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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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고등학교 축구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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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A555><colcolor=#fff> 이름 |
김종건 金鐘建 / Kim Jong-K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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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9년 5월 10일 ([age(1969-05-10)]세)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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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축구선수 (
공격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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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83cm, 73kg | |
학력 | 안양초 - 안양중 - 안양공고 - 한양대학교 | |
소속 | <colbgcolor=#02A555><colcolor=#fff> 선수 | 현대 호랑이/울산 현대 호랑이 (1992~2000) |
감독 |
울산대학교 (2002~2009 / 코치) 울산대학교 (2004) / 감독대행) 홍익대학교 (2011~2012 / 코치) 홍익대학교 (2013~2016) 서울 용산FC U-18 (2017~2018) 경희대학교 (2019~2023 / 코치) 오상고등학교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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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1경기 0골 ( 대한민국 / 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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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선수 시절 K리그 울산 현대 호랑이의 공격수, 미드필더이자 원클럽맨이었다.2. 선수 경력
2.1. 프로 데뷔 이전
김종건은 안양공고 시절 2학년 까지 미드필더로 뛰면서 추계 KBS배 축구대회 때 우승시 최다 득점(3골)을 기록해 두각을 드러냈으며 3학년 때인 1987년, 포지션을 공격수로 바꾸고나서 대통령금배쟁탈전국고교축구대회 2라운드 동아고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당대 유명 공격수인 최순호를 연상케 한다는 평을 들었고, 이날 경기장을 찾은 대학교 감독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1988년 한양대에 진학해서는 1학년 때 부터 88봄철전국대학축구대회에 출전했고 2학년 때는 89봄철전국대학축구대회 동국대와의 준결승 연장전에서 1득점을 하는 활약을 선보였고, 8월 전국대학축구대회 관동대 전에서는 2득점, 4강전 경희대 전에서 1득점, 고려대와의 준결승전에서는 전반 10분 중거리 슛으로 1득점을 하는 등 4골을 넣어 최다득점선수에 선정되었다. 3학년 때인 1990년에는 90대학축구연맹전에서 4골을 기록하면서 팀이 우승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단단히 했다. 4학년 때는 전국대학선수권 대회에서는 고려대를 꺾고 우승하면서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골게터로써 확실히 이름을 남겼다.
2.2.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
대학 시절 활약으로 1992 K리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현대 호랑이에 입단한 김종건은 1992년 5월 9일 일화와의 경기에서 후반 23분 교체 출전을 한 것으로 프로에서의 경기를 시작한다. 이후 5월 21일 LG와의 홈경기에서 전반 22분 페널티에어리어 오른쪽에서 김현석이 준 볼을 받아 프로 통산 첫 득점을 올린다. 이듬해 9월 29일 LG와의 경기에서는 강재순의 해트트릭을 돕는 등 1골 3도움의 활약을 했다. 1994년에는 9골을 기록했고 1995년에는 팀의 아디다스컵 우승에 기여하면서 김현석, 송주석과의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고 1996년에는 울산 현대 호랑이의 첫 우승을 만끽했다.1997년 4월 16일 유공과의 원정 경기에서 전반 37분, 하프라인을 살짝 넘어 날린 슛이 그대로 골네트를 갈라 득점하면서 K리그 사상 첫 50m 장거리 득점으로 기록되는 진기록을 세운다.[1] 1998년에는 컵대회인 필립모리스컵에서 7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시즌 12골과 2도움을 올렸고 FA컵 역시 5골로 득점 1위에 오르는 등 맹활약을 한다.
개인 통산 최고의 시즌이었던 1999년 당시의 김종건 |
2000년 K리그 경기에서[3] |
훗날 그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빠른 은퇴가 구단의 일방적인 퇴출 종용 때문이었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종건은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약방의 감초처럼 팀이 고비일때마다 재치있는 플레이로 팀 승리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맡아 활약했다.
3. 국가대표 경력
한양대 4학년 시절에 영국에서 열린 91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대표팀에 선발되어 예선 알제리전에서 1득점 등 3골을 넣어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첫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으며, 성인 대표 기록으로는 1994년 5월 3일 2:1로 이긴 카메룬과의 친선경기에서 출전한 기록이 있다.4. 지도자 경력
2000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서 은퇴한 김종건은 2002년 울산대학교에서 코치를 한 것을 시작으로 지도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2004년에는 당시 이상철 감독이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수석코치로 팀을 떠나자 감독대행을 맡아 전국 대회 3관왕을 차지하는 등 지도자로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2005년 문기남 前 북한 대표팀 감독이 울산대 감독으로 부임하자 다시 코치로 내려갔다. 2009년까지 코치로 재직하면서 정경호, 이승기, 김태환 등의 선수를 지도했다.2011년 홍익대학교 코치로 이적한 김종건은 김종필 감독을 보좌하면서 김기희, 심동운, 박주원, 이명재 등의 선수를 지도했고 U리그 왕중왕전에서 우승해 우수지도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2013년부터 감독에 올라 2014년 U리그 5권역 1등을 이끌었고, 2015년 KBSN 제11회 1, 2학년 대학축구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
2016년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서울 용산FC U-18 팀에서 2년 간 감독으로 지도했다.
2019년부터 경희대학교에서 다시 코치로 김광진 감독을 보좌해 선수들을 지도했다.
2024년부터 경북 구미 소재 오상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4]
5. 여담
- K리그 등록명이 김종건2였는데 이유가 1964년생으로 마찬가지로 현대 호랑이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일화에서 은퇴한 김종건1이란 동명이인 축구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문명도 金鍾建으로 둘다 같았지만 김종건1은 1991년 현대 호랑이에서 일화로 이적했고 김종건2는 1992년 현대 호랑이에 입단해 같은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