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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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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1984~1986)
최강희
(1987~1990)
최인영
(1991~1992)
최영일
(1993~1995)
김현석
(1996~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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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석
(1998)
박정배
(1998~1999)
김종건
(1999)
김상훈
(200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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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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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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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조세권
(2003)
박진섭
(2004)
현영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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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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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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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섭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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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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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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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이달의 감독상 수상자
8월
최윤겸
( 충북 청주 FC)
9월
박진섭
( 부산 아이파크)
10~12월
정정용
( 김천 상무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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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파일:박진섭24.png
<colbgcolor=#DD0129> 이름 박진섭
朴珍燮|Park Jin-sub
출생 1977년 3월 11일 ([age(1977-03-11)]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66kg
직업 축구 선수 ( 라이트백, 레프트백, 스위퍼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dd0129><colcolor=#ffffff> 선수 상무 축구단 (2000~2001 / 군 복무)
울산 현대 호랑이 (2002~2005)
성남 일화 천마 (2005~2008)
부산 아이파크 (2009~2010)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2011~2012)
감독 울산 현대미포조선 (2011~2012 / 플레잉 코치)
개성고등학교 (2013~2015)
부산 아이파크 (2015 / 수석 코치)
포항 스틸러스 (2016~2017 / 코치)
광주 FC (2018~2020)
FC 서울 (2021)[1]
전북 현대 모터스 (2022 / 전술 코치)
전북 현대 모터스 B (2022)
부산 아이파크 (2022~2024)[2]
국가대표 35경기 5골 ( 대한민국 / 1998~2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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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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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0129><colcolor=#ffffff> 학력 서울중곡초등학교 (졸업)
배재중학교 (졸업)
배재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96 / 학사)
서명 파일:박진섭감독서명.png
}}}}}}}}}}}}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축구 선수 출신 감독.

광주 감독을 맡으면서 K리그2 우승으로 이끌었고 승격 구단 자격으로 도전한 K리그1에서는 첫 시즌에 파이널 A에 올라가며 지도자로서도 명성을 쌓아갔으나 이후 FC 서울에서는 실패를 쓴맛을 보았다.
구단 역사상 부산 아이파크 시절 선수-주장-코치-감독을 모두 맡은 최초의 인물이다.

선수 시절의 등번호는 2번이며 별명은 둘리 혹은 짱구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배재중-배재고 재학 시절 최전방 공격수와 스위퍼를 오가며 중고교 무대에서 두각을 선보였고 한 학년 후배인 송종국과 함께 배재고의 지금까지 마지막 우승 트로피를 견인하는 등 유망한 선수였다.

고교 졸업 후 고려대학교에 진학해 김대의, 권정혁, 박동혁, 차두리 등과 함께 대학 최고의 팀에서 뛰었다. 특히 1998년즈음 대표팀에선 허정무 감독이, 고려대학교에선 조민국 감독에 의해 우측 윙백으로 포지션을 바꿨고, 반대편에 이영표와 함께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하기 시작한다.

고려대학교 4학년이던 1999년부터 유럽 진출을 모색했으나 A매치 출전이 모자라 워크퍼밋을 받지 못했고, 그를 마땅히 원하는 팀이 없었기 때문에 유럽 진출을 포기했다. 대신 K리그 드래프트 접수 마지막 날까지 고민한 끝에 상무 축구단에 합류하며 조기 입대를 선택한다.[4]

상무에서 2년 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 참가했고,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2.2. 울산 현대 호랑이

파일:external/inews24/200505/152139.jpg

상무 전역 후 2002년 3월 울산 현대 호랑이와 5년 계약하며 프로 선수가 됐다. 당시 신인 입단 계약금 상한선인 계약금 3억원을 받았다는 건 울산이 그만큼 그의 대한 기대가 컸음을 알 수 있다.

2004년에는 주장직을 맡기도 했다.

팀의 K-리그 2회 준우승[5]에 공헌하였다.

2.3. 성남 일화 천마

파일:external/image/ohmynews/down/1/junyn_281641_1.jpg

2005년 5월,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였으며, 당시 김학범 감독 아래 백포를 구사하던 성남에서 장학영과 같이 성남의 양쪽 측면 수비를 책임지면서 2006년 K-리그 우승, 2007년 K-리그 준우승 등에 공헌하였다.

울산과 성남에서 모두, 약 7년 간 매 시즌 30경기 이상을 소화할 만큼 리그 최고 수준의 팀에서 붙박이 주전을 맡았다.

2.4. 부산 아이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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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팀의 성적 부진으로 김학범 감독에서 신태용 감독 체제로 전환되면서 팀 개편의 일환으로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였으며, 2010시즌 팀의 새 주장으로 선임되면서 황선홍 감독 플랜에 핵심 선수임을 증명했다.

그러나 2011 시즌을 앞두고 황선홍 감독이 포항으로 떠났고, 부산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안익수 감독이 부임하며 젊은 선수 위주의 세대교체를 단행하며 박진섭은 어쩔 수 없이 팀을 떠나게 됐다.[6]

2.5.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파일:2011111602205_0.jpg

2011년 7월 20일, 한국 내셔널리그 참가팀인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로 이적하였다. 대학 시절 은사인 조민국 감독과의 의리 때문이었다고 한다.

박진섭은 울산현대미포조선의 플레잉코치로 합류해 2011년 내셔널리그 우승을 이끈 뒤 은퇴하였다.

2.6. 국가대표

박진섭은 배재고등학교 재학 시절, 일찌감치 청소년대표로 발탁될 정도로 개인 기량이 뛰어났으며, 1996년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스위퍼로 출전. 세트피스에서 공격 가담 능력이 뛰어났고 활동량도 좋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96 아시아청소년선수권은 한국에서 치러졌고 이 대회를 한국 청소년대표가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에 기여하였다.

1996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 우승을 통해 출전 자격을 얻었던 1997년 말레이시아 U-20 월드컵. 여기서도 박진섭은 본선 3경기 모두 출장하였으나, 이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은 1무 2패 5득 15실이라는 실망스러운 성과를 거두었으며, 그나마 박진섭 선수는 2차전이었던 프랑스전에서 2골을 멀티골을 기록하며 자존심을 지켰고, 덕분에 심재원과 함께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되었다.

1998년 11월 22일, 한중 정기전에서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 2000년 AFC 아시안컵과 2004년 AFC 아시안컵 등의 많은 대회에서 뛰었고, A매치 35경기에서 5골을 넣었다.

