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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10:43:09

오아시스(밴드)

Oasis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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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ely May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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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8.29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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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0.2
Be Her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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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8.21
The Master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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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1.2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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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28
Familiar to Mill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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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13
Heathen Chem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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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7.1
Don't Believe the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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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5.30
Stop The Clo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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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0
Dig Out Your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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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6
Time Flies... 199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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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6.14
Knebworth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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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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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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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거 형제의 음악활동
더 레인 오아시스 비디 아이
리암 갤러거(솔로) 오아시스(재결합)
노엘 갤러거 하이 플라잉 버즈

The Big 4 of Brit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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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드 블러 오아시스 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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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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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닝 스탠더드 선정 20대 영국 록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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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rowcolor=#000,#fff> 2019년 영국의 일간지 이브닝 스탠더드 The 20 greatest British rock bands of all time를 발표.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비틀즈 레드 제플린 라디오헤드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더 스미스 오아시스 더 큐어 더 클래시 스톤 로지스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킹크스 블러 블랙 사바스 더 후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록시 뮤직 티렉스 더 잼 슈퍼 퍼리 애니멀즈 조이 디비전
같이 보기: 영국 밴드, 미국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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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35299F0-A94E-4256-858A-16C852ABB793.png 파일:Acclaimed-Music-Logo-Dark.png
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올타임 아티스트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6px"
어클레임드 뮤직의 올타임 아티스트 순위. 기본적으로 역사상의 앨범/노래의 순위를 매기는 형식의 사이트이지만, 개인의 취향을 모두 배제하고 음악 평론가들, 또는 잡지 등의 매체들이 매긴 순위를 종합해서 포인트를 줘서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다. 순위가 매겨진 앨범과 곡의 리스트를 공개된 공식을 바탕으로 합해 올타임 아티스트들의 순위도 매긴다.
<rowcolor=#fff>1위 2위 3위 4위 5위
비틀즈 밥 딜런 롤링 스톤스 데이비드 보위 브루스 스프링스틴
<rowcolor=#fff>6위 7위 8위 9위 10위
라디오헤드 레드 제플린 닐 영 프린스 비치 보이스
<rowcolor=#fff>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R.E.M. 엘비스 프레슬리 칸예 웨스트 더 후 U2
<rowcolor=#fff>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마일스 데이비스 벨벳 언더그라운드 너바나 더 클래시 지미 헨드릭스
<rowcolor=#fff>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마빈 게이 핑크 플로이드 엘비스 코스텔로 스티비 원더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
<rowcolor=#fff>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마돈나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 더 스미스 마이클 잭슨 밴 모리슨
<rowcolor=#fff>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토킹 헤즈 켄드릭 라마 아케이드 파이어 아레사 프랭클린 비요크
<rowcolor=#fff>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JAY-Z 제임스 브라운 톰 웨이츠 존 콜트레인 PJ 하비
<rowcolor=#fff>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킹크스 퍼블릭 에너미 버즈 비스티 보이즈 조니 미첼
<rowcolor=#fff>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벡 한센 더 큐어 존 레논 도어즈 LCD 사운드시스템
<rowcolor=#fff>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블러 크라프트베르크 레너드 코헨 픽시즈 루 리드
<rowcolor=#fff>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조니 캐쉬 소닉 유스 록시 뮤직 오아시스 플리트우드 맥
<rowcolor=#fff>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듀크 엘링턴 더 밴드 아웃캐스트 다프트 펑크
<rowcolor=#fff>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사이먼 앤 가펑클 프랭크 시나트라 척 베리 프랭크 오션 비욘세
<rowcolor=#fff>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조이 디비전 AC/DC 윌코 오티스 레딩
<rowcolor=#fff>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뉴 오더 메탈리카 화이트 스트라입스 라몬즈 더 폴리스
<rowcolor=#fff>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스투지스 브라이언 이노 엘튼 존 뱀파이어 위켄드
<rowcolor=#fff>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섹스 피스톨즈 매시브 어택 레이 찰스 스틸리 댄 블랙 사바스
<rowcolor=#fff>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케이트 부시 악틱 몽키즈 찰스 밍거스 패티 스미스 포티스헤드
<rowcolor=#fff>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건즈 앤 로지스 페이브먼트 수프얀 스티븐스 알 그린 펑카델릭
101위 ~ 4112위: 공식 사이트 }}}}}}}}}

파일:D35299F0-A94E-4256-858A-16C852ABB793.png 파일:Acclaimed-Music-Logo-Dark.png
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90년대 최고 아티스트
<rowcolor=#000,#fff> {{{#!wiki style="margin:0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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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너바나 라디오헤드 R.E.M. 오아시스 블러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벡 한센 비요크 매시브 어택 페이브먼트 PJ 하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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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ccc> 파일:브릿 어워드 로고.png 브릿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수상작
'''[[틀:브릿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수상작(1977년~1999년)|Brit Award for Album of the Year]]'''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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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77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Kings of the Wild Frontier Memories Thriller Diamond Life
비틀즈 애덤 앤 디 앤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마이클 잭슨 샤데이
<rowcolor=#fff>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
-
No Jacket Required Brothers in Arms ...Nothing Like the Sun The First of a Million Kisses The Raw and the Cooked
필 콜린스 다이어 스트레이츠 스팅 페어그라운드 어트랙션 파인 영 카니발스
<rowcolor=#fff>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
파일:AnnieLenonxDiva.jpg
-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 Seal Diva Connected Parklife
조지 마이클 애니 레녹스 스테레오 엠씨스 블러
<rowcolor=#fff>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Everything Must Go Urban Hymns This Is My Truth Tell Me Yours
오아시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버브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
''''
''''
같이보기 : 영국 - 앨범, 싱글, 남성, 여성, 그룹, 신인 }}}}}}}}}

{{{#!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tablebordercolor=#fff,#ccc> 파일:브릿 어워드 로고.png 브릿 어워드 그룹상 수상자
Brit Award for British Group (1977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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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1977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비틀즈 폴리스 다이어 스트레이츠 컬처 클럽 Wham!
<rowcolor=#fff>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다이어 스트레이츠 파이브 스타 펫 샵 보이즈 이레이저 파인 영 카니발스
<rowcolor=#fff>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더 큐어 The KLF & 심플리 레드 심플리 레드 스테레오 엠씨스 블러
<rowcolor=#fff>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오아시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버브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트래비스
<rowcolor=#fff>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콜드플레이 트래비스 콜드플레이 더 다크네스 프란츠 퍼디난드
<rowcolor=#fff>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카이저 칩스 악틱 몽키즈 엘보우 카사비안
<rowcolor=#fff>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테이크 댓 콜드플레이 멈포드 앤 선즈 악틱 몽키즈 로열 블러드
<rowcolor=#fff>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콜드플레이 The 1975 고릴라즈 The 1975 포울스
<rowcolor=#fff>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리틀 믹스 울프 앨리스 웻 레그 정글
같이보기 : 영국 - 앨범, 싱글, 남성, 여성, 그룹, 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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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ccc> 파일:브릿 어워드 로고.png 브릿 어워드 최우수 신인상 수상자
Brit Award for Best New Artist (197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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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 1977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그레이엄 파커 (남성)
줄리 코빙턴 (여성)
휴먼 리그 야주 폴 영 프랭키 고즈 투 할리우드
<rowcolor=#fff>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고 웨스트 하우스마틴스 웻 웻 웻 브로스 리사 스탠스필드
<rowcolor=#fff>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베티 부 비벌리 크레이븐 타스민 아처 개브리엘 오아시스
<rowcolor=#fff>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슈퍼그래스 쿨라 쉐이커 스테레오포닉스 벨 앤 세바스찬 S Club 7
<rowcolor=#fff>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A1 블루 윌 영 버스티드
<rowcolor=#fff>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악틱 몽키즈 프라텔리스 미카 더피 JLS
<rowcolor=#fff>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타이니 템파 에드 시런 벤 하워드 바스틸 샘 스미스
<rowcolor=#fff>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캣피쉬 앤 더 보틀맨 레그 앤 본 맨 두아 리파 톰 워커 루이스 카팔디
<rowcolor=#fff>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알로 파크스 리틀 심즈 웻 레그 RA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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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0px"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 파일:오아시스(밴드) 로고.svg 오아시스
Oasis
}}}
파일:Oasis_come_back.jpg
리암 갤러거, 노엘 갤러거
<colbgcolor=#000><colcolor=#fff>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결성 1991년
영국 잉글랜드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 맨체스터
데뷔 1994년 4월 11일 데뷔 싱글
(데뷔일로부터 [dday(1994-04-11)]일, [age(1994-04-11)]주년)
해체 2009년 8월 28일[1]
재결합 2024년 8월 27일[2]
멤버
리암 갤러거 (메인 보컬, 1991 - 2009, 2024 - 현재)
노엘 갤러거 (리더, 서브 보컬, 리드 기타, 1992 - 2009, 2024 - 현재)
전 멤버 토니 맥캐롤 (드럼, 1991 - 1995)
본헤드 (리듬 기타, 키보드, 1991 - 1999)
귁시 (베이스 기타, 1991 - 1999)
앨런 화이트 (드럼, 1995 - 2004)
겜 아처 (리듬 기타, 1999 - 2009)
앤디 벨 (베이스 기타, 1999 - 2009)
장르 브릿팝, 네오 사이키델리아, 얼터너티브 록, 팝 록
레이블 크리에이션 레코드 · 에픽 레코드 · 컬럼비아 레코드 ·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 빅 브라더 레코딩 · 워너 레코드 그룹
링크 파일:오아시스(밴드) 로고.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멤버
3.1. 변천사
4. 음악
4.1. 음악적 성향4.2. 다른 밴드와의 관계
4.2.1. 블러와의 관계
5. 갤러거즈
5.1. 형제 관계5.2. 해체 관련 일화
5.2.1. 형제 싸움 시즌 25.2.2. 15년간의 재결합설5.2.3. 화해와 재결합
5.3. 축구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
6. 인기7. 국내의 인식
7.1. 내한 관련7.2. Butterfly 표절 시비?7.3. DVD Lock The Box 인터뷰
8. 디스코그래피9. 여담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OASIS-1994-bw-portrait-billboard-1548.jpg
영국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밴드. 블러, 스웨이드, 펄프와 함께 영국의 브릿팝 열풍을 불러 일으킨 밴드 중 하나이다. 브릿팝 열풍이 불던 시기에 발매한 앨범[3]이 대중성과 음악성을 모두 잡고 동시기 브릿팝 밴드 중 가장 크게 성공해 브릿팝의 황제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2009년 8월 28일 노엘 갤러거의 탈퇴로 해체되었고, 2024년 8월 27일 부로 15년 만에 재결합했다.

2.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오아시스(밴드)/역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멤버

3.1. 변천사

파일:1_vH2qCd6Q6-Ubi9o7R4uWWw.jpg
데뷔부터 1995년까지의 오아시스 (초창기)
본헤드 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 귁시 토니 맥캐롤
기타, 키보드 기타[10] 보컬 베이스 드럼
파일:external/fakepath/oasis-glastonbury-1995-jill-furmanovsky-e1602702529309.jpg
1995년부터 1999년까지의 오아시스 (전성기)[11]
본헤드 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 귁시 앨런 화이트
기타, 키보드 기타, 서브 보컬 메인 보컬 베이스 드럼
파일:external/britpopnews.com/9_2000OasisPA080911.jpg
2000년부터 2004년까지의 오아시스 (과도기)
앤디 벨 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 앨런 화이트 겜 아처
베이스 기타, 서브 보컬 메인 보컬 드럼 기타
파일:external/wfiles.brothersoft.com/oasis-hd_150125-1920x1080.jpg
2005년부터 해체 직전까지의 오아시스 (황혼기)
앤디 벨 리암 갤러거 노엘 갤러거 겜 아처
베이스 메인 보컬 기타, 서브 보컬 기타
파일:Oasis_come_back.jpg
2024년의 오아시스 (재결합)
리암 갤러거 노엘 갤러거
메인 보컬 기타, 서브 보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9616fd29311d69755373bf32ce0d1d0.png
2009년 까지의 멤버별 참여년도

귁시와 본헤드는 3집 이후 탈퇴[12]했다. 토니 맥캐롤은 1집에 드러머로 참여하였다가 Some Might Say 싱글을 마지막으로 실력 부족으로 해고되었다.[13] 이후 앨런 화이트가 정규 멤버로서 그 자리를 대신하다 2004년 탈퇴하면서 드럼 멤버는 공석이 되었다. 이후로는 링고 스타의 아들인 잭 스타키, 크리스 섀록 등이 객원 드럼 멤버로 참여한 바 있다.

1집부터 4집까지 라이브 공연에서 사운드를 맡은 사람은 마크 코일이었는데 이후 마크 코일의 귀 고막손상 심화로 인하여 그만두게 되었다.

