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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12:49:15

퀸 클레오파트라/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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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레오파트라와 이집트인의 인종 왜곡3. 인종 묘사 이외의 역사성 논란
3.1. 병사의 복장3.2. 전투신3.3. 로마에 대한 묘사3.4. 알렉산드리아 전쟁에 관한 묘사3.5. 율리우스력의 탄생 과정3.6.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관계3.7. 악티움 해전3.8. 여성성에 관한 과도한 집착3.9. 옥타비아누스에 대한 묘사3.10. 클레오파트라의 자살에 관한 묘사
4. 이집트 역사와 관련 없는 전문가들의 참여5. 제작진의 발언
5.1. 아델 제임스5.2. 티나 가라비5.3. 제인 페어베인 루트
5.3.1. 넷플릭스 다문화적인 고대 이집트를 다루길 원했다5.3.2. 클레오파트라 7세의 시대의 인종은 현재의 인종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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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 퀸 클레오파트라>와 관련된 논란을 정리한 문서.

2. 클레오파트라와 이집트인의 인종 왜곡

파일:클레오파트라_7세_동전.jpg 파일:클레오파트라 7세 이미지 1.jpg
생전의 클레오파트라 7세를 묘사한 동전.
매우 뚜렷한 매부리코[1]를 가진 백인 여성의 모습이다.
클레오파트라 7세의 얼굴을 그린 1세기 초상화.[2]
There is no future without the past.
[ 과거가 없으면 미래는 없습니다.]
다큐멘터리 예고편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맡은 흑인 배우 아델 제임스가 한 말 출처[3]
As Greek, I am concerned that they omitted the fact that Julius Caesar was actually Chinese.
[ 그리스인인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실은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생략되어버린 게 신경쓰여.]
다큐멘터리 예고편 베스트 댓글 출처[4]

2023년 4월 14일 트레일러 영상이 나오면서 클레오파트라를 포함해 이집트인들과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 출신 인물들 대부분이 흑인으로 캐스팅되었다는 것이 밝혀져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다.

클레오파트라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픽션이었다면 재현 오류 논란이 있을지라도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흑인 배우를 충분히 캐스팅할 수도 있지만 해당 작품은 실제 역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데다 각종 마케팅 프레이즈로 흑인 여왕임을 강조해서 문제가 되었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가상 인물이 아니라 실존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파라오이고 그에 대해서 시청자에게 설명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재현 오류를 넘어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진 것도 역사적 사실을 다뤄야 하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에 기인한다.

본 작품의 감독과 작가 모두 미국 흑인이며 다큐멘터리의 기획의도에서 클레오파트라를 흑인 여왕이라고 지칭한 점, 넷플릭스의 소개문구에서 아프리카를 특정한 점, 그리고 트레일러 영상에서 나오는 흑인 여성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부 미국 흑인들[5]이 역사 교육에서 뭐라고 가르치든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이었다고 생각한 것을 토대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제작사 Westbrook Studios 윌 스미스 제이다 핀켓 스미스가 지분의 90%를 차지한 가족기업인데 방영 전 정보의 기획의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논란과 관련된 상당 부분은 책임 프로듀서인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개인적인 시각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클레오파트라는 백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클레오파트라가 속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알렉산더 대왕 사후 그 휘하 장군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어받아 세운 왕조이기 때문에 지배층은 그리스계였으며 당시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한 부조와 복원도 등에선 절대 흑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게다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근친혼을 행했으며 베레니케 2세 등 소수의 예외도 외부의 그리스계 왕조와 결혼한 것이다. 거기에 클레오파트라의 부모도 근친 관계로 추정된다. 클레오파트라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는 카이사리온을, 안토니우스와도 아들과 딸을 낳았음에도 그들이 흑인이거나 흑백혼혈이라는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절대 흑인일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 외의 이집트인 등장인물들도 죄다 흑인 배우들로 캐스팅되었는데 고대 및 현대 이집트인의 주류 인종은 흑인이 아니다. 북아프리카는 흑인이 주류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는 사하라 사막이 가로막고 있어서 교류가 제한적[6]이었으며, 그리스, 로마나 중근동 지역과는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들의 외모는 꾸미는 스타일만 다를 뿐 남유럽인에 더 가깝다. 그럼에도 아프리카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가진 미국 영화에서 이집트인을 흑인이나 흑인에 가깝게 묘사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왔다.[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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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인은 흑인이었는가?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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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언론 Egyptian Streets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 미국 고고학자이자 이집트학자인 벳시 브라이언(Betsy Bryan)이 뉴스위크에 "클레오파트라의 어머니가 이집트 멤피스 사제 가문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한 것이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인종 논란이 생긴 원인이라고 했다. 또한 만약 클레오파트라 7세의 어머니가 멤피스의 사제 가문 출신인 것이 사실이라면 최소한 50%는 이집트인일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어를 구사한 최초의 프톨레마이오스 통치자였고 그녀의 어머니와 가까운 관계였을 것이라며 논란의 배경을 추가로 설명했다.[9]

그러나 클레오파트라의 외모에 대한 논쟁은 통치자로서의 그녀의 유산을 무색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종이 순전히 신체적 속성에 의해 형성되며 피상적일 뿐이라는 오류를 조장하고 현재 클레오파트라의 동전과 흉상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주장하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덧붙였다. #

무엇보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상술한 것처럼 그리스계 혈통일뿐더러 본작을 제외하면 최소한 실사물에서는 백인 배우들이 맡았고 그나마 애니메이션에서는 간혹 어두운 피부색으로 묘사되기도 했으나 이마저도 완벽한 흑인 외모보다는 그냥 고대 이집트 벽화에 나온 고대 이집트인의 피부색(누비아인마냥 검게 묘사되지는 않았음)을 따른 것에 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클레오파트라 7세는 대중적으로 흑인 이미지가 강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나마 있는 유색인종 이미지도 흑인 이미지보다는 중동인 이미지에 가까웠다.

결국 흑인들의 권리신장이라는 명분으로 역사를 왜곡했다가 오히려 더한 반발을 부른 셈이다. 타국의 역사를 왜곡했다는 점에서 인어공주 실사화 영화에서의 캐스팅 논란, 채널 5에서 제작한 앤 불린 미니 시리즈보다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인어공주는 말 그대로 현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순수 창작물에 원작 애니메이션과는 설정이 많이 달라진 일종의 재창작물이고 어차피 허구가 섞인 창작물이기 때문에 캐스팅 쪽으로는 훨씬 자유로우며, 스토리를 상당히 각색해서 논란을 억지로라도 무마할 시도라도 할 수 있다. 헬리 베일리에 대한 논란은 물론 피부색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제로는 헬리 베일리의 외모 등이 인어공주에 어울리는가, 혹은 헬리 베일리의 연기력이 관객들을 흡족하게 하고 있는지 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앤 불린 미니시리즈 역시 창작물이고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실제 역사와 명백한 백인이었던 실존 인물을 다뤘기에 역사 왜곡으로서는 퀸 클레오파트라와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그렇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왜곡 없이 역사적 사실만을 전해야 하는 다큐멘터리이기에 허구적 이야기인 인어공주와 앤 불린 사극과는 결이 다르다.

여기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이번에도 미국 얼치기 영상 제작자가 자기네들 역사를 가지고 장난친다고 성토하는 반응이다. 특히 이들의 반응은 넷플릭스가 댓글을 막아 놓기 전까지 트레일러 영상의 댓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역사에 대한 장난질을 넘어 넷플릭스라는 거대 기업을 등에 업고 자기네 역사를 빼앗으려고 한다는 반응들도 많았다. 사실 미국 영화 제작자들이 클레오파트라 영화를 제작한답시고 재현에 별로 신경쓰지 않아 실소가 나오는 수준의 영화를 내놓은 전적이 많고(퀸 클레오파트라와의 차이점이라면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을 백인 배우들이 맡았다는 것), 이런 영화들로 인해 이집트의 이미지가 왜곡된 측면도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이집트를 무시하냐며 반발한 것이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흑인'이라는 언더도그마로 이 문제를 희석하여 "권리신장을 위해 피부색 좀 바꾸면 어떠냐"라고 하는 태도는 약자의 권리신장과는 거리가 멀고 흑인이 약자냐 아니냐와도 별개의 문제다. 이 다큐는 어디까지나 미국 사회에서의 흑인 권리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며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나 약자일 뿐 국제 사회에서는 이집트인이나 그리스인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경제력과 문화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강자들이다. 이런 강자들이 넷플릭스라는 거대 플랫폼을 매개로 '약자'인 이집트인과 그리스인에게 문화적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게 이 문제의 핵심이다.

