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타 료스케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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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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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
2015 WBSC Premier 12™ {{{#c63 동메달}}}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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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외야수 부문 베스트나인 | ||||
맷 머튼(
阪神) 아오키 노리치카( ヤクルト) 초노 히사요시( 巨人) |
→ |
히라타 료스케(
中日) 블라디미르 발렌틴( ヤクルト) 초노 히사요시( 巨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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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머튼(
阪神) 블라디미르 발렌틴( ヤクルト) 초노 히사요시( 巨人) |
2018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 ||||
스즈키 세이야(
広島) 마루 요시히로( 広島) 쿠와하라 마사유키( De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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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타 료스케(
中日) 마루 요시히로( 広島) 오오시마 요헤이( 中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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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세이야(
広島) 아오키 노리치카( ヤクルト) 오오시마 요헤이( 中日) |
{{{#fff [[주니치 드래곤즈|주니치 드래곤즈]] 등번호 8번}}} | ||||
모리노 마사히코 (2004-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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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타 료스케 (2006-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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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시마 요헤이 (2011~) |
{{{#fff [[주니치 드래곤즈|주니치 드래곤즈]] 등번호 40번}}} | ||||
나시카와 아키라 (2007-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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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타 료스케 (2011-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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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츠라 이오리 (2014-2017) |
{{{#fff [[주니치 드래곤즈|주니치 드래곤즈]] 등번호 6번}}} | ||||
이바타 히로카즈 (2003-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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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타 료스케 (2014~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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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타 쇼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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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타 료스케 平田良介 | Ryōsuke Hira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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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88년 3월 23일 ([age(1988-03-23)]세) |
국적 | 일본 |
출신지 | 오사카부 오사카시 조토구 |
학력 | 오사카토인고등학교(大阪桐蔭高等学校) |
신체 | 177cm, 92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5년 드래프트 1순위 |
소속팀 | 주니치 드래곤즈 (2006~2022) |
응원가 | 자작곡[가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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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주니치 드래곤즈 소속의 외야수.2. 선수 경력
2.1. 프로 이전
오사카 굴지의 명문 오사카토인고교에 진학해 1학년 여름부터 주전 6번 타순으로 자리잡았고, 가을부터는 무려 4번타자를 맡게 되었다. 이미 1학년 때부터 오사카에 이름이 알려져 있던 상태였고, 1학년 입학과 동시에 상급생들과 함께 바로 실전 훈련 참가를 허락받았다고 한다.2학년 때 여름 고시엔에 출장하여 1회전부터 홈런을 기록했고, 준준결승 토호쿠전에서는 PL학원고등학교의 키요하라 카즈히로 이래 첫 3홈런 경기를 펼쳤다. 준결승에는 당시 2학년이었던 다나카 마사히로가 있는 코마다이 토마코마이와 붙어서 타나카에게 4타수 무안타로 봉쇄당하고 연장전 끝에 패퇴했다.
2005년 고교생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주니치 드래곤즈에 1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여담으로, 고교 3학년 때 1학년 신입생 중에 나카타 쇼와 오카다 마사토시[3]가 있었다.
2.2. 주니치 드래곤즈
2.2.1. 2006년
의외로 기회는 빨리 와서, 8월 26일에 1군에 콜업되어 요코하마전 9회말 쿠라모토 히데노리[4]의 대타로 들어와 3루수 땅볼로 물러난 것으로 데뷔하였다.2.2.2. 2007년
2007년 10월 4일, 7번 중견수로 첫 스타멘 출전을 완수했다. 연장 11회말 만루에 타석에 들어섰지만 몸에 맞는 공(...)으로 프로 데뷔 첫 타점을 올렸다. 이틀 뒤 6일 야쿠르트전에서 프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했고, 7일 요코하마전에서 3안타 경기로 첫 맹타상을 수상했다. 종반이었지만, 준수한 타격과 수비로 선발 출장 기회를 많이 받았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때는 히데노리의 부상으로 전 경기 선발 출장하는 기회를 받았다.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2007년 일본시리즈에도 선발 출장하며 3차전에서 안타를 기록했고, 5차전에서는 닛폰햄 선발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희생플라이로 1타점을 기록했는데[5], 이 희생플라이로 얻은 점수가 해당 경기의 양팀 합계 유일한 득점이었다. 히라타의 결승 타점으로 주니치는 무려 53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는 쾌거를 누렸다. 첫 번째 우승 때도 고졸 2년차였던 이노우에 노보루(井上登)의 결승 타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것에 이어서, 두 번째 우승도 고졸 2년차인 히라타의 손에 의해 우승을 확정지었다. 12월에 구단에서 우승 기념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출발 전날에 연습 도중 발을 삐여서(...) 우승 결승 타점의 주인공이 여행에 떠나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2.2.3. 2008년
다리 삐였던 게 염좌가 되는 바람에 춘계 캠프 때는 2군에서 재활하다가, 모리노 마사히코의 부상으로 오픈전 때는 1군에 콜업되었다. 모리노가 부상에서 돌아오며 다시 내려가긴 했지만, 히라타가 5월 중순까지 2군에서 1할대 타율로 허덕임에도 모리노가 다시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말소시켜야 하는 상황이 되자 재콜업되었다. 하지만, 2군에서도 부진하던 히라타가 1군에서 활약할 리가 만무하니 5월 26일에 다시 내려갔다.9월 7일 요코하마전에서 9회말 대타로 출전,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장식하였다.
