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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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
이름 | 오영종(吳泳鍾) |
본관 | 해주 오씨 |
출생 | 1986년 10월 18일 ([age(1986-10-18)]세) |
광주직할시
북구
서산동 (現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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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2cm, 67kg, O형 |
가족 | 1남 2녀 중 셋째 |
배우자 | |
종교 | 불교 |
학력 |
살레시오고등학교(
졸업) 군산대학교 (일어일문학 / 휴학) |
종족 | 프로토스 |
ID | AnyTime |
별명 |
사신토스, 질럿 공장장, 제로벨, 체어맨, 전어, 르토[1] |
데뷔 | 2004년 Plus 입단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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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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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Yeong-Jong, AnyTime..[gm] |
오영종의 승리! 반짝반짝 빛나는 순금
로얄로더를 가져온 오영종! 플러스[2] 팀이 언제 이렇게 우승을 차지했습니까? 오영종부터 플러스 팀은 다시 살아납니다. 누가 오영종이
8강을,
4강을,
결승을,
우승을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So1 스타리그 2005 결승전 직후 전용준 캐스터 멘션
So1 스타리그 2005 결승전 직후 전용준 캐스터 멘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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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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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리그 역대 우승자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 |
스타리그 역대 준우승자 |
- 2004년 제3회 커리지 매치 입상
- 2004년 iTV 신인왕전 2004 준우승 (vs. 주영달 1:3)
- 2005년 So1 스타리그 2005 우승 (vs. 임요환 3:2) ( 우승 상금 : 2,000만원 )
-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16강
-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준우승 (vs. 이윤열 2:3) ( 준우승 상금 : 2,000만원 )
- 2007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24강
- 2008년 곰TV MSL 시즌4 16강
- 2008년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4강 (vs. 이영호 1:3)
- 2008년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
- 2008년 Arena MSL 2008 32강
- 2008년 곰TV TG삼보-인텔 클래식 시즌1 16강
- 2009년 곰TV TG삼보-인텔 클래식 시즌3 64강 2R
- 2009년 e - 스타즈 헤리티지 매치 본선
- 2012년 e스포츠 명예의 전당 헌액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개인전 다승왕(공동)
- 2006년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3위
- 2007년 제5회 CJ 슈퍼파이트 우승 (프로토스팀)
- 2007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준우승
- 2008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정규리그 MVP
- 2008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개인전 다승왕
- 2008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우승
- 2008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결승전 MVP
- 2008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통합 챔피언전 우승
- 2008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통합 챔피언전 MVP
- 2011년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10-11 3위
3. 전적
오영종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 |||
방송사 |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vs 테란 | 43전 22승 21패 (51.2%) | 14전 5승 9패 (35.7%) | 57전 27승 30패 (47.4%) |
vs 저그 | 18전 10승 8패 (55.6%) | 11전 5승 6패 (45.5%) | 29전 15승 14패 (51.7%) |
vs 프로토스 | 11전 7승 4패 (63.6%) | 6전 3승 3패 (50.0%) | 17전 10승 7패 (58.8%) |
총 전적 | 72전 39승 33패 (54.2%) | 31전 13승 18패 (41.9%) | 103전 52승 51패 (50.5%) |
4. 프로게이머 활동
4.1. Plus - 르까프 시절
개인리그에서의 활약이 2005년에서 2006년 정도로 매우 짧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꾸준하지 못했기 때문에 삼대토스[4]나 육룡[5]에 비해 약간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임팩트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개인리그 커리어도 다년간 꾸준하지 못했을 뿐 양대리그 1회 우승, 1회 준우승을 넘어선 프로토스는 결코 많지 않다.[6] 거기에 프로리그 정규리그 MVP, 다승왕, 결승전 MVP, 그랜드파이널 MVP를 합하면 절대 저들에 대해서도 뒤쳐진다고 말할 수 없다.프로토스의 절대 암흑기였던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유일하게 개인리그에서 우승을 달성한 프로토스이며, 김동수, 임성춘으로 시작해 삼대토스로 대표되는 올드 프로토스(2000년대 초반)와 육룡으로 대표되는 뉴 프로토스(2000년대 후반)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해줬다고 볼 수 있다.[7] 첫 개인리그 우승부터 준우승, 프로리그 MVP를 싹쓸이하던 시기까지를 전성기라고 본다면 오영종의 전성기는 3년으로 3년은 결코 짧은 시기가 아니며[8], 또한 그 3년간의 커리어만으로도 명전 헌액이 결코 과분하지 않은 프로토스다.
테프전에서의 패스트 다크 템플러 흔들기 이후 물량전으로 유명해진 프로게이머. 데뷔 당시에는 별로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으나, 2004년 6월에 있었던 투싼배 MBC GAME 팀리그에서 당시 최강의 테란으로 불리던 이윤열을 물량전으로 이겨 그 이름을 크게 알렸다. #1, #2 이후 2004년 12월 온게임넷 챌린지 리그의 예선을 통과하면서 팀리그에서도 그 당시 약체였던 소속팀 Plus의 투톱(박지호 - 오영종)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박지호의 이적에 프로리그 승률도 제대로 나오지 않자 화승 OZ(당시 Plus)의 감독 조정웅은 오영종의 우승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 시작한다.[9]
해를 넘겨 2005년 온게임넷 스타리그 듀얼 토너먼트에서 나도현과 이재훈을 물리치고 듀얼 토너먼드 2라운드에 진출하였고 이어 듀얼 토너먼트 시드 결정전(각 조 1위를 모아 토너먼트전, 우승시 온게임넷 스타리그 4번 시드 배정)에서 안기효를 3:2로 꺾고 본선에 직행하여 본격적으로 전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후 So1 스타리그 2005 16강에서는 김준영, 홍진호를 꺾고 최연성에게 져 2승 1패로 8강 진출했다. 특히 홍진호와의 경기에서는 오로지 다크 템플러만으로 레어에 스포닝 풀까지 깨며 경기를 끝냈다. 해당 경기 영상. 이 경기를 통해 오영종은 자신의 프로게이머 인생을 내내 따라다닐 사신[10]이라는
8강에서는 서지훈을 2:1로 이겨 4강까지 진출하였다. 4강전은 당시 질 것 같지 않은 포스를 뿜고 있던 괴물 최연성과의 승부였다. 오영종 역시 '질럿 공장장'이라 불릴 정도로 물량의 대가였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규모 물량전을 예상했지만, 오영종은 최연성의 허를 완벽하게 찔렀다.
