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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여수 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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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 2012 여수 세계 박람회
EXPO 2012 YEOSU KOREA
파일:2012 여수 엑스포 로고.svg
<colbgcolor=skyblue> 행사 기간 2012년 5월 12일 ~ 8월 12일
국가 / 도시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 전라남도 여수시
전시면적 250,000㎡
주제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
(The Living Ocean and Coast)
참가국 105개국, 10개 국제기구
입장객 8,203,956명
BIE 구분 인정박람회
주제가 아이유 - 바다가 기억하는 얘기
마스코트 여니, 수니
2008 사라고사 엑스포 2012 여수 엑스포 2017 아스타나 엑스포

1. 개요2. 상징물
2.1. 홍보대사2.2. 주제가2.3. 마스코트
3. 관람 정보
3.1. 교통편3.2. 식사3.3. 기념품3.4. 편의시설 및 기타
4. 문제점과 개선상황
4.1. 개막 이전 문제점4.2. 전반 관람객 유치 부진4.3. 후반 관람객 폭발4.4. 주변 상권 문제4.5. 사전예약제4.6. 늘어선 대기열과 자리맡기 새치기4.7. 1993 대전 엑스포와의 차이점
5. 엑스포 관람객 추이6. 전시관 및 전시품
6.1. 주요 전시관
6.1.1. 주제관6.1.2. 기후환경관6.1.3. 해양문명도시관6.1.4. 해양산업기술관6.1.5. 한국관6.1.6. 아쿠아플라넷 여수6.1.7. 그 외
6.2. 기업 전시관6.3. 엑스포 참가국 및 전시관(한국 제외)
6.3.1. 아시아6.3.2. 아메리카6.3.3. 유럽6.3.4. 중동6.3.5. 아프리카6.3.6. 공동관6.3.7. 참가 취소6.3.8. 국제기구
7. 사후 활용
7.1. 여수세계박람회 기념 및 사후활용에 관한 특별법
8. 기타

[clearfix]

1. 개요

파일:attachment/info_1.jpg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항일대에서 2012년 5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3개월, 93일간 개최되었던 엑스포. 주제는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다. 전 세계 105개국과 10개 국제 기구가 참가하였다.

한국에서는 1993 대전 엑스포 이후 19년 만에 열린 BIE 공인박람회( 인정박람회)로서 내륙지역이었던 대전광역시(당시 대전 직할시)와는 달리 이번에는 임해 지역인 여수시에서 열렸다.

원래는 좀 더 규모가 큰 등록박람회로서 2010년 엑스포 유치를 시도했으나, 상하이시에 밀려 실패하고 그보다 규모가 작은 인정박람회로서 2012년 엑스포를 유치하게 되었다. 규모만 봐서 알겠지만, 대전 엑스포보다 많이 작다. 거기에 외곽 지대에서 했던 대전 엑스포와 달리 원도심 재개발도 겸해서 추진했다. 그래도 규모면에 비해서 관광객은 꽤 많았던 편.

개막식은 5월 11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꿈꾸는 바다"라는 주제로 이루어졌으며 이명박 대통령과 영부인, 그외 국내 각계 인사들이 직접 참석해 성공을 기원하였다. 당초에는 해외 정상들도 다수 초청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황당하게도 조직위가 외교통상부에 협의를 보내지 않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개막식엔 대부분 국내 귀빈들만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개막식은 KBS 1TV에서 중계방송하였다.

1993 대전 엑스포와 비교하면 대박까진 아니었지만[1] 지리적 위치 등을 감안할 때 여수 엑스포는 해양과 관련된 주제로 석 달 동안 약 800만 명이 관람하며 성공했다고 본다.

특히 여수시는 이 엑스포를 통해 크게 성장하였는데, 교통과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엑스포 이후 대폭 증가하였고 전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로 변모하였다.

2. 상징물

2.1. 홍보대사

파일:여수엑스포 홍보 포스터.jpg
공식 홍보대사는 아이유다. 아이유는 1993년생, 그러니까 1993 대전 엑스포가 열렸던 해의 출생자이기도 하다.

2.2. 주제가

2012 여수 엑스포의 주제가인 아이유의 바다가 기억하는 얘기
공식 주제가는 윤상이 작곡하고 홍보대사 아이유가 부른 '바다가 기억하는 얘기'였다. 그러나 엑스포 직전인 2012년 3월 버스커 버스커가 발표한 ' 여수 밤바다'가 히트를 치면서 이 노래가 공식 주제가인 줄 아는 사람이 많다.

2012년 8월 1일 개최된 SBS K-POP 여수엑스포 슈퍼콘서트(같은 달 9일 방송)에서는 아이유가 아닌 시크릿이 엑스포 행사장을 배경으로 바다가 기억하는 얘기를 부르는 VCR이 상영되었다. 그럼 아이유를 홍보대사로 위촉한 의미가 없는데?

전 여수시의회 의장인 가수 김정민이 부른 곡인 "여수 아가씨"라는 트로트곡도 있지만 묻혔다(...). 설운도 작사, 작곡으로 여수시에서 배포한 엑스포 관련 곡 CD에 포함되어 있다. 링크.

====# 가사 #====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아주 오래된 일들까지
너는 알고 있지
너는 지켜보고 있지
아무 것도 준 게 없는데
끝없이 받기만 했는데
언제나 날 반겨 주는
그 미소는 변하지 않아

바다가 기억하는 얘기
멀고 먼 과거의 꿈
셀 수 없이 많은 낮과 밤을
묵묵히 지켜 본 푸른 눈빛
파도가 나에게 들려 주는 얘기
멀고 먼 미래의 꿈
이제 가만히 두 눈을 감고
그 소릴 듣는다
귀를 기울인다

거추장스러운 옷들도
무겁기만 한 그 신발도
던져 버리라고
전부 벗어 버리라고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껏 뒹굴어 보라고
언제나 날 반겨주는
그 손짓은 변하지 않아

바다가 기억하는 얘기
멀고 먼 과거의 꿈
셀 수 없이 많은 낮과 밤을
묵묵히 지켜 본 푸른 눈빛
파도가 나에게 들려 주는 얘기
멀고 먼 미래의 꿈
이제 가만히 두 눈을 감고
그 소릴 듣는다
귀를 기울인다

수많은 기억의 노래
끝없는 생명의 노래
영원히 멈추지 않는 소리
언제까지라도

바다가 기억하는 얘기
멀고 먼 과거의 꿈
셀 수 없이 많은 낮과 밤을
묵묵히 지켜 본 푸른 눈빛
파도가 나에게 들려 주는 얘기
멀고 먼 미래의 꿈
이제 가만히 두 눈을 감고
그 소릴 듣는다
귀를 기울인다

2.3. 마스코트

파일:attachment/mascot.jpg

공식 마스코트 캐릭터는 여니와 수니. 플랑크톤이 모티브이며 이름은 당연히 개최지 여수시에서 따왔다. 부캐로는 듀공이라는 고래가 있다. 여수 아쿠아 플래넷의 마스코트 격.[2]

CNN이 운영하는 여행사이트 CNN Go는 여니 수니를 ‘2012년 10가지 최고의 여행기념품’으로 뽑았다.

