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이병민 Lee Byeongm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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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병민 (Lee Byeongmin) |
출생 | 1986년 11월 20일 ([age(1986-11-20)]세) |
전라북도
이리시
평화동 (現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평화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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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1cm, 73kg, B형 |
가족 | 부모님, 남동생(1990년생) |
학력 | 전북제일고등학교 (졸업) |
종교 | 원불교 |
소속 | Toona SG-SG Family-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1] → KTF 매직엔스[2] → eSTRO |
종족 | 테란 |
ID | GoodFriend, MunChu[saM], ZinGun[saM] |
데뷔 |
2003년
8월 10일 1st 마이너리그 vs |
별명 |
뱅미, 골든보이, 완소뱅, 완불뱅,
카트라이더 게이머 dlqudals, dlqudals von emfznekftm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2. 투명라인
그의 No.1 아이덴티티는 존재감이 없다는 것. 존재감이 없기 때문에 가끔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며, 스갤에서는 이병민 짤방을 올리면 알바가 짤방 안 올린 줄 알고 검열 통과를 안 해준다는 이야기마저 나돌았다.'존재감 없음'으로 대표되는 이병민의 이미지는 'dlqudals[3]가 누구에요?' 사건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 스갤에 '듀얼토너먼트 예상'[4]이라는 글에 써놓은 내용이 dlqudals였고 영타로 친 걸 눈치채지 못한
그의 투명 이미지는 KBS 스펀지 사건 또한 유발하게 된다. 2006년 8월 12일 방영된 스펀지 145회 방송분 실험 중에 연예인 몇 명과 이병민을 불러서 실험을 하는 걸 녹화했는데, 방송을 내보내면서 KBS에서 이병민만 교묘하게 편집해서 안 보여준 것이다.[7] 그래서 e스포츠 팬들은 KBS에 '스케쥴 바쁜 선수 기껏 불러내서 뭐 하는 짓이냐'며 항의했으며, 그 후로 이병민의 투명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사실 이 당시 지상파에 프로게이머 불러놓고 분량이 1분을 못 넘긴 적이 굉장히 많았다. 그 때마다 팬들이 항의를 해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분위기였고, 정말 1분이라도 넘겨본 게이머는 임요환이 유일하다고 보여진다. 가뜩이나 안 그래도 6개월 전 진드기 쫓는 약 제조 과정에서 알코올을 끓이는 장면을 모방했다가 사고를 일으킨 일로 인해 명성을 잃기 시작했던 스펀지는 이 사태 이후로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평판도 더 안 좋아졌다.
그리고 같은 익산시 출신들로 더 유명한 괴물테란 최연성에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영구제명된 진영수도 있었고, 원 소속팀인 투나SG에는 팀의 상징이자 스타계 본좌급 테란 중 한 명인 이윤열이 있었다.[8][9] 그의 후계자인 이재호나 한때 점점 투명화 취급을 받고 있던 허영무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속한 팀을 상징하는 동 종족 선수가 따로 있기 때문에 투명화 된 면도 있다. 이재호는 염보성, 허영무는 송병구 등에 각각 묻힌 것이다. 사실 이재호-염보성이랑 허영무-송병구의 커리어 차이는 그래도 비슷하거나 개인리그만 볼 경우 오히려 후계자 쪽의 최고 성적이 앞서는 반면,[10] 이병민의 커리어도 준우승 1회 4강 4회로 좋은 편이지만 우승 6회 준우승 4회 4강 1회의 이윤열의 커리어가 무시무시할 뿐이다.
고향에 소재한 전북제일고등학교(구 이리상업고등학교) 출신인데, 실업계에서 걸출한 프로게이머가 등장했다고 해서 자주 모교에 초청되기도 했다. 하지만 존재감이 점점 없어지면서 모교에서조차 잊어버렸다. 더불어 세월이 흘러 모교 후배들에게 이병민에 대해서 물어보면 아무도 모른다고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도 무관심, 투명 기믹으로 포장되다가 나중에는 '이병민이 누구죠? 워크 게이머인가요?'를 넘어 아예 ' 카트라이더 게이머 아닌가요?'라는 드립까지 유행했는데, 급기야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에서 조지명식 때부터 등장하는 선수에게 BGM을 넣는 방식이 도입되면서 거의 타의 반으로 카트라이더 BGM을 틀어버린 일까지 일어났다. 게다가 자막 하나 들어가지 않은 투명하기 그지없는 좌중을 웃기는 데에는 분명 성공했으나 선수 본인이 이것을 좋아하지 않았고,[11] 경기가 있는 날부터는 다른 음악(선수 자신이 직접 정한다)을 틀게 되었다.
간혹 압도적인 승리나 믿을 수 없는 역전승을 해내며 존재감을 과시하긴 하는데, 하필 조금 있다가 다른 대형 떡밥이 터지며( 홍진호 출전이라든지) 금세 기억에서 잊혔다.
