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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01:09:01

김(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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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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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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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한국의 金씨
2.1. 신라 계열
2.1.1. 족보 신뢰성 문제2.1.2. 김알지 계열2.1.3. 경순왕 계열2.1.4. 세계 미고
2.2. 가야 계열2.3. 사성 계열
3. 중국4. 미국5. 일본6. 한자 읽는 법7. 오해와 진실8. 로마자 표기9. 지역별 분포10. 성이 김씨인 인물11. 기타

1.

<colbgcolor=#dddddd,#222> 로마자 표기
RR식 표기 Gim
MR식 표기 Kim
통용 표기
김(金)씨는 중국, 대만 등을 포함한 중화권과 대한민국에 분포된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성씨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에서는 21.51%가 사용하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성씨로 경상북도 성주군과 경북 북부 일부지역 동네정도만 근소한 차이로 김씨가 이씨보다 적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김씨는 무려 10,689,959명으로 1069만여 명에 달했으며,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인구주택총조사 때 조사된 총 인구가 51,069,375명이므로 김씨가 우리나라 전체의 약 20.93%를 차지한다는 말인데,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 사람 5명 중 1명이 김씨인 셈이다. 이씨(李氏) 또한 약 14.3%로 10%를 월등히 넘으며 그 다음인 박씨(朴氏)는 약 8.2% 정도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특정 성씨가 전체 인구에서 1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로 베트남이 있는데, 1위인 응우옌(阮, Nguyễn) 성씨를 가진 사람이 전체 인구의 40% 조금 안된다. 2위인 Trần(陳, 쩐)이 11%, 3위 Lê(黎, 레)가 10%로 1위와 2위 간의 격차가 무려 30%p 이상이다. 베트남 이외에는 사실상 전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한국에는 김씨가 압도적으로 많다.

金씨는 본래 기원전 한나라때 중국에서 제일 먼저 생겨난 성씨이다. 무제가 흉노 출신 포로에게 金씨를 하사했는데 그가 바로 신라 금석문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김일제이다. 심지어 그보다 더 이전에 이미 무제의 어머니인 효경황후 왕씨의 전남편 이름이 한족 김왕손(金王孫)이었기 때문에 세계 최초의 金씨는 기원전 중국 한나라 무제 이전부터 이미 등장한 것이다.

지금은 중국보다 인구 대비 비율로 한국에서 더 흔해진 성씨가 됐다.

중국어에서는 金을 jin으로 발음한다. 예를 들어 순수 중화권 배우인 포청천 금초군도 중국 발음으로는 진차오췬이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성씨이다보니, 한국어가 유창한 외국인이 있으면 김씨를 붙이기도 한다. 김민니, 김사나, 김츠키, 김레이가 그 예시.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이지만 어째서인지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서브컬쳐 창작물 계열에서는 보기 드문 성씨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특색이 없는 성씨다 보니 배제당하는 경우가 없잖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이름들을 무작위로 뽑아 가나다순으로 나열했을 때[1], 1번이 될 수 있는 마지노선의 성씨다. 김씨가 매우 흔하기 때문이며, 앞의 성씨들도 다소 많은 성씨들도 있지만 전체 비율로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제주도는 강씨와 고씨가 매우 흔하기 때문에 고씨가 1번의 마지노선이고, 김씨가 1번이 되는 이유는 거의 없다.

2. 한국의 金씨

통일신라 때까지는 신라계로 분류되는 김씨와 가야계로 분류되는 신(新) 김씨 둘로만 구분되었다. 이후 신라가 망하고 본관 개념이 생겨나면서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김씨와 신 김씨들이 자기들의 기원인 경주, 김해와 함께 세거지를 본관으로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2.1. 신라 계열

신라 계열 김씨는 김알지에서 유래되었다. 고려 때까지는 신라 왕실의 성씨라고 하여 대개 신라종성(新羅宗姓) 또는 신라왕손(新羅王孫)이라고 부르다가, 여말선초에 이르러 각자의 세거지를 기반으로 본관이 분화되어 《 삼국사기》 · 《 삼국유사》 · 《김씨분관록(金氏分貫錄)》 · 《증보문헌비고》 · 《조선씨족통보》등의 역사 문헌(文獻)에 50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중 본관 시조가 뚜렷한 것은 100여 본이다.

