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츠나미 카즈요시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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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나미 카즈요시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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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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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
1988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최우수 신인 | ||||
아라이 유키오 ( 야쿠르트 스왈로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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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나미 카즈요시 ( 주니치 드래곤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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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시노 켄지 ( 야쿠르트 스왈로즈) |
1996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2루수 부문 베스트나인 | ||||
로버트 로즈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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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나미 카즈요시 ( 주니치 드래곤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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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로즈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
2004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3루수 부문 베스트나인 | ||||
스즈키 켄 ( 야쿠르트 스왈로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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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나미 카즈요시 ( 주니치 드래곤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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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오카 마코토 ( 한신 타이거스) |
1988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 ||||
히라타 카츠오 ( 한신 타이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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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나미 카즈요시 ( 주니치 드래곤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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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이 마사히로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95~1997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 ||||
와다 유타카 ( 한신 타이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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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나미 카즈요시 ( 주니치 드래곤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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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로즈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
2003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 ||||
이와무라 아키노리 ( 야쿠르트 스왈로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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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나미 카즈요시 ( 주니치 드래곤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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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무라 아키노리 ( 야쿠르트 스왈로즈) |
일본프로야구 보유 기록 |
통산 최다 2루타 (487개) |
최다 끝내기 만루홈런 (2개) |
최다 포지션 골든글러브 수상 (유격수, 2루수, 3루수 3개 부문) |
타츠나미 카즈요시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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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주니치 드래곤즈|주니치 드래곤즈]] 등번호 3번}}} | |||||||||||||||||||||||||||||||||||||||||||||||||||||||||||||||||||||||||||||||||||||
히라노 켄 (1983~1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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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나미 카즈요시 (1988~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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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카와 다이키 (2011~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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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등번호 81번 | ||||||||||||||||||||||||||||||||||||||||||||||||||||||||||||||||||||||||||||||||||||||
아키야마 코지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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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나미 카즈요시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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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테야마 요시노리 (2017~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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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주니치 드래곤즈|주니치 드래곤즈]] 등번호 73번}}} | ||||||||||||||||||||||||||||||||||||||||||||||||||||||||||||||||||||||||||||||||||||||
쿠리하라 켄타 (2020~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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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나미 카즈요시 (2022~2024) |
→ | 결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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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나미 카즈요시 立浪和義 | Tatsunami Kazuyos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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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9년 8월 19일 ([age(1969-08-19)]세) |
오사카부 스이타시[1]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PL학원고등학교 (오사카) |
신체 | 173cm, 70kg, A형 |
포지션 | 2루수, 3루수, 유격수, 좌익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입단 | 1987년 드래프트 1라운드 (주니치) |
소속팀 | 주니치 드래곤즈 (1988~2009) |
지도자 |
주니치 드래곤즈 1군 타격코치 (2008~2009, 선수 겸임)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13)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 (2022~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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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前 프로야구 선수. 전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주니치 드래곤즈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원 클럽 플레이어로써 팬들에게서 '미스터 드래곤즈'[2]로 칭송받았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최다 2루타 기록(487개) 보유자이기도 하다. 선동열, 이상훈, 이종범, 이병규가 이 팀에 진출했을 때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2. 선수 생활
키요하라 카즈히로, 쿠와타 마스미 등을 배출한 야구명문 PL학원고등학교 출신으로 2학년 때 주전 유격수로써 모교의 춘계 코시엔 진출, 3학년 때인 1987년에는 주장으로써 모교의 춘하계 코시엔 연패에 공헌하였으며 이 활약으로 각 프로 구단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같은 해 드래프트에서 난카이 호크스, 주니치 드래곤즈에 1순위로 지명받았고 경합 끝에 주니치가 교섭권을 획득하면서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하게 된다. 당시의 에피소드로, 본래 타츠나미는 고향팀인 난카이 호크스 입단을 희망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센트럴리그, 퍼시픽리그의 극심한 인기 격차나 오 사다하루에 대한 동경 때문에 가능하다면 센트럴리그에서도 뛰고 싶다는 마음 또한 가지고 있었는데, 주니치가 본래 1순위로 지명하려고 했던 게이오기주쿠대학의 투수 스즈키 테츠가 서울 올림픽 출장을 위해 사회인야구 진출을 선언하면서[3] 드래프트 이틀 전에 급히 타츠나미 지명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타츠나미는 별똥별을 보면서 주니치 입단을 기원한 끝에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4]주니치에 입단한 타츠나미는 1년차 시즌인 1988년부터 이전의 주전 유격수였던 우노 마사루를 2루수로 밀어내며 유격수 자리를 차지했고, 타격에서는 타율 .223/OPS .626 4홈런 18타점 22도루로 그닥 돋보이진 못했지만 고졸신인으로썬 훌륭한 주루, 수비와 더불어 주니치를 6년 만의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끈 공로로 그 해 리그 신인왕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화려한 데뷔 시즌을 보냈다. 이 골든글러브 수상은 고졸 신인 선수로써는 사상 최초 기록이기도 했다.
