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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17:07:00

주니치 드래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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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문서
<colbgcolor=#003570><colcolor=#ffffff> 모기업 관련 정보 모기업 파일:주니치신문 로고.svg 주니치신문
일본시리즈 우승
★★
1954 · 2007
리그 우승
(9회)
1954 · 1974 · 1982 · 1988 · 1999 · 2004 · 2006 · 2010 · 2011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시즌별 요약 2022 · 2023 · 2024
경기장 1군 반테린 돔 나고야 · 2군 나고야 구장
지방 홈구장 하마마츠 구장 · 토요하시 시민구장 · 나가라가와 구장
홈 중계 채널 파일:J SPORTS 2 로고.svg
현역 선수 경력 와쿠이 히데아키/선수 경력 · 타카하시 히로토/선수 경력 · 나카지마 히로유키/선수 경력
주요 인물 감독 이노우에 카즈키 · 선수회장 야나기 유야 · 투수 주장 오노 유다이 · 야수 주장 오오시마 요헤이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10.8 결전 · 암흑기 · 도아라
틀 문서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육성 선수 역대 감독 영구 결번 | 미스터 드래곤즈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 역대 개막전 선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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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595><colcolor=#ffffff> 주니치 드래곤즈
Chunichi Dragons
[ruby(中日, ruby=ちゅうにち)]ドラゴンズ
구단 법인명 ㈜주니치 드래곤즈
(株式会社中日ドラゴンズ)
창단 1936년 1월 15일([age(1936-01-15)]주년)
연고지 아이치현 나고야시
연고지 변천 아이치현 (1952~ )
구단명 변천 나고야군 (1936~1943)
산교군 (1944)
주부닛폰 (1946)
주부닛폰 드래곤즈 (1947)
나고야 드래곤즈 (1951~1953)
주니치 드래곤즈 (1948~1950, 1954~ )
홈구장 변천 고라쿠엔 구장 (1948)
나고야 구장 (1948~1996[1])
반테린 돔 나고야 (1997~ )
2군 구장 나고야 구장 (1997~ )
모기업 주니치신문
감독 89 이노우에 카즈키 (井上一樹)
주장 8 오오시마 요헤이 (大島洋平)
22 오노 유다이 (大野雄大)
키트 스폰서 미즈노
마스코트 파일:주니치 드래곤즈 마스코트.svg
샤오론, 도아라(ドアラ), 파오론
구단기 파일:주니치 드래곤즈 구단기.svg
역대
한국인 선수
선동열 (1996~1999)
이종범 (1998~2001)
이상훈 (1998~1999)
이병규 (2007~2009)
송상훈 (2012~2014)
역대
한국인 코치
장훈[2] (1992)[3]
이종범 (2020)[4]
홈경기 중계 채널 파일:J SPORTS 2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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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리즈 우승 (2회)
1954, 2007
센트럴 리그 우승 (9회)
1954, 1974, 1982, 1988, 1999, 2004, 2006, 2010, 2011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3회)
2007, 2010, 2011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07
포스트시즌 진출 (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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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570> 일본시리즈 1954년, 1974년, 1982년, 1988년, 1999년, 2004년, 2006년, 2007년, 2010년, 2011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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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팀 컬러3. 구단 역사4. 관중수 추이5. 홈 구장6. 유니폼7. 응원8. 마스코트9. 이모저모
9.1. 일본프로야구 대표 콩라인9.2. 한국인 선수와의 인연9.3. 기타 이야깃거리
10. 선수단11. 역대 선수12. 역대 감독13. 역대 성적
13.1. 단일리그 시대13.2. 양대리그 분리 이후
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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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소속 프로 야구단. 연고지는 아이치현 나고야시. 소유주는 주니치신문사 ([ruby(中日新聞社, ruby=ちゅうにちしんぶんしゃ)])[5], 홈구장은 나고야 돔.

1936년 일본프로야구 원년부터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4개 팀[6] 중 하나로 주부 지방을 대표하는 센트럴리그의 강호이자 인기 팀이었고 한때는 리그에서 요미우리와 더불어 유이하게 비밀번호를 기록하지 않은 팀이었다.

1990년대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일본프로야구 구단이였다. 이유는 선동열, 이상훈, 이병규[7], 이종범[8] 등 많은 한국인 선수가 이 팀을 거쳐갔기 때문. 그리고 1982년, 한국에서 MBC 청룡이 창단하자 같은 '드래곤팀' 이라는 이유로 서로 자매구단 결연을 맺기도 했으며, 이는 MBC가 LG가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인연이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1987년부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도 제휴 중. 당장 본 문서에 나와있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로고도 다저스의 로고와 같은 영어 폰트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2. 팀 컬러

원래 팀 컬러는 일명 '공룡타선' 이라고 불리던, 나고야돔에 비해 작은 구장인 나고야 구장에서 홈런을 양산하는 스타일이었다. 당장에 구단 레전드만 보더라도 에토 신이치, 오시마 야스노리, 야자와 켄이치, 우노 마사루, 오치아이 히로미츠, 타이호 야스아키 등 강타자들이 다수 떠오를 정도.

