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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글렌

United States Congressional Gold Medal
미합중국 의회 명예 황금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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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1777년 1779년 1781년
조지 워싱턴 소장 호레이쇼 게이츠 소장 앤서니 웨인 사령관 헨리 리 3세 준장 대니얼 모건
1781년 1787년 1800년 1805년 1813년
소장 너새니얼 그린 존 폴 존스 대령 토머스 트럭스턴 준장 에드워드 프레블 대령 아이작 헐
대령 스티븐 디케이터
대령 제이콥 존스
1813년 1814년
대령 윌리엄 베인브리지 대령 올리버 해저드 페리
대령 제시 엘리엇
대위 윌리엄 워드 버로스 2세
대위 에드워드 매콜
대령 제임스 로렌스 대령 토머스 맥도너
대령 로버트 헨리
대위 스티븐 카신
1814년 1814년, 1848년 1814년
대령 루이스 워링턴 대령 존스턴 블레이클리 소장 제이콥 브라운 소장 윈필드 스콧 소장 피터 부엘 포터
준장 엘리저 윌락 리플리
대령 제임스 밀러
1814년 1815년 1816년
소장 에드먼드 P. 게인스 소장 알렉산더 마콤 소장 앤드루 잭슨 대령 찰스 스튜어트 대령 제임스 비들
1818년 1835년 1846년, 1847년, 1848년 1847년 1854년
소장 윌리엄 해리슨
주지사 아이작 셸비
대령 조지 크로간 소장 재커리 테일러 소머스 호
장교 및 승무원 구출
중령 덩컨 잉그함
1858년 1863년 1864년 1866년 1867년
프레더릭 로즈 소장 율리시스 S. 그랜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로버트 크레이튼
에드윈 J. 로
조지 C. 스투퍼
사이러스 웨스트 필드
1867년 1871년 1873년 1874년, 1904년 1883년
조지 피바디 조지 F. 로빈슨 대령 재러드 크랜달 그 외 존 혼 주니어 존 폭스 슬레이터
1888년 1890년 1900년 1902년 1909년
조셉 프랜시스 수석 엔지니어 조지 W. 멜빌 그 외 중위 프랭크 H. 뉴컴 중위 데이비드 H. 자비스
소위 엘스워스 P. 버트홀프
새뮤얼 J. 콜 박사
라이트 형제
1912년 1914년 1915년 1928년
선장 아서 로스트론 폴 H. 크라이봄 그 외 로물로 세바스티안 나온
에두아르도 수아레스 무히카
찰스 린드버그 로알 아문센
움베르토 노빌
1928년 1929년 1930년 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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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938년 1939년 1940년
조지 M. 코핸 리처드 올드 리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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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1945년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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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원수 어니스트 킹
육군 원수 존 조지프 퍼싱 준장 빌리 미첼
1949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58년
앨번 W. 바클리 어빙 벌린 조너스 소크 박사 남북 전쟁의 참전 용사 준장 하이먼 리코버
1959년 1960년 1961년 1962년
로버트 고다드 로버트 프로스트 토머스 앤서니 둘리 3세 밥 호프 샘 레이번
1962년 1968년 1969년 1973년 1977년
육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 월트 디즈니 윈스턴 처칠 로베르토 클레멘테 매리언 앤더슨
1978년 1979년
중장 아이라 이커 로버트 F. 케네디 존 웨인 벤 아브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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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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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980년 1982년
미국 적십자 케네스 테일러 1980 미국 하계 올림픽 팀 베아트릭스 여왕 대장 하이먼 리코버
1982년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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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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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 거슈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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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탈 샤란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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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990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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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996년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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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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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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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레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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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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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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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페레스 모뉴먼츠 맨
2014년 2015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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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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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인 참전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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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20년 2021년
무명의 수여자들 그렉 르몬드 미국 국회의사당 경찰
컬럼비아구 경찰청 소속 경찰관
제369 보병연대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전사한 13명의 장병
2022년 2023년
미 육군 제23부대 본부 특수부대
제3133 신호 복무 중대
제6888 중앙우편대대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상선 선원
에밋 틸
메이미 틸모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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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93-105대 연방 상원의원
존 허셜 글렌 주니어
John Herschel Glenn Jr.
파일:john-herschel-glenn-jr-july-18-1921-december-8-2016-american-aviator-engineer-astronaut-united-states-senator-ohio-february-20-1962.jpg
<colcolor=black><colbgcolor=black> 이름 존 허셜 글렌 주니어
John Herschel Glenn Jr.[1]
출생 1921년 7월 18일
미국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사망 2016년 12월 8일 (향년 95세)
미국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우주비행사, 상원 의원
선발 1959년 NASA 우주비행사 그룹 1
임무 프렌드쉽 7호, STS-95
은퇴 1964년 1월 16일
정당

