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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78787><colcolor=#fff> 성명 | 김준영 |
출생 | 1985년 12월 5일 ([age(1985-12-05)]세) |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병역 | 공군 국군지휘통신사령부 병장 만기전역 |
가족 | 아버지[1], 2남 중 차남 |
종족 | 저그 |
ID | GGplay[Gsp] |
소속팀 |
한빛 스타즈(2004년~2008년 3월) CJ 엔투스(2008년 3월~2008년 10월) 웅진 스타즈(2008년 10월~2009년 8월) |
별명 | 대인 (배), 차렷저그, 16강저그[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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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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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Joon-Yung, GGPlay[GsP] |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2. 상세
05~07 3대 저그 마준동[3]의 한 일원으로러커나 울트라리스크를 화면을 뒤덮을 정도로 대량 생산하는 것이 (속칭 "저그 유닛+'떼" 시리즈)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확고한 플레이 스타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 그리고 초반을 흔들려는 테란의 벙커링과 초반 러쉬를 극복한 김준영의 결과가 바로 16강을 깨고 우승한 Daum 스타리그이다.
한동욱과 더불어서 스타리그 성적에 비해 MSL 쪽에서 약했다.
2004년 입단하여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한 한빛 스타즈에서 오랫동안 몸 담고 있다가 2008년 봄, CJ 엔투스로 이적[4]했는데, 프로리그에서는 팀도 본인도 심하게 부진했다. 더군다나 당시 CJ는 토스라인 보강이 과제였는데[5], 토스라인 보강을 안 하고 난데없이 저그 김준영을 영입한 것이 CJ 입장에서는 크나큰 실수였다. 프로리그에서는 겨우 1승밖에 못 했는데, 유일하게 이긴 경기라고는 2008년 4월 26일에 있었던 김민구와의 경기 뿐. 또한 개인리그라고 해서 사정이 별반 다른 것도 아니었는데, 당시 치렀던 EVER 스타리그 2008에서는 16강에서 3전 전패로 광탈했다. 그나마 하반기에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8강에서 이영호를 꺾고[6] 5시즌만에 온게임넷 스타리그 4강에 진출하였지만, 정명훈의 발리앗이라는 신개념 빌드에 발목을 잡히며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7]
김준영을 잡고 올라간 정명훈은 한동안 넷상에서 많이 까였고[8] 저평가를 받았으며, 정명훈이 바투 스타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서야 사그라들었다.
3. 플레이 스타일
김준영이면
울트라 뽑았겠죠! 김준영의 상징은 울트라예요!!!
2012 tving 스타리그 4강 허영무vs김명운 5경기 中
흔히들 김준영을 수비형 저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김준영의 기반에는 확고한 공격성이 존재한다.[9] 다만 공격으로 이득을 봤을 때 다른 공격형 저그들이 더욱 몰아쳐서 끝내는 성향이라면 김준영은 그 유리함으로 배를 불리고 테크를 올리는 식이었다.[10] 어떤 상황에서도 물 흐르듯 넘어가는 선수는 아니며, 공격이 먹히면 천하에 당할 자가 없었으나 변수가 생기면 무너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한 번 김준영의 시나리오가 먹히면 막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선수들이 김준영을 막기 위해 초반을 적극적으로 공략했으며, 그것이 상당히 효과를 보아 한동안 김준영은 초반에 털면 끝난다는 것이 정설이었고 김준영은 이를 파훼하기 위해 매우 긴 인고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대신 김준영이 이기는 경기는 그 지독한 초중반 견제를 넘기고 터져나오는 물량으로 적을 휩쓸어 버리는 속이 다 후련하고 화끈한 면모가 있었으며, 특정 유닛만 잔뜩 모아서 맵을 뒤덮어버리는 등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냈다.2012 tving 스타리그 4강 허영무vs김명운 5경기 中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8강 vs 이영호 1세트 경기의 화면. 1부대 정도 되는 벌처를 때려잡으려고 내려온 울트라리스크가 다시 센터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저 울트라가 올라가고 후속으로 저 숫자의 울트라가 또 나온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서술하자면, 3해처리 레어가 정석이 된 이후에 대부분의 저그 게이머들에게 있어 레어 테크는 숨을 고르는 타이밍이었다. 뮤탈짤짤이로 사이언스 베슬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끌면서 가급적 전투를 회피하고 베슬이 나온 후에는 러커로 전환해 테란의 진출을 막는다. 여기서 더 발전하여 러커가 나올 때쯤 동시에 하이브를 올리는 패스트 하이브가 유행하였고, 이에 따라 러커는 사실상 디파일러의 다크 스웜과 함께 하이브 테크의 주력이자 4가스를 확보하는 루트로 활약한다. 그리고 4가스가 확보되면 울트라리스크가 조금씩 병력에 합쳐지기 시작하고, 소모전이 펼쳐지면 러커가 조금씩 사라지고 울트라리스크는 머릿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목동저그로 전환되는 게 일반적이다. 뮤탈리스크 컨트롤이 능한 이제동과 같은 일부 프로게이머는 뮤탈리스크만으로 상대를 절단내기도 했지만 이 역시 정석적인 레어 테크의 전투 회피용 뮤짤에서 컨트롤로 상대를 잡아먹은 경우였다.
