 모두 숨김없이 받아들이고 흡수해 혈육으로 만드는 음악가, 그게 호시노 겐이다. #
}}}||
본인이 직접 언급했듯이 가창력이 좋은 보컬리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음악 생활을 계속 해오며 점점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음역도 넓어졌다. 고음은 대체로 가성으로 처리하고, 보컬이 고음을 질러 대중들에게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노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읽어주기 창법'을 자주 사용한다.[36] 중저음이 꽤나 편안하게 다가오는 음색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가성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청중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다른 의미로 보컬의 기량이 사용되는데, 대체로 가수가 악기 중 하나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목소리를 포함한 코러스를 상당히 다양하게 사용할 때가 많은데, 호시노 겐은 예전 밴드에서 트롬본 마림바의 음색을 돋보이게 해주는 코러스(서브 보컬)을 자주 했기도 하고[37], Dead Leaf 등이나 (최근의 작업물 중에서는) 異世界混合大舞踏会(이세계혼합대무도회)나 生命体(생명체)에서 그 예시가 뚜렷하고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 외에도 자주는 아니지만 반주의 박자와 보컬의 박자가 다른 경우가 가끔 있어 어긋나게 부르면서도 상술한 그의 특징 때문에 이지 리스닝으로 작용할 때도 있으며, 라이브할 때 자신의 목소리 음량을 곡의 진행에 맞춰 줄일 때도 종종 있다. 전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악기나 사운드에 더 집중하는 곡들이 많은 편.

깨끗한 음질로 전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 노이즈가 맞는 곡이라면 음악에 일부러 잡음이나 노이즈를 남기거나, 역재생을 넣을 때가 있다. 특정 물건의 소리나[38], 녹음 및 믹싱을 잘못했을 때의 그 이질적으로 튀는 공기 소리 같은 것[39]이나 악기나 여러 사운드들의 역재생[40]이 자세히 들어보면 군데군데 숨어있다. 그 외에도 여러 실험적인 요소도 집어넣는 경우가 많은데, 밴드 시절부터 생활 소음이나 여러 효과음과 함께 녹음해보는 건 물론이고, 도입부를 본인의 핸드폰으로 녹음한 걸 곡에 그대로 쓰거나, 노래 중간에 기타 솔로 대신 기타 튜닝 소리를 넣는다던가, 대화소리를 넣어본다는 등이 있다.

솔로 초기 음악적 변화의 첫 번째 과도기를 거쳐서부터는 긍정적인 태도와 밝고 희망찬 사운드에 맞는, 전체적으로 보면 즐거움을 나타내거나,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밝고 긍정적인 메세지를 주는 노래가 많아졌다. 그러나 그 건강한 사운드 속에는 상당히 어두운 부분이 계속 숨어있다. 마냥 '낙관적인 밝음'이 아니라, 밝음 이면의 어두움을 인정하고, 암울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가사를 통해,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밝은 사운드 속 어두움을 암시하거나, 밝음을 진지하게 다루거나 부각시키기 위해 어두움을 표현하거나, 어두움과 밝음은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라 궤를 같이 한다 등을 이야기한다.[41]

R&B, 소울, 힙합 등 블랙 뮤직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J-POP에 녹여내어 옐로우 뮤직이라는 자신의 장르를 개척해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블랙 뮤직을 그대로 재현하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필터를 거쳐서, 일본인에게 친숙한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옐로우 뮤직' 이라는 장르를 독자적으로 창출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033E8C>
'옐로우 뮤직'이라는, 제가 마음에 그리고 있는 장르나 언어를 좀 더 침투시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네요. 저는 원래 블랙뮤직을 좋아하는데, 그런데 블랙뮤직을 따지는 것만으로는 그게 우리 음악이 될 수 없다는 난제가 마음 속에 계속 있어서요.

잘 따라하고 잘 흉내내면 칭찬을 받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 우리 음악이 뭘까 생각했을 때, 여러 나라 음악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필터'를 통과시킨 음악, 옐로우 뮤직이라는 것을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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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Virus 이후로 그는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편협한 시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무지했음을 인정하며, 현재는 더 이상 이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현재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계속 현재 시대상을 반영하여 그가 영향을 받은 다양한 음악 장르를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재해석하거나 계승하고 있다.

자신의 히트 친 음악을 반복하는 걸 '뭔가 설레지 않는다'며, 비록 대중적인 반응이 좋지 않더라도, 여러 음악적 도전 및 도전하는 방향성의 다양화를 좋아하며 꾸준히 많이 하고 있다. '시대는 항상 변화하고 있고, 내가 하는 음악이 똑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걸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의 가치관이 반영된 부분.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같은 '가볍게 춤추기 좋은 팝 적인 곡'으로 의뢰가 들어와 제작에 착수했던 (코이)와 異世界混合大舞踏会(이세계혼합대무도회)는 전혀 다른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다.

2.3. 음악 스타일 변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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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인 지금까지 호시노 겐의 음악 활동은 23년, 솔로 음악 활동은 약 13년 정도로, 처음 나올 당시에 '슈퍼 루키'나, '천재'는 전혀 아니었다. 시대가 계속 변화함에 따라, 제자리에 안주하는 걸 싫어하고 변화를 계속 추구하는 그의 음악적 가치관 특성상 그의 음악적인 스타일은 계속 변화해왔다.

그의 곡들은 세부적으로 본다면 아주 다양하게 섞여있지만, 아주 최소한으로 간략화해보자면 전체적으로 호소노 하루오미, 재즈, 펑크, 디스코, 힙합, 모타운, 네오 소울, R&B 등 다양한 장르 및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받고, 오키나와 음악, 엔카 등 J-POP의 특징을 넣으며 다음과 같은 수순을 밟고 있고, 더 나아가 2020년대 이후 최근에는 더욱 더 여러가지 변화를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42]
{{{#!wiki style="margin: -8px -5px 2px" <tablebordercolor=#cc0000><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fff,#191919>
(솔로 데뷔)
{{{#!wiki style="margin: 0px -5px -7px"
어쿠스틱, 포크 록, 소울, 록 발라드
(2010 ~ 2012)
시의 과정 (2010 ~ 2011)

멜로디의 과정 (2012 ~ 2014)

사운드의 과정 (2015 ~)
과도기 (2012 ~ 2013)
( 지주막하출혈)
댄스 팝, 디스코, 펑크, 소울, 팝 록 등
(2014 ~ 2018)
}}} }}} ( 코로나 사태)[43]
{{{#!wiki style="margin: 2px -5px -8px"
<rowcolor=#083354,#abd6f6>
DAW를 통한 악곡 제작( 새시작)과 다양한 음악 (2020 ~ )
}}}

2.4. 디스코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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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작품 참여곡

음악의 역할이랄까, 예를 들면, ' 주제가가 뭘까?'라고 묻는다면 프로모션을 위해서는 사실은 아니고. 그때까지 있었던 모든 것을 그 악곡을 들으면 생각이 나서, 자기 안에서 정착시키고, 그 작품을 자기 안에 도입하는 작용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무엇인가? 라고 하면 물론 스태프분들을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엔딩 크레딧에 왜 주제가가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그 악곡만 들어도 그 영화나 작품의 여러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고... 그러니까 저의 악곡이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작품이) 이전보다 더 자리 잡겠죠. 그래서 그게 전체적으로 작품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건 넷플릭스가 가진 미디어 특성에 매우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넷플릭스 프로그램 라이트하우스에서 음악 제작 결정을 직접 한 이유에 대한 호시노 겐의 대답
솔로 명의만 포함. (그 작품에 배우 또는 출연진으로도 출연한 경우는 연도 옆에 ★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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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노래방 수록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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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콘서트 및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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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음악가로서의 호시노 겐

2.6.1. 흑인음악과 J-POP의 일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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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 뮤직과 변화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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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뮤직도 J-POP도 둘 다 좋아하기에, 어느 쪽이든 적당히 하고 싶지 않았다.
호시노 겐의 에세이, 생명의 차창에서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033E8C>
여러분은 호시노 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는 캐치함을 구실로 한 변태 뮤지션, 말하자면 센스 덩어리다. 일본과 서양을 불문하고 여러가지 음악을 흡수해, 그것을 제대로 팝에 담아내는 뮤지션. 누구나 하고 싶어도 잘 할 수 없는 것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뮤지션은 대부분의 경우 일반인보다 더 많은 음악을 듣고 있다. 재즈, 클래식, 펑크, 일렉트로니카, 민족음악 등등. 그리고 그걸 그대로 아웃풋하고, 결과적으로 팔리지 않는 패턴이 대부분이다. 일본과 해외는 음악적 토양이 전혀 다르고, 대다수의 뮤지션들은, '해외에서는 저렇게 센스 있는 음악이 팔리고 있는데 왜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이해되지 않는 것일까?'라고 대체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재즈나 클래식, 일렉트로니카 등을 일본에서 이해되는 팝에 담아내면 된다. 그런데 그걸 대중적으로 히트시키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호시노 겐은 그것을 계속 해 버린다. 일본인 누구나 마음을 여는 멜로디를 만들어 내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어레인지를 넣어 오는 것이다.

호시노 겐의 최강 시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었던 참에 출현한 것이 요네즈 켄시. 여기서부터는 이들의 신곡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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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20px -10px -16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033E8C>
POP VIRUS 앨범은 "'음악적으로 실험적인 노래'는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단순한 변명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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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뮤직을 흡수하거나 차용하거나 해서 고유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구축하는, 일본 비주류 및 인디음악씬에서 왕성하게 불고 있던 움직임'에 호시노 겐 또한 그 일원이었다. 그보다 더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음악작품들은 인디씬에 많지만, 호시노 겐은 '옐로우 뮤직'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기존 블랙뮤직에서 그만의 필터를 통과시켜 독자적인 해석을 가미한 동시에 일본의 대중음악 및 상업음악적 색채까지 적절하게 추가하여 일본의 일반 대중들과 매니아적인 음악팬들을 모두 고려한 최대공약수적인 음악을 개척해나갔다.

