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魏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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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 2권 「태조기(太祖紀)」 | 3권 「태종기(太宗紀)」 | ||||
탁발부 · 대나라 | 탁발규 | 탁발사 | |||||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 5권 「고종기(高宗紀)」 | 6권 「현조기(顯祖紀)」 | |||||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 |||||
7권 「고조기(高祖紀)」 | 8권 「세종기(世宗紀)」 | 9권 「숙종기(肅宗紀)」 | |||||
원굉 | 원각 | 원후 | |||||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 |||||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선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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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권 「황후전(皇后傳)」 |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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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 |||||||
탁발흘라 ,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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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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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 ||||||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 |||||||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 |||||||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 ||||||
탁발장락 · 탁발략 · 탁발간(簡) · 탁발약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 위조 · 막함 · 유고인 |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 |||||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 27권 「목숭전(穆崇傳)」 | |||||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 울고진 | 목숭 | |||||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 ||||||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 해근 · 숙손건 | ||||||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 |||||||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 |||||||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 ||||||
우율제 | 고호 · 최영 · 봉의 | ||||||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 |||||||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 |||||||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 35권 「최호전(崔浩傳)」 | 36권 「이순전(李順傳)」 | |||||
왕낙아 · 차노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 최호 | 이순 | |||||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 39권 「이보전(李寶傳)」 | |||||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 이보 | |||||
40권 「육사전(陸俟傳)」 | 41권 「원하전(源賀傳)」 |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 |||||
육사 | 원하 |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 ||||||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 ||||||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 47권 「노현전(盧玄傳)」 | |||||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 두근 · 허언 · 이흔 | 노현 | |||||
48권 「고윤전(高允傳)」 |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 |||||
고윤 | 이령 · 최감 | 울원 · 모용백요 | |||||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 |||||||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 |||||||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 |||||||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 |||||
이효백 · 이형 | 유아 · 고려 | 유명근 · 유방 | |||||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 58권 「양파전(楊播傳)」 | |||||
정희 · 최변 | 고우 · 최정 | 양파 | |||||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 한기린 · 정준 |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 |||||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 |||||
이표 · 고도열 | 왕숙 · 송변 | 곽조 · 장이 | |||||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 67권 「최광전(崔光傳)」 | |||||
형만 · 이평 | 이숭 · 최량 | 최광 | |||||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 |||||
견침 · 고총 | 최휴 · 배정준 · 원번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 |||||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 ||||||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 ||||||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이주영 |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 |||||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 |||||
노동 · 장열 |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 손소(孫紹) · 장보혜 | |||||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 ||||||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 ||||||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 ||||||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 이염지 · 조영 · 상경 | ||||||
83권 「외척전(外戚傳)」 | |||||||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 |||||||
84권 「유림전(儒林傳)」 | |||||||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 |||||||
85권 「문원전(文苑傳)」 | |||||||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 |||||||
86권 「효감전(孝感傳)」 | |||||||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
87권 「절의전(節義傳)」 | |||||||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
88권 「양리전(良吏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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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권 「혹리전(酷吏傳)」 | |||||||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 |||||||
90권 「일사전(逸士傳)」 | |||||||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 |||||||
91권 「예술전(藝術傳)」 | |||||||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 |||||||
92권 「열녀전(列女傳)」 | |||||||
임성국태비 | |||||||
93권 「은행전(恩倖傳)」 | |||||||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 |||||||
94권 「엄관전(閹官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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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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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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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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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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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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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 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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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매덕 · 고질전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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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colbgcolor=#DC143C><colcolor=#ece5b6> 강양경소왕(江陽景昭王)
원차 | 元叉 |
|
시호 | 경소(景昭) |
작위 | 강양왕(江陽王) |
성 | 원(元) |
휘 | 차(叉)[1] |
자 | 백준(伯雋) |
아명 | 야차(夜叉) |
생몰 | 486년 ~ 526년 4월 17일 |
출신 | 하남군(河南郡) 낙양현(洛陽縣) |
부친 | 원계(元繼) |
자녀 | 3남 1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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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위의 황족. 도무황제 탁발규의 후손. 남평안왕 탁발소의 손자. 강양무열왕 원계의 장남.2. 생애
선무제 원각 시기에 원차는 원외랑(員外郎)으로 임명되었다.연창 4년(515년) 9월, 효명제 원후의 생모인 영태후 호씨가 시중 어충(於忠)을 폐출시키고 섭정을 시작하자, 그녀의 매부인 원차는 통직산기시랑에 제수받았다. 원차의 처 호씨는 영태후의 여동생으로, 영태후가 정권을 잡았을 때에 신평군군(新平郡君)에 봉해졌다가 빙익군군(馮翊郡君)으로 높여지고 여시중(女侍中)으로 임명되었다. 그 덕에 원차의 기세는 나날이 강성해져서 산기상시•광록소경(光祿少卿)•영 상식전어(領嘗食典御)으로 승진했다가, 얼마 안 가 광록경(光祿卿)으로 옮겨졌다.