더욱이 흑인과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고대 이집트 바로 아래에 있던 누비아 아마니토레 아마니레나스 같은 흑인 여왕들을 다룰 수도 있었다. 고대 누비아, 즉 쿠시 왕국은 이집트 다음 가는 역사를 자랑하는 문명으로서 흑인들의 자랑으로 손색이 없다. 누비아는 일시적으로 이집트를 정복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운 적도 있으며 이집트의 흑인 파라오들이 바로 누비아의 왕들이다. 참고로 아마니레나스는 클레오파트라와 동시대 인물인데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랑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활용하여 카이사르 사후 로마 제국의 정국 주도권을 가져가려다가 옥타비아누스에게 밀린 패배자가 된 반면 아마니레나스는 로마와 정면으로 맞서 싸워서 비록 로마군의 반격에 나라가 매우 큰 피해를 입었지만 파르티아와의 전쟁에 대비해야 했던 로마의 상황을 활용한 결과 끝내 로마와 평화협정을 맺고 공물도 면제되는 등 주권을 보존하였으며 협정 이후로는 로마와 무역하여 나라를 다시 번영시키는 등 역사의 승자로 남았다. 얄궂게도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는 백인 남성이 승리한 이야기이고, 아마니레나스는 백인 남성에게 승리한 이야기이므로 흑인 및 여성 권리 신장이 목적이라면 이쪽이 훨씬 적절함에도 불구하고[10] 막상 진정으로 승리를 쟁취한 흑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에게는 무관심하면서 백인 남성이 승리한 이야기에 집착하는 제작진의 행태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보다 덜 알려진 이들을 재조명하는 것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진 클레오파트라를 흑인화한다는 편법을 사용한 데다 단순한 각색을 넘어 동북공정마냥 역사 왜곡이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역사 왜곡이 과거 제국주의 시기 유럽에서 자행한 역사 왜곡과 그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2.1. 반응

2.1.1. 미국

2.1.1.1. 넷플릭스 제작진
2.1.1.2. 옹호
2.1.1.3. 비판

2.1.2. 영국

2.1.3. 이집트

2.1.3.1. 정부
2.1.3.2. 일반인

2.1.4. 그리스

2.1.5. 북마케도니아

2.1.6. 대한민국

2.1.7. 그 외 반응

이집트, 그리스, 북마케도니아 외에도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피어스 모건이 올린 유튜브 영상에 댓글을 달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집트 출신 코미디언 바셈 유세프의 의견에 동의했다. # 캐나다, 이란, 서아프리카, 뉴질랜드 마오리, 우크라이나, 인도,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국의 네티즌들이 유세프에 대한 지지 댓글을 올렸으며, 미국 중심의 역사수정주의와 할리우드의 편협한 사고방식에 거센 비판을 가했다.

3. 인종 묘사 이외의 역사성 논란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흑인화로 인한 역사 왜곡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더해 클레오파트라 로마 아프리카 사이에 균형을 맞춘 천재 정치인이라느니, 뛰어난 학식을 지닌 과학자라느니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치켜세우는 데에만 집중하며 철저한 재현 하에 실존인물과 사건을 분석하는 다큐멘터리 본연의 목적마저 잊어버렸다. 당시 로마 공화국 프톨레마이오스 조 이집트 왕국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주장이 허위이자 과장임을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또한 명색이 다큐멘터리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형편없는 정보 전달력, 누가 봐도 제작자 제이다 핀켓 스미스가 스스로를 이입시킨 게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로 자캐딸스러운 클레오파트라의 묘사, 일반적인 프로파간다성 역사 왜곡을 넘어서 클레오파트라가 투기장에서 검을 들고 결투하는 황당하다 못해 웃음이 나올 정도의 연출과[25][26] 클레오파트라가 했던 모든 행동을 미화하는 등 다큐멘터리로서 매우 형편없는 수준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나온 역사 및 재현 오류는 셀 수도 없이 많지만 크고 중요한 부분만 따지자면 아래에 열거한다.

3.1. 병사의 복장

로마 병사들의 갑옷의 가슴 부분에 가죽을 덧대고, 팔에 가죽 보호구를 차고 있는데 당시 로마 병사들은 그런 갑옷을 입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한 로마 부대의 누구는 로마 제국식 갑옷인 로리카 세그멘타타를 입은 채로 나오고, 누구는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나오면서 아예 같은 부대의 군복조차 통일되지 않은 채로 나온다. 당시 로마 병사들의 표준 군복은 로리카 하마타라는 갑옷이었다.

또한 어떤 장면에서는 병사들이 전부 로마 제국식 갑옷을 입고 나온다. 물론 고대국가의 특성상 로마군도 부대마다, 주둔 지역마다 장구류가 통일되지는 않았지만 같은 부대원까지 장비가 천차만별인 것은 옳지 않다. 이 시기 로마군은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이후 모병제로 전환되었고 이들이 사용하는 장비는 병사들의 봉급을 공제시켜 지급하던 대량 생산품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군단병이라면 모를까, 같은 군단병들이 죄다 서로다른 갑옷을 입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집트군 갑옷의 경우 이집트 토착 왕조 스타일 갑옷도 아니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특유의 고대 그리스 스타일 갑옷도 아닌 상상에 의존한 디자인이다. 그리고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당시의 이집트군 갑옷은 고대 로마 스타일 갑옷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는데 본작에 나오는 이집트군 인물들 중 그 누구도 그런 양식의 갑옷을 입지 않았다.

3.2. 전투신

로마 병사들이 오와 열을 유지 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전투를 한다. 또한 병사들이 검을 높이 휘둘러 대며 싸우는데 당시 로마 병사들은 방패로 몸을 보호하며 몸을 낮춘 뒤 상대를 창으로 찌르는 방식으로 싸웠다. 이러한 전투 방식이 작중 아예 안 나온건 아니지만, 이런 장면이 나오고도 바로 마구잡이 전투를 보여준다. 검을 높이 휘둘러 대며 싸우는 건 베기 공격에 특화된 곡도 형태의 도검류를 많이 썼던 중세 말 이후의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중동에서 선호되었던 전투방식이다. 이렇게 전투신 부터가 재현을 하려고 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판타지 레벨 수준이다.

3.3. 로마에 대한 묘사

로마 공화국이 당대의 떠오르는 강국이라고 말하지만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와 처음 만났을 즈음인 기원전 47년에는 로마는 떠오르는 강국 정도가 아니라 이미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꺾은 지중해의 최대 강국이었다. 이미 로마의 힘은 지중해 전역에 미쳤다는 말로 당시 로마의 판도는 이탈리아 반도, 시칠리아, 스페인, 갈리아(현 프랑스), 브리타니아, 이집트를 포함한 북아프리카, 그리스 등까지 속주나 동맹으로 삼고 있었을 정도. 자칭 역사전문 자문가들과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제작진들이 당시의 기본적인 세계사 지식도 모른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클레오파트라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관계를 맺었을 때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가령, 클레오파트라가 다른 사람도 아닌 로마인들과 함께 참석한 연회에서 대놓고 "이집트가 없으면 로마도 없다."라고 말하는 등 이집트가 로마에 저항하는 클레오파트라의 통치 하에 강력한 독립국인 것마냥 묘사하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애시당초 이집트는 당시 로마의 속국이었던 데다가 클레오파트라도 이미 남동생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 의해 축출된 상황에서 카이사르의 도움을 받기 위해 새벽에 목숨을 걸고 카이사르의 침소에 몰래 들어와서 동맹을 요청한 것이었고, 이후로도 로마 군사력의 도움을 통해 역으로 프톨레마이오스 13세를 쫒아냈다. 이후로도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를 이용해서 이집트의 지위를 강화하려 했고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이용해서 이집트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려 했을 뿐 공식적으로는 절대로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적인 관계에[27]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카이사리온도 자신의 살아생전이나 사후에도 절대 아들로 인지하지 않고 사생아로 두었으며, 유언장에서마저도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리온 모자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고 후계자도 자신의 외종손(누나 율리아의 외손자) 옥타비아누스로 정했다.