참고로 1집을 제작할 당시 마크 코일이 사운드를 뽑아냈지만 사운드 합성에서 해매게 되자 다른 엔지니어(오웬 모리스)를 불렀다.

4. 음악

일반적으로 브릿팝은 어둡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것은 오해로서 사실 전혀 반대에 가깝다.[14] 브릿팝의 전성기 시절, 그러니까 94-95년의 블러, 펄프, 슈퍼그래스 등의 앨범을 들어보면 오히려 밝고 경쾌하다. 즉 브릿팝은 기타와 멜로디가 주가 된 90년대 영국 스타일의 모던 록이라고 할 수 있다. 오아시스는 브릿팝의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브릿팝 밴드들에 비해 훨씬 볼륨이 크고 강렬한 디스토션을 먹인 거친 기타 소리를 특징으로 한다. 이런 거친 기타 사운드 때문에 브릿팝 밴드중에 가장 대표격이라고 볼 수 있는 오아시스가 사실 사운드적으로는 오히려 그중에선 가장 미국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음악적인 특징은 투기타에서 뿜어져 나오는 꽉 찬 오버드라이브 사운드와 보컬 리암 갤러거의 시원시원하고 독특한 발성이다. 또한 전반적으로 기본에 충실하고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음악은 하지는 않는다.[15] 특히 오아시스 초창기 앨범과 공연들은 기타 이펙터 연결 없이 그냥 앰프에 꽂고 게인과 볼륨을 최대로 올려서 연주한(오아시스 역사상 최고 규모 공연이었던 넵워스 라이브에서도 노엘은 무대 위에 기타 이펙터라고는 꼴랑 딜레이 페달 하나만을 두고 연주했다) 정말 말 그대로 날것의 형태인 경우가 많다. 오아시스 노래를 들어보면 정말 기본적인 코드로만 구성되어있는 경우가 많고 복잡한 코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16] 바레코드나 파워코드 또한 부득이한 경우에만 사용하지, 대부분은 오픈코드로 잡는다.[17][18] 또한 코드 변환도 최소화하고 단순한 '3코드'로 구성되어있는 노래가 많다.[19] 이러한 면에서는 펑크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20]

하지만 단순한 코드 구성과는 달리 그 위에 얹혀진 멜로디는 굉장히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오아시스의 음악이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고 높게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 쉽지만 단순하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노엘도 오아시스의 음악이 대중적의 사랑을 받는 이유로 굉장히 쉬운 코드 진행에 얹혀진 아름다운 멜로디를 꼽았다.

또다른 요소를 꼽자면 보컬인 리암의 목소리를 들 수 있다. 조지 해리슨이 "노엘도 노래를 할 줄 아는 친구인데 리암을 왜 데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발언한 것처럼 소수의 사람들이 리암의 존재를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렇게 보면 큰 오산이다. 같은 노래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음악의 방향이나 퀄리티가 크게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오아시스도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21] 물론 노엘은 부정할 수 없는 천재적인 송라이터이고 노래를 부를 줄 아는 것도 맞으나 목소리의 참신함은 적은 편이다.[22] 노엘 버전과 리암 버전이 둘 다 존재하는 노래[23]를 들어보면 대부분 리암 버전이 훨씬 더 생기있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암 특유의 락보컬이 아니었다면 오아시스가 추구하는 정통록은 제대로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라 평한다. 또한 오아시스 음악은 항상 어느정도 익숙한 클리셰에 맞춰져 있기에 음악에 참신함을 주기 위해선 다른 신선한 요소가 필요한데 리암의 개성있는 목소리가 그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해 준다. 물론 노래 자체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노엘이 불렀어도 성공은 할 수 있었겠지만 리암이 없었다면 국민밴드급의 아티스트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리암의 목소리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위해서는 리암 갤러거 항목 참조.

앨범의 트랙간 퀄리티 밸런스가 굉장히 잘 맞춰져있는 밴드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밴드나 아티스트들도 싱글로 발매된 수록곡과 논싱글(non-single) 트랙간의 퀄리티 차이가 큰 경우가 많은데 그것에 비하면 오아시스는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는 편이다.

4집 이후부터는 멤버의 대부분이 교체되고 음악적 방향이 변화하는 등 밴드의 색깔이 크게 변하게 된다. 그나마 노엘의 개인적인 회고록 같은[24] 4집을 제외하면 언제나 한결같이 로큰롤을 지향하려 노력하였다. 오아시스의 음악은 변화하지도 않고 진보하지도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오아시스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평론가들이 항상 라디오헤드와 오아시스를 비교하면서 단골로 하는 말이 바로 '진보'인데, 노엘 역시 라디오헤드와 본인들을 비교하면서, "자신은 안전지대에 있는 것이 가장 좋은데 왜 다들 굳이 새로운 변화를 강요하느냐"는 식의 인터뷰를 자주 해왔다. 다만 이렇게 혁신적이지 않은 음악관 때문에 일부 잡지나 평론가들(특히 미국 출신)이 밴드의 위상에 비해서 낮게 평가하기도 한다.[25]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반인 Definitely Maybe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는 당연히 대부분의 잡지에서 역사에 남을만한 앨범이라는 평가를 듣지만 앨범의 퀄리티가 비교적 평범해진 Be Here Now,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Heathen Chemistry가 과도하게 까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26]

오아시스가 해체되고 나서 두 형제가 노엘갤러거즈 하이플라잉버즈와 비디 아이로 나뉜 뒤에는 노엘이 상대적으로 훨씬 진보적인 사운드를 보여주었기 때문에[27] 오아시스의 음악적인 정체(停滯)가 무조건적으로 노엘의 취향에 기반했다라는 인식은 틀린 인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리암은 해체 이후에도 계속해서 정통 로큰롤을 지향해 온 걸로 보아, 오아시스의 음악적 성향은 리암의 입김이 의외로 강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밴드로는 역시 비틀즈. 그 외 음악적으로 티렉스, 섹스 피스톨즈, 롤링 스톤즈, 더 스미스 그리고 스톤 로지스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멤버가 교체된 4집 이후부터는 앤디 벨의 라이드와 겜 아처의 헤비 스테레오의 색깔도 찾아볼 수 있다. Q Special Edition 2002년 7월호 인터뷰에서 노엘은 '자신은 가장 유명한 비틀즈 팬이지만 오아시스의 음악은 비틀즈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음악을 신나는 면에서 스투지스, 섹스 피스톨즈, 비틀즈, 롤링 스톤즈나 스톤 로지스와 같은 뮤지션들과 비유한다.

멤버 모두가 엄청난 비틀즈이다. 특히 리암 갤러거 존 레논 코스프레도 몇 년간 하고 다녔고, 자신의 아들 이름도 레논[28]으로 지었다. 공연 중에는 비틀즈 9집 수록곡인 I am the Walrus를 부르기도 하고, Whatever 라이브를 연주할 때 종종 노래 끝부분에 비틀즈의 Octopus Garden을 넣는 등 짧게나마 비틀즈의 기타 리프를 빌려 넣기도 한다. 같은 예로 Don't Look Back In Anger의 인트로는 존 레논의 솔로곡 Imagine의 피아노 반주 일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며, 리듬 기타의 기타 리프는 Let It Be에서 빌려 왔다. She's Electric은 본인들 스스로 '대놓고 비틀즈인 척한 음악'이라고 했다. 'The Turning' 마지막 부분의 기타 리프는 Dear Prudence를 대놓고 연주한 것이며, 가사 안에 Yellow Submarine이나 Magical Mystery, Tomorrow Never Knows 같은 구절을 쓰는 등 곳곳에서 비틀즈 오마주가 넘쳐난다. 리암은 존 레논은 찬양하지만 폴 매카트니에 대해서는 비교적 약한 반응을 보이는 반면, 노엘은 매카트니를 좋아하며 개인적인 친분도 있다. 그 외에도 레드 제플린이나 롤링 스톤즈 등의 리프를 차용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오아시스의 사운드 그 자체는 참신함이 적은 편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밴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아시스만의 색깔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배철수의 평을 들자면 "기라성같은 선배들의 멜로디에 강한 스파이크로 되받아치는 듯한" 노엘의 작곡 능력에, 그 목소리만으로도 곡에 강력한 기운을 불어넣는 리암의 보컬이 어우러진 결과라 할 수 있겠다.

4.1. 음악적 성향

리드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인 노엘 갤러거와 보컬리스트이자 프론트맨인 리암 갤러거 형제가 주축이었다. 둘 다 1960년대 밴드들의 엄청난 팬이다. 특히나 비틀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밴드이고 노엘과 리암 갤러거를 비롯한 멤버들 모두가 자타공인 비틀즈 팬이다. 실제로 오아시스의 많은 곡의 진행이나 가사에서 비틀즈의 곡에 대한 레퍼런스를 엿볼 수 있다. 때문에 90년대 비틀즈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앨범들로 역대급 성공을 거두었다. 이 외에도 섹스 피스톨즈, 더 스미스, 스톤 로지스, 비 지스, 데이비드 보위, 버즈콕스, 킹크스, 댐드, 도어즈, 밥 딜런, 플리트우드 맥, 지미 헨드릭스, 더 잼, 조이 디비전, 더 라스, 티렉스, 뉴 오더, 버브, 더 후, 닐 영, 롤링 스톤스과 같은 음악가들에게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 90년대 밴드 음악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으며 블러, 펄프, 스웨이드 등과 함께 "브릿팝 빅4"라 불리며 브릿팝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밴드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얼터너티브'라는 음악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한정하냐에 따라서 이견이 생길 수 있다. 만약 좁은 의미로 사용한다면 오아시스는 얼터너티브가 아닌 모던 록, 특히 흔히 브릿팝이라고 부르는 '브리티시 모던 록'에 속한다.하지만 동시대에 활동했던 스웨이드나 블러, 그리고 이후의 등장한 트래비스나 콜드플레이와 같은 말랑한 음악과는 다른 거친 디스토션이 많이 함유된 음악을 구가한다는 점에서 분명 다른 브릿팝 밴드들 보다 얼터너티브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틀즈를 필두로 하는 브릿팝 계열 밴드들의 영향 외에도 섹스 피스톨즈와 롤링 스톤즈와 같은 로큰롤 밴드들의 영향이 짙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오아시스는 대중적인 인기 못지않게 평론가들에게도 전반적으로 꽤나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 점에 주목할 만한 게, 노엘이 주도하는 오아시스식 음악은 전반적으로 브릿팝이라는 큰 틀 아래에서 노래를 만드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곡들의 기본적인 베이스는 대부분 비슷하다. 이러한 방식은 일반적으로 평론가들이 크게 선호하는 방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집과 2집은 이견없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명반으로 평가된다.

다만 커리어 내내 이어진 대중적 인기와 상업적 성공, 역사에 남을 단기 임팩트 등 문화적인 영향력에 비해 음악적인 성과나 영향력 측면에선 대중음악의 역사를 뒤흔들 정도로 중요한 그룹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때문에 간혹 음악적 성과에 비해 과대평과 된 밴드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는 위에서 말한 노엘의 작곡방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롤링 스톤, 피치포크, 스핀과 같은 음악 잡지사는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음악과 다양한 시도를 하는 아티스트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오아시스는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내는 것과는 거리가 먼 밴드이다. 오아시스의 음악은 상당히 보수적이며 언제나 기본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29] 기존에 만들어져 있던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해석한 음악을 내놓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요인들 때문인지[30] 90년대에 활동한 밴드 중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이후 대중 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너바나, 라디오헤드에 비해 비평적으로 다소 낮게 평가 받는다.[31] 정규 1집 2집을 제외하면 블러, 펄프에 비해서도 평이 그리 높지 않으며 블러의 후기 앨범과 오아시스의 후기 앨범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전자 쪽이 훨씬 높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밴드 중 하나로 꼽힌다는 것은 최고의 명반인 1, 2집에서 증명된 노엘의 탁월한 작곡 능력, 리암의 개성적인 보컬과 오아시스가 갖는 상징성, 다시 말해 엄청났던 전성기와 브릿팝 무브먼트의 임팩트를 방증하는 것. 오아시스가 대중적 인기에 비해 평론가들에게 평가가 박하다는 인식이 꽤 있으나, 실제로는 평론가들에게도 대단히 좋은 평을 받은 밴드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DJ 배철수 또한 오아시스에 대해 "음악적으로 새로운 건 없다. 그러나 멜로디와 사운드, 리프 모든 것이 한 번 들으면 누구나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노래를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라고 직설적으로 평한 적이 있다.

4.2. 다른 밴드와의 관계


인터뷰로 다른 뮤지션을 잘 깐다. 모 음악지는 핀란드인은 자기 전에 자일리톨 껌을 씹지만, 갤러거 형제는 자기 전에 요즘 잘 나가는 밴드를 몽땅 씹는다는 표현을 썼는데 갤러거 형제의 평소 행적을 아는 이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대목. U2[33], 라디오헤드[34][35][36], 블러[37], 콜드플레이[38][39], 스타세일러[40], 펄 잼, 플라시보, 로비 윌리엄스[41],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슬립낫, 에미넴[42], sum41[43], 프란츠 퍼디난드[44], 카이저 칩스, 아델[45] 등등. 특히 프란츠 퍼디난드와 카이저 칩스, 라디오헤드는 단골로 까인다. 비틀즈도 까긴 까는데... 심지어 자기들도 깐다.