3. 관람 정보

일부 전시관에 대해[3] 전시관 사전 예약제[4]가 도입되었다. 중간에 잠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결국 부활했다.

입장권은 성인기준 보통권 33,000원 개, 폐막일 전후와 부처님 오신 날 연휴에 사용해야 하는 특정일권 40,000원 2일권 53,000원 3일권 69,000원 전기간권 200,000원이었다. 입장권에는 RFID칩이 삽입되어 있어 엑스포 입장 및 전시관 입장, 키오스크(부스)를 통한 전시관 예약 등에 사용되었다. 결국 특정일권은 사라졌고, 지자체에서 특정일에 한해 자기 지역 주민들에게 3,000원 짜리 입장권을 남발하면서 티켓 단가 문제가 있었던지, 이 입장권은 그냥 종이조각이 되어버렸다.

입장권 소지자에 대해서는 아래에 설명된 열차 운임 할인을 비롯하여 여수 남산동의 수산물 특화시장에서는 상품 구입시 10% 할인을, 순천만 입장시 50% 할인을 남원 광한루원과 춘향테마파크, 왕인박사 유적지 등에서는 무료 입장 혜택이 제공되었다.

하루하루가 공연의 연속이었다. 곳곳에 있는 무대, 거리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공연을 눈여겨 보면 좋았다. 메인공연이자 가장 큰 볼거리인 빅오쇼는 21시 30분에 가동했다.[5] 폐막 직전에 하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공연이므로 놓치면 후회하니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짜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여수 엑스포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을 통해서도 관람과 관련하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엑스포를 잘 즐겼다."라고 말하고 싶다면 예약을 하는 관은 주제관, 한국관, 기후환경관이 적절하며 굳이 원한다면 아쿠아리움과 해양문명도시관이 있었다. 아쿠아리움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이 많았고 해양문명도시관은 기대보단 높다는 평이 많다 주제관은 말 그대로 주제관이며, 한국관의 경우 많이 움직이지 않아 어르신이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보기 좋았다. 기후 환경관을 오후 1~2시 쯤에 예약하면 최상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왜 뜬금없이 기후환경관이 인기가 좋았냐면 안 그래도 햇빛이 쨍쨍한 여름날씨인 데다, 위쪽 동네보다 더 더워지는 남쪽 크리 보너스에, 인파로 인해 북적북적해진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에, 아스팔트가 반사하는 열에, 그 모든 것에 최소 분, 최대 시간단위로 노출되어서 버틸 수가 없다! 상태가 된 것을 단박에 해결해주었기 때문이다.

안쪽의 날씨를 영하에 가깝게 저하시킨데다 벽에는 녹지 않는 얼음기둥이 잔뜩, 게다가 진행하다보면 리얼 인공 까지 펑펑 날려주는 에리어가 존재했다. 바깥으로 나오면 숨이 턱턱 막히는 불지옥 여름볕이 기다리고 있으니 당연히 인기가 좋을 수밖에(...). 물론 이 모든 체험은 얇은 여름옷, 반팔 반바지로 했기 때문에 급격한 온도변화로 의도치 않은 여름 감기에 걸린 사람도 있다 카더라.

3.1. 교통편

여수엑스포역이 전시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철도 교통의 접근성이 대단히 좋았다. 역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엑스포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또한, 박람회 기간에는 토/일/공휴일에는 순천-여수엑스포역을 반복 운행하는 셔틀 누리로가 일일 13회 무료로 왕복 운행하였다.

엑스포 입장권 소지자에 대해서는 출발 이틀 전까지 창구에서 입장권을 제시하거나, 온라인 예매에서 행사 할인을 선택한 경우에 한해서 순천역, 여천역, 여수엑스포역으로 가는 열차 운임을 30 퍼센트 할인해주었다.

항구에서 개최된다는 점을 살려, 엑스포 기간동안 후쿠오카에서부터 엑스포 장내 부두까지 고속선이 운행하였으며, 부산에서부터 크루즈 선이 운행하고 남해 등 다른도시에서도 배편이 연결되는 등 해상 접근성에도 많은 고려를 하였다.

그러나, 소도시인 여수 도심의 혼잡을 막기 위하여 승용차의 여수 진입[6]은 금지되었다. 따라서 자가용을 이용해 박람회장을 방문하고자 하는 경우, 시 외곽 및 인접 도시에 마련된 환승 주차장에서부터 무료 전세버스를 이용하도록 하였다.

승용차 이용이 금지된 대신 박람회 기간동안 여수시 시내버스를 무료로 운행하여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여 교통 체증을 덜어보려는 노력을 하였으나[7], 외국인을 포함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관광객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오히려 시민들(주로 통학하는 학생)이 교통비를 아끼게 되었다.

3.2. 식사

국제관 1층 및 지하에 대부분의 식당이 위치해 있었으며, 장내 곳곳에 가판대와 푸드코트 등이 설치되었다. 박람회장 내 식당은 깔끔한 편이었으나, 행사장의 특성상 가격 및 음식의 질은 딱히(...). #

파일:8000원짜리갈비탕.jpg

심히 창렬하기 그지없는 8,000원짜리 갈비탕의 위엄.[8] 저 배추김치는 자율배식대에서 담아 온 것으로 반찬으로 깍두기 하나만이 제공된다. 반면, 같은 식당 내에서 직원 대상으로만 6,000원짜리 양질의 백반이 제공되어 관람객들의 불만을 샀다. 이로 인하여 도시락을 지참하고 입장하거나 내부에서 도시락을 사먹는 관람객이 많았다.