반면 김준영은 레어 테크부터 뮤탈리스크와 러커를 전투에 동원하는 센터 싸움을 굉장히 선호했다. 이는 김준영의 뮤탈짤짤이가 손꼽힐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전략으로, 다른 저그보다 오히려 더 공격적이라고 볼 여지도 있는 선수였다. 반면 하이브가 올라간 이후에는 러커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고 저글링과 디파일러만으로 고효율의 전투를 추구했으며, 가스를 바로바로 쓰는 것이 아니라 타이밍이 나올 때까지 저축했다. 이를 위해 오버로드 속업까지도 기피했을 정도. 이렇게 사실상 미네랄만 소모하니 가스가 엄청나게 쌓이고, 4가스 활성화와 함께 2챔버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던 공방업까지 어느 정도 완료된 다음에야 쌓여 있던 가스가 전부 울트라리스크에 퍼부어진다. 이 특유의 운영 방식으로 인해 한두 마리씩 나와서 병력에 합류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김준영은 울트라가 첫 생산부터 부대 단위로 쏟아지며 그대로 게임의 끝을 알리는 일종의 승전보와도 같았다. 그리하여 부대 단위로 쏟아져 나오는 단일 유닛 물량, 특히 소떼는 김준영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이다.
대신 레어 테크에서의 전투가 무위로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하이브 테크도 불안정해졌고, 하이브 초반 타이밍에 테란의 한 방 병력에 갑자기 밀려서 경기를 말아먹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저그의 레어 테크 전투력은 하이브 테크에 비해 상당히 불안정하기 때문에 테란은 하이브 테크가 자리잡기 이전 타이밍에 몰아치는 식으로 김준영을 공략했다.
다음 스타리그 결승전 1, 2경기가 김준영의 약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경기들이다. 변형태의 공격적인 테란을 상대로 레어 테크 힘싸움을 그르치자 상징적인 하이브에서의 전투력이 나오지도 못하고 스무스하게 졌다. 반면 8강 3경기나 4강 5경기처럼 초반 운영이 물 흐르듯 지나가면 첫 울트라리스크부터 부대 단위로 쏟아져 관광을 태웠으며, 결승전 5경기에서는 불리하게 시작했음에도 하이브 전투력이 발휘되며 승리했다. 만약 테란이 역으로 레어 테크에서의 힘싸움을 거부하고 수비적으로 간다면 바로 하이브를 올리면서 저축 모드에 들어가고 곧 어마어마한 물량의 소떼 관광이 펼쳐진다. 이 때문에 타 종족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지 못하는 반섬맵에서의 성적은 극강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반 간 김준영은 이길 수 없다"는 말은 반만 진실이다. 이미 레어 단계에서 전투와 확장을 통해 게임을 이겨놓고 하이브로 가니 더더욱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실제로 후반 운영 능력 역시 최상급인 선수였다. 후반 경기를 운영으로 그르치는 선수도 비일비재했음을 감안하면 이겨놓고 하이브로 가서 그대로 이기는 것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며, 이영호나 변형태 같은 선수들은 김준영 공략법을 제대로 실행하여 게임을 반반으로 이끌거나 리드를 잡았음에도 김준영의 디파일러를 끝내 뚫지 못하면서 종국에는 소떼에 학살당하는 자신의 병력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스타일리시 그 자체인 테란전과 비교해서 저그전과 토스전은 평범한 편이다.[11] 저그전은 다른 저그와 마찬가지로 뮤짤을 이용한 공격적인 저그전을 펼쳤는데, 특유의 운영이 먹히기 힘들어서 그런지 약한 편이었다.[12] 토스전은 테란전보다는 개성이 덜하지만 멀티 타이밍을 앞당긴 부유한 물량전을 펼쳤다. 특이사항으로는 저그전이 약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마모씨에게는 3.3 혁명 전부터[13] 우위를 점했음은 물론 송병구를 상대로도 2008년 전까지는 아예 진 적이 없었다.