허정무호 1기때만 해도 좌영표 우진섭이라고 할 정도로 국대에서 붙박이 멤버였고, 박주영 이전에 천재 소리를 듣던 뛰어난 선수였으나 몸싸움이 약하고 수비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유럽식 피지컬을 강조하던 히딩크호 출범 초반에 대표팀에서 하차하고 말았다. 콤비인 이영표도 박진섭과 비슷한 이유로 후보로 밀려났으나 이내 새로운 대표팀의 스타일에 잘 적응해 주전 자리를 되찾은 것을 생각하면 아쉬울 따름.

2003년 9월 29일, 인천에서 열린 네팔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2004년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5골을 기록하여 팀의 역대 A매치 최다골차인 16 : 0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2004년 AFC 아시안컵 8강 이란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하여 3 : 4 패배와 대회 탈락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이 경기는 그의 마지막 A매치가 됐다.

3. 지도자 경력

3.1. 개성고등학교 감독, 부산 아이파크 수석코치

파일:9829_1.jpg

2013년 친정 부산 아이파크의 산하 U-18 팀인 개성고등학교 축구부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개성고는 동래고, 부경고 등 지역 명문 학교에 상당히 밀려 부산 권역 내에서도 중하위권에 머무는 팀이었다. 일례로, 박진섭 감독 부임 직전 해인 2012년, 개성고는 K리그 U-18 챌린지리그 B조 7위에 그친 팀이었다.

그러나 2013년 박진섭 감독 부임 후 첫해 K리그 주니어 준우승, 2년 차인 2014년 협회장배 전국고교축구대회 우승 및 대통령금배 준우승 등 신흥 강호로 급부상 한다. 이동준, 김진규 등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팀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부임 3년 차 2015년에 부산 구단 자체에 큰 문제가 생겼고, 1군 팀이 강등권에 허덕였다.

결국, 시즌 도중인 7월에 1군 팀 수석코치로 승격하며 프로 팀에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고, 그대로 팀을 떠나게 됐다.

3.2. 포항 스틸러스 코치

파일:2016421105619(2).jpg

2016년 최진철 감독의 부름을 받고 포항 스틸러스 코치로 부임하였으며, 최순호 감독 부임 이후에도 팀에 남아 2017년까지 최순호 감독을 보좌하였다.

3.3. 광주 FC 감독

2018시즌을 앞두고 K리그2로 강등된 광주 FC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프로 팀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7]

광주는 그동안 젊고, 풍부한 경험을 갖춘 지도자, 리빌딩을 통해 새롭고 안정된 팀을 만들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를 찾아왔고, 이에 박진섭이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3.3.1. 2018 시즌

파일:2018033101002594300190831.jpg

FC 안양과의 리그 개막전부터 서울 이랜드와의 리그 4라운드전까지 단 1승도 못거두었으며, 특히 3월 28일 약체로 평가받던 실업팀 대전 코레일과의 FA컵 경기에서도 3:1 충격패를 당하면서 불안한 시작을 알렸다.[8]

하지만 나상호, 임민혁, 김정환, 두현석 등 어린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며 서서히 본인 특유의 축구를 잘 펼치면서 후반기에 두아르테, 펠리페를 영입과 수비 밸런스와 공격 밸런스를 보강, 승점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광주를 4강권 안으로 끌어들이며 승격 경쟁에 불을 붙였으며, 리그 최종 5위를 기록했지만, 리그 1위인 아산 무궁화의 승격권 박탈로 운좋게 K리그2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대전 시티즌과의 준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나상호의 부재와 이승모의 부상, 윤평국의 퇴장 번복과 그로 인한 페널티킥 헌납 등의 어수선한 악조건 속에 결국 0:1로 패하며 승격이 무산되었다.

하지만 감독 경력이 전혀 없는 어린 신인 감독의 데뷔 시즌 치고는 나쁘지 않게 끝냈다.

3.3.2. 2019 시즌

2018시즌을 끝으로 나상호, 안영규 등의 주전 선수들이 대거 팀을 떠나면서 2019시즌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고민이 깊어지는 듯 했지만, 본인 축구의 기본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젊은 선수들을 배치해 밑그림을 그렸고, 부족한 부분은 배테랑으로 채워나갔다.

서울 이랜드와의 리그 개막전에서 2:0 승을 거두며 기분 좋은 시작을 알렸으며, 아산 무궁화와의 홈개막전에서 펠리페의 해트트릭을 앞세워 4:0 대승을 거두며 2연승을 거두었으며, 이후에도 펠리페의 무서운 득점력으로 절정에 오른 공격력, 이희균, 여름 등 2선과 미드필더들의 좋은 지원을 앞세워 7경기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리그 초반 단독 선두에 등극하였다.

주축 펠리페가 안산 그리너스와의 8라운드 원정에서 안산 수비수 박진섭에게 박치기를 가하며 퇴장을 당했지만, 부천FC1995, 전남 드래곤즈와 대결에서 펠리페 없이도 2연승을 거두면서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이후 수원 삼성과의 FA컵 16강에서 패해 시즌 첫 패배를 당했지만 5월 20일 부상으로 빠진 펠리페 없이도 서울 이랜드를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며 리그 12경기 무패를 달성했다.

7월 6일 열린 안산 그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여봉훈의 결승골로 승리하며 2017년 김종부의 경남과 타이인 18경기 무패를 달성했으며, 6월 이달의 감독에 선정되었다. #

7월 14일 서울 이랜드전에서도 2:0 승리를 거두며 19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K리그2 역대 최다 연속 무패 기록을 새롭게 세웠다.


하지만 7월 20일 FC 안양전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1:7 참패를 당하며 무패 행진을 마감하고 시즌 첫 패배를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양복을 입고 나오며 무패 행진을 세운 탓에 징크스를 깨지 않기 위해 한여름에도 계속 양복을 입고 나왔으나 오히려 무패 행진이 깨져 양복을 벗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특히 26라운드까지는 일반적인 4-3-3이나 4-1-4-1 포메이션을 사용했지만 이후 라운드부터 3-3-3-1 포메이션이라는 파격적인 라인업[9]을 들고 나왔고, 이 포메이션으로 3경기 2승 1패를 기록했다.

9월 29일 서울 이랜드전에서는 2-2-4-2라는 전문 풀백이 없는 파격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시작했고, 이날 경기 3:1로 승리했다.
파일:553322_170710_837.jpg
광주 FC의 첫 우승을 이끌다.