KFC, 롯데리아,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엔제리너스 커피 등의 프랜차이즈 매장들은 외부와 같은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었으나, 역시나 야구장 등의 특별 매장과 마찬가지로, 빠른 회전을 위해 일부 메뉴만 판매하거나 세트 메뉴를 판매하지 않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한편, 관람객들이 폭증한 7월말 이후로는 사람이 많아져서, KFC에서 주문하는데만 한시간 동안 줄을 서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가판대에서는 신라면 블랙만 판매하였으며, 편의점 두 곳 중 국제관 일본 기념품 판매점 옆의 GS25에서 소량이나마 너구리, 사리곰탕 등을 판매하였으나 온수 문제로 판매가 조기 종료되는 경우가 있었다.

한편, 국제관의 각 국가별 전시관에서 각 나라의 식사류나 간식, 맥주, 음료 등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을 운영하여,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저렴하지는 않은 가격에 맛볼 수 있었다.

야간권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입장권이 1회 재입장이 가능하여 박람회장 밖에서 식사를 하고 재입장하는 것이 가능하였으나, 회장 인근에 식당이 없어서 멀리까지 가야 했다.

3.3. 기념품

국제관 중앙에 자리잡은 디지털 미디어 갤러리 주변 식당들 주변 및, 그 외 회장 곳곳에서 기념품 매장이 운영되었다. 한편, 국제관 내 각국 전시관별로도 레스토랑 및 기념품점을 운영하였다. 저렴한 것으로는 3,000원짜리 휴대폰 줄이나 열쇠고리부터 3백만 원짜리 미술품 등 다양한 종류가 판매되었다.

물론 대놓고 물건 팔러 온 나라도 있긴 있었다. 전시관이 끝나자마자 기념품점이 튀어나오고 점원이 기묘한 한국어로 전통품 강매를 시도한다든가.

3.4. 편의시설 및 기타

종합안내센터, 미아보호소, 반려동물보호소[9], 물품보관소[10] 간이의료소, ATM기 등등의 편의시설이 있으며, 위치를 잘 찾지 못할 때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운영요원들이나 자원봉사자들이 잘 숙지하고 있다가 안내해준다.

금연박람회를 선언하여 흡연은 3곳의 지정된 장소에서만 허용되었고, 원칙적으로 라이터의 반입도 금지되어 흡연장 내 가스 토치로만 불을 붙일 수 있었다. 테러 및 각종 사고 방지를 위해 화기 및 무기류 술 등은 박람회장 내부에 반입할 수 없고, 초기에는 정말 정밀하게 짐 검사를 하였고, 지금도 금속탐지기나 가방탐지기 등으로 검사를 하고, 라이터 등을 입구에서 압수하지만 어쩐지 사람들은 흡연구역에 비치된 가스토치는 쓰지 않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낸다. 술도 압수하지만 곳곳에서 맥주를, 국제관에서는 와인 등 각 나라의 주류를 판매하는데...

4. 문제점과 개선상황

4.1. 개막 이전 문제점

3차례 실시된 예행 연습을 통해 박람회장이 사전 공개되었고 몇 가지 문제점이 나왔다.

결국, 키오스크의 경우 해결이 된 듯하고, 아쿠아리움은 엑스포 개막 직후 수조를 채웠다.[11]

4.2. 전반 관람객 유치 부진

개막 직후에는 19년 전의 개막식부터 북적북적했던 때와는 달리 입장객이 너무 적어, 사전 공개 당시보다도 관람객이 적었다. 조직위 측에서는 평일 5~7만 명, 휴일 10만 명을 기대했는데 실제 관람객 수는 평일 3만 명, 휴일 5만 명에 그쳤다. 박람회 특성상 시간이 경과할 수록 사람이 몰린다고는 하지만 조직위의 예상에 턱없이 못 미치는 관람객 수는 많은 우려를 낳았다.

일단 교통편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었는데, 조직위에서 수요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승용차를 위한 주차장은 남아 돌고, 관광 버스 등 단체 차량을 위한 주차장은 꽉 차는 현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입장료 체계도 관람객들의 불만을 샀다. 또한 식사 문제도 관람객들에게는 의외의 난관으로 다가왔는데, 엑스포 내부의 식당가에서는 음식이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졌고, 시내의 음식점들은 행사에 맞춰서 음식값을 올리는 등 바가지 요금을 씌웠기 때문.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엑스포의 주된 컨텐츠인 전시관의 볼거리가 부족한 것. 대부분의 전시관이 영상 위주로 구성되어 관람객들이 체험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던 것. 대체로 만족…관객동원 '저조' 등 과제 산적 - 스포츠서울닷컴, 2012년 5월 13일[12]

각 국가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국가별 전시관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있어, 사우디아라비아 관은 아예 공사를 포기함으로서 사실상 불참하였으며, 페루관 등 몇몇 전시관에서는 엑스포의 주제인 해양 문화와 관계된 전시물이 하나도 없고, 바다가 없는 내륙국 또한 이에 참가하였다. 전시보다는 기념품 판매에 치중하는 곳들도 있어, 일부 전시관은 고가의 기념품을 판매하거나 "해양 엑스포 맞아?"…일부 전시관 파행 운영 - mbn, 2012년 5월 14일 전체가 기념품 판매장인 전시관도 있었다.

4.3. 후반 관람객 폭발

후반부 들어 어떻게든 억지로 800만을 채우려고 방학[13], 휴가철, 내일로, 지방자치단체의 3,000원짜리 티켓 남발[14], 여수시민 무료 입장 등으로 7월 중순 이후 관람객이 몰리면서 8월 2일 여수시 전체 인구보다 약 8~9만 명 가량 많은 35만 명이 입장하는 등 연일 고공 행진이 이어졌으나, 이 또한 문제를 낳았다. 이는 단순히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위원회가 판단한 적정 인원은 물론 여수시 전체 인구보다 더욱 많은 인원에 대한 교통, 숙박, 식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발생시킨 것이었다.