사실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것은 데뷔 초기 파마머리에 금발로 염색한 헤어스타일이었다. 도우너 스타일로 유명해 깐따삐야나 골든보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역시 이후 별로 언급되는 일이 없다.
엄재경은 온게임넷의 프로그램인 스타뒷담화에서 준우승까지 한 선수가 이토록 관심을 못 받는건 자신들의 포장이 미흡했기 때문이라며 자책하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리그에서 최초로 우승한 저그가 박성준,[12] 최초로 테란(이병민)을 이기고 우승한 저그(2005년 여름. 딱 1년 뒤다.) 또한 박성준이었는데,[13] 훗날 2007년 2월 마재윤이 결승전 도중 2:1 상황에서 승기를 잡자 엄재경은 "이병민도 테란이지만, 역시 임이최를 잡고 우승해야 진짜 테란을 이긴 저그"라는 말을 해 박성준과 이병민을 한 큐에 깎아내리고 만다.[14] 열정적인 중계 도중 어쩌다 나올 수도 있는 말실수라기엔 너무도 지각없는 발언.
하지만 뱅미는 엄연히 실존한다.
3. 선수 시절
점점 시간이 흘러 이병민이 노장이 된 후 유입된 스덕들에게 이병민의 이미지는 그냥 '왕년에 좀 했던' 게이머 정도이다.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 이유는 특유의 방어적인 혹은 너무 무난한 플레이 스타일이나, 전성기 시절은 스타판에서 각자 자기만의 색깔이 강했던 선수들이 너무 많았기에 경기외적으로는 물론이고 경기 내적으로도 어필할 요소가 없었기 때문. '손빠르기가 뛰어난 테란'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보여준 선수이지만 딱 거기까지. 마찬가지로 손이 빠른 밸런스형이었던 서지훈은 홍진호와 희대의 명경기 끝에 우승해서(+수려한 외모로) '퍼펙트 테란'이라는 별명과 함께 인기를 끌었으며,[15] 이병민과 같이 준우승 1회가 최고 성적인 변형태도 특유의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광전사 테란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과 대조적이다.또다른 큰 요인은 바로 '명경기 제조기(물론 패자쪽)'라는 이미지.
패러랠 라인즈 3에서 펼쳐진 강민의 할루시네이션 아비터 관광[16], 알 포인트에서 맞붙은 김성제의 명경기[17], 노스탤지아에서 펼쳐진 최연성의 레이스 관광, EVER 스타리그 2005 결승전 5경기 포르테에서의 박성준의 신들린 뮤컨[18], 알 포인트에서 펼쳐진 혈전 끝에 끝난 서지훈의 역전승, 알케미스트에서 펼쳐진 박태민의 극한의 원해처리 역전승, 네오 포르테에서 펼쳐진 박지호의 뛰어난 아비터 활용을 통한 역전승 등 아직까지도 종종 회자되는 클래식 관광 매치의 희생자가 이병민이다.[19] 졌을 때의 GG 타이밍이 매우 뛰어나서, 가끔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에서도 'GG 타이밍' 하면 아주 가끔 이병민이 언급되기도 한다. 너무 이른 타이밍에 쿨 GG를 치거나 기울어진 게임을 질질 끌고 가는 일이 거의 없고, 큰 교전이 벌어지고 직관적으로 승부가 갈렸다 싶으면 여지없이 이병민의 GG가 나오곤 했다. 일각에서는 이병민의 접수능력을 빗대어 "스타판의 더 락"이라고 할 정도.[20]
사실 이병민의 너무나도 환상적인 GG 타이밍이 한몫했다. 한때 스갤의 호감 요소가 이병민의 GG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기의 카타르시스가 터져나오는 명장면에서 GG를 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장 할루시 리콜 경기도 강민의 스톰업이 끝나자마자 GG가 나오며 최고의 명경기가 된 것이다. 한편, 같은 투명라인인 이재호는 GG가 늦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병민을 평범한 A급 양산형 테란이라고 보는 것은 실례다[21]. 그렇게 보기엔 전성기 시절 남긴 너무나 대단한 커리어들이 많기 때문이다. 스타 1 공식리그 역사상 개인리그 준우승 1회가 최고 성적인 선수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커리어를 보유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22][23][24] 역대 비우승자 선수들 중 사실상 2번째로 높은 커리어를 지닌 선수이다.[25][26]
게다가 이미 언급했지만, 이병민은 프로리그에서 데뷔 시즌 신인왕과 다승왕을 동시에 거머쥔 단 세 명의 선수 중 하나다.[27]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에서 저그에게 진 최초의 테란이다. 2005 EVER 스타리그에서 박성준과 5경기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지만, 포르테에서 선팩 조이기가 박성준의 미칠 듯한 뮤컨에 막히면서 패배했다. 물론 이병민이 못했다는 사람은 없고, 다만 박성준의 명경기 목록에 포함될 뿐이다.[28] 그러니까 명경기 메이커다.
