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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15:30:04

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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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아 소피아의 그리스도[1] (데이시스 모자이크) 하기아 소피아의 성모 마리아 ( 쎄오토코스 모자이크)
파일:터키 괴레메.jpg
튀르키예 네브셰히르 도 괴레메 ( 카파도키아)에 남아있는 옛 성당의 11세기 이콘
언어별 명칭
코이네 그리스어 <colbgcolor=#fff,#1c1d1f>Εἰκών (이콘)
현대 그리스어 Εικόνα (이코나)
러시아어 Икона (이코나)
로마자 Icon
루마니아어 Icoană (이코아너)

1. 개요2. 상세3. 정교회에서의 이콘4. 가톨릭과 성공회에서의 이콘5. 대한민국에서의 이콘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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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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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ια εικόνα ισοδυναμεί με χίλιες λέξεις. (A picture speaks with thousand words)
그림 하나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 그리스 속담[2]
정교회 동방 가톨릭 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등의 동방 교회에서 주로 그리는 종교적인 상징물. 원래 이콘은 그림뿐 아니라 다른 예술품도 포함하지만 그림으로만 한정지어 이해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단어의 기원은 중세 그리스어로 '그림', '도상'을 뜻하는 'εικόν' (이콘)에서 유래되었으며 영어에서 사용되는 아이콘의 직접적인 기원이 되었다.

2. 상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접기・펼치기]
>그리스도의 참된 육체

476 ‘말씀’은 참된 인성을 취하시어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육체는 묘사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예수님의 인간적 모습은 “생생하게 그려질” 수 있다. 제7차 세계 공의회에서 교회는 예수님의 인간적 모습을 성화상으로 표현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477 이와 동시에 교회는 예수님의 육체를 통하여 “당신 본성으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인간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항상 인정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육체가 지닌 개별적인 특성들은 하느님 아들의 신적 위격을 표현한다. 인간 육체의 모습을 취하신 그분을 성화상으로 그려 공경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신자들이 그분의 모습을 공경하는 것은 “그 모습 안에 묘사되어 있는 위격을 공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화상

1159 성화와 전례에 쓰이는 성화상(icon)은 주로 그리스도를 그리고 있다.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하느님을 성화상(聖畵像)으로 표현할 수 없었으나,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으로써 성화상의 새로운 ‘경륜’이 열렸다.

전에는 육신도 형체도 갖지 않으신 하느님을 결코 그림으로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시어 사람들 가운데 사신 이후로 이제는 내가 본 하느님을 그릴 수 있습니다. …… 가려지지 않은 그 얼굴에서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1160 그리스도교의 성화상은 성경이 언어로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형상으로 옮긴다. 형상과 언어는 서로를 분명하게 해 준다.

신앙을 간결하게 고백하기 위해서, 우리는 글이나 글 아닌 것으로 변함없이 전해진 교회의 모든 전통을 보존한다. 그 전통 중의 하나가 복음 선포와 부합되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전통이다.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외형적으로가 아니라 참으로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는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그림들은 유용하고 유익한 것이다. 서로를 밝혀 주는 형상과 언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서로 그 의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1161 전례 거행의 모든 표징은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천주의 성모와 성인들의 성화상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성화상들은 그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 구원에 계속 참여하는 “구름처럼 많은 증인들”(히브 12,1)을 보여 주며, 우리는 특히 성사 거행 안에서 이들과 결합된다. 우리 신앙은 이러한 성화상을 통하여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마침내 “하느님의 모습을 닮도록” 변화된 인간과 천사들을 본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완전히 하나가 된 모습이다.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우리 교부들의 가르침과 가톨릭 교회의 전승에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확실하고도 명확하게 결정한다. (교회의 전승은 바로 교회 안에 계시는 성령의 전승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림으로 그려졌거나, 모자이크로 만들어졌거나 또는 다른 적절한 재료로 만들어진 유서 깊고 거룩한 그림들과, 귀중하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상은 하느님의 성당과 제기들과 제의에, 벽과 화판에, 집안과 거리에 모셔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나, 순결하신 우리 주 천주 성모의 성화상이나 거룩한 천사들과 모든 성인들의 성화상도 마찬가지이다.