4. 생애 및 활동
2004년, 한빛 스타즈 소속으로 데뷔하였고, 2005년에는 프로리그 개인전에 기용되기 시작하였다. 전기리그에서는 7승 4패를 거두며 다승왕을 차지하는 등 주목받는 신인으로 입지를 굳혔으나, 매우 얇았던 한빛의 선수층 때문에 플레이 스타일이 조기에 공략되어 후기리그에서는 3승 8패로 매우 부진하였으며, 팀도 최악의 슬럼프를 겪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개인리그의 경우 MBC GAME 스타리그는 단 한 번도 진출한 역사가 없으나,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EVER 스타리그 2005를 통하여 처음으로 개인리그에 이름을 올렸으나, 16강에 그쳤고, So1 스타리그 16강에서 홍진호와 다른 동족전에 비해 단기간에 승부가 갈리는 저저전임에도 불구하고 저그의 웬만한 유닛이 다 등장하는 등의 장기전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14] 그리고 탈락이 확정된 마지막 경기에서 최연성을 장기전 끝에 잡아내며 유종의 미를 거둔다.[15] 이후 2006년 부로 프로리그에서도 본격적으로 포텐이 제대로 터지며 16승 5패로 70%가 넘는 승률에 다승 2위를 찍는 등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리그에서만큼은 매번 16강에서 물먹어 16강 테란 염보성과 같이 16강 저그라 불렸다.
2007년에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에서는 개인전 5승 11패, 팀플레이 1패로 부진하였으나, 대신 개인리그였던 Daum 스타리그 16강에서 송병구,
이 다음 스타리그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SL을 다 통틀어 가장 많은 우승자의 역상성 종족전 비율을 자랑한 리그이고, 저그 게이머가 가장 상성이 밀린다는 테란 게이머들하고만 대부분 만나서 우승한 멋진 리그였다.[20]
그러나 그 이후로는 우승자 징크스에라도 빠졌는지 에버 스타리그 2007에서는 1승 2패로 광탈하였다. 그래도 프로리그였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에서만큼은 전기리그와 달리 11승 6패로 선전했다. 게다가 2008년 초에는 Daum 스타리그 결승 상대였던 변형태와 함께 PSL로 함께 떨어졌고, 2008년 상반기에는 프로리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과 개인리그 에버 스타리그 2008에서 모두 심하게 부진[21]하면서 Daum 스타리그의 저주가 아니냐는 말이 나돌기도 했지만, 동년 10월 인크루트 스타리그에서는 두 번째로 16강을 뚫었고, 8강 상대인 최종병기 이영호에게 1세트 메두사에서 전맵 멀티를 기반으로 한 소떼 관광을 선보였다. 3세트인 플라즈마에선 김준영의 반섬맵 스타일인 확장중심 운영을 저격했던 이영호의 전진 배럭에 당해 가스멀티를 파괴당하는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저럴 올인을 준비했다. 이때 상황을 너무 낙관한 이영호가 생산설비 대신 테크 건물과 업그레이드에 투자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이 와중에 저글링으로 마인 제거를 했다면 오히려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역으로 대인답게 러커가 탱킹으로 마인을 제거하고 저글링의 역대박에 벌처 3기가 폭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탱크 3기만 남은 것을 본 김준영은 땡저글링으로 남은 탱크를 파괴하고 생산설비를 장악해 GG를 받아냈다. 4강 진출에 성공하나 로얄로더 후보로 떠오르던 정명훈의 메카닉에 3:1로 분패하고 말았지만 이후 항간에는 16강 뚫은 김준영이라는 유행어가 돌았다. 16강만 뚫으면 기본 4강은 찍는다는 새로운 징크스가 탄생한 것. 그리고 그 무렵에는 웅진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프로리그에서도 다시 힘을 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2009년부터는 다시 슬럼프가 찾아왔는지 2009년의 첫 개인리그였던 바투 스타리그에서는 1승 2패로 광탈했고, 아발론 MSL 2009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는 박세정과 손주흥에게 연달아 패하면서 MSL 진출에 실패했고, 5월 29일에는 박카스 스타리그 2009 36강에서 한동욱을 2대0으로 꺾고 올라온 한상봉을 맞아 16강 진출전을 펼치게 되었다. 하지만 손목터널 증후군으로 인한 실전 경험 부족, 손목 이상으로 인해 무기력하게 연속으로 2패하고 탈락하며 PSL로 추락하고 말았다.[22] 더불어서 이 해부터는 프로리그에서도 출전이 팍 줄었다. 마지막 프로리그+공식전 출전일은 2009년 7월 11일로, 이날 eSTRO의 남승현을 맞아서 이기면서 공식전 6연패에서 탈출했다.[23][24]
많은 팬들은 다시 한 번 대인배의 거대한 스케일의 운영을 보고 싶어하였다. 본인도 재활 치료를 하며 연습을 간간이 하고 있다고 했으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가 완전히 마쳐진 이후인 2009년 8월 20일, FA 원 소속팀 협상이 끝나는 날 결국 손목 후유증과 군입대 문제로 은퇴 의지를 시사했다. 해당 기사[25].