어느 날, 원차의 장녀가 요절하자, 영태후가 조서를 내려 말했다.
"원차의 장녀는 약계(弱笄)를 꽂을 나이가 되기도 전에 요절하고 말았으니[2], 이를 추모하기 위해 그녀에게 향주(鄉主) 칭호를 하사하노라."
그리고는 원차를 시중으로 삼고, 나머지 관직들은 이전과 같게 하였으며, 영군장군 직위를 더하였다. 원차는 영태후를 섬기면서 그녀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아 금병(禁兵)도 아울러 통솔하였다. 태부•청하왕
원역은 현명한 이들을 가까이 하여 국정을 보좌하였는데, 원차가 영태후의 총애를 믿고 교만해져 끝없는 야망을 품자, 원역은 법으로 그를 탄압하였다. 이에 원차 역시 원역의 인품을 경시하고 항상 그를 축출하고 싶어하여, 통직랑 송유(宋維)에게 사염도위(司染都尉) 한문수(韓文殊)가 원역을 옹립하여 역모를 도모하려 한다며 무고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원역은 조정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후에 조정에서 정황의 실상을 밝혀내지 못했으므로 원역은 비록 면죄받았지만, 여전히 그를 황궁 서쪽 별관에 거주하게 하고 병사들로 하여금 그를 감시케 하였다.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원차는 원역이 결국 자신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하여, 시중 유등(劉騰)과 비밀리에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영태후가 잠시 가복전(嘉福殿)으로 행차하여 전전(前殿)을 비운 날, 유등은 중황문 호현도(胡玄度)와 호정열(胡定列) 형제에게 유역이 자신들에게 금과 비단을 약속하고 독약을 제사 음식에 넣어 황제를 해치려 했다며 모함하게 하였다. 또, 덧붙이기를 원역 스스로 황제에 오르려 하였고, 그가 황제에 오르면 그들 형제에게 부귀를 약속했다라 진술하였다. 유등은 그들끼리 꾸며낸 모든 증언을 정리하여 효명제에게 보고하니, 효명제는 이를 그대로 믿고 현양전(顯陽殿)으로 나아갔다. 당시 영태후와 원역이 사통한다는 소문이 퍼져있었기에, 유등은 재빨리 영항문(永巷門)을 닫아 영태후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 원역은 황궁으로 들어가 함장전(含章殿) 뒷편에서 원차와 조우하였다. 원차는 휘장전(徽章殿) 동각(東閣)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원차는 성난 듯이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원역을 들여보내지 않았다. 이에 원역이 말했다.
"너는 반역하려는 것이냐?"
원차가 답했다."나 원차는 반역하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반역자를 잡고자 한다."