그러나 1997년에 현재의 홈구장인 반테린 돔 나고야(당시 나고야돔)을 홈구장으로 쓰게 되면서 이전과는 달리 드넓은 그라운드에 적응하지 못한 선수들의 부진으로 작년 마지막까지 리그 우승 경쟁을 벌인 팀이 꼴찌로 추락하게 되었는데, 이때 기존의 작은 구장에 특화된 공격 중심의 야구가 나고야 돔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파악한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지금까지의 팀 스타일을 버리고 투수와 수비, 기동력 중심의 팀 스타일을 새롭게 확립하면서 현재까지 일본프로야구 12구단 중 가장 수비적인 야구를 하는 팀컬러의 시초가 되었다. 이렇게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정립한 수비 중심의 팀 컬러는 2004년에 취임한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에 의해 완성되어 지키는 야구를 바탕으로 최전성기를 누리게 되었고, 특히 팀 성적이 가장 좋았던 2000년대 중후반엔 투수진은 다른 팀에 갈 경우 못해도 3, 4선발쯤은 할 것 같은 선수들이 구원투수 혹은 2군에 머무른다고 할 정도로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야수진은 전 포지션이 골든글러브 후보로 꼽힐 정도로 수비에선 당대 최고라 불려도 손색없는 실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팀컬러 때문에 국내에서는 간간히 FC 주니치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로는 그 당시의 중심선수들의 대체 선수 육성 미흡과 드래프트 실책 등의 이유로 세대교체에 대실패했고[9], 그 여파로 과거에는 압살했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게도 밀림과 동시에 최약체 자리까지 물려받는 신세로 내려앉았다. 2010년대 이후로는 고질적으로 투신타병이 팀 컬러로 자리잡아[10] 2022년에는 26경기 영봉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우고, 타카하시 히로토, 오가사와라 신노스케 등 에이스 투수들의 승리가 막장 타선 때문에 날아가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으며 주니치 투수들이 대표팀에 꼽히면 타자들이 주니치보다 점수를 잘 내줘서 행복야구를 하고 왔다는 소리가 나온다(...) 더불어서 기존 주전들을 밀어내고 새로 주전 자리를 차지한 선수들이 이전의 주전들보다 기량이 다소 밀리다 보니 가끔씩 10실점 이상을 내주는 경기도 나올 정도.

또한 굉장히 보수적인 경영을 하는 팀인데, 지방지 신문사가 모기업인 특성상 자회사인 드래곤즈도 상당히 보수적인 경영과 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원래 언론사는 기업문화가 경직되고 보수적인 편인데 더군다나 오랜 세월 나고야에서 확장도 축소도 잘 안 해오며 지내온 팀이라 굉장히 보수적 색채가 강하다. 좋게 말하면 연공서열인 거고 나쁘게 말하면 공무원스러운 문화. 그래서 확실히 타 팀보다 장기근속하는 선수가 많은 편으로 일본프로야구 최고령 등록선수였던 야마모토 마사를 비롯 30대 후반~40대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베테랑들이 타 팀보다 많은 편이며, FA역시 FA로 나가는 선수도 들어오는 선수도 적은 편이다. 한번 뽑은 선수를 가족처럼 오래오래 가는 문화로 코칭스탭이나 감독도 교진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자팀 선수 출신을 선호하는 편이다. 또한 드래프트에서 신인을 뽑을 때도 구단의 영향권인 지역( 아이치현, 기후현, 미에현 동부, 시즈오카현 서부) 출신을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초특급 신인의 경우에는 당연히 추첨을 불사하고 지명을 하지만 그 추첨에서 떨어지거나 그런 스타 후보 선수들이 드래프트에 나오지 않을 때는 팔이 안으로 굽는 지명을 다른 구단보다 두드러지게 하는 편이다.

장점이라면 역시 베테랑들이 잘 해줄 땐 경험많은 베테랑들로 안정된 성적을 낼 수 있고, 또 오래 뛴 선수들은 일종의 브랜드화가 되어 상품도 잘 팔리지만, 2010년대처럼 세대교체에 실패했을 시 베테랑이 오래오래 해먹으니 대체자원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길고 긴 암흑기에 빠질 수가 있다.

2010년대 이후로는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모기업 경영이 날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 주부 지방 일대를 중심으로 신문사와 방송국 사업을 하지만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종이 신문과 TV 방송은 스마트폰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쇠퇴하고 있는 실정이다.[11] 이 때문에 암흑기에 빠져 있는 팀 상황을 자금력의 힘을 빌려서 타파하기도 힘든 상황. 오노 유다이의 다년계약 자금을 마련하려고 모기업 소유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신청하는가 하면 2022년 이후 연봉총액이 그 카프를 제치고 12구단 중 가장 낮은 12위에 위치했을 정도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

세대교체에 실패해 전력이 약해져버린 약팀인데다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인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니 선수들과의 연봉 협상에서 크고 작은 잡음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이에 불만을 가진 일부 선수들이 FA 등을 통해 타 팀으로 떠나버리게 된다. 그에 따라 이들을 대상으로 한 관련 상품들은 악성 재고로 남게 되어 수익 감소로 이어지고 구단은 다시 야구를 통한 수익 감소로 경영난이 지속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이러한 팀 상황 때문에 일부 팬들은 주니치신문이 구단을 매각해서 현재의 모기업보다 자금 사정이 좋고 구단 경영에 열의를 보이는 기업이 구단을 맡아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반테린 돔 나고야의 네이밍 스폰서를 맡고 있는 코와, 프린터 미싱 등으로 유명한 브라더 등이 팬들 사이에서 희망하는 인수 기업으로 거론되고 있다.[12] 허나 이러한 매각안은 어디까지나 팬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사항일 뿐 주니치는 구단을 전혀 매각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팔 이유가 없기 때문.[13]