은퇴식은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개막전이 있던 2009년 10월 10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개막전 웅진과 SKT의 3세트 시작전에 열렸으며, 이재균 감독이 손수 김준영에게 양복을 입히고 공로패를 전달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2010년 3월 8일, 공군교육사령부에 입대를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뭐? 대인이 공군 ACE에 들어간다고?"라고 착각했지만, 일반병 입대다.
2012년 1월, 프로게이머를 은퇴한 박지호가 김준영에 대한 썰을 풀었다. 김준영이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번 돈이 고작 5천만 원 수준이었는데, 그걸 주식에 투자하고 군입대하고 나중에 보니 4배로 뛰었다고 한다. 정작 같이 투자한 본인은 쫄딱 망했다고...[26][27]
5. 개인 경력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 |
스타리그 역대 우승자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 |
스타리그 역대 4강 진출자 |
- 2005년 EVER 스타리그 2005 16강
- 2005년 WCG 2005 예선 4강 (vs. 서기수 1:2)
- 2005년 So1 스타리그 2005 16강
-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추가 선발전 E조 4강 (vs.
원종서0:2) - 2006년 WCG 2006 한국최종예선 D조 4강 (vs. 박정석 1:2)
-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16강 (vs. 오영종 1:2)
- 2007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16강 (vs. 이성은 1:2)
- 2007년 Daum 스타리그 2007 우승 (vs. 변형태 3:2) (우승 상금 : 4,000만원 )
-
2007년 WCG 2007 한국예선 20강 (vs.
박명수1:2) - 2007년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 16강 (vs. 구성훈 0:2)
- 2007년 EVER 스타리그 2007 16강
- 2008년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16강
- 2008년 곰TV 클래식 시즌1 64강 (vs. 김정우 1:2)
- 2008년 EVER 스타리그 2008 16강
- 2008년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4강 (vs. 정명훈 1:3)
- 2008년 곰TV 클래식 시즌2 32강 (vs. 박성균 1:2)
- 2008년 BATOO 스타리그 2008 16강
- 2009년 곰TV 클래식 시즌3 64강 (vs. 조병세 0:2)
- 2009년 박카스 스타리그 2009 36강 2차전 (vs. 한상봉 0:2)
5.1. 팀 단위 리그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4 그랜드 파이널 우승(한빛 스타즈)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4위(한빛 스타즈)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개인전 다승왕(공동)
- 2005년 제1회 KeSPA Cup 준우승(한빛 스타즈)
- 2006년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4위(한빛 스타즈)
6. 전적
김준영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 |||
방송사 |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vs 테란 | 51전 28승 23패 (54.9%) | 8전 3승 5패 (37.5%) | 59전 31승 28패 (52.5%) |
vs 저그 | 20전 8승 12패 (40.0%) | 7전 3승 4패 (42.9%) | 27전 11승 16패 (40.7%) |
vs 프로토스 | 25전 16승 9패 (64.0%) | 8전 2승 6패 (25.0%) | 33전 18승 15패 (54.5%) |
총 전적 | 96전 52승 44패 (54.2%) | 23전 8승 15패 (34.8%) | 119전 60승 59패 (50.4%) |
7. 기타
서 있을 때 언제나 차렷자세로 있기 때문에 차렷저그[28]라고 불린다.기묘한 각도와 이상하리만치 정확한 자세가 압권 |
언제나 반듯한 모습에 스타계의 대인배라 불린다. 바로 아래 이미지는 불리게 된 이유 조합. |
위 대인배 조합 짤방 중 첫번째 김준영의 아버지와의 인터뷰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한빛 스타즈의 본의 아닌 막장 같은 선수 대우를 생각해 보면, 자동으로 대인배가 돼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게임 내용상 유리한 경기에서 소위 말하는 관광 플레이(퀸으로 커맨드 센터 감염시키기 등)를 하지 않고 우직하게 소떼, 개떼등의 물량으로만 상대를 밀어붙여 GG를 치게 만드는 플레이도 대인배라 불리는 원인.
