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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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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우크라이나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중세2.2. 근세2.3. 19세기2.4. 20세기2.5. 21세기
2.5.1. 2020년대
3. 공동체4. 대사관5. 여담6. 외부 링크 및 관련 기사7. 관련 문서

1. 개요

폴란드 우크라이나와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언어, 문화에서 슬라브족에 속해 있지만, 중-근대 폴란드는 과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시절 우크라이나를 강압적으로 지배했던 과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독립 후 친러정권이 지속되었던 우크라이나여서 더더욱 안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유로마이단 혁명과 크림반도 무단점령 사태, 돈바스 전쟁 발발 이후로 친서방정권이 들어서고 서방식 군개혁을 박차기 시작하자 공공의 적 러시아를 두게 되었기에 양국은 일단 역사적 감정은 뒤로하고 손을 잡기 시작한다.

러시아를 꾸준히 위험시하던 폴란드로써는 우크라이나가 우군이 되어준다면 칼리닌그라드 방면과 벨라루스 방면의 러시아군을 집중적으로 보면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꾸준히 군비증강을 하던 도중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자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버리려 할 때 우크라이나 친서방 정권의 붕괴는 국방부담이 더 높아지는 폴란드였기에 영국과 함께 가장 적극적으로 T-72나 MiG-29, PKM, AKM 등 폴란드군에서 운용하던 구소련제 무기들을 전부 우크라이나로 보냈고 K-2 흑표전차와 M1 에이브럼스 전차 도입 발표 이후 잉여분이 된 레오파르트2를 독일 허락을 못 받더라도 보내겠다며 나설 정도로 독일에게 전차 지원을 촉구했다. 이렇게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는 양국의 공동의 적 러시아에 대항에 많은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현재는 동맹관계로 바뀌었다.

2. 역사적 관계

2.1. 중세

중세 폴란드 왕국 카지미에시 3세 키예프 루스의 후신 중 하나인 루테니아 왕국과 잦은 전쟁을 벌였으며, 결국 폴란드 군대는 루테니아 왕국 영토 중 갈리치아 지방을 장악하였다. 루테니아 왕국의 자카르파탸 영토는 헝가리 왕국이 점령하고, 볼히니아 영토는 리투아니아 대공국 측으로 귀순하였다. 체르니히우,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대부분 지역은 14세기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귀순하였으나, 14세기 말 리투아니아 대공국 측의 요가일라와 폴란드 왕국의 야드비가의 결혼에 의해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이 설립한다. 다시 말해서 우크라이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한 중세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폴란드와 동군연합 상태가 되었다.

2.2. 근세

이후 16세기 말에는 우크라이나 대부분 지역을 장악했던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루블린 조약을 맺으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거듭났고, 이 와중에 우크라이나 일대에 리투아니아인 귀족들이 폴란드인으로 대체되면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게 되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지배 하에서 우크라이나 지역은 폴란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우크라이나 지주 계층 상당수는 정교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폴란드인 귀족들과 통혼했으며,[1] 폴란드 왕국 시절부터 유대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역에 정착하여 마름 및 소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2], 연방의 다른 농노들처럼 정교회를 믿는 농노들도 일주일에 8인일의 부역을[3] 바치는 엄청난 착취를 당했다.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해 취약한 경제 기반 때문에 농산물을 수출하고 그 대가로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사치품을 수입하였는데, 대지주의 영지가 밀집한 우크라이나 지방이 이런 착취의 주된 희생양이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아무리 반러, 친서방 감정이 심하더라도 폴란드를 경계하는데 이런 과거사가 있었다.

