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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23:56:06

국가 무신론

1. 개요2. 세속주의와의 차이점3. 역사
3.1. 근대3.2. 냉전 이전3.3. 냉전 시대3.4. 냉전 이후
4. 대중매체5. 외부 링크6. 어록7. 관련 문서

1. 개요

국가 무신론( , state atheism)은 국가 차원에서 무신론을 추구하고 국민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는 에베르파와 같은 급진적 자유주의 반교권주의 마르크스주의와 연관되었다.

2. 세속주의와의 차이점

국가가 무신론이라는 특정한 사상을 옹호하는 것이므로 중립적 세속주의 정교분리와는 구별되며 국가 차원에서 교황의 교권 행사를 제한하는 '반교권주의'(anti-clericalism)와도 다르다. 그러나 세속주의에 속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튀르키예의 케말주의나 프랑스[1] 라이시테 등은 공적 장소에서 종교와 관련된 상징을 드러내거나 종교 행위를 하지 못하게 했지만 종교활동 자체는 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속주의는 종교뿐 아니라 무신론을 포함한 비종교적 철학이나 사상에 대해서도 방어적 입장을 취한다. 실제로 튀르키예는 정부 차원에서 히잡을 쓰지 못하게 하는 등 매우 강력하게 세속주의를 추구했지만 일반 국민들은 대부분 무슬림으로 서구식 무신론자들에게 매우 적대적이다.

3. 역사

3.1. 근대

국가 무신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에서였다. 혁명정부의 지도자인 로베스피에르는 반교권주의 및 세속주의에 기울어져 있었으나, 무신론을 국교로 내세우지는 않았는데 에베르파 같은 일부 극좌 정당에서는 국가 무신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후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집권한 지롱드당은 직접적인 교회탄압을 중지하였다.

3.2. 냉전 이전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내전기에 러시아 정교회는 백군파의 편을 들었고 점차 백군이 수세에 몰리게 되면서 군사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무방비해진 정교회의 여러 종교 시설들은 볼셰비키 적군에 의한 초법적 테러, 그리고 재산 몰수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지만 한편으로 러시아 제국 시절 러시아 정교회를 사실상 통치했던 신성종무청이 폐지되면서 다시금 대주교를 선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소련이 건국되었고 1929년 소련 공산당은 종교의 자유뿐 아니라 반종교 선전의 자유 역시 중요하다고 말하며 내전과 레닌 시기 종교에 대한 초법적 대응의 형태가 아닌 러시아 시민 사회의 의지를 명목으로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무신론화에 중점을 두었고 이를 부추길 '전투적 무신론자 연맹' 같은 기관들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특히 이 자리에선 여느 소련의 일들이 그러했듯 이오시프 스탈린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록 가난에 의한 선택이었을지언정 신학생 출신이었던 만큼 종교와 교회들의 작동 원리에 대해 잘 알았고 러시아 제국 시절 러시아인들이 가졌던 맹목적인 믿음을 어떻게 한다면 공산당에 대한 믿음으로 돌릴 수 있는 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이를 행했다.

정교회를 비롯한 여러 종교 조직들은 이후 공산당에 의해 헌금을 비롯한 여러 경제적 수단들이 제한되자 자체적으로 촛대 등을 만들어 팔아 교회의 유지수단으로 삼았는데 공산당이 직접 이에 대하여 시민들을 선동해 판매실적을 악화시키거나 하는 등의 행보도 이어나갔다.

그러나 잠시 그런 정교회에게도 숨통이 트이게 될 날이 왔는데 바로 제2차 세계 대전이었다. 2차 대전 당시 소련은 모스크바 앞마당까지 독일군에게 밀렸고 점차 절박해진 소련의 전쟁 프로파간다는 좌우의 경계가 없이 그동안 소련에서 터부시되고 탄압되던 민족주의, 종교, 애국주의 등을 통한 선전도 사용했다. 이때 스탈린도 종교적 선동에 기꺼이 동참하였으며 심지어는 당시 모스크바에서 거주하던 성녀 마트로나 니코노바와 만나는 이콘까지 그려졌다.