2.1.1. 족보 신뢰성 문제

그런데 조선 후기 신분제 변화가 일어나며 족보 위조 현상이 심화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김씨가 신라 골품제의 정점에 있으면서 자손이 번영하여 원래도 그 수가 의외로 많고 계통도 다양했을 뿐만 아니라, 고려 왕조 대에 전 왕조 후손에 대한 군역·부역 면제를 비롯한 특전을 노리고 이를 기화(奇貨)로 보계(譜系)를 위조한 이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 중기에만 이르러도 이미 김씨의 숫자가 다른 성씨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졌고 계통도 어지러웠으므로 족보 편입이나 위조가 편리했던 것이다.

이러한 보계(譜系) 위조 현상은 일제강점기 1930년대 들어 극에 달한다. 족보를 우후죽순 발간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조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시호와 군호를 붙여 미화하고 상계를 경순왕 대까지 끌어 올려 표기한 경우가 만연했다.

조선 초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문중의 많은 자료가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 전의 조상들의 기록이 자세히 남아있으니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조선시대는 반상(班常)의 구별이 엄격하여 상인(常人) 계층은 족보 제작을 엄두도 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설사 만든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와 같은 위보(僞譜)를 판별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배우자나 행적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이 그저 막연하게 조상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에다 1세(一世), 2세(二世)니 하는 대수(代數)만 표기해 놓았거나, 무슨 높은 벼슬을 하였다고 하면서 어느 왕 때에 임명되었는지 출처는 없거나, 또 벼슬 이름이 실재했던 벼슬 이름과 전혀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 등 겉은 화려하지만 그 내용은 엉망진창이라면 그 족보는 의심해 봐야 한다.

심지어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 마의태자 직계 후손으로 기록해 놓은 족보도 있다. 김부식은 다름아닌 증조부 김위영이 경순왕과 동시대의 인물이므로 마의태자는 물론 경순왕의 후손도 될 수 없다. 김부식이 마의태자의 직계 후손이었다면 마의태자의 본명과 구체적인 행적, 부인과 아들들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나 《삼국사기》를 비롯한 문헌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이러한 족보 역시 위보(僞譜)라 할 것이다.

보학을 조금만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이와 같은 족보들이 엉터리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유명 문중에서는 자신들의 조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위조된 내용들은 모두 배척하고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기록하는 추세이다.

2.1.2. 김알지 계열

2.1.3. 경순왕 계열

2.1.4. 세계 미고

2.2. 가야 계열

가야 계열 김씨에는 4개 본관 외에 수많은 본관이 존재함.

2.3. 사성 계열

3. 중국

金씨가 기원한 나라답게 중국에도 현재 金씨가 있다. 수천개의 중국 성씨중 순위로 62위이다.(470만명으로 62위). 한족이 거의 대부분이나 만주족[31], 조선족 출신도 있으며 정묘호란이나 병자호란 때 끌려온 조선인 포로의 후손들 중에도 金씨인 사람들이 있다. 중화권에는 琻을 쓰는 김씨도 있다. 발음은 표준어식으로 진(Jīn)이거나 광동식으로 '깜'이다.

4. 미국

미국에서도 한국에 김씨가 많은 점을 재미있게 보기도 한다. 급기야 평창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컬링팀의 인원이 전부 김씨라서 외국인들은 가족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김경애 김영미는 실제 자매가 맞긴 하지만...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도 언급된다.

동양계가 아닌 서양인의 이름에도 'Kim'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Kim'은 성씨가 아니라 이름이다. 남자와 여자 이름에 모두 쓰인다. Kimberly, Kimberley, Kimball, Joakim 등의 약칭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King)을 중국어로 음역할 때 金으로 쓴다. 예를 들면 마틴 루터 킹(马丁·路德·金).

5. 일본

일본에는 金이라 쓰고 'こん' 이나 'きん'으로 읽는 성씨가 있는데 한국과는 반대로 희귀한 성씨이다. 도호쿠 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실제 인물로 1960년대 후반에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뛰었던 金博昭(콘 히로아키)라는 야구선수 등이 있다. 이 사람은 재일 중국인 재일 한국인도 아닌 순수 일본인이다.

