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22:02:58

아르시노에 4세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DB76B 0%, #DECD87 20%, #DECD87 80%, #BDB76B);"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A0522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하이집트 <colbgcolor=#fff,#1f2023> 헤주호르 니호르 흐세큐 카유 티우 테시 네헵 와즈너 하트호르 니네이스 | 메크 더블팔콘 워시
상이집트 | 핑거 스네일 피시 엘리펀트 스톡 전갈왕 1세 크로커다일 아이리 호르 전갈왕 2세 나르메르 메네스
제1왕조 나르메르 메네스 호르아하 제르 제트 메르네이트 아네지브 세메르케트 카아 스네페르카 호루스 바
제2왕조 헤텝세켐위 네브라 니네체르 누브네페르 호루스 사 웨네그 와제네스 세네지 세트 페리브센 세케리브 페렌마아트 네페르카레 1세 네페르카소카르 후제파 카세켐위
제3왕조 조세르 세켐케트 사나크테 네브카 카바 세제스 카하제트 후니
제4왕조 스네프루 쿠푸 제데프레 카프레 비케리스 멘카우레 솁세스카프 탐프티스
제5왕조 우세르카프 사후레 네페리르카레 카카이 네페레프레 솁세스카레 니우세르레 멩카우호르 제드카레 우나스
제6왕조 테티 우세르카레 페피 1세 메렌레 1세 페피 2세 메렌레 2세 니토크리스 네체르카레 네페르카 네페르
제7왕조 멩카레 네페르카레 2세 네페르카레 3세 제드카레 셰마이 네페르카레 4세 메렌호르 네페르카민 니카레 네페르카레 5세 네페르카호르
제8왕조 네페르카레 6세 네페르카민 아누 카카레 이비 네페르카우레 네페르카우호르 네페리르카레 와지카레 쿠이케르 쿠이 이체누
제9왕조 케티 1세 네페르카레 7세 네브카우레 케티 세투트 임호텝
제10왕조 메리하토르 네페르카레 8세 와카레 케티 메리카레
제11왕조 멘투호테프 1세 인테프 1세 인테프 2세 인테프 3세 멘투호테프 2세 멘투호테프 3세 멘투호테프 4세
누비아 왕조 세게르세니 카카레 이니 이이브켄트레
제12왕조 아메넴헤트 1세 세누스레트 1세 아메넴헤트 2세 세누스레트 2세 세누스레트 3세 아메넴헤트 3세 아메넴헤트 4세 소베크네페루
제13왕조 소베크호테프 1세 손베프 네리카레 세켐카레 아메니 케마우 호테피브레 이푸니 아메넴헤트 6세 세멘카레 네브누니 세헤테피브레 세와지카레 네제미브레 소베크호테프 2세 렌세네브 호르 세켐레쿠타위 카바우 제드케페레우 세브카이 세제파카레 웨가프 켄제르 이미레메샤우 세헤테프카레 인테프 세트 메리브레 소베크호테프 3세 네페르호테프 1세 시하토르 소베크호테프 4세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와히브레 이비아우 메르네페르레 아이 이니 1세 상켄레 세와지투 메르세켐레 이네드 세와지카레 호리 소베크호테프 7세 이니 2세 세와헨레 세네브미우 메르케페레 메르카레 세와자레 멘투호테프 세헤켄레 산크프타히
제14왕조 야크빔 세카엔레 야아무 누부세르레 카레흐 아아호테프레 셰시 네헤시 카케레우레 네베파우레 세헤브레 메르제파레 세와지카레 3세 네브제파레 웨벤레 아위브레 2세 헤리브레 네브센레 셰케페렌레 제드케레우레 산키브레 2세 카케무레 네페리브레 카카레 아카레 아나티 제드카레 베브눔 아페피 누야 와자드 셰네흐 셴셰크 카무레 야카레브 야쿠브-하르
제15왕조 샤렉 셈켐 아페라나트 살리티스 사키르-하르 키얀 야나시 아페피 카무디
제16왕조 제후티 소베크호테프 8세 네페르호테프 3세 멘투호테피 네비리라우 1세 네비리라우 2세 세멘레 베비앙크 세켐레 셰드와스트 데두모세 1세 데두모세 2세 몬투엠사프 메란크흐레 멘투호테프 세누스레트 4세 페피 3세
아비도스 왕조 세네브카이 웨프와웨템사프 판트제니 스나아이브
제17왕조 라호테프 네브마아트레 소베켐사프 1세 소베켐사프 2세 인테프 5세 인테프 6세 인테프 7세 세나크텐레 아모세 세케넨레 타오 카모세
제18왕조 아흐모세 1세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세 1세 투트모세 2세 하트셉수트 투트모세 3세 아멘호테프 2세 투트모세 4세 아멘호테프 3세 아케나톤 스멘크카레 네페르티티 투탕카멘 아이 호렘헤브
제19왕조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 메르넵타 아멘메세스 세티 2세 십타 투스레트
제20왕조 세트나크테 람세스 3세 람세스 4세 람세스 5세 람세스 6세 람세스 7세 람세스 8세 람세스 9세 람세스 10세 람세스 11세
제21왕조 스멘데스 1세 아메넴니수 프수센네스 1세 아메네모페 대 오소르콘 시아문 프수센네스 2세
제22왕조 셰숑크 1세 오소르콘 1세 셰숑크 2세 타켈로트 1세 오소르콘 2세 셰숑크 3세 셰숑크 4세 파미 셰숑크 5세 오소르콘 4세