중동부 유럽 전반적으로 그랬듯이 폴란드인들은 슐라흐타(Szlachta)[4]로서 현지 사회적, 정치적 엘리트로, 정교회권 우크라이나인들은 도시 외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으로서 사회적, 경제적 분화와 이에 따른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루블린 조약 이후 27년 후인 1596년에 르부프의 정교회 시민들을 겨냥하여 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파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으로 개종을 강요했다.[5] 다른 한편으로 크림 타타르의 노예 납치로 우크라이나 각지의 인구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자 스테판 바토리 지그문트 3세는 폴란드 본토의 폴란드인 농민 상당수를 오늘날 우크라이나 서부 갈리치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는 갈리치아로 새로 이주하는 폴란드인 농민에 한해서 20년 동안 세금 감면, 봉건 요역 면제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고 이를 계기로 갈리치아 각지에 폴란드인 이민자들이 대거 정착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우크라이나 중부와 동부에는 슬라브 반농반목 집단인 코사크들이 자리를 잡고 크림 타타르족의 침략으로 황폐화되었던 흑토지대를 서서히 개간하며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한 때 방기되었던 우크라이나 동부 흑토 지대는 코사크들이 번창하면서 다시 인구가 증가하고 농토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귀족들은 크림 칸국의 위협이 약해질 때마다 코사크들이 다시금 개간한 우크라이나 동부 영토에도 공납과 요역을 부과하려 시도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7세기 우크라이나 중부 지역에서 코사크 헤트만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정교회 차별 및 폴란드 대귀족들의 코사크 농노화 시도를 이유로 봉기를 일으켰다. 폴란드-리투아니아 귀족들은 일전에 스타니스와프 주키에프스키[6]가 코사크 반란군들을 평화조약을 맺는 척 기만하고 방심한 코사크들을 기습해서 격파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코사크들을 만만히 보고 평화조약을 임의로 파기했는데 이 과정에서 친폴란드파였던 흐멜니츠키를 적으로 돌렸다. 초반에 승승 장구하던 흐멜니츠키는 연방군의 반격으로 밀리자 루스 차르국에 개입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영토를 대거 상실하였으며 드니프로 강을 경계로 동쪽은 루스 차르국, 서쪽은 폴란드-리투아니아 땅으로 정해졌다. 처음 조약과 다르게 키예프는 러시아 제국 차지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일대의 폴란드인 지주들은 상당수가 코사크들에게 축출당했다. 러시아 제국 내 다른 지역들 이를테면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지에서 독일인 지주들이 권리와 기득권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흐멜니츠키 봉기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자국 영내 정교회 신도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데 1676년 폴란드 의회는 정교회 신도들이 국외로 이주하거나 혹은 외국에서 이주해 오는 것, 총대주교들과 교섭하여 종교적 문제의 결정권을 넘기는 것 등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시 사형이나 재산 몰수형에 처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후 폴란드 귀족들은 정교회 성직자 상당수를 압박하고 포섭한 것을 기반으로 1708년을 전후하여 폴란드-리투아니아 영내 정교회는 동방 가톨릭으로 완전히 통합시키고, 영내 남아있는 정교회 신도들을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신도들로 명목상이나마 전부 동방 가톨릭 교파들로 개종시켰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서부 갈리치아 지역의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에는 정교회 전례만 유지하고 교황 수위권을 인정하는 형태의 교파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이 뿌리박게 되었다.

18세기 표트르 대제의 개혁정치 및 대북방전쟁 승리로 루스 차르국은 러시아 제국으로 거듭나며 강대국이 된 반면,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결국 18세기 말에 폴란드 분할로 멸망하였다. 갈리치아와 자카르파탸를 제외한 우크라이나 대부분의 지역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갈리치아 일대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구성국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으로 편성되었다.

2.3. 19세기

폴란드 멸망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인과 폴란드인의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가 된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에서는 폴란드인 지주들이 권리와 기득권을 유지하였다. 한편 오스트리아 제국은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과의 이탈리아 통일전쟁, 프로이센 왕국과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연달아 패전하며 이탈리아 반도 독일 연방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했고, 프란츠 요제프 1세 헝가리 왕국과의 대타협을 통해 헝가리인들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대신 폴란드 민족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 우크라이나인 민족주의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는데 이를 계기로 19세기 중반 이래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는 르부프를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러시아 제국 영내의 우크라이나 민족 운동은 반러 운동이 중심이 되었다면 갈리치아와 부코비나 공국[7]을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 영내 우크라이나 민족 운동은 폴란드인, 유대인, 독일인들에 맞선 민족 운동이 중심이 되었다.

2.4. 20세기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자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 생겨났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은 볼셰비키에 의해 멸망당했다. 그리고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으로 폴란드가 승리하면서 우크라이나 서쪽과 벨라루스 서쪽은 폴란드 땅이 되고, 동쪽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로 소련의 영토가 되었다. 전간기 폴란드 제2공화국에서 우크라이나계는 전체 인구의 16%를 차지하여 폴란드계에 이어 2번째로 높은 인구 비율을 차지했다.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인의 90% 이상이 농촌에 거주했다. 우크라이나계의 대부분은 폴란드 동남부에 거주했으며,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계가 제1민족을 차지했지만, 도시는 대부분 폴란드계와 유대계가 숫적 우위를 차지했다. 우크라이나계의 60%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신자였다. 폴란드 당국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폴란드 동남부 지역을 가리킬 때 ' 우크라이나'라는 표현을 지양하고 대신 역사적 명칭인 ' 루테니아'로 지칭하기를 원했다.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계를 상대로 동화 정책을 펼쳤다. 예를 들어 정부 기관에서는 우크라이나어가 퇴출되었으며, 전후 우크라이나 지역의 토지를 대부분 폴란드 농민과 퇴역군인들에게 분배하려고 시도했다. 우크라이나계 지하조직들은 이에 반발하여 폴란드 정부 관료와 친폴란드 우크라이나인들을 상대로 테러를 벌였다.