그러나 전성기 시절 그의 양대리그 활약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먼저 스타리그에서는 Gillette 스타리그 2004부터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까지 스타리그에 9회 연속으로 진출해 임요환, 박성준과 함께 스타리그 최다 연속 진출 타이기록을 가지고 있었고 여기서 IOPS 스타리그 04~05 4위, EVER 스타리그 2005 준우승,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4위 등을 차지하였지만 그 동안 우승한 경험이 전혀 없어서 묻혀버리고 말았고, 스타리그 9회 연속 진출도 송병구나 이영호가 기록을 경신하면서 영원히 묻혀버렸다. 그리고 좀 더 일찍 본선무대에 데뷔한 MSL에서는 자신의 첫 메이저대회였던 TG삼보 MSL에서 4위를 차지하였고, Spris MSL에서도 4위를 차지하고 이후 Arena MSL 2008까지 7회나 MSL 본선 무대에 진출하였고 그 중 TG삼보 MSL부터 당신은 골프왕 MSL까지 4연속으로 본선무대에 진출하였지만 이마저도 강민에게 스프리스 MSL 패자 준결승에서 할루시네이션 리콜이라는 명장면과 함께 패하고 그 이후 더 이상 4위나 패자 4강, 8강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묻히고 말았다. 역시 dlqudals.[29]
단체전 리그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다름 아닌 SKY 프로리그 2004 2라운드.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의 유일한 우승을 이끌어낸 때였으며, 이 때는 이병민의 결코 짧지 않은 전성기의 한가운데 시점이다. 이윤열, 이재항과 더불어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데 사실상 견인차 역할을 했고, 경기에 나오면 개인전이든 팀플이든 거의 이겼다.[30] 투나 - 팬택 - 위메이드로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온 이 팀의 처음이자 마지막 프로리그 우승은 이병민이 선봉에서 진두지휘했기에 가능했던 위업이었다.[31]
한 때 투나 SG 시절 최연성 선수와 라이벌 구도를 펼치기도 하고[32] 프로리그 준우승을 하기도 했지만, KTF로 이적 후 존재감 없이[33] 있다가 존재감 없이 eSTRO로 이적했고, 존재감 없이 은퇴했다.
그리고 다들 잊고 있지만, 이병민의 KTF 매직엔스 이적은 FA 제도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34] 이병민의 이적 전까지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대부분 계약기간이 끝나도 소속팀과 재계약 하는게 보통이었는데 이병민은 팬택에서 KTF로 이적료 없이 이적해버린 것이다.[35] 자연히 FA 도입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결국 이병민을 마지막으로 스타 2 전환 ~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가 폐지되기 전까지 FA 자격이 없는데도 이적료 없이 이적한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36]
또한 현재는 아프리카TV BJ로 유명한 이철민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승리한 공식전(개인전 한정) 상대이기도 하다. 경기 영상
암튼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투명라인의 초대 수장[37]이다. 강구열 같이 대단한 커리어를 남기지 못했어도 수장이면 웬만하면 존재감을 조금이라도 어필하게 되지만, 이병민은 그런 것도 없다.
투명라인 2대 수장 이재호는 오히려 이런 기믹을 바탕으로 존재감을 점점 보여주며 웅진 이적 후 미친 존재감을 보여줬다.
또한 3대 수장 허영무 역시 투명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콩라인 가입과 탈퇴, 겜알못, 가을의 전설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38] 4대 수장 신노열마저 스타2에서 우승과 그의 광적인 팬들 덕분에 존재감을 나타냈다.
4. 주요선수와의 상대전적(전체전적)
vs. 서지훈 9:4vs. 임요환 5:2
vs. 박정석 5:4
vs. 홍진호 4:5
vs. 김정민 4:1
vs. 전상욱 15:11
vs. 박성준 7:9[39]
vs. 나도현 2:2
vs. 심소명 2:0
vs. 한승엽 4:0
vs. 김환중 3:1
vs. 박태민 5:4
vs. 최연성 7:8
vs. 이윤열 2:7
vs. 조용호 4:2
vs. 차재욱 4:4
vs. 김성제 5:3
vs. 강민 4:7
vs. 박용욱 3:2
vs. 전태규 5:5
vs. 박지호 3:5
vs. 오영종 0:2
vs. 성학승 3:4
vs. 송병구 2:2
vs. 이재훈 2:5
vs. 변형태 0:4
vs. 한동욱 2:5
vs. 김택용 2:1
vs. 안기효 2:3
vs.
vs.