3.3. 냉전 시대

무신론을 통해서 공산주의로, 종교와의 전쟁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산하 전투적 무신론자 연맹(Союз воинствующих безбожников)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되고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스탈린 격하 정책을 펼친 니키타 흐루쇼프는 스탈린 격하 정책의 일환으로 다시 종교 탄압을 실시하기 시작한다. 동구권 제2세계 국가들도 소련과 비슷한 종교 정책을 폈다.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엔베르 호자 적도 기니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는 아예 대놓고 '무신론 국가'를 선포해 종교인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호자는 테레사 수녀의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그가 고국 알바니아에 입국하려고 하자 "종교를 버려야 방문을 허가하겠다"고 하였을 정도였는데 비난이 거세지자 종교를 버려야 출국이 가능하도록 슬쩍 바꿨다. 그나마 호자는 원칙에 충실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응게마는 대놓고 마시아스 응게마 외에 신은 없다 프로파간다 문구까지 만들었다.

국가 무신론은 공산당 일당독재와 더불어 거의 모든 제2세계 국가들이 실시한 정책이었다. 북한도 공산주의로서 국가 무신론을 추구하여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나 전통 신앙 가리지 않고 탄압했으며 킬링필드로 악명높은 민주 캄푸치아도 1978년에 아예 "캄보디아에 더 이상 종교는 없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공산권에서 지도자에 대한 '종교적'인 숭배, 즉 우상화는 종교만큼이나 집착하는 수준이었다.

동독의 문화적 숙청처럼 그나마 점잖은 경우도 있었는데 1955년부터 교과서와 공식문서에서 과학, 역사, 문화, 미술, 문학 등에서 종교에 우호적인 내용을 일체 빼버 리고 교육하는 일련의 작업을 말한다. 그나마 타국에 비해선 박해·탄압 수준이 양호했다고는 평가받는다. 물론 그나마 양호했다는 것이지, 공공연한 탄압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소련처럼 교회를 폭파하여 개조하는 등의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라이프치히 대학의 유서깊은 교회 건물을 폭파하고 이름도 칼 마르크스 대학으로 개명한 사례도 있었으며 정권 말기에는 베를린 한복판에 있는 교회를 폭약으로 날려 버리는 일도 벌였다. 동독 지역은 오늘날에도 비종교 비율이 높다. #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체코 동독과 비슷한 종교정책이 취해졌고 민주화 이후에도 비종교인 인구 비율이 높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동독 지역은 무종교 비율이 75%지만 반대로 서독 지역은 25%로 전체 평균 33%와 큰 차이가 난다.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유럽에서 무종교 비율이 높은 나라들은 대개 20세기에 공산주의를 겪은 동유럽 국가들이다.

3.4. 냉전 이후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은 냉전 종식 이후 서구 민주주의 헌법을 채택하고 러시아와 같이 민주주의가 완전히 보장되지 못하는 국가들도 형식적인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이런 국가에서는 체제 변환 과정에서 엄청난 혼란에 빠졌던 점 등으로 인해 오히려 종교적인 색채가 과거에 비해 강해지는 변화를 겪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 게이 폭행 등 호모포비아가 강한 것도 이렇게 강해진 기독교적 관점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대표적인 호모포비아 범죄자 막심 마르친케비치는 정교회 사제의 옷을 입고 동성애자를 폭행하기도 하였다. 폴란드, 알바니아, 보스니아 등도 비슷하게 국가 무신론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주화 이후 종교 인구가 다시 증가하고 아예 종교와 정치 혹은 내셔널리즘이 강하게 유착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부정적인 비유를 했고, 공산주의자들은 대체로 무신론자를 표방했다. 그리하여 각국의 공산당에서는 당원이 공개적으로 종교활동을 하는 것은 출당에 해당하는 중징계 사유였다.[2] 종교활동은 탄압이나 규제를 받았다. 다만 국가 무신론을 공개적으로 표방하던 나라는 소련, 알바니아, 캄보디아 정도밖에 없었으며,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은 종교를 탄압하더라도 자신들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서 공개적으로 국가 무신론을 표방하지는 않았다. 북한만 하더라도 종교를 탄압했지만, 종교의 자유를 선전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국가 무신론을 신봉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한 적은 없다. 중국도 마찬가지인데,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이 종교탄압을 자행했으나, 중국 정부 자신들은 홍위병은 정부와 무관한 조직이라고 못박았고, 1980년대 이후에는 교단 차원은 아직도 감시가 활발하지만, 개인적인 종교활동은 별로 터지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가톨릭은 명목상으로는 불법은 아니지만 중국공산당의 승인을 받지 않은 주교는 추방 또는 감금의 대상이고 그 주교가 거행하는 미사는 불법이며 공산당에서 관리하는 관제단체인 중국천주교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의 예배만 합법이다. 이는 주교 성성권과 교도권이 교황에게 전속하는 가톨릭교회 입장에서는 사실상 가톨릭 신앙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과 다름 없었다. 하지만 정부 통제하의 교회에 있는 가톨릭 신자들이 신앙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가톨릭 신도들 자체도 중국 정부 수립 이후에 태어난 신자들이 대부분이라서 2000년대 이후에는 중국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주교들도 교황청과 협의한 이후 합의된 사람을 임명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1950년 삼자애국운동(三自爱国运动)을 제창하고 종교 강령으로 삼았는데 삼자(三自)란 스스로 교회를 다스린다는 '자치(自治)', 경제적인 자립을 의미하는 '자양(自養)', 중국인 스스로 복음을 전파한다는 '자전(自傳)'을 말한다. 당시 정부는 '자전(自傳)'을 빌미로 외국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자치(自治)'를 내세워 종교별 애국회를 설립하였다. 1957년에 정부 주도로 세워진 ' 중국천주교애국회'의 선언문을 보면 애국회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 바티칸은 미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세계를 위하여 일하며 사회주의 제도를 원수로 여긴다. 따라서 바티칸에서 오는 명령은 그것이 정치적인 것인지 종교적인 것인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하며, 종교 형식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그런 명령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애국은 천직이므로 (바티칸을 포함해) 어떤 사람이라도 우리나라를 반대하면 우리도 그를 반대할 것이다."
(출처: 김원철, "애국회, 불가피한 역사적 산물인가?", 평화신문, 2008. 11. 30)