1경기는 전진 게이트에 이은 패스트 다크 템플러. 말 그대로 드라군 1기 없는 다크 템플러 러쉬!,
이후 박지호를 이기고 결승에 올라온 임요환을 상대로 3:2까지 가는 접전을 펼쳐 임요환마저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첫 두 경기를 내리 승리하며 우승을 앞둔 것 같았지만 위기의 순간에도 황제는 침착했다. 3, 4경기를 다시 내리 임요환이 따내며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에서 맞붙은 운명의 5세트, 임요환은 특유의 고질적인 임즈모드와 저축 테란[14]을 선보이며 GG를 선언했다.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선수가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꺾고 챌린지 리그 우승으로 4번 시드를 획득, 가을의 전설과 로얄로더의 꿈을 동시에 이룬 예는 지금까지도 실로 유일하며,[15] 동시에 아직까지도 최고의 리그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스폰서인 So1은 망했다. 몇몇 사람들은 에스오일이 스폰한 줄 알고 있다.
이후에는 우승자 징크스에 빠진 듯 급격한 기량 하락을 보여 팬들을 우려케 했으나[16], 곧 부활하여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에서도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역시 가을 시즌이었기에 이번에도 가을의 전설이 이루어질 것인가는 모든 이들의 관심사였다. 당시 가장 주목받았던 프로토스는 듀얼에서 임요환을 꺾고 올라온 김택용. 오영종은 상대적으로 당시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에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17]
24강에서 전 대회 우승자인
4강 상대는 당시 테란들 중 최강의 토스전을 자랑했던 전상욱. 당시 전상욱의 대 테프전 승률은 70%를 상회할 정도로 프로토스전이 상당히 강력하였다.
1경기 아카디아 2에서는 특유의 다크 템플러-물량 폭발 스타일로 전상욱을 잡아내나, 2경기 토스 압살맵 이었던 알카노이드에서 무난히 패배.
3경기 타우 크로스에서는 전상욱의 토스전 스타일에 그대로 말려버리며 지상군 전투에서 대패하며 GG를 선언.
4경기 신 백두대간에서는 오영종의 긴박함이 그대로 엿보였다. 초반 다크 템플러도 통하지 않고, 플릿 비콘을 2개를 짓는 실수를 하다 하나를 취소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역시나 가을은 그의 계절. 전상욱은 캐리어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오영종에게 시간을 내줬고[19], 캐리어가 4기를 넘겨버린 오영종은 지상군과 함께 전상욱을 제압.
5경기는 다시 아카디아 2. 전상욱은 가장 자신다운 빌드인 원팩 더블을 하는데... 오영종은 3게이트 옵드라, 소위 FD테란 잡는 불독토스를 시전하며 전상욱의 본진을 그대로 밀어버린다.
매 경기마다 스토리가 뚜렷하고 엄청난 명경기들이 나와서, 당시 김캐리는 흥분하여 "역대 최고 수준의 준결승전이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후의 결승전도 그랬지만, 여러가지로 경기 내,외적으로 드라마틱한 면이 많았던 4강전이었다. 5경기 막판 오영종의 드라군에 뚫리자 패배를 직감한 듯 분함의 탄성을 내뱉는 전상욱의 모습, 경기가 끝나고 부스를 나온 오영종과 조정웅 감독의 (So1 결승 때를 생각나게 하는) 진한 포옹, 특히 5경기가 끝나고 오영종의 승리에 흥분한 남성 토스빠 스덕들의 굵직찬 목소리로 외쳐진 '오영종! 오영종!' 콜...[20]
이윤열과의 결승전은 소위 ' 천사록'이라 불리며, 온게임넷은 '천재 테란와 사신 토스의 대결'이라는 콘셉트으로 데스노트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광고를 했다. 당시 결승전은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개최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대 흥행.
1경기 타우 크로스에서, 오영종은 전상욱과의 대결에서 자신이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효율적인 아비터 사용과 경기 중후반까지 계속되던 리버 견제 등, 이윤열도 엄청나게 잘 싸웠으나 결국 패한다. 오영종이 1경기 선취.
2경기는 신 백두대간. 전략 준비했는데, 걸려서 실패... 결국 무난히 패한다.
3경기 알카노이드에서는 이윤열의 운영에 막혀 이렇다 할 뭔가를 해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 이윤열의 선공에 한방 먹은 후, 첫 역공에서 마인 하나를 너무 제대로 밞은 것도 컸다... 그런 면에서 운이 안 따른 면도 있었던... 이렇게 순식간에 벼랑 끝에 몰려 버렸다.
4경기 아카디아 2, 오영종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트리플 넥서스를 시전하며 대규모 물량으로 테란의 자리 잡은 진형을 그대로 뚫어버리는 시원함을 보여주며 승리한다. 4경기를 통하여 벼랑 끝에서 살아난 뒤 이제 마지막 남은 5경기를 통하여 최종 승부 결과가 가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5경기에서 초반부터 이윤열의 회심의 벌처 드랍 전략에 휘둘렸고,[21] 그 후 멀티 더 안 먹고 캐리어 가는것까지 걸리면서 이윤열의 타이밍 러쉬에 그대로 패하며[22] 가을의 전설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이 경기에서 이윤열이 준비한 벌처 드랍 전략의 관점에서 이윤열이 자리 운이 따랐고, 반면에 오영종은 자리 운이 안 따랐다.
하지만 이 시즌에서도 지난 So1때 못지않은, 간지 절정의 경기들을 보여주었다. 16강부터 매 경기마다 해설자들은 오영종의 패배를 예상했지만, 그걸 모두 뚫고 매 경기마다 드라마를 썼다. 결승에서는 패하고 나서도 이윤열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 등 대인배적인 행동을 보였다.[23]
이 시즌이 끝나고 나서부터 개인리그에서는 16강을 넘어선(정확히는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바가 없다. 그러나 그 힘을 모두 프로리그에 쏟아부어 프로리그에서는 그야말로 언제나 가을인가 싶을 정도의 활약을 보인다. 특히 06년 후기리그에서는 만년 약체 신세였던 르까프 오즈를 포스트시즌까지 끌어올렸고, 그 다음 해에는 07년 전기리그에서는 준우승, 07년 후기리그에서는 팀이 아예 꿈에 그리던 우승까지 해 버린다. 이후 그랜드파이널에서도 우승하면서 2007년은 그야말로 르까프의 한 해가 된다. 동시에 오영종 - 이제동의 원투펀치는 가히 경이로운 수준의 성적도 올렸다.[24]
테프전과 프프전에 능하며, 특히 초반 리버와 다크 템플러 드랍을 통해 상대 테란을 괴롭히면서 확장을 가져가고 물량을 뽑는 프테전의 스타일을 완성시켰다. 저프전은 So1배 16강 vs 홍진호 경기에서 다크 템플러만 뽑는 기행을 통해 이긴 명 경기를 제외하면 평범한 편이지만, 가끔 막장 경기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2007년에는 대 저프전 80%가 넘는 미칠듯한 승률을 보인 바가 있다.[25]
일명 가을의 전설의 힘을 독차지했다고 평가되며, 만년 전어가 아닌 빙어로 탈바꿈했다.