1162 “성화상의 아름다움과 색채는 나의 기도를 고무시킵니다. 전원 풍경이 나의 마음을 자극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는 것처럼 성화상을 보는 것은 내 눈을 즐겁게 하는 축제와 같습니다.” 성화상을 보는 일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묵상과 전례의 찬미가와 합쳐져, 전례 거행의 표징들과 조화를 이룬다. 그리하여 전례가 기념하는 신비가 마음속에 기억되고, 나아가 신자들의 새로운 생활로 표현된다.
2131 787년 니케아에서 열린 제7차 공의회는 강생하신 ‘말씀’의 신비에 근거하여, 성화상 파괴주의자들에 맞서, 그리스도뿐 아니라 천주의 성모, 천사와 모든 성인의 성화상 공경을 정당화하였다. 하느님의 아들은 인간이 되심으로써 성화상의 새로운 ‘경륜’을 시작하신 것이다.

2132 그리스도교의 성화상 공경은 우상을 금지하는 첫째 계명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성화에 대한 공경은 그 본래의 대상에게 소급되며” “성화를 공경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성화에 그려진 분을 공경하는 것이다.” 성화에 표하는 공경은 존경을 표하는 공경이지 하느님께만 드려야 하는 흠숭이 아니다.

성화를 공경하는 행위는, 성화 그 자체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강생하신 하느님을 알아보게 해 줄 뿐이다. 곧, 성화에 표하는 동작은 성화 그 자체에 표하는 동작이 아니라, 나타내고 있는 분께 표하는 동작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476-477; 1159-1162; 2131-2132항

오늘날 남아있는 이콘으로 추측하건대 그리스도교에서 이콘을 받아들인 것은 초기 공동체 사회로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론 교리나 기초적인 교리가 완성되기 전에도 신자들은 물고기 등 상징물을 그려 왔으며 이교도의 우상숭배를 비판하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같은 사람도 비둘기나 물고기 등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상징적 형상들을 몸에 지니기를 권하는 글을 썼다.[3] 문자를 아는 사람이 적은 고대 로마 시대에 신자가 많아져 신자들을 가르칠 필요성이 절실해지자 가르침을 목적으로 미술과 음악을 많이 사용했다.

정교회에서는 이콘의 기원에 대해 신화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하는데 이콘은 사람의 손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직접 당신의 상을 드러낸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중세의 유명한 전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성녀 베로니카가 땅에 넘어진 그리스도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쓰고 있던 머릿수건을 풀어 그의 피땀을 닦아주었는데 그 수건에 예수의 얼굴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전설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동방 정교회에서 전해오는 〈손으로 그려지지 않은 그리스도의 상〉의 전승은 병에 걸린 에데사의 왕이 예수를 보길 간청하자 직접 갈 수 없었던 예수가 아마포 수건으로 자신의 땀 묻은 얼굴을 닦자 그곳에 상이 맺혔고 그 상을 보자 왕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이야기다. 그리스어로 " 아히로피타"(αχειροποίητα, 손으로 그려지지 않은)라고 불리는 이 이콘은 이외에도 과달루페의 성모의 발현과 관련된 사건에서도 비슷한 기적으로 나타난다. 이 모두가 이콘의 신비성에 대한 교회적 차원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들이다.

좀 더 전문적인 신학의 영역에서 보자면 최상단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내용에도 상세히 설명돼 있듯 오랫동안 성화상 파괴론자들과 키배를 떠 온 정교회 동서대분열 이전의 정교회가 일치되어 있던 상태인 가톨릭교회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이콘을 긍정한다.

