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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3-16 23:06:42

노백린


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
파일:건국훈장대통령장약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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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백린(盧伯麟)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B%85%B8%EB%B0%B1%EB%A6%B0.jpg
1875년 ~ 1926년
복무 일본군
대한제국군
기간 1900년 ~ 1910년
임관 일본육군사관학교 11기
최종계급 대한제국군 정령
최종보직 군부 교육국장
1. 개요2. 생애3. 대중 매체에서4.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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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이다. 대한제국군에서 대령까지 근무했다. 본관은 풍천(豊川). # 호는 계원(桂園).

2. 생애

1875년 황해도 송화군 풍해면 성상리 #에서 유생 노병균(盧秉均)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종교는 개신교.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뽑혀 경응의숙 보통과를 수료하고 세이조(成城)학교 예비과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어담도 당시에 동기로 같이 공부했는데 두 사람의 생애는 매우 달랐다. 다른 동기로는 윤치성, 김관현 등이 있다. 1899년 11월에 일본군 견습사관이 되었고 1900년에 일본군 소위로 임관했다. 당시에는 한국의 교육시설이 변변찮아 엘리트를 일본의 사관학교에 보내 공부시켰는데 그탓에 일본에서 일단 임관한 다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재임관했다.

1900년 대한제국군으로 복귀해 보병참위(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후에 육군무관학교, 육군연성학교[1]의 교관을 지냈다. 정위(대위)로 근무할 당시에 러일전쟁을 겪었고 관전사란 직책으로 일본군을 따라 종군하였다. 귀국 후에 정령(대령)까지 진급하여 육군무관학교장, 헌병대장, 육군연성학교장 등을 지냈다.

당시의 군인들은 일본에서 공부한 친일파가 많았지만 그는 을사조약과 군대 해산 등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래서 진급에서 제외됐고 1907년에 신민회 조직에 참여했다. 1907년에 군이 해산되자 육군연성학교장에서 물러나고 국방부 역할이었던 군부의 교육국장으로 배속되었다. 당시 한국군에 남은 부대는 조선보병대 조선기병대 정도가 고작이었고 이들은 실질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부대가 아닌 의장용 부대였다. 한일합방이 이뤄지자 그는 관직에서 물러났다. 최종계급은 대한제국군 정령(대령)이었다.

퇴역 후에는 교육계몽 운동 등 독립운동을 펼쳤고 김구와 접촉하기도 했고 사업을 하기도 했으나 사업은 당시 돈으로 10만원을 잃는 등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1914년에 미국 캘리포니아로 망명했고 항공학교를 세웠다. 그 후 하와이에서 국민군단 교관을 지냈다. 시대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항공전력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공군력의 확보, 육성을 강조했다. 이 점에서 노백린은 최용덕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 공군의 창건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후 임시정부에 참여해 활동한 그는 군무총장 등을 지냈으나 당시 임정 활동은 극도로 어려웠고, 그도 1926년에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1962년에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1993년 박은식, 신규식 등과 함께 국내 운구가 결정되어 중국에서 유해가 이송,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자녀인 노선경(盧善敬)[2] 노태준[3], 노순경(盧順敬)[4]도 독립운동에 참여한 독립유공자다.

공단기의 한국사 강사인 신영식의 외증조부다. 2019년 4월 22일 신영식 강사가 난공불락 유튜브에 출연해서 노백린의 차남인 노태준의 외손자라고 직접 밝혔다.[5]

3. 대중 매체에서

독립운동가들 중에서도 공군 전력 양성이라는 특이한 분야에 힘쓴 인물이기 때문에 개화기, 구한말, 일제강점기 및 그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체역사물에서 '공군참모총장=노백린'은 상당히 강한 공식이다. 아니면 중국에서 활동한 비행사 안창남을 부활(?)시키거나.

4. 가족관계

아버지 : 노병균(盧秉均)
어머니 :
형 2명
부인
딸 : 노숙경
외손녀 : 이인영(1924년 - )
외손녀 : 이인옥(1927년 - )
아들 : 노선경(盧善敬, 1893년 - 1993년 11월 13일)
손자 : 노영탁
손자 : 노영훈(盧榮勳, 1938년 - )
딸 : 노순경(1902년 - 1979년)
아들 : 노태준(盧泰俊, 1911년 2월 17일 - 1970년 2월 26일, 호는 무웅(無雄), 다른 이름은 노아경(盧亞敬), 독립운동가)
손자 : 노천민(盧天民, 1948년 - )
[1] 사관생도를 교육하던 무관학교와 달리 위관급 장교 영관급 장교의 보수교육기관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육군대학. [2] 숭실학교 재학 중 조선국민회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이후 신흥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독립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3] 한국 광복군에서 복무했다. [4] 1919년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으로 있으면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가 체포당하여 옥고를 치렀다. [5]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IZkuQx4Tj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