그리고는 종사(宗士)와 직재(直齋) 등 30명에게 명하여 원역의 옷자락을 붙잡게 하고 함장전 동성(東省)으로 끌고 들어가, 그곳에 그를 가두고 수십 명을 배치하여 그를 감시하도록 하였다. 이후 유등이 조서를 내어 공경(公卿)들을 소집하고, 원역의 대역죄에 대해 논의하니, 오직 원역의 벗 유조(游肇)만이 이것이 누명임을 따졌고, 나머지 공경들은 모두 원차가 두려워 감히 반대하지 않았다. 원차와 유등은 공경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조정에 보고하였고, 머지않아 사건은 처리되어 원역은 바로 그날 밤에 처형당했다.정광 원년(520년) 7월 4일[3], 원역을 성공적으로 제거한 원차는 정권을 사양한다는 영태후의 조서를 만들어 영태후를 실각시켰다. 이로써 원차는 태사•고양왕 원옹(元雍) 등과 함께 정사를 보좌하게 되었고, 항상 황궁에 거주하였으며, 효명제는 그를 이부(姨父)라고 불렀다. 정권을 장악한 원차는 기밀을 전담하였고, 작은 일까지 그의 결정을 거쳤으며, 내외로 위세를 떨쳐 조정의 여러 관리들이 그의 발자취를 중시하게 되었다.
정광 원년(520년) 10월, 상주자사(相州刺史)•중산왕 원희가 원차를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거병하였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원차에 의해 역으로 토벌당해 주살당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영태후와 효명제가 서림원(西林園)에서 연회를 즐기다가 날이 저물 때가 되어서야 환궁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우위장군 해강생(奚康生)이 원차를 도모하려 하다가 도리어 패하고 주살당했다. 그 후, 효명제는 휘음전(徽音殿)으로 옮겨 거처하였고, 원차는 휘음전 우측에서 거주하였다. 반란을 모두 진압한 원차는 위장군으로 승진하였고, 나머지 관직은 이전과 같았다.
원차는 황제와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아첨과 아부를 다하여, 결국 황제의 총애와 신임을 한몸에 받게 되었다. 원차는 출입할 때마다 금중(禁中)에서 항상 용사들이 검을 들고 자신의 앞뒤를 지키게 하였으며, 공적 및 사적인 행동에 있어 더욱 위엄과 경계를 더하였고, 그와 만나고자 하는 이들은 그저 멀찍이 떨어져서 대면할 수 있을 뿐이었다. 또, 원차는 천추문(千秋門) 바깥의 마구간 아래에 나무 난간을 설치하고 가끔 그곳에 출입해서 쉬었는데, 그때에도 심복들을 두어 경비를 강화하하였다. 이후 원차는 자신의 아들 원량(元亮)을 평원군 개국공(平原郡開國公)에 봉하였고, 식읍은 1,000호에 달했다. 원량이 봉작될 때, 남문(南門)에서 이를 지켜보던 효명제는 그에게 어마(御馬)와 1,000필의 비단을 추가로 하사하였다.
당초 원차가 전권을 쥐었을 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스스로 꾸며서 인재를 공손하게 대하고 시사의 득실을 따지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재능과 기술이 얕아 결국 먼 미래를 위한 성과는 내지 못하였다. 여하튼 뜻을 이루게 된 그는 결국 교만해져서 점차 방탕하게 술과 여색을 탐하였고, 권력을 제멋대로 남용하게 되었다. 그는 금중(禁中)에서 스스로 별도의 창고를 만들어 이를 장악하고, 보물을 그 안에 가득 채웠다. 또, 그는 여인을 식여(食輿)[4] 속에 숨기고, 천으로 그 위를 덮어 금중(禁中)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나올 때도 마찬가지로 하게 하였다. 위병들도 모두 이를 알고 있었으나, 감히 언급하는 자는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원차를 따르는 무리는 술과 여색으로 그의 방탕함을 부추겼고, 원차는 마음에 드는 여성이면 친척이든 유부녀든 따지지 않고 음란한 행위를 하였다. 이로 인해 정사가 게을러졌고, 규율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며, 주(州)와 진(鎮)의 수장 자리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들로 채워지면서 천하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정광 4년(523년), 유등이 사망하자, 국가의 방위가 느슨해졌다. 원차 또한 스스로 해이해져 매일 숙소를 정하여 외출하였고, 놀러 나가 마을에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경계하던 영태후의 동태는 놀러 나가는 것이 습관화되면서 이마저도 소홀히 하게 되어 더이상 그녀에 대해 염려하지 않았다. 원차의 측근들은 이를 간하였으나, 원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광 5년(524년) 가을, 영태후가 효명제와 신하들에게 말했다.