서명
파일:John_Glenn_Signature.svg
1. 개요2. 생애
2.1. 군 경력2.2. NASA 경력2.3. 정치 경력2.4. 최고령 우주 비행사2.5. 사망
3. 대중매체에서 4. 선거 이력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John_Glenn_Low_Res.jpg
미국의 우주 비행사이자 4선 상원의원. 최초로 우주 궤도를 돈 미국인[2](3번 도는 데 4시간 55분 23초)으로,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 국민적 영웅이 되었으며 이후 노인이 되어서도 우주 비행에 재도전하여 세계 최고령 우주비행사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고향인 오하이오 콜럼버스에는 그의 이름을 기린 '존 글렌 콜럼버스 국제공항'이 있다.

또한 대체로 친공화당 성향이 강한 보통의 NASA 출신과 달리 드물게 민주당 소속이었다는 특징도 있다.

2. 생애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70px-Colonel_John_Glenn_official_photo.jpg

미국인 최초로 우주 궤도 비행을 성공시킨 사람으로 유명하다. '최초로 우주에 나간 미국인'은 앨런 셰퍼드 거스 그리섬이지만, 이들은 탄도비행에 그쳤기 때문에 '미국의 유리 가가린'이 누구냐 물으면 미국인들은 대개 글렌을 떠올리는 편. 또한 역사에 남은 머큐리 세븐 중 최후의 생존자[3]이기에 미국인들(특히 어린 시절 미소간의 우주 경쟁을 봤던 장년층)이 그를 보는 시선은 더욱 각별하다.[4]

원래는 미합중국 해병대 전투조종사 6.25 전쟁에도 참전했다. 위의 정복 사진을 잘 보면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 표창인 태극문양 새겨진 약장도 있다.

군복무 중 1959년에 머큐리 계획 우주 비행사로 선발되었고 1962년 2월 20일에 프렌드십 7호를 타고 미국인 가장 처음으로 우주 궤도를 도는(3번 도는데 4시간 55분 23초) 사람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그 뒤에 1964년에 RFK에게 정계 입문 제의를 받고 수락하여 대령으로 전역[5]하며 NASA에서 나와서 민주당 소속 오하이오주 연방 상원의원이 되었다. 국민적 영웅이 된 동료 우주비행사들은 과도한 인기를 부담스러워하거나 심지어 정신적으로 무너진 경우도 있는 반면,[6] 존 글렌은 원래부터 정치적 감각과 쇼맨쉽이 있어서 영웅으로서의 인기를 잘 관리하면서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NASA에서도 어차피 다시 우주에 내보내지도 못할 인물[7]인데다가 정계에의 연줄이자 쏠쏠히 예산을 퍼줄 얼굴마담(...)이 되어 줄 수 있는 만큼 NASA에서 내보내면서도 나쁘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글렌의 입장에서도 대외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한 채 그만두는 게 좋았다.[8][9]

어린 시절부터 소꿉친구로 함께 자라며 평생을 함께 한 애니 글렌에 대해 언급하자면, 애니는 언론이 가하는 과도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심각한 말더듬이 장애를 안고 있어 당시 존 글렌이 적극적으로 보호해주지 않았다면 뭔 꼴이 날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10] 애니는 1970년대에 집중 치료를 거친 뒤에야 어느 정도 대외적으로 더듬더듬 연설이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화를 걸거나 교통 티켓을 구입하거나 쇼핑을 나가는 당연한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을 느꼈지만 이제 쇼핑센터에 나가는 것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남편에게 “몇 년 동안 말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양말은 제대로 주워놓으라”고 잔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언어 장애 경험과 어려움에 대해 연설을 하는 등 외부 활동을 시작했다. 애니가 밝힌바에 따르면, 치료 후 처음 그녀가 말을 더듬지 않고 "존"하고 남편을 불렀을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존 글렌은 감동을 받아서 결국 울고 말았다고 한다. 애니는 남편이 죽은 지 약 3년 반 후인 2020년 5월 19일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요양 중 사망했는데 향년 100세였다.