2011년 싱글 1집의 수록곡인 湯気(수증기)를 시작으로, 2013년 싱글 6집의 곡인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까지 단순히 '취미'에 비슷하게 도전해오다가, 지주막하출혈 완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그의 음악 생활인 싱글 7집 Crazy Crazy/桜の森부터 정규 4집 YELLOW DANCER를 거쳐 정규 5집 Pop Virus까지의[49] 그 결과물들은 그의 목표를 보여주며 꽤나 성공적이었다. 이윽고 당대 일본의 아이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중적 네임드 팝 아이콘이 되었으며, 여럿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거나 샤라웃을 받는 뮤지션이 되었다. 그는 현재, 이전까지 자신이 내세웠던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편협한 시각이었다는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지만, 이 단어와는 별개로 실제로 이 당시 그의 작업물들은 상업적 대중 음악씬은 물론이고, 인디 음악씬을 포함하여 설명할 때도 종종 사용되는 예시이다.
cero의 「Obscure Ride」와 호시노 겐의 「 YELLOW DANCER」, 이 2편은 양자의 디스코그래피에 있어서 분명한 전환점이며, 블랙뮤직의 흡수에 크게 방향을 튼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라고 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중략)

호시노 겐의 『YELLOW DANCER』와 더불어 cero의 『Obscure Ride』의 선행곡의 제목이 'Yellow Magus'였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인 동시성 현상이지만, 옐로우라고 의식적으로 자칭함으로써 블랙뮤직에 대한 거리감을 강제로 해방시킨 것, 또 그 대담함과는 달리 사운드 창조를 쿨하게 마주한 것, 양자의 그러한 도전이야말로 돌파구가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일본 팝 음악의 지평을 개척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Obscure Ride』와 『YELLOW DANCER』에 깃든 반J-POP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악곡 전개나 사운드 메이킹, 전자에 감도는 도시·도쿄의 느낌이나, 후자에 달라붙는 가요의 맛이 동거하는 모습은, 지극히 앰비밸런스[50]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2023) 연이어 출현하는 카오틱하고 팝적인 소리를 내는 젊은 음악가들의 삐뚤어진 작품을 접하면 이 당시 갑자기 생겨난 이질적인 작품군이 상기되는 것이다. #
호시노 겐이 POP VIRUS(2018)로 그린 '팝'은 혁신적인 것이다. 타이틀 곡인 'Pop Virus'에서 적은 '새기는 한 박의 영원을'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은 비트가 음악을 형성한다는 것에 특히 의식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블랙 뮤직을 독자적인 해석으로 자신의 음악에 도입하면서, '옐로우 뮤직'을 만들어 나간다고 하는 호시노 겐의 대처. 그 블랙뮤직 자체가 애초에 시대와 함께 변해가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옐로우 뮤직' 또한 진화해가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시노 겐은 당연한 듯 힙합 비트를 민감하고도 자연스럽게 팝과 댄스 뮤직에 도입해 왔다. (중략)

시대를 비추며 변화를 거듭해 온 비트의 트렌드. 그러나 거기에는 변함없는 블랙 뮤직의 유전자가 이어져 오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전세계에 계속 확산되는 '팝'의 '바이러스'라고도 할 수 있다. POP VIRUS는 그러한 마음이 담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순수종보다 잡종이 생명력이 강하도록, 「 YELLOW DANCER」를 거쳐 탐욕스럽게 하이브리드의 사운드를 요구해 가는 것으로, 이번에 호시노 겐이 확산하려고 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앞으로도 또 변이, 진화, 강화해 나갈 것이 약속되어 있는 소리다. #
호시노 겐이 몇 년 전 ‘ YELLOW DANCER’(2015)와 ‘ POP VIRUS’(2018)를 통해 부단히도 J-POP과 블랙뮤직의 일체화를 꾀했던 것처럼, TOMOO의 첫 정규작 ‘TWO MOON’(2023) 역시 이 리드미컬한 음악적 유산을 자연스럽고도 사뿐히 일본의 정서 위에 덧대어 놓는다. (후략)
- 황선업 대중음악평론가 #
또한 지금의 인디 음악씬의 융성을 세세하게 살펴보면, SAKEROCK도 포함한 2000년대 그 시기 작품의 영향들이 많은 동시에, 최근에는 cero 등의 밴드 색채를 풍기는 밴드가 일반적이 되었다. 또한 호시노 겐이 2000년대 데뷔 극초기부터 항상 이야기해왔었던, 호소노 하루오미의 영향을 이야기하는 젊은 밴드가 증가했다. 이는 '호시노 겐이 한창 활동할 당시에 항상 이야기했으나 잘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생각이 이제는 점차 일반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6.2. 상당한 행동력과 작업량

호시노 겐은 어떤 사람인가? (중략) 제가 대표이사로 있는 소속사인 KAKUBARHYTHM[51]에서는 겐군의 음악 전반의 일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에 한정된 이야기를 하자면, (중략) 정말 음악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습니다. 그다지 열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마음은 굉장한 끓어오름과 하고싶은 일이 넘쳐나곤 합니다. 옛날에도 "카쿠바리씨, 이런 걸 하고 싶어요"라고, 당시의 우리에게 있어서는 조금 큰 목표도, 실제로 곧바로 실행해보고 달성해 오거나 해요. (중략)

재능도 물론이지만 자신 안의 목표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행동력과 확고한 의지가 있습니다. 아, 몇 번이나 들을 수 있는 악곡의 퀄리티와 내구성, 절묘한 어레인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것도 필수로 주목할 점입니다.

정말 잇달아 아이디어도 나오고, 작품을 재미있게 하는 것, 작품으로서 얼마나 좋게 할 것인가 하는 데에 타협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좋아진다면, 토가 나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딪힙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전해져 가는 것의 중요성도 이해하고 있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작년 9월 정도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밤새 한 후 아침에 '데니스'에서, 겐 군과 '궤도 수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겐군은 "역시 끝까지 해낼 수 있지만, 그만큼, 냉정하게 궤도 수정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해서, 이 밸런스 감각이야말로 호시노 겐이라고, 소속사 사장이 소속사 아티스트를 너무 칭찬하는 감상이지만(웃음), 굉장히 감탄하며 영향을 받아 '담대하게 하면서, 궤도 수정도 확실히!'를 사훈으로 했던 것입니다(웃음).
POPEYE 2013년 3월호
'뭔가 특정 일을 알아가본다던가, 할 때는 업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제일이다'라고 하는 제 지론이 있어서요. 저는 게으르기 때문에 업무가 아니면 잘 하지를 않아서(웃음). (중략) 또 저한테 하는 버릇이 있는데, 저에게 압력을 가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야 제대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그가 이때까지 걸어온 행보 때문에 세간에서는 그의 끈기와 행동력 자체를 그가 원래 가지고 있는 예체능적 재능보다 더 크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52]

여러 일을 하는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연예계에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타 전업 아티스트들이나 싱어송라이터들의 작업량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작업량이 많으며, 일본 내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 중 한 명이 되어버린 이후에도 계속해오고 있다.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을 직접 계속 하고 있고, 라디오 진행, 집필, 본인이 진행하는 여러 방송, 영상 기획 및 연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운드클라우드 및 유튜브 채널과[53] 광고 및 예능까지 하고 있기도 하며, 필모그래피는 같은 세대의 전업배우에 비하면 조금 적은 편이지만, 배우업도 계속 하고 있다. 또한 팬들과의 이벤트나 공연 라이브, 토크 스트리밍 라이브도 종종 하고 있으며 콜라보나 협업 하는 사람들 또한 그의 멀티 엔터테이너적 행보 때문에 여러 방면에 걸쳐있다.

더군다나 연기 활동은 그 배역에 대한 해석과 몰입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풍경과 이미지를 담아내는 그의 음악 제작 활동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喜劇(희극)을 만들고 있었던 당시 '17세의 제국'이라는 짧은 드라마에 참여했는데 이 드라마 촬영 당시에는 희극 악곡 제작을 하나도 잘 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喜劇(희극) 속 풍경 및 인물들과 17세의 제국에서 그가 맡았던 '타이라 키요시' 배역은 완전히 정반대의 성향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으로 솔로 데뷔 13년 차인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리믹스나 피쳐링, 콜라보, 음원으로 내지 않은 CM음악 등을 제외하고 '정규 5개[54]에, EP같은 곡 횟수를 가진 싱글 13개, 디지털 EP 2개, 디지털 싱글 9곡'이다. 물론 싱글 수록곡 중 일부가 정규 앨범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인디밴드 활동을 포함하여 20년을 보면 여기에다가 밴드 명의로 발매한 '정규 6개, 미니 앨범 1개, 사운드트랙 EP 5개'가 추가되는 셈이다. 거기다가 현재까지도 1년에 한 곡은 어떻게든지 무조건 만들어야하는 소소한 이벤트도 있다.