10월 19일 안양전에서 4:0 대승을 거두며 충격적이었던 지난 7:1 대패를 깔끔하게 설욕하고 리그 우승에 한발짝 더 다가갔으며, 10월 20일 2위 부산이 안산에 패하면서 마침내 창단 첫 K리그2 1위와 함께 1부 리그 승격을 확정, 광주의 창단 첫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3.3.3. 2020 시즌

성남 FC와의 리그 개막전을 통해 K리그1 데뷔전을 치렀으나 2:0으로 패했으며, 이후 펠리페의 침묵 속에서 3경기 연속 무득점 패배를 당했으며, 울산과의 4라운드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첫 승점을 기록하였다.

수원 삼성과의 리그 5라운드에서 마침내 펠리페의 득점포가 터지면서 시즌 첫 승을 기록하였다.

부산 아이파크와의 리그 6라운드에서 전반전 막판 호물로에게 선제골을 먹혔으나 윌리안의 동점골과 펠리페의 역전골, 김주공의 경기 종료 직전 추가골로 3:1 대역전승을 거두며 2연승하게 된다.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는 펠리페의 헤딩골과 김정환의 역습골을 넣고 경기 막판에 무고사에게 페널티 킥 실점으로 2:1로 승리.

전북 현대와의 경기는 엄청난 수비력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후반전엔 비어있는 골대를 향해 펠리페가 슛을 했지만 골문을 벗어났고 85분에 한교원에게 골을 내주며 아쉽게 1:0 패배했지만 진장한 의미의 졌잘싸였다.

대구 FC전에서는 펠리페가 2골을 넣었지만 결국 2:4로 패하며 3연패에 빠진것도 모자라 부주장인 여봉훈과 이민기가 퇴장당하는 악재가 겹쳐버렸다.

하지만 이후 21라운드 상주전 패배 전까지 차근차근 승점을 쌓으면서 광주의 창단 후 첫 상위 스플릿 A 진출을 이끌었다. K 리그 1 잔류가 목표였던 광주가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둔 셈이다. 참고로, 광주는 창단 10주년에 겹경사를 맞이한 것이다.

광주 팬 그리고 K리그 팬들은 공격 트리오인 펠리페, 윌리안, 엄원상의 역습전술의 박진섭 감독에게 극찬을 보내면서 빅클럽들이 이들을 노리게 되었고, 이별의 시간은 빠르게 다가오게 된다.

광주 FC는 창단 최고의 성적을 내었지만 구단 프런트가 여러 가지 논란에 시달린 것의 여파와 강팀들과의 전력차로 인해 파이널 A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더니 악재에 시달리게 된다.

2020년 10월 28일, 시즌 종료와 함께 FC 서울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단독 기사가 올라왔다. # 일단 광주 구단은 당일 이를 부인하는 입장을 냈다. #

12월 1일, 광주 FC 구단은 박진섭과의 계약 해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 입장문에서 박진섭 감독은 사임 이유를 개인적인 가정사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감독의 고향 연고지팀이자 집이 근처에 있는 FC 서울의 감독 부임은 사실상 확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정황상 광주 FC 프런트 비리 때문에 흔들리는 박 감독에게 고향 연고지팀이자 가정에 보다 충실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접근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광주의 후임 감독은 FC 서울의 수석코치 출신이자 최용수 감독이 사퇴한 이후 대행이었던 김호영 감독을 내정하게 된다.

3.4. FC 서울 감독

2020년 12월 4일 밤, 고향 팀인 FC 서울과 2+1년 계약이 확정됐다는 기사가 전해졌다. #

그리고 12월 8일, 3년 계약으로 공식적으로 FC 서울의 13대 감독이 됐다. # 시즌 시작 전 기성용 오스마르 두 명의 중원 핵심, 즉 "기스마르"의 활용법에 대해 고심하는 모습 #을 보여줬는데, 이 둘이 뿌려주는 패스의 질은 가히 K리그 탑급이나 아무래도 둘 모두 기동력 면에서는 약점을 보이기 때문이다.

FC 서울 13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FC 서울을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겠다고 다짐했다. 최소 파이널 A 라운드와 아쉽게 끝나버린 AFC 챔피언스 리그 본선진출을 목표로 잡고 팀을 이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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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이었던 전북 현대와의 경기에서 괜찮은 경기력에도 불구 자책골 불운에 0:2로 패배했지만, 다음 라운드에서 승격팀인 수원 FC 나상호 기성용의 활약으로 3:0으로 완파하면서 부임 후 첫 승을 장식했다. 하지만 이후 3라운드 성남 FC와의 경기에서는 졸전 끝에 0:1로 충격패를 당했고, 4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도 기성용이 멱살잡고 결승골을 넣으면서 1:0으로 신승을 거두면서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지난 시즌의 서울이 공수 가리지 않고 완전히 망가져 있었던 이상 새판짜기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3월 17일, 자신이 지난 시즌까지 지휘했던 광주 FC와 만났는데 84분 기성용의 결승골로 2:1로 승리했다. 덕분에 순위도 리그 4위까지 올라왔다. 이 경기에서 기성용을 상대적으로 전진 배치시키는 대신 오스마르를 후방으로 빼는 변화를 주었는데 덕분에 오스마르가 수비에 집중해 11번의 인터셉트를 기록하는 사이 기성용이 롱패스 대신 숏패스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나가 공격 템포를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3월 21일, 서울 감독 부임 이후 맞이한 첫 수원 삼성과의 슈퍼매치에서 2:1로 역전승을 기록하며 울산을 밀어내고 2위로 올라섰다. 경기 초반에는 수원의 신예 정상빈에게 선제골을 내주는 등 전반 막판까지 수원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흔들렸지만 전반 추가시간에 터진 기성용의 중거리 슛 동점골과 후반 박정빈이 K리그 데뷔골이자 역전골을 넣으며 승리하였다. 기성용이 프로 데뷔 이후 첫 3경기 연속골을 기록한데 이어 박정빈 또한 K리그 데뷔골을 슈퍼매치에서 기록하는 등 더 의미있는 슈퍼매치 승리였다. 또한 이날 홍준호를 후반 15분 박주영과 교체하면서 톱 스트라이커자리에 놓아 전방으로 날라오는 공중볼을 대부분 따내다가 박정빈의 역전골이 나온 이후 본업인 수비로 내려가서 제리치를 아무것도 못하게 틀어막는 완벽한 시프트를 보여주면서 전술의 짜임새가 굉장히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기성용과 박주영 등 팀의 주축 선수가 몇 명 이탈한 가운데 강원-울산-포항-이랜드[10]-대구에게 그야말로 줄줄이 패하면서 순식간에 6연패에 빠졌다. 그 결과 리그에서는 9위까지 떨어졌고, FA컵은 3라운드 단 한 경기만에 탈락해버렸다.