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인터뷰에서 욕설이 난무한다. 애초에 데뷔하면서 'Supersonic' 싱글을 낸뒤의 잡지 인터뷰부터 범상치 않았다.("퇴물들은 젊은 밴드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주로 아이러니하게 비아냥거리는 쪽은 노엘이며, 리암은 숨쉬는 것과 비슷한 빈도로 Fxxk을 애용한다.[46]

정작 오아시스는, 정확하게는 리더인 노엘 갤러거가 많은 선후배 뮤지션들과 친분이 깊으며 무대에도 함께 선다. 대표적인 친구들을 꼽아보자면, 선배들 중엔 더 잼의 폴 웰러와 스톤 로지스의 이안 브라운과는 존경하는 선배이자 절친. 더 후의 멤버들과도 친분이 있으며 무대에 함께선 적도 있고, 피트 타운젠드와 노동자 파업에 대한 자선공연을 하기도 했다. 더 스미스 조니 마와는 데뷔 전부터 친분이 있었으며 독설가로 유명한 노엘은 그에 대해서는 독설을 하지 않는다. 레스 폴 기타와 얽힌 인연 때문에라도 조니는 깔 수가 없다.[47] 모리세이와도 친하진 않지만 유머감각 때문에 좋아한다고 한다. 폴 웰러와 공연을 같이 했을정도로 친분이 있고[48] 아이리쉬 혈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만큼 U2와도 친분이 깊다.[49] 노엘은 많은 선배 락스타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기도 하고, 노엘도 무척 존경한다.

그런 만큼 솔직하게 독설을 날릴 수 있는 관계이다. 후배들 중엔 카사비안을 무척 편애하며,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은 그냥 노엘빠. 트래비스는 스코틀랜드 지역 밴드 시절부터 노엘의 열렬한 애정을 받아 왔다. 마룬5 역시 오아시스를 굉장히 좋아한다. 마룬5의 경우, NME 2008년 8월호나 Q 매거진 2008년 10월호의 노엘 인터뷰를 보면 알수 있다.[50]

Magnet 잡지에서 푸 파이터스의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가 리암을 인터뷰했을 때, 리암은 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프레디 머큐리가 엄청난 목소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알겠고, 밴드가 명곡들을 만들어낸 것도 알겠지만 뭔가 마음에 딱 들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만 훗날 넵워스 파크 솔로 공연 당시 인터뷰를 했을 때 본인처럼 솔로 자격으로 넵워스 공연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굳이 뽑자면 프레디 머큐리 빼고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51] 노엘은 핑크 플로이드 사진전 입구에서 로저 테일러와 서로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도 있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잘 보았다는 말을 하여 싫어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일랜드 저항음악의 전설적인 밴드, 울프 톤즈(The Wolfe Tones)는 리암과 노엘 모두 팬이다. 유투브 영상에 보면 어릴 적 자라난 곳을 돌아보며 음반가게 'Sifters'를 가리키며 "울프톤즈 음반을 사던 곳"이라고 회상하는 것을 보면 정말 광팬이었던 듯 하다. 또한 울프톤즈의 브라이언 워필드 또한 인터뷰에서 "맨체스터에 공연가면 항상 보러오는 애들 2명이 있었는데 이름이 노엘하고 리암이었다. 나중에 밴드를 결성했다고 말했는데 몇 년 후 TV를 틀어보니 걔네들이 바로 오아시스더라"라고 말했을 정도다. 2018년 월드컵 중, 리암 갤러거는 어떻게 셀틱을 좋아하면서 잉글랜드를 응원하냐고 따져묻는 사람이 있자, 트위터로 "나는 셀틱, 잉글랜드 그리고 울프톤즈를 모두 사랑한다. X까"라고 밝혔다. 노엘과의 성향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한데, 노엘은 스스로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리암은 스스로 '맨체스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진 않는다고 하며 노엘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을 썩 좋아하진 않는다.

INXS의 보컬 마이클 허친스와는 일방적인 악연이 아주 깊다. 결국 허친스의 이른 죽음으로 풀 기회도 없이 영원히 악연으로 남게 되었다. 자세한 항목은 해당 밴드 참조.

4.2.1. 블러와의 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브릿팝 전쟁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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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damon_gallaghers.png
사진은 오아시스 TOTP에 Whatever가 나오면서 데이먼 알반이 소개하는 부분 블러의 다큐멘터리인 No Distance Left To Run에 삽입되었으며 해당부분을 캡처하여 자막을 입힌 것이다. 사진 전체

오아시스를 말하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블러. 이 둘은 오랜 기간 동안 브릿팝계에서 대립 구도를 펼쳤다. 이른바 ' 브릿팝 전쟁'도 이 둘을 언론들이 이용한 결과다. 이때 언론들은 60년대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사실 1995년 싱글 동시 발매로 충돌하기 전까지는 그다지 나쁜 관계가 아니었다.[52] 문제는 그 이후로 영국 언론 특유의 포장하기와 몰아가기로 인해 그 둘을 마치 영국 음악의 최강자를 놓고 싸우는 라이벌로 포장하였으며 이는 훗날 브릿팝 전쟁으로 불리게 된다. 사실 이 싱글 발매 싸움은 블러 측이 먼저 도발한 측면이 있었고 (블러 측에서 먼저 일부러 발매 날짜를 2주 정도 늦췄다), 이에 오아시스 측에선 굉장히 어이없어하였다. 앨런 맥기가 노엘에게 "우리도 발매 날짜를 늦추자" 라고 했지만 노엘은 X까지 말라고 했다 리암은 이후로 사적인 자리에서 그들을 만나면 으르렁거렸으며 훗날 블러의 베이시스트인 알렉스 제임스는 이 때의 일화를 두고 "전부 다 재밌었잖아 안그래?"라며 자조적인 모습을 취한다.

노엘은 블러의 리더인 데이먼 알반에게 "에이즈나 걸려 뒈져라!"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발언에 따른 엄청난 사회적 파장과 비난 속에[53] 이후 에이즈 환자들에게는 사과를 했지만 데이먼에겐 사과를 안했다고 한다.

블러 같은 경우엔 브릿 어워즈 1995에서 베스트 싱글로 파크라이프가 선정되자 데이먼 알반오아시스도 같이 탔으면 좋았을거예요라고 말했던 일을 자신들의 최악의 실수로 꼽았다. 그래서 그 다음해 브릿 어워즈 1996에서 정규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베스트 앨범[54] 상을 수상하자 갤러거 형제는 기다렸다는듯이 Parklife를 만취한 상태로 데이먼 특유의 정석적인 창법을 한없이 비꼬면서 Shitelife, 마마이트 라고 조롱했다.[55]

하지만 21세기 이후 들어선 양 쪽 다 감정이 많이 희석되었다. 리암의 경우 데이먼 알반과 싸운건 노엘이지 자신이 아니라며 블러의 멤버들과는 오가다 길에서 만나면 인사 정도는 한다고 한다. 실제로 라이벌리가 한창이던 시절에 리암과 데이먼은 한 바에서 마주쳐 좋은 대화를 나눴고 데이먼은 "넌 괜찮음. 난 너네 형이 싫을 뿐임."이라 했다고 한다. 2009년 인터뷰에서 노엘 역시 데이먼 알반에 대해 자신과는 다르지만 재능있는 사람이라 했고, 브릿팝 전쟁을 회상하면서 철없던 시절의 얘기라 하기도 했다. 사실 노엘은 블러의 기타리스트인 그레이엄 콕슨에 대해선 줄곧 높은 평가를 해왔다.

2011년 Shortlist에서의 노엘 인터뷰에 따르면 우연히 모 클럽에서 데이먼 알반과 마주치게 됐는데, 그 날 둘은 15년 전 브릿팝 전쟁 때의 일에 대해 회상하며 서로 맥주를 마시며 깔끔하게 사과 및 화해를 했다고 전해진다. 보이밴드 원 디렉션을 사이좋게 같이 깠다고 한다. #

사실 두 쪽 모두가 언론의 꼭두각시이자 희생양이었을 뿐이었고, 달리 보면 둘 다 서로를 이용한 노이즈 마케팅을 한 거라고 볼 수도 있다. 먼 훗날 노엘 갤러거 데이먼 알반은 서로 화해하였고, TCT 공연에서 노엘이 블러와 함께 그들의 노래인 'Tender'를 같이 연주하면서 브릿팝 전쟁의 앙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2017년에는 고릴라즈 신보 Humanz의 싱글컷 중 하나인 We Got the Power에 노엘이 백킹 보컬을 넣으면서 처음으로 알반과 노엘 갤러거가 같이 작업한 음악이 나왔다. 이 즈음 이후부터는 탑스타들이 대거 얼굴을 비춘 노엘의 50세 생일파티에 데이먼이 참석하고 공연을 몇 번 같이 서는 등 도리어 친해진 듯 한 상황이다.

5. 갤러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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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들에 대한 발언을 원하지 마. 그 녀석들은 원체 거칠어서 우릴 칠지도 몰라.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 글렌 매틀록, 오아시스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인터뷰에.[56] 전문은 여기에
오아시스의 주축인 갤러거 형제를 의미한다. 팬들 사이에선 갤러거지로 통한다.

왼쪽부터 동생 리암 갤러거, 노엘 갤러거. 형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각 항목을 참고.

5.1. 형제 관계


파일:흔한 형제의 맥주공유.jpg
합성 사진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다른 각도의 사진들을 보면 실제 키스인 걸 알 수있다.[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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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가 좋을 때. 싸우는거 아님.
파일:cokesongwriter.jpg
"오아시스 최대의 강점은 리암의 관계였어. 그게 밴드를 끝장내버린 요소이기도 하지만.
노엘 갤러거
"오아시스는 페라리 같았지. 보기도 좋고, 성능도 좋고, 너무 빨리 몰면 제멋대로 튀어나가고."
리암 갤러거

형제끼리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어느 정도냐 하면 서로가 서로를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부른다.[59]

밴드가 해체한 이후로 서로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 받는 일은 일체 없다. 사실상 인터뷰로 소통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파일:attachment/brother.jpg
파일:attachment/brother2.jpg
하지만 까는 사이사이 형제애를 슬쩍슬쩍 드러내곤 해 그 사이를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으며, 굳의 정의를 내리자면 애증 관계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상당히 과격하게 서로를 저격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종종 드러나는 극단적인 형제애는 불행했던 형제의 어린 시절[60]에 기인한다.

96년 3월 22일 더블린 공연 후 호텔로 돌아온 갤러거 형제는 더선, 데일리미러 등 타블로이드 언론사에서 돈을 받고 호텔로 찾아온 토마스 갤러거(갤러거 형제의 친아버지)와 마주치게 된다. 당시 노엘은 불안 증세를 보이며 방문을 잠그고 들어가 나오지 않았고,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리암이 뛰쳐나와 "한 번만 더 우리 애[61] 눈에 띄면 가만 안 둘 테니깐 빨리 꺼져!"라고 외쳤다. 영화 슈퍼소닉에서, 리암은 몹시 화를 냈고, 노엘은 리암에게 거듭 "반응하지 마"라며 형으로서 동생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리암이 "죽여버릴 거야"라며 계속 화를 내자 결국 노엘이 리암을 보호하기 위해 데리고 나갔다고 한다. 리암이 회상하길 형이 있었기에 진정할 수가 있었다고.
"얼마나 우리가 다투냐고? 매일. 매시간. 하지만 그건 증오가 아니야. 사랑이지. 형을 미워하지 않아. 사랑이야." - 리암

(소리치며) "난 그 새끼를 사랑해! 누구라도 형의 발을 밟으면, 내가 그 발을 다 잘라버릴 거야! 형을 위해 감옥도 갈 수 있어. 그를 사랑해." - 리암
"난 노엘을 사랑해. 이 넓은 엿같은 세상 전체에서 누구보다도 더 그를 아껴." - 리암

"...하지만 오아시스는 독립적인 세 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지. 우리애랑, 나랑, 그리고 노래들이야. 그런 노력이 있고, 우리애 없는 오아시스는 존재할 수 없지. 하지만 리암은 그걸 모르고 있어. 왜냐하면 그 애가 술을 마시면, 경쟁 컴플렉스랑, 심각한 열등감 컴플렉스가 생기거든. 하지만, 있잖아. 그 애는 내 동생이야. 내가 그를 싫어한다고 해도, 사실은 리암을 하나하나 다 사랑하고 있다구." - 노엘

"난 너랑 존 레논 노래만 부를 거야." - 리암
"나도 너랑 존 레논만 내 노래를 부르게 할 거야." - 노엘

데뷔 때부터 이들의 싸움은 그 특유의 캐릭터와 맞물려 언제나 언론의 조명을 받았기 때문에 이들의 싸움에서 어느 정도 부풀리거나 부추겨진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흔히 형제자매 사이에서 보이곤 하는 경쟁심리와 서로를 견제하려는 태도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사례라고 보면 되겠다.