"우리 모자(母子)를 떨어뜨려놓아, 내가 자식과 왕래하는 것을 막고 내 아이의 소식을 듣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어디에 쓸 데가 있겠는가? 나를 출가하게 해준다면, 나는 영원히 인간 세상과 단절하여 숭고하고 한가롭게 절에서 도(道)를 닦겠노라. 선제(先帝)께서는 성스러운 통찰력으로 이를 미리 알아차리시어, 나를 위해 이 절을 세운 것이리라."
그리고는 스스로 황태후에서 내려오려 하였다. 이를 들은 효명제와 신하들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로 애원하면서 그러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였다. 그러나 영태후의 목소리와 표정은 매우 엄숙하였고, 그녀의 뜻은 전혀 돌아설 기미가 없었다. 당초 효명제는 가복전에서 여러 날을 머물면서 원차를 제거할 계획을 영태후와 함께 은밀히 모의하고 있었다. 효명제는 안으로는 계획을 세우면서,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게 매우 신중히 행동하고 있었는데, 이때 영태후는 분노의 말로 원차를 제거하고자 하는 의도를 간접적으로 신하들에게 알린 것이었다. 이후 효명제는 원차를 만나 눈물을 흘리며, 영태후가 출가하려고 하는 것과 그로 인한 걱정과 두려움을 이야기하였다. 효명제의 이러한 행위는 하루에 4번 정도 있었고, 뒤에서는 비밀리에 원차를 제거할 계획을 착실히 세워갔다. 여기에 넘어간 원차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효명제에게 영태후의 뜻을 존중하도록 권하였다. 이로써 영태후는 여러 번 현양전을 들락거릴 수 있었고, 두 궁에 출입하는 것이 더이상 금지되지 않았다.정광 6년(525년) 정월, 원차가 임명했던 서주자사(徐州刺史) 원법승이 칭제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양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영태후가 원법승이 반란한 소식을 여러 차례 언급하자, 원차는 깊은 부끄러움과 후회를 느꼈다. 당시 승상•고양왕 원옹은 비록 원차보다 높은 직위에 있었으나, 원차를 매우 두려워하여 효명제에게 진언하고자 해도 그렇게 할 기회가 없었다. 이때 마침 영태후와 효명제가 남쪽 낙수(洛水)로 유람을 가면서 원옹도 초대하였기에, 황제의 수레는 원옹의 저택으로 향하였다. 이윽고 날이 저물자, 영태후와 효명제는 원옹 저택의 내실(內室)로 들어갔고, 종자들은 아무도 그들을 따라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후 영태후, 효명제와 원옹은 원차를 제거할 계획을 마침내 확정지었다.
정광 6년(525년) 2월 23일[5], 고양왕 원옹이 효명제를 따라 조정에 나아가서 영태후에게 진언하였다.
"신(臣)은 천하의 여러 도적들은 염려되지 않으나, 오로지 원차 한 사람만은 염려됩니다. 어째서 그렇겠습니까? 원차는 금군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 병력이 모두 그에게 속해 있으며, 그 아비는 백만 무리를 이끌면서 수도 서쪽에서 범과 같이 날카롭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고, 그 아우는 도독으로서 삼제(三齊)의 무리를 통솔하고 있습니다. 원차에게 반역할 마음이 없다면 괜찮겠으나, 만약 그가 그러한 마음을 먹는다면 성스러운 조정에서는 장차 어떻게 이를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원차가 설령 반역하지 않는다 말하더라도, 그 마음까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신(臣)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영태후가 말했다."그 말이 옳다. 원랑(元郎)이 만약 조정에 충성스럽고 반항의 마음이 없다면, 어찌하여 영군장군 직책을 떠나서 다른 관직에 올라 보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원차는 이를 듣고 매우 두려워하며, 관을 벗고 해직을 구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원차를 표기대장군•의동삼사•상서령•시중으로 삼아 그의 병권을 빼앗았다. 원차는 비록 병권을 잃었지만, 여전히 내외의 일을 총괄하였고, 아직까지는 그를 파면하거나 폐출할 명분은 전혀 없었다.정광 6년(525년) 4월 17일[6], 원차가 또다시 바깥으로 놀러 나가자, 조정에서는 그를 바로 면직시켰다. 다음날 아침에 원차가 다시 황궁에 들어가고자 했으나, 문지기가 그를 받아주지 않았고, 얼마 뒤에 그의 이름은 제명되어 일반 백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얼마 뒤, 영태후가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유등과 원차는 전에 짐에게 철권(鐵券)을 요구하며 '불사(不死)'를 구하였으나, 짐은 이를 주지 않았다."