5월 29일 시즌 두번째 슈퍼매치에서도 0:3으로 완패하며 최근 9경기 3무 6패로 충격적인 수준의 무승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시즌 초반 기대를 모았던 팬심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돌진섭, 섭재앙 등으로 불리고 있는 상황이며, 감독 본인의 거취도 매우 불투명하게 되었다. 물론 다른 팀 팬들은 종신진섭을 외치는 중이다.

이어 6월 19일 광주전에서는 나상호의 선제골이 무색하게 추가시간에 황현수의 어이없는 파울로 통한의 PK골을 내주며 또 승리를 놓쳤다. 이로써 무려 FA컵 포함 12경기 무승행진. 하위권 팀들의 삽질 덕에 어찌저찌 9위에 머물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전망이 매우 어둡다. 강등이 다른 팀 얘기가 아닌 상황. 심지어 경기 종료 후 베테랑 박주영과 주장 기성용 등이 말리는 와중에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를 하다가 퇴장을 당했는데 # ,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해 질문을 받자 "감독의 공백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 이라는 망언까지 했다. #

7월 14일, 휴식기를 가진 뒤 인천과의 경인더비를 치렀다. 여름 이적 시장때 지동원, 가브리엘, 채프만을 영입한 뒤 첫번째로 가진 경기라 팬들의 기대감이 매우 컸으나, 무고사에게 전반 25분 선제골을 얻어맞고 0:1로 패배함으로써 공식 경기 13경기 무승을 이어나갔다. 특히 이 경기에서는 선제 실점을 하자 포메이션을 3백에서 4백으로 바꿨는데, 이때 윙백에서 뛰고 있던 박정빈을 풀백 자리에서 뛰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용병술을 보였다. 익숙지 못한 자리에서 뛴 박정빈은 수비 불안을 노출하며 후반 초반에 잘못 들어간 태클로 퇴장까지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로 영입한 가브리엘과 지동원의 경기력이 나름 괜찮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례없는 무승행진과 FC서울의 안좋은 기록이라는 기록은 전부 세우고 있어서 점점 팬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거기에 계속 선수 보강만을 외치고 있는 건 덤. 기성용 지동원 등의 유럽 경험이 있는 선수와 포항에서 엄청난 폼을 보여줬던 팔로세비치, 국가대표 공격수 나상호, 연령별 대표 공격수 조영욱, 거기에 베테랑 오스마르 고요한, 박주영 등의 선수 구성으로 이런 순위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7월 21일 광주와 강원의 경기에서 광주의 승리로 인해[11] 광주에게 순위를 내주며 최하위인 12위까지 내려왔다. 심지어 경기 수가 같은 성남에게도 1점 뒤진 상태. 남은 경기를 잘 준비해서 무승행진을 끊는다면 꼴지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있지만 그동안 보여준 납득하지 못할 전술과 답답한 선수기용을 보면 팬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을 해줄지나 의문이다. 홍준호와 여름을 트레이드 하는 선택까지 했기 더 이상의 선수 수급 문제를 들 변명조차 없는 상황. 다음 경기인 포항 원정이 박진섭 감독에겐 중대한 고비가 될 가능성이 큰데, 포항도 송민규의 이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맞붙게 되는거라 이 경기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다만, 현재의 상황은 온전히 박진섭 감독만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인다. FC서울은 이번 시즌 홍준호, 박정빈, 나상호, 팔로세비치, 가브리엘 바르보사, 코너 채프만, 여름, 지동원 등을 영입했지만, 이 중에 시즌 전에 영입한 선수는 박정빈, 나상호, 홍준호, 팔로세비치 뿐이며, 현재 홍준호가 제주 유나이티드로 트레이드 된 상황에서 3선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와 센터백 라인은 코너 채프만과 여름이 유일하다.[12] FC서울이 이번 시즌 들어오면서 가장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포지션이 기성용의 짝과 센터백, 타겟형 스트라이커인데 타겟형 스트라이커는 가브리엘 바르보사로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센터백과 3선에 각각 한 명 씩만 영입하고 1, 2선 자원은 무려 4명이나 영입하면서 2선 자원만 무한 경쟁 체제에 들어가게 됐다. 심지어 영입한 2선 자원 중에 전문 윙어는 박정빈이 유일하며 나상호는 1선 침투형 스트라이커, 지동원은 2선 공격형 미드필더가 본인들에게 가장 최적화 된 포지션임을 생각해본다면 이번 시즌 FC서울의 영입은 굉장한 네임벨류와 실력 있는 선수들을 데려왔으나, 정작 필요한 포지션에는 제대로 된 영입을 하지 못한 시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문제가 해결할 수 없던 부분이었냐고 본다면 그렇지도 않다. 이번 시즌 이적시장 때 센터백은 권경원[13]을 영입 가능한 상황이었고, 윙어 또한 여름에 계약 기간이 종료된 FC서울 출신 윤일록도 영입하지 못했다. 이 부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선수들 모두 이적시장에서 S급 선수들이기 때문에 영입에 실패할 순 있지만, 영입 시도조차 했는지 안했는지 불분명하다.

이는 결국 박진섭 감독이 본인의 시그니처인 다채로운 전술을 구사하는데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 올 뿐만 아니라 팀이 경기 컨셉을 가져가는 데 조차 애로사항이 된다. 애초에 3선은 패스의 질이나 빌드업은 좋으나 기동력이 리그에서 최하위다. 그렇다면 이 빌드업에서 이점을 가져가야 하는데 현대 축구는 중앙을 굉장히 촘촘하게 만들기 때문에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션을 통한 반대 전환이나 하프 스페이스 공간을 침투하는 측면 패턴 플레이[14] 등이 나와주어야 공격 전개나 공격 패턴이 단조롭지 않아 전진을 하는데 용이하다. 그런데 현재 FC서울에 전문 윙어는 박정빈뿐이다.[15] 여기에 2선 중앙에 위치하는 팔로세비치도 2선에서 플레이메이킹도 가능하고 1.5선에서 침투하는 걸 좋아하는 플레이 스타일 유형이기 때문에 3선까지 내려와서 볼을 운반하는 것이 어디까지나 가능한 정도지 장점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선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수단이 보강이 됐다는 이유로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은 어폐가 있어 보인다. 물론 2019 시즌이나 2020 시즌에 비하면 선수단이 굉장히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기스마르 조합의 네임벨류 때문에 중원 싸움에서 무조건 유리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특히나 K리그는 3선 자원들의 활동량이 어마어마하기로 유명하다. 아무리 빌드업이 좋다고 한들 상대가 3선을 압박하는데 아무도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면 결코 전진할 수 없다.