다음해인 1989년에는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30경기 출장에 그치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었으나, 3년차 시즌인 1990년 이후부터는 2005년까지 주니치 내야 중 어느 한 자리의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1992년에는 2루수로 전향하였고, 이듬해인 1993년에 당시 2루수 연속 무실책 기록을 달성했다.[5] 이후 1998년에 좌익수로 포지션을 바꿨다가 2루수로 금방 복귀했고[6], 2000년대에 다시 3루수로 전향하며 내, 외야를 막론한 어느 포지션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선수 시절에는 유격수(1988), 2루수(1995, 96, 97), 3루수(2003) 부문에서 모두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이력이 있는 수비의 달인으로 평가받았다. 단 세이버메트릭스 분석에 의하면 타츠나미의 수비 지표는 주축 내야수로서는 상당히 좋지 못했으며, 특히 수비범위 관련 지표가 매우 낮아 현재에 와서는 과거만큼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출처 출처2 즉, 자신이 잡을 수 있는 범위의 타구는 확실하게 처리했지만 조금이라도 잡기 힘들다 싶은 범위의 타구는 대부분 흘려보냈다는 것.[7] 당시에도 타츠나미의 수비에 대한 호평은 포구, 풋워크, 송구 안정성 등 '기술적 측면'에 집중된 경향이 있었는데, 냉정히 말해 골든글러브도 받을 정도로 수비에서 평가가 나쁘지 않은 선수가 한 포지션을 지키지 못하고 점점 수비 난이도가 낮은 포지션으로 옮겨갔다는 것은 당시 현장에서도 타츠나미의 수비범위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엿볼 수 있게 한다.[8]
타격에서는 1990년부터 2005년까지 16년 연속으로 100안타 이상을 쳐내며 7번의 3할 시즌과 은퇴 시점에서 통산 안타 역대 8위를 기록할 만큼 꾸준한 모습이 강점이었다. 또한 역대 1위를 기록할 만큼 준수한 2루타 생산능력과 더불어 전성기 때는 매년 10홈런 이상을 기대할 만한 장타력도 보유[9]한 타자였다. 재밌는 사실은 통산 2루타 역대 1위를 기록한 것과는 별개로 타츠나미가 2루타 1위를 기록한 시즌은 한 번도 없었고, 통산 안타 역대 10위권에 드는 타자들 중 유일하게 통산 200홈런과 시즌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적 역시 없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두드러지게 드러나진 않았어도 뛰어난 성적을 꾸준히 유지한 덕분에 이러한 대기록을 세웠다는 이야기.
2003년에는 33세의 나이에 개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으며 이듬해인 2004년에는 타율 .308, 5홈런 70타점의 성적으로 3루수 부문 베스트나인에 올랐다.[10][11] 거기다 고졸로 데뷔했기 때문에 워낙 빠른 페이스라 통산 3000안타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이후 급격히 찾아온 노쇠화로 인해 기량이 하락하며 나카무라 노리히로, 모리노 마사히코 등에게 주전을 내줬고, 이후엔 대타 요원으로 전향해 활약을 이어가며 2007년에 주니치의 53년 만의 일본시리즈 제패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다 2009년 통산 2586시합 출장, 2480안타(역대 8위)와 2루타 487개(역대 1위), 171홈런 1037타점의 대기록을 남기고 40세를 끝으로 은퇴하였다.
3. 은퇴 이후
은퇴 후에는 현장 코칭스태프로 일하지 않고 방송 해설위원을 맡았다. 해설위원을 맡던 도중 2013 WBC에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프로 코치 경험을 쌓게 된다.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상징성 등을 감안할 때 다카기 모리미치의 뒤를 이을 차기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감 1순위로 점쳐졌으나, 오치아이 히로미츠 전 감독이 GM으로 복귀한 뒤 포수 다니시게 모토노부를 선수 겸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일단 몇 년간은 해설자로 주로 활동하게 되었다.그 후 2016시즌 도중에 다니시게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2016년 오프시즌에도 다시 한번 프랜차이즈 출신 타츠나미를 감독으로 밀자는 이야기가 주니치 팬들에게서 나왔다. 반면 대부분의 언론은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를 후임 감독으로 예상하면서 감독 취임이 또 한번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오가사와라는 아니었지만 선수시절 코치인 모리 시게카즈에게 감독직이 넘어갔다. 모리 감독 사임 이후에도 후보군으로 언급되었지만 결국 다시 주니치 출신인 요다 츠요시에게 자리가 넘어가면서 무산되었다.
2018년 7월에는 주니치 시절 팀 동료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코치를 맡고 있는 오치아이 에이지를 격려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왔고 2019년에는 기자단 투표로 일본야구 명예의 전당인 야구전당에 헌액되었다.
결국 2021시즌, 4456555를 탈출한 지 1시즌만에 다시 한번 B클래스에 그친 요다 츠요시 감독이 사임의사를 밝히자 비로소 타츠나미가 2021년 시즌 종료 후 1군 감독으로 취임하는 게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일본 내 여러 언론들은 '타츠나미 신감독 체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사실상 타츠나미의 취임을 기정사실화한 상황.
4.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
취임식 당시 |
4.1. 2022년
마침내 2021년 10월 29일. 타츠나미가 공식적으로 주니치의 감독직 제의를 수락하면서 감독 취임이 확정되었다. 취임하자마자 선수단에 장발, 염색, 수염금지령을 내렸으며, 신죠 츠요시 닛폰햄 감독과 좋지 못한 의미로 비교되었다.[12] #스프링캠프에서도 기강을 확실하게 잡기위해 훈련 도중 잡담 금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조성 또한 금지시키며 진지하게 캠프에 임할 것을 요구했다.
캠프 도중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으며 고생하기도 했지만 본인이 요구한대로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 스프링캠프를 마무리했다. 시즌 구상 또한 캠프 기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면서 구단의 오래 묵은 숙제이자 현재진행형인 세대교체에 박차를 가하고 취약 포지션인 2루[13]와 코너 외야[14]는 백지화를 선언하며 무한 경쟁체제를 통해 적임자를 찾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3월 27일 도쿄돔 요미우리 전에서 극적으로 감독 데뷔 첫 승을 얻어냈다.
시즌 초반에는 의외로 터지는 홈런포에 더해 한신의 부진이 겹쳐서 순위싸움에서 선방 중이었다. 감독 본인도 요코하마 원정에서 실책성 플레이를 저지른 교다 요타를 경기 도중에 빼 버리고 바로 2군으로 보내버리는 등[15] 팀 분위기와 기강을 다잡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5월 중후반부터 팀이 부진에 빠졌다. 아무도 이해를 못하는 나카무라 노리히로 1군 타격코치의 2군행[16]과 더불어 팀 타격이 다시 2021년 수준으로 나락으로 빠졌고, 그 사이에 5할을 넘어가던 성적도 어느새 적자가 되어 교류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교류전에서 7승 11패로 별 재미를 못 보고 무너져내렸고, 교류전에서 정신 차리고 대박을 친 한신[17]과 본전치기에 성공한 요코하마[18]에게 추월당하면서 교류전을 끝으로 센트럴리그 최하위로 추락했다. 잠깐 요코하마를 최하위로 밀어낸 적도 있었지만 불과 1주일 만에 한신에 스윕당하며 도로 최하위로 돌아왔다. 여기에다가 시즌 중 번트 남발, 9월 1일에는 다얀 비시에도가 23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고 새 외국인 선수 페드로 레비라가 1할을 기록하는 등 타격에서도 나쁜 평을 받고 있으며, 조언을 구한답시고 야구계의 대표적 꼰대로 악명높은 히로오카 타츠로에게 조언 요청을 하는 등 시대착오적인 구식야구 마인드가 문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주니치 팬들에게는 팀 레전드임에도 불구하고 민심이 상당히 험악한 편이다. 지역 방송국에서 타츠나미를 응원한답시고 '타츠나미 감독에게 제안합니다(立浪監督提案です)' 해시태그 메시지 기획을 했는데, 응원보다 사임하라는 메시지가 훨씬 더 많이 나왔다고 한다. 같은 1년차 감독인 신죠 츠요시는 신인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등 리빌딩 측면에서 이해를 받고 있으나[19], 타츠나미는 오히려 네오 아키라의 포지션 전향이나 쿄다 요타 트레이드 루머까지 겹쳐서 비판만 받고 있다.