특히 빅오쇼가 끝나는 밤 시간대에 여수엑스포역에서 순천역으로 나가는 열차는 입석까지 모두 매진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으며[15], 숙박을 하려니 여수 시내의 모든 호텔, 모텔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찜질방조차 만원이 되었으며, 전시관 대기야 오래 하더라도 식사 한번 하기 위해 한 시간씩 줄을 서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또한, 저녁 시간이 되자 빅오쇼를 보려는 수많은 인파가 스탠드에 몰리면서 자리가 부족하자 그 많은 인원들이 스탠드 지붕 위 데크 공간으로 몰렸는데, 그 곳에 자리 잡고 앉은 사람들이 길을 막고, 남은 공간을 통해 자리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지나는데, 이미 앉을 만한 자리는 꽉찬 상태라 자리가 찾아질 리는 없고, 다시 내려오려는 사람들과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엉키고 유모차 및 휠체어 등이 얽히고 얽혀 오도가도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린 데다가 경사까지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상주 MBC 공개 방송 압사 사고나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종로 보신각 타종식 압사 사고 등을 떠올리며 불안에 떨며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어야 했다. 아쿠아리움등 주요 전시관은 워낙 줄이 길어서 아침에 빨리 입장하려고 새벽부터 줄을 선 사람들이 개장시간이 되자 마자 내달려서 아침마다 박람회장 내 마라톤이 벌어지고 있었다.

4.4. 주변 상권 문제

엑스포 관람객이 그다지 여수 시내 상권을 찾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이다. 엑스포만 열리면 손님들이 바글바글 들어올 줄 알고 제대로 바가지 한번 씌워보려던 인근 상인들은 망했다. 방값을 10만 원이나 받으려고 하던 숙박 업소들은 이틀 만에 방값을 6만 원대로 낮출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엑스포를 노리고 건물을 새로 짓거나 개보수 공사를 한 업소들은 실망스러운 상태가 돼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도심 상권은 오히려 엑스포 이전보다 더 안 좋아졌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허나 이는 자업자득으로, 숙박 업소들은 엑스포의 시작을 기점으로 기존 예약 손님을 제외한 모든 인원을 받지 않았으며 음식점들의 바가지도 흔했다. 물론 엑스포 초기에 이것이 고쳐지긴 했지만 이로 인해서 '엑스포 물가는 터무니없다.'라는 인식이 관람객들에게 박히면서 먹을 것도 집에서 싸오는 당일치기 관람객들이 늘었고 엑스포가 끝나면 그 옆에 있는 물가가 착한 순천으로 나가는 관람객이 더 많아 주변 상권을 찾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엑스포가 늦게 끝나기에 관광할 시간이 없었던 점도 있지만 초창기의 이미지 타격이 상권 이익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이다.

또한 조직위에서 시내 교통 혼잡을 지나치게 우려한 나머지 방문 차량의 동선을 시 외곽에 위치한 환승 주차장으로만 내보내고 있다는 것.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시내 교통 상황은 엑스포 이전과 다를 바 없이 한산하니 볼멘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 상인들은 이제서야 바가지 요금 근절 결의대회를 여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여수엑스포, 관객유치 물리적 한계 직면…개장 9일 누적입장객 34만명 - 쿠키뉴스, 2012년 5월 20일[16] 그리고 이렇게 주변 상인들의 바가지 요금 때문에 오히려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 역풍 맞는 상황은 6년 후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반복된다.

4.5. 사전예약제

여수 엑스포에서는 인기 전시관에 몰리는 대기열을 줄이고 쾌적한 환경에서 관람을 할 수 있도록 사전예약제가 마련되었다. 인기 전시관의 경우 사전에 예약을 하거나 현장에서 예약을 해야만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예약 제도에 대한 관람객들의 이해 부족으로 인해 행사장 곳곳에서 관람객과 진행요원의 마찰이 빚어지는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사전 예약 30%는 너무 적은 데다가 아쿠아리움 등 인기 전시관의 경우에는 현장 예약 70%도 오전 10시 경에 마감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예약제에 대해 잘 모르고 현장을 찾은 방문객들이 인기 전시관을 못 보게 되었다며 항의를 하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여수엑스포> 인산인해 속 환불요구 잇따라 또한 정보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층이나 장애인층[17]을 배려하지 못하였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결국 5월 27일에 이르러 사전예약제가 폐지되었으나, 그 다음에는 지나치게 길어진 대기열이 문제가 되었다. 아쿠아리움관은 대기열이 3 킬로미터나 만들어져서 대기 시간이 일곱 시간이나 되었다고… 3㎞ 입장 전쟁 … 아쿠아리움은 7시간 대기 - 중앙일보. 일각에서는 예약제를 성급하게 폐지하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래도 불만이고 저래도 불만이니 조직위가 난감할 법도 하다.

결국 예약제는 부활하여, 오후 시간 관람객의 30%를 인터넷 사전 예약을 통해 받았다.

4.6. 늘어선 대기열과 자리맡기 새치기

이러한 이유로 대기줄이 무한정 길어지며, 아침시간대 박람회장 입구 입장 대기열과 특히 인기가 있는 아쿠아리움, 스카이타워, 주제관, 한국관 등 인기 전시관에서는 자리맡기를 절대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곳곳에 부착되었고, 여러 명의 운영요원이 입장객을 통제하고 있지만 박람회 후반부로 접어들며 예상보다 훨씬 많은 관람객이 몰리며 몇시간씩 줄을 서는 일이 발생하자 운영요원이 대기열이 시작하는 위치에서 일행이 다 모이면 줄을 서도록 안내하고 있고 중간 합류를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도[18] 막무가내로 우기며 일행 핑계로 새치기를 시도한다거나 운영요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정도면 다행이고, 운영요원에게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운영요원을 폭행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가장 더운 한 여름에 많은 인원이 몰렸고,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서 어린아이나 노약자들이 장시간 서서 대기하기 힘들다는 점 등을 들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땀 뻘뻘 흘리며 칭얼대는 아이 달래가며 함께 줄을 섰고, 급한 용무는 보고 올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으며, 주요 전시관은 예약제를 시행하여 본인이 부지런하게 움직였다면 충분히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고, 정 더워서 못 참겠으면 대기 시간도 짧고, 그늘에서 대기할 수 있는 국제관 등을 관람하면 되기 때문에 이러한 반론은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4.7. 1993 대전 엑스포와의 차이점

여수 엑스포는 대전 엑스포 이후 정확히 19년 만에 개최되었다. 1993년 이후에 출생했던 세대들에게는 2012 여수 엑스포가 대한민국에서 열린 BIE 공인박람회로서는 생전 처음 관람 가능한 엑스포이며,[19], 그 이전에 태어난 세대들은 대전 엑스포에 이어서 20년 만에 다시 관람하게 되는 대한민국 BIE 공인엑스포였다.