2.1. 군 경력

대학생이던 글렌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에 복수하기 위해 대학을 자퇴하고 즉시 미 육군 항공대에 병으로 입대했다. 그러나, 비행단 지상근무요원은 아무런 전투임무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육군 복무 중인 1942년 3월 그는 해군 항공 사관후보생 과정에 지원했다. 글렌은 1943년 3월 조종훈련 기본과정을 마치고 해병대 예비역[11]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후에는 조종훈련 고등과정을 거쳐 제353해병공수비행대대(VMJ)에 배치되어 R4D 스카이트레인 공수기를 조종했다. 이후에는 제155해병관측비행대대(VMO)로 전근, F4F-3P 와일드캣 항공사진 정찰기 조종사로 근무하다가, 대대가 F4U 콜세어 전투기로 기종을 전환하고 해군 항모비행단으로 전속되는 바람에 전투조종사가 되었다. 그가 속한 155대대는 미 해병대 최초로 해군 항모비행단에 소속된 항모배치 해병비행대대이자 북태평양 지역의 유일한 해병비행대대가 되어, 보그급 호위항공모함 11번함 USS 나사우(CVE-16)과 함께 에투섬 전투에 참가했다.

1943년 10월에 그는 해병대 중위로 진급했다. 1944년 1월 대대는 항모배속이 해제되어 하와이로 이동했고, 1944년 6월에는 마셜 제도에 있는 육상 비행기지로 재배치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57~59회에 달하는 전투임무를 수행하여 2개의 공군십자장과 10개의 항공수훈장을 받았다. 1945년에는 1년간의 의무 파병기간을 다 채워서 미 본토 부대인 제913해병전투비행대대(콜세어 대대)로 배치되었고,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난 1945년 7월에는 해병대 대위로 진급했다. 예비역이었던 그는 그때까지도 아직 해병대 현역으로 복무할 생각은 없었지만 현역 전환 자격시험을 준비하여, 1946년 예비역에서 현역으로 복귀했다.

1946년 중국에서 제2차 국공내전이 발생하자 그는 중국 파병에 지원하여 콜세어 비행대대인 제218해병전투비행대대와 함께 1946년 12월 베이징 난위안 공항에 배치되었다. 218대대는 1947년 3월까지 중국에서 항공초계 임무를 수행하다 전황이 악화되자 결국 괌으로 철수했고, 1948년 12월 그는 대대와 함께 미 본토로 귀국했다. 귀국한 그는 해군 비행교육대에서 비행교관으로 근무하다, 1951년 7월에는 6개월 과정의 해병대 상륙전 학교에 입교, 이후에는 해병학교 참모로 지상 근무를 했다. 이 기간에 그의 비행시간은 월 4시간에 불과했는데, 이것도 휴일인 주말비행을 통해서야 겨우 그의 조종자격과 비행수당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52년 7월 그는 해병대 소령으로 진급했다.

1952.10월 그는 6.25 전쟁 파병을 명령받았고, 1953년 2월 3일에 그는 포항공항에 도착하여, 미 해병대 제33해병비행전대 311해병공격비행대대 작전장교로 근무를 시작했다. F9F 팬서 전투공격기로 구성된 311대대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1953년 2월 26일 항공정찰 임무를 시작으로 한국에서 첫비행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서 63회의 전투임무를 수행했는데, 한국에서 그는 자석 엉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별명은 그가 지나치게 낮은 고도로 근접항공지원(CAS)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그의 전투기가 적군의 대공포 화력을 끌어 모은다 하여 생긴 별명이다. 그는 두번이나 자신의 전투기에 250개 이상의 대공포 피탄 구멍을 만들어 기지로 복귀한 전력이 있었다. 또, 그는 미국 메이저리스 보스턴 레드삭스 팀의 프로야구 선수이자 미 해병대 상근예비역 전투조종사로 같은 대대에 근무하고 있던 테드 윌리엄스 해병대 대위의 윙맨으로 잠시 함께 비행을 하기도 했고, 나중에 해병대 소장까지 진급한 랄프 스팬저와 함께 비행을 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오기전 그는 각 군간 상호 인적교류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F-86 세이버 전투기 조종교육을 받았고, 한국에 주둔한 미 공군 제51전투요격 비행단 25전투요격 비행대대에서 F-86F 세이버 전투기 조종사로 잠시 근무한 적도 있다. 그는 미 공군 25대대에서 F-86으로 27회의 전투임무를 수행했다. 1953년 7월 12일 그는 공군 세이버 전투기를 타고 MiG-15 전투기를 처음으로 격추했고, 7월 19일에 또 한 기, 7월 22일에도 또 한 기를 격추했다. 세이버 전투기로 단지 4번의 공중전을 통해 3기의 미그기를 격추했지만 안타깝게도 곧 전쟁이 끝나버렸기 때문에 기록은 여기서 멈추고 만다. 6.25 전쟁에서 그는 2개의 항공수훈십자훈장과 8개의 항공수훈장을 받았다.