주니치신문은 한때 지방지에 불과함에도 일부 전국지의 발행부수를 따라잡을 정도로 사세가 대단했는데, 이러한 강한 사세엔 드래곤즈의 역할이 컸다. 스포츠구단을 지니고 있어 주니치신문에서 발행하는 스포츠신문인 주니치스포츠에 꾸준히 컨텐츠를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종이신문이 몰락해가는 2010년대에도 주니치스포츠는 40만 부나 되는 발행부수를 자랑할 수 있었고, 현재도 모기업에게는 효자 컨텐츠 역할을 하고 있다. 구단을 팔아버리면 발행부수가 줄어드는 데 이어 광고수입이 줄어드는 식으로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 뻔한 데다 지역 주민들의 애정으로 돈을 버는 지역밀착 기업이기에 주부를 상징하는 구단을 팔아 버리면 더이상 주니치신문은 주부를 대표하는 신문으로서의 상징성을 가질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스포츠지를 떠나 본지도 발행부수 폭락은 피할 수가 없다. 더 이상 주부를 상징하지 않는 신문을 주부 사람이 굳이 살 이유가 없기 때문에 적자를 좀 내더라도 사세 유지를 위해서는 구단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즉 일부러 안 파는 것만이 아니라 아니라 이미 100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주부 지역과 주니치신문, 드래곤즈는 한 몸이 되어버려서[14] 어느 한 쪽을 도저히 뗄 상황이 아니다 보니 사정이 어려워도 못 파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역민의 충성이 대단한 구단이라, 아무리 팀이 못해도 최소한의 수입은 유지가 되기에 모기업이 어려워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면 구단을 굴릴 정도로는 어찌어찌 버틸 수는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잘하는 선수는 다 나가버리고, FA와 고액용병은 꿈도 못 꾸고 성적도 제대로 안 나오니 팬들이야 속이 터지겠지만 기업의 사정이 그렇게 된 탓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팀이다.

3. 구단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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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중수 추이

총 관중 일일 평균
2012년 2,080,530명 28,896명
2013년 1,998,188명 27,753명
2014년 2,000,912명 27,790명
2015년 2,049,784명 28,469명
2016년 2,058,381명 28,991명
2017년 2,010,772명 27,927명
2018년 2,110,276명 30,147명
2019년 2,285,333명 31,741명
2020년 378,006명 6,300명
2021년 593,791명 8,363명
2022년 1,807,619명 25,459명
2023년 2,183,950명 30,333명

주부 지방을 대표하는 야구팀답게, 팀이 암흑기에 빠져도 2만 7~8천명대의 평관을 유지하는 반면, 팀이 방어율왕 오노 유다이를 배출하고 시즌 후반부까지 3위 싸움을 벌이며 비밀번호를 탈출하느냐 마느냐로 팬들을 들었다놨다 했던 2019시즌도 3만1천명대로 크게 관중이 늘지 않는다.

일본프로야구 창단부터 주부의 나고야에서 연고지를 한 번도 옮기지 않은 데다가 스폰서도 나고야 지방지인 주니치신문으로 지역색이 굉장히 강한 팀이라, 아무리 팀이 못 해도 지역을 베이스로 한 콘크리트가 워낙 튼튼해서[15] 관중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 반면 반대로 아무리 잘 해도 나고야 이외에는 팬이 생기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어 크게 늘어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슷하게 세리그 지방연고팀인 한신은 훨씬 인구가 많은 간사이권 전지역+안티 교진 성향의 팬들을 팬베이스 삼고 있어서 밥그릇 자체가 훨씬 큰데다가 확장성까지 있고, 히로시마 카프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같은 경우 인터넷이나 방송 등을 통한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지역을 넘어 팬덤을 확장시켰으며, 파리그는 아예 리그가 단체로 뭉쳐 합심해 팬덤을 확장하는 식으로 나가는데 주니치는 경영이 일본에서 가장 보수적인 팀 중 하나로 저렇게 언제나 크게 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줄지도 않는 팬덤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근데 그렇게 운영해도 아이치를 꽉 쥐고 있어[16] 평관수는 일본프로야구 상위권이라 밥그릇 걱정이 없으니 더더욱 보수적인 경영 일변도로 일관하는 구단. 덕분에 일본내에서 주니치 응원하는 사람=100% 나고야 출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17]

5. 홈 구장

제1구장
파일:external/userdisk.webry.biglobe.ne.jp/124220518574516309225.jpg
반테린 돔 나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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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구장
파일:Nagaragawa Baseball Stadium_729cff5f.jpg 파일:external/www.rinkoh.co.jp/1_1425104846_12_jp.jpg 파일:1024px-豊橋市民球場.jpg
나가라가와 구장(기후) 하마마츠 구장 토요하시 시민구장

제2구장은 나가라가와 구장, 하마마츠 구장, 토요하시 시민구장이 있다.