오프 시즌 추계 캠프에서 또다시 부상으로 내년 춘계 캠프도 2군 스타트 확정.
2.2.4. 2009년
2군에서 춘계 캠프를 보내고, 오픈전에서는 1군에 합류하였다. 데뷔 4년만에 1군에서 개막전을 맞이했는데, 외야 경쟁은 커녕 대타도 소화하지 못하며 다시 2군행. 8월에 다시 한번 기회를 받았지만, 대타로 나와 병살과 삼진만 적립하고 9월에 다시 말소되었다.2.2.5. 2010년
신인 오오시마 요헤이의 등장으로 안그래도 삽질하던 마당에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일본시리즈에서도 활약하지 못하고, 시즌 종료 이후에는 등번호까지 오오시마에게 뺏기고(...) 40번으로 변경되었다.2.2.6. 2011년
역시 2군에서 시간을 보내다 5월 5일 어린이날[6]에 1군에 승격되었다. 18일 롯데전에서 동점 홈런, 22일 라쿠텐전에서는 첫 4안타 경기를 펼쳤다.6월 4일 세이부전에서 9회말 동점 적시타와 연장 11회말 노가미 료마로부터 끝내기 홈런을 기록하였다. 다음 날, 롯데전에서는 야부타 야스히코를 상대로 또다시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다. 이틀 연속 끝내기 홈런 기록은 2002년 마츠이 카즈오 이래 9년만이자, 일본프로야구 사상 8번째 기록이다. 센트럴리그로 한정하면 1988년 이후 23년만이며, 주니치 드래곤즈 구단 사상 첫 번째 기록이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6월에는 센트럴리그 월간 MVP를 수상하였고, 2009년 6월 와다 카즈히로 이후 팀의 야수로서는 2년만의 수상이다.
센트럴 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다음날에는 처음으로 4번 타자로 출장했다. 7월 이후에는 페이스가 떨어지며 113경기 .255 11홈런 38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그래도 수비에서는 센트럴 리그 3위인 8개의 보살로 리그 우승에 한몫했다.
2.2.7. 2012년
3월 30일 개막전에 스타멘 출장하여 2012년 팀 1호 홈런을 기록했다. 7번으로 출장하다 모리노의 부상 때는 3번 클린업까지 맡기도 했지만 5월에 허리를 다쳐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홈런은 작년과 같이 11개로 두자릿수를 유지했지만, 타율이 떡락하며 .216으로 멘도사 라인까지 내려갔다.2.2.8. 2013년
마츠이 유스케에게 주전자리도 뺏기고 33타석에서 단 한개의 안타도 기록하지 못하고 엔트리에서 다시 말소되었다.6월 23일, 쿄진전에서 주니치가 3년만의 4홈런을 기록하며 승리했는데 히라타가 2회 선제 투런과 7회 쓰리런으로 5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주전 우익수로 출장하며 기세를 탔는지, 규정 타석은 못 채웠지만 타율 .289, 15홈런, 55타점으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인 11월에 치러진 '2013 Baseball Challenge'에 일본 대표로 참가하여, 대만과 맞붙었다.
등번호를 40번에서 6번으로 또다시 변경하였다.