5집 활동 시기에는 답지않게 형제애가 두터웠으나, 6집부터 다시 조짐이 보이더니 7집을 낸 이후부터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다시 사이가 엄청나게 악화되었다. 월드투어를 진행 중일 때도 하루에 한두 마디하면 많이 할 정도. 심지어 같은 비행기 타기 싫다고 다른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8월 28일, 노엘이 밴드의 탈퇴를 선언하고, 이후 리암이 해체를 선언하면서, 교류가 끊기고 만다.

그런다 2015년 1월 26일, 밴드의 해체 직후 이래로 리암과 노엘이 서로 연락을 하고 지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후 2015년 3월 14일 리암이 노엘의 'Keep it dangerous' 투어의 백스테이지 패스를 목에 걸고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팬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했다. 그런데 이건 리암의 패스가 아닌 것이 밝혀지면서 팬들은 리암이 희망고문을 시전했다며 허탈해했다. 2014년에도 OASIS를 30분 마다 한 글자 씩 올려서 전세계의 팬들이 엄청난 멘션을 쏟아내며 재결합의 희망을 품었다. OASIS까지 올라오고 s가 안 올라오자 S 자판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는 멘션이 있을 정도. OASIS LG가 완성되자 팬들이 얼마나 환호했는지 모른다.[62] 또다시 1년 만에 이런 식의 트위터를 올렸으니 팬들은 희망에 부풀었다가 할 말을 잃은 상태. 리암은 트위터 상에서 노엘의 인터뷰에 관련하여 일일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고 있는데 밴드 해체 후에 형을 더 신경쓰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여담이지만 해체 후 노엘은 인터뷰와 영화 Supersonic 등에서 리암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리암과 형제가 아니었다면 같이 밴드를 하지 않았겠지만, 형제이기 때문에 나쁘게 끝난 것", "우리가 형제란 건 밴드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가까운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의 고충을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언급했다. 남들이라면 함부로 못할 말들을 형제지간이란 이유로 서로에게 막 퍼부어댔다고.[63]

재결합 후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서 갤러거 형제에 대한 스킷을 만들었다. # 인터뷰 도중 유치하게 싸운다는 이야기.[64] 정작 영국인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리암은 이 스킷을 보고 “고문 받는 기분(It’s excruciating)”이었다고…

5.2. 해체 관련 일화

밴드가 해체까지 이어진 결정적인 계기로 2009년 V 페스티벌 공연 취소사태 이후, 8월 파리 공연 바로 전에 있었던, 언론이 '놀라운 싸움(Wonderbrawl)'[65]이라 조롱하며 이름붙인 싸움이 꼽히는데, 확신할 수 없는 영국 찌라시의 보도를 포함해 여러 매체에서 나온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리암이 노엘에게 자두를 던졌고 리암이 자기 기타를 노엘에게 휘둘렀다. 노엘이 리암의 기타를 발로 밟아 부수자 리암이 기타 진열대로 달려가 노엘의 기타들을 역시 부쉈고 노엘은 차를 타고 떠났다고 한다.

리암이 오아시스 해체 이후 이탈리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이야기가 맞다고 한다. 다른 내용의 이야기들은 모두 루머로 판명되었다. 리암이 말하길 "내 기타는 내 기타였어. 근데 형 기타는 오아시스 거였다고. 그 기타를 산 돈 일부는 내 돈이었던 거지. 그걸 부수면 안 되는 거였어!"

2011년 7월 6일 있었던 노엘 갤러거 솔로활동 발표 기자회견에서 노엘이 묘사한 그 날의 싸움을 요약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체 인터뷰 영상
파리에서 있었던 그 날 밤 동안에는, 리암은 꽤나 난폭해져 있었어. 꼭 WWE 레슬링 경기 같은 분위기에, 본인은 마초맨 랜디 새비지라도 된 것 같은 모습이었지.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 건, 이렇게 온통 야단법석을 떠는 동안에 앤디는 옆에서 자기 신발이 몇 개인지나 세고 있었다는 거야, 한 마디도 없이. 리암은, "좆까 씨발" 하면서 탈의실 바깥으로 뛰쳐나갔고. 그러다가, 자두를 하나 집어와서는 훅 하고 던졌는데 그게 탈의실을 가로질러서 벽으로 처박혔어. 내 입장에서는 그런 식으로 끝나지는 않길 바랬는데, 왜냐하면 그랬다간 'Plum Throws Plum[66]' 하는 식으로 훌륭한 헤드라인 하나가 뽑혀 나왔을 테니까.

그래서 그런 식으로 그가 방에서 나간 다음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는데, 자기 탈의실 쪽으로 들어갔다가 거기서 자기 기타를 하나 들고 돌아와서는, 도끼라도 되는 양 휘둘러 대는거야. 처음엔 별 일 아닌 줄 알았던게 내가 뭘 어쨌든 간에 그건 정말로 쓸데없이 폭력적인 행동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는) 그걸로 내 얼굴 가죽을 거의 벗길 뻔했어. (기타가) 마침내 바닥에 떨어진 다음에는 내가 그 비극을 끝내버렸지(기타를 발로 밟은 것을 말하는 듯함). 거기 있던 밴드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우리 모두가 거기에 관련되어 있었는데 그 어떤- 누구도 한 마디를 하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말했지, '됐지, 나 나간다...' 그대로 차에 타서 거기 5분 동안 앉아 있다가, '씨발 안해' 그랬던 거지.

싸우다가 오아시스를 떠나겠다고 말한게 한두번이 아닌지라 비교적 낙관적인 팬들도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확정되고 말았다. Liam Gallagher : the end of oasis

5.2.1. 형제 싸움 시즌 2

해체 이후 파리에서 있었던 싸움과 관련해 많은 인터뷰가 진행되었는데, 문제는 마지막 공연의 진상과 그날의 싸움을 묘사하는 내용이 서로 미묘한 부분에서 어긋나는 바람에, 서로가 서로를 언론을 통해 거짓말쟁이로 불러가며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 벌어졌다.

노엘이 솔로활동 발표 기자회견 당시 밝혔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2011년 7월 11일 이디스 보먼(Edith Bowman)이 진행하는 BBC Radio 1 프로그램에 출연한 리암은 노엘의 서술을 전면 부인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2011년 8월 12일 Japan Times에서 진행한 비디 아이 인터뷰에서 앤디 벨이 밝힌 개인적인 견해를 부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본문에 따르면 이 인터뷰는 노엘의 기자회견이 있은지 이틀 뒤에 진행된 것이라고 한다. 관련 전체기사

"All that sh-t … there were three of us in that room, and I’m telling you it was nothing to do with Pretty Green. I’m not going to add more fuel to the fire."

위 인터뷰 본문에서 앤디는 노엘의 기자회견을 봤다고 했다. 하지만 "파리에서의 싸움은 프리티 그린에 대한 것 때문이 아니다, 노엘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라고 한 것을 보면 기자회견을 자세히 보지 않았거나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하다. 노엘은 리암과의 파리에서 싸움이 프리티 그린 때문이라고 한 적은 없다.

이후 2011년 8월 19일 BBC 뉴스 엔터테인먼트 부분에서 리암이 노엘을 명예훼손으로 소송[67]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해당 기사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앞에서 서술한 리암의 주장 및 견해 차이와 같으며, 이미 변호사를 통해 공식 사과 요구 편지를 보냈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사실 BBC 뉴스 보도 이전에 이미 더 선이 발빠르게 단독 보도라며 기사를 올렸으나 기사 특유의 광역 어그로성 때문에 소설 취급을 받으며 가루가 되도록 까였었다. 당시 공개된 성명서에서 그는 "(노엘의 추측은) 이미 락앤롤 농담의 수준을 벗어났으며 내 프로 정신을 의심받게 만들었다"며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그저 사과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었다.

이에 노엘은 8월 22일 있었던 팬들과의 라이브 웹챗 이벤트 중에서, 어떤 팬의 질문에 "분명히 말하자면 그가 후두염 진단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걸 증명할 진단서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하며, "만약 그가 내 말 때문에 화가 나거나 했다면 사과하겠다"고 짧게 언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2011년 11월 12일의 NME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로는 리암이 노엘이 짤막하게 사과한 사실(위의 라이브 웹챗 이벤트)을 알게 되어 소송을 취하한 상태로, 상황 자체는 일단락된 것으로 전해진다.

2011년 11월 21일, 데일리 미러 지를 통해 노엘이 리암이 제기했던 소송에 대해서 법원에 제출한 변론서가 공개되었다. 해당 기사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노엘은 09년도에 서로 싸울 당시의 갈등 상황과 94년부터 05년도까지 리암이 술을 마시고 공연을 망쳤던 일들, 그리고 09년에 파리에서 리암과 충돌했던 사건 등을 열거하며 자신의 발언이 정당하였으며, 따라서 해당 발언에 대해서 명예훼손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뉴스가 가디언 지 등 다른 언론에 인용 및 과장보도되면서 노엘이 리암에게 맞소송을 제기했다는 식의 기사가 퍼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관련 인터뷰 (해당 질문과 답변은 2:05부터)

5.2.2. 15년간의 재결합설

재결합설은 해체 직후부터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지만 2024년 8월 이전까지 제대로 진전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갤러거 형제를 포함한 멤버들 역시 여전히 개별적으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각각 추구하는 음악스타일이 또한 너무나 다르고[68] 각자 성공적인 솔로 뮤지션 커리어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음악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재결합을 할 명분이 확실치 않았다. 그나마 리암은 때때로 자신은 재결합에 긍정적이라는 언급을 할 때도 있지만 이것 또한 가끔일 뿐이고 내키는 기분에 따라 태도가 빈번히 달라지며, 노엘은 해체 이후 초지일관 재결합을 할 생각이 없다는 의견을 굳건히 하고 있었다. 후기에 와서는 재결합 관련 언급 자체가 질렸는지 아예 인터뷰에서 질의가 들어오면 답변을 거의 하지 않으며, 이야기가 나와도 답을 하는둥 마는 둥 하며 넘겨버렸다.

재결합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갤러거 형제의 관계 개선이었다. 하지만 2009년 불화 이후 갤러거 형제는 화해는 커녕 15년 동안 제대로 얼굴 한 번 본 적 조차 없다. 개인적인 연락이나 교류는 완전히 끊겼으며, 인터뷰에서나 간간히 언급되는 것을 제외하면 두 사람 간의 소통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재결합은 쉽지 않아보인다. 형제의 어머니 페기 갤러거가 인생은 짧다며 둘의 관계 개선을 바랬는데 리암은 짧은 건 노엘의 키라며 말대꾸를 한 적이 있을 정도다.

두 사람 모두 뼛속까지 맨시티의 팬이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맨시티 홈구장에서는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갤러거 형제가 마주할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공간인데, 교묘하게 경기장에서 마주하는 걸 피하는 듯하다. 축구를 볼 때도 서로 멀찍이 떨어져서 따로 축구를 관람한다. 맨체스터 근처 호텔에 방을 잡아도 같은 호텔에 있다고 하면 늦게 들어온 쪽이 알아서 호텔을 옮기는 듯. 노엘 갤러거는 '텔레비전에서만 종종 리암을 봤을 뿐 해체 이후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라고 말했다.

2011년 8월 17일 노엘 갤러거는 앱솔루트 라디오에서 진행한 Christian O’Connell의 아침 방송 인터뷰에서, 만약 자기 자신이 밴드를 탈퇴하지 않았다면,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발매 20주년이 되는 2015년에 오아시스는 MG 20주년 기념 투어를 돌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이 다소 와전되어, 2015년에는 오아시스가 재결합을 할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인터뷰어: 해체한 지금 상황에 대해서 후회하는 건 없나요, 아니면 '이런, 우리가 이랬거나 저랬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거라도, 밴드가 그래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했을까요 아니면 어찌됐든 끝을 보았을 것 같나요?