비단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도 1951년 공산당에서 결성한 삼자애국운동(三自爱国运动), 1980년 설립한 중국기독교협회(中國基督敎協會)의 활동만이 합법이며, 당연히 이 단체에 가입하지 못한 외국인이나 외국 선교단체는 선교를 하면 경고 없이 추방당할 수 있다.

마오쩌둥의 비서 후차오무는 승려들의 수를 격감시킨 것을 칭찬하면서 스탈린이 정교회를 쓸어버린 것처럼 해야 한다고 당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홍위병들에 의해 탄압을 받았지만, 하지만 불교는 전통문화와는 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혐중 논객들이 몇개 절만 남기고 폐쇄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중국에 직접 가보면 바로 알겠지만 명산이나 도심지에 아주 많은 절이 널려 있고, 신도들도 건재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대혁명이 진정된 이후에는 노산대불을 필두로 엄청난 규모의 불상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중국은 마오쩌둥 사후 사회가 더 유화적으로 변하면서 불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관대해졌다. 문화대혁명 당시 불교가 일부 탄압받았지만 문화대혁명은 현대 중국 현지에서도 마오쩌둥의 과오로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에서 쓰이는 표현이 공칠과삼이다. 공이 7이고 과가 3인데 과에 해당하는 것이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이고 이 둘은 마오가 잘못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불교가 중국이나 북한의 전통문화나 대부분의 문화유산과 관련이 깊으며 기독교와 같이 서구 제국주의와 관련되었다는 점이 없기 때문에 조금 인식이 낫다. 서구 언론이나 알자지라 등 중동 언론에서 중국에서 티베트 불교 이슬람교가 탄압받는다고 보도가 되는 경우도 많다. 테러리즘과 이어진 이슬람 근본주의와 이어진 이슬람교 종파가 아니면 딱히 탄압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슬람 근본주의와 별반 관계 없는 종파 관련해서도 탄압 사례 역시 보도, 목격되고는 있다. # 다만 중국에는 티베트 불교나 이슬람교 신도들도 꽤 많고 공개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파룬궁처럼 교주를 신격화하는 종교는 극심한 탄압을 받는다. 이는 중국의 역사상 황건적의 난, 홍건적의 난, 백련교도의 난, 태평천국운동과 같이 신격화된 교주가 주도한 종교 반란이 극심한 혼란을 불러 결국 왕조가 교체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매우 경계하는 측면이 강하다.