6.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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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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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스코트

파일:attachment/DOARA07.jpg

이 팀의 마스코트인 코알라 도아라가 서브컬쳐계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pixiv에서도 도아라의 팬아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심지어 figma브랜드의 액션피규어로 출시되기까지 했다. 말 못하는 마스코트가 TV, 라디오에 나오고.. 광고는 물론 책에 음반까지 냈다. 관련상품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전 구단 통틀어서 상위권의 인기 캐릭터.[18] 4차원적인 행동 등으로 이상하지만 귀엽긴 하다 라는 반응이 대다수. 하지만 그 역시 2013년 오프시즌의 연봉삭감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시즌 도중 왼손 중지가 골절되는 바람에 퍼포먼스를 할 수 없게 되어 연봉이 식빵 1kg에서 750g으로(...) 25% 삭감되었다고 한다. 기자회견 기사



DJ 도아라라는 명의로 음반도 냈는데... 곡조가 너무 노골적이라 "설마 가 만든거 아님??" 생각했고 그 분 새 앨범에 수록이 되어서 빼도 박도 못하게 이 분 제대로 확정. 정작 작곡자는 호크스 팬이라는게 함정[19]

인터리그 기간 동안에는 도아라가 퍼시픽리그 팀 상징 동물들을 약올리는 광고를 내기도 한다. 이건 동쪽 팀 특기긴 한데

야쿠르트 스왈로즈 마스코트인 츠바쿠로 에이전트(...)이기도 하다.

얘 말고도 샤오롱과 파오롱[20]이라는 용에서 모티브를 따온 애들도 있다.

9. 이모저모

9.1. 일본프로야구 대표 콩라인

일본에서 주니치의 이미지는 만년 2위팀. 이러한 점 때문에 KBO에서는 한화 이글스와, MLB에서는 LA 다저스와 많이 엮인다.[21]

이는 통계로도 증명되는데, 이 팀은 창단 이후 전체 역사에서 2위만 26번, 1950년에 일본프로야구가 양대(2)리그제가 된 이후의 기간만 따지면 센트럴리그 2위만 무려 24번 을 해먹었다. 락라인? 이는 12개 구단 중 최다 2위 기록. 하지만 의외로 20세기 전체 승률은 놀랍게도 일본시리즈 우승도 한 번밖에 못한 한신 타이거스에 밀려서 3위이다. 1위야 당연하게도 요미우리 자이언츠다.

사실 세리그 전통의 강호이지만. 맨날 중요할 때 2위만 해대는 통에 리그 우승 경험도 강호의 이미지에 비해서는 매우 적다. 그것이 실제로 실현된 건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 아래 4번 리그 우승을 하기 이전까지 1954년, 1974년, 1982년, 1988년, 1999년의 단 다섯 번 뿐. 숙명의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홈에서 리그 우승을 내준 뼈아픈 기억도 자주 있다.(...). 1994년의 10.8 결전이나, 1996년 10월 6일 나고야 구장 최종전에서 패배하며 요미우리에게 11.5게임차를 뒤집는 역전 우승[22]을 확정지어주는 등 통한의 순간들이 적잖이 있었다.[23]

거기다 중요한 게임에 상당히 약해서, 일본시리즈 진출 횟수는 10번인데 우승 횟수는 고작 2번 뿐이다. 그나마도 두 번째로 우승했던 2007년 시즌[24]의 경우 1위로 진출한 것도 아니고 2위로 리그를 끝낸 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1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발라버리고 올라간 것이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연결된 것[25]. 만년 2위 팀의 명성에 걸맞은 행보였다(...). 팀 첫 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이 1954년이었으니 다음 우승까지 5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이런 얘기도 다 잘나가던 예전에 하던 배부른 소리. 2010년대 들어와서는 콩라인, 아니 락라인은 커녕 A클래스 꼴찌선인 리그 3위도 힘겨울 정도로 침체기를 겪고 있다.

9.2. 한국인 선수와의 인연

[26]

1996년 선동열이 입단한 뒤로 지속적으로 한국인 선수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선동열은 1년의 적응기간을 거치긴 했지만 다카쓰 신고, 사사키 카즈히로와 맞먹는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말년을 불태웠고, 그의 뒤를 따라 해태 타이거즈 후배 이종범 LG 트윈스의 좌완 에이스 야생마 이상훈도 주니치에서 함께 뛰게 되었다. 일본프로야구의 외국인 선수 1군 출전제한이 4명인 것을 감안할 때 꽤 파격적인 선택이었고, 선동열을 제외하면 사실 완전히 기대에 부응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성적이 훌륭하다까진 아니어도 나쁘지 않은 정도였고 1999년 나고야 돔으로 옮긴 뒤 첫 리그 우승을 하는 등 당시 팀 성적과 분위기가 꽤 좋았기에 한국 삼총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사랑받았다.
파일:a0114992_49ac178fd97ed.jpg
이적 첫 해 일본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누리는 이병규.[27]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이병규 선수가 소속했다. 그러나 주니치 역대 최고의 외야수 중 하나였던 후쿠도메 고스케의 포지션을 차지한데다가, 고액을 받는 외국인 선수 치고는 성적이 신통치 않아 언론과 팬들에게 자주 까였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뜬금포를 날려대는 통에 참 대놓고 까기는 뭐한 미묘한 상태였다. 그래도 2007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나름 공헌하는 활약을 했고 선수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며 일부 팬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기도. 그러나 2009년에는 완전히 말아먹었고, 본인은 주니치와 재계약을 원한다고 했으나 결국 팀은 시즌 종료 후 재계약을 요청하지 않으며 LG 트윈스로 돌아오게 되었다.[28] 여담으로 라뱅쓰리런 드립 역시 주니치 시절에 생긴 것이다.(...)