제23왕조 하르시에세 A 타켈로트 2세 페디바스테트 1세 셰숑크 6세 오소르콘 3세 타켈로트 3세 루다멘 이니
제24왕조 테프나크트 바켄레네프
제25왕조 피이 셰비쿠 샤바카 타하르카 타누타멘
제26왕조 네코 1세 프삼티크 1세 네코 2세 프삼티크 2세 와히브레 아흐모세 2세 프삼티크 3세
제27왕조
( 아케메네스 왕조)
캄비세스 2세 바르디야 다리우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크세르크세스 2세 소그디아누스 다리우스 2세
제28왕조 아미르타이오스
제29왕조 네파루드 1세 하코르 프삼무테스 네파루드 2세
제30왕조 넥타네보 1세 테오스 넥타네보 2세
제31왕조
( 아케메네스 왕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아르세스 카바쉬 | 다리우스 3세
아르게아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알렉산드로스 4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32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2세 · 아르시노에 2세 프톨레마이오스 3세 · 베레니케 2세 프톨레마이오스 4세 · 아르시노에 3세 프톨레마이오스 5세 · 클레오파트라 1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 클레오파트라 1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복위) · 프톨레마이오스 7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클레오파트라 2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9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클레오파트라 4세 프톨레마이오스 10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베레니케 3세 프톨레마이오스 9세 (복위) 베레니케 3세 · 프톨레마이오스 11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 클레오파트라 5세 베레니케 4세 · 클레오파트라 6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13세 · 클레오파트라 7세 · 아르시노에 4세 프톨레마이오스 14세 · 클레오파트라 7세 프톨레마이오스 15세 · 클레오파트라 7세
세소스트리스 · 아이깁투스 · 사산 · 정통 칼리파
우마이야 · 아바스 · 파티마 · 아이유브
맘루크 · 오스만 · 무함마드 알리 · 대통령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14대 파라오
아르시노에 4세
Arsinoe IV
파일:Arsinoe-IV.webp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아르시노에 4세
Ἀρσινόη | Arsinoë
출생 기원전 68년-63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알렉산드리아
사망 기원전 41년 (향년 22-27세)
로마 공화국 에페소스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48년 ~ 기원전 47년[1] (약 1년)
부모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종교 이집트 다신교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14대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클레오파트라 7세가 대립할 때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파라오를 자칭하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에 찾아와서 클레오파트라 7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자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연합하여 클레오파트라 7세와 카이사르를 공격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전쟁에서 패배한 뒤 로마로 끌려가 개선식에 전시되었고, 이후 이오니아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조용히 지내다 클레오파트라 7세의 요청을 받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의해 처형되었다.