이러다 보니 2022 시즌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타츠나미 감독 잔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며 그러한 예언이 맞다는 걸 증명하는 든 26경기 영봉패를 기록하며 성적 추락이 이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내년에도 여러분들이 뜨거워지는 시합을 늘려나가겠다"라는 코멘트를 남겨 다른 의미로 팬들을 뜨겁게 만들었고, 경기에서 지면 선수를 탓하는 인터뷰까지 해서 안 그래도 좋지 못한 평가를 더욱 떨어지게 하고 있다. 또한 시즌 내내 장타 생산능력이 쥐약이라 팀 전체가 무라카미 무네타카와 홈런왕 경쟁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나마 최종적으로 62홈런으로 무라카미의 56개를 제치면서 2011년 치바 롯데 마린즈와 같은 참상을 겪는 것은 면했다. [20]
결국 9월 27일 올 시즌 주니치의 천적이 되어버린 요코하마와의 경기에서 지면서 B클래스가 확정되었고, 9월 29일에는 6년 만의 최하위도 결정나고 말았다. 팬들은 타츠나미가 빨리 물러나는 것을 기원하고 있지만 내년에도 타츠나미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 정해졌다. 1년차의 처참한 성적에 대해 최하위 책임은 자신에게 있으며 팬들에게 스트레스가 쌓이는 시즌이 된 데 대해 사과드린다는 말을 남기고, 쿄다 요타를 대한 방식이 문제가 있다면서 후회했다.
리그 대전성적은 야쿠르트 14승 1무 10패, 히로시마 15승 10패, 한신 및 교진 모두 12승 13패 등 대부분의 팀을 상대로 생각보단 준수한 성적을 마크했으나, 요코하마를 상대로 6승 1무 18패, 승률 .250으로 완전히 폭망한 데 이어 해결되긴 커녕 더 나락으로만 떨어지는 팀 타격 저하가 결국 최하위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시즌 종료 후 주니치의 빈타에 큰 역할을 했던 하루 토시오 1군 타격코치는 오릭스 육성 치프코치로 갔다. 하루의 후임은 와다 카즈히로. 안 그래도 타자들이 부실하여 퍼시픽리그 팀홈런 꼴찌를 기록한 오릭스에서도 하루의 한심한 타격코치 능력을 보고 보직전환을 한 듯. 또한 타츠나미가 투수들에게 스플리터를 기본적으로 장착할 것을 요구한 것도 패스트볼 위력 저하의 우려가 있어서 팬들은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11월 3주차에 아베 토시키와 교다 요타를 트레이드로 연달아서 보내 버리며 팬덤을 한바탕 뒤집어놓았다. 교다는 본인이 거의 전력외 취급을 했기에 그러려니 하지만 팀 공수 모두에서 상당 지분을 차지하던 아베의 트레이드는 충격 그 자체였다. 특히 교다는 선수회장까지 했기에 차기 선수회장을 맡은 야나기 유야도 이제 타팀으로 갈 거라는 루머가 있다.
또한 2022년 시즌 종료 뒤 팬 감사제에 모습을 비추지 않는 것은 물론, KT 위즈에서 부실한 워크에씩으로 비판을 받은 조일로 알몬테를 다시 영입하고 알몬테를 4번타자로 쓰겠다고 밝혀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팬들은 팬감사제에 대해서는 시즌 내내 웃는 모습이 없었던 선수들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오히려 좋아하고 있다.
또한 포수 영입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포수 트레이드 유력 상대였던 히로시마에서도[21] 트레이드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결국 롯데로 트레이드 시켰던 카토 타쿠마를 무상 트레이드로 받아와서 어찌저찌 영입을 하긴 했다.
4.2. 2023년
개막전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승리하기는 했지만 선발투수 오가사와라 신노스케에게 145구나 던지게 하는 운영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22] 상대 감독 하라 다쓰노리와의 구식야구 맞대결의 절정으로 야구팬들은 혀를 내둘렀다.공격에서 장타가 터지지 않으며 점수가 안 나는 변비야구의 끝에 개막 4경기만에 최하위로 처졌다. 하지만 요미우리도 같이 하위권에 처진 덕분에 한 때 요미우리를 잡고 최하위 탈출을 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4월에 분전했다. 그러나 117이닝 무홈런, 8차례의 영봉패, 팀 홈런 겨우 6개에 빛나는 초라한 타선과 전년도에 이어 요코하마에게 0승 5패로 또 호구를 잡힌 상대전적으로 인해 4월을 최하위로 마감했다.
5월에도 투수에게 승리를 안겨주지 못하는 타선과 수비가 말썽을 일으키면서, 야나기와 오가사와라마저 대량실점을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알몬테 등 외국인 선수[23]들마저 부진하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초고속으로 30패를 찍을 것이라면서 걱정하고 있다.
5월 30일 소프트뱅크와의 교류전에서 패하며 결국 30패를 찍었다.
6월에도 타선은 여전히 차도가 없어 오노 유다이, 야나기 유야, 타카하시 히로토[24], 오가사와라 신노스케 등이 QS, QS+를 기록해도 투수진의 패전과 ND만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며, 한미일 프로야구 최초로 선발 로테이션 전원이 윤석민상에 거론되고 있다. 팬들은 그의 사퇴를 외치고 있으며, 득점지원이 지나치게 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주니치 투수를 다룬 기사들에는 응원팀이 어디든 대동단결하여 주니치 투수들을 위로하는 댓글로 넘쳐나고 있다. 그나마 요코하마에서 데려온 호소카와 세이야가 맹타를 휘두르면서 주니치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게 팬들에게는 위안거리.