또한 호시노 겐의 초~중기 싱글 수록곡들 중에는 'House ver.'이라고 표시된 곡들이 존재하는데, 음악 장르의 하우스가 아니라 '집에서 혼자 하루만에 만들었다'는 표시이다. 솔로 초기 예산이 없었을 때 '어떻게 하면 싱글 앨범의 곡 수를 늘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노 게런티로 집에서 혼자 만들어본다는 게 하우스 버전의 기원이며, 하룻밤 사이에 순발력으로 만드는 그런 걸 자신만의 룰로 정했다고 한다. 이 시리즈의 곡들은 극초기 곡들을 제외하면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TR-808소리가 같이 나온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55]

고등학교 시절 독립 후부터 여러 아르바이트, 밴드 생활, 프리랜서 배우, 집필 다 병행한 건 물론이고, 뜨기 전까지 '재능이 없다'와 '하나에만 집중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었지만, 그때 당시 소속사에는 '이런 일이 직접 왔다' 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스스로 직접 발로 뛰며 일을 찾고 일을 하고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다만 이런 행동력이 그에게 있어 안 좋은 영향을 끼칠 때도 있었는데, 그가 솔로 데뷔 초중반에 걸렸던 지주막하출혈은 3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수면 시간을 엄청나게 줄여가며 몸을 혹사시키고 여러 방면의 작업과 일을 계속할 때 걸린 병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예전 노래들 가사들을 보며 심적으로 위안을 받고, 여러 다른 노래들을 들으며 투병생활을 견뎠고, 이 지주막하출혈 투병생활 이후 그의 인생관은 변화를 맞이하고 메이저 히트 가수로 점점 올라가게 되는 작용이 되었기도 하다.
아침부터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시간 음악 레코딩을 하고 나서 닛폰 방송에 온다. 옆에서 봐도 완전히 지쳐 있다. 그런데도 방송에 임하고, 즐기고, 오히려 기운을 차리고 돌아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그때 내 자신이 얼마나 편하게 응석 부리고 있는지를 통감한다. 호시노 씨의 앞에서 바쁘다는 등의 말은 절대로 할 수가 없다. (중략)

일이 바빠져서 대충 하게 될 때, 언제나 호시노 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더 바쁜데도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이시이 히카루(전 올 나이트 닛폰 디렉터)의 에세이
그의 행동력은 YELLOW DANCER Pop Virus로 음악적 측면, 상업적 측면 모두 대히트치고, 참여한 여러 드라마가 히트치며 30대 중후반에 뒤늦게 성공한 이후에도 계속되는데, 2019년 번아웃 증후군이 왔을 당시 '그것을 타파할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는 그 결과물로서 Same Thing EP를 발매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또한 2020년 코로나 사태로 대외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오히려 이 코로나 사태의 위기를 기회삼아 40살에 DAW MIDI 작곡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고 그 작업에 몰두하며 그에게 있어 또 다른 새로운 재시작을 표방하는 여러 작업물을 냈다. 실제로 호시노 겐의 2021년 이후 노래는 DAW로 제작된 것이 많은 걸 감안하면, 그의 전성기 때 만큼은 아니지만, 그가 10~20살 차이나는 후배들과 같이 아직까지 현역으로 계속 뛰게 만들어준 또 다른 발판이 된 셈.

2021년에는 결혼까지 해서 작업시간이 더 줄어들었고, 40대가 된 2020년 이후부터 컨디션 관리에 예전보다 탄력이 덜 붙으며, 생활에도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작업량은 줄어들었다. 이제는 본인만의 오리지널 곡들보다는 의뢰형식의 곡들을 많이 만들고 있으나 '의뢰를 받아 일을 만들면 곡을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의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가장 위험했을 때 光の跡(빛의 흔적) 악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면서 극복해나갔고 이후 꽤 건강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2.6.3. 빛 속의 어둠과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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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속에 어둠이 있는 호시노 겐
어둠 속에 빛이 있는 요네즈 켄시 #
인트로 반주가 울리기 시작하자 리듬에 맞춰 춤추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수만 명이 따라 불렀다. 콘서트장이 흔들렸다. 압도적인 퍼포먼스. 그러나 의 얼굴 저편은 늘 쓸쓸해보였다. (중략)

그의 댄스, 무대 공연, 근사한 노랫소리, 즐거운 음악, 그리고 왠지 모르게 눈동자 깊숙이 느껴지는 애달프고 쓸쓸한 분위기에 주제넘게도 마음이 무거워져서 그의 모든 것에 푹 빠져버렸다.
호시노 겐의 에세이, 생명의 차창에서
솔로 초기 음악적 변화의 첫 번째 과도기를 거쳐서부터는 긍정적인 태도와 밝고 희망찬 사운드에 맞는, 전체적으로 보면 즐거움을 나타내거나,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밝고 긍정적인 메세지를 주는 노래가 많아졌다. 그러나 그 건강한 사운드 속에는 상당히 어두운 부분이 계속 숨어있다.

음악적 특징 문단에 상술했으나, 마냥 '낙관적인 밝음'이 아니라, 밝음 이면의 어두움을 인정하고, 암울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가사를 통해,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밝은 사운드 속 어두움을 암시하거나, 밝음을 진지하게 다루거나 부각시키기 위해 어두움을 표현하거나, 어두움과 밝음은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라 궤를 같이 한다 등을 이야기한다.[56]

무명시절 주변의 모든 것을 증오하고 꼭 성공하고 말겠다는 다짐부터 시작해서, 솔로 데뷔 초기부터 Pop Virus까지 그는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혼자 작업해오고, 혼자 셀프 프로듀싱을 계속해오며 결국 그는 (뮤지션으로 치면 상당히 늦은 나이에) 큰 성공을 맛보게 된다. 그는 사람들 앞에 서는 기쁨,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재미 등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된 성취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고독했던 동시에 계속 밝은 스타로 대우받고 평가받는 것에 지긋지긋함을 느꼈다. 이는 그가 이때까지 긍정적인 태도와 건강하고 밝은 사운드 속 쓸쓸함과 외로움을 남몰래 녹여냈던 이유일 것이기도 하고, Pop Virus 앨범을 중심으로 한 5대 돔 투어와 월드투어 종료 직후 목표와 음악의 순수함을 잃어버리며 걸린 번아웃 증후군의 요인 중 하나였으며, 그가 새로운 자극을 찾아 새로운 음악 및 재시작을 하게 된 것도 있을 것이다.
호시노 겐은 「 恋(사랑)」의 히트 이후, 혹은 그보다 전부터, 스타로서의 중압과 싸워 왔다. 2015년 ' SUN'에서 노래한 스타의 고독. 인류를 비추면서도 아무도 곁에 있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고독했던 태양(SUN)과 같은 마이클 잭슨에 대해 노래했던 호시노 겐은 스스로가 스타가 되어 결국 그 비극을 맛보게 되었다.

호시노 겐의 2015년 곡 「 SUN」은, 이 히트로 홍백 첫 출장을 완수했을 정도로 캐치하고 즐거운 음악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고독이 새겨져 있다. 'SUN(=태양)'이라고 나타낸 것은 마이클 잭슨을 말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을 비추면서도 아무도 곁에 다가가지 못하는 팝스타의 고독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2018년 ' アイデア(아이디어)'에서는 1절에서 스타로서 대중들이 보는 겉모습을, 2절에서 숨겨진 자신의 진심을 노래하며 그 마음에 쌓인 고민을 풀어냈다.

' さらしもの(사라시모노)'에서는 세상에 자신을 제멋대로 해석받는 스타의 입장이 지긋지긋한 그의 내면을 쏟아내고 있다. 엄지손가락이나 가운뎃손가락을 세워 자기 마음대로 평가하는 청중. "나는 태양이 아니야, 빛나 보이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봐주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
그리고 그는 2019년 Same Thing EP를 거치면서 2020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작업물들을 내며 대중들의 머릿속에 자리잡혀있었던 '팝 아이콘'이 아닌, 새로운 재시작과 변화를 끊임없이 내세웠다.
호시노 겐이 목표로 하고 있던 것은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능한 한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고 설레고 그것을 청중과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음악가로서의 그의 동기이며, 활동의 규모가 확대되는 것은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신작 EP 『 Same Thing』은 『 POP VIRUS』 이후의 호시노의 비전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가 다시 새로운 자극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의 증거이다.
호시노 겐 『Same Thing』 리뷰: 『POP VIRUS』 이후의 비전과 새로운 자극을 찾아
- 나는 다시 태어났어 / 몇 번이고의 재시작은 / 다시 한 번 따분한 이 세상에서 놀기 위해서야

-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살아난[57] 이 의미는 / 그저 사는 게 아닌 노는 데에 있어
創造(창조)의 가사 중[58] (2021)
그렇게 세대 교체 또한 빠르게 가속화되면서 이제 호시노 겐은 국민적 팝 아이콘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지게 되었고, 그의 작업물들은 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대중들을 설득시키는데에 전부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내면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2.7. NHK 홍백가합전

호시노 겐의 출장과는 별개인 오겐상의 홍백가합전 무대는 이 문서를 참고.
<rowcolor=#fff> 연도 출장
횟수
곡명
2015 SUN
2016 2 (사랑)
2017 3 Family Song
2018 4 アイデア (아이디어)
2019 5 Same Thing
2020 6 うちで踊ろう(집에서 춤추자)
2021 7 不思議 (불가사의)
2022 8 喜劇 (희극)
제73회 홍백 라이브 풀 영상 (공식 유튜브)
2023 9 生命体 (생명체)
제74회 홍백 라이브 풀 영상 (공식 유튜브)
여담이지만 유튜브에 라이브 풀 영상이 올라오는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이다. 그가 최근에 출연한 SONGS의 무대도 풀영상이 올라와 있다.