NG: 뭐, 내가 그 때 그 차에 앉아서 성급한 결정을 내렸던 건 정말 후회스러워, 정말로,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 상황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본 다음 돌아가서, 공연을 끝내고, 그 다음 걸 끝내고, 그 투어에는 공연 두 개 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나? 그건 내가 했던 (것들 중에서 가장) 경솔한 결정이었어, 그리고 우린 아마 모든 걸 마무리 지은 다음에 몇 년간은 다른 일들을 좀 했겠지, 2015년에는 뭘 할 생각이었냐면, Morning Glory의 20주년이 다가오는 해니까 그때쯤 아마도 우린 다시 돌아왔을거야. 새 앨범을 만들었을거고 그 앨범 수록곡을 전부 연주했을 거고 그리고 가장 위대한 공연으로 남게 되었을 테고, 당신은 거기 갔을지도 모르는거지. 관련 전체 방송 스크립트

그런데 2011년 10월 20일, 롤링 스톤 지에서 리암이 재결합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해당 기사 그의 말에 따르면 "2015년에, 만약 우리가 서로 똥고집 부리는 걸 그만둘 수 있다면, 우린 20주년을 기념해서 투어도 다닐 거고 앨범 수록곡도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참고로 이 인터뷰는 스톤 로지즈의 15년만의 극적인 재결합 소식이 전해진 이후 나온 인터뷰이기에 더 뜻깊을 뻔했으나 사실 별 관련은 없다. 아래의 BBC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강조하는 것이지만, 리암은 이번 일은 스톤 로지즈와는 별 관련이 없으며 여기서 재결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들에게 달린 문제라고 말한다.

리암은 이 인터뷰에서, 노엘의 공식적인 발언(위의 앱솔루트 라디오 인터뷰)이 자신으로 하여금 MG 20주년 투어를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계속 그런 말을 꺼내고 있는건 그 인간 뿐이지." "난 그를 고통 속에서 꺼내주고 싶어. 그렇지만 내 생각에 그는 먼저 솔로 활동을 좀 해본 다음에 이제 아 내 동생 없이는 나는 잘 안 되겠구나 하는걸 깨달아야 할 것 같아. 알아서 스스로 깨닫겠지. 난 고려하고 있는 편이야 - 근데 난 그렇게까지 간절하지는 않아. 만약 (재결합이) 안 돼도, 신경 안써. 난 지금 비디 아이로도 충분히 행복하거든."

이후 하루 뒤인 21일 BBC Radio 4의 Profile에서도 MG 20주년 투어에 대한 리암의 긍정적인 답변이 이어졌다. 해당 인터뷰 그러나 인터뷰어가 재차 재결합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는 완전히 확정된 것은 아니며, 노엘이 원한다면 재결합할 생각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엘과는 애초에 이 문제를 상의해본 적이 없고, 심지어 그 몇년간 서로 이야기조차 해본 적 없다고. 이 날 빌보드 지와의 인터뷰에서 노엘은 재결합에 관련된 질문에 "올해는 아님." 이라고 짧게 일축한 바 있다.

2011년 10월 25일 노엘은 BBC Radio 1 Newsbeat와의 인터뷰에서 MG 20주년 투어와 재결합 가능성을 다시 한번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 해당 기사 그의 말을 옮기자면, "나는 분명 이유가 있어서 밴드를 나온거고,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어." 라고 한다.
2012년의 오아시스 재결합 관련 노엘 인터뷰를 보아 노엘은 아직도 리암의 소송 건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듯. 링크 일단은 서로의 관계 개선이 더 중요해보인다.

2012년 9월 10일 노엘은 Nation radio의 Chris Blumer와 함께한 인터뷰에서 "설령 모든 세상의 굶주린 아이들이 이 일에 달려있다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재결합 가능성에 못을 박았다. 그리고 일부 팬들에게도 못을 박았다. 해당 기사 그리고 리암은 노엘의 굶주린 애들 운운한 구절을 그대로 트위터에 올렸다.

2013년 6월 26일 리암이 "뮤즈(음악의 신)가 원한다면 그렇게 되겠지"라고 글래스톤베리에서의 공연을 마친 후 인터뷰에서 그렇게 발언했다. 또한 리암은 자신을 제외한 비디아이(前 오아시스 멤버들)멤버들과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만 리암 본인과 노엘은 서로 연락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Definitely Maybe 앨범의 20주년이 되는 2014년에 폴 웰러와 해피 먼데이즈를 게스트로 맞이하여 오아시스 재결성 공연을 열겠다는 계획이 나왔지만 노엘은 거부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340억원의 제의였지만 노엘 갤러거의 관계자에 따르면 오아시스 재결성은 완전히 가망이 없고, 노엘은 모든 제의를 거절하고 있다고 한다.

1월 25일, 노엘이 드디어 재결합 가능성을 얘기하는 떡밥을 던졌다. 해당 기사

2015년 5월 12일(한국시간 기준), 리암 갤러거가 황색 언론 더 선이 보도한 "노엘 갤러거를 제외한, 원년 멤버인 본헤드, 귁시, 토니 맥캐롤과 재결합을 하겠다는 루머에 대해 부정하는 보도를 NME 매거진을 통해서 밝혔다. 링크 이때까지만 해도 오아시스 재결합이든 솔로 활동이든 리암을 무대에서 볼 일은 없을 듯 보였으나...

2016년 7월초 리암 갤러거가 트위터 링크에 짤막하게나마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내용에 따르면 자신은 오아시스의 결합을 바라고 있으나 노엘 갤러거측이 반대하는 상황 이라고. 노엘 갤러거 자신도 새 앨범을 거의 완성해 오아시스 재결합 대신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를 쌓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2016년 8월 초 리암 갤러거의 인터뷰 링크에 따르면 자신은 오아시스를 할 생각이 있지만, 노엘이 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오아시스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때까지의 재결합에 관한 노엘과 리암의 입장을 정리해보자면, 리암은 노엘이 재결합 하자고 하면 지금 당장이든, 먼 미래이든 시기에 상관없이 언제나 같이 활동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한다. 다만 노엘이 하기 싫다는데 무릎꿇고 사정하면서까지 재결합을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노엘이 오아시스 활동을 하고 싶다면 자신은 언제든지 환영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노엘은 재결합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그래도 오아시스로 다시 활동하는 것은 매우 멋진 일일 것이라고 하면서 재결합의 가능성을 아예 부정하지는 않았고 언젠가는 리암이랑 같이 활동할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인터뷰마다 자신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고 만약 재결합을 한다고 하면 미래의 일일 것이고 현재는 아닐 것이라고 확실하게 못박았다.

12월 7일(우리 시간 12월 8일) 진행된 BBC Radio2의 인터뷰에서 노엘은 오아시스의 해체에 대해 언급하였다.
"오아시스를 떠나기로 결정한 그날은 정말 악몽 같았지. 그 결정이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은 예상했어.
우리의 재결합에 대한 기사가 아직도 쏟아져 나오고 있잖아.
후회하진 않지만, 오아시스를 계속 했다면 지금보다 더 큰 규모의 투어를 진행하고 돈도 훨씬 더 많이 벌었겠지.
난 정말 솔로로 나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구.
그리고 이제 와서 말하는 건데, 오아시스가 끝난 건 정말 아쉬워.
물론 우린 각자의 길을 가는데 동의했고, 언젠가 다시 뭉칠 거라는 걸 알았지만..... 너무 먼 길을 와 버린 것 같아.
다시 뭉치긴 힘들 것 같아, 하지만 그렇게 크게 후회하진 않아."

또 리암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과 20년 간 일하는 게 힘든 일이라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 많진 않을 거라 생각해.
20년 동안 힘든 일이 많았지만 결국 다 괜찮아 지겠지. 확신해."

한편, 노엘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리암을 볼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재결합하기엔 노엘도 리암도 너무 멀리 와 버렸기 때문에 노엘의 이 말로 오아시스의 재결합은 더 어려워진 셈이었다. 이로 인해 팬들과 사람들은 그저 안타까워 할 뿐이었다.

참고로 2017년 6월 인터뷰에 의하면 리암은 노엘의 핸드폰 번호조차 없다고 한다.


2018년에는 그래도 리암이 트위터로 노엘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기도 하는 등 예전에 비해서는 서로 많이 누그러졌다.

2018년 6월 10일 트위터로
If you want 59k people to get wet do acquiesce at Finsbury X
(59,000명이 지리는 걸 보고 싶으면 핀스버리에서 ‘Acquiesce'[69] 불러줘요)라는 팬의 글에
Can't do that song without rkid
(우리 애[70] 없인 그 노래를 부르지 않을거야)
라고 답하며 잘 살고있던 팬들을 또 울렸다.

2018년 7월, 리암은 트위터로 재결합 의향을 보였고 노엘은 반응하지 않았다.

2019년 여름에는 둘 사이의 사이가 다시 극렬히 악화되어 쌍욕과 가족 욕 등을 주고 받았다.
사건의 경위를 요약해보자면
한국 시간으로 2020년 3월 26일 오후 3시경, 리암이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를 업로드했다.
Wanna clear a few things up Oasis gig for NHS charity as in all money raised goes to NHS not to me will happen with or without Noel Gallagher it may not be the same but trust me it'll still blow you knickers off
As you were
LG x
C'mon Noel Gallagher
오아시스의 건강보험공단 자선공연에 대해 몇 가지 확실히 할게. 수익금은 내가 먹는 게 아니라 전액 건강보험공단에 기부될 거고, 노엘 갤러거가 있든지 없든지 공연은 할 거야. 물론 옛날만큼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지리는 공연이 될 테니 걱정하지 마.
쉬어(As you were)
리암 갤러거
노엘 갤러거, 해보자

2019년 6월 7일에 리암의 다큐멘터리가 개봉했다. 제목은 'As It Was'. 그러나 노엘이 영화에 오아시스 음악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저작권을 행사해 차단했다.

2021년 새해가 되자 웬일로 리암이 노엘에게 인사를 보냈다.
HNY Noel love you long time 2021 is our year c’mon you know LG x 트위터 링크

2021년 다큐 영화 Oasis knebworth 1996을 형제가 공동제작하며 둘이 만났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재결합을 원하던 많은 팬들은 다시 한 번 기대에 부풀었으나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어 재결합은 또다시 물건너 갔다.

2022년 10월, 리암의 넵워스 솔로공연 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개봉일은 11월 17일. 그러나 노엘이 영화에 오아시스 음악을 쓰지 못하게 차단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리암은 트위터에 '곡을 쓰지 못하게 할 순 있어도 우리의 기억을 지우진 못한다.'라며 불만을 표했고, 노엘은 ‘대꾸할 가치도 없는 놈’이라며 받아쳤다

2023년 1월 19일, 리암이 여러모로 엄청난 트윗을 올렸다.
Just had RKID on the phone begging for forgiveness bless him wants to meet up what Dya reckon meet up or fuck him off
방금 형하고 전화했는데, 나보고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만나잰다. 어떻게 생각해. 만날까 아니면 꺼지라고 할까. #
해마다 한 번쯤은 재결합 떡밥을 던지며 광역 어그로를 시전하는 리암이기에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팬들도 있었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점은 리암이 이 트윗을 올리기 며칠 전, 노엘은 사라와 이혼하였는데, 기사에 따르면 이혼하면서 물어낸 위자료가 노엘 본인 자산의 절반 가량 된다고. 이러한 이유로 일부 팬들은 노엘이 돈 때문에라도 리암을 다시 만나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또한 며칠 전 노엘이 BBC 라디오에서 재결합 의사와 관련된 질문에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하지는 않겠다.(Never say never.)” 라고 대답하는 등, 해체 후 초지일관 재결합에 부정적이었던 태도였던 노엘을 생각하면 꽤나 긍정적인 말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팬들은 다시 엄청나게 기대를 품고 있다.그 와중 블러의 그레이엄 콕슨은 만나라는 리트윗을 올렸다.