vs. 민찬기 2:0
vs. 서경종 2:4
통산
vs Z 86승 53패 (61.9%)
vs T 94승 66패 (58.8%)
vs P 56승 52패 (51.9%)
5. 이적과 슬럼프, 그리고 은퇴
2005년 EVER 스타리그 2005에서의 준우승 이후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에서 KTF 매직엔스로 이적하며 억대 연봉[40] 선수로 등극하게 된다. 그후 2006년, KTF의 유일하게 먹튀가 아닌 억대 연봉 선수로 개인리그/프로리그의 활약으로 팀의 에이스로 부상하지만[41], 그 또한 여타 올드 게이머들과 마찬가지로 2007년 이후 극심한 슬럼프를 겪게 되고[42], 결국 전력 외 판정을 받고 7~8개월 공백기[43][44] 끝에 2008년, eSTRO로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하게 된다.[45]그리고 얼마 후 Arena MSL 2008 32강에 진출하여 3시즌만에 MSL에 복귀하고, 프로리그에서는 임요환까지 잡으면서[46] 부활의 신호탄을 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프로리그에서는 팀의 본인과 더불어서 본인도 금세 그저 그런 모습을 보이고 말았고[47], MSL 본선에서도 조별리그에서 서경종과 이윤열에게 32강에서 연패하고 예전의 페이스를 찾지 못한 채 부진이 계속되자 결국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이 진행 중이던 2008년 6월, 은퇴 선언을 하게 된다.
6. 은퇴 후
21사단에서 훈련병 생활을 한 사람들이 말하길 21사단 63연대 조교로서 군복무를 했다고 한다. 참고로 좀 무서운 조교에 속했다는 풍문이 있다.전역 이후, 2014년 "몬스터짐 스타 파이널포"대회에 홍진호, 박정석 등과 함께 출전했다. ##
이 대회 인터뷰에서 노가다를 뛴 건 군대 가기 전에 친구의 제안으로 2~3일 알바 형식으로 한 것이고, 편의점에서 일한 건 아니라며 그간 무성했던 루머들 중 사실이 아닌 것들에 대한 답변을 했다.
7. 관련 문서
8. 주요 경력
8.1. 개인리그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 |
스타리그 역대 준우승자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 |
스타리그 역대 4강 진출자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000> |
스타리그 역대 4강 진출자 |
연도 | 참가 리그 및 성적 | 비고 |
2003년 |
WCG 2003 최종예선 8강 (vs. |
|
PGR21 3rd 3위 (vs. 전상욱 2:0) | ||
TG삼보 MSL 패자조 준결승(4위) (vs. 최연성 0:2) | ||
2004년 | 하나포스 센게임 MSL 패자조 4강 2차 (vs. 강민 1:2) | |
Gillette 스타리그 2004 16강 | [48] | |
Spris MSL 패자조 준결승(4위) (vs. 강민 1:2) | ||
WCG 2004 한국대표선발전 8강 (vs. 이재훈 0:2) | ||
EVER 스타리그 2004 16강 | ||
당신은 골프왕 MSL 패자조 8강 1차 (vs. 조용호 0:2) | [49][50] | |
IOPS 스타리그 04~05 4위 (vs. 박태민 0:3) | [51] | |
2005년 | EVER 스타리그 2005 준우승 (vs. 박성준 2:3) | 준우승 상금 : 1,000만원.[52] |
So1 스타리그 2005 8강 (vs. 박지호 1:2) | ||
WCG 2005 한국대표선발전 12강 | ||
CKCG 2005 8강(vs. 최연성 1:2) | ||
CYON MSL 패자조 8강 1차 (vs. 김성제 1:2) | ||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8강 (vs. 한동욱 0:2) | ||
2006년 | 엘리트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대전투어 우승 (vs. 김정민 2:0) | |
엘리트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광주투어 우승 (vs. 서지훈 2:0) | ||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16강 (vs. 홍진호0:2) | ||
WCG 2006 한국예선 A조 4강 (vs. 이창훈 1:2) | ||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4위 (vs. 전상욱 1:2) | [53] | |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16강 (vs. 변형태 0:2) | ||
2007년 | 신한은행 프리마스터즈 준우승 (vs. 변형태 0:2) | [54] |
곰TV MSL 시즌2 32강 | ||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 32강 (vs. 주현준 1:2) | ||
2008년 | Arena MSL 2008 32강 | |
2014년 | 스타 파이널포 몬스터짐 레전드 시리즈 준우승 |
8.1.1. 전적
이병민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 |||
방송사 |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vs 테란 | 39전 19승 20패 (48.7%) | 27전 12승 15패 (44.4%) | 66전 31승 35패 (47.0%) |
vs 저그 | 42전 26승 16패 (61.9%) | 32전 16승 16패 (50.0%) | 74전 42승 32패 (56.8%) |
vs 프로토스 | 26전 17승 9패 (65.4%) | 20전 10승 10패 (50.0%) | 46전 27승 19패 (58.7%) |
총 전적 | 107전 62승 45패 (57.9%) | 79전 38승 41패 (48.1%) | 186전 100승 86패 (53.8%) |
8.2. 팀리그
연도 | 참가 리그 및 성적 | 비고 |
2003년 | neowiz Pmang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준우승 | [55] |
2004년 | SKY 프로리그 2004 2Round 우승 | |
SKY 프로리그 2004 그랜드 파이널 준우승 | ||
2005년 | MBC MOVIES MBC GAME 팀리그 준우승 | |
2006년 | SKY 프로리그 2005 그랜드 파이널 준우승 |
[1]
투나가 스폰서를 포기하면서 SG Family로 팀명을 바꾼 후 팬텍에서 인수했다.