3. 배우

3.1. 연혁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생애 및 활동 문서
3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목차

1. 데뷔와 신인상 (2001 ~ 2013)
2. 배우로서의 상승세와 히트 (2015 ~ 2018)
3. 역할의 변화 모색 (2020 ~ )

3.2. 필모그래피

3.2.1. 무대

3.2.2. 영화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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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코 36세(ノン子36歳)」 (2008) - 마사루(マサル)
    파일:A62D9CC2-CD64-4AC4-A72D-FDE493BA4812.png
  • 「묻지마 사랑(箱入り息子の恋)」 (2013) - 아마노시즈쿠 켄타로(天雫健太郎)
    파일:E06CE64F-A36E-4FC4-83AC-3D1D7B87399E.png
  • 「이사 다이묘!(引っ越し大名!)」 (2019) - 카타기리 하루노스케(片桐春之介)
    파일:힛코시 다이묘.jpg
  • 「죄의 목소리(罪の声)」 (2020) - 소네 토시야
    파일:죄의 목소리2.jpg

3.2.3. 드라마

연도 방송사 제목 활동 배역 비고
2003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WATER BOYS
WATER BOYS
조연 호시야마
(星山)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맨하탄 러브스토리
(マンハッタンラブストーリー)
조연 카제마루
(風丸)
6화 출연
2004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돌하우스
(ドールハウス)
조연 3화 출연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여자들의 죄와 벌
(女達の罪と罰)
조연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이혼변호사
(離婚弁護士)
조연 2화 출연
파일:NHK G 로고.svg 토키오 아버지에게의 전언
(トキオ 父への伝言)
조연 오쿠보 코지
(大久保浩二)
1화 출연
파일:테레비 아사히 로고.svg 동생
(弟)
조연 2화 출연
2005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상냥한 시간
(優しい時間)
조연 아마노 히로카즈
(天野洋一)
3화 출연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극단연기자 「잠자는 숲 속의 시체」
(劇団演技者。「眠れる森の死体」)
조연 히로미
(ヒロミ)
8회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타이거 앤 드래곤
(タイガー&ドラゴン)
조연 돈츠쿠
(林屋亭どんつく)
2006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아키하바라@딥
(アキハバラ@DEEP)
조연 타이코
(タイコ)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또 하나의 슈가 앤 스파이스
(もうひとつのシュガー&スパイス)
조연 코야마 나루지
(小山成司)
4화 출연
2007 파일:후지 테레비 로고.svg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빠
(東京タワー 〜オカンとボクと、時々、オトン〜)
조연 사와다 타마오
(澤田玉夫)
파일:닛폰 테레비 로고.svg 탐정학원Q
(探偵学園Q)
조연 네코다 형사
(猫田刑事)
파일:테레비 도쿄 로고.svg 작년 르누아르에서
(去年ルノアールで)
주연
(私)
2008 파일:테레비 아사히 로고.svg 미래강사 메구루
(未来講師めぐる)
조연 에구치 히데오
(江口秀夫)
파일:테레비 도쿄 로고.svg 주간 마키요코 「나비인 채로」
週刊真木よう子 「蝶々のままで」
조연 이노우에 히로시
(井上ヒロシ)
2009 파일:NHK G 로고.svg 고스트프렌즈
(ゴーストフレンズ)
게스트 신지
(信二)
5화 출연
2010 파일:NHK G 로고.svg 게게게의 여보
(ゲゲゲの女房)
조연 오이카와 타카시
(及川貴司)
파일:NHK G 로고.svg 축녀 시즌2
(祝女〜shukujo〜)
게스트 5회 출연
파일:NHK BS 프리미엄 로고.svg
[63]
내가 처음 만든 드라마 - 괴물을 부르는 남자 -
(私が初めて創ったドラマ -怪獣を呼ぶ男-)
주연 소에지마 코타
(副島広太)
2011 파일:테레비 아사히 로고.svg 11명이나 있어!
(11人もいる!)
조연 사나다 히로유키
(真田ヒロユキ)
2014 파일:NHK BS 프리미엄 로고.svg 어젯밤의 카레, 내일의 빵
(昨夜のカレー、明日のパン)
조연 테라야마 카즈키
(寺山一樹)
2015 파일:NHK G 로고.svg 홍백이 태어난 날
(紅白が生まれた日)
조연 조지 마부치
(ジョージ馬淵)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코우노도리 시즌 1
(コウノドリ 第1シリーズ)
조연 시노미야 하루키
(四宮春樹)
2016 파일:NHK G 로고.svg 사나다마루
(真田丸)
조연 도쿠가와 히데타다
(徳川秀忠)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逃げるは恥だが役に立つ)
주연 츠자키 히라마사
(津崎平匡)
2017 파일:WOWOW 로고.svg 플라쥬
(プラージュ)
주연 요시무라 타카오
(吉村貴生)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코우노도리 시즌 2
(コウノドリ 第2シリーズ)
조연 시노미야 하루키
(四宮春樹)
2019 파일:NHK G 로고.svg 이다텐 ~도쿄 올림픽 이야기~
(いだてん~東京オリンピックの噺~)
조연 히라사와 카즈시게
(平沢和重)
2020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MIU404
(ミュウ ヨンマルヨン)
주연 시마 카즈미
(志摩一未)
2021 파일:TBS 테레비 로고.svg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신춘 스페셜
(逃げるは恥だが役に立つ 新春スペシャル)
주연 츠자키 히라마사
(津崎平匡)
2022 파일:NHK 로고.svg 17세의 제국
(17才の帝国)
조연 타이라 키요시
(平清志)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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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키하바라@딥(アキハバラ@DEEP)」 ( TBS, 2005)
    파일:2BC5D9E3-C262-46B9-A22E-FCE308513995.png
  • 「작년 르누아르에서(去年ルノアールで)」 ( TV 도쿄, 2007)
    파일:52FAEAAC-F24B-471E-85C5-7C0EF57B7BDC.png
  • 「게게게의 여보(ゲゲゲの女房)」 ( NHK, 2010)
    파일:A90D46F0-C15F-4237-86DD-C1F2F250D664.png
  • 「어젯밤의 카레, 내일의 빵(昨夜のカレー、明日のパン)」 ( BS프리미엄, 2014)
    파일:97A13C45-4BC7-4436-8200-53DE27268F3C.png
  • 「플라주(プラージュ)」 (WOWOW, 2017) - 요시무라 타카오(吉村貴生)
    파일:9588F9B2-43DA-4AC2-BD53-55A2A573F6E2.png
  • 「코우노도리(コウノドリ) 시즌 2」 (TBS, 2017) - 시노미야 하루키(四宮春樹)
    파일:D0B9244A-7D37-4AE0-B915-C87D150D26F2.png

3.2.4. 애니메이션

연도 제목 활동 배역
2013 <colbgcolor=#daeef5,#191922> 세인트☆영멘
(聖☆おにいさん)
주연 붓다
2015 치에리와 체리
(ちえりとチェリ)
체리
2017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선배
2018 미래의 미라이 조연 아빠
2022 여학교의 별
(女の園の星)
주연 호시 미쓰히코

3.2.5. 나레이션

3.3. 이야깃거리

배우로서도 2013년에 좋은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상[64]을 비롯한 여러 신인상을 받았고, 이후로도 시청률 20% 이상을 돌파하고 사회현상을 일으킨 드라마에 주연으로 참여했으며, 2017년에는 장래 유망한 배우들에게 주는 엘란도르상을 수상[65]했을 정도로 배우로서 자리잡았고, 오구리 슌, 아야노 고 등 여러 배우들과도 여러 합을 맞췄기에 배우로도 일본에 잘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같은 세대의 전업 배우들에 비하면 참여 작품은 조금 적은 편이지만, 다른 배우들에 꿀릴 것 없는 커리어와 코믹부터 시리어스까지 소화하는 연기 스펙트럼과 팬을 가지고 있어, '배우 호시노 겐'을 먼저 알게 되거나, 혹은 '음악가 호시노 겐'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연기와 캐릭터 해석에 있어서 호시노 겐만의 세계관이나 색채가 있다는 평가도 꽤 있는 편. 이와 관련하여, 감독 츠카하라 아유코는 그의 연기에 대해 영화 감독 또는 각본가의 눈높이에 가깝다며 그 시선으로 대본을 깊고 세세하게 파해치고 같이 여러가지 의논한 것이 꽤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연기력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그가 맡은 역들에 대해서 '음악가 호시노 겐은 배우 호시노 겐의 배역들을 표현할 수 없고, 그의 배역들도 하나같이 캐릭터가 다 다르다'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b1eb,#033E8C>
(호시노 겐은) 공식적으로 혼자서 노래를 부르기 전에 다른 사람을 연기했다. 그가 연기자인 것은 음악가인 그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연주가였던 것은 그의 연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 상호작용으로서 각각을 서로 보완하고 있다. (중략)

' 죄의 목소리' 당시 같이 합을 맞추었던 오구리 슌은 기본적으로 '누르는' 연기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피하고, 때로는 '밸런스 볼'처럼 유연성으로 작용하는, 호시노 겐적 표현의 배경성에 시너지를 일으킨다. (중략) 호시노 겐만이 가능한 '배경'으로서의 연기는, 심플하면서 다채로운 '사운드'가, 거기에 있다. (중략)

그의 연기에는, 보란 듯이 '연출'이 전무하다. 스타일은 바뀌지만, 본질 자체는 일상의 인접한 발화에 의해 뒷받침된다. (후략)

}}}||
다른 배우들이 자신의 강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밑바탕과 배경을 만들어주면서도 동시에 자기의 개성을 챙기는 역할이 많다. 상대 배우나 주인공의 옆에 존재하는 역할, 평소에는 우유부단하거나 순박하거나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진중할 땐 진중해지는 경향의 역할, 분위기를 띄우는 캐릭터, 염세주의적인 인물, (호시노 겐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 된 인물'[66]의 역할, 어둠이나 사연 등을 숨기고 있는 듯 하면서 특정 인물의 행보에 대해 지켜보거나 남몰래 반응하는 역할 등이 꽤 많은 편이었다.