다른 한편으로 상당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이 폴란드 정부의 우크라이나계 탄압에 반발하여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였다. 20세기 초반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폴란드인 중에서 45~50%가 벨라루스계나 우크라이나계였다고 하는데 이들은 우크라이나계 아르헨티나인의 기원이 되었다. 당시 우크라이나인들은 미국으로도 이주를 희망했으나 20세기 초반 미국은 폴란드인 이민을 쿼터제로 제한한 상황이었고, 폴란드 제2공화국 내 우크라이나인 인구 관련해서 특별한 예외가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1935년에 폴란드 정부가 우크라이나계 정당과 협력하여 우크라이나계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이 일시적으로 나아졌다. 예를 들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우크라이나인들이 대부분 풀려났고, 우크라이나어 진흥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인들이 원하던 지역 자치와 우크라이나어 대학의 설립, 식민화 시도 중단 등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양자간의 갈등은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폴란드 제2공화국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이후 소련은 갈리치아 지역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서부를 폴란드에서 떼어 우크라이나 SSR로 넘겨주었다. 폴란드인들은 2차 대전 와중에 우크라이나인들로부터 학살을 당했으며 종전 이후 배상을 받지 못하고 우크라이나에서 대부분 추방당했다. 2차 대전 와중에 우크라이나계에 의한 폴란드인 학살 때문에 현재도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를 상당히 적대하는 편이다.

2차대전 당시 폴란드 남동부의 볼히니아와 동부 갈리치아에서 무려 12만여 명의 폴란드인들을 대량학살하고 나머지는 내쫓아서 인종청소를 감행한 스테판 반데라와 휘하 조직 우크라이나 봉기군(Ukrainian Insurgent Army)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단(Organization of Ukrainian Nationalists)은 우크라이나 일부에서는 조국 독립에 몸바친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물론 폴란드에서는 대량학살자를 찬양한다고 반발한다. 이 볼히니아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스로코프스키의 단편집을 바탕으로 보이치에흐 스마조프스키 감독이 제작한 영화 <증오>가 있다.

폴란드도 훗날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란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다. 냉전이 끝나면서 폴란드는 공산정권이 붕괴하고, 우크라이나 지역은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국이 되었다. 폴란드는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가장 먼저 인정한 국가 중 하나였으며, 동시에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결정된 두 나라 간의 국경의 불변을 천명하였다.

2.5. 21세기

폴란드는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두 나라는 반러성향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유로마이단 사태 때 폴란드는 러시아의 침략을 우려해서 크림 공화국을 러시아가 합병하자 우크라이나 국경지역에 군대를 주둔시킨 적이 있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합동여단을 창설하였다. 사령부 소재지는 폴란드 동부의 루블린.

물론 역사적인 앙금도 있어서 거의 러시아 못지 않은 앙숙이다. 우크라이나 우익 세력들은 폴란드에 대해선 반폴란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도 소수의 폴란드인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고 우크라이나에 동화되었다. 또한, 폴란드에도 소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경제가 어려워지고, 돈바스 전쟁으로 인해 난민도 꽤나 발생하면서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외에도 폴란드로 이주했지만, 정작 폴란드에서는 좋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다.[8][9][10] 한편 폴란드하고 리투아니아 관계도 이와 비슷한 편이다. 현대에 들어선 러시아 견제를 목적으로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역사적으로는 갈등이 존재하는 점이다.

2012년에는 UEFA 유로 2012 대회를 두 나라가 공동 개최하기도 하였다.

