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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05:11:29

반제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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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Wanseekonferenz
영어: Wannsee Conference
1. 개요2. 배경3. 참석자4. 진행5. 여담6. 대중매체

1. 개요

반제 회의 1942년 1월 20일 베를린 근교 반제의 별장에서 국가보안본부 본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주재 하에 슈츠슈타펠 지휘관들과 각 행정부처의 수뇌부들이 모여 진행한 회의다. 이 회의를 통하여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해결책(Endlösung der Judenfrage)의 방향이 절멸(Vernichtung)로 확정됐다.

2. 배경

1933년 집권 이후 나치 뉘른베르크 법과 같은 수단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경제/사회적인 압력을 가했다. 이에 따라 1933년 당시의 통계에 따르면 약 40만명 가량이었던 독일 내 유대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었던 25만명이 나치의 박해를 피해 타국으로 이주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의 독일에서는 유대인의 흔적은 많이 옅어졌다. 제일 많이 망명을 떠난 곳은 미국이며 그 외에도 영국이나 프랑스, 심지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유대인들도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초반에 독일이 승승장구하면서 유럽 전역을 석권했고 이에 따라 독일이 지배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수가 다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특히 1941년 6월에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고 전선과 점령지가 크게 확대되면서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서유럽에서는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기존 사회에 동화되었던 반면 동유럽에는 유대인의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이드리히는 소련에만 대략 500만명의 유대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1941년 7월 공군 제국원수이자 독일 제3제국의 2인자였던 헤르만 괴링은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해결책'을 강구할 것을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게 지시했다.

3. 참석자

파일:반제 회의 참석자 명단 1.jpg 파일:반제 회의 참석자 명단 2.jpg
회의록 중 참석자 명단 부분.

4. 진행

1941년 가을 무렵만 하더라도 독소전쟁은 몇 달 안에 독일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점쳐졌고 이에 따라 하이드리히는 유럽 대륙의 모든 유대인을 소련 변경 지역으로 추방해서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3] 본디 반제 회의는 1941년 연말에 열릴 계획이었으나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감행한 진주만 공습과 연이은 독일의 대미 선전포고 등이 겹치면서 하이드리히는 회의를 한 달 가량 연기했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동부전선에서 일어난 모스크바 공방전 이후 독일의 전격적인 승리가 수포로 돌아가면서 하이드리히의 원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고 여기에 아돌프 히틀러의 독촉까지 더해지면서 하이드리히는 유대인들을 집단 학살하기 위한 절멸 수용소를 폴란드에 건설하는 안에 착수했다.

1942년 1월 20일 반제에서 열린 친위대와 각 행정부처 수뇌부들의 회의는 사실상 하이드리히의 독무대였다. 하이드리히는 조만간 유대인들의 해외 이주가 하인리히 힘러에 의해 금지될 것을 암시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통한 해외망명 유도는 불완전하며 유대인들의 절멸만이 최종적인 해결책임을 역설했다. 아이히만의 증언에 따르면 하이드리히는 내심 다른 참가자들이 절멸수용소와 같은 학살 프로그램에 거세게 반발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막상 아무도 반발하지 않자 기뻐했다고 한다.

큰 틀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절멸계획이 수립된 가운데 프랑스 혁명 이후 유대인들이 이미 150년 가까이 유럽 사회에 상당 부분 동화됐다는 점이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에 대해 하이드리히는 나름대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유대인 혼혈의 경우 조부모를 기준으로 조부모 4명 가운데 둘 이상이 유대인이면 ( 뉘른베르크 인종법의 기준에 따르면 소위 1급 혼혈) 유대인으로 취급하며 그 이하면 (소위 2급 혼혈) 독일인으로 취급하는 방안이 제안되었고 덧붙여서 1급 혼혈일지라도 독일인과 결혼했고 아리안족스러운 외모를 가졌다면 박해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주장했다고 전해졌으며 독일을 위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서 철십자 훈장을 받은 유대인들도 박해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 하이드리히에 의해서 제안되었지만 실제 홀로코스트 집행 과정에서는 그런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조차 신경 안 쓰고 유대인이다 싶으면 무작정 체포해서 그냥 절멸수용소로 이송한 경우가 많았다.

독일의 반유대인 정책에 공공연히 저항하는 동맹국들(특히 루마니아 헝가리)에 대한 대처법도 반제 회의에서 논의되었다. 특히 호르티 미클로시 섭정이 이끌던 헝가리는 독일의 반유대인 정책에 완강히 저항했고 아돌프 아이히만이 여기에 몹시 분개했다. 결국 호르티 미클로시가 실각한 1944년 여름에야 헝가리에서도 반제 회의에서 결정된 절멸정책이 실시되었다.

5. 여담

6. 대중매체



[1] 다만 아이히만은 아들이 떠벌려서 잡힌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아들에게 말하지 않거나 아들이 떠벌리지 않았다면 뮐러처럼 연기처럼 사라진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2] 종교개혁가 루터와 이름만 같다. [3] 당시 동부점령지관리부(Reichsministerium für die besetzten Ostgebiete) 장관이었던 알프레트 로젠베르크에 의해 이른바 로젠베르크 계획으로 불리는 동부 점령지 관리안이 제안된 것도 바로 이 회의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