교류전 기간 동안 덕아웃에서 쓰레기통을 걷어차는 모습이 포착되어[25], 킥보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생겼다.[26] 그래도 이 해 같이 망한 야쿠르트가 최하위권을 돌다 보니 어쩌다가 하루씩 야쿠르트를 밀어내고 최하위 탈출을 하긴 했으나 7월 이후로는 완전히 최하위로 추락했고 8월 들어 와장창 무너지고 있다.
심지어 8월 23일엔 " 쌀밥을 먹지 말라고 밥솥을 치워버렸다"는 기사가 올라오며 일본 야구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27] 찌라시 황색언론으로 유명한 zakzak발이긴 하지만 타츠나미의 이미지가 이미지인데다 하필 구단 공식으로 올라온 경기 시작 전 원진 영상 중에 "오늘 식당에 들어갈 때 쌀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은 '쌀밥 클럽(米米CLUB)'[28]이 아니라 '밥없는 클럽(米なしCLUB)'이니 (오늘의 구호는) '밥 없는 클럽'으로 갑시다."라고 말하는 장면[29]이 있어서 기사의 신빙성을 증폭시켰다. 덕분에 주니치는 중 일본 제국(中日本帝国)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생기고 말았다.[30] 안그래도 최근에 츄니치 도라곤즈를 줄인 '츄니도라(チュニドラ)'가 어감이 멍청해보인다는 이유[31]로 주니치의 멸칭으로 자리잡았는데 아예 막장 별명을 또 만들어버렸다.
사실 저 쌀을 뺀 것은 타츠나미 본인이 겪은 실화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현역 시절 메이지진구 야구장 원정 경기에서 타츠나미가 벤치 뒤에서 양손에 주먹밥을 쥐고 뺨을 부풀리는 장난을 쳤는데, 당시 감독이었던 호시노 센이치가 이를 보고 격분하여 얻어맞지는 않았지만 대신 한동안 구장에서 밥 제공이 끊기고 바나나 등만 줬던 적이 있었던 것. # 이 때문에 호시노 센이치가 한 행동을 따라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덤으로 이 무브로 인해 타츠나미가 프로 데뷔 직후에 찍은 SSK 야구용품 CM[32]이 재발굴되고, 아베 토시키가 준수한 성적을 내고도 오프시즌에 트레이드된 것이 사실은 친가가 쌀농사를 하기 때문이었다는 네타가 돌았다. 시즌 종료 이후엔 하술할 벌투 사태의 피해자이자 시즌 종료 후 육성성수로 전환된 콘도 렌이 좋아하는 우마무스메 경주마로 라이스 샤워를 꼽으며, 야마이 다이스케의 조언으로 우카이 코스케가 캠프에 즉석밥을 가져가고 드래프트 1위로 입단한 쿠사카 쇼가 간식으로 주먹밥을 먹으면서 10kg을 찌우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또다시 네타화되었다.[33]
그러나 후에 시구로 유명한 이나무라 아미가 직접 " 쌀밥을 금지시킨 게 사실인가요?"라고 물어보자 타츠나미 감독이 이에 대해 해명하면서 사실이 밝혀졌는데, 실제로는 선발 라인업에 들어간 선수들이 경기 1시간 전 규동 등을 만들어 먹는 걸 보고 그러면 배불러서 몸이 안 움직여지니 시합 전에는 간단하게만 먹고 시합 이후에 밥을 먹으라고 주의시켰으나 선수들이 지시를 안 들어서 밥솥을 치워버렸다고 하며, 이것도 선발 라인업에 든 선수에 한해서만 경기 전에 주먹밥 같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걸 대신 주고 경기 종료 이후에는 제대로 밥을 제공해 줬다고 한다. 또한 1군 주루코치 오니시 타카유키의 인터뷰에 의하면 경기 후에는 정상적으로 쌀밥을 주기 때문에 선수들은 잘 먹고 있으며, 구단 영양사가 현재도 식단 체크를 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타츠나미의 해명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2022년까지 주니치에서 뛰고 은퇴한 히라타 료스케에 의하면 타츠나미 앞에서 밥을 과식했던 선수는 호소카와 세이야와 후쿠나가 히로키(사회인야구에서 4년을 뛰고 27세로 프로에 온 늦깍이 1년차 내야수)라고 한다. 당시 이 두 사람이 경기 전부터 밥을 곱배기로 먹고 있길래 타츠나미 본인이 "그렇게 많이 먹고도 경기를 제대로 뛸 수 있겠냐?"라고 질문하자 두 사람 다 자신 있다고 대답해 놓고 그날 경기에서 안타를 못 쳐서(...) 타츠나미가 경기를 앞두고 많이 먹는다고 분노했다는 것. 여담으로 호소카와는 2023시즌 주니치에서 몇 안 되게 제 몫을 한 타자로써 맹타를 휘둘렀으나 쌀 소동 보도 이후에 거짓말처럼 성적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주니치는 요다 츠요시 감독 때도 건강에 좋지 않다고 라멘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는 만큼 타츠나미만의 문제는 아니고 선수들의 식단 관리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선수들이 감독의 간단한 지시조차 무시해서 결국 강압적인 방법을 쓰게 한 점에서 2010년대 이후 팀 분위기가 막장이 된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되어 버렸다.[34]
같은 날 한신과의 교세라 돔 오사카 원정경기에선 1959년 이후 64년만의 원정 최다 연패 기록을 넘어 원정 14연패라는 구단 최악의 신기록에 더해 3실점 이상 경기 17연패 및 최근 1승 30패라는 말하기도 참혹한 수준의 기록을 경신해나가는 위엄을 보였고, 이런 끔찍한 기록을 달성하고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 프로의 집단인데 한심하다"라며 끝까지 선수 탓만 하는 추한 모습으로 일관하며 욕받이를 자초했다.