한국에서 그는 미 해군 시험비행 조종사 과정에 지원하여, 1954년 1월 미 해군 테스트 파일럿 스쿨에 입교했고, 54년 7월에 졸업했다. 이 학교에서 그는 나중에 명예 훈장 수훈자가 된 제임스 스톡데일에게 물리학과 수학 강의를 들었다. 시험비행 조종사로 그가 처음 시험한 항공기는 F-86 세이버 전투기의 해군형인 FJ-3 퓨리 전투기였는데, 이 시험비행에서 그는 조종석 압력 계통과 산소공급 시스템 고장으로 거의 죽을뻔 했다. 또한 그는 F7U 커틀래스 전폭기와 F8U 크루세이더 전폭기의 무장 체계를 시험했다. 1956년 11월~1959년 4월 사이에는 메릴랜드 대학교에 파견되어 신형 전투기 설계를 지원했다. 1957년 7월 16일 그는 미국 최초의 초음속 대륙횡단 기록을 세웠다. 그 전까지는 미 공군 F-84 썬더제트 전투기가 세운 3시간 45분이 최고 기록이었지만, 글렌은 해군용 F8U 크루세이더 전폭기로 그 기록을 3시간 23분으로 단축했다. 이 공로는 그는 5번째 항공수훈십자훈장을 받았고, 1959.4.1일에는 해병대 중령으로 진급했다. 이때 그는 거의 9,000시간의 비행시간을 가지고 있었고, 이중 3,000시간은 제트기 비행시간이었다.

2.2. NASA 경력

1959년 NASA의 머큐리 우주선 계획에 참가하여 우주인이 되었다. 1964년 10월 해병대 현역 대령으로 진급했다. 23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1965년 1월 1일 해병대에서 퇴역했다.

2.3. 정치 경력

글렌은 1960년대부터 정계 활동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군인 휴직을 신청해 민주당에 입당하여 해병대 중령 신분으로서 1964년 상원의원 선거 민주당 경선에 출마해 같은 당 소속 현역이었던 스티븐 머피 영과 맞붙었으나 그해 2월,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다쳤고, 이 여파로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후 1965년 해병대를 전역하고 민간회사에서 근무하다, 1970년 연방 상원의원 경선에 다시 도전했으나 이번에는 사업가 겸 오하이오 주의회 상원의원인 하워드 메첸바움에게 간발의 차이로 패했다.[12] 이후 1974년 세번째 도전 끝에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어 1999년 1월까지 상원의원을 지냈다. 1987년~1995년까지 상원 정무위원장을 지냈다.

1976년 대선 당시에는 부통령 지명 후보로 오르기도 했으며[13], 198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 후보 선출에도 나섰지만 사퇴한다.

2.4. 최고령 우주 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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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STS-95_crew.jpg
앞줄은 사령관과 조종사인 커티스 브라운과 스티븐 린제이, 뒷줄은 스캇 패러진스키, 스티븐 로빈슨, 무카이 치아키[14], 페드로 듀케[15], 존 글렌

1998년 10월 29일, STS-95 미션에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를 타고 우주로 올라가 세계 최고령 우주 비행사이자 비행 간격이 가장 긴 우주 비행사[16]가 되었다. 당시 나이 77세였다.

'늙은 사람이 우주 비행을 해도 되는지'에 대한 실험을 하기 위해서 우주 비행을 결심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점점 예산도 줄어들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던 NASA에서 다시 한번 영광의 그때로 돌아가자! 하려고 존 글렌을 끌여들인 프로젝트다. 미국 최고의 전성기 시절인 60년대에 우주개발 경쟁, 그리고 그 경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젊은 시절의 글렌을 지켜본 세대와 언론에 주목을 끌기 위한 것이다.