그러자 중서사인 한자희(韓子熙)가 나아가 말했다."죽고 사는 것이 걸린 일인데, 어찌 여부를 따지십니까? 폐하께서 이전에는 철권을 주지 않으셨으면서, 어찌하여 오늘날에는 죽이지 않으십니까?"
영태후는 이를 듣고 속으로 옳다 여겼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누군가가 원차가 그 아우 원조(元爪)[7]가 모반을 한다 고변하였다. 그 자는 원차가 그의 사촌동생 원홍업(元洪業)을 파견해 여섯 개의 진(鎭)을 거느리고 내려가 정주(定州)에서 반란하게 하고, 또 다른 이로 하여금 구노양(勾魯陽)의 여러 이민족들을 이끌고 이궐(伊闕)을 침공하게 할 계획이라 전하였다. 여기에 덧붙여서 원차 형제는 군현을 공격하고 마을과 성곽을 불태워 내외로 호응할 계획이라 고하였다. 원차의 반란 모의 소식이 들려오고 나서 며칠이 지났을 무렵, 영태후는 원차가 손수 쓴 서신을 입수하였으나, 자신의 여동생과의 관계 때문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이에 황문시랑 이염(李琰)이 나아가 말했다."원차의 죄가 멀고 가까운 곳에 널리 알려졌는데, 어찌 지체하여 보고 들은 자들을 미혹되게 하려 하십니까?"
이때 황문 서흘(徐紇)도 나아가 간하려 했지만, 망설이며 감히 나아가지 못하였다. 결국 효명제가 나서서 영태후에게 원차를 죽이라 설득했고, 영태후는 마지못해 이를 따랐다. 효창 2년(526년) 3월 20일[8], 원차와 원조는 모두 자택에서 사사당했다. 향년 41세. 원차 사후, 영태후는 직접 조문하여 곡하였으며, 그가 자신의 매부라는 이유로 그를 사지절•시중•표기대장군•의동삼사•상서령•기주자사(冀州刺史)로 추증하고, 강양왕(江陽王)으로 추봉해주었다. 시호는 '경소(景昭)'.
원차의 아들 평원공 원량은 훗날 그의 할아버지 원계의 강양왕 작위를 물려받았으나, 동위가 멸망하고 북제가 들어설 때 작위가 강등되었다.
원차의 서장자 원치서(元稚舒)는 북위에서 비서랑중(秘書郎中)을 지내다가, 원차가 사사당했을 때 양나라로 도망쳤다.
[1]
또는 '예(乂)'.
[2]
고대 중국에서 나이가 15세 이른 여성은 약계(弱笄)라는 비녀를 꽂았다.
[3]
경자년 갑신월 병자일. 음력으로는 7월 4일이고, 양력으로 8월 3일이다.
[4]
음식물을 나르는 데 쓰이는 수레
[5]
을사년 기묘월 무술일. 음력으로는 2월 23일이고, 양력으로 4월 1일이다.
[6]
을사년 신사월 신묘일. 음력으로는 4월 17일이고, 양력으로 5월 24일이다.
[7]
자는 경옹(景邕). 당시 급사중을 지내고 있었다.
[8]
병오년 임진월 기미일. 음력으로는 3월 20일이고, 양력으로 4월 17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