소위 본좌급으로 일컬어지는 임이최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는 프로리그[27]고 개인리그[28]고 전년도들과 비교하면 다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지금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감독과의 불화[29][30]로 인하여 동년 여름, 공군 ACE에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합격. 전역 후의 행보가 스타판에 영향을 줄 듯했다.
4.2. 공군 입대와 활약상
2008년 가을, 공군 ACE에 박정석, 한동욱과 같이 입대하였다.[31] 세 명 모두 개인리그 우승자 출신이라는 것이 특징.공군 입대 후에도 50% 정도의 승률을 보이며 박정석과 함께 공군 ACE의 주력 프로토스 자리를 맡았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1라운드를 마쳐갈 때인 2009년 11월 29일, 프로리그에서 웅진 스타즈에 맞서 에결에서 윤용태와 맞붙어 공군의 2승을 일궈냈다. 그리고 공군은 그 성적과 더불어서 다음날 삼성전자 칸이 MBC GAME HERO한테 패배를 당해서 꼴찌로 1라운드를 마친 행운 덕에 1라운드에서 꼴찌를 하지 않았다[32].
또한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 기간 말기이던 2010년 3월 6일, 정명훈을 상대로 물량 캐리어를 보여주며 3킬을 한 박영민과 함께 팀의 T1전 첫 승리와 첫 2연승을 일궈냈다.
그 후에는 저그를 씹어먹으며 저그전 4연승도 기록하였다.
2010년 5월 27일, 빅파일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PSL을 통과한 유일한 공군 ACE 소속에, 올드 게이머로써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거라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았다.
그리고... 2010년 6월 12일, 포모스에서 작성한 오늘의 매치업에서 승률이 1526.3%라고 오타를 집어넣는 바람에
2010년 6월 28일, 친정팀 화승 OZ와의 대결에서 2대1 상황에서 박준오와 맞붙게 되었는데, (박준오를) 제압하고 경기를 마무리, 공군 ACE 창단 최초 3연승을 기록한다.
그리고 7월 4일, STX SouL의 김구현을 잡으며 자신의 프로리그 100승과 팀의 4연승 그리고 최초 단일 시즌 두자리 수 승리 기록에 일조했다!
공군에서의 마지막 경기 날이자 공군의 09-10 시즌 마지막 경기 날이었던 7월 11일에는 CJ 엔투스의 장윤철과 2세트에서 맞붙었는데, 결과는 패배. 참고로, 이 날에는 동기들인 한동욱, 박정석 등도 오영종과 함께 공군에서의 고별전을 치렀는데[33], 그들도 모두 각각 변형태와 정조작에게 패하면서 팀도 3대0 패배로 시즌을 마치고, 본인들도 고별전을 패배들로 씁쓸하게 장식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상하게 공군 에이스에서 잘 했던 선수들로 이주영, 민찬기, 이성은, 김경모 정도만을 기억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래봬도 오영종 역시 공군 에이스 역대 다승/승률 순위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한 선수였다.[34]
트위터를 시작했는데, 주소가 ' kongggajima'.
4.3. 공군 전역 후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중이던 2010년 10월 29일 전역. 원소속팀 kt 롤스터로 복귀한 동기 박정석처럼 오영종도 이전 소속팀 화승으로 복귀했다.[35] 팀에서도 오영종 복귀에 매우 긍정적이었다는 후문이 돌기도 했다. 현재 상황이 영 말이 아닌 화승토스의 구세주가 될지 기대되었다. 팀에 복귀하면서 이제동이 맡고 있던 주장 자리도 오영종에게 넘어왔다. 트위터에서 밝힌 근황에 따르면 공군에서 떨어진 폼을 회복하기 위해 맹 트레이닝 중이란다.그리고 2010년 11월 28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2라운드 1주차 2경기로 벌어진 화승과 공군의 경기에서 1세트에 출전, 군 전역 후 첫 승리, 나아가 화승(르까프) 소속으로 2008년 5월 27일에 이재호를 상대로 승리한 이후로 907일만에 승리를 기록했다. 상대는 '흑운장' 이성은. 동시에 팀도 승리했다.
이후 몇 번 더 나와 패배했으나 12월 20일, 염보성을 잡고 그날 팀 유일한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앞 3패와 이제동이 시간이 부족했는지 성급한 1가스 러커 승부를 이재호에게 걸어 막힘으로써 팀은 세트 스코어 1:4로 패배했다.
2011년 3월 3일에 열린 ABC마트 MSL 서바이버 예선에서 정영재를 2:1로 이겼으나 조일장에게 0:2로 패하여 탈락하고 말았다.
5월 3일, kt 롤스터와의 경기에서 1세트에 나와, 박정석과 붙어 오랜만에 올드 매치가 성사되었다. 결과는 사신이 영웅을 꺾었다. 팀은 그 기세를 몰아 KT를 셧아웃시켰다. 그러나 경기 내용은 맨땅에 스톰을 뿌리는 등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6월 4일에 CJ 엔투스와의 경기에서 2세트에 출전, 조병세를 잡았지만 팀은 6세트까지 간 끝에 지고 말았다.
6월 13일에는 공군과의 경기에서 고인규를 잡았고 팀도 이겼지만,[36] 18일 엠겜과의 경기에서는 버뮤다에게 졌다. 그나마 18일 경기에서는 팀은 승리했다.
그래도 당시 시점에서, 지금까지 공군 ACE를 전역하고 현역 프로게이머로 복귀했던 모든 선수들 중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다. 2011년 기준으로 당시 오영종은 26세로, 연습량만 받쳐준다면 충분히 더 선수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 동안 제대한 선수들의 경우 나이가 20대 후반이 돼서 한계에 봉착했거나 혹은 선수 생활 연장에 의지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지만, 오영종의 경우는 그들과 달리 아직 해볼 만한 나이이고 선수 생활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점이 희망적이었다. 게다가 화승토스가 워낙 개막장의 끝을 달리고 있던지라 오영종이 5할 승률을 찍어줘서 프로토스 에이스 취급까지 받고 있었으니 상황이 좋았던 셈.[37] 오죽하면 팬들도 "화승 토스가 아니라 르까프 토스다!"라고 말하기까지 했을 정도다.[38]
6월 17일에 열린 마이 스타리그( tving 스타리그 2012) 프로 - 아마 예선전에서 임홍규에게 0:2로 패하여 탈락하였다.