우선 여수 엑스포와 대전 엑스포 모두 인정박람회이지만 전시 공간의 규모만으로 본다면 여수 엑스포의 규모는 대전 엑스포의 1/2 정도이다.[20] 이는 여수 엑스포가 세계박람회기구의 개정규약 시행 이후[21]에 개최되기 때문으로, 여수 엑스포의 전시 면적은 인정박람회에서 허용되는 최대 전시 면적인 25만㎡이다. 개정 규약이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는 이상 대전 엑스포 당시처럼 인정 엑스포의 탈을 쓴 등록 엑스포를 개최하거나 할 수는 없다.

대전 엑스포가 과학도시인 대전의 특성상 첨단과학과 과학기술을 주제로 삼았다면 여수 엑스포는 여수시의 지리상 바다와 인접해 있다는 점 때문에 바다와 물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광역시권(당시는 직할시권) 도시가 아닌 전라남도의 관할 도시에서 열린다는 점이 있다. 권역상으로 비교해보면 충청(중부)권에 속하는 대전에서 열린다는 것과, 남부권에 속하는 여수시에서 열린다는 차이점도 있다.

한편, 1993년 엑스포 개최를 준비하던 시기는 바로 군부 출신 정권 말기인 노태우 정권 시기[22]로서, 엑스포에 국가의 역량이 총동원되었으나,[23] 여수 엑스포 유치운동이 시작된 2006~2012년의 시기는 1990년대 초반과 같이 일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 상황.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 경기의 변동이 있었으나, 과거와 같은 눈에 띄는 체감이 가능할 정도의 대규모의 호황이 없었다는 점, 2007~2010년 사이의 세계 금융 위기가 있었다는 점이 문제이다. 돈이 많으면 어쨌든 과감히 투자를 해 볼 터인데 돈이 있어야지 그래도 12조 450억 원이나 투자했다.

흥행 규모면에서 대전 엑스포는 3개월(8월 ~ 11월)간 개최되어 총 1,400만 명, 일평균 15만 명이라는 엄청난 흥행을 했고[24], 같은 조건이었던 여수 엑스포(5월 ~ 8월)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게 했다. 7월, 8월 방학 및 휴가철 특수는 동일. 막판에 저가 표 남발 등 무리수를 날리면서 겨우 800만 명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의 1993년[25] 대전 엑스포와는 달리 2012 여수 엑스포에서는 인터넷이 발달한 2012년의 정서에 맞게 조직위원회 홈페이지를 비롯하여 국내관 및 국제관 개별 홈페이지가 개설되기도 하였다. 이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각 전시관 관람 시간 및 운영시간 등을 집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대전 엑스포의 경우 인터넷 홈페이지가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현장 방문을 통해서 관람 시간을 알 수 있었거나 전화로 통해서 겨우 알 수 있었다.

서울특별시 및 수도권 입장에서는 아무리 오래 걸려봐야 2시간[26]이면 바로 갈 수 있는 대전광역시에 비해서 여수시는 적어도 4시간 정도는 걸린다는 점도 있고 그로 인해 늘어난 교통비가 크게 부담된 건 사실이다. 또 광역시에 대도시인 대전과는 달리 여수는 전라남도에 속하는 중소도시였기 때문에 심지어 위치가 어딘지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고속버스 등에 있어서도 대전의 경우는 대도시였기 때문에 버스터미널에서도 서울은 물론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인천광역시, 광주광역시 등 여러 대도시나 기타 중소도시로도 바로가는 버스가 있는 것에 비해서 여수는 서울과 인천, 광주 등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는 환승센터 휴게소[27]나 광주광역시 유스퀘어 터미널에서 여수로 가는 직행버스로 환승을 해야 한다는 불편이 있다. 참고로 여수는 전라선 기차 종점이다.

대전 엑스포는 1997년 외환 위기 발발 이전의 상대적 호황기에 열렸기 때문에 대우그룹, 선경(현재의 SK그룹), 럭키금성(현재의 LG그룹), (아산 정주영 회장의) 현대그룹, 삼성그룹, 롯데그룹, 기아자동차[28] 등 대기업들이 대거 참가하거나 스폰서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민영화 공기업 한국담배인삼공사(현재의 KT&G), 한국통신(현재의 KT그룹) 등이 국가 공기업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그 외에도 지금은 사라지거나 없어진 일부 기업들이 스폰서 자격으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한편 여수 엑스포는 광범위한 참가는 없었다. 그래도 각 기업들의 기업관이 다른 전시관을 압도했는데, 앞서 말했듯 상품을 뿌려대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기업관은 예약이 불가능했다.

대전 엑스포와 마찬가지로 북한은 여수 엑스포에도 끝내 참가하지 않았다.[29] 과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 남한에서 개최되었던 국제 행사인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2003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등에 북한이 참가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당시 보수정권이 들어서며 삐걱거리던 남북관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북한이 역사상 참가했던 엑스포는 2010 상하이 엑스포 뿐으로 북한은 원래부터 엑스포에 잘 참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1995년 3월과 2011년 12월 첫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던 케이블 방송 종합편성채널에게 있어서는 이번에 열리는 엑스포가 사상 최초의 중계방송이 되었다. 1993년 대전 엑스포 때는 지상파 방송사 3사( KBS, MBC)[30]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서 중계되었다.