반면 클레오파트라는 자신과 카이사르와의 관계에 대해 이집트에 마구마구 퍼뜨렸다. 당연히 카이사르의 이름을 팔아 호가호위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카이사르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클레오파트라가 하는 짓에 대해 묵인했다. 그게 카이사르 본인이나 로마에 있어서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카이사르는 이집트가 안정되는 것을 바라서 그랬던 것.

이 둘의 관계에서 갑은 모든 면에서 이집트보다 국력이 강했던 로마의 지배자 카이사르였다.[28][29][30]

3.4. 알렉산드리아 전쟁에 관한 묘사

알렉산드리아 전쟁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클레오파트라가 홀로 이겼다고 주장하며 정작 카이사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이 전쟁의 원인은 클레오파트라의 동생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이복누나이자 아내인 클레오파트라를 축출했는데 카이사르가 그런 클레오파트라를 다시 복귀시켰고[31][32][33], 이에 대해 반발한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소수 로마군만 데려온 카이사르를 기습한 것이었다. 당연히 알렉산드리아 전쟁을 고생하면서 지휘한 것도 다 카이사르이며 결국 이집트 밖에서 주둔하고 있던 카이사르 휘하 로마군의 도움을 받아서 승리한 것이다.

3.5. 율리우스력의 탄생 과정

클레오파트라와 이집트인들이 율리우스력을 만들고 그걸 본 카이사르가 달력을 편입했다고 주장한다. 율리우스력은 카이사르와 알렉산드리아의 소시게네스가 만들고 편입한 거다.[34]

3.6.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관계

클레오파트라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관계도 안토니우스가 일방적으로 클레오파트라에게 끌려다니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집트의 재정을 원한 안토니우스와 로마의 군사를 원한 클레오파트라가 서로 윈윈하는 조건으로 시작된 관계다. 물론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끌려다녔다는 말 자체는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미색에 홀려서 그랬다는 말이지 무슨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갑을관계라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연합은 안토니우스가 가진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35]

또한 클레오파트라를 더욱 돋보이기 위해 카이사르 밑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2인자로 군림할 만큼 유능한 장군이었던 안토니우스를 그저 감정적이며 징징거리기만 하는 찌질이로 묘사한다. 예시로 안토니우스의 파르티아 원정을 완전한 실패로만 묘사한다. 실제로 패배한 건 사실이지만 안토니우스는 뛰어난 지휘력으로 치명적인 병력 손실은 보지 않고 퇴각하는데 성공했으며 그 뒤에는 아르메니아를 공격해 승리한다.

3.7. 악티움 해전

악티움 해전과 클레오파트라의 몰락이 그녀 자신의 실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악티움 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적전도주를 한 것에 대해 퀸 클레오파트라는 클레오파트라가 가족과 백성을 먼저 생각해 남은 병력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묘사한다. 작중 자문을 맡은 인원 중 하나는 클레오파트라의 도주가 최상의 선택이었으며 안토니우스에게도 좋은 선택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정작 안토니우스의 후퇴는 무능하고 비겁하게 도망친 것으로 묘사하며 똑같은 전투에서 똑같이 후퇴를 했음에도 클레오파트라는 치켜세우고 안토니우스는 비난하는 이중잣대를 선보인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클레오파트라의 도주이며 클레오파트라가 도주할 당시의 전투 양상은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중 어느 쪽도 크게 유리할 것 없는 상황이었다고 분석한다. 더군다나 클레오파트라가 도주하지 않거나 도주하더라도 안토니우스가 철수하지 않고 승부를 확실하게 내기 위해 좀 더 싸웠다면 악티움에서 승리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전투의 긴장감과 격렬함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함선에 후퇴를 명령했다는 건 2세기부터 나온 분석이며 현재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안토니우스가 후퇴한 것도 클레오파트라가 도주한 것을 보고 해전에서 패배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악티움 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진 이유가 무능한 로마 장군들이 여성의 명령을 듣기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나온다. 안토니우스측의 로마 장군들이 클레오파트라보다 안토니우스의 명령을 더 우선시한 건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36] 이건 직접 전쟁을 지휘한 게 악티움 해전이 처음일 정도로 군사적 업적이 전무한 클레오파트라보다 오랫동안 카이사르 휘하에서 로마군인 자신들을 이끌어 오며 많은 승리를 일궈낸 유능한 장군이었던 안토니우스를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자국인 로마의 장군인 안토니우스가 있는데 외국인 여왕의 명령을 우선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안토니우스는 알렉산드리아 영토분할령을 통해 로마의 동방 영토를 이집트에 임의로 분배했으며, 유언장에 클레오파트라 곁에 묻히고 싶다고 적은 사실이 들켜 옥타비아누스와 원로원에 의해 로마의 적으로 선포되었다. 안토니우스의 로마인 군단은 반역자라는 자신들의 처지에 큰 불안과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나마 안토니우스라면 모를까 로마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집트의 여왕이자 외국인인 클레오파트라에게 충성을 바칠 이유 따윈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클레오파트라의 명령에 반감을 가졌다. 오히려 안토니우스는 그녀 때문에 로마군의 사기가 꺾일 것을 걱정했다.[37]

3.8. 여성성에 관한 과도한 집착

클레오파트라가 여자이기 때문에 로마는 그녀를 두려워했다고 하지만 당연히 로마는 이집트도, 클레오파트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로마에 있어서 클레오파트라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방송 내에서 로마인들이 클레오파트라가 가부장적이였던 로마의 여인들과 다르게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이어서 싫어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애시당초 카이사르 시절의 클레오파트라는 딱히 로마인들에게 미움받거나 하지도 않았다. 원래 카이사르는 바람둥이로 유명했고 외국의 젊은 여왕과 내연 관계였다고 해도 로마에 무슨 피해를 입혔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38] 오히려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를 내세워 이집트 국내를 안정시키면서 밀 수입도 잘 되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는 로마에서도 딱히 클레오파트라를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 그 유언장 내용을 듣기 위해 로마를 방문한 적도 있었는데[39] 이때는 로마에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짜로 문제가 된 건 오히려 안토니우스와 결혼한 것때문이었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의 누나 옥타비아와 결혼한 상태였음에도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기 위해 옥타비아와 이혼했으며, 거기다 로마가 아닌 알렉산드리아에서 개선식을 가졌고 로마의 영토를 클레오파트라의 자식들에게 멋대로 물려주겠다고 선포하기까지 했다.[40] 그렇다보니 카이사르 시절에는 그닥 신경쓰지 않았던 클레오파트라를 싫어하게 되었던 것.

또한, 클레오파트라가 초청된 로마인들의 연회에서 키케로는 이집트가 이제 딸 수 있는 잘 익은 열매 같다고 말하는데 이때 말투와 행동거지가 마치 성희롱을 하는 것처럼 연출했고, 이에 클레오파트라는 "로마는 여자를 이렇게 대하나?"라고 말하며 키케로에게 성적 콤플렉스라도 있냐고 조롱한다. 제작진들이 강한 여성의 걸크러시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식의 연출을 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오히려 뜬금없는 내용인 데 다 오글거리는 건 물론이고 역사적으로 이런 대화가 오갔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41] 사실 키케로는 정치가로서는 미묘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사생활적으로는 가족을 아끼고 바람을 피운 적 없이 자신의 아내만을 사랑하였으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무척 모범적인 가장이었다. 적어도 막장 콩가루 집안이었던 클레오파트라가 뭐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3.9. 옥타비아누스에 대한 묘사

유능한 내정을 펼치며 로마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간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를 마구 소리나 질러 대는 음흉한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들고 로마가 이집트에 빨대를 꽂고 착취하며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나오지만 로마에게 정복된 기간에 이집트는 지중해에서 가장 풍요로운 지역 중 하나였으며 수많은 수출과 무역을 통해 로마의 점령지 중 가장 많은 부를 생산해냈다.