2.2.9. 2014년
오픈전에는 4번 우익수로 출장하기도 했고 초반에는 작년의 기세를 유지하나 싶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교류전 즈음에는 6번으로 내려갔다. 6월 27일 한신전에서 파울플라이를 잡으려다 오른쪽 발목을 삐고 한달동안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초반에 꾸준히 출장했기 때문에 무려 데뷔 9년만에 첫 규정타석을 채웠다.2.2.10. 2015년
7월 16일, 2015 WBSC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팀 1차 후보로 선발된 것이 발표되었고, 9월 10일에는 대표팀 후보 선수로 발표되었다. 10월 9일, 최종 28인 로스터에 승선하며 첫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되었다.시즌 종료후, 개인 첫 센트럴리그 외야수 부문 베스트나인에 선정되었고 2016년 주장으로 취임하였다.
2.2.11. 2016년
오프시즌인 2월 15일, ' 사무라이 재팬 강화시합 일본 対 대만' 일본 대표팀 26이 로스터에 차출되었다.교류전이 한참인 6월 18일 닛폰햄전에서 시즌 10호 홈런을 기록하면서, 6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달성하였다. 9월 14일에 어깨 부상으로 또다시 말소... 시즌 종료 후, 첫 FA자격을 취득했지만 팀과 연장 계약을 맺으며 잔류하였다.
2.2.12. 2017년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으로 차출되었다.정규시즌 때, 이번에는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66경기밖에 나오지 못했다.
2.2.13. 2018년
극초반에는 부진하다가 5월에는 월간 타율 .431을 기록하며, 팀 동료인 다얀 비시에도와 수위타자 경쟁을 펼치는 등 센트럴 리그 상위권에 랭크되어있다. 고타율 및 고출루율로 리드오프로 타순이 조정되었고, 8월 16일에는 첫 타석에 리드오프 홈런을 기록하더니 2루타 2개, 3루타 1개, 단타 1개까지 추가하며 5타수 5안타로 일본프로야구 68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비록, 수위타자 타이틀은 비시에도가 가져갔지만 .329의 타율로 커리어하이를 경신했고, 생애 첫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였다.2.2.14. 2019년
작년과 같이 1번타자로 출장하다가, 5월 17일에 이번에는 왼쪽 넓적다리 근육 파열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그렇게 복귀한 뒤인 7월 20일에는 이시다 켄타에게서 프로 통산 100호 홈런을 기록했다.8월 14일 한신전에서 오른쪽 손목에 공에 맞에 교체되었고, 일주일 뒤인 21일에 1군에서 말소되었다. 9월 10일에 다시 복귀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95경기 출전에 그쳤다.
2.2.15. 2020년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인해 개막이 늦어져, 개막 초반인 6월 24일까지 18타수 1안타에 그치고 있다. 그 뒤에도 계속 부진하다가 7월 20일에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9월 24일에는 4안타 활약을 펼쳤지만, 이틀 뒤인 26일에 다리 상태가 안 좋다는 이유로 또다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가, 10월 29일에 다시 승격되었지만, 잦은 부상으로 더욱 적어진 55경기 출전에 그쳤다.
2.2.16. 2021년
2021년 개막 21경기에서 타율 .155 0홈런 4타점으로 부진하면서, 4월 28일에 부상이 아닌 부진을 이유로 말소되었다. 2군에서 재활하다가, 7월 4일에는 천식과 이형협심증(異型狭心症)[7] 진단을 받았다. 덕분에 21경기 출전에 그쳤고, 마침 5년 연장 계약도 끝나서 연봉이 1억 5000만엔 감봉되어 3000만엔에 계약을 맺었다.2.2.17. 2022년
나이가 나이인지라 대타와 대주자로 주로 출전하다가, 5월 10일에는 코로나19까지 걸리며 또다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결국 10월 1일 방출 통보를 받으며 17년간 몸담았던 팀을 떠나 현역 연장을 발표했다. 하지만, 기량 자체도 저하가 심각하고 상술한 이형협심증을 떠안고 있는 선수를 받아줄 팀이 있을리가 만무했고, 결국 12월 28일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렇게, 2007년 일본시리즈의 우승멤버가 또 하나 사라졌다.3. 플레이 스타일
고교 통산 70홈런의 장타력, 50m 5초 7의 준족, 원투(遠投) 110m의 강한 어깨도 가지고 있다. 장타력은 6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유지하며 증명하였지만, 2021년 시즌 종료 기준 통산 도루가 41개인데, 도루사가 31개일 정도로 잘 활용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수비는 오치아이 히로미츠 당시 감독도 극찬했을 정도이며, 2021년까지 NPB 16시즌 통산 수비율 .995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홈구장이 홈구장인지라 타격 면에선 손해를 봤지만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전성기때는 WAR 5 안팎을 꾸준히 찍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크고 작은 잔부상에 시달린 탓에 고교 시절의 기대치를 프로에서 완전히 보여주지도 못한 채 전성기가 오래 가지 못했고 벤치 멤버로 밀려나버린 비운의 선수.