결국 FC서울의 현재 문제를 종합해본다면 감독도 전술적으로 성공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16] 팀의 영입 방침도 필요한 자원보단 네임벨류에 의존하여 정작 영입을 하고도 일부 포지션은 뎁스가 부족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17]

24일 포항전, 31일 울산전, 8월 8일 광주전에서 2승 1무를 거두며 반등하는가 싶었으나 전북과의 원정경기에서 답이 없는 수비진들의 집중력으로 3:2로 패했고 제주전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으로 1:0으로 패배, 8월 22일 포항전에서는 팔라시오스의 퇴장으로 10명이 뛰는 포항을 상대로 수비에서의 불안감 노출, 후반 추가시간 팔로세비치의 PK 실축이 겹치며 2:2 무승부를 거두고 말았다. 이어진 8월 25일 울산전에서도 역시 수비진의 정줄놓은듯한 플레이로 울산의 바코에게 멀티골을 내주며 0:2로 끌려가다 후반전에 힘을 뺀 울산이 뒤로 물러나자 조영욱이 만회골을 넣었으나 거기까지였고 경기시간이 끝나갈 때까지 계속 무의미한 크로스와 홈런슛 그리고 백패스만 남발하다 1:2로 패배하였다. 울산전 패배직후 인터뷰에서 자신이 책임지겠다, 구단과 현상황을 보고 상의해보겠다는 발언과 함께 친정팀 광주선수단과 서울선수단을 비교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민심을 또다시 잃어가는 중이다. 당장 이어지는 제주원정과 전북전에서 어느 정도 반등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이젠 정말로 경질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8월 29일 제주 원정에서 패배하였다. 며칠전 최용수 전 감독이 외친 쓴소리가 무의미한 무기력한 모습으로 제주에 또 선제골을 내주고 1:0으로 패배하여 이제 박진섭 감독의 추후거취가 불투명하게 되었다. 또 이 경기 후 인터뷰에서 "서울과는 다른 제주의 무더운 날씨에 힘을 쓸 수 없었다." 라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했는데, 정작 홈 경기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 이번 시즌 서울인지라 팬들의 어이를 더욱 털리게 하는 중. 게다가 전북전에서도 동점 상황 잘 지키다가 후반 막판에 역전골을 허용한 끝에 패배하면서 그나마 남았던 좋은 민심마저 떠나가게 생겼다.

제일 큰 문제는 시즌이 이제 2/3이 넘어가는 상태에서 아직도 베스트 라인업, 즉 플랜 A조차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 팬들을 더욱 갑갑하게 만들고 있다. 3백과 4백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거기에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책임이다, 숙제로 남았다 등의 말만 반복하고 있는데다 공격적인 선수구성으로 수비적인 답답한 축구만 구사하고 있는 것도 의문이다.

9월 5일 전북 현대 전에서 끝이 가까워짐을 직감한 듯 스타팅 라인업에 U-22 자원을 8명 기용하는 파격적인 전술을 들고 나왔고, 강력한 전방 압박으로 전북을 잠시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난타전 끝에 종료까지 남은 20초를 못 버티고 홍정호에게 버저비터 결승골을 먹혀 3:4로 패하고 말았다. 이에 경기 종료 후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서포터즈 수호신들이 버스 앞에서 현 성적에 질타를 하는 내용의 걸개들을 들고 항의했고[18], 이에 박진섭은 주장 기성용과 함께 확성기를 들고 팬들 앞에 나서 “모든 책임은 감독이 지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

9월 6일 강명원 단장과 함께 구단하고 상호 합의 후 성적부진으로 자진사퇴했다. # 이는 2021시즌 K리그에서는 최초의 감독 중도사퇴 사례이며, 후임으로는 안익수 선문대학교 축구부 감독이 선임되었다.
그렇게 기대를 모았던 젊은 지략가 감독과의 동행이 불행한 결말로 끝났음에도 서울 팬덤은 팀 성적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박진섭 감독에게 그렇게까지 적대적이지는 않은 상황이며[19], 다른 팀에서 재기하길 격려하는 여론이 대다수다. 대충 요약하자면 고생한 건 인정하는데 그립진 않다 정도로, 막말로 황보관, 황선홍을 뛰어넘는 구단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성적을 낸 감독치곤 이례적일 정도로 비난 여론이 없는 편. 이미 황선홍 감독을 시작으로 최용수, 김호영에 박진섭까지 감독이 수차례 바뀌고, 프런트도 바뀌고, 선수단도 충원이 되었는데 부진이 이어지는 걸 본 팬덤이 비로소 감독이 아니라 매번 싸고 돌던 선수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자각했고, 박진섭 감독도 김호영처럼 갑자기 떠나 팀에 혼란을 야기시키는 일 없도록 미리 구단에게 의사를 밝히고 구단이 새 감독을 선임할 때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 나가는 사람이라고 팬 목소리 무시하는 일 없이 마지막 전북전까지 팬들 목소리 경청하고, 팬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선수단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20]

그나마 박진섭 감독의 긍정적 유산을 꼽아보자면 유스 출신 젊은 선수들을 발굴해내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 정도. 박진섭 감독이 기용하며 두각을 나타낸 백상훈, 이태석, 이한범, 강성진 등 젊은 피 자원들이 후임 감독 밑에서도 주전급 선수로 분류되어 팀의 반등을 이끌어내고 있다.

3.5. 전북 현대 모터스 전술 코치 겸 B팀 감독

2022년 전북 현대 모터스의 전술 코치 겸 B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빠르게 현장으로 복귀했다. #

이로써, 과거 성남 일화 천마 시절, 2006년 K-리그 우승을 함께 했던 김상식 감독과 재회하게 됐다.

전북은 A팀과 B팀을 각기 다른 팀이 아닌 하나의 팀으로써 유기적으로 운영할 예정인 만큼 K4리그에 참가하는 전북 현대 모터스 B를 이끌면서도 A팀의 전술을 담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부임 후 첫 경기인 대전 하나 시티즌 B팀과의 경기에선 0:3 대패를 당하고 말았지만 3월 13일 대구 FC B전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감독 데뷔승을 거두었다.