6. 한자 읽는 법

쇠 금(金) 자는 성씨로 쓰일 때와 지명으로 쓰일 때( 김포시, 김천시[32], 김해시, 김제시, 김화군, 김녕리( 제주시 구좌읍) 등)만 '김'(金)으로 읽는다. 다만, 지명의 金을 전부 '김'으로 읽는 것은 아니다. 금정구(金井區), 금천군(金川郡), 금호동(金湖洞), 금곡동(金谷洞), 금성면(金城面) 등 원음인 ''으로 읽는 지명도 많다. 김화군의 경우에는 1950년대까지는 '금화군'이라고 읽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현재는 '김화군'으로 바뀐 케이스다.[33]

지명으로 쓰일 때도 '김'이라고 읽는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데 비롯한 오해가 있다. '원래 성씨로 쓸 때도 금이라고 읽었으나 조선이 들어선 이후에, 오행 사상에 의하면 김 씨의 ()가 이() 씨의 나무()를 누른다 하여 김 씨로 바꿔 부르게 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설이다..해당 설은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권인한 교수에 따르면 근거 없는 설이라고 한다( 김 씨 연원에 대한 설). 위 연구에 의하면 한자 전래 당시 신라~고려 초까지의 한자음으로는 /*kəm/, 즉 '금'이나 '검'에 가까운 발음이었다고 한다.[34][35]

하지만 이기문 학자는 권인한 교수의 주장이 근거가 적은 추측이라 얘기한다. 객가어에 남아있는 한자음과 고대 한자음이 많이 남아있는 베트남어를 보고 신라, 고려 때에도 'Gim'으로도 읽혔다고 주장한다. 13세기 주석서 석일본기에서 신라인 인명에 포함된 해당 한자음을 일관되게 '코무(コム)' 혹은 '콘(コン)'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불분명한 것이 신라인 인명이 '키미'(キミ)도 많기 때문이다. 이후 당나라가 이민족들에게 멸망한 전후해 중국에서 큰 음운변화가 일어났다고 추측한다. 이 격변기 전과 후의 한자음을 모두 반영한 일본식 한자 독음에서는 金을 오음으로 '콘(こん)', 한음으로 '킨(きん)'이라고 읽는다.

권인한 교수에 의하면 몽골이 중국을 정복한 이후 한족이 쓰는 한자어 자체에 큰 격변이 일어났고 "곰" ,"금" 발음이 원나라 때 "김"으로 바꼈다고 추측하나 이것도 추측일 뿐이다. 확실히 한자음은 선비족, 여진족 그리고 몽골족이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를 하였고 특히 몽골이 중국을 유린하면서 한족 사회의 언어 형태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고 한자 또한 많은 변형을 한 것은 사실이나 표음 문자가 아닌 한자에서 확실히 중세 한자음이 어떻게 바꼈는지는 추측에 불과하며 권인한 교수가 주장하는 것에 근거는 해당 시기에 일본에서 "킨"(きん) 발음을 자주 썼기 때문에 원나라 이후 발음이 바꼈다고 추측하는 것 뿐이다.

권인한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주장을 반대한 언어학자 이기문은 옛날 한자 발음이 남아있는 객가어에 '金'자가 'GIM' 으로 읽히는 것을 보고 원래 '金'자는 'gim' 또는 'kəm' 둘다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일부 방언 사용 지역에서 金 자를 김이라고 읽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객가어에서 이 글자 발음이 gim이다. 표기법에 따라 kim으로 쓸 수도 있다.《 R.O.D TV판에서 김 선생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여기서의 김 선생은 홍콩인. 광둥어로는 gam으로 읽는다. 뭐 홍콩에 객가인이 아예 안 사는 것은 아니지만.... 베트남에서는 金 자를 낌이라고 읽는다. 캄보디아에도 킴이라는 성씨가 있지만 한자는 다르다. 쇠 금이 아니라 가슴걸이 근(靳)이다.

金씨 성을 갖는 중국인의 이름을 '김'으로 읽을지 '금'으로 읽을지 혼란이 있다. 신해혁명 이후의 인물은 현지음 원칙에 따라 진(병음 Jīn)으로 읽으면 되겠지만 잘 안 지켜진다. 무협작가 김용(金庸)처럼 굳어진 예도 있는 거 보면. 예컨대 초의 문인 金聖歎은 '김성탄' 혹은 '금성탄'으로 표기된다.