6월 21일 웅진 스타즈와의 경기에서 김명운에게 초반 질럿 러쉬를 시도했으나 침착하게 대처한 김명운에게 패배했다. 더불어서 팀도 패배.
6월 28일 STX 소울과의 경기에서는 이신형에게 패하였고, 팀도 패하였다. 참고로, 이 경기가 오영종의 마지막 공식전 경기.
6월 30일에 열린 2011 MSL 시즌 2 서바이버 예선에서 채규승을 2:1로 이겼으나 김현우에게 0:2로 패하여 탈락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팀은 끝끝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게다가 10-11 시즌을 끝으로 위메이드, MBC GAME과 더불어서 해체되었고, 이후 시즌 종료와 팀 해체가 한참 지난 이후인 11월 10일, 같은 팀의 손주흥, 백승혁 등과 더불어 은퇴 수순을 밟았다. #
그런데 포모스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자신의 은퇴 사실을 협회의 공지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은퇴 후인 11월 29일, 전 팀 동료 구성훈처럼 아프리카 방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방송에서 황신을 소환시켰다. 공군에서 많이 친해진 듯. 후에 홍진호가 여러 방송에서 공군 시절 썰을 풀기를 선임 중에 오영종이 제일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고 한다. 홍진호 경우 선임중에 게이머 시절 후배/동생들이 많아서 설움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심적 위로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역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는다고 한다.
2012년 2월 19일, BJ 철구가 개최하는 BJ 스타리그에서 결승전에서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개자식에게 0:4로 패배하였다. 포모스 인터뷰에서 직접 '아프리카에서도 BJ들끼리 대회를 할 때가 많은데 어떤 상황에서도
2012년 7월 3일, 이윤열과의 이벤트전 레전드 매치에서 승리하였다. 당시 스갤에서는 이윤열 은퇴식에 파트너로 부른 놈이 와서 스카웃 관광까지 하며 탈탈 털어버렸다고 간만에 예전 스타'판 팬덤 악질력 넘버원을 달렸던 벼멸구들이 대거 창궐해 오영종을 까대기도 했다. 이 날 오영종은 게임 중 승기를 잡으며 '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의 복수다'라는 투의 채팅을 날리며 이윤열을 신나게 털었고 지켜보는 오영종의 팬들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내심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즐거워 했었고, 이렇게 매치까지의 분위기는 참 훈훈하고 좋았으나... 이후 이윤열의 은퇴식으로 인해 경기 끝나고 오영종은 완전 찬밥 신세가 되어버렸다.[40] 이윤열도 레전드 매치에 급하게 은퇴식을 열어주는 바람에 다른 레전드 선수들과는 달리 깔끔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떠났으니 오영종은 오영종대로 이윤열은 이윤열대로 끝마무리가 아쉽게 됐다. '온겜의 판단 미스였다'는 평가.
여담이지만, 현역 시절 청순했던 외모와는 달리, 이 날의 방송에서는 매우 수척해진 외모를 선보여 팬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2012년 9월 경부터 방송을 거의 하고 있지 않으며,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마지막 리그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시즌 2 결승전이 열리기 전에 치러진 명예의 전당 헌액 기념식에서도 개인 사정으로 인해 불참하였다.[41]
언젠가부터 자동차 및 에어컨 제조 전문 회사인 한라공조에 취직을 하면서 잘 지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언젠가 퇴사했다는 카더라가 지인들의 소문이라며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정확히는 평택시 쪽의 한라공조에서 일하고 있었다가 퇴사[42]하고 공부 중이라고 하는데, 이게 2014년에 나온 이야기. 그 이후의 정확한 근황은 알 수 없다.
정확한 근황이 없는 상태에서 크게 2가지 '카더라'가 돌고 있는데, 한라공조 퇴사 후 대기업 쪽에 취직했다는 카더라, 그리고 모 빵집 프랜차이즈 체인 중 한 곳을 운영하고 있다는 카더라가 돌고 있다. 둘 다 카더라 수준이긴 하지만, 후자의 경우 오영종의 별명중 '빵'과 관련된 별명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그냥 그 별명과 연관지은 개드립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카더라'일 뿐 확실한 것은 없다.
최근에 홍진호의 인스타그램에 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돋는 인맥. 이 기사의 사진만 보면 3년전 이윤열과의 레전드 매치때의
2017년에 강민, 홍진호, 박태민의 합방에서 짤막하게 근황이 다시금 언급되었는데, 잘 살고 있다고는 하는데 정확히 어떤일을 하는지 언급되진 않았다.
2020년, 김경모가 건강 악화로 잠시 개인방송을 쉬기 전에 한 방송 중에서 영종이형 결혼식에 간다고 말하며 오영종이 여자친구와 결혼했음을 전했다.
2022년 기준 결혼 소식 외에는 자세한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전 동료들도 연락은 하지만 그를 잘 살고 있다느니 바쁘다느니 외에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있고, 스타로드 섭외도 거절한 걸로 보아서 인터넷 방송이나 매체에 출연하는 걸 꺼리는 듯하다.
5. 주요 별명
- 질럿 공장장 - 데뷔 직후 생산력이 뛰어나 붙은 별명.
-
사신 토스 - 2005년 So1배 16강에서 다크 템플러만 뽑아 신기에 가까운 컨트롤로
오버로드의
디텍터 지원을 받는 다수의
저글링들을 몰살시키고, 정면 승부로 홍진호를 물리친 이후, 그가 펼친 수 많은 경기에서 다크 템플러가 활약하여 붙은 별명. 오영종의 가장 대표적인 별명으로, 이윤열과의 라이벌리는
임진록에 이어서 흥행카드 만들려고 둔 온겜의 무리수천사록[44]이라고도 불린다. - 전어토스 또는 그냥 전어 - 가을에만 대활약한다고 붙은 별명. 생일부터 가을이다.
- 제로벨 - 영+종.
- 오빵종 - 영→빵.[45]
- 가을이 - 전어와 같은 맥락.
- 영뎡이 or 엉덩이 - 스갤러 귀리가 '울희 영뎡이는 귀여운 아비터네혀@^^@' 라는 꾸준글을 밀어서 각인된 별명. '영뎡이가 엉덩이같다'는 비판에 직면하여 그만 꾸준글을 접고 말았다.
- 신삼대토스 - 3대토스였던 박용욱, 박정석, 강민을 이은 3명의 토스인 오영종 - 박지호 - 송병구를 일컫는 말.
- 군룡 - 공군 ACE 시절 당시 유행했던 육룡 열풍으로 붙여진 별명.