8월 25일 요코하마와의 홈경기에는 2020년 육성 드래프트 1순위로 뽑은 콘도 렌을 9회에 패전처리로 올려 62구[35]를 던지게 하는 벌투를 선보이며 주니치 팬은 물론 요코하마 팬들에게까지 비판을 받았고, 18-2라는 처참한 점수차로 대패하면서 역대 나고야돔 한 경기 최다 실점 신기록 2위를 달성하고 2년 연속 요코하마전 상대전적 열세까지 확정짓고 말았다. 오죽했으면 상대팀 요코하마 팬들도 콘도가 몸에 맞는 공을 던지자 오히려 안타깝게 여겼고, 이날 요코하마의 선발 투수였던 트레버 바우어마저 보다못해 격려의 메세지를 남길 정도였다. 그리고 이 벌투 사건은 다음 날 한국 언론에까지 기사로 올라왔다.
9월에는 아예 10일에 선발 로테이션 4명 전원이 10패를 찍는 등[36] 상황은 더 나빠져서, "타츠나미 나가라(立浪 辞めろ)"가 일본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는 등 팬들의 민심은 점차 험악해져만 가고 있다.
현역 드래프트로 건져온 호소카와 세이야가 자리를 제대로 잡은게 올해 최대의 수확이고 트레이드 건도 그나마 성공한 사례는 우사미 신고, 사이토 코키 정도 뿐이다. 작년 오프시즌에 논란이 되었던 와쿠이 히데아키- 아베 토시키 트레이드는 초반만 해도 아베가 삽을 푸는 바람에 예상외의 성공이다 싶었으나 중반 이후로 아베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37] 와쿠이는 타선지원 결핍으로 결국 패작만 하게 되면서 체감상으로는 주니치가 망한 것 같지만 의외로 세이버 스탯상으로는 아베 WAR 0.3 vs 와쿠이 WAR 2.0으로 와쿠이가 조금 더 활약하긴 했다. 다만 와쿠이는 에이징 커브가 온 것이 확실해 보여서 장기적으론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인 게 변수.[38] 마지막으로 스나다 요시키- 쿄다 요타 트레이드는 플래툰으로라도 1군 스타팅 라인업에 자주 선 쿄다에 비해 스나다는 18시합 13.2이닝 소화에 그치며 실패한 트레이드가 되었다.
거기다 9월 15일, 구단 측에서 내년까지 타츠나미 감독을 유임시킬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팬들 반응은 그야말로 대경실색으로 # 점잖고 구단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주니치 팬들조차 참지 못하고 구단과 타츠나미 비판에 열을 올렸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오가사와라 신노스케도 소식을 접하고 새벽에 자신의 X(트위터)계정에다가 대놓고 "으~음 (うーん。)"이라고 썼다가 지워버리는 해프닝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시즌 극후반에 팀이 승수를 챙기고 야쿠르트가 패를 쌓으면서 5위에 부상, 2년 연속 최하위를 면할 좋은 기회가 생겨났다. 하지만 시즌 최종전에서 요미우리에 패배하며 자력으로 5위를 확정 지을 기회를 날렸고 결국 야쿠르트와 한신의 맞대결 결과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는 운명에 처했다. 그리고 한신이 야쿠르트에게 끝내기 희생 플라이를 맞고 지면서 끝내 2년 연속 최하위를 면하지 못했다.
2023년 1년 동안 일본 인터넷에서 가장 밈이 된 스포츠인 중 하나로[39], 심지어 해외에까지 잘 알려진 모양인지 카메룬에 사는 유튜버에게 타츠나미는 아프리카로 망명하지 않겠는가? 소리를 들었다. 이 정도면 KBO의 졸장들이 양반으로 보일 지경. 배임수재로 팀을 나간 김종국[40]을 제외하면 독보적으로 최악으로 평가받는 박진만도 이 정도는 아니다. 쌀밥 금지가 사실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찌라시로 유명한 zakzak발이었음에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을 정도로, 타츠나미 감독의 평소 이미지와 2년간 감독으로서 보여준 무능함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생각되는지 드러난 셈. 이미 언론과 야구팬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한 것도 사실이라 2023시즌 KBO에 오그레디 혹은 이재원, MLB에 자이디 혹은 렌던이 있다면 NPB에는 타츠나미가 있다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예 NPB의 모든 선수와 감독들 중 가장 인지도가 높고 많은 조롱을 받은 인물이다.
4.3. 2024년
야쿠르트와의 개막 시리즈에서 1무 2패에 그치며 시작부터 12구단 유일한 무승팀 최하위로 추락했으나, 요미우리와의 홈 개막전에서 위닝시리즈를 기록하더니 히로시마 원정에서 스윕을 달성하고 그 기세로 요코하마와의 첫 경기까지 잡으면서 2016년 이래 8년 만의 단독 1위에 오르며 올해는 다르다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그러나 그 기세는 얼마 가지 못했고, 4월 중후반부터 다시 연패를 거듭하다 끝내 5월 18일에 다시 단독 최하위로 추락한 이후 5~6위를 오고가며 야쿠르트와 최하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시즌 내내 연패만 거듭했던 작년과는 달리 7월 14일 기준 승패마진 -5에 1위와는 5.5게임차 5위 정도로 크게 승차가 벌어지지 않은 채 분전하고 있고 현재 센트럴리그 1~4위 팀들의 승률이 5할 1푼~5할 3푼대 정도로 크게 높지 않아서 투타 조화만 잘 맞는다면 얼마든지 반등의 여지가 있으며, 7월 이후 야쿠르트가 투타 밸런스가 싸그리 붕괴되면서 연패 지옥에 빠진 덕에 똑같이 내려앉지 않는 이상 한동안 3년 연속 최하위를 걱정할 일은 사라졌다.
다만 성적과는 별개로 비디오 판독 요청을 무지성급으로 남발하는 바람에 팬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판정이 애매할 때는 물론 심할 땐 판정에 문제가 없는 것이 확실할 때도 무작정 판독 요청을 하는 바람에 판정은 얼마 뒤집지도 못한 채 경기 초반부터 기회를 모두 소진시켜서 정작 경기 중후반 승패가 걸린 중요한 순간에 판정이 애매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판독 요청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며, 심지어 3월 31일 야쿠르트 원정 경기에선 무려 경기 시작 직후인 1회 초 0.1이닝만에 요청 기회 2번을 모두 날려먹는 바람에 욕받이를 자초했다.[41] 타츠나미의 이런 무지성 판독 요청의 댓가로 주니치는 이 해 리퀘스트 성공률 9.1%(요청 55회 - 성공 5회)로 12구단 중 유일하게 10% 미만 성공률이란 참혹한 수치를 기록했다. 그나마도 시즌 도중에 5%대까지 떨어졌다가 반등한 것이 저것.