그러나 2023년 6월 2일 노엘의 정규 4집이 발매되면서 여전히 오아시스 재결합보다 왕성한 솔로 활동을 이어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2023년 6월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 미국 투어 중 한 인터뷰에서 또다시 재결합 루머 질문이 나왔는데 노엘은 "리암은 지난 10년동안 항상 트위터로 재결합 한다고 떡밥을 막 뿌리지만 실제로는 리암이 재결합을 원하지 않고 있을테니 나한테 전화해서 제대로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트위터는 그만하고 나한테 전화라도 한 번 하면 나도 (재결합이)괜찮은 아이디어라고 말할텐데 연락을 안 한다." 라는 취지의 대답을 했다. #

오아시스의 베이스 연주자 앤디 벨이 외신 뉴스와 인터뷰에서 그룹 스톤 로지스를 예를 들며 갤러거 형제가 화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4년 8월 26일 롤링 스톤, 더 선, 데일리 미러, Sky 등의 주요 일간지 혹은 방송사에서 이 둘이 갈등을 해결했고 곧 런던과 맨체스터에서 공연을 한다는 속보가 무수히 많이 올라왔다. 당일, 오아시스 공식 인스타그램 및 웹사이트와 노엘, 리암의 트위터,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숏츠에 27.08.24 오전 8시[71]라고 쓰여 있는 의미심장한 게시물 또한 업로드되었으며 이 둘의 개인 계정에 같은 오아시스 게시물이 올라오는 것은 해체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5.2.3. 화해와 재결합

Oasis Live '25
Official Trailer
2024년 8월 27일, 25년 투어를 함께 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여 해체 후 15년만의 재결합이 성사되었음을 알렸다[72]. 무려 데뷔 30주년, 해체 15년만의 일로 팬들은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현재 카디프, 맨체스터, 런던, 에딘버러, 더블린에서만 공연이 예정되어 있으며, 2025년 7월 4일 카디프에서 시작한다. 이어서 북미 투어 일정이 발표되었으며, 2025년 8월 24일 토론토를 시작으로 미국, 멕시코를 거치는 일정이다. 루머에 따르면 아시아 중에서는 도쿄와 함께 서울이 일정에 포함이 되어있는데, 애초에 노엘이 솔로 시절 여러번 한국을 찾아와서 공연했던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라는 의견.[73]

NME가 원년 멤버 중 갤러거 형제만이 재결합에 참여하며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가 투어링 멤버로 함께할 것이라는 루머를 보도했다. # 다만 이 루머가 맞다면 오아시스의 최종 라인업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겜 아처와 크리스 섀록이 HFB의 멤버로 활동 중이기 때문. [74] 반면 앤디 벨의 합류 가능성은 확실치 않다. 이전부터 오아시스의 재결합 가능성을 계속 예고해 왔지만 노엘이 해체 당시 그가 리암의 ‘폭력적인 태도에 맞서지 않았다’고 비난한 것을 근거로 합류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한 기사도 있었다. 또한 벨은 해체 동안 원래 이끌던 밴드인 라이드를 재결성해 활동 중인지라[75] 이것과 관련해 합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현재 노엘 갤러거와 활동하고 있는 베이시스트 러셀 프리처드의 기량 역시 훌륭하기에 앤디 벨의 합류가 불발되더라도 공백은 전혀 없다.

그리고 본헤드의 합류설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메트로나 더 선 같은 일간지에서는 사실상 확정이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 다만 높은 퀄리티의 언론에서는 합류 가능성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거나 확정 여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오아시스측에서 공식적인 소식을 전하기 전까지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5.3. 축구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

파일:oasis manchester city liam noelgallagher.jpg

훌리건 출신 노엘과 리암 갤러거는 둘 다 엄청난 축구광이며, 어릴 때부터 맨체스터 시티의 열렬한 팬이다. 갤러거 형제는 모두 뼛속까지 맨시티의 팬이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시즌 중에 자주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때문에 다른 대다수 맨시티 팬들과 비슷하게 맨체스터 더비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혐오와 증오의 대상으로 보고있다. 이들이 맨체스터 시티의 팬이 된 이유는 단순히 상대적으로 맨유 팬이 더 많았던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응원하던 것을 그대로 따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유별난 축구 사랑에 대해서는 이쪽으로.

실제로 갤러거 형제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홍보 담당 보드진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진정으로 성공한 축덕.[76] 맨시티 홈구장에서 공연을 열기도 했는데, 최전성기였던 1996년 맨시티의 당시 홈이던 메인 로드에서 4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몬 공연을 진행했고, 2005년에는 새 홈구장인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했다. 리암 역시 솔로 데뷔 이후 2022년 에티하드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내한 당시 어느 기자가 박지성에 대해서 아냐고 물었더니 자신들은 맨시티 팬이라 그런 선수 모른다고 했다. 재밌는 점은 박지성도 오아시스라는 밴드를 잘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 박지성이 영국 모 토크쇼에서 비틀즈와 오아시스 중에 어느 쪽이 좋냐는 질문을 받자 오아시스가 어떤 밴드인지 되물어 사회자가 "오아시스는 맨체스터 출신 밴드고 비틀즈는 리버풀 출신 밴드"라는 말을 듣자 오아시스를 택한 적이 있었다.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박지성이 농락당한 듯.[77]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리오넬 메시"오아시스의 재결합을 위해 월드컵을 우승하겠다"라는 말을 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리오넬 메시에게 오아시스의 음악을 추천한 사람은 다름아닌 카를로스 테베스. 2010년 영국 총선 때 노엘은 "난 투표 용지에 Tevez is God(테베즈는 신이다)라고 쓰고 투표함에 던질거야. 난 테베스를 뽑을거야."라고 말하면서, 자기 아들 이름을 테베즈로 짓겠다고 하는 개드립을 치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해프닝의 원인이 된 메시의 발언이 실린 매체는 유명한 영국 찌라시 더 선. 찌라시인걸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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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오아시스의 열렬한 팬이다. 인터뷰에서 여러번 매우 좋아한다고 언급했지만 유나이티드의 선수라 갤러거즈는 별 반응이 없다. 오아시스가 해체하기 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후 한 인터뷰에서는 맨체스터에서 살던 시절 길거리에서 몇번 오아시스 멤버들을 봤지만 말은 못걸었고 카카도 자기랑 취향이 비슷하니 카카와 함께 선수들을 설득해서 돈을 모으면 자기들만을 위한 오아시스 콘서트도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맨시티 사랑으로 인해 맨시티가 트레블을 달성하면 다시 오아시스가 재결합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자주 나온다. 근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갤러거 형제가 굉장한 맨체스터 시티의 팬이기 때문에 오아시스의 대표곡인 Wonderwall 또한 맨체스터 시티의 응원가로 널리 불리고 있다.

20-21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둘 다 직관했고 맨시티는 경기를 졌다. 2년 뒤에 맨시티가 첫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거뒀을 때 노엘은 샌디에이고에서 그 장면을 지켜봤다.

맨시티의 레전드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맨시티를 떠날 때 두 사람 모두 영상편지를 보냈다.

이렇다보니, 해외축구 덕질하다가 오아시스를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은근히 있다.(...)

6. 인기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붐과 함께 등장한 90년대를 대표하는 메가밴드 중 하나이다. 세계적으로 총 80,000,000장의 판매량을 보유 중이며 비틀즈의 계보를 잇는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브릿팝을 상징하는 밴드로 그 지대한 문화적 영향력에 있어서 90년대 영국 사회 전반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밴드이다.

1994년 혜성처럼 등장해 비틀즈 이후 영국 최고의 밴드라 불릴 정도로 영국의 국민밴드로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영국 대중들에게 얻은 인기는 90년대부터 해체하기 전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판매량, 싱글 차트, 앨범 차트 성적이 매우 뛰어나다. 1996년 영국 넵워스파크에서 열리는 그들의 공연을 직관하기 위해 영국 인구의 5%[78]가 예매를 시도했던 적도 있을 정도로, 단순한 대중음악의 영역을 넘어 영국의 90년대 자체를 상징하는 밴드이다.

브릿 어워드에서 최고의 신인상, 올해의 밴드상, 올해의 앨범상, 평생공로상, 30년 동안 발매된 앨범 중 최고의 앨범상 수상을 포함해 6번 수상을 했고 이를 포함한 여러가지 크고 작은 시상식에서 90번 노미네이트, 45번 수상을 했다.

영국 차트에서는 8번의 앨범 1위, 8번의 싱글 1위를 기록했고 빌보드 차트에선 정규 3집 Be Here Now가 앨범차트 2위, Wonderwall이 싱글 차트 8위를 기록했다.


7. 국내의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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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매우 인지도와 인기가 높은 록 밴드 중 하나로, 데뷔 당시인 1990년대부터 이미 매우 인기 있는 밴드였고 이들이 해체하고 이들의 아들 세대가 성인이 된 현재까지도 세대를 아울러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뮤즈, 그린 데이, 린킨 파크와 함께 록 입문자들이 많이 듣는 밴드로 유명하다.

위의 사진은 1996년 경향신문에 보도된 오아시스.그와중에 노엘과 리암을 헷갈려했다 거기다가 둘이서 싸운다는 얘기다 당시의 브릿팝 열풍은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었고 주로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 PC 통신의 락음악 동호회를 중심으로 오아시스는 큰 인기를 모으며 팬클럽이 결성되고 이들에 대한 활발한 정보가 오고 갔다. 록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음반 매장이 아닌, 서울의 웬만한 대형 레코드점에는 국내에 정규발매되지 않거나 정식 수입되지 않은 오아시스의 싱글은 물론, 부틀렉까지 구비해 놓았을 만큼 판매량도 인기도 보장된 밴드였다. 2집 히트곡 Don't Look Back In Anger는 당시 유행하던 팝음악 모음집 MAX 첫 번째 시리즈[79]에 수록되는 등 일반 팝음악 팬에게도 통할 수 있는 흔치 않은 밴드였다.

당시 한국 팝 시장은 빌보드 미국 차트에 굉장히 의존적이라(음악 잡지나 프로그램들도 유럽 차트는 소개 안해도 빌보드 싱글 차트와 앨범 차트는 100위, 200위까지 전부 수록했다) 영국, 유럽 쪽 아티스트[80]와 브리티시 락 밴드의 인기는 매니아 층에 비해 대중적인 폭을 가지지 못했는데 오아시스는 2집이 빌보드 4위, 3집이 빌보드 앨범 차트 2위[81]에 랭킹되면서 범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오아시스가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선 3집부터는 한국 소니 뮤직에서 싱글이 정식 발매되어 5천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금방 물량이 떨어져서 매장마다 가격을 올려 받거나, 개별적으로 영국에서 수입해와서 비싼 가격으로 싱글을 구해야 했다. 인기에 비해서 내한 공연이 무척 늦게 성사된 편이지만, 이렇게 꾸준히 유지해온 팬덤의 에너지가 극대화되는 계기가 되었고 내한 공연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국내 음악 시장에서 오아시스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해체 이후에도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노엘의 성공적인 솔로 활동과 내한 공연 덕분에 10대의 젊은 팬층이 유입되는 몇 안되는 90년대 락 밴드이다. 현재는 노엘의 아들뻘인 청년들도 록에 관심이 있다면 오아시스를 거의 잘 알 정도로 인기가 있다. 락음악 팬들도 노엘 갤러거가 어린 나이의 신규팬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점을 굉장히 중시 여기고 있다. 2016년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한 리암도 성공가도를 달리는 중이라[82] 양측에서 새로 유입되는 10대 팬들로 오아시스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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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MBC 예능 무한도전 '명수는 12살' 에피소드에서 노홍철이 오아시스에게 영상편지를 보내기도 해 없는 게 없는 무한도전 밈이 또 한번 적중했다. 실제로 노홍철은 오아시스의 엄청난 팬으로 유명하다.

7.1. 내한 관련

2006년 내한 공연이 성사됐다. 이로서 94년 오아시스의 성공적 데뷔 이후 12년 간 오아시스를 짝사랑 해오던 한국 팬들은 드디어 이들을 직접 마주하게 된다. 예매 3주만에 5,500여 석이 매진되고 기획사 측에서 특별히 100석을 추가시켰다. 당시 관중들의 호응이 대단했으며, 타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넥타이 부대[83]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유명한 일화로 그 넥타이부대원 중 한 명이 대형 스피커 위에 올라가 괴이한 춤을 추며 열광했는데 리암이 공연 도중 관계자에게 '저 남자좀 내려가게 해! 웃겨서 노래를 못 하겠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공연은 성공적이었으며, 공연 도중엔 티를 내지 않았지만 끝난 후 무대 뒤에서 노엘은 '내가 해왔던 공연 중 거의 최고 수준'이라고, 리암은 '관객들이 정말 무섭더라'고 떠들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이후 싱가폴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리암은 '관객이 미친 듯이 광분한 최고의 공연 중 하나였다'고 평했다. 일본에 비해 음반 판매량도 적고, 유독 국내에선 락 음악이 마이너한 장르였기 때문에 오아시스에게 한국은 거의 인식 밖의 나라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연을 통해 그 존재감을 밴드에 알렸으며, 이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의 전화 인터뷰, 2009년 두 차례의 내한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들에게 보낸 한국의 오랜 짝사랑이 작은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2009년 4월 1일, 오아시스는 'Dig Out Your Soul' 세계투어의 일환으로 이전보다 큰 올림픽 공원 체조공연장에서 두 번째 내한공연을 치렀다. 이 때는 10,000명 이상의 관객이 모였다. 오아시스는 투어 초기에 짜여진 셋리스트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데, 이 투어에서는 'Live Forever'가 빠져있어 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한국 공연관계자가 팬들이 이 곡을 듣길 원한다는 간곡한 바람을 전했고, 또 공연에 앞서 호텔에서 Live Forever를 불러달라고 한 팬의 요청을 기억하고 있던 노엘이 특별히 어쿠스틱 연주와 함께 Live Forever를 불렀다.

이 때 오아시스는 대기실에 그들이 가져온 맨체스터 시티 깃발을 한쪽 벽면에 걸어줄 것을 요청했다. 역시 축덕 기획사는 무대연출팀까지 동원해서 깃발을 걸었다고.