북한은 1946년 12월 26일 북조선불교도연맹과 북조선불교연합회를 통합한 북조선불교도총연맹을 설립하고 공식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으나 형법을 통해서 성직자의 활동과 종교단체에 대한 기부를 금지하고 토지개혁을 통해 사찰의 재산을 몰수하였으며 승려들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하거나 강제 노역에 처하고 인민자위대에 강제 입대시켰다. 1946년 시점에 1600여명의 승려와 37만명의 신도로 구성되었던 불교도연맹원은 2000년 즈음에 300명의 원로 승려와 가짜 신자 1만명으로 확 줄어들 정도로 가혹한 탄압을 받아서 몰락했다. 주민성분조사사업에서 불교도는 자동적으로 적대계층에 해당하는 38번 성분으로 분류됐다.(천도교 32번, 개신교 37번, 천주교 39번, 유림 40번)

그러다가 재일교포 북송 당시 일본에서 창가학회를 믿고 있던 재일교포들이 들어오면서 북한에서 창가학회 교세가 늘자 김일성은 제국주의 침략 도구가 아닌 순수 종교는 허용된다고 교시하면서 1972년 8월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의 활동을 재개시켰고 1972년 12월 사회주의헌법에서 종교 자유 조항을 포함시켰으며 1986년 12월 세계불교도회의에 북한이 가입했지만 어디까지나 외부에 보여주기용 어용 종교로만 유지하고 있으며 300여명의 남은 승려들도 8.15 광복 이전부터 승려를 하던 노인들과 위장한 당원들이고 이들은 기본적으로 대처승에 머리도 깎지 않고 육식, 오신채를 가리는 일도 없다.

몽골은 공산화 이전 티베트 불교가 매우 강하였는데, 티베트 불교는 몽골의 봉건제와 연결되어 있었고, 몽골내에 지나치게 승려계급이 많았기 때문에 새로 성립된 공산정권은 티베트 불교를 탄압하고 수많은 승려를 환속시켰다. 1944년 헨리 A. 월리스 미국 부통령의 몽골 방문 당시에 월리스가 불교 사원 방문 의사를 타진하자 이미 승려들을 처형하거나 수용소에 넣어 뒀기 때문에 맞이할 승려가 없어서 비밀경찰들이 급히 머리를 깎고 분장해야 할 정도였다.

베트남에서는 헌법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알게 모르게 규제를 받는다. 특히 가톨릭은 통일후 극심한 탄압을 받았는데, 이는 남베트남 지배층이나 공안기관원 상당수가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반투안 추기경 (1928-2002)은 남베트남 대통령인 고딘디엠의 조카였기 때문에 통일 후 반동분자로 몰려 투옥되었고, 석방후인 1988년에는 해외추방되어 이탈리아에서 사망했다. 베트남 공산당은 가톨릭이 프랑스 식민주의의 잔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베트남은 아직도 바티칸과 미수교상태로 있다. 다만 불교에 대해서는 그다지 탄압이 없었다.

이에 반해 공산당 집권을 유지하고 있는 라오스 상좌부 불교를 믿는 불교 대세 국가다. 이는 1947년에 제정된 헌법에 불교가 명시되어 있어서 그러며 다른 종교 말고 오로지 불교만을 인정하는 유일한 나라다. 과거 남예멘에선 이슬람이 비슷한 처지였다.

공산주의 국가 이외에는 1917년 멕시코 혁명 이후 집권한 카예스 정부의 반교권주의 반 가톨릭 정책을 국가 무신론으로 포함시키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 에베르파가 구상한 정치 체제도 국가 무신론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꽤 있다.

이것을 주장하는 정당이 일부 국가에 "무신론자당" 같은 이름으로 존재하으며 대표적으로 미국 국민 무신론자당이 있다. 다만 양당제에 가까운 정치 체제와 기독교 보수주의로 인해 현재까지 큰 영향력은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4. 대중매체

"이산둘라 베로나의 작품은 어둠 속에서는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다. 오직 빛 속에서만 그것의 완전한 잠재력을 내보일 수 있다. 인류도 다르지 않다. 답을 가르쳐주지 못하는, 질식할 것 같은 종교의 그림자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인류는 진정한 광명을 볼 수 있는 것이니라."

"때가 된다면 짐은 이 교회가 낡은 가축 우리로 보일 만큼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제국을 건설할 것이로다."