통명을 쓰는 재일 한국인의 경우에 김씨들은 가네다(金田)나 가네무라(金村), 가네바야시(金林), 가네시로(金城) 같은 기존 일본 성씨를 많이 차용해서 쓰는 편이지만 이들 성씨는 재일 교포가 아닌 일본인의 인구가 훨씬 많다.

7. 오해와 진실

큰 오해가 있는데 특정 성씨에 인구가 쏠리다보니 김씨라고 해서 다 상놈의 후손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울산 김씨, (신) 안동 김씨, 청풍 김씨같은 경우는 100% 순수 양반가이고 족보 위조가 금지된 성씨다. 무과, 문과 급제자가 다수 배출되었지만 인구가 극소수로 남아 있는 명문가인 것이다. 조선 시대에 몰살을 당한 개성 왕씨같은 성씨만큼 희귀한 성씨들이다. 즉 울산 김씨, (신) 안동 김씨, 청풍 김씨 후손은 순수 혈통 양반 후손이라는 것.

8. 로마자 표기

라틴 문자로 표기할 때는 99% Kim으로 쓴다.

종종 Gim(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표기) 또는 Gym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쓰면 영어권에서나 로망스어권에서는 '짐'이라고 읽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Keem이나 Keehm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Ghim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음운론적으로는 한글 자음 중에서 , , , 은 어두에서 무성음이다. 어두에서 ㄱ은 [k], ㄷ은 [t], ㅂ은 [p], ㅈ은 [tɕ] 소리가 난다는 것. 즉, 김은 국제음성기호를 쓰면 [kim]으로 표기되고,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서 이를 반영해 Kim으로 표기한 것이다. 한때 대구 부산을 Taegu와 Pusan으로 썼던 것도 이에 근거한 것이다.

9. 지역별 분포

2015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주로 강원 영동, 경상도 북부 및 동해안, 전라도 남서부, 제주도에서 높은 비율로 발견할 수 있는 성씨라고 한다. 이들 지역은 평균적으로 인구의 25% 이상이 김(金)씨인 곳으로, 전국의 김(金)씨 비율인 21.51%보다 상당히 많은 김(金)씨가 분포하고 있다. 수도권, 충청도, 강원 영서에 많은 이(李)씨와 상반된 분포를 보이는 특징도 있다.

김(金)씨가 가장 많이 분포하는 지역은 전라남도 장흥군으로, 무려 인구의 30.15%가 김(金)씨다. 그 뒤를 강원도 삼척시(29.64%), 경상북도 의성군(28.86%), 강원도 양양군(28.56%), 강원도 동해시(28.41%)가 이었다. 반대로 김(金)씨가 가장 적게 분포하는 지역은 경상남도 합천군으로, 고작 인구의 18.38%만이 김(金)씨다. 그 뒤를 경상남도 함안군(18.93%), 경상남도 산청군(18.98%), 인천광역시 강화군(19.15%), 경기도 하남시(19.19%)가 이었다.

경상북도 성주군은 김(金)씨가 인구의 21.08%로 전국과 유사한 분포를 보이지만, 이(李)씨가 이보다 0.41% 많은 21.49%를 보여서 근소한 차이로 김(金)씨는 지역 2위 성씨가 되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김(金)씨가 1위가 아닌 지역인 셈이다.

본관별로 따지면 김해 김씨 전라남도 신안군 완도군, 경상남도 통영시 등 전라도 남서부, 경남 남부에 많이 분포하고, 경상북도 영주시, 봉화군, 청송군 등 경북 북부에 적게 분포한다. 경주 김씨 충청북도 보은군, 강원도 양양군 등 중부지방에 많이 분포하고, 전라남도 신안군, 무안군, 나주시 등 전라도 남서부에 적게 분포한다.