한국 고교야구 선수인 송상훈이 2012년 일본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 팀에 6순위로 지명되어, 한국 고교야구에서 드래프트로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입단 1년만에 육성선수로 신분이 바뀌었으며 2014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이후 한국 선수와의 인연은 끊어진 상황.

다만 요다 츠요시 감독이 2019시즌 종료 후 '과거 주니치는 한국 선수들이 도왔다'면서 한국야구에서 새 전력을 찾아보겠다고 언급. 11월에 개최될 프리미어12에서 한국을 시찰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뒤이어 주니치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이종범이 주니치에 2군 코치연수를 가게 되면서 인연이 다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29]

9.3. 기타 이야깃거리

[30]

10.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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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역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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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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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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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 현재
초대
이케다 유타카
(1936)
2대
마스 카이치
(1937)
3대
네모토 유키사토
(1938~1939)
4대
코니시 토쿠로
(1940~1941)
5대
혼다 치카요시
(1941~1942)
6대
마스 카이치
(1942~1943)
7대
미야케 다이스케
(1944)
8대
타케우치 요시카즈
(1946)
9대
스기우라 키요시
(1946~1948)
10대
아마치 슌이치
(1949~1951)
11대
츠보우치 미치노리
(1952~1953)
12대
아마치 슌이치
(1954)
13대
노구치 아키라
(1955~1956)
14대
아마치 슌이치
(1957~1958)
15대
스기시타 시게루
(1959~1960)
16대
노닌 와타루
(1961~1962)
17대
스기우라 키요시
(1963~1964)
18대
니시자와 미치오
(1964~1967)
19대
스기시타 시게루
(1968)
20대
미즈하라 시게루
(1969~1971)
21대
요나미네 카나메
(1972~1977)
22대
나카 토시오
(1978~1980)
23대
콘도 사다오
(1981~1983)
24대
야마우치 카즈히로
(1984~1986)
25대
호시노 센이치
(1987~1991)
26대
타카기 모리미치
(1992~1995)
27대
호시노 센이치
(1996~2001)
28대
야마다 히사시
(2002~2003)
29대
오치아이 히로미츠
(2004~2011)
30대
타카기 모리미치
(2012~2013)
31대
타니시게 모토노부
(2014~2016)
32대
모리 시게카즈
(2017~2018)
33대
요다 츠요시
(2019~2021)
34대
타츠나미 카즈요시
(2022~2024)
35대
이노우에 카즈키
(2025~)
:일본시리즈 우승 / : 센트럴리그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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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역대 성적

­ 리그 우승[35]
­ 2위
­ 3위
B클래스

13.1. 단일리그 시대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36 봄 [36] 나고야군 9 3 6 0 .333
1936 여름 [37] 7 4 3 0 .571
1936 가을 [38] [39] 26 12 14 0 .462
1937 봄 7위/8팀 <colbgcolor=#0066b3><colcolor=#ffffff> 7위 56 21 35 0 .375
1937 가을 8위/8팀 8위 49 13 33 3 .283
1938 봄 7위/8팀 7위 35 11 24 0 .314
1938 가을 4위/9팀 4위 40 19 18 3 .514
1939 6위/9팀 6위 96 38 53 5 .418
1940 5위/9팀 5위 104 58 41 5 .586
1941 6위/8팀 6위 84 37 47 0 .440
1942 7위/8팀 7위 105 39 60 6 .394
1943 2위/8팀 2위 84 48 29 7 .623
1944 4위/6팀 4위 산교군 35 13 21 1 .382
1946 7위/8팀 7위 주부닛폰 105 42 60 3 .412
1947 2위/8팀 2위 주부닛폰 드래곤즈 119 67 50 2 .573
1948 8위/8팀 8위 주니치 드래곤즈 140 52 83 5 .385
1949 5위/8팀 5위 137 66 68 3 .493