끝난 후 열렬한 반응에 신이 난 그들은 7집 투어 당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노엘이 포함된) 술파티를 벌였다. 시설 이용 시간이 끝나가는데도 일어설 생각을 않는 그들에게 쩔쩔매던 관계자들이 대기실을 치워야 하니 비켜달라고 말하자, 밴드는 '이 의자랑 테이블만 빼고 마음대로 치워도 돼'라며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아랑곳 않은 채 날이 바뀌도록 술을 마셨다고. 특히 노엘은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취했는데, 09년 투어 중 노엘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신 적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술파티는 새벽 세시가 되어서야 끝났다고 한다.

2009년 내한 전후는 노엘과 리암이 각각 블로깅 트윗을 하고 있던데다, 국내 오아시스 팬덤이 온라인상에서 극도로 활성화되어 있던 시기라 많은 일화들이 전해진다. 시간순으로 정렬하면 이렇다.

2009년 영국 코벤트리 리코 아레나 공연 : The Masterplan
노엘 - "You come all the way from Korea! Good For you.(한국에서 먼길 왔구나?!! 좋은 일이야)"
리암 - "We're going there next week.....We're going there next week.(우리는 한국에 다음 주에 가..x2)"

2009년 서울 올림픽공원 공연 : Live Forever
2009년 서울 올림픽공원 공연 : Don't Look Back in Anger

2008~9년 투어를 함께 뛰는 드러머 크리스 섀록[85]의 드럼 테크닉도 끝내줬다는 후문1, 스탠딩 관람석의 점핑을 견뎌내지 못하고 여러명이 실려 나갔다는 후문2
http://www.youtube.com/watch?v=eg_dKNTLmOg

'7월에 또 보자'는 리암의 약속은 2009년 7월 옐로우나인이 준비하는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오아시스가 헤드라이너로 공연하게 되면서 지켜졌다. 이들은 페스티벌 3일 째에 출연[86]했다. 허나 아쉬운 점은 팬들 대부분이 페스티벌 1일째부터 이미 지산에서 3박 4일의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기에 공연 전후의 뒷이야기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2024년 9월 26일 NME의 보도에 따르면 2025 재결합 투어에 아시아 국가로 한국과 일본이 포함 되었다고 기사가 났다. 이게 사실이라면 2009년 지산 공연 이후 16년 만에 돌아오는 것.

2024년 11월 20일 코엑스 K-POP 스퀘어 미디어'말이 씨가 된다.' 라는 문구를 선보이며, 11월 22일 오후 12시 아시아 투어 발표를 예고하였다. X

7.2. Butterfly 표절 시비?

흔히 2009년 8월경 빅뱅의 멤버 G-DRAGON과의 표절시비가 붙었다고 알려져 있다. G-Dragon이 공개한 30초짜리 티저곡 3곡중 'Butterfly'라는 곡이 'She's Eletric'과 흡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 노래 비틀즈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를 가져다 썼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자신들이(노엘이) 좋아하는 밴드들의 스타일[89]과 음악[90]을 많이 한 밴드라 별로 의미가 있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표절시비에 휘말린 적 있을 때[91] [92]의 표절을 인정하여 상황을 타파한 전력이 있으며, 옛 곡의 오마주를 긍정하는 밴드이다. 또한 노엘은 오히려 '누군가 우리 곡을 베껴도 아무 상관 없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7.3. DVD Lock The Box 인터뷰

국내에서는 하단의 인터뷰로도 유명하다. DVD Lock The Box의 캡처이다.
파일:attachment/오아시스(밴드)/lock_the_box.jpg
사실 인터뷰 장면 두 개를 짜깁기해 놓은 것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대로 퍼졌다.
파일:attachment/5_8.jpg
전체 내용은 이렇다. 인터뷰 끝자락인 35분 18초경에 나온다.

마지막 하단 원문은 "You bunch of cunts. So buy fucking T-shirt and poster on the way out you fucker." 영국 영어를 좀 아는 사람이면 알겠지만 저 욕설 번역은 매우 의역이 잘됐다. 웃길려고 욕 집어넣은 게 아니다.

이외 자세한 정보는 오아시스(밴드)/짤방을 참조.

이후 리암의 '엿같은 티셔츠'는 노엘의 '동그란 시디'와 함께 오아시스의 클리셰가 되어버렸다. 노엘의 솔로 밴드인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의 2015년 내한 공연 때, 매점의 티셔츠 이름이 '뭣-같은 티-셔쓰'에 음반은 '정말 동그란 CD'였다. #

8. 디스코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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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담