2022년 6월 1일 부산 아이파크가 성적 부진으로 히카르두 페레스 감독을 경질시키고 박진섭 감독을 내정했다고 보도되며 반년만에 팀을 떠나는 것이 점쳐졌다. #

기사에 따르면 부산 뿐만 아니라 박진섭 감독을 원하는 팀이 여럿 있었고 6월 1일 서울 중랑 축구단전을 4:1 승리로 마무리한 뒤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

반년간 전북B에서 5승 3무 7패의 성과를 거두었다.

3.6. 부산 아이파크 감독

2022년 6월 3일 부산 아이파크는 제26대 감독으로 박진섭 감독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21]

부산 U-18 팀인 개성고등학교 감독과 1군 코치를 맡던 2015년 이후 약 7년 만에 친정팀에 감독으로서 복귀하게 됐다.

구단의 아이파크 시절 주장-감독을 모두 역임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3.6.1. 2022 시즌

6월 5일 안산 그리너스 FC와의 홈경기에서 2 : 0 승리하면서 부산 감독 데뷔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베스트 일레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현역 마지막 시절을 보낸 곳이자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곳이 부산이라 애정이 깊다고 말하며 동시에 올 시즌은 팀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는 데 주력을 하겠다고 밝혔으며, 이후 팀의 분의기를 추스르는데 주력하였다.

리그 폐막전에서 서울 이랜드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며 전남을 승점 1점차로 밀어내고 가까스로 리그 최하위는 면한채 시즌을 마무리하며 부산 아이파크의 자존심을 지켰다.

전임 감독의 삽질이 많았던 탓에 이 부분은 이해하는 경우가 많으나, 다음 시즌에는 확실한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3.6.2. 2023 시즌

3월 1일 천안시티와의 리그 개막전에서 2:3으로 승리하며 기분좋은 출발을 시작 했다

3월 11일 2R휴식을 하고 3R에 다시 신생팀인 청주를 상대로 아쉽게 비겼지만 작년보다는 좋아지고 있다는 걸 입증했다

3월 19일 K리그2에서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김천과 만났다. 전반엔 득점 없이 끝났지만 후반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작년에 면했던 부산의 이미지도 살리고 자신만의 색을 입히는데 성공 했으며 팀을 3:1 승리로 홈에서 첫승을 만들어 내며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4월 12일 친정 광주와의 FA컵 3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1:2로 패하며 시즌 첫 패배를 기록했다.

8월 29일 기점으로 부산을 리그 2위로까지 끌어올렸다. 이젠 리그 1위와의 승점차도 단 1점차로 PO를 거치지 않고 다이렉트 승격까지 노려볼수 있게 되었다.

9월 3일 안양 원정에서 승리하며 리그 선두가 되었다.

10월 1일 경남 원정에서 승리하며 구단 최다 연승 기록인 6연승을 기록했고, 이후 9월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10월 29일 홈경기였던 부천전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시즌 20승을 기록했고 최소 2위를 확보하였다.

11월 26일 리그 최종전에서 막판에 1:0 앞서가던 후반 막판 조르지에게 실점을 주며 다 잡은 우승을 눈 앞에서 놓치면서 2위로 마무리 했다.

수원 FC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맞붙게 되었으며, 1차전은 2:1 승리하였고, 2차전도 선취골을 성공시키며 승격이 눈 앞에 보였다. 득점 이후 수비 위주로 경기를 펼쳤는데, 이게 문제가 되면서 대량 5실점을 허용했고 5:2 패, 합계 6:4로 패하며 승격에 실패했다.

3.6.3. 2024 시즌

올 시즌이 계약 기간 마지막 해이다. 지난 시즌 아쉬운 준우승 및 승격에 실패했고 이전 소속팀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올 시즌이 박진섭의 감독 커리어에 있어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해이다.

1라운드 서울 이랜드 FC 와의 홈경기에서 공격을 했지만 이랜드의 질식 수비에 막히면서 3:0 패배하였다.[22]

2라운드 경남 FC와의 낙동강 더비 창원 원정경기에서 라마스의 PK와 김찬의 해트트릭과 함께 4:1 역전승을 거두었다.

4라운드 염기훈 감독이 있는 수원 삼성 와의 원정경기에서 전반전 23분 페신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5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선 김종민에게 실점해 0:1로 패배했다.

6라운드 천안 시티 FC의 원정 경기에선 에리키 모따에게 실점했지만 이후 4골을 휘몰아치며 역전승해 4:2 대승을 거두었다.
그동안 8경기를 치르면서 4승 4패를 거두었는데 홈 전패, 원정 전승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거두며 3위에 랭크됐다. 초반 페이스라 성급한 판단은 힘들지만 승격을 위해서는 좀 더 분발해야 한다.

9라운드 안산과의 아시아드 홈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개막 두 달 만에 시즌 홈 첫 승을 거뒀다.

13라운드 성남 원정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올시즌 원정 7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했다.

21라운드 부천과의 홈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거뒀다. 올 시즌 리그 19경기 중 홈에서 단 1승을 거두는 데 그쳤고, 무기력한 경기 운영 능력이 팬들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2024년 7월 8일, 결국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임했다.

4. 지도 스타일

4.1. 광주 FC 시절

주로 4-3-3 포메이션으로 나오는데 이중에서 4백의 역할은 센터백의 경우 최후방 수비뿐만 아니라 빌드업을 책임지고 있으며, 박진섭 축구의 핵심인 풀백은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측면에서 크로스,패스 등을 통해 중앙공격을 지원해주며 수비 시 측면공격수와 함께 상대의 측면공격이 원활하게 전개되지 못하도록 강한 압박을 가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19시즌 기준 주로 이으뜸-김진환-이한도-이시영 조합으로 나서고 있는데 이들은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면서 상대의 유효슈팅을 최소화하고 있다. 센터백인 이한도와 김진환은 수비,빌드업 모두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리그 최소실점을 이끌고 있다. 오른쪽 측면에서 이시영은 과거 송승민을 연상할만큼 많은 활동량을 보이고 있으며 수비적인 부분은 물론 공격에서도 여러 차례 날카로운 크로스를 보이는 등 박진섭 감독이 원하는 풀백축구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왼쪽 풀백으로 출전하는 이으뜸 선수도 공,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특유의 날카로운 왼발킥을 통해 팀의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지만 수비적인 부분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앙미드필더는 리그 4경기에서 모두 여름-박정수-최준혁의 조합으로 나오고 있다. 최준혁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고 있으며 중앙에서는 물론 측면에서의 공격도 적극적으로 차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패스에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를 상쇄할만큼 강력한 수비력을 보여주면서 포백을 보호해주고 있다. 제2의 이찬동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선수로 보인다.