2.5.1. 2020년대

2021년 5월 3일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폴란드를 방문했다. # 7월 27일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리비우에서 미국, 리투아니아, 폴란드와 군사훈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 우크라이나 동부의 불안이 가중되면서 폴란드내 우크라이나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다. 폴란드는 100만에 달하는 난민이 폴란드로 이주할 것이라고 내다봤으며 #, 2월 26일 현재 이미 5만 명의 난민 #들을 받아들였다. 또한 폴란드는 영국,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공격에 맞선 3자 협력각서 체결을 발표했고 #, 개전 후 탄약을 우크라이나 측에 원조했다. #[11]

폴란드 마트에서 생필품과 식자재들의 품귀 현상이 벌어졌는데, 폴란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비로 구호물품을 구입하여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이 외에도 난민들에게 차를 태워다주거나 숙소를 임시로 제공하는 경우 # 그리고 폴란드 시민들이 헌혈 장소에 줄을 지어 대기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폴란드 정부 측에서도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반려동물을 데리고 입국하는 경우 별다른 방역 절차가 없다고 고지하는 등 훈훈한 광경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만에 하나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에는 난민과 현지인들 사이의 충돌이 생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후 다른 친서방 접경국과 마찬가지로 여권 대신 우크라이나 신분증 등을 제시하여 입국할 수 있게 되었다.

양국은 철도를 통한 협력을 증대하기로 합의했다. #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의회연설을 진행했다. #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며 대러 제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폴란드 제슈프 시, 프셰미실 시에 '구호자 도시' 칭호를 수여했다. #

이번 폴란드 미사일 피격 사격의 원인이 우크라이나군의 대공미사일 오발로 밝혀져 폴란드-우크라이나의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생겼다. # 하지만 전쟁 중이니 그럴 수도 있지 라며 폴란드에서 넘어갈 분위기도 있다.

12월 15일, 폴란드 경찰청장이 우크라이나 관리가 준 선물을 받은 뒤, 선물이 폭발해 부상당하자 폴란드 측이 우크라이나에 해명을 요구했다. # 이후 폴란드 측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음이 밝혀졌다. #

12월 2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방미 후 폴란드로 입국하여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

2023년 1월 2일, 폴란드는 전시에 스테판 반데라 추모행사를 한 우크라이나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크라이나 총사령관 발레리 잘루즈니가 하필 스테판 반데라에 대해 '본받을 인물'이라는 부적절한 언사를 했다는 것이다. 볼린 학살의 배후로 지칭되는 반데라를 기리는 행사를 폴란드는 결코 묵과할 수 없다.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반데라에 대해 "반데라보다 좋은 위인이 많다"고 할 정도로 반데라주의에 대해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강한 사람들은 반데라주의에 경도되는 경우가 있다.

폴란드가 우크라이나군의 무기를 수리하는 비밀 공장을 운영중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했다. #

2월 24일, 폴란드 측이 우크라이나에 레오파르트 2 전차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

폴란드 농민들이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입으로 자국 내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에 반발하자 폴란드 측에서 EU의 반발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 자세한 내용은 2023년 우크라이나 곡물 금수 사건 문서 참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속 길어져 영국에 이어 폴란드에서도 전쟁 피로감을 호소하는 일이 발생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이 진화에 나섰다. #

2023년 9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산 곡물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 연장을 선택한 일부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가장하고 있다'고 발언했는데, 이에 대해 폴란드는 “전쟁 첫날부터 우크라이나를 지지했던 폴란드에 부당한 대우”라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결국 폴란드는 분노가 폭발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을 전격적으로 중단하였다. #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한 국가이며 여러 방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국가 중 하나인데 우크라이나 측이 오히려 폴란드를 비난하고 WTO에 제소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자 결국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2024년 2월, 우크라이나 정부의 대표단이 폴란드 국경지역을 방문했으나 폴란드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

2월 24일, 폴란드 농민 시위대가 화물 열차에 실린 우크라이나산 곡물 160t을 버렸다. #

3.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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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상호간의 인구 이동이 많았으므로, 상당히 많은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이 서로의 나라에 거주한다. 양국의 공식통계에서 우크라이나의 폴란드계 우크라이나인 인구는 14만 명(2001년 조사), 폴란드의 우크라이나 소수민족 인구는 5만(2011년 조사)이지만, 혼혈이나 후손, 이주노동자의 숫자까지 합하면, 폴란드에는 우크라이나계 200만 명이, 우크라이나에는 폴란드계 200만 명이 거주한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폴란드로 피난가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늘어났다. # 그리고 폴란드 동부에는 우크라이나 난민촌이 형성됐다. #

우크라이나 피난민 중 절반 이상이 폴란드로 간 것으로 나타났다. #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 난민들과의 공존을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 폴란드내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늘어나면서 헌계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수용하면서 유럽에서 최대 난민 수용국이 됐다. #

4. 대사관

폴란드는 키이우에, 우크라이나는 바르샤바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5. 여담

17~18세기 당시 폴란드 왕국에서 갈리치아, 볼히니아, 포돌리아 일대로 이민 보낸 사람들 중에는 폴란드의 소수 민족 일파 마주리아인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연유로 오늘날에도 마주리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일부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다.[12] 아이러니하게도 우크라이나에 이주한 마주리아인들의 후손들은 오늘날에도 마주리아어를 고수하고 골수 가톨릭 신도로 유명한 것에 비해 마주리아 원주지에 남은 마주리아인들은 프로이센의 지배를 거치며 독일어를 사용하고 루터교회를 믿으며 대다수가 독일인과 동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주리아어는 중세 폴란드어와 공통점이 많지만 현대 폴란드어와는 소통이 어렵다.