그리고 위의 긍정적인 가능성이 무색하게 이후에도 반등하지 못한채 5~6위에서 헤메다 끝내 B클래스가 확정되면서 9월 18일 경기 종료 후 지역 라디오로 사임을 발표했고 직후에 기사로도 사임 소식이 올라왔다. # 네이버 스포츠 차기 감독으로는 이노우에 카즈키 2군 감독[42]이 유력 후보로 먼저 거론되고 있으며 이외의 감독 후보군으로는 주니치에서 현역 초창기를 보낸 OB이자 前 한신 타이거스 감독 야노 아키히로, 니무라 토오루 편성부장[43] 등이 거론되고 있다.
계속해서 B클래스에서 헤멘 끝에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고전한 야쿠르트에게까지 밀려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고, 야쿠르트가 최종전에서 패배하면서 본인과 팀의 마지막 경기인 10월 6일 요코하마전에서 승리 시 최하위 탈출 및 5위를 확정지을 수 있는 마지막 찬스가 생겼으나 그 경기에서 자신이 갈구다가 쫓아내다시피 보내버린 쿄다 요타에게 2타점 적시타를 얻어맞고 이것이 그대로 결승점이 된 채 2:0으로 패배하면서 그야말로 업보인가 싶은 마지막과 함께 본인의 마지막 시즌까지 구단 역사상 첫 3년 연속 최하위로 마무리짓고 말았다.[44]
결과적으로 타츠나미 체제에서의 3년은 오카바야시 유키, 호소카와 세이야, 후쿠나가 히로키 등이 새로운 주축으로 자리잡으며 아예 성과가 없진 않았으나 이들의 각성만으론 해결이 불가능한 끝이 보이질 않는 타선 부진, 그리고 이러한 팀의 부진을 극복하기는커녕 더 악화시켜버린 본인의 구시대적 마인드와 그에 따른 여러 구설수 등이 겹치며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5. 기타
- 화려한 선수 실적과는 별개로 사생활 면에서는 신빙성이 낮은 찌라시발이긴 했으나 야쿠자와의 연관설, 성추문 문제가 여러 번 보도된 적이 있는 등 다소 구설수가 있었다.[45] 선수 은퇴 후 2022년까지 주니치에 지도자로 돌아오지 못한 이유로 ‘보수적인 성향의 주니치 프런트가 타츠나미로 인해 구단 이미지가 추락하는 것을 우려하여 복귀를 강력 반대했기 때문이다’라는 카더라가 유력한 설로 돌아다녔을 정도.
- 위에 적혀 있는 좋지 않은 소문이 도는 사생활이나, 똥군기로 악명 높던 PL학원고등학교 출신이란 점 때문에 일본 야구 커뮤니티에선 타츠나미가 언급될 때마다 관련 태그나 댓글로 대단한 ○○[46]나 야쿠자가 거의 따라붙으며, 관련 밈으로 타츠나미에 대해 어떤 언급이 나오든 야쿠자가 관련인물을 입막음으로 사살하는 것처럼 타츠나미가 아예 자신에 관한 언급 자체를 못하도록 댓글을 단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인다는 네타[47]까지 있다.
- 하지만 PL학원 선배 키요하라 카즈히로가 나타나자 그야말로 후배들과 함께 쫄았다.
- 타이론 우즈와 생년월일이 똑같다.
6. 관련 문서
[1]
태어난 후엔 인근의
셋츠시에서 자랐다.
[2]
정확히는 제3대 미스터 드래곤즈이다. 초대는
니시자와 미치오, 2대는
타카기 모리미치.
[3]
이후 스즈키 테츠는 사회인야구 소속으로
1988 서울 올림픽에 출장하여
은메달을 건 뒤 1989년 드래프트 2위로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했지만 프로에서는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히로시마 트레이드-세이부 재복귀의 우여곡절을 거쳐 1997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4]
주니치에게 타츠나미의 교섭권을 내준 난카이는 대체 1위 지명으로
사회인야구팀 혼다기연 쿠마모토 소속
투수 요시다 토요히코를 지명했는데, 비록 타츠나미만큼의 성적을 내진 못했지만 이쪽도 신인 시즌부터 주전으로 자리잡아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호크스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로 활약했고, 이후
한신-
킨테츠-
라쿠텐 3구단에서
중간계투로 활약하다 2007년 은퇴했다. 은퇴 당시에는
난카이 호크스 최후의
투수이자 난카이 시절 1군 출장 경험이 있었던 마지막 현역 선수이기도 했다.(호크스 최후의 선수 자체는
타자였던
오미치 노리요시가 마지막이지만, 오미치는 난카이 시절 1군 출장 경험이 없었다.)
[5]
이 해에 수비율 .997을 기록했지만 골든글러브는
한신 타이거스의
와다 유타카가 수상했다.
[6]
당시 주니치가
이종범의 영입에 이어 작년까지 주전 유격수를 맡던 토리고에 유스케가
탈세 혐의로 출장정지를 받으면서 생긴 유격수 자리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한신 타이거스의 주전
유격수
쿠지 테루요시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둘 중 하나를 주전 유격수로 선택해야 했고, 이에 코칭스태프들은 이종범과 쿠지를 모두 쓰기 위해 내야 포지션을 재편성하여 이종범은 그대로 주전 유격수로 기용하되 쿠지를 2루수로, 2루를 맡던 타츠나미를
좌익수로 이동시켜 수비 진형을 바꿨다. 그러나 시즌 도중인 6월에 이종범이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하는 바람에 또 다시 공백이 된 유격수 자리를 메꾸기 위해 쿠지가 다시 유격수로 복귀하면서 타츠나미도 2루수로 복귀했고, 이듬해인 1999년에 신인
후쿠도메 코스케가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차고 이어서 유격수에서 밀려난 이종범이
중견수로 이동했다가 다시
좌익수로 이동, 백업으로 밀려난 쿠지는 내야 유틸리티 요원으로 정착하면서 타츠나미는 붙박이 2루수로써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후쿠도메도 유격수 수비가 좋지 못했던 탓에 얼마 안가 이종범처럼
외야수로 전향한 데 이어
아라키 마사히로,
이바타 히로카즈의 아라이바 콤비가 주전 2루수와 유격수를 꿰차면서 타츠나미는 다시
3루수로 자리를 바꿨고 이후엔 2007년
대타 요원으로 전향할 때까지 주 포지션을 바꾸지 않았다.