또한, 악티움 이후 옥타비아누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그녀와 자식들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안토니우스를 죽이라는 제안을 하는데, 실제로 옥타비아누스가 그런 제안을 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럴 필요도 없었거니와[42] 무엇보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의 자식들은 몰라도[43]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카이사리온은 반드시 죽여야 했다. 애시당초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리온을 내세워 옥타비아누스의 정통성에 흠집을 내려 들었고 옥타비아누스 역시 정통성 문제 때문에 카이사르의 유일한 아들은 자신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하지만 클레오파트라 역시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며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옥타비아누스에게 빌다시피 했고 안토니우스도 살려주면 앞으로는 은퇴해서 죽은 듯 살겠다고 했다. 물론 옥타비아누스가 이들의 말을 들어줄 이유따위 없었고 특히 카이사르의 혈통을 내세웠던 카이사리온은 절대로 살려둘 수 없었다.

3.10. 클레오파트라의 자살에 관한 묘사

악티움 해전의 패배 이후에도 클레오파트라가 아직 주도권을 잡고 있었으며, 그녀의 자살이 무슨 로마 전체를 경악시킨 대단한 사건이나 계획이라도 되는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정반대였는데 악티움 해전 이후의 클레오파트라는 주도권은커녕, 옥타비아누스에게 완전히 패배하여 체면마저 내팽개치고 비굴하게 자비와 선처를 애원하던 상황이었다. 휘하의 군대는 순식간에 와해되어 군사들의 탈영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마지막 희망으로 옥타비아누스에게 이집트의 왕위에서 물러날 테니 자신과 자녀들의 목숨만을 살려달라는 회유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안토니우스 역시 옥타비아누스에게 장남 안틸루스를 보내 은퇴하여 아테네에서 소시민으로 살겠다며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옥타비아누스는 철저한 감시를 붙였는데도 기어코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하자 본래의 계획이 틀어져 실망하긴 했어도 경악은커녕 아무렇지 않게 안토니우스의 유언대로 두 사람을 함께 묻어주고 뒷정리를 마친 다음 로마에 돌아가 당당하게 개선식을 행하였고[44][45]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4. 이집트 역사와 관련 없는 전문가들의 참여

퀸 클레오파트라의 또 다른 논란 점은 작중 자문을 하는 총 6명의 "전문가"들이 전부 이집트 역사와 연관 없는 사람들이나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기존에 제작되었던 넷플릭스의 역사 다큐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던 문제인데 로마사를 다룬 로마 제국(넷플릭스)의 경우 당대 사가들이 악의적으로 과장 및 왜곡시켜 묘사한 루머와 망상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전부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묘사하고 자문가들 중 역사학자가 아닌 소설가들을 기용하는 등 엉망진창의 모습을 보여온 전적이 있다.[46]
I remember my grandmother saying to me, "I don't care what they tell you in school, Cleopatra was Black."
[ 저희 할머니께서 저한테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학교에서 너한테 뭐라고 말하든 신경쓰지 않아. 클레오파트라는 흑인이었어."[47][48][49][50]]
다큐멘터리 예고편에서 출연한 셸리 헤일리가 한 말 교과서 믿지마 우리 할머니를 믿어 출처[51]

보다시피 자문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집트 역사학에 대해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거나 본인의 편향된 정치관을 학문에 적용하는 인간군상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데려왔으니 다큐멘터리의 정확도는 매우 떨어지게 되었다.[57]

5. 제작진의 발언

<퀸 클레오파트라> 제작진의 발언을 정리했다.

5.1. 아델 제임스

5.1.1. 캐스팅이 싫은가? 그러면 다큐멘터리를 보지 마라.

“Just FYI, this kind of behavior won’t be tolerated on my account. You will be blocked without hesitation!!! If you don’t like the casting don’t watch the show. Or do & engage in (expert) opinion different to yours. Either way, I’M GASSED and will continue to be! 🕺🏽🕺🏽🕺🏽"
"참고로 말하면, 이런 행동은 제 계정에서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주저없이 차단될 것입니다!!! 캐스팅을 싫어한다면 다큐멘터리를 보지마세요. 아니면 당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는 전문가와 대화하세요. 어느 쪽이든, 저는 아주 자랑스럽다고 말할 것이며, 계속 그럴 것입니다! 🕺🏽🕺🏽🕺🏽"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맡은 배우 아델 제임스의 말 # #
2023년 4월 13일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을 맡은 흑인 여배우 아델 제임스의 트위터 계정에서 이집트 중동 국가 출신 유저들이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인종 논란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비판을 하자 아델 제임스가 위와 같이 답했다.

참고로 비슷한 발언을 한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그 유명한 배틀필드 V를 만든 제작진들과 EA의 전 CEO인 패트릭 소덜린드로, 특히 패트릭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배경인 게임에 뜬금없이 여성 부대와 병사들이 나오면서 역시나 역사 왜곡 문제가 대두되자 "그들은 못 배워 먹은 사람들이다. 우리의 게임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사지 말라."는 희대의 망언을 시전하였고 당연히 가뜩이나 욕먹고 있던 배틀필드 V의 판매량은 박살나고 폭망했다.[58] 이렇게 보면 패트릭 소더린드가 한 말과 아델 제임스가 한 말은 매우 비슷하나 아델 제임스의 발언이 패트릭 소더린드보다 훨씬 심각한데 사서 놀든 보든 말든 게임이나 영화 같은 창작물은 결국 창작자의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이라 해당 내용이 진실이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퀸 클레오파트라는 진실이라고 여긴 내용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특히 더 비판받아 마땅하다.

5.1.2. 이집트의 반응은 인종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Yeah, I know I shouldn't laugh, but it's quite funny. I think it's quite funny. The level of threat that you must feel just on my skin tone to file a lawsuit against an entire streaming service. That to me is, it is really extreme, it's a really extreme reaction and it's 100% fundamentally rooted in racism, which is a very modern ideology. The ancient Egyptians, they don't think about race as we do, because race has been contextualized as we understand it since the transatlantic slave trade. It just doesn't... That's just not how people thought back then right? So It's really bizarre, but to me, again, I find it very sad. I feel sad for them."
"그래요, 웃으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아주 웃기네요. 상당히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전체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고작 제 피부색 때문에 ( 이집트인들이) 느껴야 하는 위협 수준이라니. 제게 그것은 정말 극단적이고, 정말 극단적인 반응이며 근본적으로 인종차별에 100% 뿌리를 두고 있는 매우 현대적인 이데올로기이에요. 고대 이집트인들은 우리처럼 인종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대서양 횡단 노예 무역 이후로 인종은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맥락화(脈絡化)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냥... 그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당시에 생각했던 방식이 아니죠? 그래서 정말 기괴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매우 슬프며, (이집트인들이) 안타깝네요."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맡은 배우 아델 제임스의 말 #
2023년 5월 10일 흑인 유튜버 웨인 에어즈(Wayne Ayers)가 팟캐스트에서 아델 제임스와 인터뷰를 했는데, 에어즈가 "이집트 정부가 퀸 클레오파트라 다큐멘터리에 대해 얘기했었던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자 제임스는 이집트가 넷플릭스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고작 자신의 피부색 때문에 위협을 느낀다며 극단적인 반응같다고 답했으며, 100% 근본적으로 인종차별에 뿌리에 두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종차별은 오히려 아프리카중심주의에 기반을 두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제작진 및 감독과 그것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주연을 맡고 그 논리를 옹호하는 배우 아델 제임스가 벌인 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중심주의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제국주의적인 인종 차별이 아니라, 이집트인과 타 인종간 구분을 엄연히 하던 문화권이었다.