5. 엑스포 관람객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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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2일 오전 8시에 처음 엑스포가 개장되었으며,[31] 첫 날에 약 3만 명의 인파가 운집하였다. 하지만 주최측의 첫 날 예측이 8만 명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아주 실망스러운 수치이다. 이틀 째 입장객은 5만 9천 명으로 예상의 10%에 그쳤다. 하필이면 이 날 비가 내린 탓에 관람객들이 예상보다 더욱 줄어들고 말았다.[32]

이에 대해 조직위원회의 설문식 마케팅 본부장은 '이틀 동안 6만 명이 방문한 것은 목표의 0.7%를 달성한 것'이라며 '이는 최근 사라고사나 아이치, 상하이 박람회와 비교할 때 그 정도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라고 밝혔다. 여수 엑스포 개장 관람객 적지 않았다 - 노컷뉴스, 2012년 5월 14일

한편 이렇게 여수 엑스포가 부진한 성적을 보이자 공룡 엑스포 관람객이 줄어들까 노심초사하던 경상남도 고성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실제로 고성 공룡 엑스포 관람객은 여수 엑스포 개최 이후에도 꾸준한 추세를 보여서 휴일에는 5만 명이 넘는 관객이 찾고 있다. 휴일 입장객 5만 명은 여수 엑스포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행사 규모를 생각하면 고성 공룡 엑스포의 압승.[33] 20일 남은 공룡엑스포, 여수엑스포 개최에도 성황.

2010 상하이 엑스포와 비교하는 의견도 있다. 상하이 엑스포에서는 하루 평균 2~30만 명, 휴일에는 50만 명까지 입장했다는 것. 하지만 상하이 엑스포는 등록박람회고 여수 엑스포는 인정박람회라는 것은 감안을 해야 한다. 국제박람회기구(BIE)에서 공인하는 박람회는 등록박람회와 인정박람회 두 종류가 있다. 등록박람회는 규모가 크고, 여러 참가국들이 비용을 들여 전시관을 설치한다. 인정박람회는 규모가 좀더 작고, 개최국이 독박으로 비용을 들여 전시관을 설치한다.

주말인 5월 19일에는 60,773명이 방문하여 일일 관람객 최고 기록을 세우며 흥행에 대한 기대를 높였으나, 여전히 엑스포 조작위원회의 목표치인 주말 관람객 10만 명에는 못 미쳤다. 여수엑스포, 주말 10만 관람 달성에 연거푸 실패 - 조선일보, 2012년 5월 20일 이에 이어 그 다음날인 20일에는 입장이 거의 종료된 오후 5시까지 44,192명이 다녀가는 데에 그쳐 여전히 관람객을 끌어모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여수엑스포 휴일 관람객 4만 수준 뚝...흥행 적신호 - 노컷뉴스, 2012년 5월 20일

이에 대해 조직위의 한 관계자는 "입장객은 '다다익선'이지만 적을 경우 상대적으로 관람 만족도는 그만큼 올라간다"라며, 관객몰이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정신승리를 시전하고 있다. 방학에 따른 학생 관람객 특수에 기대하고 있지만, 정작 여름방학 기간인 7월에는 하계 올림픽이라는 최악의 난적이 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는지…….[34][35] 여수엑스포, 관객유치 물리적 한계 직면…개장 9일 누적입장객 34만명 - 쿠키뉴스, 2012년 5월 20일

초반 흥행에 실패하자 조직위는 대안을 마련하였다. 우선 오후 6시 넘어 입장하는 관람객에게 요금을 저렴하게 받는 야간 관람권을 운영하기로 하였다. 중부 지방의 직장인 관람객들이 야간에 행사장을 방문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대책이다. 또한 한시적으로 파격적인 조건의 엑스포 단체 관광 인센티브를 여행사들에 제공할 계획이었다.

한편 결국 공무원을 동원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마침내 6월 22일엔 입장권 체계를 완전히 개편, 관람객들을 겨우겨우 끌어모으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 단체의 경우 단돈 만 원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물론 평소 표 가격의 60%에 해당되는 오후권, 성인 4인 이상일 시 구매 가능한 성인 4인권(기존의 80%), 특별권 등 온갖 할인권이 생겨났다. 당연히 기존의 관람객들은 반발하고 있으며 심지어 박람회 조직위 입장권부장마저 "좀처럼 흥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육책으로 선택했다."라는 말을 했다. 기사

이렇게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으나, 6월말 이후 조직위의 대대적인 홍보와 할인 티켓 판매, 그리고 바캉스 시즌의 개막으로 관람객 숫자가 서서히 늘기 시작해 평균 관람객 7만 명을 넘어섰고, 현재 연일 관람객 숫자 기록을 갱신하면서 7월 12일엔 12만 명을 넘어섰다. http://news.kbs.co.kr/society/2012/07/14/2503126.html

7월 21일 오후 7시 현재 13만 860명으로 지난 12일 최대치 12만 2천 830명을 경신해 사상 최대 인파를 기록했다. 폐장까지는 3시간 30분을 남기고 있어 인파를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날까지 누적 관람객이 440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http://media.daum.net/issue/287/newsview?issueId=287&newsid=20120721195503242

여수 엑스포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폐막을 18일 앞둔 7월 25일 현재 엑스포 관람객 485만 명을 넘어서 당초 목표 800만 명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제박람회기구(BIE) 로세르탈레스 사무총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국제박람회기구(BIE)에서는 중소도시가 개최한 세계박람회의 성공 잣대를 관람객 수 700만 명으로 보고 있는데 여수엑스포는 무난히 당초 목표 800만 명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중소도시의 한계가 분명한데도 주제 전달 등이 분명하고, 관람객 수가 7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돼 여수 엑스포는 성공했다고 확신한다"라고 강조했다. #

여수와 같은 중소도시인 스페인 사라고사가 2008년 개최한 박람회에서는 관람객이 540만 명에 머물렀다.

불과 한 달 전 평일 하루 4만∼5만 명에 그쳤던 관람객 수는 휴가철을 맞아 2∼3배 증가했다. 외국인 관람객도 꾸준히 늘어 55만 명(목표 관람객의 7%)의 목표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7월말에 접어들며 각 지자체에서 지자체 방문의 날 이라는 명목으로 특정일에 특정 시군 주민들이 3,000원에 입장할 수 있는 특별 관람권을 판매하고, 여수시민 무료 입장, 휴가철 등에 힘입어 8월 2일 기준 35만 명이 입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전시관 대기줄은...

6. 전시관 및 전시품

6.1. 주요 전시관

6.1.1. 주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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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바다 위에 지어져 화제가 된 전시관. 바다 위에 섬처럼 지은 전시관은 여기가 처음이라고. 인간과 바다의 상생을 주제로 여러 전시와 공연을 보여준다. 주제관의 자칭 마스코트인 듀공이 정말 귀엽다. 2층에는 해양베스트관이라고 전시관이 존재하는데, 여긴 그냥 안 가는 게 낫다(...).