순박한 초식계 너드남 능력이 뛰어난 냉혈한 형사를 보여준 그의 대표작들에 비해 한국에서는 팬들을 제외하고 다른 필모그래피가 그닥 많이 돋보이지는 않지만[67], 2020년 이전까지 개성이 넘치는 배역이나, 비주류적인 감성, 또는 배우로서 상당히 부담스럽거나 망가지거나 다사다난한 배역을 많이 맡았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여럿 보다보면, 피칠갑되는건 기본이고, 코미디적으로 망신당하거나 알몸이 노출되는 장면은 꽤나 흔할 뿐더러, 격한 키스씬과 베드신 연기 유경험자이기도 하고, 심지어 마약 하는 연기 유경험자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대역없이 이루어진 걸 보면 열심히 살았고 연기 스펙트럼이 꽤 넓은 셈.

2020년 이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지만, 마음 속에 깊은 어둠을 가지고 있는 배역들이 많아졌는데, 그래서 전반적으로 '조용하면서도 내면의 어둠과 슬픔을 표현하여 압도하거나 휘몰아치는 눈빛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아졌다. #1 #2

일본 내에서 평가가 좋은 각본가인 노기 아키코와의 합이 좋기도 하다. 당장 그가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한 노기 아키코 극본의 작품만 하더라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MIU404, 죄의 목소리이다. 호시노 겐의 신인 시절을 제외하고, 그의 배우 대표작 및 그가 신인상 이후 받았던 연기 관련 상들이 대부분 다 이 작품들에서 나온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이 작품들 모두 노기 아키코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하다.[68]

여담이지만, 팬들로부터 '호시노 겐의 악역이나 하라구로 사이코패스 역할을 한번 보고 싶다'고 꽤 종종 들었다고 하며, 호시노 겐 본인 또한 그런 빌런 역할을 해보고 싶은데 그런 배역이 들어오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4. 작가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b1eb,#033E8C>
십 년 정도 꾸준히 에세이를 쓰면서 깨달은 바는 문장 전문가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생명의 차창에서』 (2017)
}}}||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것이 서툴렀기 때문에 22,23살(2003년) 때 '문필을 계속 하면 혹시 억지로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편집자를 찾아다녔고 잡지의 난외에 100글자나 200글자로 잡문을 쓰는 일을 노개런티로 맡게 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당초에는 쓰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점차 부탁되는 글자 수가 증가하고, 2009년에는 첫 에세이집 『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를 집필한다.

여러 에세이집이 30만 부 이상이 팔리고, '생명의 차창에서'는 여러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북로그 에세이 부문 대상을 받으며 한국에서도 공식적으로 번역판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2023년인 지금까지도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것을 이어오고 있다.

4.1. 저서 / 대담집

<rowcolor=#ffffff> 『そして生活はつづく』 (2009)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働く男』 (2013)
일하는 남자
『蘇える変態』 (2014)
되살아난 변태
파일:そして生活はつづく.png
파일:働く男.png
파일:蘇える変態.png
<rowcolor=#ffffff> 『星野源 雑談集1』 (2014)
호시노겐 잡담집
『地平線の相談』 (2015)[69]
지평선의 상담
『いのちの車窓から』 (2017)[70]
생명의 차창에서
파일:星野源 雑談集1.png
파일:지평선의 상담.jpg
파일:생명의 차창에서.jpg
<rowcolor=#ffffff> 『星野源 音楽の話をしよう』 (2018)[71]
호시노겐 음악 이야기를 하자
파일:星野源 音楽の話をしよう.png

4.2. 연재

5. 미디어 활동

5.1. 예능 / 교양

음악방송 출연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 곳을 참고. 고정출연인 경우는 연도 옆에 ★ 표시.

5.2. 라디오

파일:A1EB94B2-68F7-47D2-864D-ABF45E8ADD8A.png }}} ||<width=50%>
파일: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jpg
||
2016. 03. 26. - 2017. 03. 27. 매주 월요일 2017. 04. 05. - 현재 매주 화요일
50년의 역사를 지닌 일본 간판 라디오 프로그램으로서 당대 최고 유명인이 퍼스널리티(진행자)에 발탁되는, 일본 연예인이라면 선망하는 프로그램. 시간대에 따라 여러 라인업이 있는데 프로그램과 동명인 「All Night Nippon」이 간판 라인업이다. 바로 여기서 매주 수요일에(매주 화요일 25시 - 27시로 홍보) 호시노 겐의 방송이 있다.

5.3. 광고 / CF

{{{#!wiki style="margin-bottom: -1.5%"


{{{#!wiki style="margin-bottom: -1.5%"

직접 출연한 동시에 악곡이 타이업 된 경우도 포함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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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우스 우콘노치카라 (2016 - 2017)
    파일:638236EC-1CF2-44F7-9333-470DE70C8FFD.png
  • 삿포로 맥주 블랙라벨 「大人エレベーター(어른 엘리베이터)」 제28탄 (2017)
    파일:47CA4252-1A30-4255-BB88-FBD0728E8A1E.png
  • 카오 Biore-u 바디워시 (2017) - 「肌」 CM
    파일:75BB3E9E-6131-4CB7-8393-980A284E6681.png
  • 삿포로 맥주 麦のくつろぎ 「ノンアルを変える」 편 (2018~ )
    파일:87D53786-48F4-4D9A-BB9F-F35AA1E96CBC.png

5.4. 잡지 표지

호시노 겐 '잡지 표지 모델' 일람 사이트 (일부)

멀티 엔터테이너이다보니 록킹 온 재팬, 롤링 스톤 재팬, MUSICA 등 음악 잡지는 물론이고, '다빈치'같은 도서 잡지, '키네마 순보'같은 영화 잡지 등 여러 방면의 잡지 표지에 오르는 경우도 많으며, 더 나아가 anan, ELLE 재팬, NYLON 재팬, GQ 재팬 등 패션잡지의 표지에 올라간 경우도 있다.

2018년 3월에는 일본의 패션잡지인 「装苑(장원)」에 1936년 1월 창간 이래 사상 처음으로 남성 단독 표지에 올랐다. # 덧붙여 호시노 겐 표지 및 특집으로 발행한 다빈치 2018년 12월호는 며칠만에 완판점이 속출해 잡지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중판(重版) 결정이 나기도 했다. #

5.5. YELLOW MAGAZINE+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YELLOW MAGAZINE+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 연예계의 돌연변이

「음악가, 배우, 문필가」등의 직함으로 활동하는 멀티 엔터테이너. 중학생 때 음악과 연극을 동시에 시작해, '어느 쪽으로 좁히는 것이 좋다'라고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양립을 계속해, 게다가 (20대에) 문필도 시작해 현재의 성공을 쟁취했다. (중략)

호시노 겐이 현재와 같은 멀티 엔터테이너가 된 요인 중 하나로서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것은, 전례없는 행동력. (중략)

레이와 시대에 들어와서 흔들리지 않는 호시노 씨의 활동 스탠스를 드디어 시대가 따라잡고, 코로나가 찾아옴으로써 그 대단함이 돋보인 것은 아닐까? '부담없이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은 친근감을 풍기면서, 막상 일이 되면, 다양한 스킬을 발휘해 간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호시노는, 엔터테이너 뿐만이 아니라 비즈니스 퍼슨에 있어서도, 레이와 시대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호시노 겐이 압도적인 존재로 올라선 납득 가능한 이유 (2020)
' 연예인의 제일 필요조건이 큰 키와 잘생기고 예쁜 얼굴, 멋진 체형 등이다.'라는 전제에 들어맞지 않는 인물[80]에 가깝다.

그의 신체적인 조건은 '일반적인 타 연예인들'과 비교해봤을 때 키도 작으며, 얼굴도 잘생기지는 않았고[81], 몸매도 그다지 좋지는 않으며, 가창력도 빼어나지 않은, 거의 일반인이다. 개그맨이나 실력파 배우가 아닐 경우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는 연예계에서 이는 치명적인 단점이며, 신체적 조건으로 인해 혜택을 하나도 볼 수 없었고 오히려 불이익을 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호시노 겐을 거의 처음 본 사람들의 경우 '호시노 겐이 왜 팔리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건 한국 뿐만이 아니라 호시노 겐이 한창 라이징 스타로 급부상했을 때의 일본 본토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호시노 겐은 여러 꽃미남 배우들과 아이돌들이 한창 활동할 당시에 그 시장 속에서 몸집이 커졌기 때문에 더더욱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호시노 겐은 인기와 경력이 어느정도 쌓이기 전까지 '하나에만 제대로 집중해'라는 소리를 주변에서 계속 들을 정도로 상황이 그렇게 좋지 못했다. 음악과 연기의 연습을 중학교 때부터 같이 시작했고, 그는 무명시절 처음부터 작사, 작곡, 편곡, 음악 프로듀싱을 계속해오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무명시절 배우로서 여러 무대와 영화, 드라마 등에 계속 단역, 조연으로 계속 참여하는 동시에 힘들거나 비주류적인 역할을 계속 맡았었다. 그의 에세이에서도 콩트 및 무대에서 수없이 몸을 던지며 뼈가 계속 으스러진 경험을 말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어릴 때부터 노게런티로 잡지에 잡문을 쓰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20대 배우생활은 순탄하지 못했으며, 30대가 되어서야 여러 신인상을 받으며 배우로서 인정받게 되었고[82], 그렇게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드라마나 영화에 주조연으로 참여하기까지 약 13년이 걸렸다. 또한 그가 메인스트림 싱어송라이터가 된 것도 30대 이후이다. 이러한 그의 과거 행보를 보여주는 것 중에서 음악일과 배우일의 소속사가 다른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가 그 지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넓은 연령층의 고정 팬층이 존재하며, 연예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방송이나 고정출연, 그리고 광고를 여럿 찍었을 정도로 일본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이다. 당시 연예계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사례여서 힐난하는 안티들도 꽤 있으나, 호시노 겐이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1명의 성과라고 보기에는 힘든 그의 다양한 성과와 작업물, 그의 '노력하는 재능'에 기반한 실행력과 태도, 그의 신체적 불이익을 능가하는 어느정도 이상의 실력, 무엇보다 각 업계들에서 부딪혀가며 진심으로 계속 임하고 있다는 일부 관계자들과 스태프들의 평가 및 대외적인 좋은 평판으로 쌓아온 방송계의 인맥들, 멀리서 보는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이 아니라 호시노 겐만의 차별화된 사랑받는 매력, 그리고 40대가 되어서도 '음악가, 배우, 문필가'의 활동을 여전히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 이어오고 있으며 발생되는 그의 여러 직업 사이의 차이에서 나오는 그의 매력 등 여러 작용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호시노 겐은 본인의 목표에 있어서는 야망 욕망이 크며, 마이페이스 기질이 큰 인물이다. 그는 실패를 무릅쓰면서도 어느까지로 본인을 한정짓지 않는 담대함, 실행력 및 끈기, 궤도 수정은 확실하게 하자는 그의 좌우명, 기획 및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에도 꾸준히 적극적으로 참여, 그리고 그의 다채로운 색채와 여러가지 행보 및 작업물들로 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그의 자세를 앞세웠다. 팝스타적인 면모의 팬들과의 소통 및 수요의 충족도 챙기고 동시에 마이페이스적인 자신을 꾸준히 확고하게 표현하며 그렇게 호시노 겐은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온전히 활약'할 수 있는 부분을 끊임없이 만들어갔다.