4. 기타
- 엄청난 유리몸이다. 위의 서술 중 활약상보다 부상 경력이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나이도 더 많은 오오시마 요헤이가 금강불괴에 가까운 내구력을 자랑하는 것에 비하면 아쉬울 따름.
- 수훈선수 인터뷰 때도 경기 내용 말고도 사족을 많이 다는 등, 활달한 성격으로 팀내 분위기 메이커를 맡고 있다.
- 만화를 좋아하는데, 생긴 것에 걸맞지 않게 소녀만화를 좋아한다. 오사카 본가에는 약 900권의 책이 보관되어 있다고. 그 중에서도 200권을 엄선해 클럽하우스에 들고와서 보고 있다고 한다.
- 게임도 꽤나 잘하는지, 모두의 골프와 위닝 일레븐, 파워풀 프로야구를 특히나 잘하고 위닝 일레븐은 넷 대전에서 한 때 전국 151위,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는 30위까지 찍었다고 한다. 물론, 출처는 본인썰.
- 배우자가 한 살 연상인데, 2007년부터 3년간 교제하며 2010년 5월에 혼인신고를 했다. 그 해 12월에 장남을 출산했고, 3년 뒤인 2013년에는 딸이 태어났다. 배우자의 영향으로 아이돌 그룹 모모이로 클로버 Z의 팬이며, 2013년부터 등장곡으로 쓰고 있다.
- 본가가 교세라 돔 오사카와 가가워서 어릴 적엔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팬이었다고 한다. 특히, 나카무라 노리히로의 팬이었는데, 2007년에 나카무라가 주니치로 이적하게 되자 감격했는지 '노리'라고 부를 뻔했다고.
- 오사카토인 출신인 니시오카 츠요시(1984년생)와 나카타 쇼(1989년생)와 친하며 트레이닝도 같이 하고 다닌다. 여담으로, 셋 다 오사카토인에서 4번타자를 맡았고, 모두 1순위로 지명받아 고졸로 프로에 입단하여 활약했다.
- 2014년부터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이 현역 때 사용했던 6번을 달게 되었다. 도카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등번호 변경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처음에는 구단으로부터 9번을 제시받았지만 작년까지 동료 외야수였던 노모토 케이의 번호였기 때문에 고사하며 자신이 마음에 드는 6번을 달게 되었다고 한다. 오차아이 감독이 "누가 사용했던 건지 알고 있냐?"라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2015년 8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 도쿄 돔 좌측 외야에 있는 기린 이치방 시보리(一番搾り) 간판을 직격하는 특대형 홈런을 기록해서, 기린 맥주로부터 상금 100만엔과 기린 이치방 시보리 1년분을 무료 증정받았다.
- 2018년 오프시즌에 차량 가격만 3970만엔 하는 롤스로이스 고스트 블랙배지를 구입해서 화제가 되었다. 프로야구 선수되면 무조건 고급차 타고싶었다고 하며, 어릴 적 신조 츠요시가 페라리 타고다니던게 부러웠다고 한다. 정작 신조는 투자 사기를 크게 당한 바람에 페라리를 팔았다.
- 2020년 12월 20일, 니코니코 생방송에서 기획하는 프로야구X쇼기 특별 방송(プロ野球×将棋特番)에 출연하여, 마루 요시히로, 야스다 히사노리, 사이토 유키야(齋藤友貴哉)를 꺾고 우승하며 '구왕(球王)'의 칭호를 얻었다. 2021년에도 출연하여 전년도 대회의 실적과 쇼기 문화 보급에 공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와타나베 아키라 명인에게 직접 일본쇼기연맹 초단 면허가 수여되었다. 2021년 역시 니시구치 나오토를 꺾고 2연패 달성에 성공하였다.