항간에는 소떼, 개떼 등도 관광 플레이라며 '김준영 = 대인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주요 버스고객(?)은 변형태, 한동욱, 송병구, 이영호, 전태규.[29]
우승 후 평소 한빛 스타즈의 팬이었던 체리필터의 베이시스트의 추천으로 "느껴봐" 뮤직비디오에도 노개런티로 출연한 경력이 있다. #[30]
스타판을 호령했던 택뱅리쌍 중 이영호와 송병구의 천적이었다. 송병구 같은 경우는 상대전적 5:2로 말 그대로 압살[31]. 이영호 같은 경우엔 상대전적은 5:5로 동률이나 다음 스타리그 4강, 인크루트 스타리그 8강 등 중요한 개인리그 다전제에서 두 번 다 이영호를 물먹였으며, 역대 저그 유저 중 이영호 상대 승률이 가장 높다.[32][33] 경험에서 쌓인 넓은 안목의 운영이 한 수 위였다는 평. 대 저그전 스페셜리스트인 한동욱에게도 강한 면모를 보였다.
웅진 스타즈 창단 이후 그의 대인배적 기질이 후배 김명운에게 그대로 넘어가서 김명운은 작은 대인배[34]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
2009년 7월 28일, Cool Time 웅진편 1경기 홀리월드에서 랜덤을 선택한 김명운의 커맨드센터 + 중립 커맨드센터 총합 3개를 먹었다. 어?[35]
은퇴 후 2010년 3월 8일, 공군 입대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대인배가 컴백하는 거냐고 설레발을 쳤지만, 실은 공군 ACE에 입단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것이었던 것.[36] 많은 사람들은 시험봤으면 충분히 붙었을 텐데라며 대인배의 입대 소식을 아쉬워했다고...
언젠가 공군 ACE 측에서 연습 상대로 김준영을 지목했으나... 그리 좋지 못한 건강 상태에다 은퇴 이후 확실히 게임에서 멀어진지라 이는 무산되었다.
김준영만 아니었다면 최종병기의 골든 그랜드 슬램(+로얄로더 달성도...)이 훨씬 앞당겨져 있었을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많다.
2012년에 제대는 했지만, 복귀는 힘들 듯하다. 손목 터널 증후군 또한 장애 요소라... 게다가 나이도 있고...[37] 그래도 전 웅진 프로들과는 계속 연락은 하는 듯.
섬맵의 특성이 있는 맵에서의 전적이 무려 90%가 넘을 정도로 좋다. 섬맵은 보통 프로토스가 강세를 보이고, 반섬맵 요소가 강하면 테란도 강세를 보이는 반면에 저그가 죽어나는 걸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이다.[38] 다만 이는 상술되어 있는 김준영의 플레이 스타일과도 상관이 있는데 섬맵은 보통 초반 난전이나 벙커링 등의 날빌에 휘둘릴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김준영에게는 최적의 조건이 되었다. 비공식전까지 포함해서 발해의 꿈에서는 2전 전승( 박용욱, 최우범), 알카노이드 시리즈에서는 9전 전승( 변형태, 오영종, 박지수, 이성은, 염보성,
2013년 8월 3일,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12-13 결승전에 웅진을 응원하기 위해 참관하기도 했다.
2016년에 김준영의 팀 내 저그 후배 김명운이 방송에서 밝히기를 현재는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고 있으며, 예전에 박지호가 썰을 푼 것처럼 주식 투자를 해서 번 돈도 있어서 잘 살고 있고 걱정할 필요 없다는 근황을 밝혔다. 웅진 시절 동료들과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 받는다고 한다. 또한 또다른 웅진 후배 김승현이 밝힌 또다른 썰에 의하면 아프리카에서 자신이 언급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BJ가 되어 방송을 하거나 다른 BJ의 방송에 출연하거나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8. 관련 문서
[1]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다.