6. 기타
T1빠의 상당수는 오영종을 싫어하는데, 이유는 사실 별 거 없고, 그냥 오영종이 현재 T1에 있는 혹은 과거 T1에 있었던 인기 선수들을 중요한 경기에서 잡아버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46] 게다가 하필 티원의 창단 1등공신이자 레전드 오브 레전드인 임요환의 마지막 골든 마우스 기회를 좌절시킨 선수인 동시에 티원 선수들 상당수의 역대 최고의 라이벌[47]인 이윤열한테 패해 골든 마우스를 넘긴 점도 존재한다.[48][49]역대 프로토스 중 다전제 판짜기 능력으로 거의 최상급에 꼽힌다. 1회 우승, 1회 준우승의 실적을 보유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만난 상대들이 쟁쟁한 선수들이고, 그들을 상대로 뛰어난 전략과 빌드 선택, 판짜기를 통해 승리하고 결승까지 올라갔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결승에 2회 이상 진출한 선수 중 김동수와 함께 8강 진출 시 100% 결승 진출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가 공식전 다전제에서 꺾은 선수들은 안기효, 서지훈, 최연성, 임요환, 김준영, 박태민, 전상욱, 허영무 등이 있으며 그를 공식전 다전제에서 이긴 선수는 이윤열(2회), 염보성, 박성준,
몸이 예쁜 것으로 해설진들 사이에서도 유명. 원래는 전형적으로 배 나온 게이머 체형이었는데 So1 스타리그 2005 우승 후 스타덤에 오르고 화승의 스타 메이킹 정책에 따른 규칙적인 관리 결과 늘씬한 근육질 몸으로 재탄생, 아레나 MSL 오프닝에서는 아예 대놓고 상의 탈의를 하고 단독샷을 찍었다.
팬들이 박용욱의 붉은 두건 아이템에서 착안한 검은색 두건 응원이 특징적. 검은색 두건에 흰색으로[54] 오영종의 별명인 死神이 적혀있는 두건으로 팬들이 선수들의 경기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응원하기 위한 도구. So1 리그에서 처음 등장했지만, 당시는 경기장 규모가 꽤 커져있던 시기라 어두운 조명과 두건의 검은 색깔까지 합하여져 선수 본인에게는 별로 어필되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MSL과는 인연이 없는 엠막이었다가 곰TV MSL 시즌4에 진출하게 되면서 데뷔 4년 차이던 2008년에야 첫 MSL 리거가 되었으며, 곧바로 16강 진출. 역대 최초로 양대리그 로얄로더를 노리고 있었으나, 결국 이윤열에게 패배하여 실패했다. 다음 MSL인 아레나 MSL에도 본선에 진출하지만, 허영무, 박영민, 윤용태와 함께 4토스조에 배치된 후 허영무, 박영민에게 연달아 패해 광탈한다. 이후 MSL은 물론 양대리그 모두에 다시는 올라오지 못하고 만다.
제일 후회되는 경기는 온게임넷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2 이윤열과의 결승전 5세트라고 밝혔다. 자신의 경기 동영상 중에 유일하게 소장하지 않고 있으며 아직도 그 경기를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자다가도 이불을 발로 찬다고...[55]
황현필이 광주의 살레시오고등학교 재직 시절, 오영종의 고3 담임이었다고 한다. 당시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프로게이머로 나가려는 오영종에게 '넌 공부보단 게임이 맞겠다.'라며 조퇴까지 시켜주며 밀어주었다고 한다. 이후 스카이에듀로 가면서 우승 당시 동영상을 홍보용으로 사용했다고...
아비터를 잘 쓰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아비터는 빵비터라 불리며 종종 놀림의 대상이 되곤 한다. 물론 오영종이 활약하던 당시는 아비터 운영이 확실한 정석으로 자리잡지 못한 시기였음을 감안해야 되겠지만.[56]
박지호가 개인방송에서 오영종의 프로입단 비화를 풀었는데, 당시 팀원 중 한 명이 공방에서 물량미친 토스가 한 명 있다고 추천을 해서 만났는데, 감독이 생긴 것도 괜찮고 해서 연습생으로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물량이 미쳤다는 리플을 받아봤더니 앞마당 자원이 5만인 사기맵을 썼다고 한다.
같은 화승 출신 선수들의 증언을 보면 하나같이 호평일색인데, 이제동은 스진남에서 "잘나갈 때도 동생들 잘 챙기고 모범이 되는 선수"였다고 밝혔고, 김경모는 본인의 개인방송에서 정말 좋은 선배이자 형이라고 하며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58] 게임 내적으로는 아쉬운 부분과 잘된 점을 확실히 짚어주었고, 생활하면서 동생들에게 갑질 한 번 한 적이 없었으며, 김경모가 휴가를 받아 집에 갈 때면 어머니 용돈 드리라며 적게는 30만원, 많게는 100만원까지도 챙겨주었다고 한다. 강압적인 언행 없이도 후배들이 자연스레 따르게 되는 카리스마를 지닌 선배의 모습이었던 듯하다. 여기에 후배나 팀원들에게서 건의 및 불만사항이 나올 때면 바로 프런트와 감독에 직언했는데, 이 때문에 조정웅 감독과의 불화가 일어났다.[59] 조정웅과 오영종 사이에 갈등이 생겨 조정웅이 화를 내다 그냥 집으로 가버리라고 하면, 오영종은 정말로 가버렸을 정도로 두 사람 사이의 불화설은 '설'이 아닌 사실이었다고.[60]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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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 Nal_rA ★ ★ ★ ★ ★ ★ ★ ★ |
홍진호 YellOw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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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GARIMTO ★ ★ |
김택용 Bisu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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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 Reach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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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구 Stork ★ ★ ★ ★ ★ ★ ★ ★ |
오영종 AnyTime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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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 FlaSh ★ ★ ★ ★ ★ ★ ★ ★ ★ ★ ★ |
이윤열 NaDa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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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환 BoxeR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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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FanTaSy ★ ★ ★ ★ ★ ★ ★ |
조용호 ChoJJa ★ ★ ★ ★ ★ ★ ★ ★ |
최연성 iloveoov ★ ★ ★ ★ ★ ★ ★ ★ ★ |
허영무 Jangbi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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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액자 경력 : 스타크래프트 양대리그( OSL, MSL) 기준 | ||||
※ 주관 : 한국e스포츠협회(KeSPA) |
[1]
르까프 토스. 일반적인
화승 토스와 다르게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화토'와 구분하기 위해 생긴
별명.
노장임에도 군대 전역 후, 팀 내의 토스 에이스였다.