[2]
現
kt 롤스터
[3]
이병민을
한/영 전환해서 치면 이렇게 된다.
[4]
구룡쟁패 듀얼이었는데 같은 조에 하필
박성준,
박태민,
박찬수가 끼어있었다. 박태민의 경우는 So1 스타리그도 참가하지 못 하여 많은 스갤러들의 관심은 양박 저그의 스타리그 복귀였다. 뭐 박태민은 결국 또 떨어졌지만.
[5]
dlqudals는 이병민의 영타. emfznekftm는 들쿠달스의 영타. 이후 이는 투명라인 게이머들에게 쓰는 아름다운 괴상한 전통이 된다.
[6]
더 정확하게 독일권 귀족명을 풀로 쓰자면 이름+성+von+가문명으로 해야 완전해지니 Dlqudals Lee von Emfznekftm가 되어야 한다.
[7]
인간의 시각 반응에 관련된 주제였는데, 이 때 특정한 경우에서 박수를 치도록 했다. 이 때 6명이 출연했는데, 5명은 어떤 식으로든 인터뷰가 나온 반면 이병민의 경우 6개 화면 분할로 6명이 박수치는 모습에서만 나왔다. 결국 방송에 출연해서 한 건 박수 3번. 게다가 이병민이 딱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두드러지는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는데 편집했다.
#
[8]
심지어 생일도
11월 20일로 이윤열과 같다. 단,
나이는 이윤열이 2살 형.
[9]
아이러니하게도 이윤열과의 상대전적은 이병민이 7:2로 크게 밀릴 정도로
천적과도 같은 관계였다. 대표적인 경기로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4강에서 3:0으로 셧아웃 패배를 당한 경기이다.
[10]
다만 허영무-송병구는 허영무의
진에어 스타리그 2011 우승 이후 한정이다.
[11]
위에 링크된 영상을 보면
온게임넷에서 하라고 해서 마지못해 했다고 말했고, 표정을 보면 진심으로 화를 꾹꾹 누르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12]
2004년 여름. 이 때는 상대가
프로토스인
박정석이었다.
[13]
양 방송사 개인리그를 모두 따지면
당신은 골프왕 MSL에서
이윤열을 꺾고 우승한
박태민이 먼저이긴 하다.
[14]
사실 같은 얘기라도 이병민을 폄하하지 않는 선에서 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테란의 끝판왕인 임이최 중 1명을 결승에서 잡고 우승해야 저그의 한이 완전히 풀리는것' 식으로. 어찌되었든 이병민이 임이최보다는 하급의 선수인 것은 사실이기에.
[15]
거기다가 서지훈은 올드 세대 최강의 테테전 강자 중 1명이였다는 점도 주요한다. 다만 그 서지훈이 밀렸던 테란 선수가 단 2명 있었는데 바로 이병민과 팀 동료였던
이윤열이다.
[16]
이 경기는
MSL 100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센세이셔널한 명경기다! 그야말로
꿈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극단적인 1방 올인 전략을 실현시킨 경기로 승자인 강민은
말할 것도 없고 패자인 이병민한테도 사람들이 "이병민"하면 보통 가장 먼저 떠올리는 명경기이다! 이 경기에서도 그 전매특허 GG 타이밍을 어김없이 선보였다.
영원히 고통받는 이병민
[17]
셔틀에 태운 하이 템플러의 사이오닉 스톰으로 SCV를 하나 남기고 모조리 몰살시킨 경기. 김성제의 꾸준한 SCV견제로 결국 자원을 캘 SCV도 남지 않고 SCV를 뽑을 자원도 남지 않는 희대의 명경기였다.
[18]
이 경기가 바로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 무대에서 최초로 저그가 테란을 상대로 우승을 차지한 명경기이다! 스타리그 역대급 테저전 명경기로 유명한 경기. 승자인 박성준은
말할것도 없고 이병민한테도 사람들이 "이병민"하면 스탑럴커에 당해 손으로 얼굴을 싸매며 괴로워하는 장면과 함께 기억되면 또 다른 명경기이다! 이병민은 말 그대로 이 경기만 이겼으면 우승이였고 더 넘어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도 있었다.(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 중 가장 개인리그 커리어가 낮은 선수가 우승 1회, 4강 3회의 서지훈, 박태민인데 이병민은 우승 1회, 4강 4회에 프로리그에서의 성적도 뛰어났으므로 충분히 헌액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19]
물론 가장 유명한 건
강민과
박성준의 명경기로, 이 2명은 이병민과 매우 깊은 인연이 있는 사이다. 강민은
Stout MSL 우승 후 디펜딩 챔피언일 때 이병민의
TG삼보 MSL에서의 본선 데뷔전 상대였으며 여기서 밀봉 관광을 당하고 패했다. 스타리그에서도 역시
NHN 한게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03~04 우승을 통한 디펜딩 챔피언으로써
Gillette 스타리그 2004에 진출하여 갓 스타리그 본선 무대에 데뷔한 이병민하고 둘 다 2패로 탈락 확정이였지만 명경기를 만들어서 이겼다. 박성준은 이병민과 마찬가지로
Gillette 스타리그 2004에 진출하여 처음 스타리그 본선 무대에 데뷔한 동기이며 동시에 스타리그 최다 연속 진출 기록을 경신했다. 데뷔를 같이 해서 9연속으로 같이 본선에 진출하다 같이 처음으로 본선 진출에 실패한것. 그 외에
최연성 역시 이병민과 양대 리그 모두 첫 진출 시즌이 MSL은
TG삼보 MSL, 스타리그는
Gillette 스타리그 2004로 서로 같은 인연이 있다.