13.2. 양대리그 분리 이후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1950 2위/8팀 2위 주니치 드래곤즈 137 89 44 4 .669
1951 2위/7팀 2위 나고야 드래곤즈 113 62 48 3 .564
1952 3위/7팀 3위 120 75 43 2 .636
1953 3위/6팀 3위 130 70 57 3 .551
1954 1위/6팀 우승 주니치 드래곤즈 130 86 40 4 .683 일본시리즈 (4-3 vs 니시테츠)
1955 2위/6팀 2위 130 77 52 1 .597
1956 3위/6팀 3위 130 74 56 0 .569
1957 3위/6팀 3위 130 70 57 3 .550
1958 3위/6팀 3위 130 66 59 5 .527
1959 2위/6팀 2위 130 64 61 5 .512
1960 5위/6팀 <colbgcolor=#0066b3><colcolor=#ffffff> 5위 130 63 67 0 .485
1961 3위/6팀 3위 130 72 56 2 .562
1962 3위/6팀 3위 133 70 60 3 .539
1963 2위/6팀 2위 140 80 57 3 .584
1964 6위/6팀 6위 140 57 83 0 .407
1965 2위/6팀 2위 140 77 59 4 .566
1966 2위/6팀 2위 132 76 54 2 .585
1967 2위/6팀 2위 134 72 58 4 .554
1968 6위/6팀 6위 134 50 80 4 .385
1969 4위/6팀 4위 130 59 65 6 .476
1970 5위/6팀 5위 130 55 70 5 .440
1971 2위/6팀 2위 130 65 60 5 .520
1972 3위/6팀 3위 130 67 59 4 .532
1973 3위/6팀 3위 130 64 61 5 .512
1974 1위/6팀 우승 130 70 49 11 .588 일본시리즈 (2-4 vs 롯데)
1975 2위/6팀 2위 130 69 53 8 .566
1976 4위/6팀 4위 130 54 66 10 .450
1977 3위/6팀 3위 130 64 61 5 .512
1978 5위/6팀 5위 130 53 71 6 .427
1979 3위/6팀 3위 130 59 57 14 .509
1980 6위/6팀 6위 130 45 76 9 .372
1981 5위/6팀 5위 130 58 65 7 .472
1982 1위/6팀 우승 130 64 47 19 .577 일본시리즈 (2-4 vs 세이부)
1983 5위/6팀 5위 130 54 69 7 .439
1984 2위/6팀 2위 130 73 49 8 .598
1985 5위/6팀 5위 130 56 61 13 .479
1986 5위/6팀 5위 130 54 67 9 .446
1987 2위/6팀 2위 130 68 51 11 .571
1988 1위/6팀 우승 130 79 46 5 .632 일본시리즈 (1-4 vs 세이부)
1989 3위/6팀 3위 130 68 59 3 .535
1990 4위/6팀 4위 131 62 68 1 .477
1991 2위/6팀 2위 131 71 59 1 .546
1992 6위/6팀 6위 130 60 70 0 .462
1993 2위/6팀 2위 132 73 57 2 .562
1994 2위/6팀 2위 130 69 61 0 .531
1995 5위/6팀 5위 130 50 80 0 .385
1996 2위/6팀 2위 130 72 58 0 .554
1997 6위/6팀 6위 136 59 76 1 .437
1998 2위/6팀 2위 136 75 60 1 .556
1999 1위/6팀 우승 135 81 54 0 .600 일본시리즈 (1-4 vs 다이에)
2000 2위/6팀 2위 135 70 65 0 .519
2001 5위/6팀 5위 140 62 74 4 .456
2002 3위/6팀 3위 140 69 66 5 .511
2003 2위/6팀 2위 140 73 66 1 .525
2004 1위/6팀 우승 138 79 56 3 .585 일본시리즈 (3-4 vs 세이부)
2005 2위/6팀 2위 146 79 66 1 .545
2006 1위/6팀 우승 146 87 54 5 .617 일본시리즈 (1-4 vs 닛폰햄)
2007 2위/6팀 2위 144 78 64 2 .549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한신)
세컨드 스테이지 (3-0 vs 요미우리)
일본시리즈 (4-1 vs 닛폰햄)
2008 3위/6팀 3위 144 71 68 5 .511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한신)
세컨드 스테이지 (1-1-3 vs 요미우리)
2009 2위/6팀 2위 144 81 62 1 .566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야쿠르트)
세컨드 스테이지 (1-4 vs 요미우리)
2010 1위/6팀 우승 144 79 62 3 .560 파이널 스테이지 (4-1 vs 요미우리)
일본시리즈 (2-1-4 vs 롯데)
2011 1위/6팀 우승 144 75 59 10 .560 파이널 스테이지 (4-2 vs 요미우리)
일본시리즈 (3-4 vs 소프트뱅크)
2012 2위/6팀 2위 144 75 53 16 .586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야쿠르트)
파이널 스테이지 (3-4 vs 요미우리)
2013 4위/6팀 4위 144 64 77 3 .454
2014 4위/6팀 4위 144 67 73 4 .479
2015 5위/6팀 5위 143 62 77 4 .446
2016 6위/6팀 6위 143 58 82 3 .414
2017 5위/6팀 5위 143 59 79 5 .428
2018 5위/6팀 5위 143 63 78 2 .447
2019 5위/6팀 5위 143 68 73 2 .482
2020 3위/6팀 3위 120 60 55 5 .522
2021 5위/6팀 5위 143 55 71 17 .437
2022 6위/6팀 6위 143 66 75 2 .468