[2]
당시 오영종의 프로팀.
화승 오즈의 전신이다.
[3]
10-11 신한은행
프로리그 올스타전에서 페널티를 안고 3:3 릴레이를 하는 게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오영종이 스스로 2개의 페널티를 적용하고 게임에 들어간 모습이다.
[4]
삼대토스 모두 오영종보다 개인리그 커리어가 좋다. 강민, 박정석 모두 결승진출 4회를 기록, 박용욱은 오영종과 마찬가지로 결승진출 2회를 기록했으나 4강도 2번이나 더 갔다.
[5]
냉정히 말하면 육룡 중에서도 오영종보다 개인리그에서 더 잘 나갔다고 말할 수 있는 선수는
김택용,
송병구,
허영무 뿐이다. 오영종은 개인리그 우승도 해봤을 뿐더러 결승전에서도 두 번이나 진출하였다. 프로리그까지 포함하면 말할 것도 없다. 정규시즌 MVP와 개인전 다승왕 수상도 해보는 등 상당히 잘 나갔다. 심지어 개인리그에서는 오영종보다 우위라고 할 수 있는 허영무도 프로리그 성적은 오히려 오영종에게 밀리는 편이다. 물론 이는 허영무가
슬럼프로 인해 까먹은 부분도 크긴 하지만. 나머지 3명은 우승이 없고, 그중
한 명은 아예 결승 진출조차 못 해봤으니 엄연히 급 차이가 난다.
[6]
김동수 2회 우승,
박정석 1회 우승 3회 준우승,
강민 2회 우승 2회 준우승,
박용욱 1회 우승 1회 준우승,
김택용 3회 우승 1회 준우승,
송병구 1회 우승 4회 준우승,
허영무 2회 우승 2회 준우승. 저 목록에 있는 선수들은 오영종을 포함 전원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 있다.
[7]
오히려 이런 세대교체의 과도기에 위치해 있었던 부분이 오영종의 저평가에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개인 팬이 아닌 특정 종족의 팬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서 올드 선수들이 은퇴하거나 본선에도 올라오지 못하는 수준까지 노쇠화가 되지 않는 한 신인급 선수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올드 선수를 응원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당장
질레트 스타리그에서
박성준이 우승했을 때 저그빠들의 반응과
곰TV MSL 시즌1에서
김택용이 4강에서
강민을 꺾고 성전 결승을 이루지 못하게 했을 때의 토스빠들의 반응을 생각해 보자. 오영종의 전성기 시절은 하필 옆동네인
MSL에서 강민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시기인데다
마서스와의
성전이라는 확실한 흥행 카드가 있다 보니 토스빠들의 주목도는 강민에게 쏠려 있던 시기였다. 그 다음 해에는
3.3 혁명을 달성한
김택용과 그에 맞선
송병구에게 옮겨갔고.
[8]
다만 그 전성기에도 활약이 들쭉날쭉했다. 2005년에는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다승왕과
So1 스타리그 2005 우승을 달성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으나 그 후 2006년 상반기까지는 프로리그에서만 제몫을 했을 뿐 개인리그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16강 광탈, 이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에도 진출 실패하며 뽀록 우승, 거품이라며 까이다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준우승을 기록하며 가을에만 잘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2007년에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다승5위를 기록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고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다승왕, 정규시즌 MVP, 결승전 MVP를 수상, 이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통합 챔피언전에서 전기리그 결승전 0:4 셧아웃 패배를 안겨줬던 삼성전자 칸의 에이스
송병구마저 꺾으며 MVP 수상과 팀 우승을 달성하며 엄청난 활약을 했지만 개인리그에서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24강 3패 광탈한 이후로는
곰TV MSL 시즌4에 진출하기 전까지 1년 넘게 개인리그에 진출하지 못했다.
[9]
아마도
POS를 벤치 마킹했던 것으로 보인다. POS도 박성준을 우승시킨 후
박지호를 영입, 이어
김택용과
이재호,
염보성을 육성해내며 2006년 즈음해서는 나름 강팀으로 거듭난 바가 있다. 반면 Plus와 마찬가지로 프로리그에서 탈락과 하위권을 면치 못했던
이네이쳐 탑은 초창기 5인방(
기욤 패트리,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
장진남,
장진수,
조정현)이 모두 은퇴한 후 개인리그 우승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며 해체 직전까지 단 한 번도 만년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0]
다만 처음에는 사신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11]
2011년 1월 기준으로 이 두 선수의 공식전은 이 때가 유일하다. 고로 공식전 전적에서 1:0 오영종 우위.
[12]
아쉽게도 이후로는 같은 전략을 선보인 적이 없다. 다만, 방송경기에서 배틀넷 유저를 상대로 이 전략을 내놓아 똑같이 썰어버린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유저는 빡쳐서 디스를 걸고 쨌다.
[13]
여담으로 박지호와 3/4위전을 하던
최연성은 4강 패배의 충격으로 그 날 경기 내내 기분이 나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며 박지호를 꺾고 스타리그 시드권을 받아도 분이 가시질 않았는지 열이 바짝 오른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최연성의 병력은 4강전 경기 내내 오영종의 본진에 발도 들여놓지 못했으니... 그래도 차기리그 우승을 했으니 위안?
[14]
한타 싸움에서 병력 괴멸 당시 개인 화면이 나왔는데 잔여 미네랄이 3000.
[15]
김택용이
로열로더긴 하지만, 그는 봄인
3월 3일에 우승했다.
[16]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서 박지호에게 이길때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으나, 서지훈과 한동욱에게 연패하면서 탈락, 이때 오리지널 사신토스가 완전히 무너졌다.
[17]
다만 김택용은 16강에서 탈락했고, 본격적인 전성기는
이듬해 대사건부터다. 그래도 이 시기부터 포텐을 눈여겨본 이들이 많았는지 해설진들도 종종 그를 밀어주곤 했다.
[18]
단, 김준영은 그 당시는 아니고
1년 후에 우승. 물론 그 당시에도 프로리그에서는 70%대의 승률에 다승 2위를 찍는 등 맹활약했다.
[19]
당시는 이름이 붙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리버 캐리어 전략이었고, 정말 힘겹게 약간의 시간을 벌며 캐리어로 넘어가는데 성공했다.
[20]
실제 이때 오영종과 전상욱의 매 세트 시작전 팬들의 화이팅 콜에서 오영종의 경우 전상욱에 비해 남성 팬들의 굵은 목소리가...
[21]
비교적 잘 막은 편이나 주도권을 빼앗긴 것은 부정할수 없다.
[22]
앞마당 바로 앞까지 조이기가 들어와서 초조했는지 원래도 힘들만한 전투에서 발전투를 보여주고 바로 GG를 쳤다.