5.2. 티나 가라비

2023년 4월 21일에는 아델 제임스를 캐스팅한 이란계 미국인 감독 티나 가라비가 미국 주간 잡지 버라이어티의 기고문에서 아델 제임스를 옹호했다. 아래는 가라비의 발언을 정리한 것이다. # #

5.2.1. 할리우드 백인 우월주의를 주입했다

"It is more likely that Cleopatra looked like Adele than Elizabeth Taylor ever did... I remember as a kid seeing Elizabeth Taylor play Cleopatra. I was captivated, but even then, I felt the image was not right... Was her skin really that white? With this new production, could I find the answers about Cleopatra's heritage and release her from the stranglehold that Hollywood had placed on her image?"
" 엘리자베스 테일러보다 클레오파트라가 아델을 닮았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어렸을 때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를 연기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녀의 모습은) 제 마음을 사로 잡았지만, 그때도 이미지가 안맞는다고 느꼈어요... 클레오파트라의 피부가 원래 그렇게 하얗던가요? 이 새로운 작품을 통해 클레오파트라의 유산에 대한 답을 찾고 할리우드가 그녀의 이미지에 가한 억압에서 그녀를 풀어줄 수 있을까요?"
퀸 클레오파트라의 감독 티나 가라비의 말 #
티나 가라비는 여러 대중매체를 예로 들면서 할리우드가 대중들에게 백인 우월주의 사상을 주입했다고 말했다. 가라비는 "할리우드가 관객이 클레오파트라를 백인으로 생각하게 하기 위해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에 억압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래는 가라비가 언급한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 관련 대중매체들이다.

기고문에서 가라비는 "일부 이집트인들은 클레오파트라가 백인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디션을 하면서 아델 제임스는 클레오파트라의 아름다움과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보다 아델 제임스가 실제 클레오파트라 7세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고 말했다.

1990년대 말까지 헐리우드에서 화이트워싱이 지나칠 정도로 백인우월주의가 만연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클레오파트라 7세 흑인이라는 설을 지지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이집트인들 중에 갈발, 벽안이 종종 등장하는 갓 오브 이집트가 재현에서 어긋난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집트인을 비롯한 북아프리카인 배역을 흑인에게 할당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고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인종 문제는 그녀가 어느 인종인지 사실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색이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본작이 HBO 사극 ROME을 방패로 내세우는 것도 코미디이거니와, 사극 속 클레오파트라가 약쟁이든 말든 그것은 사극 속 캐릭터 개인의 묘사일 뿐이다.

5.2.2. 클레오파트라 7세 백인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Cleopatra's heritage has been attributed at one time or another to the Greeks, the Macedonians and the Persians. The known facts are that her Macedonian Greek family — the Ptolemaic lineage — intermarried with West Africa's Seleucid dynasty and had been in Egypt for 300 years. Cleopatra was eight generations away from these Ptolemaic ancestors, making the chance of her being white somewhat unlikely. After 300 years, surely, we can safely say Cleopatra was Egyptian. I am proud to stand with Queen Cleopatra — a re-imagined Cleopatra — and with the team that made this."
"...클레오파트라의 유산은 때때로 그리스인, 마케도니아인, 페르시아인에게 귀속되었습니다. 알려진 사실은 그녀의 마케도니아 그리스 가족( 프톨레마이오스 혈통)이 서아프리카 셀레우코스 왕조[59]와 결혼하여 300년 동안 이집트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 프톨레마이오스 조상들로부터 8세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백인일 가능성은 다소 희박했습니다. 3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확실히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인이었다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클레오파트라를 재창조한 퀸 클레오파트라 다큐멘터리와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제작진과 함께 서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퀸 클레오파트라의 감독 티나 가라비의 말 # #[60]
가라비는 클레오파트라 관련 역사 자료를 보았을 때 "프톨레마이오스 조상들로부터 8세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백인일 가능성은 다소 희박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집트인 = 흑인, 서아시아인 = 비백인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부의 누비아인을 제외하면 이집트인은 백인에 가깝고 서아시아인들도 백인에 가깝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라면 몰라도 현재 학술적으로 백인 금발벽안, 갈발 녹안, 밝은 피부 같은 인체의 색상 개념이 아닌 두개골, 인체의 형태와 유전적 유사성으로 분류된 개념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알비노가 학술적으로도 백인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이다.

애시당초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근친혼을 거듭해 왔기 때문에 8세대가 지났다고 해도 여전히 그리스계 혈통을 유지하는 중이었을 테니 이는 틀린 말이다. 게다가 피가 섞였다고 주장한 셀레우코스 왕조 또한 역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하 장수가 시조이고 근친혼을 거듭한 것도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와 마찬가지여서 역시 그리스계 혈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5.2.3. 클레오파트라 7세의 시대는 아랍의 이집트 침공 이전이다

"While shooting, I became the target of a huge online hate campaign. Egyptians accused me of ‘blackwashing‘ and ’stealing‘ their history. Some threatened to ruin my career — which I wanted to tell them was laughable. I was ruining it very well for myself, thank you very much! No amount of reasoning or reminders that Arab invasions had not yet happened in Cleopatra’s age seemed to stem the tide of ridiculous comments. Amir in his bedroom in Cairo wrote to me to earnestly appeal that 'Cleopatra was Greek!' Oh, Lawd! Why would that be a good thing to you, Amir? You’re Egyptian."
"촬영하는 동안 나는 거대한 온라인 증오 캠페인의 대상이되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내가 그들의 역사를 ‘ 블랙워싱’하고 ‘도둑질’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 경력을 망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그 것은 웃기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내 경력을 아주 잘 망치고 있었으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클레오파트라 7세 시대에 아랍의 침략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어떤 추론이나 상기도 우스꽝스러운 발언의 흐름을 막지 못한 것 같습니다. 카이로의 침실에 있던 (이집트인) 아미르는 나에게 편지를 보내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인이었다!'고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오, 신이시여! 그게 왜 당신에게 좋은 일이겠습니까, 아미르? 당신은 이집트인입니다."
퀸 클레오파트라의 감독 티나 가라비의 말 #
가라비는 기고문에서 클레오파트라가 다스리던 이집트는 아랍 침공 이전이라며 고대 이집트인 흑인설을 지지했다. 이집트인들에게 아프리카인이냐고 물어보면 화를 내더라며 항의하는 이집트인들을 조롱한 것은 덤이다.

문화적 현상인 아랍화의 도래로 인종까지 바뀌었을 수 있다는 과격한 주장이자, 중동인 = 비백인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집트의 아랍화는 문화적 현상일 뿐 혈통적 단절이 아니다.[61] 이 문서에서 계속 강조되고 있듯이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이며, 고대 이집트인은 외형적으로 그리스인, 이탈리아인, 유대인과 동일한 범주(지중해권)의 사람들이다.

이슬람의 이집트 침공은 그 과정에서 심각한 학살과 약탈, 파괴를 겪은 지역들도 분명히 존재했으나 기존 인구의 멸절과 문화의 소멸을 야기할 만큼 커다란 것은 아니었고 알렉산드리아를 위시한 주요 도시들도 보존되었다. 이집트의 이슬람화 역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서 12 ~ 13세기는 넘어가야 이집트 인구의 과반수가 이슬람을 신앙하는 수준이 된다. 따라서 7세기 아랍의 침공은 이집트의 운명과 사회·경제, 문화를 변화시킨 중대한 기점이긴 했으나 고대 이집트와 현대 이집트를 민족적, 인종적으로 분리시킨 사건이라 볼 수는 없다.

반면 본 다큐멘터리에서는 "고대 이집트인은 현대 이집트인의 조상이 아니며, 그리스계 왕가는 현대 이집트인과 무관한 고대 이집트인의 피가 섞여서 흑인화된 것이다"라는 논리로 이집트인 전체에게 문화적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하필 '흑인으로' 바뀌어서 문제가 아니라, '바뀌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다큐를 표방하는 작품이 "너희는 위대한 고대 이집트인과 상관없는 아랍인이다"라고 하는 것과 사극이 일개 개인을 마약쟁이로 묘사하는 것 중 뭐가 더 문제인지는 분명하다. 이집트인들은 정당한 항의를 한 것이며, 감독이 이를 "너희는 위대한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이 아니라 아랍인임. 동의 안하면 덜떨어진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논리로 귀를 막는 것으로 일관한 것이다.