그의 과거와 이야기는 고유의 스토리텔링적인 부분이 되었고, 그 이후 그가 만들어나간 여러 가지 요인은 그의 독자적인 셀프 브랜딩 및 프로듀싱이 꽤나 성공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연예계 사업 또한 일종의 비즈니스 사업이고, 그는 현재 경영직이 아니지만, 상술한 칼럼처럼 흔히 떠올리는 기업에서의 '본인만의 야망이 있지만 겉으로는 그 야망이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이상의 실력과 성과가 출중한 동시에 친근하게 다가오는 비즈니스맨'적인 면모가 보이기도 한다.
"'호시노 겐은, 이런 것으로는 끝나지 않으니까'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미하엘씨. 매우 인상에 남아 있었습니다만, 정말 그렇게 되었네요."

감탄한 표정으로 말하는 후배 앞에서 나는 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이 청년은 다재다능하다, 이 사람은 재능덩어리라고 순순히 느꼈다. (중략) 이미 뮤지션으로서뿐만 아니라 배우, 집필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셨는데 무엇보다 자기자신을 프로듀싱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처음 봤을 때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호시노 겐이라는 사람은, 앞으로도 서프라이즈를 많이 전해 줄 거야, 분명"이라고. (중략)

그는, 사람의 재능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촉이 잘 작용한다. (중략) 재능이 있는 사람은 점점 세상에 나오기를 바라는 호시노씨의 생각이, 결실을 맺어 가는 과정을 몇개나 봐 왔다.

호시노 겐이라는 사람은 섬세하고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며 노력가다. 계속 변하지 않는 뛰어난 능력의 하나로서, 순간적으로 '제3의 눈'이 열리는 타이밍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다. (중략) 앞으로도, 노력은 물론, 그 직감력, 판단력, 그리고 재능이, 운이 오르는 좋은 만남을 불러와, 유례없는 공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
배우를 하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다양한 재능을 구사하고 다양한 표현을 하는 사람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몇 명 알고 있다. 하지만 호시노 군의 표현 스타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뉴타입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이상한 자기주장이나 시비가 없는 것, '나, 뭐든지 해버리니까 멋있지'라고 하는 기운이 전혀 없다. 실로 냉정하게 행동하면서, 주위의 상황을 판단하고, 그러면서도 표현은 뜨겁게 하는 이상적인 표현자인 것이다. (중략) 그러면서, 마음의 뿌리 부분에는 걸쭉한 마그마가 끓고 있다.
- 오오네 히토시 (감독) (2014) #
그러나 현재 연예계 구조 특성상 큰 키와 잘생기고 예쁜 얼굴, 멋진 체형 등을 가진 연예인들에 비해서 잠깐이라도 삐끗하면 상대적으로 뒤쳐질 가능성이 충분히 많고, 인기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한계점이 있기도 하지만, 호시노 겐이 가장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는 건 '엔터테이너로서의 단순한 인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꾸준히 이야기하고 그의 행동으로서 어필해왔다.

7. 수상 경력 및 음반 주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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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배우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

파일:호시노 겐과 아라가키 유이.jpg
2021년 5월 19일 배우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을 발표했다 #
배우란 힘든 직업이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남이 쓴 대사를 읊는다. (중략) 늘 거짓말을 한다. 인기를 얻으면 주변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면서 누가 주의를 주지도 않는다. 그런 환경 속에서 다른 경쟁 배우들과 밑도 끝도 없는 의자 뺏기 게임을 치열하게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정신상태로 '보통'의 감각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정신은 고립되고, 분주함에 비례하여 에고 또한 비대해진다. 안 그려려고 노력해도 방자해지고 주변을 살피지 않게 된다. (중략) 점점 더 보통에서 멀어진다.

10대 때부터 활약해 온 그녀에게는 틀림없이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으리라. 아마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터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일터에서 성취할 수 있는 성실함을 찾았고, 더 나아가 웬만한 배우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보통'이라는 상태를 스스로 손에 넣었다. (중략)

그래서 여기에 몰래 글로 칭찬하려고 한다. 부디 그녀가 크랭크업까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당신은 정말로 근사한 보통 사람이야.
호시노 겐의 에세이, 생명의 차창에서 중
아라가키 유이와는 2016년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에 함께 출연했으며, 이후 2020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SP를 촬영할 때 재회한 것을 계기로 촬영을 모두 마친 후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했다고 한다. 결혼 발표 회견은 별도로 하지 않았고, 결혼식이나 피로연 일정도 현재는 미정이다. 아직 입적은 하지 않았으며, 향후 시기를 보고 입적할 예정이라고 한다. #
호시노 겐 결혼 발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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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호시노 겐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어려운 시기에 사사로운 일로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만,
이번에 저 호시노 겐은 아라가키 유이 씨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이런 식으로 조심스럽게 보고를 드렸던 게 병으로 쓰러져서 활동을 중단했을 때로 기억합니다.
이번엔 그 당시 걱정을 끼쳤던 분들을 포함해 항상 지지해 주시는 여러분께 이런 보고를 하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앞으로는 둘이서 힘을 합쳐서,
평온한 생활을 살아가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 활동이나 배우로서의 활동, 문필 등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지금까지 이상으로, 하나하나 소중히 마주 보고 싶습니다.

항상 따뜻한 응원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가까이에서, 멀리서, 항상 지지해 주시는 여러분,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이 더 즐거워하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즐거운 일들을 계속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2021년 5월 19일
호시노 겐
호시노 겐, 아라가키 유이 연명 친필 코멘트 전문
[ 펼치기 · 접기 ]
관계자 여러분

신록의 계절,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
평소 각별히 배려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호시노 겐과 아라가키 유이는 이번에 결혼하게 되었음을 보고드립니다.

앞으로도 서로 지지하며 풍부한 시간을 쌓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숙한 두 사람이긴 합니다만, 따뜻하게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도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확대가 하루라도 빨리 종식되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2021년 5월 19일
호시노 겐 아라가키 유이
2021년 11월 호시노 겐이 본인의 에세이에서 올해 결혼하고 가정을 가졌다고 언급했으며, 아내와 같은 집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쯤 있었던 에피소드를 밝혔다. #1 #2

2023년 4월, 아라가키 유이가 메자마시 테레비에서 호시노 겐을 언급할 때 '남편'이라는 호칭을 써서[83] 화제가 되었었던 적이 있다. # 호시노 겐도 2023년 라이트하우스에서 아라가키 유이를 '아내'라는 호칭을 써서 언급했다.

8.1. 관련 이야깃거리

일본을 강타한 히트 드라마에서의 인연이 현실에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까지 크나큰 화제가 되어 여러 이야깃거리나 일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호시노 겐의 에세이나 라디오에서 아내와의 일화가 종종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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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건사고

9.1. 아베 신조 총리 관련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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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호시노 겐은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코로나 때문에 실제로 만날 순 없지만, 마음이라도 그러한 기분을 내는 컨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50초 분량의 이 노래를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업로드하였고 해당 영상을 자유 저작권으로 풀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 노래, 춤, 악기 연주, 일러스트 등 여러가지를 시도해달라고 권장했다. 그리고, 일본 국내에서 이 악곡과 호시노 겐의 얼굴을 합성한 다수의 쇼츠나 릴스 등이 파생되어 나왔다.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가 코로나 사태 대처 미흡으로 많은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SNS에 호시노 겐의 노래와 함께 자신의 일상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게시해 외출 자숙을 호소했다. #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가 유유자적한 모습을 공개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올라왔으며, 호시노 겐의 영상과 본인의 영상을 함께 올려버려서 호시노 겐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와 함께 비난을 받는 피해를 겪었다. 일부 네티즌들이 '호시노 겐이 아베 총리를 지지한다'고 오해한 것이다. 이에 '호시노 겐에게 무슨 민폐냐'며 아베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호시노 겐 본인이 직접 동영상에 대해 입장을 밝혔는데 아베 측은 자신과 소속 사무소에 사전 연락이나 확인은 사후도 포함하여 일절 없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