6.1.2. 기후환경관

부제관 1. 엑스포 기간 동안 매우 인기가 많았던 전시관. 그 이유는 전시관 내에 있는 이상기후 체험 덕에... 여기에는 찌는 여름 더위를 해소해 줄 얼음 동굴이 존재하여 관람객들의 더위를 해소해주었다. 물론 반팔만 입고 가서 감기 걸린 사람들도 다수 존재했다.

6.1.3. 해양문명도시관

6.1.4. 해양산업기술관

6.1.5. 한국관

6.1.6. 아쿠아플라넷 여수

아쿠아리움. 세계에서 2번째로 큰 규모(아시아에서는 최대 규모)의 돔형 아쿠아리움인 데다, 희귀종인 러시아 흰고래 등을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개막전 대중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았다. 알바생 및 현장 직원의 말에 의하면 일부 무개념 관광객들이 플래시 터뜨려가며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물고기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많이 죽었고, 아쿠아리움의 간판스타격인 흰돌고래(벨루가)도 이 때문에 결국 격주 휴무를 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6.1.7. 그 외

6.2. 기업 전시관

6.3. 엑스포 참가국 및 전시관(한국 제외)

6.3.1. 아시아

6.3.2. 아메리카

6.3.3. 유럽

6.3.4. 중동

6.3.5. 아프리카

6.3.6. 공동관

6.3.7. 참가 취소

6.3.8. 국제기구

7. 사후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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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여수세계박람회 기념 및 사후활용에 관한 특별법

여수세계박람회 기념 및 사후활용에 관한 특별법

8. 기타

코레일에서 엑스포 기간 동안 엑스포 입장권을 소유한 경우 모든 등급의 열차에서 운임의 30%를 할인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단, 하차역이나 승차역이 순천역, 여천역, 여수엑스포역인 경우에만 해당한다. 출발 2일전까지 예매를 해야 했다. 이외에도 인천공항에서 서울역까지의 공항철도 가격도 엑스포 입장권 소지자에 한해 할인되었다. 이외에도 수도권 전철 경춘선에서만 운행되던 ITX-청춘을 엑스포 기간동안 한시적으로 전라선에 운행시킬 예정이었으나, 2012년 4월 13일 시행된 시운전에서 보안장치 이상이 발견되어 무산되었다.

5월 12일, 덴마크의 프레데릭 왕세자와 메리 왕세자비 부부가 여수 엑스포를 참관하기 위해 방한, 데니시파빌리온 개관 기념 테이프커팅을 가졌다. #

6월 1일, 스웨덴의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과 실비아 왕비 부부가 여수 엑스포를 찾았다. #

6월 2일, 일본관에서 오후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JAM Project의 라이브와 八王子P의 DJ이벤트가 Big-O 해양스테이지에서 있었다. 또한 그 직전, 5시부터 엑스포 홀에서 쿠라키 마이의 콘서트도 열렸다. 리뷰

여수 엑스포가 결정나자 통일교 측이 여수에서 홍보를 하고 자신들이 크게 나섰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이러자 몇몇 대형교회들은 여수 엑스포를 보이콧하자는 의견을 보였다가 되려 개신교 쪽이 욕먹는다고 하여 흐지부지되었다. 그러자 우습게도 이 엑스포를 자기들 종교 선교 기회로 삼는다고(사실...월드컵이니 올림픽 때니 꼭 하는 소리니까 큰 신경쓸 거 없다.) 서로들 따로국밥으로 종교 관련 이야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여수엑스포역에서 나오자마자 현장 자원봉사자와는 뭔가 다른 옷을 입은 사람(...)이 안내도를 나눠주기도 했는데, 안을 열어보면 써 있는 글자는 재림예수였다.

홈페이지에서 배포하는 자료 등이 한국인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hwp 파일인 것을 문제시 삼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영문판 홈페이지로 들어가면, doc 파일로 제대로 있다. 한국어판에서는 아래아 한글로, 영문판에서는 MS 워드로 제공하고 있는 셈.

레고 아키텍처 숭례문이 나온 이유가 바로 이 여수 엑스포를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파일:attachment/2012yeosuexpo.jpg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SBS 개표방송에서 전라남도 랜드마크로 선정되어 출연하였다.

방문기 1('12년 6월경)
방문기 2('12년 6월경) 빅오쇼
방문기 3('12년 6월경) 아쿠아리움
방문기 4('12년 6월경) 기업관
방문기 5('12년 6월경) 국제관
방문기 6('12년 6월경) 그외관
방문기 7('12년 6월경) 외부행사

이 엑스포를 하루도 빠짐없이 입장한 야마다 토미요라는 할머니가 유명하다. 이 할머니는 2005 아이치 엑스포, 2010 상하이 엑스포에도 개근 방문한 적이 있다.

현재는 거의 방치되어 있는 상태. 몇몇 컨벤션센터나 기념관, 숙박업소와 음식점 등이 들어선다고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엑스포장의 대부분이 놀고 있는 상태이다. 부지는 이제 "세계박람회장 해양공원"이라고 명명되었다.