그래도 올라가기 위해서 나사의 테스트를 통과했고, 우주왕복선 내의 직책도 받았다. 다만 직책 자체는 미션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우주비행 참가자 자격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런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대선배를 관광객 취급하다간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게 당연한지라 그 누구도 글렌을 무시하지 못했다고.[17] 이 비행으로 인해 역대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18] 중 마지막 미국인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2.5. 사망

2016년 12월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그는 우리에게 무한한 용기와 개척정신을 상기시켰다”며 “(글렌과 함께 우주 비행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미국 최초의 우주인 중 마지막 한 분이 이제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우주를 향한 희망은 미래에도 빛날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

3. 대중매체에서

척 예거 머큐리 계획을 다룬 영화 필사의 도전에서는 당시에 주목받은 신인인 에드 해리스가 연기했는데, 실제 존 글렌과 싱크로율 100%를 자랑한다. 마초적인 셰퍼드, 뺀질이 쿠퍼, 불운한 그리섬에 비해 약싹빠르고, 말 잘하고, 적절히 쇼맨십 있는 이미지로 묘사된다.

지구에서 달까지에서는 직접 나오지는 않으나, 제미니 계획을 앞두고 선발된 뉴 나인(New Nine) 멤버들이 "존 글렌이 나중에 국회의원 할 거라네. 나중에 대통령도 나갈듯 해. 너는 글렌 나오면 찍을 거야?" 하는 장면으로 언급된다.[19] 드라마가 머큐리 계획은 셰퍼드의 첫 비행만 다루고 넘어간 지라 어쩔 수 없는듯. 그런데 실제로 존 글렌은 훗날 상원의원이 되었고, 대통령 경선에도 도전한 적이 있다. 지미 카터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부통령 후보로 글렌과 월터 먼데일[20]을 두고 검토하다 먼데일이 지명되었고, 이후 로널드 레이건이 재선에 도전한 1984년 대선에서도 먼데일 前 부통령이 후보로 선출되며 고배를 마셨다. 뭐 1984년 선거에서는 레이건이 압승을 거뒀다고는 하지만, 일이 잘 풀렸더라면[21] 사상 유례없는 우주인 출신 대통령으로 역대급 인기를 구가했을 지도?

2017년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는 글렌 파월이 연기하였다. 이 작품을 통해 그의 멋진 인품과 능력을 프렌드십 7호 조종사로써 잠깐이지만 추모하며 엿볼 수 있다. 배우 터라지 P. 헨슨은 SAG 배우 조합상을 받아 소감으로 감사를 표하며 존 글렌에게 추모를 전했다.[22] 영화상에서는 우주비행사들이 NASA를 방문할 때 백인 연구원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연구원이 따로 도열해 있었는데, 우주비행사 중 유일하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악수와 인사를 나누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연구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도 전한다. 후반에도 프렌드십 7호의 발사를 앞두고 IBM 컴퓨터의 계산 오류가 발생했을 때 "그 여성분(캐서린 존슨)의 계산이라면 믿겠다."고 말하여 컴퓨터에 밀려났던 캐서린이 복귀할 계기를 제공한다.

2022년 영화 탑건: 매버릭에서 존 글렌의 에피소드를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대사가 나온다. 시험기 다크스타를 날려먹고 겨우 복귀한 매버릭을 케인 제독이 사정없이 닥달하는 장면에서, "자네 정도 경력이면 제독 자리에 앉아있거나 상원의원 뱃지를 달고 있어야지 지금 뭐하고 있는건가" 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의 배경을 잘 모르면 뜬금없이 상원의원이 언급되는 것이 이상하거나, 그냥 "더 출세했었어야지"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일수 있는데, 바로 이 대사가 존 글렌을 모티브로 한 대사이다. 존 글렌이 전투조종사, 시험조종사를 거쳐 우주비행사까지 하고 해병 대령으로 전역한뒤 결국 정치계에 입문해 상원의원까지 25년 했으니, 케인 제독이 "자네 정도면 존 글렌 처럼 상원의원은 했어야지"라며 비꼬는 장면인 것이다. 절묘하게도 영화 속 매버릭의 계급 또한 해군 대령이다(...) 여기에는 배우 개그도 들어있는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초창기 우주비행사들을 그린 1983년 작 '필사의 도전' 이라는 영화에서 존 글렌을 연기한게 탑건: 매버릭에서 케인 소장 역을 맡은 에드 해리스이다. 앞서 언급된 글랜 파월도 여기 출연한다.