6. 외부 링크 및 관련 기사

7. 관련 문서



[1]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어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생겼다. 우크라이나어가 러시아어 못지않게 폴란드어와도 흡사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2] 다만 폴란드-리투아니아 귀족들이 현지 주민들의 상공업자로서의 성장을 막기 위해 일부러 외부 민족의 유입을 촉진했다는 식의 설명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독일인과 유대인의 이주는 폴란드령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폴란드 본토,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 에르데이 공국, 루스 차르국, 발트해 연안까지 동유럽 전역의 일반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동유럽 자체가 전반적으로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독일인과 유대인은 현지 주민에 비해 경제적, 기술적, 문화적으로 앞섰으므로 현지 지배자들은 그들의 이주를 대개 환영했다( 독일 기사단처럼 아예 현지 지배자들도 압살할 정도의 독립세력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면). 독일과 가장 가까운 곳에 붙은 폴란드와 체코는 독일인과 유대인의 이민을 촉진하기 위해 각 도시마다 마그데부르크 법을 제정했다(즉 니네들 독일에서 살던대로 여기서도 살 수 있으니 우리나라로 와라 이런 뜻). 훨씬 후대의 예카테리나 2세 치하 러시아 제국도 종교의 자유와 병역 면제를 내걸고 독일인의 이민을 촉진했다. [3] 즉 가정에서 한 명은(대개 그 가정의 가장) 일주일 내내 영주에게 부역해야 했고, 다른 가족들도 일주일에 하루는 부역을 해야 했는 것이다. [4]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주귀족 계층. [5] 물론 이 과정에서 새로 근세 루테니아어 종교 서적들이 번역, 출판되면서 폴란드어가 우크라이나어에 영향을 주었다. [6] 나중에 제2차 빈 공방전에서 오스만 제국군을 격파하고 을 구원한 얀 3세 소비에스키의 외증조할아버지이다. 살아 생전 스테판 바토리와 지그문트 3세를 섬겼다. [7] 부코비나 공국은 원래 현대 루마니아의 전신 중 하나인 몰다비아 공국의 영토였으나 합스부르크 가문 지배를 거치며 우크라이나인 비중이 루마니아인 비중을 넘어섰다. [8] 폴란드인들이 서방으로 일자리를 찾으러 많이 떠나면서 생긴 빈자리를 우크라이나인들이 채우고 있는데, 서방으로 간 폴란드인의 대부분은 대졸이라서 이 두뇌유출이 폴란드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반면에 빈자리를 채운 우크라이나인들은 대부분 저임금 육체노동자들인데, 나라가 두 쪽으로 결딴나고 경제가 엉망이 된 이들 입장에서는 폴란드의 최저임금이나 기초생활보장도 감지덕지인 판이라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소련 붕괴 이후 수백만 명이 해외로 유출되면서 우크라이나는 인구감소 문제로 골치를 써기고 있다. [9] 재미있는 것은 폴란드도 동구권 붕괴 후 (우크라이나만큼은 아니지만) 서유럽으로 수백만의 인구가 유출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는 단순 육체노동자(화장실 청소 등에 종사하는 폴란드인 노동자를 비하하는 'Toilet cleaner'라는 비하 명칭도 있을 지경)뿐만 아니라 고급 인력(의사, 기술자 등)들도 서유럽으로 쭉쭉 빠져나가고 있어 골치가 더 아프다. 영국 농업이나 의료계는 폴란드계 이민자가 없으면 타격을 입을 정도이다. [10] 그나마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다행인 점은, 유럽 난민 사태로 인해 무슬림 난민들을 단호히 거부하는 폴란드가, 그래도 우크라이나인은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그나마 가깝고 세속적인 성향이라 심하게 거부하진 않는다는 거다. 폴란드인이 이민을 많이 가서 국내 일손이 오히려 부족하기도 하고. [11] 이 원조는 개전 이래 우크라이나가 최초로 받은 공식적 군사원조이다. [12] 흐멜니츠키 시 근교의 마트스키우치, 샤로베츠카, 흐레차니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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