박정수는 최준혁보다는 조금 더 공격적인 위치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로 여름 선수와 함께 상대의 미드필더,수비진을 압박하면서 상대의 공격전개를 방해하고 공격적인 패스,크로스 등을 통해 팀의 득점에도 기여하고 있다.

또한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2019시즌 중반에는 장신 공격수 펠리페의 포스트플레이와 측면 공격, 그리고 포백 중심의 전술이 미드필드진의 에너지 고갈과 함께 점차 한계를 직시하고 3-3-3-1이나 2-2-4-2 같은 중앙 수비의 빌드업 역할을 극대화시켜주는 파격적인 포메이션을 선보이기도 하였다.[23]

하지만 이런 특이한 포메이션을 쓰는 상황을 보면 대부분 주축 선수 누군가가 징계나 부상으로 빠져있을 경우였다.

즉, 본인의 화려한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거나 머릿속에만 있는 이상적인 축구를 위해서 여러 희한한 포메이션을 쓰고 거기에 선수를 맞추기보다는 목표를 위해 당시 상황이나 처지에 맞춰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간 갓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몇몇 K리그 팬들은 지금까지 '국내감독'은 고리타분하고 한 가지 전술을 고집하며, 정신력만 중요시하는 감독이라고 편견을 가지면서 무조건 외국인 감독을 원했지만 항상 외국인 감독을 이야기하기엔 팀 정체성 면에서 연속성을 가지기 힘든 것이 사실이므로 박진섭 감독을 필두로 한 국내감독의 전술적 성장은 분명 큰 의미가 있다.

4.1.1. 파격적인 2-2-4-2 포메이션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박진섭은 2-2-4-2 포메이션이라는 정말 파격적인 전술을 기용했다. 당일 경기에서 ' 이으뜸- 최준혁 시프트'를 사용했다.

이으뜸은 본래 왼쪽 사이드백이고, 최준혁의 경우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모두 볼 수 있는 선수이다. 이 두 선수는 경기 내내 중앙수비와 중원 사이에서 서로 자리를 바꿔가면서 경기를 했다. 이것이 '이으뜸-최준혁 시프트'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이를 팀 전술로 설명하자면, 공격과 수비 시 굉장히 역동적인 포메이션 변화를 가져갔다는 뜻이 된다. 공격 시에는 이으뜸과 최준혁 모두가 빌드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포메이션은 2-4-2-2로 봐도 될 정도로 공격적으로 형성되었다. 다만, 수비시에는 둘 중 한명이 중앙수비로 내려오면서 3-5-2형태의 포메이션을 형성했다. 또한 수비 중 이으뜸이 인터셉트를 위해 올라가거나, 공을 뺏어 전진하면, 최준혁이 그 뒤로 가면서 수비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준혁이 박정수와의 교체로 경기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이 시프트 전술은 계속되었다. 이 전술이 의도한 바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상대 공격의 효과적인 차단이다. 안산 그리너스는 높이에서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빈치씽코와, 저돌적이고 빠른 마사가 투톱으로 나섰다. 또한 중원에는 팀의 명실상부한 에이스, 장혁진이 섰다. 광주는 우선, 수비 시 백쓰리를 사용하면서 상대 투톱을 무력화시켰다. 높이가 있는 이한도와 아슐마토프, 속도가 있는 이으뜸과 최준혁이 빈치씽코와 마사를 봉쇄했다. 또한, 장혁진 등 상대 중원의 인터셉트 및 역습을 차단하기 위해서 이으뜸이 올라가면 최준혁이 내려오고, 최준혁이 올라가면, 이으뜸이 내려오는 전술을 사용했다. 물론, 광주의 이러한 전술이 수비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광주는 '이으뜸-최준혁 시프트'를 통해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우위를 가져가려 했다. 공격 시 광주는 중원에만 네 명을 두었다. 이 과정에서 이으뜸과 최준혁이 모두 올라오면서 수비와 중원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덕분에 임민혁과 여봉훈은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아슐마토프와 이한도는 좀 더 여유롭게 빌드업을 할 수 있었다.

후반 28분 쯤 최준혁이 나가고 박정수가 들어오자, 박진섭 감독은 새로운 포메이션을 형성했다. 바로 유연한 백쓰리였다. 안산이 빈치씽코와 마사를 빼고 이창훈과 방찬준을 투입하며 측면공격과 결정력에 주안점을 둔 전술을 가져간 것에 대한 대응전략이었다. 광주는 높이에서 강점이 있던 빈치씽코가 빠졌기에, 더이상 상대 공격수를 둘러싸면서 수비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중앙수비 간격을 좀 더 벌리면서 상대의 측면공격에 대비했다. 거기에 이시영, 여봉훈이 계속해서 중원에서 중앙수비로 내려가주면서 수비 간격이 넓어지는 것을 방지했다. 이시영은 본래 사이드백이었지만, 중앙 자원으로 변신하면서 중원싸움 및 수비가담에 힘을 보탰다. 윙백인 임민혁과 윌리안의 경우 내려가기보다는 올라가면서 상대 공격을 방해했다. 그 결과, 안산은 전방에서부터 공격에 애를 먹었고, 설사 상대 파이널 써드 부분으로 진입한다 하더라도 상대의 늘어난 중앙 수비를 뚫지 못했다.

광주의 전술실험, 높아지는 K리그의 경쟁력

4.2. FC 서울 감독 시절

그러나 FC 서울 감독 시절에는 컨셉과 팀 전력이 불일치함에도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전 시즌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진 선수단에 팔로세비치와 나상호 정도가 유의미한 전력으로 추가된 팀은 센터백과 3선, 타겟 스타라이커의 부재로 상위 스플릿도 간당간당한 수준이었는데 강팀 서울의 이미지와 기스마르에 이름값에 휘둘려 전북, 울산급 팀이나 할 가둬놓고 패기 컨셉을 시도했다.

센터백 자원들이 기본적인 빌드업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템포 다 죽이더라도 기스마르 중심으로 밑에서부터 다같이 끌고 올라가서 가둬놓고 패겠다는 컨셉이었다.

템포는 느리면서 풀백을 포함해 라인 자체는 끌어올리는데 주력했는데, 측면 자원들이 좁은 공간를 헤집는 데 강점이 있는 선수들도 아니었고, 톱에서 이미 대형 다 갖춘 수비수들 상대하며 버텨줄 자원도 없었다.