호시노 겐은 해당 영상을 자유 저작권으로 풀었고, 네티즌들에게 이를 활용해 2차 창작을 해달라고 했다는 면에서 '원칙적으로는' 아베 총리가 사용한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시노 겐이 굳이 입장을 밝힌 이유는 일부 네티즌들이 자신이 아베 총리를 지지한다고 오해하자 이를 해명하기 위함과 동시에,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아베 신조 (安倍晋三 さん)가 아무 연락이나 허락없이 노래 영상을 퍼갔듯이 노래 영상은 누구나 퍼가도 좋다'고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다.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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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어록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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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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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인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카와구치시에서 보냈다. [2]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점수로 학생을 평가하는 테스트나 성적표가 없는 사립 대안학교이다. # 일반학교보다 자유로운 학교였기 때문에 기분은 초졸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3] JVC 켄우드 빅터 엔터테인먼트 산하. 솔로에서의 활동 한정으로, SAKEROCK 작업물의 레이블은 2015년까지 KAKUBARHYTHM이었다. [4] SAKEROCK 결성이 2000년이었고 음반을 통한 데뷔는 2003년. 배우로서는 프리랜서 배우로 여러가지 하다가 2003년에 극단 오토나케이카쿠에 배우로 들어간다. 집필은 2003년부터 시작. [5] 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랩 스틸 기타( 하와이안 기타), 클래식 기타 [6] 인디 밴드( SAKEROCK) 시절 자주 사용한 악기이자 2020년 DAW 제작을 시작하기 이전까지 호시노 겐의 음악이나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기타 다음으로 자주 볼 수 있었던 악기다. 그의 솔로 데뷔 앨범인 정규 1집에서부터 마림바가 자주 나오며,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 化物(도깨비)」와「 IDEA」 M/V. 참고로 마림바를 두드리는 스틱은 말렛(mallet)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악기이지만, 그나마 KBS 제1라디오의 날씨 음악으로 유명하다. 매 시각 58분마다 방송하는 날씨 시그널음악이 바로 이 악기의 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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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 중에서도 플랫 만돌린은 만돌린이 현대적으로 개량되어 컨트리 등지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악기이다. 밴드 시절 '일본풍' 느낌을 내기 위해 자주 쓴 악기로, 殺すな(죽이지 마라), 慰安旅行(위안여행) 등의 악곡에서 볼 수 있다. 호시노 겐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싼 값에 샀던 플랫 만돌린은 아직까지 집에 고이 놔두고 있다고 한다. [8] 컨트리 장르 등지에서 자주 사용되는 악기이다. 灰空(잿빛 하늘), 七拍酒(칠박주) 등의 악곡에서 볼 수 있다. [9] 19세 때부터 4년 정도, 삼선의 명수로 알려진 주인장 선술집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 그는 매일 오키나와 민요를 듣고 류큐 무용을 배웠다. 밴드 시절에도 이 악기를 종종 사용했으며, 그의 솔로 곡에서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YELLOW DANCER」에 수록된 인스트루멘탈 곡인 Nerd Strut에서 이 악기를 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10] 호시노 겐이 가장 먼저 시작한 악기가 드럼이다. [11] 호시노 겐이 20살 무렵, SAKEROCK와는 다른 레게 밴드의 여성 보컬에게 불려 그 밴드의 베이스 담당이 될 것 같았지만, 그 밴드가 자연 소멸해 실현되지 않았다. [12] 호시노 겐의 음악 공론에서도 이 머신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호시노 겐 본인이 엄청 좋아하고 귀엽다고 느끼는 머신이라고 한다. 호시노 겐의 다른 여러 곡들 외에도 집에서 하루 안에 혼자 곡을 만들어본다는 호시노 겐의 시리즈인 'House ver. 시리즈'에서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아주 자주 쓰이는 머신이기도 하다. [13] 기본 피아노나 신디사이저, 오르간 외에도 월리처 일렉트릭 피아노 등을 종종 쓴다. 그 악기가 사용된 대표적인 예시가 Sapiens. 또한, 2020년부터 DAW 곡 제작을 시작하고, 2021년 ' 不思議(불가사의)' 이후 작품을 거듭할수록 마림바랑 만돌린이랑 밴조는 아예 없어졌고 키보드의 존재가 커지고 있다. 이는 호시노 겐의 가장 큰 음악적 변화 중 하나. [14] 유일하게 본인이 직접 운영한다. [15] 2016년 일본을 강타한 히트작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코이가 한국에도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작중 안경을 쓰고 나오는 호시노 겐의 모습이 유재석을 연상하게 해서 '호시노 재석'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 이후에도 평상시에 닮았다기보다는 부캐일 때의 모습이 닮았다. # 유튜브와 구글에 호시노 재석을 검색하면 관련 검색 결과가 나올 정도.이와 관련하여, 우스갯소리지만, 호시노 겐이 일본의 대표적인 멀티 엔터테이너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을 때 호시노 겐이 꽃미남은 아니지만 엄청나게 인기 있는 이유라는 칼럼이 나오기도 했다. 같은 맥락으로 일재석, 호재석이란 별명도 가끔 사용된다. [16]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여배우인 아라가키 유이와 2021년 결혼했을 때 한국에서 생긴 별명으로, 팬들이 부른다기보다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드립으로 불리는 별명이다. 같은 맥락으로 '최악의 배우', '최악의 일본인', '각키 도둑놈'이라는 별명이 있으며, 이때는 '세금 더 내라'는 말이 바리에이션으로 나오기도 한다. 한마디로 일본판 '대한민국 3대 도둑 중 하나인 연정훈' 같은 장난성 드립. [17] 한국 트위치에서 J-POP 이상형 월드컵이 한창 유행했을 때 생긴 별명으로, 전반적으로 노래가 복잡하면서도 건강해서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브로콜리, 초장 안 찍고 그냥 먹어도 맛있는 브로콜리 같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앞 별명들에 비해 많이 쓰이진 않는다. [18] 자신의 인생이 도박같아서 돈을 거는 도박은 질색이라고 한다. [19] 여러 악기가 가능하지만 연주자로서는 기타리스트 퍼커셔니스트로서 활동을 많이 했었으며, 퍼커션에서는 대체적으로 마림바, 탬버린, 글로켄슈필, 토이 피아노 등을 담당했다. [20] 다만 호시노 겐 본인의 이름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이름으로 만든 유튜브 채널을 본인이 직접 운영하고 현재(2024년)까지도 영상을 계속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 채널의 정체가 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21] 중학생 때부터 음악과 연기 연습을 계속했고, 무명 시절 돈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여러 군데 계속하면서도 2000년에 인디밴드 SAKEROCK을 결성했으며, 배우로서는 여러 연기 오디션을 찾아다니고 연극에 참여해보는 동시에, 집필은 잡지의 난외에 노게런티로 잡문을 쓰는 일을 계속 찾아다니며 하게 되었다. 이후 2003년 배우로서는 극단 오토나케이카쿠에 직접 담판을 지어 들어갔으며, 밴드로서는 2005년 인디 소속사 겸 레이블인 KAKUBARHYTHM에 들어가게 되었다. 인디 출신이다보니 지금(2024년)까지 발표한 거의 모든 음악 작업물들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했다. [22] 2020년대는 쟈니스 사무소의 몰락과 세계화 및 여러 소셜미디어 등의 발달로 완전히 뒤바뀌었지만, 호시노 겐이 한창 활동할 때 및 그의 최전성기때는 솔로 싱어송라이터 시장의 암흑기였다. 그에게 솔로 데뷔를 권유한 호소노 하루오미도 호시노 겐의 지금(2017년)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 [23] 2023년 기준 일본 남자 연예인 연간 CF 출연료 목록에서 상당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24] 2021년에 발표한 不思議/創造 싱글은 첫날에만 10만장 이상을 팔았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신곡이나 앨범 또는 싱글을 발매하면 차트인을 하기는 한다. [25] YELLOW DANCER의 앨범 판매량은 30만장이지만, 타이틀 곡의 재생수는 약 5000만회이며, Pop Virus의 앨범 판매량은 50만장이지만, 타이틀 곡의 재생수는 약 2000만회고, 9번째 싱글 코이의 판매량은 약 31만장이지만 유튜브 조회수는 약 2.5억회이다. 약 8.5억회의 조회수를 가진 요네즈 켄시의 레몬 싱글 판매량 또한 코이와 비슷한 31만장이었다. [26] 가장 쉬운 예시로, '코이'의 다운로드는 2밀리언을 달성했고, 요네즈 켄시의 '레몬' 다운로드는 3밀리언이지만, 유튜브 조회수는 약 6억회가 차이나며, 같은 트리플 플레티넘을 달성한 아이묭의 '마리골드'와 호시노 겐 'SUN'의 뮤직비디오 재생수는 약 2.3억회가 차이난다. [27] 아뮤즈에 소속되어있지 않았던 솔로 극 초기 인디 밴드 후반 시절에서부터 호시노 겐 혼자 계속해왔는데, 한 마디로 솔로 초기부터 2019년까지 앨범 또는 싱글 타이틀 곡의 뮤직비디오를 앨범 광고로 직접적으로 사용한 셈이다. 그가 대중적인 히트를 치기 시작할 때도 여전히 중간에 넣었으나 분량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뮤직비디오는 광고로 대신 나오는 부분까지 전부 다 촬영하지만, 유튜브에서는 그게 나오지 않고 관계자 인터뷰를 합쳐서 뮤직비디오 수록 DVD로 따로 나왔었다. Pop Virus에서는 노래가 다 끝나고 광고가 3분동안 나온다. 2021년 이후에는 이 광고가 다른 영상으로 따로 분리되었다. 