5. 연도별 기록
NPB 통산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점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06 |
中 日 |
2 | 2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00 | .000 | .000 | .000 |
2007 | 3 | 13 | 3 | 1 | 4 | 0 | 0 | 0 | 0 | 0 | 4 | .333 | .385 | .333 | .718 | |
2008 | 59 | 111 | 9 | 9 | 26 | 3 | 0 | 1 | 0 | 6 | 25 | .268 | .311 | .330 | .641 | |
2009 | 42 | 95 | 9 | 13 | 23 | 7 | 3 | 2 | 0 | 8 | 19 | .271 | .337 | .494 | .831 | |
2010 | 6 | 12 | 0 | 0 | 1 | 0 | 0 | 0 | 0 | 0 | 4 | .083 | .083 | .083 | .167 | |
2011 | 113 | 376 | 38 | 39 | 84 | 15 | 6 | 11 | 1 | 38 | 72 | .255 | .333 | .436 | .769 | |
2012 | 91 | 301 | 32 | 28 | 58 | 4 | 1 | 11 | 1 | 28 | 59 | .216 | .290 | .361 | .651 | |
2013 | 118 | 414 | 55 | 54 | 106 | 22 | 3 | 15 | 1 | 41 | 54 | .289 | .366 | .488 | .853 | |
2014 | 119 | 488 | 65 | 55 | 119 | 17 | 1 | 11 | 7 | 54 | 65 | .277 | .357 | .399 | .755 | |
2015 | 130 | 559 | 53 | 76 | 139 | 27 | 3 | 13 | 11 | 64 | 86 | .283 | .369 | .430 | .799 | |
2016 | 118 | 494 | 73 | 61 | 103 | 24 | 1 | 14 | 4 | 72 | 89 | .248 | .358 | .411 | .769 | |
2017 | 66 | 270 | 29 | 26 | 58 | 14 | 2 | 6 | 4 | 29 | 60 | .244 | .326 | .395 | .721 | |
2018 | 138 | 568 | 55 | 83 | 162 | 26 | 5 | 9 | 8 | 67 | 69 | .329 | .410 | .456 | .866 | |
2019 | 95 | 407 | 32 | 52 | 100 | 21 | 4 | 8 | 3 | 38 | 53 | .278 | .350 | .425 | .775 | |
2020 | 55 | 193 | 17 | 26 | 39 | 7 | 0 | 3 | 0 | 24 | 33 | .235 | .337 | .331 | .668 | |
2021 | 21 | 62 | 4 | 3 | 9 | 2 | 2 | 0 | 1 | 3 | 13 | .155 | .210 | .259 | .468 | |
2022 | 51 | 83 | 10 | 8 | 15 | 3 | 0 | 1 | 0 | 7 | 20 | .200 | .277 | .280 | .557 | |
NPB 통산 (17시즌) |
1227 | 4448 | 484 | 534 | 1046 | 192 | 31 | 105 | 41 | 479 | 726 | .268 | .350 | .414 | .764 |
6. 관련 문서
[가사]
チームを勝利へ誘え 全力プレーで
치-무오 쇼-리에 이자나에 젠료쿠푸레-데
팀을 승리로 이끌어라 전력의 플레이로
Let's go 平田 行こうぜ 歓喜の瞬間へと
렛츠고 히라타 이코-제 캉키노 토키에토
렛츠고 히라타 가자 환희의 순간으로
(かっとばせー 平田
(캇토바세 히라타)
(날려버려 히라타) [2] 「誘え」와「瞬間」는 원래의 '사소에'와 '슝칸'이 아니라, '이자나에'와 '토키'로 읽는 것에 주의. [3] 세이부의 포수 [4] 등록명은 '히데노리' [5] 나중에 인터뷰에서 "직구가 아니라 슬라이더 던졌으면 못 쳤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다르빗슈의 슬라이더는 무결점 그 자체였다. [6] 「子供の日」일본 역시 양력 5월 5일이다. [7] 관상동맥벽을 감싸고 있는 근육섬유가 갑작스럽게 수축을 하게 되면, 동맥이 수축되어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못할 때 유발하는 협심증.
치-무오 쇼-리에 이자나에 젠료쿠푸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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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go 平田 行こうぜ 歓喜の瞬間へと
렛츠고 히라타 이코-제 캉키노 토키에토
렛츠고 히라타 가자 환희의 순간으로
(かっとばせー 平田
(캇토바세 히라타)
(날려버려 히라타) [2] 「誘え」와「瞬間」는 원래의 '사소에'와 '슝칸'이 아니라, '이자나에'와 '토키'로 읽는 것에 주의. [3] 세이부의 포수 [4] 등록명은 '히데노리' [5] 나중에 인터뷰에서 "직구가 아니라 슬라이더 던졌으면 못 쳤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다르빗슈의 슬라이더는 무결점 그 자체였다. [6] 「子供の日」일본 역시 양력 5월 5일이다. [7] 관상동맥벽을 감싸고 있는 근육섬유가 갑작스럽게 수축을 하게 되면, 동맥이 수축되어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못할 때 유발하는 협심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