<rowcolor=#373a3c> NPB 통산 86시즌 리그우승 9회 10890 5463 5196 374 .513 일본시리즈 우승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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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1년 시즌 도중 야구장이 화재사고로 전소되어 잔여 시즌을 인근 야구장을 대여해서 개최했고, 이듬해에 다시 재건했다. [2] 일본식 이름은 하리모토 이사오(張本 勳). 재일교포. [3] 타격 인스트럭터 [4] 2군 연수코치 [5] 일본의 지방 신문사이지만 2013년 기준 일 평균 250만부 이상을 발행하는 신문이고 여러 지방 TV 방송국 및 라디오 방송국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방송계의 큰손이기도 하다. 특히 후지 TV 계열국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네트워크 내에서도 산케이 못지 않은 영향력을 보유 중. 산케이 신문보다 발행부수가 많고 도쿄와 오사카에 있는 신문사 이외에는 가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전국지에 필적하는 영향력을 갖는다. 논조는 일본에서도 비교적 진보 성향. 주니치신문사의 소유 구단이기 때문에 주니치 계열 방송사인 THK, 중부일본방송, TVA가 홈 경기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NBN, CTV는 자체제작 중계가 아닌 키국 중계를 사용해 원정 경기를 방송한다. 라디오는 CBC, 도카이라디오가 중계권을 보유하는 중. 지상파가 아닌 위성방송(CS)에서는 J스포츠가 중계를 맡고 있다. [6] 나머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 오릭스 버팔로즈. [7] 이병규는 자신의 주니치 구단 데뷔 첫해에 우승의 감격을 만끽했다. [8] 이 시절,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그의 아들을 얻었다. [9]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실책을 저지른 장본인 중 한 명이 다름아닌 주니치의 최전성기를 이끈 오치아이 히로미츠 본인이었다. 자세한 것은 본인 문서와 주니치 드래곤즈/암흑기 문서 참고. [10] 심지어 무라카미 무네타카와 팀홈런 갯수로 경쟁을 했다. [11] 이는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한국 3대 일간지 조중동 모두 눈에 띄는 수준의 신문 발행부수 감소를 겪었다. 조중동이 갖고 있던 TV조선, JTBC, 채널 A의 종합편성 TV채널들 역시 인터넷과 스트리밍 서비스에 밀려 쇠퇴하는 중. [12] 이외에도 아이치현을 넘어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인 토요타가 인수하길 바라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토요타는 이미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를 소유하고 있는 데다(이조차도 카프를 떠맡은 MAZDA처럼 이름만 내건 케이스에 가깝고 구단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이지 않다.) 오래 전부터 자사 사회인야구팀을 통해 지역밀착과 기업 광고 효과를 상당히 많이 보고 있기 때문에 굳이 사회인야구보다도 훨씬 많은 비용이 드는 프로야구단 운영에 뛰어들 가능성은 없다. 사회인야구팀의 경제적 효과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것이, 억대 연봉을 받는 스타플레이어와 외국인 선수(입사 제외)가 없고 FA나 다년 계약 같이 큰 돈이 들어갈 일도 없는 데다 대기업 수준의 연봉만 꼬박꼬박 챙겨주고 광고와 지역밀착 강화만 제대로 해도 프로야구단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사실 과거에 토요타도 프로야구단 유치를 시도했으나 이런 경제적인 이유 탓에 사내 반발로 무산되었다. 그 외 JR 도카이 또는 나고야 철도에 팔라는 우스갯소리도 가끔씩 나오지만, 이미 철도 회사가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시대가 저문 것이 한참 전인데다 도카이는 리니어 츄오 신칸센 건설에 회사 역량을 올인하고 있는 중이고 메이테츠도 메이테츠나고야역 확장 및 주요 역 고가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지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13] 과거 난카이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한큐 브레이브스(현 오릭스), 킨테츠 버팔로즈(오릭스와 합병)는 모기업의 이익을 늘려주기는 커녕 매년 적자였던 데다 지역 내에서의 위상이 한신 타이거스에 완벽히 밀려서 공기에 가까운 구단이었기 때문에 구단이 매각, 합병되기 이전이든 이후든 기존 모기업들( 난카이 전기철도, 한큐 전철, 킨키 일본 철도)이 타격을 받는 일은 없었다. 현재의 주니치는 그들과는 정반대의 입장이라 모기업의 입장에서 경영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면 유니폼 광고에 외부기업 상표를 많이 넣는 쪽을 택할지언정 구단 경영에 관한 주도권(혹은 경영권)까지 넘겨줄 생각은 전혀 없다. [14]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인 토요타 나고야 철도, JR 도카이는 이런 경향이 덜하다. [15] 일본인들은 자기 지역 브랜드에 애착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16] 주니치의 팬베이스인 아이치현 + 주변 지방(기후현, 미에현, 시즈오카현 서부)을 더하면 대략 경상도 인구수 전체와 비슷하다. 한국은 경상도를 3개 구단이 나눠먹으면서도 개중 가장 큰 롯데가 빅마켓 소리를 듣는 것을 생각하면 주니치가 얼마나 큰 마켓을 독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17] 그런데 의외로 도쿄에서도 팬이 많다. 당연하지만 도쿄는 수도라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당연히 나고야에서 이사온 사람도 많기 때문. 