스타 트렉: 디스커버리에서 USS 디스커버리의 자매함으로 USS 글렌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보인다.

하츠 오브 아이언 4 대체역사 창작 모드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에서 1968년 미국 대선 후보 중 한명으로 등장했었다. 당선되면 우주경쟁을 시작하고 달과 화성 탐사 계획을 실행한다.

4.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74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오하이오

1,930,670 (64.62%) 당선 (1위) 초선
1980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2,770,786 (68.80%) 재선
1986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1,949,208 (62.45%) 3선
1992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2,444,419 (50.99%) 4선


[1] 미들네임인 허셜은 천왕성의 발견자 윌리엄/ 캐롤라인 허셜 남매의 그 이름이기도 하다. [2] 세계 최초로 우주로 나간 유리 가가린도 궤도를 돌았다. 앨런 셰퍼드의 경우 미국 최초로 우주로 나갔으나 이쪽은 가가린의 성공에 자극받아 급하게 올라간 터라 탄도 비행에 그쳐 당시에는 저평가되었다. [3] 거스 그리섬이 1967년에 아폴로 1호 화재참사로 가장 먼저 사망했고, 이 다음에는 디크 슬레이튼, 앨런 셰퍼드가 1990년대에 별세했으며, 고든 쿠퍼 월리 시라도 2000년대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2013년에 스캇 카펜터까지 세상을 떠나서 머큐리 세븐은 끝내 글렌 홀로 남았다. [4] 이게 어느 정도냐면, 그 당시 미국 과학잡지에서 우주비행 역사를 설명할 때 유리 가가린을 빼고 존 글렌의 궤도비행을 집어넣어놨을 정도였다. 사이언스(잡지) 창목 참조. [5] 이 시기에 머큐리 우주비행사들은 군에서 소령 내지 중령 정도의 계급을 달고 있었지만 글렌은 그 상징성 덕에 조기 진급했다. [6] 당시의 우주비행사들은 본질적으로 군인, 비행기 조종사여서, 자연히 성격들도 대부분 차분하고 내성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아폴로 계획을 성공시키고 나서는 어지간한 슈퍼스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전 지구적 인기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니 그들의 정신적 부담이 어떠했겠는가. 아폴로 11호 3인방인 닐 암스트롱, 에드윈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는 달에서 무사히 귀환한 후에 말 그대로 전 세계 순회공연을 돌았다. 그나마 올드린은 사교적이고 외향적이라 전 세계와 소통하며 우주를 대중화시키는 업적을 남기고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암스트롱은 은둔의 삶을 택했다. 음모론자들이 얘기하듯이 NASA가 입을 막은 게 아니라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암스트롱이 은둔한 이유가 음모론자들의 근거없는 비방 때문이었다. [7] 유리 가가린이나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양리웨이 등 각국의 우주개발에 있어 상징성이 큰 인물들은 업적을 이루고 돌아와서는 훈장으로 방탄복을 만들어주면서도 다시 우주에 내보내기엔 목숨이 아깝다는 이유로 평생 우주비행이 금지되었다. 암스트롱은 얼씨구나 하고 은둔했지만, 우주비행에 진심이었던 올드린은 이 조치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을 가슴 아파해 한동안 우울증 같은 정신병으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앨런 셰퍼드와 거스 그리섬은 최초의 우주비행 기록을 세웠지만 탄도비행이기 때문에 그런 압박에서 자유로웠고(탄도비행만으로 그렇게 대우하기에는 가가린과 소련에게 뒤쳐지는 인상도 강했으니) 그 덕에 제미니 계획 아폴로 계획에서도 활동하게 됐다. [8] 아내가 기레기들에게 너무 심한 압박을 받자, 글렌은 대외 홍보 관계자들에게 울 마누라 작작 좀 건드려! 