[20]
사실 이병민이 이긴 명경기도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TG삼보 MSL 16강 개막전 경기에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강민을 상대로 반섬맵 유보트에서 밀봉 관광을 보여준
경기(참고로 이병민의 공식 개인리그 데뷔전이였다!)와
So1 스타리그 2005 16강 재경기에서 팀 동료
박정석을 상대로 반섬맵의 특징을 갖고 있었던 815에서 맵의 특성을 활용한 테프전에서의 기습적인 배틀크루저 활용을 보여준
경기, SKY 프로리그 2005 그랜드 파이널
KTF 매직엔스와
SK텔레콤 T1의 결승전에서
알 포인트에서 성적이 엄청 좋았던
임요환을 상대로 치열한 장군멍군식의 견제전 와중에도 뛰어난 방어 플레이를 제대로 보여주면서 승리를 차지한
경기 등이 이병민이 승리를 차지했던 대표적인 명경기들이다. 그런데 자기가 이긴 명경기들보다 진 명경기들의 임팩트가 훨씬 더 넘칠 뿐이다.
[21]
이재호,
신상문,
구성훈급 테란으로 보는 의견도 있는데, 적어도 이들보다는 분명 한 단계 높은 선수다. 굳이 비유하자면 '개인리그도 잘 하는'
염보성 정도에 가깝다. 같은 준우승 1회인
변형태나, 우승 외에는 비교적 커리어가 부족한
박지수나
변길섭보다 이병민을 우위로 보는 시선도 많다.
[22]
온게임넷 스타리그,
MSL 도합
준우승 1회가 최고 성적인 선수는
국기봉,
봉준구,
장진남,
전태규,
심소명,
변형태,
김구현,
도재욱,
박명수,
한상봉,
진영화,
차명환,
김명운이다. 이들의 4강 이상 진출 횟수와 비교해 봐도 이병민이 5회로 가장 앞선다.
[23]
그 외에 팀 단위 대회 커리어까지 고려하면 더 앞서는데 이병민은 프로리그 우승 1회, 준우승 1회, 그랜드파이널 준우승 2회, 팀리그 준우승 1회에 프로리그 신인상 1회, 개인전 다승왕 1회, 결승전 MVP까지 수상한 경험이 있다. 개인리그 준우승 1회 수상자 중에서 팀 우승 커리어로는 도재욱이 프로리그 우승 2회, 준우승 2회, 통합챔피언전 준우승 1회,
위너스 리그 우승 1회를 해서 앞서지만 이마저도 도재욱이 정규시즌 MVP, 다승왕, 결승전 MVP를 수상한 적이 없어서 개인수상 커리어로는 밀리는 편이다. 그 외 팀단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개인상을 수상한 플레이어 중에서 이에 근접한 플레이어는 프로리그 준우승 2회, 위너스 리그 우승 1회, 팀리그 우승 1회, 프로리그 팀플 다승왕 1회, 정규시즌 MVP 1회를 수상한 변형태, 프로리그 우승 1회, 준우승 1회, 그랜드파이널 준우승 1회, 팀리그 준우승 1회, 프로리그 팀플 다승왕 2회, 정규시즌 MVP 2회를 수상한 심소명이 이에 근접한다. 그 외 전태규, 박명수는 프로리그 우승 1회, 준우승 1회, 진영화는 위너스 리그 우승 1회, 한상봉은 프로리그 준우승 1회, 위너스 리그 우승 1회, 차명환은 프로리그 우승 1회를 기록하였지만 개인수상은 하지 못하였다. 심지어 장진남, 김구현, 김명운은 아예 프로리그, 팀리그, 위너스 리그 결승 진출 기록 자체가 없다. 김구현이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에서 신인왕을 달성하면서 아예 개인상 자체를 수상 못한 장진남, 김명운보다는 나은 편이다. 단, 국기봉과 봉준구 같은 경우에는 팀단위 대회가 본격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한 2003년에 이미 은퇴하거나 기량이 쇠퇴한 것은 감안해야 한다.