그리고 본 문단에 나온 티나 가라비의 주장은 진짜 이집트 흑인인 누비아계 이집트인들의 입장에서도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백인인 토착 이집트인이든 흑인인 누비아계 이집트인이든 간에 인종과 별개로 언어·문화적으로 아랍화된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대 토착 이집트인들을 가리켜 언어·문화적으로 아랍인이니 고대 이집트인들의 후손이 아니라고 하는 논리대로라면, 누비아계 이집트인들을 가리켜 언어·문화적으로 아랍인이니 고대 누비아인들의 후손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티나 가라비의 해당 주장은 백인인 토착 이집트인들 뿐만 아니라 누비아계 이집트인들에게도 문화적 폭력이 될 수 있다.

티나 가라비는 흑인이 아니고 백인에 속하는 이란인임에도 불구하고 고대 이집트인 흑인설에 대해 무리한 변호를 하는 원인은 단지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영미권에서는 우파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좌파 진영도 서아시아인은 유색인종이라는 선입견이 있으며 서아시아인이 유럽인과 같은 백인종이라는 사실은 학술계에서만 거의 통용되기 때문에 이러한 잘못된 선입견이 2020년대까지에도 전승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작 중동 본토 백인들( 아크담족, 누비아인, 바까라족, 투아레그족 등 흑백혼혈 민족들 제외)이 서양권 매체에서 자신들이 흑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되는 걸 불쾌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생각하면[62]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5.2.4.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이야기는 그녀의 이야기가 아닌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We re-imagined a world over 2,000 years ago where once there was an exceptional woman who ruled. I would like to draw a direct line from her to the women in Egypt who rose up in the Arab uprisings, and to my Persian sisters who are today rebelling against a brutal regime. Never before has it been more important to have women leaders: white or Black."
"우리는 2,000년 전에 한 때 예외적인 여성이 지배했던 세상을 다시 상상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서 아랍 봉기에 참여한 이집트 여성들과 오늘날 잔인한 정권에 반항하고 있는 페르시아 자매들에게 직접적인 선을 긋고 싶습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여성 지도자를 갖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습니다."
퀸 클레오파트라의 감독 티나 가라비의 말 #
기고문 결론으로 한 말이다.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이야기는 그녀의 이야기가 아닌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2,000년전 여성이 지배한 세상을 보고, 여성혐오가 만연한 현재, 백인이든 흑인이든 여성 지도자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이 흑인 여배우를 캐스팅해서 논란을 일으킨 진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이유라면 굳이 클레오파트라처럼 결국 패배한 여성 지도자가 아니라 쿠시 왕국 아마니토레를 비롯해 승리한 여성 지도자를 가져와도 됐을 것이고, 클레오파트라를 굳이 하겠다면 '흑인이든 백인이든'이라면 이집트계의 여배우를 채용해도 별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사왜곡임에도 굳이 성 문제로 왜곡하는 것이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5.3. 제인 페어베인 루트

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함께 퀸 클레오파트라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은 제인 페어베인 루트는 2023년 5월 10일 온라인 잡지 데드라인 기사에서 다큐멘터리와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맡은 배우 아델 제임스를 옹호했다.

5.3.1. 넷플릭스 다문화적인 고대 이집트를 다루길 원했다

"Adele James reflects the multicultural nature of ancient Egypt... Netflix asked us to promote a conversation and that’s just what has happened."
"아델 제임스는 고대 이집트의 다문화적 특성을 반영합니다... 넷플릭스는 우리에게 (이에 대한) 대화를 하도록 요청했고 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퀸 클레오파트라의 책임 프로듀서 제인 페어베인 루트의 말 #
루트는 넷플릭스가 고대 이집트의 다문화적인 면을 다큐멘터리에서 다루길 원했고, 아델 제임스와 같은 흑인 여배우가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맡는 것이 다문화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63]

5.3.2. 클레오파트라 7세의 시대의 인종은 현재의 인종과 달랐다

"Academics have long debated Cleopatra’s exact parentage... there is a possibility that Cleopatra was part Egyptian. We decided to depict Cleopatra of mixed heritage to reflect these theories and the multicultural nature of ancient Egypt. Race in her times was a long way from what it is now. It’s not every day that academic discussion of ancient history makes the news."
"학자들은 오랫동안 클레오파트라 7세의 정확한 혈통에 대해 논쟁해 왔습니다... 클레오파트라 7세의 혈통의 일부는 이집트인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론들과 고대 이집트의 다문화적인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서 혼혈인 클레오파트라 7세를 묘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녀의 시대의 인종은 지금의 인종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고대의 역사에 대한 학문적인 토론이 신문의 기사감이 되는 것은 매일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퀸 클레오파트라의 책임 프로듀서 제인 페어베인 루트의 말 #
루트는 학자들은 클레오파트라 7세의 혈통에 대해 오랫동안 논쟁했으며, 클레오파트라 7세의 혈통의 일부가 이집트계였다는 이론을 반영해서 고대 이집트의 다문화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으며, 이런 고대사에 대한 학문적인 토론은 신문의 기사로 자주 다뤄지진 않았다고 말했다.[64]