느린 템포로 굳이 예쁘게 볼을 차며 상대 수비 자체가 갖춰진 상황에서 공격작업이 시작되니 정말 세밀한 공격전술과 K리그 수비수들을 흔들 개인기량을 요구했는데 당연히 서울 선수단에 그럴 자원은 없었다. 아직 구단들이 감 잡기 전인 시즌 초반에는 선수들의 개인 기량을 앞세워 먹혔지만 이내 한계에 부딪쳤다. 빌드업의 ㅂ자도 모르는 센터백진 대신 오스마르나 기성용이 내려가면 팔로세비치가 기스마르의 빈자리를 메우러 내려가던가, 기스마르 못나오거나 폼 안좋은 날은 공이 안와서 아예 받으러 내려가니 비싼 돈 들여 데려온 팔로세비치의 폼도 죽는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24]. 여기에 카리스마로 기강을 잡는 스타일과 거리가 먼 조용하고 유한 성격에다 중요한 타이밍때 어느정도 선수단에게 파이팅을 불어넣고 적당히 팀의 기강을 잡아야 하는 모습이 필요했지만 그렇지 못했고 선수단이 전반적으로 풀어진 게 부차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25]

차라리 광주에서처럼 정밀함은 떨어져도 공수 전환이 빠른 축구를 하는게 나았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4.3. 부산 아이파크 시절

5. 사단

최소 두 곳 이상 동행한 적이 있는 지도자 한정.

6. 여담



[1] 시즌 도중 사임. [2] 시즌 도중 부임 및 사임 [3] 5골 모두 2003년 네팔전 한 경기에 몰아넣은 골이다. [4] 상무 입대는 거스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박진섭을 대표팀에 멀어지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진섭은 “내 선택에 후회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박진섭은 “2002 한일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 것은 축구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일”이라면서도 “입대 후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곧장 대표팀에 들어갔는데, 나 스스로 준비가 안 돼있다고 느꼈다.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다른 선수들이 잘했기 때문에 내가 선택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5] K리그/2002년, K리그/2003년 [6] 약 10년 후 박진섭의 FC 서울 후임 감독이 안익수가 됐다. [7] 구단 2호 비 광주 출신 감독이다. [8] 대전 코레일전의 경우 주전 선수 대부분을 기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감안해도 대전 코레일전 패배는 상당히 납득하기 힘든 패배이다. [9] 팀의 주포인 펠리페가 결장하였기 때문. [10] FA컵 [11] 코로나로 인한 일정 변경으로 경기 수에 차이가 난 것을 감안하긴 해야한다. [12] 심지어 코너 채프만의 본 포지션은 센터백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센터백으로써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센터백에서는 장단점이 극명하다. 높이에서는 강점을 보이지만, 뒷공간 노출의 약점은 너무 크다. 여러모로 팀 동료인 오스마르와 비슷하다. [13] 권경원은 성남과 2021 시즌만 계약한 반 년 계약이라 이후 상황을 봐서 영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권경원이 원하는 행선지는 해외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예정 [14] 2020-21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인 첼시 FC가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가져간 공격 전개 방식 [15] 정한민은 아직 어린 선수고 조영욱은 최적의 포지션이 세컨드 스트라이커이기 때문에 전문 윙어라고 보기에는 다소 어렵다. [16] 박정빈 풀백 기용 [17] 현재 FC서울의 센터백은 뒷공간 노출에 대한 약점이 너무 큰 오스마르, 코너 채프만과 두 조합이 빌드업도 되지 않으면서 심지어 폼도 좋지 않은 황현수, 김원균 정도이다. 심지어 FC서울은 이런 상황에서 여름을 영입하기 위해 홍준호를 내줬다. 다만 홍준호 트레이드는 광주 시절 좋은 모습을 공유한 여름을 강력하게 원했던 박진섭 감독의 의중이 강했다고 보는 쪽이 맞다. 구단 수뇌부가 "이 상황에서 수비수를 내주는 게 맞냐"는 의문을 제기했음에도 박 감독이 여름 영입을 고집했다는 설이 축구 기자로부터 퍼졌을 정도. 그리고 홍준호가 보낸걸 아쉬워할 정도로 활약이 좋지도 못했다. [18] 이는 거리두기 4단계에 따른 집합 금지 위반이라는 지적 #을 받았으나, 수호신 콜리더는 당시 경찰이 조사까지 나왔으나 이후 추가적인 연락은 없었고, 오히려 이를 기사로 지적한 기자들이 직원의 요청조차 무시하고 권위를 앞세워 소리치는 등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 [19] 어디까지나 사임 이후의 이야기지 13경기(FA컵 서울 이랜드 FC전 포함) 무승과 이후 12위가 점점 굳어져감에도 달라지는 게 없던 시점에선 비판 여론 또한 극에 달했다. [20] 그도 그럴 것이 전북전 바로 다음 날에 본인의 사퇴 발표가 나고 신임 감독 선임 발표까지 같이 났다는 건 전북전 시점에서 이미 팀을 떠나기로 다 결정되어 있었다는 소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 부진에 분노한 팬들과 끝까지 대면하고 사과를 전했기 때문에 12위라는 구단 역대 최악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비판 여론은 덜해졌다. [21] 계약기간은 2024년까지이다. [22] 이랜드의 감독 김도균이 지난 시즌 부산의 승격을 저지한 수원FC의 감독이었다. [23] 아리고 사키 펩 과르디올라가 포메이션 파괴로 유명한 대표적인 지도자이다. [24] 후임 안익수 감독이 전술을 뜯어고쳐 기스마르를 함께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대신 센터백과 3선으로 옮기고, 팔로세비치는 2선에 고정시켜 내려오는 일 없게 만들자 거짓말같이 포항 시절의 폼으로 돌아갔다. [25] 지금은 박진섭 감독같이 유해진 부분도 있었지만 박진섭 감독과 정반대로 예전에는 깐깐하고 빡센 성격으로 유명한 안익수 감독이 서울에 부임하자 마자 강등권 문턱까지 내리막을 치던 팀의 전력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무난히 1부리그 잔류하며 수습이 됐는데 안익수 감독의 여전한 열정적인 훈련과 잡을때는 팀의 멘탈을 확실히 잡아주는 능력은 여전했기에 팀을 어느정도 수습하는데 가능했다. [26] 다행히도 경기에만 그 정장을 입고 평소에는 세탁소에다 맡기고 그 세탁소가 정장 관리를 잘해놔서 땀 냄새는 안 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27] 실제로 맞트레이드한 건 아니고 두 사람 모두 그 전 소속팀에서 계약 해지 후 새 팀으로 부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