"그리고 그것이 짐의 바람이다. 신과 미신에 의지하지 않고도 존재하는 인류의 제국. 지구, 즉 테라를 그 중심에 둔, 하나 된 우주를 말이다."
- 황제, 유라이어 올래사이어에게, <마지막 교회(The Last Church)> 中
No Gods Or Kings, Only Man.
신도 왕도 없다. 오직 인간뿐.[3]
- 랩처 등대 안 문구
현실에서도 공산주의 정권 이외에는 거의 볼 수 없는 체제인지라 대중매체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다. 개인이 무신론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국가 자체적으로 무신론을 주장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일단 대표적인 경우로는 엔베르 호자 시절의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처럼 국가 지도자가 매우 강경한 무신론, 반종교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로 바이오쇼크 랩처[4] Warhammer 40,000에서 황제 생존하던 시절의 인류제국이 있다.

황제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종교로부터 오는 순기능보다 인간의 본질로 인해 변질된 종교로 인해 촉발되는 비합리적인 폭력, 분열, 부패, 광기 등으로 인해서 인간 사회가 그 병마에 찌들어 좀먹어 들어가고 동시에 이러한 행위들에서 샘솟아오르는 부정적인 사념이 황제와 인류의 숙적인 카오스 신들을 강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임페리얼 트루스를 통해 과학과 이성을 앞세워 인류를 단련시킴으로써 카오스 신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이를 통해 인류의 영원한 번영을 이끌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경우 지도자가 사망하거나 몰락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종교 국가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호루스 헤러시 이후의 인류제국이다. 랩처도 앤드류 라이언 사후 소피아 램이 스플라이서를 통제하는 수단 중 하나로 종교를 이용한다.

종교극단주의로 인해 세계적으로 큰 피해를 입자 그에 대한 대책으로 종교 민족주의 금지 시킨 UED가 있다.

홈월드 시리즈에서는 북부에서 가장 거대한 두 키스, 시딤과 갈시엔이 이런 불모 행성에 자신들을 살게 한 종교적 이유를 놓고 이단 전쟁(Heresy War)의 발발하여 혼란을 불러오자 보다못한 키스 나발을 필두로 키스 스젯, 키스 소반이 함께하여 이단 전쟁을 종결시키고 이성의 시대(Time of Reason)에 돌입한다. 그리고 이 회개와 억압의 교리는 자연스럽게 카락인들의 마음 속에서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그에 반감을 지닌 갈시엔은 더욱더 극단적이고 광신적인 교리에 빠져 여러 과학 단체나 거점을 습격한다. 우주 진출 이후로는 갈시엔은 카락을 떠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타이단 제국의 공격에 키스 시딤과 함께 전멸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이들이 신으로 모시는 사주크의 정체는 사실 고대인들이 만들어낸 전함이었다.

파이널 판타지 14 갈레말 제국국가가 자체적으로 무신론을 주장한다. 야만신의 특성상 주변에 막대한 양의 에테르를 흡수하는데, 이렇게 되면 대지는 마르고 말미에는 별을 멸망에 이르게 한다. 게다가 소환 방법도 어렵지 않다.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와 대량의 크리스탈만 있으면 누구든 야만신을 소환할 수 있다. 대량의 크리스탈이든 상자 옆에서 길가메시 단 한 사람이 친구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더니 엘키두가 야만신의 형태로 소환됐다. 동주 오사드 대륙은 기도도 필요없고 그쪽은 에테르가 축적된 신기라고 불리는 물건과 대량의 크리스탈만 있으면 소환되며 츠쿠요미가 이렇게 소환된 야만신이다. 이렇다보니 갈레말 제국은 그 어떠한 형태의 종교도 인정하지 않는다.

엘더스크롤 시리즈 드웨머는 자신들의 기술력으로 신급의 존재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기존에 존재하는 신들을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신을 업신여겼다. 1세기 당시 던머족이 쓴 책에 의하면 신을 모독하는 존재였다고 할 정도다. 스카이림 로딩창에 나오는 비벡의 언급에 의하면 신을 모독하는 걸 더 좋아했다고.

닥터후 타임로드들은 과거에는 '피티아'라는 제사장이 다스리는 종교중심(?)의 종족이었으나 라실론, 오메가, 디 아더의 노력으로 피티아를 퇴출시키고 라실론은 '로드 프레지던트(대통령)'가 되어 갈리프레이인들을 다스렸으며 조화의 눈을 사용하여 마법을 소멸시키고 과학과 이성이 중심이 되는 우주로 재편하였다. 이후 문명이 발전하며 종교가 있던 시절을 흑역사로 취급하고 무신론자가 되었다.