[24]
2000 하나로통신배 투니버스 스타리그,
2002 NAT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준우승한
강도경이 있긴 하지만
GhemTV 스타리그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한 번씩 올린 적이 있긴 하며,
봉준구도
iTV 랭킹전 우승 경력이 있다. 다만, 그 리그가 스타리그나 MSL처럼 길게 이어지지 못해 비공인 리그로 격하되어서 강도경, 봉준구는 우승자로 취급하지 않는 편이다.
[25]
1번째는
당연히....
[26]
준우승 2회인
강도경이 더 높다고 볼수도 있으나 양대리그 정립 이전 선수라 객관적 비교가 어렵다.
[27]
최연성, 이병민,
조성호.
[28]
사실 이병민이 무난한 스타일로 유명하고 통산 5전제 전적도 1승 4패에 셧아웃만 두 번 당하는 등 부진해 보이지만 상대 선수들이 이윤열, 박태민, 박성준 같은 괴물들이었던 데다 직전 4경기에서도 6배럭 전술로 승리하는 등 지나치게 무난한 전술만 고집하느라 다전제에서 약세를 보였던 여타
양산형 게이머들과는 달리 오히려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서는 올인 승부수를 이병민 쪽에서 먼저 띄우는 경우도 많았고 그래서 이길 뻔 한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하필 당대 저그들보다 몇 차원을 앞서간 컨트롤을 선보이던 박성준이었던 것이다.
[29]
근데 이것도 자세히 보면 스타리그에서 활약한 시기와 MSL에서 활약한 시기가 조금 차이가 난다. 선수시절 초창기에는 MSL에서는
TG삼보 MSL부터
Spris MSL까지는 4위 2회를 기록했지만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이
Gillette 스타리그 2004가 처음이었고
Spris MSL에서 4위를 차지할 때
Gillette 스타리그 2004에서는 16강 3전 전패 광탈, 그 다음 시즌인
EVER 스타리그 2004에서는 1승 2패로 16강 광탈을 할 정도로 이 시기까지는 MSL에서 많이 활약하였다. 하지만
당신은 골프왕 MSL-
IOPS 스타리그 04~05 시기부터 두 무대에서의 성적이 뒤바뀌게 되는데
IOPS 스타리그 04~05 4위를 시작으로
EVER 스타리그 2005 준우승,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4위의 성적을 포함하여 질레트배부터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까지 스타리그 본선 9회 연속 진출 기록을 세우며 당시 최다 기록 타이를 이뤘지만[56], MSL에서는
당신은 골프왕 MSL 4전 전패 광탈로 서바이버 리그로 강등 이후
CYON MSL 패자 8강으로 다시 서바이버리그로 강등되면서
곰TV MSL 시즌2에 복귀하기 전까지 본선 무대를 밞지 못했다. 그러나
곰TV MSL 시즌2에서도 1승 2패로 32강 광탈을 하고, 이후 오랜만에 복귀한
Arena MSL 2008에서도 2전 전패 광탈을 하고 만다. 이처럼 양대 리그 활약상은 동시기 서로 꾸준했다기 보다는 한 쪽에서 잘하면 또 한 쪽에서는 부진한 모습이었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완전한
온막 혹은
엠막이었으면 존재감이 생겼을 것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30]
개인전 1승, 팀플은
심소명과 고정 조합으로 전담하며 6승 1패.
[31]
단 팀의 유일한
팀리그 결승 진출 대회였던
MBC 무비스 MBC GAME 팀리그에서는 2승 4패로 생각보다 부진한 성적을 냈다. 그래도
SouL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는
변은종,
박종수를 상대로 2킬을 거두는 활약을 보였다.
[32]
실제로 최연성과의 상대전적은 비공식전 포함 8:7로 최연성이 단 한 점차 앞설 정도로 매우 호각세였다.
[33]
김정민 해설이 말하길 원래 클래스가 있었던 선수였지만 KTF로 오자마자 우리화되더니 클래스가 내려갔다나 뭐라나...
[34]
FA 제도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또 다른 사건은
최연성의 이중계약 건이 있다.
[35]
당시 팬택은 KTF와 비슷한 계약조건을 제시했는데, 최악의 팀 관리와 인성으로 비판받았던
송호창과의 불화 때문에 이적했다는 썰이 있다. 애초에
화승 오즈의 전신인 아이디얼 스페이스에서
동양 오리온,
SG 패밀리가 갈라져 나온 것도 송호창 감독과 관련된 여러 트러블 때문이었으니...
[36]
FA 제도는 2009년 8월부터 시행된다.
[37]
이병민의 활동시기의 초중기에는 수장이라기 보다는 그냥 투명게이머의 대표적 선수 정도로 불렸다. 애초에 라인, 수장이란 말이
강구열 등장 이후 본격적으로 쓰인 말이라...