2. 생애

기원전 69년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딸로 출생했다. 어머니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복 형제로 베레니케 4세, 클레오파트라 7세를 두었고, 동복형제로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프톨레마이오스 14세를 두었다. 기원전 51년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붕어했다. 그는 죽기 전에 로마 공화국이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클레오파트라 7세의 공동 통치를 보장해줄 걸 부탁하는 한편, 아르시노에 4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가 키프로스에서 공동 통치자를 맡기를 희망하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당시 키프로스는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어 있었기에, 아르시노에 4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는 별다른 영지를 가지지 못했다. 기원전 48년 클레오파트라 7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내전을 벌일 때, 그녀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파라오를 자칭했다.

기원전 48년 말 폼페이우스를 추격하러 이집트로 향했다가 그의 수급을 전달받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분쟁을 조정하기로 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유언대로 클레오파트라 7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공동 통치를 행사하고, 아르시노에 4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는 키프로스를 통치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가신들이 반발하여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을 선동해 봉기를 일으키면서, 알렉산드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그녀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함께 왕궁에서 로마군에 억류되었다. 그러다 고문 가니메데스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뒤,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가신 아킬라스와 접촉했다. 그 후 그녀는 파라오로 공식 인정받고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공동 파라오로 추대되었다.

아르시노에 4세는 알렉산드리아 공방전을 지켜보다가 아킬라스가 무능하다고 판단하고, 가니메데스에게 아킬라스를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그리하여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권력은 약해졌고, 그녀가 주도권을 잡았다. 그녀는 군대의 통제권을 가니메데스에게 넘겼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거리를 봉쇄하고 벽을 쌓아서 로마군을 도시의 한 구역에 가두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로마군이 먹는 식수에 바닷물을 붓게 했다. 로마군은 우물을 파는 것으로 맞섰지만, 이 정도로는 임시방편에 불과했기에, 카이사르는 신선한 물을 구하기 위해 함대를 이끌고 해상 봉쇄를 뚫으려 했다. 그러나 도중에 역공을 받아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자, 갑옷과 보라색 망토를 벗고 바다에 몸을 던져서 근처의 로마 함선으로 헤엄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가니메데스는 끝내 카이사르를 굴복시키지 못했고, 이집트의 주요 장교들은 카이사르에게 아르시노에 4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3세를 교환하겠다고 제안했다. 카이사르는 상황을 호전시킬 기회라고 여기고,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반란군을 찾아가서 잘 타일러서 반란을 멈추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카이사르 곁을 떠나고 싶지 않다며 울음을 터트렸지만, 카이사르가 거듭 부탁하자 그 말대로 하겠다고 맹세하며 떠났다. 그러나 정작 반란군에 가담한 뒤에는 태도를 싹 바꾸고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7세를 향한 공세를 강화시켰다. 하지만 온갖 곤경을 헤쳐온 카이사르와 장병들은 끝까지 버텼고, 기원전 47년 1월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가 파견한 구원군이 도착하면서 숨통을 돌릴 수 있었다. 그 후 그해 2월 나일 강 전투에서 이집트군이 참패했고,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달아나던 중 나일 강에 빠져 익사했다.

그리하여 승리를 거둔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 7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를 공동 파라오로 선임하였고, 아르시노에 4세를 로마로 이송시켰다. 기원전 46년 로마에서 카이사르의 개선식이 열렸을 때, 그녀는 알렉산드리아 등대가 불타는 모습을 묘사한 조각상 뒤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끌려갔다. 군중은 연약한 여인이 쇠사슬에 질질 끌리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연민을 느꼈고, 카이사르의 잔인함을 은근히 비판했다. 개선식이 끝난 뒤, 카이사르는 이러한 여론을 파악하고 그녀를 살려주기로 하고, 이오니아의 에페소스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조용히 살게 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 7세는 그녀를 잠재적인 경쟁자로 인식했다. 기원전 41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 7세의 청탁을 받아들여 아르시노에 4세를 신전에서 붙잡아 처형했다.


[1] (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클레오파트라 7세와 협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