최근에 여수시는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의 유치권을 따내면서 새로이 박람회를 개최하게 된다. 그런데 그 장소는 돌산의 진모지구로 '12년 박람회장에서 직경 거리로 약 4km거리.
[1] 대전 엑스포는 대전 특성상 첨단과학, 미래와 관련된 것을 주제로 총 1450만 명이 관람했다. [2] 하지만 이 캐릭터가 여수의 마스코트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기존에 거북이 캐릭터가 있었고 버스정류장에 자주 붙여져 있었지만 버스정류장이 새로 바뀌면서 그 캐릭터도 이제 보기 힘들게 되었다. [3] 주제관, 한국관, 아쿠아리움, 로봇관, 기후환경관, 해양문명도시관, 해양산업기술관, 해양생물관의 8개. [4] 대전 엑스포 당시에도 유사한 제도가 있었으나, 당시에는 일단 입장한 다음 장내 키오스크에서 예약해야 했다. [5] 주말은 오후 8시 50분과 9시 40분, 두 번 가동했다. [6] 이 영향으로 여수시는 엑스포 기간동안 여수시민 승용차 안타기 운동을 시행했는데,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이는 여수의 인구가 30만도 채 돼지 않는 중소규모 도시급인 데다 관광 수요 창출을 위해 너도나도 승용차 안타기 운동을 적극 지지하여 시행하였다. [7] 특히 여수터미널과 엑스포장을 연결하는 노선들에 한시적으로 증차를 허용하였고 예비차와 운휴차까지 모두 끌어들여 운행하였다. [8] 물가가 많이 오른 2022년 현재 기준으로도 저정도 퀼리티라면 여전히 창렬이다. [9] 안내견을 제외한 반려동물은 데리고 들어갈 수 없다. [10] 늦게 가면 이용할 생각 하지 말자. 내일러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그냥 쿨하게 사물함 위에 가방을 던져놓고 다닌다. [11] 물종은 부산 해운대 아쿠아리움이나 서울 코엑스 아쿠아리움이 더 많다고 한다. 이미 부산이나 서울에서 아쿠아리움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실망했다고... [12] 사실 1970 오사카 엑스포이후 아시아에서 개최된 엑스포의 일관된 문제점이기도 하다. [13] 일부 학교들의 경우는 교육청으로부터의 요구가 컸는지 아에 여수엑스포에 참가하고 감상문을 써내면 생활기록부에 등재 가능한 상장을 주는 대회까지 열어 관람을 독려하고, 인근 지방의 학교들의 경우는 방학 초반에 단체 관광, 수학여행이나 소풍, 체험학습을 여수로 가는 학교들도 제법 있었다. [14] 지자체 소속 지방공무원과 직계가족에 한해서 3,000원짜리 티겟 이용이 가능하였다. 이는 물론 엑스포 이용객 유치 및 확충이 목적이었다. [15] 임시로 투입된 누리로 열차는 수도권 운행을 위한 차량을 임시로 빼온 것이고, 성수기 차량 부족, 선로 용량 등의 문제가 얽혀 증차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16] 사실은 이러한 문제가 많은 2012 런던 올림픽을 비롯한 많은 국제 행사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작 주민이나 기존 상인이 얻는 경제적 이익은 무엇인가 하는... [17] 사실 5월에 개장한 관계로 관람 초기에는 이들 관람객의 비중이 클 수 밖에 없었다. [18] 대기열이 매우 길기 때문에 물론 화장실 등 급한 용무는 확인 후 다녀 올 수 있도록 하고 있음. [19] 사실 1988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도 대전 엑스포를 부모님과 방문했더라도 제대로 즐기거나 기억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제대로 경험한다는 의미로는 생전 처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질적으로 지금보다 정보력이 현저히 부족했던 당시에 대전 엑스포라는 축제를 제대로 추억하고 각인하며 즐겼을 만한 나이대가 최소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은 되어야 했다라 생각해보면 재밌게도 대전 엑스포의 추억은 국딩 졸업생들과 그 끝을 같이 했다라 볼 수도 있다. 당시 수학, 졸업 여행등으로 전국에서 줄기차게 방문했던 5,6학년 즉 81~82년생들 이 사실상 마지막 국민학교 졸업세대들이다. [20] 바다 면적까지 포함하면 여수 엑스포가 3배 가까이 크지만, 전시 면적만으로는 대전 엑스포가 50만㎡, 여수 엑스포가 25만㎡이다. [21] 1996년 시행. [22]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에 취임. [23] 그 당시 관공서에 엑스포 엠블럼기가 게양되었으며 길거리 곳곳에도 엑스포 엠블럼기가 게양되었다. [24] 대전 엑스포는 휴가철 + 여름방학철인 8월 초에 개최되었고 올림픽이나 여타 국제 대회와도 겹치지 않았다는 점, 중간에 추석 연휴까지 끼어 있는 것도 흥행에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5] 제한적인 목적으로는 사용되었지만 본격적으로 보급된 건 1995년부터. [26] 대전엑스포 때 KTX는 없었지만, 당시 속도나 승차감 등 모든 면에서 고급 열차였던 새마을호로는 1시간 반 정도의 준수한 시간으로 도착할수 있었다. [27] 정안알밤 휴게소에서 정차한다. 다만, 간혹 정안 휴게소에 정차를 안한다면 탄천(하행)/이인(상행) 휴게소에 정차. [28] 이 당시 기아차는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기 이전이었다. [29] 당시 대전엑스포조직위원회에서 특별히 북한물산관을 개설하여 운영하였다. [30] 그 당시 SBS는 수도권에만 볼 수 있었으며 중계유선방송에게 허가된 테이프 넷의 특성상 실시간 중계가 불가능했다. [31] 원래 계획은 오전 9시 개장이었으나 사람들이 밀려 한 시간 일찍 개장하였다고 한다. [32] 이것은 1993 대전 엑스포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이쪽에서도 일부 전시관에 누수가 생기거나 건물이 파손되는 등 피해도 입었던 적이 있었다. 특히 이쪽은 한여름인 8월에 열렸는데 그 때 태풍까지 겹치기도 하였으며 내륙 지역인 대전광역시의 특성상 더위가 짙고 강하여 햇볕이 강한 날이면 관람객들이 양산을 들고 가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33] 고성 공룡 엑스포는 이름은 엑스포지만 국제박람회기구에서 인정하는 세계 박람회는 아니다. [34] 이와 유사한 엑스포로 1992년 스페인의 세비야 엑스포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바르셀로나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리면서 사실상 한 국가에서 엑스포와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셈이다. [35] 1993 대전 엑스포의 경우에는 8월 초부터 열렸기 때문에 여름방학을 맞이한 초중고등학생들도 많이 들렸던 기록이 있었으며 올림픽 등 대회가 없었던 홀수해에 열려서 올림픽과 겹쳤던 일도 없었다. 여수 엑스포는 짝수해. 게다가 9월 및 10월 추석 연휴까지 겹쳤고 11월 초까지 개최하였던 영향도 있다. [36] 여수 세계박람회 이후에 이탈리아가 2015 밀라노 엑스포를 개최하게 되면서 이에 대한 홍보 겸 하여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 [37] 2012년 중동호흡기증후군과 2011년과 2012년에 일어난 반정부 시위로 인해 사우디가 혼란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