[38]
이재호의 개인리그 최고 성적은 4강 1회, 8강 4회로 8강 2회의
염보성을 앞서며,
허영무의 개인리그 최고 성적도 우승 2회, 준우승 2회, 4강 1회로 우승 1회, 준우승 4회. 4강 3회의
송병구에 앞서 있다. 그에 비해
이윤열에 묻힌 이병민의 개인리그 최고 성적은 준우승 1회, 4강 4회로 준수한 편에 속하지만 우승 6회, 준우승 4회, 4강 1회를 기록한 이윤열의 기록이 무지막지할 뿐...
[39]
박성준과 벌인 두 번의 다전제에서 모두 2:3으로 분패하면서 박성준에게 커리어를 쌓아주었다. 둘 다 이겼으면 최소 1우승 1준우승에 명예의 전당 직행이었다(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 중 개인리그 결승에 2회 이상 진출해 우승 1회 이상을 거둔 선수 중 명예의 전당에 가지 못한 선수는 조작범 빼고는 없다). 아니, 둘 중 한 번만 이겼어도 최소한 투명라인은 탈퇴할 수 있었다(리그 우승 or 콩라인 가입).
[40]
3년간 2억 1천 만원
[41]
이적 후 개인리그에서의 최고 커리어가 4강 1회지만,
조용호,
홍진호,
박정석,
강민이 2005년~2006년까지 4강~결승에 진출했던 저그~토스라인과는 달리 이병민이 이적해 올 당시의 KTF 테란라인은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김정민은
우주닷컴 MSL을 끝으로 더 이상 양대 개인리그에 진출하지 못하다가 2006년 은퇴했으며,
변길섭도 KTF 이적 후 유의미한 성적은
EVER 스타리그 2004 8강이 끝이었다. 이 기간 동안 KTF에서 주전 테란으로 육성하려던
김윤환(테윤환)은
연습실 본좌를 벗어나지 못하는 선수였고,
이영호가 등장하는 2007년 전까지 개인리그에서 아무것도 없다시피했던 테란라인을 지탱한 것을 생각하면 4강 1회도 유의미한 활약이다.
[42]
특히 2006년부터
테테전에서의 부진이 매우 심화되었다. 이때 이병민은 거의 대부분의 테테전에서 패를 쌓았을 정도였고, 2006년 테테전 전적과 승률은 공식전 기준 26전 6승 20패 승률 23.1%, 비공식전 기준 32전 12승 20패 승률 37.5%에 불과하였다. 사실 마지막 개인리그 4강 진출 기록이었던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에서도 타종족 선수들은 잘 잡으면서 4강까지 진출했지만, 유독 테테전 같은 경우에는 24강에서
안상원에게 패배, 4강에서
이윤열에게 굴욕적인 0:3 셧아웃 패배,
3위 결정전에서
전상욱에게 1:2 패배를 당하면서 이 대회 테테전 성적만 보면 7전 1승 6패라는 처참한 기록을 남길 정도였다.
[43]
그래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까지는 6월 중순까지 개인전 4번,
팀플레이 3번까지 총 7번이나 출전을 하였지만, 이후로는 2008년에 다시 프로리그에 나오기 전까지 프로리그에는 한 번도 출전한 적이 없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도 마찬가지. 참고로 이병민은 출전 기회도 제대로 잡지 못했으며, 전기리그 출전 경기들에서
박정욱을 잡아낸 거 말고는 모두 패배했다.
[44]
이때는 KTF 매직엔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흑역사였던 시기인
김철이 감독을 맡았던 때와 겹치며, 이병민을 비롯한 KTF 매직엔스 선수들은 이 때 연습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45]
이적 당시
장발이었던 머리를 짧게 자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46]
사실 원래부터 이병민은 임요환과의 상대전적이 비공식전 포함 5:2로 앞설 정도로 강한 편이었다.
[47]
이때 eSTRO는 14연패를 기록하여
공군 ACE보다도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이 시즌이 공군 ACE의 유일한 탈꼴찌 시즌이다.
[48]
조편성 운이 없었다. 전 대회 우승자 강민과 당시 같은 로열로더지만 MSL을 2차례 우승했던 최연성, 그리고 역시나 리즈시절이었던 박정석이 속했고 결과는 3전 전패
[49]
16강에서
김민구에게 0:2 패배 후 패자조에서 조용호에게 2패 총 4패로 소위 말하는 광탈.
[50]
참고로 이병민은 이 대회에서 16명의 선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1승도 기록하지 못했다.
[51]
4강에서
박성준에게 2:3으로 패배.
[52]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에서 최초로 저그에게 진 테란이 되었다.
양대 리그 기준으로는
당신은 골프왕 MSL에서 이윤열이 박태민에게 져 준우승하였다.
[53]
4강에서
이윤열에게 0:3 패배. 해당 대회는 3,4위전을 3전 2선승제로 진행했다.
[54]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3 우승자인
한동욱,
이윤열,
마재윤과 함께
신한은행 마스터즈에 진출할 선수를 뽑았던 대회. 여기서 이겨서 마스터즈에 진출했더라면 최소 투명라인은 탈출할 수 있었을 텐데...
[55]
신인왕, 다승왕 동시 수상. 그러나 결승에서는
전상욱에게 패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