[2]
우승을 차지한 이후로는 안 쓰이는
별명.
[3]
김'준'영, 이제'동'. 참고로 당시 활동하던 같은 팀 소속의 노준동이라는 김준영 본인과 종족이 같은 선수가 있기는 했지만, 관계는 없다.
[4]
한빛에 돈이 없어 이적했다는 설이 있다. 웅진으로 스폰서가 확정된 뒤 재정적인 문제가 해결되어 돌아왔다고 보는 게 옳을 듯. 게다가 당시
조규남과
이재균 간 친분을 바탕으로 위탁 형식으로 잠시 맡았었다고 한다.
[5]
이 시절 쓸만한 프로토스 카드가
박영민 밖에 없었으며, 그밖에도
손재범이 있었으나 이쪽은
팀플레이 전담이라 큰 의미가 없었다.
[6]
이때 8강 1세트가 메두사 맵에서 나온 소떼 관광 그 경기다. 이영호가 소수 뮤탈의 낚시에 골리앗 2부대를 분산 배치한 사이 메카닉 대부대를 뮤탈+울트라 러시로 섬멸했다. 3경기는 위에서 서술한 김준영 공략법 대로 이영호가 레어 테크때 김준영을 공략했으나 컨트롤 미스와 이를 놓치지 않은 김준영의 임기응변 전술로 역전승을 거둔 케이스다.
[7]
이영호의 메카닉을 멋지게 잡고 올라온 김준영이었지만, 정명훈의 발리앗에는 반대로 호되게 당했다. 4세트에서 온리 뮤탈을 고집할 정도였으니 김준영은 사실상 메카닉, 바이오닉 상대 운영만 준비했지 발리앗 체제에 대한 대처 지식은 전무했던 듯하다. 한편, 정명훈은 분명 이겼는데도 3세트에서 보여준 처참한 바이오닉 운영 때문에 저게
임요환의
팀에서 나온 테란이 맞냐는 소리를 들으며 까였다. 실제로 정명훈의 저그전이 호전된 것은
레이트 메카닉이 확립된 2010년부터이며, 2009년에는 명색이 테란인데도 저그전 승률 딱 5할을 찍었을 정도로
저막, 정확히 말하면 바막이었다.
[8]
지금이야 정명훈은 최강
테란 중 하나지만, 당시에는
듣보잡에 불과했기에 많은 팬들, 특히 스갤러들은 김준영과 송병구의 결승 매치업을 바랐다. 일단 정명훈이 올라오는 것보다는 흥행이 보장되며, 김준영이 많은 스타팬들에게 호감 이미지였던 것과는 반대로 정명훈은 36강에서 감히
이윤열을, 8강에서
박성균을 꺾고 올라오면서
리그 브레이커로서 악명을 떨치고 있었기 때문. 게다가 김준영이 송병구에게 매우 강했기에 당시
콩라인의 후계자로 넷상에서 큰 인기를 끌던 송병구에게
준우승을 안겨주기에 최적의 상대였기도 하고... 물론 송병구의 08년도
저프전이 13승 4패를 찍었을 정도로 몹시 좋았고, 김준영에게도 프로리그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그 전만큼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송병구가 저그전 다전제에서 끔찍하게 취약하다는 점도 있다.
[9]
사실 저그라는 종족 자체가 설정도 그렇고 인게임 플레이도 그렇고 수비형 성향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는 종족이다.
김민철이 수비형으로 살아남지 않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역시 공격성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10]
즉 한 번 유리한 고지를 점한 후 힘싸움만으로 전세를 뒤집어야 하는 상대의 심리를 노려 비등비등한 병력 규모만을 유지하며 남은 역량은 세력 확장에 쏟아붓고 마지막에야 대규모의 물량 공세를 퍼부음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장벽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11]
김준영이 우승한 Daum 스타리그에서 치른 경기들이 16상에서
송병구와 몬티홀에서 치른 1경기를 제외하면 모두 테란전이었던 탓에 타 종족전보다 테란전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던 것도 한몫한다.
[12]
저저전에서 하이브 가는 경기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데다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울트라는 저저전에서는 우주쓰레기 취급 받는다.
[13]
오히려 혁명 이후에는 맞대결 자체가 없었다.
[14]
맵이 좁은 본진 입구를 지는 반섬맵
815였다.