[7]
이러한 수비방식이 96년 여타 주니치 내야진의 불안함과 더해져
선동렬의 .382라는 충격적인 BABIP 수치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8]
일단 사유는 타츠나미의 고질적인 어깨 부상으로 인해 송구능력에 불안이 생기면서였다.
[9]
그라운드가 작은
나고야 구장 시절엔 주전 자리를 굳힌 1990년대 이후 1992년(5홈런)을 제외하곤 매년 10홈런을 기록했으며, 그라운드가 넓은
나고야 돔으로 이적한 후에도 3차례 10홈런 이상을 기록(1997, 2002-03)하며 변하지 않은 장타력을 뽐냈다. 참고로 홈런 커리어하이는 1993, 2002년의 16홈런.
[10]
단 이것은 리그 우승 프리미엄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고쿠보 히로키가 타율 .314 41홈런 96타점,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이와무라 아키노리는 타율 .300, 44홈런 103타점의 높은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타츠나미의 우승 프리미엄에 밀려 베스트나인에 선정되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수비를 평가하는 골든글러브는 타츠나미가 아닌 이와무라가 가져갔다.
[11]
이 해는 리그 전반적으로
타고투저 경향이 강해 강타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넓은 홈구장에서 수비적인 야구를 했던 주니치가 우승을 차지하며 다소 빈약했던 1루(주전인 와타나베 히로유키가 타율 .286 2홈런 22타점을 기록. 규정타석 미달)를 뺀 모든 내야 포지션(3루 타츠나미, 유격
이바타 히로카즈, 2루
아라키 마사히로-그렉 라로카 공동수상.)의 베스트나인을 가져갔다. 게다가 그 1루마저도 와타나베가 1루수 사상 첫 규정타석 미달
골든글러브 수상 기록을 세웠다. 해당 포지션의 강타자들에겐 우승 프리미엄이 야속했던 수상.
[12]
특히
야나기 유야가 똥 씹은 표정으로 타츠나미를 바라보는 짤은 5ch에서 하나의 네타거리가 되었다.
[13]
1989년생 노망주
아베 토시키가 주전이다. 언제라도
에이징 커브 걱정을 해야 할 때.
[14]
타츠나미 본인이 현역일 때 뛰던
후쿠도메 코스케가 직전 시즌까지 준주전으로 뛰었다.
[15]
감독 본인은 싸우는 사람의 얼굴 표정이 아니라는 이유를 댔다.
상황 설명. 정작 교류전까지 시즌 무안타에 그치던
후쿠도메 코스케는
나믿후믿을 과하게 시전한 게 함정이었지만. 그리고 이 인터뷰와 스프링캠프 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금지한 전례 덕분에 이후 주니치 선수단이 단체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거나, 타츠나미가 특정 선수를 중용하는 건에 대해 싸우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라는
밈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시즌 후 교다 요타는 요코하마로 트레이드되었다.
[16]
여기에는 나카무라 코치가 지나치게 거포 육성에만 신경쓰는 걸 못마땅해서라는 소리가 있다.
출처
[17]
12승 6패. 한신 구단 역대 교류전 최고 성적 기록이다.
[18]
9승 9패. 최근 3번의 교류전 동안 모두 5할 이상에 성공했다.
[19]
키요미야 코타로 외에도
마츠모토 고,
만나미 츄세이 등 그동안 기회를 받지 못하던 백업 선수들이나 유망주들을 밀어줬고, 비록 시즌 성적 자체는 투수진의 부진으로 9년 만의 최하위로 떨어지고 주니치보다 더욱 나빴지만 적어도 공격력은 궤멸 수준이었던 2021년보다 괜찮아졌다.
[20]
참고로 개인 기록 1위가 팀 전체 기록을 추월한 사례가 도루에서 나왔는데, 도루왕
치카모토 코지는 30도루를 기록하며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팀 도루수인 26개를 넘었다.
[21]
아이치현
토요타시 태생인
로컬 보이로, 신예
사카쿠라 쇼고와 3연패 시절의 주전
아이자와 츠바사 사이에 끼어 카프 내 입지가 애매한 백업포수
이소무라 요시타카가 유력 영입 후보로 꼽혔다.
[22]
7회까지 이미 120구를 던지며 1실점으로 승리요건을 만들어놓은 상황이었다. 결국
나카타 쇼에게 2타점 3루타를 얻어맞으면서 패전 위기에 몰렸었다.
[23]
알몬테는 결국 2군으로 내려가 버렸다.
[24]
주니치스포츠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의 멘탈 관리법으로
게이오기주쿠대학 불합격 통지서를 보고 있다고 하는데 6월 초까지 득점지원이 고작 6점일 정도로 더 악몽같은 상황이 2023년 시즌에 펼쳐지고 있다.
[25]
6월 16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과의 홈경기에서 1:1 동점 상황 + 2사 1, 3루 상태에서 1루 주자 카미카와바타 다이고와 3루 주자
만나미 츄세이가 더블 스틸을 시도했는데, 카미카와바타가 뛰려다가 넘어지자 당시 선발 등판했던
오가사와라 신노스케가 카미카와바타를 신경 쓰느라 홈으로 가는 만나미에게 공을 던지지 못했고 그 사이에 만나미가 빠르게 홈에 들어왔다. 카미카와바타는 결국 2루로 가다가 아웃됐지만 만나미가 홈베이스를 밟은 게 먼저라 득점이 인정되어 역전당했고 이걸 본 타츠나미가 격분하여 쓰레기통을 걷어찬 것. 참고로 이 경기는 결국 만나미의 그 득점이 결승점이 되어 닛폰햄이 승리했다.