하고 사자후를 내질렀다가 트러블이 생긴 상황이었다. [9] 영화 필사의 도전에서도 린든 B. 존슨 부통령과의 공개 인터뷰 요구를 받자 애니가 어쩔 줄 모르며 훌쩍거리자 존은 NASA에서 잘릴 거 각오하고 "부통령이든 어떤 새끼든 누구도 집에 들이지마! 괜찮아! 다 씹어!"라며 압박에도 굴하지않고 아내를 진정으로 위하는 남편의 간지를 보여준다. 해당클립 그러나 이 사건으로 글렌은 (나쁘게 말하자면) LBJ에게 찍힌 몸이 되었고, 결국 글렌은 훗날 정계에 입문해서도 LBJ보다는 자신을 정계에 끌어들인 로버트 케네디와 더 친하게 지냈다. [10] 가족들이 그녀가 독립할 때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할 정도로 이 문제가 심각했는데, 그나마 학창시절에는 원만한 교우관계로 버텼고 사회인이 된 뒤에도 나름대로의 생활의 지혜를 터득하여 불편해도 큰 지장이 없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기레기들이 이 문제를 파고들면 이야기가 달라지기에 남편이자 최대의 이해자인 존이 싸움닭이 될 수 밖에 없었다. [11] 미국의 예비역은 우리 상근예비역과 유사하게 처음부터 바로 예비역으로 복무하는 파트타임 군인이다. [12] 하워드 메첸바움은 본선에서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장손이자 로버트 A. 태프트의 아들이었던 로버트 A. 태프트 주니어를 만나 낙선했다. 이후 1974년에 잠시 주지사 지명으로(전임자가 연방 법무장관에 임명되어 사임) 상원의원이 되었다가 경선에서 글렌에게 패배했고, 1976년 재도전해 태프트 주니어를 꺾고 1995년까지 존 글렌과 같이 상원의원으로 재직한다. [13] 최종적으로는 월터 먼데일 지명 [14] 아시아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무카이는 사실 우주비행사를 하기 전 본업은 게이오기주쿠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 부속병원에서 근무한 의사였다. [15] ESA 소속의 스페인 출신의 우주비행사. 이 사람은 우주에선 일반 볼펜이 안 써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반 볼펜의 수십배 가격의 우주전용볼펜을 챙겨갔다가, 소유즈 타는 러시아 우주인들이 싸구려 볼펜을 잘만 쓰는거 보고 컬쳐쇼크를 받은 호구로 알려져 있다. 그 뒤에 국제우주정거장에 올라갈 때는 그냥 싸구려 볼펜을 챙겨가서 잘만 썼다고... 지못미. 사실 대부분의 볼펜은 잉크가 매우 점성이 강한 유성 볼펜이기 때문에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들고 써도 잘 나온다. 하지만 하이테크나 시그노같은 수성 볼펜이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페드로 산체스 내각에서 과기부장관으로 임명됐다. [16] 무려 36년이다. [17] 전술됐듯 존 글렌은, 우주와 전혀 인연이 없다가 죽기 전 늘그막에 우주여행이나 해보고 싶어 거금 좀 들여 관광이나 하는 노인이 아니라 이미 젊은 시절부터 오래 우주인으로 일하고 이렇다 할 최초 기록도 세워 국민 영웅으로도 칭송받은 대부급 우주인으로, NASA에서는 가히 대선배이자 원로였다. 이런 사람이었으니 단순 우주 관광객으로만 취급되는 건 당연히 용인될 수 없었다. [18] 파일럿, 미션 스페셜리스트가 NASA의 정규직 우주인이라면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는 비정규직 내지 일회용이라 보면 된다. 그렇다고 우주 관광객 같은건 아니고, 원래 NASA에 근무하지는 않되 외부(대학, 기업, 국방부 등)에서 특수한 미션 한 번만을 위해 위탁 훈련을 실시하고 올려보내는 우주인. 물론 존 글렌은 옛날에는 실제로 NASA에서 근무했었긴 하다. [19] 그런데 닐은 "왕으로 누가 나올지 보고 결정할래"(...) 하는 썰렁한 드립으로 분위기를 시원~하게 얼렸다. [20] 먼데일 부통령도 NASA와 관계가 있는 것이, 상원의원 시절에 아폴로 1호 화재 참사가 발생하자 조사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지구에서 달까지 드라마에서도 아폴로 프로그램 캔슬해야 한다고 꼬장을 부리다가 청문회에서의 프랭크 보먼의 감동적인 열변을 듣고 감복하여 아폴로 취소하자는 주장을 철회한다. [21] 최소한 존 글렌이 나왔다면 49개 주에서 패배하는 대참사는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