[15]
우주방어의 최강자이던 최연성이 도리어 공격만 하다가 김준영의 수비에 막혀 패했다.
[16]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24강 F조 6경기. 경기 시작 17분만에 미네랄 4만, 가스 17000을 먹은 경기로(경기 후의 자료 화면), 트리플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변형태에게 본진+7개의 멀티의 힘으로 뮤탈로 골리앗+발키리를 제압한 후 다양하게 미니맵을 채우며 변형태를 안드로메다로 날린 경기.
[17]
다만 변형태는 전 시즌에도 3위를 기록했고, 그 이전에도 8강을 여러번 기록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결승전 멤버로는 이전 커리어가 그다지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다. 물론 김준영은 16강에서 살아남은 적이 이 시즌 이전에는 전무했기 때문에 분명히 커리어가 영 아니어다.
[18]
사실 16강부터
박정석의
부활, 겁없는 무서운 신예이자 역대 스타리거 중 최초의 중학생인
이영호의 혜성같은 등장으로 이슈가 많았으며 8강에서 박정석이 떨어졌으나 8강 대진도 화려하다 할 수 있다. 흥행을 걱정하게 만든 건 4강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이거나 흥행을 기대할 수 없는 변형태, 김준영이 당시 물이 올라와 있던 송병구와
로열로더 후보였던 이영호를 꺾고 올라왔기 때문. 결승만은 대박났다고 하기보단 다른 수많은 리그처럼 결승에서 미끄러질 뻔한 리그라고 보는 게 옳다.
[19]
예상을 뒤엎는 많은 관객 수와, 한경기 한경기가 명경기이면서, 2:0 상황에서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심기일전하여 3경기를 내리따내는 김준영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애를 보며 감동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내린 비로 인해 하늘도 김준영의 우승과 온게임넷을 축복하고 있다고까지 했을 정도
[20]
16전 중 15전, 92%가 역상성 종족전. 참고로 이와 비슷한 역상성 종족전 비율을 자랑했던 우승자는
당신은 골프왕 MSL의
박태민이다. 박태민은 첫 경기에서
저그인
박성준을 2:1로 잡은 이후 매치업에서는 테란과의 다전제만 한 대회에서 5번을 겪었다. 그것도 어중간한 테란이 아니라
전상욱,
서지훈,
이윤열을... 그나마 당시 전상욱은
저막이라는 꼬리표가 아직 떨어지기 전이긴 했지만, 나머지 두 명의 테란과는 두 번씩의 다전제를 치렀으며, 이윤열과의 결승전은 스타1 양대리그 유일무이의 7전 4선승제 결승전이었다.
[21]
프로리그에서는 1승 5패로 부진했고, 개인리그에서도 에버 스타리그 2008에서는 24강은 2연승으로 가볍게 뚫었지만, 16강 조별리그에서는 3전 전패로 광탈했다. MSL은 엠막답게 아예 PSL조차도 못 뚫었다.
[22]
2회전 2세트 경기는 당시 김준영의 공식전 6연패 경기다.
[23]
추가로 말하자면 남승현은 이 경기가 eSTRO 소속 마지막 공식전이다. 이후 2009년 겨울,
kt 롤스터로 이적.
[24]
또한 김준영 본인의 프로리그 승리는 당해 3월 8일,
STX 소울의
김구현을 이긴 이후 4개월만의 승리였다.
[25]
재미있는 것은, 이 은퇴 기사가 나오던 시각 MSL에서는
변형태의 4강전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1, 2경기를 이겨놨던
변형태는 김준영의 은퇴 소식이 나오자마자 뭔가에 홀린 듯 3연패하면서
한상봉에게
역스윕을 당했다는 것이다.
[26]
하지만 사실 김준영이 프로 생활하면서 5천만원만 벌어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한빛 시절
윤용태의 연봉이 600만 원일 때도 김준영의 연봉은 2300만 원이었으며(2006 ~ 2007), 팀에 돈이 부족해
CJ Entus으로 잠시 이적했을 때도 이적료 약 7천만 원에 연봉 인상도 해 줬으며, 웅진에 컴백했을 때도 연봉을 꽤 받았다. 거기에 스타리그 우승 상금(4천만 원)까지 포함하면 이는 당연히 말이 안 된다.