구약시대의 하느님은 절대 자신을 내보이지 않았고 모세 같은 사람들 앞에 현현할 때도 '보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한다. 하느님의 광채가 너무나 눈부셔서 사람이 대면하여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모습은 그림으로 그리거나 형상으로 빚을 수 있는 것을 초월한 존재였고, 구약의 하느님은 볼 수 없는 존재이니 형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4]고 명령한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사람들이 보고 만질 수 있는 인간적인 존재로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복음은 구약의 완성이므로 구약에서 '볼 수 없는 하느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 것'을 규정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 전까지의 잠정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도래 이후에도 그리스도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되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혹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임을 부정하는 이단적인 사고방식에 연결된다고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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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그려지지 않은 그리스도〉,
시몬 우샤코프, 1658년 그림[5]
그리스도의 얼굴이 찍힌 머릿수건을 들고 있는
성녀 베로니카의 이콘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후 상당히 오랫동안 이콘은 그리스도교회에서 신앙행위의 일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나 나중에는 신학 문제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콘이 우상인지 아닌지를 놓고 갈등이 벌어졌다. 8~9세기에는 동로마 제국에서 대대적인 성상파괴가 일어났다. 이러한 우상숭배 논쟁은 당시 떠오르던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면이 있으며 일부는 동로마 황제가 촉발하기도 했다. 동로마 제국의 레반트 지역 영토에 살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교의 이콘 풍습을 우상숭배로 공격하는 이슬람의 트롤링주장에 대응하여 이콘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교회의 영향력을 제어하고 싶어하던, 그리고 해당 지역의 현실을 이해하고 있던 황제들이 이런 움직임을 밀어준 것이 문제였다. 이 문제는 동방 교회에서는 몇 차례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10세기에 들어와서야 공의회를 통해 이콘은 우상숭배가 아닌 공경의 형태로 정리되어 합법적인 성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서방에서는 이 기간 동안 이콘이나 성상의 사용이 특별히 문제시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동방 교회에서 주기적으로 제기되는 성상 금지 떡밥으로 인해 동서방 교회 사이의 골이 더 벌어졌다.

성상파괴운동 문서 참고.

3. 정교회에서의 이콘

정교회의 신학적 견해로는 모든 이콘은 거룩하고 신비롭다. 이 때문에 이콘이 전시된 박물관에서는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이콘에 입맞춤하는 정교인도 쉽게 볼 수 있다. 열심한 신자들은 지나가다가 성당 십자가를 봐도 성호를 긋고 화살기도를 한다. 어떤 이콘들은 특별히 하느님의 선택을 받는데 하느님은 그 이콘을 통해 기적의 역사를 베푼다. 성유나 알 수 없는 향을 발산하거나 병든 이를 치유하거나 적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해주고 재난으로부터 백성들을 지켜주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눈에 익은 〈블라디미르의 성모〉가 대표적인 이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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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의 성모(Θεοτόκος του Βλαντιμίρ)〉, 12세기 콘스탄티노플 학파의 무명 작가 그림
이 이콘이 크게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1395년 티무르 모스크바를 침입했을 때의 일이다. 이콘을 블라디미르에서 모스크바로 급히 옮겨온 뒤 바실리 1세 대공은 그 이콘 앞에서 밤새 울면서 기도했다. 그러자 기도의 효험이 있었는지 티무르의 군대가 전투 한 번 치르지 않은 채 퇴각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기적에 놀란 모스크바 사람들은 이 이콘을 블라디미르로 돌려주기를 거부했고 결국 모스크바가 계속 간직하게 됐다. 이 이콘의 기적은 1451년과 1480년 타타르 무리의 침입 때도 반복적으로 나타났으며 심지어 1941년 독일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해 왔을 때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 이콘을 비행기에 실어 주변 상공을 비행하도록 하자 며칠 뒤 독일군이 퇴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콘은 기본적으로 믿음과 영성 수양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정형화된 구도와 매우 수학적이면서도 신학적인 인체비례를 적용한다. 심지어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나 들고 있는 도구, 펼쳐들고 있는 두루마리에도 모두 각각의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콘의 구도는 수백 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창작은 절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이콘화가들은 예술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전문장인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중세 러시아에서는 이콘을 그리는 화가들이 사제 수도자들이었으며 이들이 이콘을 그릴 때는 사순대재에 준하는 금식기도를 하고 이들이 사용하는 물감까지 축복을 받았다고 한다. 오늘날 수도원에서도 이콘을 그리는 수도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도에 대해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위의 〈블라디미르의 성모〉 이콘은 전형적인 '엘레프사(Ἐλεούσα)', 러시아어로는 '우밀례니에(Умиление)'에 속한다. '자비로운'으로 해석되며 이콘에서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에게 친근한 듯이 얼굴을 맞대는 구도로 나타난다. 하지만 성모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이는데 이는 다가올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아기 예수의 천진한 표정은 수난의 고통을 이겨내고 부활할 것이라는 희망을 상징하며 황금빛 하늘은 천상왕국의 영원성을 상징한다.