10. 성이 김씨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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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타



[1] 초중고교에서 한 반의 학생들의 출석번호를 정하는 경우가 대표적. [2] 〈김자류 묘지명〉에는 신라왕의 후예라 한다. 조선조 말에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근거로 파조가 경순왕 3자로 추정되는 영분공 '김명종'이라 함 [3] 조선조 말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근거로 파조가 경순왕 4자로 추정되는 대안군 '김은열'(金殷說)이라 함 [4] 헌강왕의 후예라 한다. 혹칭 경순왕 후예라고도 한다. [5] 경순왕의 후예라 한다. [6] 원성왕 후예라 한다. 혹칭 경순왕 후예라고도 한다. [7] 신라 종성으로 김알지의 후예라 한다. 혹칭 경순왕 후예라고도 한다. [8] 혹칭 경순왕 후예라 한다. [9] 혹칭 경순왕 후예라 한다. [10] 《고려사》에 고려에 귀화한 호인(胡人. 여진족)으로 본명은 김야열가(金也列哥)라 한다. [11] 경순왕의 후예라 한다. 일설에 조선조 말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에 나타나는 경순왕의 4자로 추정되는 대안군 김은열(金殷說)의 12세손이라 한다. [사용] 김천손(金千孫) 일파, 시랑 김혁여(金奕與) 일파 [13] 김흥광(金興光) 후예 [14] 김흥광(金興光) 후예 [15] 《증보문헌비고》에 시조 김운발의 아버지는 경순왕의 계자라 함. 또는 조선조 말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근거로 시조 김운발의 아버지가 경순왕 2자로 추정되는 '김굉'(金鍠. 또는 '김황'(金湟))이라 함 [16] 조선조 말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근거로 시조가 경순왕 4자로 추정되는 김은열(金殷說)의 7대손이라 함 [17] 조선조 말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근거로 시조가 경순왕 4자로 추정되는 김은열(金殷說)의 11대손이라 함 [18] 조선조 말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근거로 시조를 경순왕 5자로 추정되는 의성군 '김석'(金錫)이라 함 [19] 조선조 말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근거로 시조를 경순왕 7자로 추정되는 언양군 '김선'(金鐥)이라 함 [20] 조선조 말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근거로 시조를 경순왕 8자로 추정되는 삼척군 '김추'(金錘)라 함. 또는 경순왕의 손자 실직군왕 김위옹(金渭翁)이라 함 [21] (후)김해김씨는 경순왕의 4자 로 추정되는 김은열의 3자 김해군 김렴(金濂)의 후예라 함 [22] 또는 상산 김씨와 같은 후예라함 [23] 최근 들어 조선조 말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근거로 시조가 경순왕 1자로 추정되는 '김일(金鎰)'이라 함. 또 김일(金鎰)은 마의태자의 이름이라 함. 그러나 역사에는 마의태자의 이름은 실명으로 전하지 않음 [24] 일설에 시조가 시랑 김봉모 아들 평장사 김태서라 한다. [25] 유명인으로 김일성, 김정일 등이 있다. [26] 김방경(金方慶) 후예 [27]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 대신 왕의 수레를 타고 죽어 왕건이 지묘사를 세워 그를 기렸으며, 일가에게 당악( 평안남도 중화군의 옛 지명)을 식읍으로 내려 후손들이 당악을 관향으로 삼았다. 당악은 중화의 옛지명 이다. 문성왕의 5세손이라 한다. [28] 당악 김씨 시조 김락의 동생 [29] 혹칭 가락 김씨. 가락국은 가야의 다른 말이며 가락국을 따서 혹칭 본관(本貫)이 정해짐. 지명 가락동을 가지고 가락 김씨인 것이 아님. [30] 경북 청도군 각남면 함박리 [31] 청나라의 황족이던 아이신기오로 가문의 수장 역시 현재는 金씨로 개명했다고 한다. [32] 금으로 읽는다면 금천시가 되어서 금천군이 시 승격을 한다면 같게 된다. [33] 반면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김화군에 흡수된 금성군은 면으로 바뀐 이후로도 계속 '금성면'을 사용한다. [34] 일본어의 オ행은 상대 특수 가나 표기법에 의하면 乙류로 /*ə/이다. [35] 한국 한자음에서 중뉴B를 옮길 때 'ㅡ'도 있지만 드물게 'ㅓ' 꼴도 존재한다. [36] 김승규, 김진수, 김영권, 김민재, 김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