[27]
다만 이적료는 김준영 개인에게 주는 돈이 아니라 팀에게 지급하는 돈이고, 연습생 시절은 연봉이 낮았을 것을 감안하면 대략 상금 등 잡다한 수익 합쳐서 1억 원 전후는 벌어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기에 세금 떼고 생활비도 쓰면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번 돈 중 쓸거 쓰고 뗄거 떼고 저축한 돈이 5천만 원 정도라는 이야기일 듯. 연봉 2천 ~ 3천만 원 수준의 직장에 4 ~ 5년 다니고 5천만 원 모은 거면 굉장히 알뜰하게 모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28]
우승 직후 감독
이재균 감독과 함께
스타 뒷담화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엄재경이 "준영이의 차렷하고 있는 사진이 명예의 전당으로 올라오는 거 아냐?"라고 할 정도.
[29]
위
짤방에 나오는 나이 표시는 실제와는 다르다. 변형태는
87년 생, 송병구는
88년 생으로 변형태가 1살 더 많다.
[30]
공교롭게도 체리필터는 김준영 이전 한빛 선수의 마지막 우승 시즌인
2002 SKY 스타리그 결승전 축하공연을 한 바 있다.
[31]
2007년까지 5대0이었다가 2008년에 2판이나 따라잡히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어쨌든 천적.
[32]
원래는
박명수가 유일하게 이영호를 상대전적에서 앞서 있었고
박찬수는 김준영과 승률이 동일했으나 결국
둘 다 영구제명되었으므로 남는 건 김준영뿐이다. 게다가 김준영은 이중 유일하게 이영호와의 5전제를 승리하였다. 이영호를 상대로 결승전 역스윕을 이뤄낸 김정우도 총 상대전적은 6:9로 열세를 기록했고, 이제동조차도 25:27로 열세다.
[33]
2021년 이영호가
코인게이트의 주범으로 밝혀져 팬들에게 금지어 취급을 받게 되자 은퇴 후까지 아무 구설수가 없는 김준영의 평가도 덩달아 올랐다. 마침 김준영은 전술했듯 주식이라는 합법적인 수단으로 큰 이득을 봤다는 점에서 더더욱 이영호와 대비되었다.
[34]
혹은 대인배 주니어. 이를 줄여서 주인배라고도 한다.
[35]
물론 이 경기는 팀내 연습경기인 만큼 크게 의식할 필요는 없겠지만, 김준영이 커맨드를 먹은 모습이 방송에 나오는 것이 상당히 이례적이기에...
[36]
이미 앞서 은퇴한
강구열이 공군 ACE가 아닌 공군 일반병으로 입대한 케이스가 있다.
[37]
당장 위 100분토론 짤 아래에서 언급한 버스 승객 중
전태규를 제외하고는 모두 김준영보다 어리다.
[38]
당장
김준영 이전의 섬맵류 최강자들로 평가받은 선수들은
테란 유저
임요환과
프로토스 유저
강민이 평가받을 정도였고, 저그 중에서는 섬맵 최강자가 거의 없다고 평가받을 정도였다.
[39]
송병구, 변은종,
이영호, 김상우, 변형태,
김상욱에게 승리하였고, 1패는 815에서도 김준영을 잡았었던 슈퍼컴퓨터
이재호에게 패배한 것이다.
[40]
이성은,
서기수,
박성준(
삼성),
나도현,
이학주,
임요환,
박성균,
손찬웅,
김환중,
김윤환(
테란),
이주영,
박명수,
주현준에게서 승리를 차지하였다. 그나마도 1패는 테란이나 토스에 걸린 게 아닌 동족전이다. 그리고 815 특유의 좁아터진 입구로는 상대가 앞마당을 가지 않은 이상 저글링 올인 따위의 플레이는 문자 그대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섬맵과 비슷한 양상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고, 여기에 후반 가면 엄청나게 강해지는 대인배의 특성까지 겹쳐져서 이 1패는 뭐 그냥 일반적인 저저전처럼 길어야 15분 내외로 깨지는 경기가 아니라 40분이 넘도록 별의별 카드가 난무하면서 치열하다 못해 아예 처절하기까지 한 저저전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였다. 여기서 대인배를 잡아낸 유일한 선수가 바로 당시에도 한물갔다 퇴물이다 소리 듣던
홍진호. 나머지 1패는
이재호.
[41]
김민제, 이영호에게 승리를 차지하였다. 그나마 1패를 당한 것은 4강에서 정명훈에게 당한 것이다.
[42]
1승은 김상욱에게 차지하였지만, 1패는 안준영에게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