[26]
해당 경기의 상대팀인 닛폰햄의
신조 츠요시 감독이 취임 첫 해 등록명으로 사용했던 빅보스를 비튼 표현이다. 덕아웃에서 화를 못 참고 기물을 파괴하는 건 스승인
호시노 센이치를 연상케 한다.
[27]
원래는 투수와 스태프를 포함한 구단 전체에 밥 제공이 중단되었으나 투수진은 외국인 클로저
라이델 마르티네스가 총대를 매고 항의해 밥 제공이 재개되었다는 내용, 익명의 주니치 관계자가 이 사태를
쌀 소동에 비유한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 상황을 인터넷 야구팬들은 '
레이와의
쌀 소동'(令和の米騒動)이라고 부르고 있다.
[28]
일본의
록밴드 이름인데 밥을 먹을 수 없는 현실을 자조하는
다쟈레이다.
[29]
설명하자면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원정 구장에서 홈구장으로 돌아와 쌀밥을 먹을 수 없다는 얘기이다.
[30]
일제 미화 같은 것이 아니고 병사들에게
밥도 제대로 안 먹이면서
정신론만 내세우는 것을 비꼬는 것이다.
누가 생각난다면 그게 맞다(...)
[31]
딱
중2병을 연상케하는 어감이다.
[32]
'겨우 야구로 밥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쌀밥을 먹으면서 해맑게 웃는 타츠나미의 모습이 나온다.
[33]
우카이는 기숙사 밥을 먹고
우버이츠로 야식을 시켜먹을 정도로 식사량이 많다.
[34]
여담으로 2군의 경우 타츠나미가 쌀밥을 못 먹게 한 후에도 정상적으로 쌀밥을 제공해오고 있기 때문에 1군과 2군을 오가는 백업, 유망주들의 경우 오히려 1군에 콜업되었더니 식사가 더 안 좋아지는 기형적인 일을 겪게 되었다(...)
[35]
NPB 역대 1이닝 최다 투구수 2위이다.
[36]
이 정도면 전원이
윤석민상 후보에 들어간다.
야나기 유야와
타카하시 히로토는 평균자책점이 2점대 초~중반인데도 10패를 찍었으며, 특히
오가사와라 신노스케는 평균자책점이 3점대 초반대이지만 타츠나미의 어이없는 투수 교체 타이밍으로 6~8회 실점이 많았는데다, 개막전부터 145구 혹사를 당하는 등 가장 험한 꼴을 당하며 10패를 찍었다. 코어 내야수
아베 토시키를 내주고 데려온 베테랑
와쿠이 히데아키는 21경기 111이닝 ERA 3.97로 나름대로 분전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본인의 노쇠화에 막장 타선의 여파까지 직격으로 맞아서 5승 13패를 기록했다.
[37]
사실 이 해엔 아베만이 아닌 라쿠텐 타선 전원이 시즌 초반에 전원 물빠따 모드였다. 다만 아베는 그 중에서도 워낙 타격부진이 심해서 7월 이전엔 1군과 2군을 오갔다가 8월부터 원래 폼을 되찾으며 라쿠텐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38]
애초에 팬들이 이 트레이드에 반발한 이유도 단순히 와쿠이가 연봉이 더 많고 노쇠화가 온 투수란 것뿐만이 아니라, 타선 문제가 심각하고 유망주들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나마 잘 치는 선수를 유망주에게 자리를 마련하려고 내보낸 것이 가장 컸다. 그렇게 자리를 얻은
이시카와 타카야가 스탯은 모자라도 나름 1군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다행이었지, 만약 아베의 빈 자리를 아무도 메꾸지 못했다면 와쿠이의 활약 여부와는 별개로 안 그래도 약한 타선만 더 망가뜨린 실패한 드래프트라는 의견이 강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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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폰햄의
신조 츠요시 감독과 함께 야구계에서는 가장 큰 밈이었으나, 그래도 신죠는
만나미 츄세이를 리그 최고의 타자로 키우는 등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데다 악플로부터 앞장서서 선수를 보호하며 선수관리 면에서 호평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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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김종국 역시 타츠나미처럼 원클럽맨에 코치 생활도 한 팀에서만 했으며 내야수였고 감독이 되자마자 프랜차이즈 역대 최악 소리를 들으며 말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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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도 타츠나미의 이런 모습이 오죽 답답했는지,
5월 23일 요미우리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쿠나가 히로키의 좌측 파울폴 부근으로 향한
파울 타구를 타츠나미가
홈런으로 정정받기 위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려 하자 외야에서 파울인 것을 제대로 확인한 주니치 팬들이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파울이라고 어필하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타츠나미는 팬들의 필사적인 어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판독을 요청했고 결과는 당연히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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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시즌 간
카타오카 아츠시가 망쳐놓았던 2군을 나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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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부터 1995년까지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준주전 내야수로 활약한 선수(본래 투수였다가 1986년 타자로 전향했다.)로, 1996년 트레이드로
치바 롯데 마린즈에 이적해 이듬해 은퇴했다가 1998~2004, 2020~2021년에 주니치에서 코치를 역임했고 이후 프런트로 전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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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이 경기를 지면서 요코하마와의 대전성적이 9승 1무 15패가 되어 2022년 6승 1무 18패, 2023년 8승 1무 16패에 이은 요코하마전 3년 연속 10승 미만 대전성적 열세까지 확정되었다. 그리고 쿄다는 타츠나미가 보란듯이
2024년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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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것이 2004년에 강간혐의로 고소를 당했는데 야쿠자를 이용해서 피해자들을 압박해 고소를 취하하게 만들었다는 의혹, 2008년에 홋카이도 원정을 가서 호텔에서 콜걸을 불러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의혹(여기에 해당 콜걸이 약물에 취해있던 상태였다는 말도 있다.)이 있다. 둘 모두 경찰에서 흐지부지 사건을 종결시켰고 주니치 측은 선수 개인 사생활 문제라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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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학교나 팀 후배들이 인터뷰에서 타츠나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대단한 선배님(素晴らしい先輩)라고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그 유래.(다만 이 이야기는 출처가 불분명한 난J발 창작네타일 가능성이 크다.) 보통은 선배님을 빼고 다른 관용구를 붙이는데 이 중
야쿠자가 적잖은 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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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타의 경우, 십중팔구 대댓으로 격발음을 의미하는 탕 소리(일명 "팡(パァーン)")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