이콘은 전통적으로 널빤지 위에 캔버스천을 붙인 다음 그 위에 금박을 입히고 '템페라'라고 불리는 가루물감을 달걀 흰자와 맥주로 풀어서 그리는데 물감이 상당히 빨리 굳기 때문에 다루기 쉽지 않다. 색칠하는 작업에도 절차가 있는데 먼저 배경과 옷처럼 넓은 면을 먼저 칠하고 그 다음 얼굴, 머리카락, 수염, 문구(文句)순으로 칠해나간다. 마지막으로 광택이 나는 일종의 천연랙커로 마무리하는데 이렇게 되면 이콘이 번쩍번쩍하고 빛이 나고 단단해진다. 단, 이렇게 마무리한 이콘은 성당에서 사용하는 기름등불과 촛불, 향의 연기로 인해 시간이 갈수록 점점 검게 변하며 보통 70~100년마다 한 번씩 덧칠한다.

공간의 한계로 인해 이콘에 표시되는 글자는 대체로 압축되어 있다. 가령 ' 예수 그리스도 승리자'라는 뜻의 그리스어Ιησούς Χριστός νικά는 ICXC NIKA로 압축되며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뜻인 Μήτηρ Θεού는 ΜΡ ΘΥ로 압축된다. 이 문구는 각 정교회마다 자국어로 표기하는데 한국 정교회 성당에 가면 한국어 이콘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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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교회의 수호성인들 중 하나인 미라의 성 니콜라스 주교.
산타클로스의 모델로도 유명하다.
사악한 용을 죽인 전설로 유명한 성 요르고스[6] 순교자의 이콘.
16세기 러시아 무명작가 그림. 성 요르고스는 모스크바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이콘 공경은 3차원 도상을 인정하고 성유물에 대해 좀 더 비중을 두는 가톨릭보다 정교회에서 더 강한 편이다. 독실한 정교회 신자들은 가정에 이코노스타시(εικονοστάσι)라는 이콘을 위한 공간을 두는데 러시아에서는 정교회 신자이든 아니든 가정집을 방문하면 그 집의 이코노스타시를 찾아가 그곳의 이콘에 성호를 긋고 친구하면서 공경을 표하는 것이 예의다.[7] '이코노스타시'에는 적어도 3가지의 이콘이 놓여지게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콘과 성모 마리아의 이콘, 그리고 그 가정을 수호하는 성인의 이콘이다. 이외에 케루빔 세라핌 천사의 이콘과 다른 성인의 이콘을 놓기도 하며 1쌍의 촛불, 십자고상과 기도서, 성경, 축일날 사용되는 성물들을 함께 비치한다. 축복받은 이콘은 이콘 속에 묘사된 성인이 가정, 직장, 착용자를 위해 천국에서 기도한다고 믿기 때문에 집이나 사무실, 자동차에 이콘을 비치하고 목걸이로 조그만 이콘을 착용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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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져 누운 남편〉, 1881년 바실리 막시모프 그림.
이코노스타시 앞에 무릎을 꿇고 남편의 쾌유를 위해 기도하는 가난한 농부의 아내가 묘사되어 있다.
러시아 가정집에는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이런 이코노스타시를 두는 집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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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 가게 되면 조그만 성당 모형 안에 이콘이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도로 곳곳에서 보이는데 이것은 '이꼬노스따시오 스띠 아크리 뚜 드로무(Εικονοστάσιο στη άκρη του δρόμου)'라고 부른다. 이것은 누군가가 도로에서 사고를 당했거나 전쟁, 살인, 강도 등 불의의 이유로 사망했을 때 그 유가족이나 그 시신을 수습한 사람들이 시신을 찾은 그 장소 위에 세워주는 일종의 추모비다. 멕시코에도 이런 풍습이 널리 유행한다. 이콘 대신 웬 무섭게 생긴 해골바가지가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게 차이점.[8] 주로 죽은 이의 주보성인의 이콘을 모셔놓는다.