다만 그의 최전성기는 이때는 끝났다 [28] 광고가 없어져도 그의 개인 콘텐츠인 간단한 코멘터리는 여전히 지금까지 계속 등장하고 있다. [29]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서브컬처적인 분위기의 부재, 흑인 음악을 포함한 여러 세계음악과 일본대중음악적 요소의 혼합, 보컬의 역량이 겉으로 돋보이는 고음 및 카타르시스의 부재, 엔카, 오키나와 음악, R&B, 소울, 힙합, 가스펠 등의 분위기를 담은 댄스 음악, 일본 주류 밴드 음악과 상당히 거리가 있고 인디와 메이저를 섞은 듯한 얼터너티브적인 색채, 힙합적인 리듬 및 비트를 중요시하게 여기는 그의 특징 등. [30] 솔로 데뷔 앨범인 정규 1집의 13번 트랙인 ただいま 같은 경우에는 일본의 유명한 뮤지션인 호소노 하루오미가 작곡했다. 개그( ギャグ)라는 세인트 영맨 애니메이션 노래는 호시노 겐이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카메다 세이지에게 편곡을 맡겼다. [31] 이는 언뜻 들으면, 그의 개인적인 음악적 특징과 무해하고 건강하게 들리는 그의 음색 및 고음을 그다지 지르지 않는 그의 창법과 합쳐져 악기나 여러 사운드를 복잡하게 많이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곡들보다 상당히 슴슴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가 일부 사람들에게서 종종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32] 여러 세계 음악들을 활용하는 이지 리스닝 음악의 한 형태이면서도, 장르의 복제보다는 쉽게 식별할 수 있는 민족적 소리를 부드럽고 쉽게 소화되는 팝 음악의 형태로 모으는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하는 장르이다. 이 장르의 가장 대표적인 아티스트는 Martin Denny.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하위 장르이기도 하다. [33] 재즈, 쿠바 음악, 스카, 포스트 록, 컨트리 뮤직, 포크, 라틴 음악, 오키나와 음악, 쇼와 시대의 가요 등 [34] 대강 이런 느낌이다. [35] 2012년 꿈 밖으로, 2015년 SUN, 시간이여, 2018년 도라에몽, 아이디어, 2021년 CUBE, 2022년 이세계혼합대무도회 등이 있다. 더 자세한 예시와 관련해서는 이 곳을 참고. [36] 이는 2005년판 '바보의 노래' 앨범에 수록되었었던 ' 뿔뿔이', ' 다음은 무엇으로 태어날까' 등에서부터 2021년 불가사의, 집에서 춤추자까지의 예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솔로 초기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왔다. [37] 'SAKEROCK의 보컬'은 트롬본과 마림바였다. 자세한 내용은 SAKEROCK문서 참고. [38]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Pop Virus의 유리 깨지는 소리. [39] Present에서 1절 후렴구 시작하기 직전 탁! 튀는 소리나, さらしもの(사라시모노) 도입부의 뭔가 끊기는 소리 등 [40] デイジーお味噌汁(데이지 된장국)에서는 생활 소음과 역재생을 같이 쓰고 있고, Orange는 호시노 겐의 후렴구에 거리의 소리를 역재생한 소리를 넣었다는 등 [41] '희극과 비극' 또한 마찬가지로, 희극 안에는 이미 비극이 포함되어있다라고 하는 그의 가치관에 맞게 가사가 씌여진다. '거짓'과 관련해서도 거짓(말)과 현실은 서로 부정하는 관계가 아닌, 거짓(말)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현실은 거짓(말)에 의해 비춰지는 표리일체의 관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42] 어느 글에서는 그의 음악 변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5가지의 시대, 또는 3가지의 과정으로 나누고 있다. [43] 2019년 Same Thing EP는 호시노 겐이 번아웃 증후군을 겪었을 당시 심리적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킨 결과물에 가까우므로 이 표에서는 작성하지 않았다. [44] Zion.T와 공동 작업 [45] 작사는 쿠도 칸쿠로 [46] 2015년 10월 3일 - 2016년 4월 2일 [47] 원래는 바나나맨 히무라 유우키에게 선물한 생일축하곡이었고, 이후 시타라 오사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논스톱의 테마송이 되었다. [48] 일본의 밴드 인디고 라 엔드, 게스노키와미오토메, 제니하이에서 활동하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카와타니 에논이 작성한 칼럼이다. [49] Pop Virus 직후, 그는 번아웃 증후군이 왔고, 40대가 되면서 새로운 자극을 찾아 여러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50] 전혀 다른 심리 상태가 마음속에 같이 존재하고 있는 것 [51] 2004년부터 2015년까지 호시노 겐은 음악가로서 이 소속사 소속 아티스트였다. [52] 그래서 이런 글도 있다. [53] 호시노 겐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지금까지 영상을 계속 올리고 있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고 본인이 언급했었다. 그 유튜브 채널은 음악 쪽은 아니라고 한다. 사운드클라우드에도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계정으로 곡을 만들어 가끔씩 올린다고 한다. [54] 다만 2018년 12월에 낸 정규 5집 이후로 디지털 싱글이나, 디지털 EP, 싱글은 종종 냈으나, 새로운 정규 앨범이 나오고 있지 않고 있다. [55] 이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곡은 Pop Virus에도 어레인지 되어 수록 KIDS (House ver.)나 싱글 9집 (사랑)의 수록곡 Amaoto (House ver.)이다. [56] '희극과 비극' 또한 마찬가지로, 희극 안에는 이미 비극이 포함되어있다라고 하는 그의 가치관에 맞게 가사가 씌여진다. '거짓'과 관련해서도 거짓(말)과 현실은 서로 부정하는 관계가 아닌, 거짓(말)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현실은 거짓(말)에 의해 비춰지는 표리일체의 관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57]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호시노 겐의 이야기에 대입해봤을 때 2014년 지주막하출혈 투병생활 및 수술 이후 복귀를 의미하기도 하고, 2019년 번아웃 증후군으로 '음악을 그만둘까'하던 심리에서 벗어나 마음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재시작을 찾았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58] 이 노래는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5주년의 CM곡이기도 한데, 가사 내에서 ' 마리오의 죽음 이후 추가 목숨으로 인한 새로운 재시작'과 '자신의 새로운 재시작'을 겹쳐서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59] 무대극 첫 주연작. [60] 오토나케이카쿠 극단☆신칸센이 서로 손을 잡고 합동으로 만든 공연이라는 걸 나타내는 이름 [61] PFF에 출품된 독립영화 [62] Generation Of Animation [63] 방송 당시에는 NHK BS-hi였으나 현재는 BS2와 통합하여 BS 프리미엄이 되었다. [64] 이때 같이 받은 배우들은 아야노 고, 스다 마사키, 쿠로키 하루 등이다. [65] 엘란도르상은 해에 6명을 선발하는데, 이때 뽑힌 다른 인물들은 사카구치 켄타로, 타카하타 미츠키, 딘 후지오카, 하루, 히로세 스즈이다. [66] 영웅의 그림자에 가려진 인물, 재능이 없는 인물, 성공하지 못한 인물, 모자라보이거나 미덥지 않은 인물. [67]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들이 다른 이름있는 배우들에 비해 엄청나게 한정적인 것도 크다. [68] 니게하지 MIU404는 그녀의 대표작 중 일부로 소개되어지기도 하고, 죄의 목소리는 그녀가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각본상을 받은 작품이다. [69] 호시노겐의 롤모델이자 존경하는 뮤지션 호소노 하루오미와의 좌담집 [70] 제5회 북로그 에세이・논픽션 부문 대상, 한국어 번역판 존재 [71] AERA에 연재한 바나나맨, 이쿠타 토마, 딘 후지오카, 아리무라 카스미, 노기 아키코 등의 게스트와 호시노 겐의 인터뷰 모음집. [72] 타워 레코드 주식회사가 발행하는 무료 월간 음악 정보지. [73] 호소노 하루오미와의 대담 연재 [74] 영화 에세이 [75] 지주막하출혈 발병으로 3개월만에 하차 [76] 결혼 전까지 요시오카 리호와 함께 출연중이었다. [77] 하마베 미나미와 초기부터 출연중이었으며, 최근에 웹무비로 만들어진 광고에서 하시모토 칸나도 함께 출연중이었다. [78] 직접 기념 노래를 만들었다. 참고로, 2021년 2월 17일 닌텐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5주년 TV광고로 선공개되었던 노래인 EP 創造가 공개되었다. M/V [79] 요시오카 리호와 함께 출연중이다. [80] 개그맨 출신이나 실력파 배우에 가까우면 이 전제에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호시노 겐은 완전히 그 전형도 아니다. [81] 그러나 나이를 먹으며 40대 및 결혼 이후에 얼굴의 분위기가 기존의 초식계적인 느낌에서 다른 느낌으로 전반적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많다. 그래도 여전히 중년 미남 배우들만큼 잘생기지는 않았다 [82] 실제로 비주류 및 인디 씬을 제외하고 메인스트림 근처에서는 음악보다 배우로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83] '남편'이라는 호칭은 일본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 [84] 고급 맨션으로 보안이 철저해서 일본의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85] 2015년경부터 일본 금융시장에는 '인기 연예인의 결혼 발표와 시장 변동이 겹친다', '연예인의 결혼 발표는 일본 주식을 폭락시킨다,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도시 전설적인 징크스가 존재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2021년 5월 19일 중국에서 금융기관에 암호자산 관련 업무를 금지하는 통지가 내려지면서 전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당시의 반값 가까이 급락한 것이 큰 이유. [86] 함께 남녀노소, 폭넓은 층에 지지받고 있으면서 결혼 후의 공동 출연은 한 번도 없어 화제성은 물론 희소가치도 높다는 것이 그 이유. 1위가 오타니 쇼헤이 부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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