[23]
엄옹이 나중에 이 행동을 비판하기도 했다. 왜 졌는데 웃냐고...
그럼 졌다고 질질 짜냐? 당시 결승 상대였던 이윤열이 오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에게 수월한 상대를 꺾고 결승까지 올라온 것에 비해 오영종의 대진운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기 때문에 이윤열이 아닌 오영종이 우승하길 바라는 팬들도 많았고, 이후에도 이때 오영종이 우승했어야 하는데... 하고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상대는 스타판에서 가장 팬 지분이 많은 게이머 중 하나였던 이윤열이었기에 결국 묻혀졌다.
우승 이후 이윤열이 인터뷰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해서이기도 하지만... 한편 이윤열은 우승 이후 골든 마우스 획득에 성공하였다. 사실 이윤열도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온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다.
[24]
당시 프로리그에서만큼은 르까프 최고 에이스는 오영종이었다. 다음해에는 이제동에게로 넘어갔지만 이 시절 이제동은 스타판을 다 씹어먹을 수준의 기량을 보여줬던 것을 감안하면 후배에게
세대교체를 잘 한 것이다.
[25]
당시에는 김택용의 전성기였다.
[26]
소원 시절은 비스폰 팀 출신의 신인이 팀을 살리기 위해서 도약한 소년만화같은 전개, 신한은행 시즌 2는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온 선수가 역경을 계속 헤쳐 나가면서 정상으로 기어올라가는 눈물나는 스토리이다.
[27]
5승 4패를 기록하였는데, 이런 성적은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에서 기록한 18승 5패에 다승왕까지 먹은 것과 대조해 보면 확실히 좋은 성적은 아니다.
[28]
스타리그에서는
EVER 스타리그 2008에서는 1차 본선에서
김동건과
박성균에게 연속으로 털리며 2연패로 광탈,
MSL에서는
Arena MSL 2008에서 조별리그에서
허영무와
박영민에게 역시 연속으로 털리며 2연패로 광탈하였다. 이후로 오영종은
은퇴할 때까지 스타리그고 MSL이고 어느 개인리그에고 진출하지 못하였다.
[29]
조정웅의
결혼식에 불참한 것과 리그 후반부부터 경기장에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등이 결정적 증거들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은퇴한 화승 출신 선수들의 썰에 의하면 실제로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다만 오영종이 공군에 입대할 당시 함께 가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30]
09-10 프로리그 시절(당시 공군 소속) VS 화승전에 대한 평가는 딱 하나.
조정웅을 무너뜨리려 작정하고 필사적으로 덤비는 살기 그 자체.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화승과의 경기에서 전승하고 공군이 화승 상대로 4승 1패를 거두는 것으로 화승의 탈락에 기여했다. 덕분에 오영종은 전역 후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는 말(최악의 경우 한동욱 사건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까지 생겼으나, 전역 이전 조정웅이 감독을 그만두어서 그런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친정 팀 화승 오즈로 복귀한다.
[31]
2008년 9월 22일에 공군 병 668기로 입대하였다. 이 3명의 맞고참은 공군 병 653기로 2007년 6월 25일에 입대한
박대만과
이주영이었다. 박대만과 이주영은 1년 넘게 막내 생활을 한
꼬인 군번인 반면에 이 3명은 공군 병 670기로 2008년 11월 24일에 입대한
홍진호와
차재욱을 시작으로 후임을 꾸준히 계속 받은
풀린 군번이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어떻게 막내 생활을 1년 넘게 할 수 있었는지 존경한다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32]
그 대신 삼성전자가 공군한테도 밀렸다면서 엄청나게 까였다.
[33]
전자는 1세트에서, 후자는 3세트에서...
[34]
당장에 오영종은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에서 21승 31패로 팀 내 다승 1위를 기록하였고,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에서도 11승 21패로 주전으로서 제 몫을 다 함과 동시에 공군 소속으로 박정석 다음으로 2번째로 프로리그 100승 달성에 성공하였다. 또한 승수만 한정하면 33승으로 가장 많은 승리를 기록하였다. 다만 패수로도 55패로 가장 많은 패배를 기록하였다는 게 흠.
[35]
한편 이들의 동기 한동욱은 몸이 좋지 않은 모친의 병간호를 위하여
위메이드로 복귀하지 않고
은퇴 선언을 하였다.
[36]
참고로, 이 경기가 오영종의 마지막 공식전
승리다.
[37]
사실 공군에서 전역한 선수가 은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기량 하락으로 인해 신인들에게 밀려 출전 기회를 못 잡아서'이기도 하다. 실제로
서지훈이나
이재훈 같은 경우는 선수 생활을 지속할 의지가 충분히 있었으나 프런트의 설득에 의해
코치로 이동했다.
[38]
오영종이
군대에 가기 전에는 화승 오즈의 팀 이름이 르까프 오즈였다. 이 시절 오영종은 프로리그 다승왕, MVP 등을 차지하는 등 빼어난 활약을 올렸다.
[39]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때 당시의 현실은 아프리카에서
마레기와 완전히 거리를 두고는 스타크래프트 BJ로서 성공하기는 힘들었다고 한다. 그것도 그럴것이 이 시절에는
마재윤과 오영종 본인만 제외하면 주전급 선수 출신 스타BJ가 전무했던 상황이였다. 아직 스1 스포츠판이 완전히 끝나기 전이고
김택용도 개인방송으로 넘어오기 전이였으니. 아직 대회 참가도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선 사실상 필수 불가결이라…. 그래도 팬들이 오영종에 대해 그나마 배신감이 덜 드는 이유는 이런 대회 등에서 만나는 것을 빼면 되도록 마레기와 엮이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 워낙 오영종이 이미지가 좋은 것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이와 반대되는 케이스인
박지호는 까임 지분을 쌓았다.
[40]
원래 자리에 참석한
이제동도 오영종을 응원하러 온 것이었다.
[41]
다른 하나는
조용호. 이 외에도
최연성과
박용욱은 당시 군 복무 중(정확히 말하자면 최연성은
상근예비역, 박용욱은
공익근무요원)이었다.
[42]
부적응 때문에 퇴사했다는 설이 있다.
[43]
이때
한상용 코치,
이제동,
손찬웅,
손주흥,
노영훈,
김태균, 그리고
2군 출신의 김영민이랑 참석하였다.
[44]
천재 이윤열 vs 사신 오영종. 두 선수의 별명에서 앞글자만 따왔다.
[45]
팀 후배였던
박지수가
Arena MSL 2008에서
우승했을 때 나온
짤방에서도 '톨루이 빵'이라고 비유했다.