한국도 서울에 전라도, 경상도에서 상경한 사람 많은 것과 같다. [18] 요즘은 오릭스 버팔로스 위협하고 있다. [19] 언급된 Second Heaven도 소프트뱅크의 패배에 아쉬워서 만든 곡이다. [20] 처음에는 샤오롱의 여동생이라는 설정이었으나 나중에 샤오롱이 파오롱을 '여동생이 아니라 그냥 친구 관계'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현재는 샤오롱과 '남매로도, 친구로도 불려질 수 있는 이상한 관계'(兄妹とも友達とも言われている不思議な関係)라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현재 샤오롱과 파오롱은 공식 설정에서 성별 불명이라고 나와있다. [21] 한화는 빙그레 이글스 시절 해태 타이거즈에게, 다저스는 뉴욕 양키스에게 밀려 계속 준우승만 했었다. 한화와 주니치는 더군다나 둘 다 2010년대 이후 완벽히 몰락했으며, 홈 구장이 있는 나고야는 마침 일본 미디어를 로컬라이징할때 대전으로 자주 로컬라이징된다. 비록 최다 준우승 기록(10회)을 갖고 있긴 하지만 통합 4연패를 기록한 강팀인 삼성과는 전혀 다른 팀컬러. [22] 이는 '메이크 드라마'라고 불리며 요미우리 팬들에게 역사적인 시즌으로 남았다. 다만 일본시리즈 우승기는 오기 아키라 감독이 이끌고 스즈키 이치로 등이 날뛰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게 내주었다. [23] 공교롭게도 이 두 경기 모두에서 당시 요미우리의 중심선수이던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활약했다. 오치아이가 끝내 감독으로서 주니치의 콩라인 탈출을 이끌어낸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 [24] 일본시리즈 타이틀을 확정짓는 경기에서 일본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합작 퍼펙트 게임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선발 야마이 다이스케가 8회까지 무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을 기록하며 퍼펙트게임 직전까지 던졌지만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은 9회에 야마이를 내리고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를 올렸는데, 이는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25] 참고로 이 당시 이승엽 이병규의 맞대결이란 구도까지 생겼던 것으로 유명했다. [26] 99년 세리그 우승 당시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에게 헌정된 한국 삼총사ver. 타올라라 드래곤즈. 초반에 라인업이 소개된 후, 다른 노래와 달리 세 선수의 모습을 묘사하는 가사가 등장한다. [27] 구단으로서는 53년만의 우승이었고, 본인도 프로 커리어 첫 우승이었다. 그리고 크보에서는 우승을 못 했다 [28] 이병규 선수 본인도 한국 복귀시 '방출당한 게 아니라 그냥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 뿐이다.'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다고. [29]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주니치는 현재 12개 구단 중 모기업이 가장 빈약한 구단 중 하나다. 지방신문과 지상파 방송, 라디오, 인쇄업 등 인터넷으로 인해 점점 쪼그라드는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서 재정적으로 빈약한 편이라 메이저리그에서 우수한 용병을 데려올 돈은 없고, 한국이나 대만 팜 등에서 가성비 용병을 찾아봐야 하는 처지인 것. [30] 처음 곡인 74년도판. 부른 사람은 밑에도 나오지만 주니치 드래곤즈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고 지금은 예능인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반도 에이지. [31] 현재 사용중인 세번째 구단가는 2015년에 발표된 昇竜 -いざゆけ ドラゴンズ-(승룡 -나아가자 드래곤즈-, 노래는 마츠다이라 켄)이다. 한편 초대 구단가 '드래곤즈의 노래'(1950~1977)는 한신 타이거스의 구단가 롯코오로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3대 구단가 거인군의 노래와 투혼을 담아서를 작곡하기도 한 고세키 유지의 작품이다. [32] 2절은 센트럴 리그 팀들 호랑이를 쓰러뜨리고(虎を倒して) 잉어를 낚고(鯉を釣って) 하마의 별자리에 먹구름을 끼게만들고(浜の星座に雲をかけ) 제비를 떨어뜨려(燕落として) 큰 남자의 숨통을 끊어 이겨나간다 (大男息の根とめて勝ち進め) 3절은 퍼시픽리그 팀들 사자를 붙잡고(獅子を捕まえ) 를 잡아(鷹を狩り) 성난 소들을 길들여(猛牛馴らして) 바다를 건너(海を越え) 북쪽의 전사도 (北の闘士も) 독수리도 (犬鷲も) 이 제압해 굴복시켜 이겨나간다(竜がねじ伏せ勝ち進め) [33] 이것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시작된 관습. 다만 팀에 따라 다른 등번호를 에이스 번호로 쓰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에이스 번호는 21번( 스기우라 타다시, 쿠도 키미야스, 와다 츠요시 등이 사용). [34] 2014,2015시즌은 선수 겸임. 2016부터 감독 전임이 되지만 도중 해임. [35]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 [36] 3개의 리그로 나누어 열었고 일부 팀들의 미국 원정 및 중도 하차로 우승팀 없음. [37] 3개의 토너먼트로 나누어 열었고 도쿄 대회에서 우승해 승점을 따냈으나 우승팀을 결정할 플레이오프의 경기장을 구하지 못해 우승팀 없음. [38] 리그 도쿄 대회 오사카 타이거스와 공동 우승. 승점 0.5점으로 연도 우승 결정전 진출 실패. [39] 연도 우승 결정전 진출 실패로 최종 순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