4. 가톨릭과 성공회에서의 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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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이콘. 폴란드의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 이콘.[9]
우선 동방 가톨릭 교회는 역사적으로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가 그대로 가톨릭교회에 귀일하게 된 교파이기 때문에 이콘과 같은 기존 문화는 정교회와 다를 바 없지만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일반적인 인식의 가톨릭, 즉 서방 교회인 라틴 가톨릭교회에서 볼 수 있는 이콘은 위에서 보아 온 철저하게 형식을 갖추어 만들어지는 것과는 좀 다른데 사실상 '성화(聖畵)'의 역사는 서양의 미술사와 함께 하고 있다.

가톨릭의 성화상은 다른 가톨릭 교회전통이 그렇듯 본질적인 부분은 보존하면서 역사적으로 계속 발전해 나갔으며 박해받던 초세기의 카타콤 시기에는 익투스 같은 간단한 기호와 문양이나 초기 이콘들,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공인 후에는 모자이크 형식, 서유럽에 본격적으로 퍼져나간 시기에는 스테인드 글라스 등으로 발전해 온 식이다. 특히 중세의 미술은 권력층 및 종교계와 이어져 있기 때문에 그 시대에 그려진 것의 거의 대부분이 가톨릭의 성화라고 봐도 무난하다. 이 관계는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헬레니즘적인 예술활동으로 치우치게 되어 점점 깨져갔고 성화들의 형식도 많이 희석되어 세속화되었다.

가톨릭의 입장에 의하면 이콘은 하느님으로부터 기원했으며 이콘에 대한 공경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닮은 삶을 살아가면서 그들의 믿음을 실천한 여러 성인들의 이미지를 통해 그들의 생애와 믿음을 기억하고 그들의 굳건한 믿음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쉽게 말하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진을 보고 그들을 기억하는 것과 위인들의 동상을 보면서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존경심을 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10] 그래서 가톨릭 신자의 가정이나 직장 등에서 정교회의 이코노스타시와 별 차이 없이 선반이나 탁자 위에 십자고상과 성화, 성상, 성경을 모시고 공경한다.

성공회에서는 이콘을 비롯한 각종 시각적 상징을 교회의 전통으로 존중하며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도로 생각한다. 주요 축일 미사( 감사성찬례) 때 제대 주위에 작은 이콘들을 가져다 놓는 성당이 흔하고 성물방에서도 이콘을 판매한다. 성공회 신자들은 십자고상이나 성모상, 혹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성가정[11]을 묘사한 이콘을 보면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총을 상기하고 삼위일체나 성서의 여러 사건들을 묘사한 이콘을 보면서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성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을 보면서는 성인들이 굳센 믿음을 가지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여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묵상한다. 주요 축일 미사( 감사성찬례) 때 제대 주위를 작은 이콘들로 장식하는 성공회 성당이 많으며 서울주교좌성당에는 커다란 '전능자 그리스도' 이콘과, 성 스테파노, 성 이사야, 성모 마리아, 성 요한 사도, 성 니콜라 이콘이 있다.

가톨릭과 성공회에서는 동방 교회의 영성에 관심을 가지는 평신도들이 늘어남에 따라 정교회 형식의 이콘을 취급하는 성물방이 많아지고 있다. 관심 있는 신자는 지금 다니는 성당의 성물방을 찾아가면 된다. 어떤 성당에서는 이콘과 십자고상을 혼합한 물품도 종종 취급하는데 온라인으로도 구할 수 있으니 비단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구입해 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팔고 있는 이콘들은 사제의 축복을 받지 않은 것이라는 걸 알아두자.