[46]
So1 스타리그 2005 당시
최연성을 스타리그 4강에서 무너뜨리고, 이어서
임요환의
골든 마우스 수상까지 좌절시켰으며,
박태민과
전상욱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8강, 4강에서 무너뜨렸다.[61]
박용욱도 2005년 프로리그 올스타전과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에서 두 번씩 꺾으면서 상대전적 2:0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엠히 시절 이야기긴 하지만, 나중에 T1의 에이스가 되는
김택용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명경기 끝에 무너뜨리고 승리는 누워서 떡먹기라는 듯
떡을 먹는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다.[62] 다만 김택용의 경우 그보다 이전에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플레이오프 때
에이스 결정전에서 오영종을 꺾은 적이 있다. 거기다 오영종이 승리했을 때는 르까프가 결승에 올라가서
삼성 칸에게 4:0으로 스윕당한 반면 김택용의 경우 팀을 결승에 진출시키고 그 뒤 팀이 후기리그 우승, 그랜드 파이널 우승까지 쓸어담았으니 사실 오영종 쪽이 더 분해해야 맞는데... 어찌 보면 2007 전기리그 플레이오프 때의 승리는 오영종 입장에선 설욕전이었던 셈.
[47]
임요환,
최연성,
박용욱,
박태민,
전상욱 등 티원의 주전 선수 대부분의 숙적 중 1인이었다.
[48]
한마디로
임요환의 골마를 이윤열에게 넘겼다는 논리. 유치한 팬심이지만 넘어가자
[49]
오영종 이외에 T1빠들이 특히 싫어하는 레전드급 선수로는
박성준과
서지훈이 있다. 박성준은
임요환을 챌린지리그로 떨어뜨리고 최연성의 스타리그 로열로더를 저지했던데다
첫 준우승을 차지할 때에도 듀얼에서 프저전 최악의 압살맵인 머큐리에서 당시 T1 소속이던 박정길을 꺾고 16강에서도 다시 최연성에게 승리해 그의 광탈에 크게 일조하고
다음 시즌에서도 박용욱에게 조별리그 3전 전패를 안겨주고 이적생 전상욱에게도 16강 재경기에서 승리하고
두 번째 준우승을 차지할 때에도 박태민의 스타리그 본선 복귀를 무산시키고 원소속팀에서 팽당할 뻔했을 때 T1으로 이적해와서는 부진한 모습만 보여준 채 쫓겨나듯 재이적하더니
T1 선수를
결승전에서 압살하여 골든마우스까지 획득했기 때문. 또한 16강에서는 다른 T1 선수인
윤종민마저도 꺾으면서 T1팬들은 더욱 박성준을 싫어하였다. 서지훈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승한 스타리그 4강에서 임요환에게 커리어 첫 5전제 0:3 셧아웃 패배를 안겨주면서 대신 결승에 진출하고
처음으로 MSL 4강에 진출할 때에는 최연성을 상대로 승자 8강 0:2, 패자 2차 4강 1:2로 합쳐서 1승 4패를 안겨주면서 패자 준결승에 진출하고
마지막으로 스타리그 4강에 진출했을 때에는 8강에서 다시 만난 최연성을 상대로 0:2 패배를 안겨주고 3,4위전에서도 T1으로 이적한 과거 팀동료 박태민을 상대로 2:3 패배를 안겨주면서 그 대신에 3위를 차지하여 차기 시즌 시드를 획득하고 박태민은 듀얼 최종전에서 조용호에게 패해 차기 시즌 진출헤 실패한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개인리그 4강에 진출한 대회에서도
T1 선수를 상대로 16강에서 2:1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하였다. 또한 MBC무비스
팀리그에서도 풀리그에서
임요환,
최연성,
박용욱을 상대로 올킬을 거두며 T1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완벽하게 좌절시켰다. 그리고 두 선수 모두 전성기 시절조차 이윤열에게만 유독 약했던 것도 T1빠들의 반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50]
다전제 판짜기 능력 면에서 오영종과 비견될만한 프로토스는 스타판 최후반부를 지배한
허영무가 꼽힌다. 유일무이한 프로토스 스타리그 2연패를 달성했으며, 다전제에서 꺾은 선수들도
이영호,
어윤수,
변현제,
김명운,
정명훈(2회)으로, 당시까지 신인이었던 변현제 정도를 제외하면 이 역시 토스 입장에선 역대급 난이도의 대진이었다.
[51]
특히 정명훈의 경우는 진에어 스타리그와 티빙 스타리그에서 합산 20승 7패를 거뒀는데, 저 7패 중 6패가 허영무에게만 당한 것이다! 그것도 모두 결승전에서!!
[52]
스타성이 뛰어난
박정석의 등이 유명한 것과 더불어,
강민,
박지호, 오영종 등의 게이머들이 스타리그나 프로리그 인트로에 뒷모습이나 돌아보는 모습을 많이 찍힌 것에서 유래.
[53]
사실 박정석은 허리 디스크로 운동을 시작했다가 꾸준히 몸관리를 하게 된 케이스다.
[54]
엄밀히 말하면 이후에 검정 바탕에 빨간색 글씨로 제작된 버전도 있다. 대부분의 팬들은 빨간색 글씨가 더 익숙할지도.
[55]
사실 이 경기는 팬들도 보다가 뒷목 잡고 쓰러질 정도로 안타까운 경기다. 하물며 당사자야...
[56]
박지호가 제시한 물량 회전-아비터 추가 운영 방식이 프로토스 게이머들에게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08-09 이후부터다. 07년도까지 프로토스의 대 테란전 정석은 단연
리버 캐리어였고,
업테란에
안티 캐리어가 완전히 편입된 후에야 아비터가 비로소 정석 빌드로 자리잡았다.
[57]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탱크 없는 테란 vs 드라군 없는 토스' 논쟁이 오간 바 있었는데, 실험 결과는 테란의 압승이었다. 물론 이러면 벌쳐vs질럿 구도가 되어버리기에 벌쳐가 일방적으로 질럿을 잡아먹는 구도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는 유닛 상성의 탓이지 뭐가 사기네 하고 왈가왈부할건 못된다.
[58]
실제로 Plus가 르까프로 정식 창단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오영종의
So1 스타리그 2005 우승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59]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선수를 챙겨야 할 감독 위치의 조정웅은 같은 팀 형들과 친하게 지내던 김경모에게 "집가고 싶냐?"면서 타박했다고 한다.
[60]
그래도 공군에 입대할 때 조정웅이 배웅을 같이 가주거나, 화승 해체 후 조정웅과 함께 인터뷰를 가진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앙금은 풀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