10. 관련 문서



[1] 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의 불화로 인한 노엘 갤러거의 탈퇴로 해체. [2] # [3] Definitely Maybe,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HFB] 현재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로 개별 합류 [5] The Ya Ya’s라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귁시가 잠시 신경쇠약으로 밴드에서 나오고 영입된 멤버이다. Wonderwall 뮤비에서 나오는 베이시스트가 바로 이 사람. 하지만 미국에서 투어 중 영국에 있던 여자친구를 그리워해 밴드를 그만두었다. 그가 탈퇴한 날에 생방송 스케줄이 있었는데, 본헤드가 베이스를 대신 잡았다. # [6] 앨런 화이트가 탈퇴한 이후부터 7집 음반 녹음까지 활동한 멤버로, 링고 스타의 아들이다. 정식으로 오아시스의 합류를 권유받았지만 거절하였고, 현재는 더 후에서 활동하고 있다. [HFB] [8] 잭 스타키가 나가고 오아시스가 7집 투어를 시작하면서 함께 활동한 멤버로 The La’s의 드러머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오아시스 해체 이후 비디 아이의 정식 멤버로 활동하다 비디아이 해체 이후 뒤로 2017년부터 겜 아처와 함께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의 세션 멤버로 합류했다. 한 가지 일화로는 수프를 먹으러 잠시 나갔다 들어오니 오아시스가 해체되어있었다고... [9] 본래 쿨라 셰이커의 멤버. 라이브 공연시 뒤 쪽에 있는 머리와 수염이 긴 사람이 달링턴이다. [10] 데뷔 초반 노엘은 단순 송메이킹 담당 & 기타리스트이자 공연 중간중간 설 푸는 이야기 꾼 수준이었고 노래는 그닥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노엘이 노래를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건 2집부터다. 실제로 2집 수록곡 중 하나인 Wonderwall의 경우 앨범에선 리암이 불렀으나 노엘도 공연에서 자주 불렀다. [11]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헤드 라이너, 얼스 코트 및 메인 로드 공연 전 좌석 매진, 넵워스 공연 양일 간 25만 명 이상의 관객 운집 등의 기록을 세우는 등 그야말로 최전성기였던 시절의 라인업이다. [12] 정확히 말하자면 본헤드는 4집 제작 시기에 노엘이 내린 금주령을 어긴 것이 계기가 되었고, 귁시는 신경쇠약을 이유로 스스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하지만 결국 본헤드가 나갈 무렵에 같이 나갔다. [13] 이후 토니는 2010년 10월에 자신의 오아시스 시절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Oasis: The Truth라는 자서전을 낸다. [14] 사실상 어두운 건 포스트 브릿팝이라 할 수 있다. [15] 메인 송라이터인 노엘 갤러거 뿐만 아니라 보컬 리암 갤러거도 이러하다. [16] 때문에 초보 기타연주자들이 오아시스 곡을 많이 연주한다. [17] 대한민국 한정 오아시스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모던 락이라고 하는 음악들이 보통 이 오픈코드로 이루어져있다. [18] 다만 초기에 폴 '본헤드' 아서스는 노엘에게 바레코드만 치라고 지시를 받았다고 하며, 실제로 본헤드와 귁시가 있었던 시절에 본헤드가 기타를 치는 걸 보면 전부 바레코드로 연주한다. 물론 이것은 본헤드의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기타 실력을 고려한 결정이었고(노엘이 기타 솔로를 전부 혼자 소화해야하기 때문) 나중에 겜 아처가 영입된 후로는 연주 방식이 달라졌다. [19] songbird, Wonderwall 등 [20] 크리에이션 레코드의 사장인 앨런 맥기는 Definitely Maybe를 펑크락 앨범으로 분류했다. [21] 노엘의 솔로 음악들이 오아시스의 음악과 많이 다르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팬들은 노엘 솔로 음악 중 몇몇 곡은 리암이 불렀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22] 사실 오아시스 초창기 시절의 라이브를 보면 노엘은 노래를 수준급으로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23] Live Forever, Wonderwall, champagne supernova, stop crying your heart out, Slide Away, Lord Don't Slow Me Down, Listen up 등 [24] 노엘이 마약을 끊은 직후의 앨범인데, 아무래도 그는 청년 시절의 대부분을 마약과 함께 보냈기에 그 후유증이 엄청났을 것이다. 한 때 마약을 끊은 이후로 우울증과 공황 장애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4집의 곡들 대부분은 그의 어두운 내면과 혼란스러움 등을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Gas Panic!, Where did it all go wrong?, Roll it over 등. [25] 평론가들은 일반 대중과는 다른 시선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26] 컴필레이션 앨범인 The Masterplan이 3집보다 퀄리티가 더 좋아서 이 앨범이 3집이 됐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 편이다. [27] 물론 기본적으로 듣기 편한 기타 팝 락이 기본이지만 틀 내에서는 더욱 깔끔한 사운드를 지향하고 여러 영향을 받아들였다. 비디 아이는 사실상 몇십년 전의 정통 로큰롤음악을 구사했다. [28] 풀네임은 레논 프란시스 갤러거. 이름 한번 엄청나다. [29] 가장 비슷한 사례로 AC/DC가 있는데, 이쪽도 평론가들에게 평가가 좋으나 자가복제라며 까이기는 한다. 오아시스는 자가복제라기보다는 노엘의 작곡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그의 전성기 때 나온 초창기 앨범 두 개는 이견이 없이 최고의 앨범으로 취급받으나 그 뒤로 다소 임팩트가 약하다는 평을 받는다. [30] 평론가들이 실험적인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보수적이고 복고의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들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아시스 초기 앨범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맞다.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건 '음악을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인 것. 오아시스의 과도기 시절 그래피, 즉 3,4,5집이 높게 평가 받지 못하는 건 오아시스가 추구하는 음악의 특성 때문만이라기 보단 초기 걸작들에 비해 떨어지는 결과물, 자기 복제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나중에는 다시 좋아졌지만. [31] 앨범 판매량은 너바나가 7,500만장, 라디오헤드가 3,000만장으로 추정된다. [32] 믹 재거만이 아니라 조지 해리슨도 깠다. 여담이지만 이때 노엘도 같이 있었는데 말리기는커녕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리기만 했다. [33] 물론 U2의 음악에 대해선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이며, 노엘과 보노는 꽤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심지어 2015년 우리나라에서 피키캐스트가 주관한 인터뷰에서 에릭남이 노래방 가면 누구노래 부를꺼냐고 묻자 U2 노래 부르겠다고 대답했으니, 말 다했다. 단지, 보노의 왕성한 사회활동이 꽤나 못마땅하다. [34] KID A 전까지는 칭찬했으나 그 이후로 지나치게 자신들만의 세계로 들어간다면서 본격적으로 까기 시작했다. [35] 노엘 한정으로, KID A 이후의 음반을 딱히 미워하는 것만은 아닌듯 하다. Q Magazine 2002년 5월호에는 Amnesiac에 대해, 그리고 Q magazine Exclusive! Noel Plans Solo Album 인터뷰에서 톰 요크 싱글에 대한 호의적인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뒤에 욕이 들어갈 때도 있지만 꾸준히 라디오헤드 음악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러나 항상 지적이 나오는 건 앨범이 나올때마다 예측할 수 없는 진취성과 전쟁과 환경과 관련된 어두운 정치색에 대한 반감이다. 노엘의 성격상 "즐거운 음악을 해봐라"는 애증에 가까운 불평에 가깝다. #와 CROSSBEAT 지 2009년 10월 인터뷰를 보면 연주와 공연에 관해서는 호의적인 면도 보인다. [36] 리암의 경우에는 다소 의미가 없는 것이 2011년 OK Computer를 한 번도 듣지 않았다는 인터뷰를 했기 때문. OKC마저도 안 들었는데 더욱 내면으로 침잠하고 대중적인 사운드를 자른 뒷 앨범들을 유심히 들었을 가능성은 그다지 없고 그냥 맘에 안 드나보다. 다만 리암의 성장배경, 취향과 추구하는 음악을 봤을 때 라디오헤드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기는 하다. 그래도 Karma Police는 들어봤는지 '카르마 폴리스다. 그거 말곤 별거 없다'라는 나름 칭찬조의 트윗을 남기기도 하였다. [37] 블러와의 관계 참조. [38] 노엘 갤러거와는 사적으로 친하다고 한다. 같이 노래 부른 적도 있지만, 리암은 싫어한다. "크리스 마틴은 꼭 무슨 지리 선생같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사실 크리스마틴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역사학과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리스어나 라틴어 등으로 된 고전에 대해 연구하는 과를 나왔다.) 또, 노엘의 현재 부인인 사라가 한 시상식에서 당신들 노래가 좋다고 하자 콜드플레이의 멤버들이 사라를 스파이로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한다. [39] 그런데 리암도 같이 노래를 불렀다! https://youtu.be/NDJlPG_M600이 무대 이후 리암은 크리스에 대해 안 좋게 말한 것을 사과했다고 한다. [40] 스타세일러 쪽에서도 싫어한다지만 Cast No Shadow는 공연에서 자주 커버곡으로 연주했다. 노엘이 스타세일러를 싫어하는 이유를 굳이 꼽자면 그들의 곡인 'Alcoholic'을 깐 전적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노엘은 'Alcoholic'에 대해 자기는 "아버지에게 맞더라도 'Live Forever'를 부르는데 왜 이것들은 징징대냐"라는 식으로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이에 스타세일러는 라이브 공연에서 'Poor Misguided Fool'이란 곡을 하기 전에 "이 곡은 노엘 갤러거에게 바치는 곡입니다"라는 멘트로 응수했다. [41] 노엘은 쭉 로비를 온갖 말로 욕해왔고, 리암의 경우 로비 쪽에서 로큰롤한다면서 리암한테 붙어다닐 때도 있었으나 로비 윌리엄스가 솔로 앨범으로 크게 성공하고 오아시스가 추락하면서 서로 설전을 벌이다가 사이가 안좋아졌다. [42] 재밌게도 에미넴또한 논란이 있는 스타들을 디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43] 노엘 曰 "세상에서 제일 X같은 밴드의 음악을 들을만큼 내가 충분히 오래 살아서 기쁘다". 그런데 sum41의 보컬인 데릭은 Morning Glory를 방송에서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른 적이 있다. [44] 노엘, 리암 둘 다 깐다. [45] 오아시스라기 보다는 노엘 갤러거 개인적으로 깠다. 2015년에 공개되었던 Hello를 겨냥하였는데 너무 올드한 스타일 덕분에 "할머니나 듣는 노래" 같다라며 이 노래에 열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가 주요 골자이다. [46] 유일하게 Fxxk가 들어가지 않은 인터뷰. 어린아이들 앞이라서 그런지 욕설을 자제하고 나름대로 애들 눈높이에 맞춰서 농담도 한다. [47] 자기보다 고작 20개월 일찍 태어났는데 음악은 평생 한 것 같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존경의 표현이다. [48] 이때 조니 마도 함께 공연했다. [49] 2015년 내한 인터뷰에서 만일 노래방에 간다면 U2 노래를 부르겠다고 대답할 정도이다 [50] 마룬 5의 베이시스트 마이클 매든이 노엘을 만났을 때 "당신 때문에 기타를 처음 배우게 되었다"라고 말하니까 노엘은 "어느 밴드에서 베이스를 치는데? (A: 마룬 5요) 뭐? Rock 'n' Roll Star를 듣고서 그딴 노래를 만들었다고?" 라고 말했다. 물론 농담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후에 "마룬 5 나올 때 화장실 다녀오세요"라고 드립을 친 걸 보면 딱히 마룬 5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8월 노엘 인터뷰 참고로 그 날 새벽에 으리으리한 집에 가서 스톤 로지스의 노래를 들으면서 놀다가 또 매든을 만났는데, 매든이 "여기가 내 집인데요" 한마디에 "집 열라 좋네, 친구."라고 한 마디했다. [51] # 인터뷰에서는 본인이 존경하는 밴드의 프론트맨들을 언급하기도 한다. " 믹 재거도 혼자서 하면 이 정도는 못 할걸? 보노도 혼자서는 이 정도 못 할 테고, 로버트 플랜트도 혼자서는 이 정도 못해. 아마 프레디 머큐리 정도면 할 수도 있을 텐데, 지금 세상에 없잖아." [52] Roll With It과 Country House로 시작된 브릿팝 전쟁 이전에는 서로 미국에서 라디오에도 같이 출연하기도 했다. 오히려 당시의 영국 언론들은 스웨이드의 프론트맨 브렛 앤더슨과 블러의 프론트맨 데이먼 알반, 엘라스티카의 프론트우먼 저스틴 프리쉬먼의 삼각관계를 이용하여 스웨이드와 블러를 라이벌로 몰아가려 했었는데.. [53] 심지어 이 시기에 노엘은 어머니인 페기에게 '난 네가 그런 말 하라고 가르친적 없다'는 소리까지 듣기도 한다. [54] 흔히 한국으로 치면 블러는 파크라이프로 올해의 트랙 상을 수상했고 오아시스는 2집 앨범 자체로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블러가 받은 단일 싱글 상보다는 더 큰 규모의 상이다. [55] 리암이 마이크를 턱 아래 각도로 내리고 부른 얼마 없는 공식석상 라이브 중에 하나. [56] 알다시피 이 양반들은 펑크 락의 근본인 밴드며 전성기에는 방송에서 쌍욕을 거침없이 박고 대놓고 영국 여왕을 디스했을 정도로 거친 타입으로 유명하다. 그런 섹피조차 재결합 당시에 오아시스 관련 질문을 받았을때, 어차피 본인들이 까봐야 최전성기의 갤러거 형제는 더한 쌍욕과 디스로 맞받아칠게 뻔하니 답변을 피한 것. [57] 1996년, Balloch Park 공연에서 찍힌 사진이다. 참고로 이 날 리암은 펫시 켄짓과 약혼을 발표한 상태였다. [58] 둘 다 약에 취했는지는 불명이지만 앉아있는 리암 뒤에서 노엘이 백허그를 취했고 그 상태로 둘이서 자연스럽게 키스했다. [59] "물론 난 리암을 좋아한다. 컵라면만큼은 아니지만." - 노엘 갤러거 [60] 맏형인 폴 갤러거를 포함한 갤러거 삼형제는 당시 영국에서 노예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던 아일랜드 이주민 2세, 극빈민층이었으며, 범죄가 일상이던 맨체스터의 버니지에서 자랐다. 부친은 알코올 중독이었고 상습적인 가정 폭력범이었는데, 토마스는 리암에게마저 폭력을 가하면 결혼 생활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리암을 제외한 형인 폴과 노엘 갤러거에게만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물론 아내에게도 그랬다. 그러나 오아시스 때의 인터뷰에 따르면 리암 또한 다른 가족이 없을 때에는 아버지에게 폭행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노엘은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면 기절할 때까지 맞다가 다시 폭력으로 눈을 뜨는 게 일상이었고, 청소년이 되기도 전에 코가 두 번이나 부러졌다. 이때 후유증으로 말더듬증이 있었고 고치기 위해 몇년이나 걸렸다고... 당시 노엘과 리암은 같은 방을 썼었기 때문에 자주 싸우면서도 서로 유대감이 깊었다. [61] Our kid 또는 rkid. 형제를 칭하는 맨체스터 사투리. 리암과 노엘이 서로를 부르는 애칭이다. 해체한 후에도 이렇게 부르는 중이다. [62] 그 직후 NME에 의해 내한 당시의 '한국에서 설사 터졌어!'와 함께 리암의 트위터를 사랑하는 이유 11개 중 하나로 뽑혔다. 팬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63] 사실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인들도 가족이나 친척과 동업하다 여러 문제로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은 걸 고려하면 갤러거 형제의 불화도 특이 케이스는 아닐 수도 있다. [64] 말하는 도중에 리암(세라 셔먼 분)이 노엘(제임스 오스틴 존슨 분)의 젖꼭지를 꼬집지를 않나… 가끔가다 의견 일치를 보는데 그 주제라는게 스폰지밥, 닌자거북이, 러그래츠, 섹스 앤 더 시티, 제일 좋아하는 윌 스미스 영화같은 것… [65] 오아시스의 대표곡인 Wonderwall을 패러디한 것이다. [66] Plum에는 자두라는 뜻 외에도, 모든 사람이 동경하는 직업이나 지위, 역할 등을 뜻하기도 한다. [67] Accusation이 흔히 고소로 번역되기에 이번에도 고소를 했다는 식으로 알려졌으나, 이 사건은 형사가 아닌 민사 사건에 해당되기 때문에 정확히는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이 맞다. [68] 노엘은 솔로 전향 이후 기존의 오아시스 음악에서 벗어나 훨씬 더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 반면, 리암은 약간의 팝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여전히 오아시스 시절의 정통 로큰롤을 추구하고 있다. [69] 몇 안 되는 형제 듀엣곡 [70] 노엘이 리암을 부르는 애칭 [71] 일-연-월 순으로 표기하는 것은 영국식 일자 표기로, 동양식 연-월-일로 바꾸면 2024년 8월 27일 오전 8시, 시차를 적용하면 오후 4시이다. [72] 동생이 먼저 화해의 제스쳐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73] 오아시스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내한 관련 게시물이 게시되며 확실시 되었다. [74] 원래 오아시스라는 밴드 자체가 갤러거 형제 위주의 밴드였고 나머지 멤버들은 보조에 가까웠다. 겜 아처와 유명 밴드의 리더도 해본 앤디 벨이 들어온 Heathen Chemistry부터 형제 외 다른 멤버들도 작곡에 참여했지만, 그래도 형제의 위치는 확고했던 편. [75] 오아시스가 재결합을 발표한 시점에도 라이드는 3월에 발매한 신보 ‘Interplay’의 투어를 도는 중이다. [76] 맨시티가 굉장히 암울한 성적을 내던 시절,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을 나가는 노엘에게 맨시티 팬들이 "노엘, 어떻게 좀 해줘."라 했다. 이에 대한 노엘의 답은 "난 200파운드밖에 없는데." [77] 당시 박지성은 맨유 소속이었고, 설명했다시피 오아시스는 맨시티의 빠이며, 맨유 까다. [78] 그 당시 인구 기준으로 약 285만 명 [79] MAX, NOW 등은 음반 차트 1위를 독식하고 넘버링이 두 자리수에 달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여기 수록되느냐가 해당 가수의 한국 음반 판매량을 좌우했으니 [80] 그나마 소위 '롤라장 음악'은 대부분 유럽 출신 아티스트였기에 어느 정도 인기는 있었다. [81] 당시 1위가 I'll Be Missing You로 신드롬을 만들던 퍼프 대디였다. [82] 리암의 공연에서 십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83] 퇴근 직후 공연장을 찾은 중년 남성 [84] 탬버린은 데뷔 초부터 리암이 연주하던 악기로 공연 끝에 곧잘 팬들에게 던지거나 선물한다. 한국에서만의 이벤트는 아니다. [85] 노엘이 가장 존경하고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는 리 메이버스가 주축이 된 초기 브릿팝 밴드 The La's의 전 드러머 출신. [86] 이 지산밸리 록페스티벌 참여 뒤 단 두 공연 후 오아시스는 해체한다. [87] 프랑스 토크쇼에선 프랑스어 하나 해보란 거듭된 부탁에 '난 영어도 겨우 하는데'라며 거절했던 사람이다. [88] 이번엔 노엘 솔로가 아닌 리암이 보컬을 하는 풀밴드 버전 [89] 대표적으로 비틀즈와 스톤로지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90] 대표곡인 Don't Look Back In Anger도 존 레논의 솔로 활동 당시 대표곡 Imagine의 피아노로 시작하는 도입부를 오마주했다. [91] 1집 시절 코카콜라의 CM송과 수록곡 Shakermaker 간의 4초 표절시비가 걸린 적 있었는데, 그 때문에 호주달러로 50만을 지불하게 된 노엘이 "자, 이제 펩시를 마시자."라고 말했다. 참고로 50만 호주 달러 한화로 약 5억이다. [92] 또한 1집 수록곡 Morning Glory는 R.E.M의 The one I love의 리프를 그대로 가져왔다. [93] 예외로 딱 한번 리암이 맨체스터 테러 사태 때 Don't Look Back In Anger을 부르긴 했다. [94] 원더월과 샴슈는 셋리스트에 없다. [95] 발매이유가 참 웃긴데, 코로나 19로 인한 자택격리 중 오랜만에 집 청소를 하다가 데모 CD를 찾아서 발매한 거라고 한다.코로나가 가져다준 행운 [96] 정치적으로 진보적으로, 노동계급 출신이며, 노스웨스트 잉글랜드 공업지대 출신 [97] 1997년 그래미상 최우수 록 보컬 퍼포먼스 그룹 부분 후보, 1997년 그래미상 최우수 록 음악 후보 ( Wonderwall), 1999년 그래미상 최우수 뮤직비디오 후보 ( All Around The World) [98] 이와 같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 측의 행보에는 비판적인 의견이 대다수이다. 비록 오아시스가 음악적인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미비할지라도 문화적인 영향력은 동시대 여느 밴드보다 거대했고 충분히 헌액 자격이 있기 때문. 전당의 영국 밴드 천대 경향이 다시 한 번 발현되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99] 해당 문서와 관련 문서에 적혀 있는 대부분의 해설들은 해외 포럼, 팬 뉴스 소식과 더불어 이 카페 내의 아카이브를 참고로 작성되었음을 밝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