에이지 오브 지그마의 듀아딘 세력 카라드론 오버로드는 엔드 타임 당시 왕들과 신들이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에 실망하여 신앙을 버리고 능력주의 사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부를 극단적으로 숭배하는 사회로 변질되고 말았고 다른 듀아딘 세력인 스톰헤드 듀아딘이나 파이어슬레이어 사회에서는 거의 없는 빈부격차가 심각해지고 말았다.

원신에서 언급되는 고대 국가인 켄리아는 작중 존재하여 각자의 신을 믿는 일곱 국가들과 달리 신이 없는 나라를 표방하였고 오로지 인간의 힘만으로 세운 나라[5]였다.

월드 오브 다크니스 테크노크라틱 유니온은 조직의 사상 자체가 신을 포함한 모든 초자연존재들을 부정하며, 그런 존재들을 깡그리 쓸어 버리고 인간만의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그렇지만 타인에게 포교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개인적인 종교의 자유는 인정하고 있다. 굳이 표현하면 무신론과 세속주의가 뒤섞인 형태에 가깝다.

패스파인더 RPG 가룬드 대륙 북서부의 국가 라하둠(Rahadoum)은 본래는 노르고버와 네티스 신앙이 활발했지만 세렌레이 교단이 유입되면서, 종교전쟁이 발발하여 60년 동안 온 나라가 엉망이 되는 바람에, 이후 유일하게 모든 종교를 금지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외국에서 오는 여행자들도 종교적 물품을 반입하거나 설교를 하면 처벌받는다.

SCP 재단/세계관 세계 오컬트 연합은 위의 테크노크라시와 마찬가지로 인류를 수호하기 위해 인류 존속에 위협적이거나 그러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초자연적 존재와 현상을 파괴하는게 목적이며 신들도 파괴대상에 들어간다. 그리고 세계 오컬트 연합의 탄생 계기를 마련한 단체는 셈족의 태양신을 죽였다. LTE: 청산된 위협존재 항목의 LTE-0913-엑스-마키나 참조

5. 외부 링크

6. 어록

이 발언은 당시 진통제로 쓰였던 아편을 의미한다.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마르크스는 아편을 독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부정적이었고 진정한 인민의 행복을 위해 종교라는 환상은 사라져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신을 말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블라디미르 레닌
"종교는 독이다."
마오쩌둥
달라이 라마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전문은 "我很了解你。但宗教當然是毒藥。他有兩個缺點:危害人類和阻礙國家進步。"(나는 당신을 잘 이해했다. 하지만 종교는 당연히 독약이다. 종교는 두 개의 결점을 가지고 있는데, 인류를 해치고 국가의 진보를 방해한다.)
"종교는 비논리적인 원시적 무지이다. 종교 정부만큼 우스꽝스럽고 비극적인 것은 없다."
레프 트로츠키
" 샤리아의 규범과 교회 여성을 상품으로, 남성이 사고 파는 물건으로 취급했다... 부르주아가 노동자를 프롤레타리아트로 만든 것처럼 샤리아, 교회, 봉건제, 야만적인 고대 규범은 여성을 남성의 프롤레타리아트로 환원시켰다."
엔베르 호자

7. 관련 문서


[1] 다만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자코뱅파 주도로 모든 종교행위를 금지하고 '인간의 이성만을 예배'하도록 강제한 역사가 있었는데 이를 공산권식 국가 무신론의 효시로 보기도 한다.( 영어 위키백과, 2차 출처로 검증됨) [2] 하지만 종교가 생활과 이어진 이슬람권이나, 또는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서유럽 공산당은 당원들의 종교활동을 별로 터치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의 공산정권의 수장인 나지불라 대통령은 금요일 예배에 매주 참석했고,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을 보면 가톨릭 신자인 이탈리아 공산당원 이야기가 나온다. [3] 아나키즘을 대표하는 슬로건, No Gods, No Masters에서 따온 것이다. [4] 앤드류 라이언 종교를 혐오했다. [5] 수메르에서 켄리아를 일컫는 명칭으로 사용된 단어인 다흐리(Dahri)는 아랍어 무신론자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