[1] 참고로 매부리코는 백인 중에서도 근동과 남유럽 백인들에게서 더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서양에서의 스테레오 타입 유대인 외모가 매부리코인 것에서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2] 1세기 고대 로마의 도시 헤르쿨라네움에서 전시된 초상화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머리카락이 갈색인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00여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색상이 바래져 정확하지 않다. [3] 정작 아델 제임스 본인이 출연한 다큐멘터리는 온통 역사 왜곡 천지인 걸 생각하면 모순이라고 볼 수 있다. [4] 당연히 비꼬는 의미로, 클레오파트라가 흑인이라면 똑같은 원리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중국인이라 하면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는 넷플릭스 측이 댓글창을 아예 막아 버려서 확인할 수 없다. [5] 미국인들이 외국, 특히 역사에 대해서 심히 무지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많은 미국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만 사는 줄 알고 북아프리카 아랍계 백인들이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건 인종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상식 차원의 문제다. [6] 다만 아주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라서 북아프리카 남부 지역 주민들은 북아프리카 북부 지역 주민들에 비해 피부색이 더 검으며 이집트 역사에서도 누비아계 흑인 왕국인 쿠시 왕국이 이집트를 정복하여 제25왕조를 창건해 흑인 파라오가 실제로 지배하던 시기도 있었다. [7] 이것은 이집트 전 대통령이자 그나마 미국 기성세대에게 얼굴이 알려진 현대 이집트인인 안와르 사다트가 수단계 흑인 혼혈이어서 얼굴에 흑인의 특징이 강했던 것이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원인이라는 설도 있다. [8] 사실 아프리카처럼 거대한 대륙은 다양한 인종이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인종'이란 있을 수가 없다.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절대다수가 흑인이기 때문에 흑인=아프리카인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하라 북부의 아랍계 역시 백인에 가까운 혈통과 우리가 흔히 아는 (이집트를 포함한) 아랍인들이 있다. 외부에서 유입된 유럽계 백인들을 제외하고 수천년간 살아온 아프리카 인종만 해도 이 정도이다. 아시아에서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그리고 서아시아쪽은 인종 자체가 다르다. 애초에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다양한 지역은 문화권 자체부터 다른데 하나의 대륙에 있다는 이유로 편의상 같이 분류될 뿐이다. 보통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서양권에서 '아시아인'이라고 부르면서 아랍쪽 사람들은 '아랍인'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같은 대륙이라고 같은 인종이란 건 아니다. [9] 하지만 이는 이집트가 아프리카 대륙에 속한다고 이집트인을 흑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바탕으로 한 논란임을 보여준다. 애시당초 이집트인들은 누비아인을 제외하면 아랍계 백인에 가까우므로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인으로서도 백인, 이집트인으로서도 백인이라고 할 수 있다. [10] 심지어 당시 아우구스투스의 두상을 노획하여 신전 현관 계단 밑에 묻어서 백성들이 그 위를 지나며 밟게 하기도 했다. [11] 정확히는 흑백혼혈. 어머니가 누비아 흑인이었고 아버지는 이집트계 백인이었다. [12] 쿠시 왕국은 한때 이집트를 정복하고 제25왕조를 세워 통치했기 때문이다. 제25왕조의 파라오들은 흑인이었다. [13] 이집트학 박사로는 유이하지만, 고고학으로 따지자면 유일하다. [14] 사실 2021년에도 곽민수 소장은 "클레오파트라 흑인설"에 대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칼럼을 서울신문에서 연재한 바 있다. # 요약하면
0. 1926년에 에페수스에서 아르시노에 4세(프톨레마이오스 왕조 14대 파라오이자 클레오파트라 7세의 여동생)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유골의 해부학적 특성이 흑인과 유사하다. 다만 DNA 검사를 해 본 것은 아니라서 확실하지 않다.
1. 클레오파트라의 모친이 불확실하며, 첩실에게서 태어난 서출일 가능성이 있다.
2.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들이 여러 첩을 두었고 차별을 하지 않았는데 이는 근친 유전병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3. 따져봤을 때 흑인 혈통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5] 일단 이 예고편에 의하면 다큐멘터리의 듀얼 우라에우스, 쉽게 말해 쌍 코브라 장식이 달린 왕관 자체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도 흔히 쓰인 왕관이라고 한다. [16] 다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어떤 주장의 근거로 충분한 신뢰도가 없다"라는 정도지, 그 주장의 반박 근거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17] 마치 물리학이나 통계, 의학 등의 과학 분야에서 100%라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고 항상 99%나 99.99%라는 표현만 쓰는 것과 같은 이치다. [18] 곽민수 소장은 대체로는 그의 의견과는 동의하지만, 자히 하와스 박사의 발언은 정치적인 메세지도 포함되어있으니 그걸 감안하고 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자히 하와스는 이집트 고고학자인 동시에 한국의 문화체육부에 해당하는 정부 부처의 장관이었기 때문에 본인의 발언과 행보에 정치성, 쇼맨쉽이 없는게 불가능하다. 본인도 그런 점을 인지하고 있어서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중 하나인 '언노운 사라진 피라미드'에서 "누군가는 제가 정치적이고 쇼맨쉽을 중시한다고 평한다."고 스스로 자인할 정도였다. [19] 바로 예고편에도 나왔던 듀얼 우라에우스를 쓰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것도 의도적으로 재현을 했다기보단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듯 우연히 맞추거나, 25왕조 누비아인 왕조 만이 썼다는 오해가 퍼져 있기 때문에 다큐에서 사용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20]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분석은 하지 않았지만, 한숨을 쉬며 그렇게 퀼리티가 있지는 않으며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평가했다. [21] 다만 먹물(학자)들은 항상 빠져나갈 구멍(즉 최소한의 여지와 가능성)을 만들어 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22] 이 말의 의미는 현대의 학문이란 언제나 반증 가능성을 남겨둔다는 뜻이다. 즉, 우리가 클레오파트라를 있는 그대로 소생시키거나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서 직접 피부색을 관찰할 수 없는 이상, (그나마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고고학적 사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고, 그 사료는 언제든 (당장 내일이라도) 새로이 발견되어 기존 학설을 뒤집을 수 있기 때문에,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100% 명백하지 않는 이상 가급적 어떠한 사실관계에 대해 단정지어 말하지 않는다. 비단 고고학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문이 이렇다. 당장 기자의 대피라미드도 노예가 건설했다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서구 최초의 역사책을 근거로 노예가 지었다는 설이 통설이다가 피라미드의 낙서(감독관과 싸워서 건설현장에 안나갔다가 아내가 바가지 긁어서 나갔다, 돈과 물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서 파업을 했다 등등)를 해독해서 농한기에 일종의 공공사업으로 자유민을 고용했다고 뒤집힌 적 있다. [23]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주 출신지인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와 동북아프리카의 이집트를 같이 묶는 것은 일부 유사역사학자들 수메르도 배달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동급이라고 비판했다. [24] 이는 마치 한국인들도 조상을 수만년 올라가다보면 아프리카가 현생 인류의 근원이므로 아프리카계 흑인이 나온다거나, 먼 역사 중에 어쩌다가 흑인이 표류되어서 한반도에 들어왔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후자의 경우, 설령 흑인이 표류해서 한반도에 들어오고, 그 흑인과 한반도인 사이에서 정을 통해 아이를 낳았다고 하더라도, 그 흑인의 피부색 유전자가 유전학을 뒤집을 정도로 초강력한 우성유전자가 아닌 이상, 반드시 희석된다. 내 조상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 중 한 명이 흑인이라 하더라도 그 한 명 빼고 나머지 조상들이 아시아인이면 피부색이 흑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25] 참고로 실제 역사의 클레오파트라는 정치력이나 암투라면 몰라도 악티움 해전에서 한창 전투 중인 와중에 멋대로 도주하는 바람에 아군의 전선과 사기가 무너지는데 일조했고 이로 인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물론 자신의 몰락에 쐐기를 박아버린 매우 무능한 사령관이었다. [26] 사실 카이사르나 안토니우스가 투기장에 나왔어도 뒤집어졌을 판이다. 애시당초 검투사는 노예, 혹은 잘 쳐줘도 해방 노예나 하는 일이다. [27] 공적으로는 종주국 로마의 최고지도자와 속국 이집트의 여왕이라는 관계가 있다.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사적인 관계만 인정하지 않은 것. [28] 당시 이집트는 군대가 없었으므로(정확히는 군대 자체는 있었다. 다만 그 군대도 로마군의 보조병으로써 양성된 것이지 이집트 왕가의 군대라고는 할 수 없었다.) 로마는 군대를 보내 이집트를 지키고 이집트의 밀을 로마에 들이는 관계였다. [29] 다만 이 시점에서 로마군은 원래 폼페이우스가 주둔해놓았는데 오랫동안 이집트에 주둔하면서 이집트화가 된 상황이었다. 이들이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사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살해하려 든 거나 나중에 악티움 해전에 클레오파트라 휘하로 나선 것도 이런 이유였다. [30] 또한 원주민 군대를 모으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미 이집트 왕가는 이들에게 보답을 하는 것을 쌩깐 전적이 꽤 있었으므로 이들의 충성심을 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31] 선왕으로부터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유언을 명분으로 삼았다. [32] 야사에서 보면 클레오파트라가 새벽에 나체로 카이사르 앞에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의 배경이 바로 이 시점이다. [33] 당연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전쟁에 동원할 군대 자체가 없었던 시점이다. [34] 다만 소시게네스는 이집트인이므로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오류 투성이 다큐멘터리가 정말로 원했던 건 백인 남성인 카이사르의 율리우스력에 대한 영향력을 지워버리고 율리우스력과 아무 상관없는 클레오파트라를 그 자리에 끼워넣는 것이었겠지만. [35] 카이사르와 마찬가지로 안토니우스는 이 시점에서 로마 제일의 권력자였다. 그리고 군사적인 방면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36] 반면 이집트군들은 로마 장군인 안토니우스보다 자신들의 여왕인 클레오파트라의 명령을 더 우선시했다. 이런 지휘체계의 혼선과 명령불복종이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한 또 다른 원흉으로 꼽히기도 한다. [37] 다만 안토니우스는 휘하 장군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이집트로 돌려보내자는 청원은 무시했다. 물론 이는 카이사리온을 명분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한 안토니우스는 당시 클레오파트라의 의견을 받아들여 움직이고 있던 형국이었는데 이는 안토니우스 자신의 물주이기도 했던 클레오파트라의 의견을 받아들인 거라고도 할 수 있다. [38] 상술한 대로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에서도 공과 사를 칼같이 구별했다. 사실 바람둥이인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 뿐 아니라 다른 여성과의 관계에서도 이랬다. 그렇다고 자기와 관계한 여성들에게 차갑게 대하거나 하지는 않았고 사적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줬다. 대표적으로 애인의 아들인 브루투스에게 잘 대해준 것이 있다. [39] 혹여나 카이사르가 아들 카이사리온을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았을까 기대했기 때문. 물론 그런 건 없었고 카이사르는 누이의 손자 옥타비아누스를 후게자로 지명했다. [40] 거기다 유언장에 알렉산드리아에 묻어달라고 한 건 덤. [41] 라기보다는 애시당초 클레오파트라가 키케로를 만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 편이고 카이사르와 키케로는 정적 관계였는데 뜬금없이 클레오파트라와 키케로가 만날 이유가 없다. 또, 만날 타이밍도 없었는데, 당연히 클레오파트라는 자기 나라인 이집트에만 있었고 로마에는 상술한 대로 카이사르 사후 유언장 내용을 들으러 간 게 전부다. 그리고 유언장에 카이사리온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것을 알자 바로 이집트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때는 로마 자체가 워낙 혼란통이라 키케로도 한동안 로마에서 도망치려 했는데 뭣하러 카이사르의 애인인 여왕과 무슨 연회를 연단 말인가? 그냥 픽션에 불과하다고밖에. 다큐멘터리에 픽션이라니... [42] 이미 악타움 해전에서 결판이 났기 때문이다. 즉, 이 시점에서 옥타비아누스는 그리스 등 주변 정국을 안정시키느라 천천히 움직인 것이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끝장낼 수 있었다. [43] 이들은 나중에 안토니우스의 전처이자 옥타비아누스의 누나인 소 옥타비아가 길렀다. [44] 이 과정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의 아들 카이사리온도 죽여 버리고 안토니우스와의 자식들인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2세,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포스까지 체포하여 로마로 압송시킨다. 특히 맏이이자 쌍둥이 남매인 헬리오스와 셀레네는 어머니 클레오파트라가 독사를 붙잡고 자살하는 모습이 새겨진 조각상 뒤로 끌려가 옥타비아누스의 개선식에 강제 참석하는 수치를 당했다. 다만 형제 둘은 로마로 건너오는 도중 병사했다. [45] 다만 이 때 이들은 어린 나이라 수치에 대해 알지는 못했을 테고 또 이후로는 옥타비아누스의 누나 옥타비아에 의해 제대로 된 양육을 받았으며 나중에는 이집트 왕가의 일원으로써 주변 왕국의 왕에게 시집갈 수 있었으니 이들의 인생이 전부 다 비참한 건 아니었다. [46] 그 외에도 전국시대 말기를 다룬 사무라이의 시대에서는 센고쿠 다이묘들은 무슨 닌자 야쿠자 집단마냥 묘사를 하고 임진왜란 파트에서 묘사된 조선인들의 복식 재현이나 곽재우가 여성의 생리혈을 물들인 옷을 입었다는 등[65] 헛소리를 사실마냥 묘사해 흑인 우월주의 아시아인 차별, 와패니즈 등이 일상인 소위 전형적인 PC충들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되기까지 했다. [47] 한국에서 개그맨 이경규가 남긴 "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즉, 사실도 아니고 정확한 말도 아닌 어디서 들은 말과 책 한 권 읽은 걸로 그것을 진실인 양 믿고 신념까지 가져 버리면 그 어떤 사람이 와서 진실을 말해도 절대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48] 당연하지만 제대로 된 역사학도라면 아니 그 이전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할머니가 노망이 드신 게 아닌지 먼저 의심을 해봐야 할 것이다. 할머니가 아니라 역대 역사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우선시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49] 백번 양보해서 이러한 말을 하는걸 넘어가준다 해도, 바로 이 주장이 왜 옳은지 근거를 대며 설명을 한다면 모를까, 전혀 그런것 없이 이 말 한마디로 끝낸다. [50] 거기다 다큐멘터리 마지막 화에선 "난 원래는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를 할 생각 이 없었다. 하지만 몇 년동안 클레오파트라가 꿈에 나타나 내 이야기를 해달라 했다. 그래서 난 그녀의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그녀는 아프리카 여왕이니까."라는 말을 하는데, 뜬금없고 다큐멘터리에서 자문이 하기엔 부적절한 발언이다. 거기다 또 아프리카 여왕이란 말을 강조해 클레오파트라 흑인설을 밀어 붙였다. 사실 아프리카라고 하니까 흑인들만 사는 곳이라고 여겨지지만 북아프리카는 흑인 말고도 라틴인 및 아랍계 백인이나 셈 족들도 많이 살고 있으며 발칸 반도 못잖게 인종의 도가니같은 곳이다. [51] 싫어요가 무려 46만이다. [52] 아프리카 역사가 화이트워싱당했다는 주장이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다. 예로 19세기 유럽에서는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이나 누비아 피라미드 등의 유적을 두고 흑인들이 이런 걸 만들 리가 없고 페니키아 상인들이 진출해 만들었다고 역사 왜곡을 했다. (그리고는 페니키아 상인의 비밀 금고를 찾는답시고 해당 유적의 대부분을 박살냈다.) 고대 이집트만 해도 토착 이집트인들이 이런 유적을 만들었을 리가 없고 유럽인의 조상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 외계인이 피라미드 등의 유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이런 편견의 연장선이다.) [53] 옛날 이집트 유물 중 고대 이집트인에게 아프로가 있는 걸 묘사한 작품은 없으며, 그 빗도 당대 이누이트, 바이킹, 동양에서 발견된 다른 빗들과 똑같은 모양이다. 심지어 흑인인 누비아계 이집트인이나 수단 공화국 본토의 누비아인을 묘사한 기록화에도 아프로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없다. 애초에 아프로 머리는 미국 흑인의 문화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를 이집트를 비롯한 아프리카 본토에서 찾으려는 것부터가 오류다. 미국 흑인을 비롯한 미국인들이 외국 역사에 대해 심히 무지해서 미국의 역사 문화를 외국 역사에 적용하려는 오류가 많다. [54] 현재는 부부이다. 본처가 이혼소송을 제기해서 이혼한 후 콜린과 재혼했다. [55] 위의 다섯 사람 중 앞의 두 사람은 흑인이고 뒤의 세 사람은 백인이며 다섯 사람 모두 여성 미국인이다. [56] 부모가 이집트계 이민자다. [57] 애초에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해당 작품에 제대로 된 전문가가 합류할 리도 없다. 설사 합류한다고 해도 이미 작품의 방향을 결정한 제작진이 이런 전문가의 견해를 받아들일 리도 없다. 결국 제작진은 자신들이 듣고 싶어하는 소리만 해 주는 인간들만 자문가로 채용했을 거고, 제작진과 이런 "전문가"들의 편견과 왜곡이 합쳐지면서 다큐멘터리라고 부르기도 뭣한 희대의 괴작이 탄생한 거다. [58] 토탈 워: 로마2도 DLC로 여성 장군들이 대거 투입되었을 때 비슷한 비판이 있었는데 "여성 유닛이 당신을 화나게 했다면 다른 모드를 하던가 안 하면 된다" 는 식의 답변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배필과 달리 이 DLC로 인해 게임이 폭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현실을 재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마 시대에 여성 장군이 있었던 문화권만 여성 장군이 확률적으로 등장하며 로마 등(로마는 가장이 마음대로 가족 구성원을 벌주거나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을 만큼 가부장적이었다.) 구조적으로 여성이 장군이 될 수 없는 문화권이라면 등장 확률이 0%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이머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59]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마찬가지로 마케도니아 출신의 그리스계 왕조인 데다 서아프리카가 아니라 아시아를 지배한 왕조다. [60] 처음 기고문이 공개되었을 때 "서아프리카의 셀레우코스 왕조"라고 말했는데 이후 지적을 받은 건지 "서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왕조"로 수정되었다. [61] 얄궂게도 이 논리는 많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과거 흑인 문명들은 흑인들이 세운 것이 아니라 백인들이 세운 것이고, 흑인들이 나중에 이주해서 지금 그 곳에 살고 있다"는 억지 논리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흑인 왕국에 대한 유튜브의 댓글을 보면 해당 문명은 과거 백인 문명인데, 왜 나중에 이주한 흑인들로 블랙워싱하냐는 종자가 간간히 있다. 이렇게 자신들이 당한 역사 왜곡을 그대로 이집트인들에게 자행하는 꼴이다. [62] 당장 본 문서에서 설명하는 이집트인들부터가 그런 사례다. [63] 사실 당시 이집트 왕가는 다문화와는 가장 거리가 멀었는데, 이들은 이집트 혈통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근친혼으로 혈통을 유지한 왕가였다. [64] 상식의 영역이지만 이런 아프리카중심주의적 주장이 신문의 기사로 다뤄지지 않은 건, 그 반대 주장에 비해 근거가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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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그리고 이순신의 활약은 단 1절도 언급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