5. 대한민국에서의 이콘

한국에서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인 장긍선 예로니모 신부가 러시아에서 이콘을 전공하고 돌아와 가르치고 있으며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회 소속인 오승민 스테파노 수사가 정동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이콘을 가르치고 있다. 이 둘은 학위기관은 아니며 학위기관은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원 그리스도교 미술학과가 있다.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신자라면 누구든지 배울 수 있는 듯하다. 그러나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 신자는 성모 신심이 없어서 좀 그렇다고 한다.
CPBC 뉴스 보도 (2022.10)
이콘에 관한 한국 서적으로는 헨리 나우웬의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 장긍선 신부가 저술한 「이콘: 신비의 미」 등이 있는데 2022년에 장긍선 신부의 번역으로 「이콘 그리고 동방의 얼굴들」이라는 이콘 사전이 출간됐다.

6. 기타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에서는 교파에 따라 이콘을 쓰기도 하고 예배에 활용하는 것을 우상숭배라며 금기시하기도 한다. 이런 교파에서는 예배당 내에 시각적 상징을 배치하는 것을 대단히 기피하여 십자가조차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시각적 상징을 활용하는 것이 신앙 생활에 유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교파도 있는데 이런 교파의 교인들은 성(聖) 미술이나 이콘을 활용하는 데도 긍정적이다.

루터교회에서는 이콘을 금기시하지는 않으며 미국 유럽의 경우 정교회 등과 교류하는 등 에큐메니컬 분위기의 영향으로 서방식 성상뿐 아니라 이콘도 활용하는 루터교회들이 많다. 다만 한국 루터교회는 이콘을 잘 쓰지 않는데 이는 장로회가 대부분인 한국교회의 특성 때문이다.

장로회에는 이콘이 없지만 각 신자들이 마치 정교회 신자들처럼 집안의 잘 보이는 곳에 예수 초상을 걸어놓은 경우가 아주 많다. 그게 정식 이콘이 아니라 미국에서 현대에 그려진 예수 초상화여서 문제지...[12]

이콘을 그리는 기법이 화장과 아주 유사하다. 우선 이콘을 그릴 캔버스를 준비한 다음 그 위에 금박을 먼저 입히고 밑그림을 그린 다음 템페라 물감을 계란 노른자로 녹인 다음에 밑그림을 따라 진한 색부터 옅은 색으로 칠해나가기 시작하는데 계속해서 덧칠을 하면서 명암을 주는 식인데 이는 세상 창조 때 어둠속에서 빛이 만들어졌음을 뜻한다.

그리스 한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정교회에서는 이콘을 다른 성물보다 더 중요시한다. 신자들이 집에서 사용하는 촛대나 향로 같은 성물들은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사제가 강복하는 형태로 축복을 받을 수 있지만 이콘은 사제가 축복받을 이콘들을 모아서 지성소 안에 있는 제대 밑에 놓고 40일 동안 보관하며 40일이 지나야 축복이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파일:IKONA_EGORA_LETOVA.jpg

이런 식으로 현대에 들어서는 예수나 성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콘식 초상화도 종종 보인다. 그림의 인물은 러시아 음악가 예고르 레토프의 초상화. 가끔 러시아 웹에서 밈으로 사용되는데 배경에 적힌 글자는 "ПВВ НХЙ"로 본인의 초기 시절 노래 제목이기도 한 Пошли Вы Все НаХуЙ(너희 전부 다 좆이나 까라)의 줄임말이다.

그 유명한 강철의 대원수도 이콘을 가지고 있다.[13]

스탈린이 무신론자이면서 이콘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정치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소련 자체가 무신론을 기반으로 한 공산주의 국가였지만 국민들의 신앙이 정교회로 깊이 뿌리내린 것을 무시할 수 없었고 스탈린 자신도 이콘의 신비로운 힘을 강하게 믿었기 때문에 이콘을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패션 무신론자

[1] '만유의 주관자 그리스도' 이콘으로 분류한다. 하기아 소피아는 성 소피아 성당의 그 소피아를 뜻한다. [2] 아래에 언급했듯 이콘을 뜻하는 현대 그리스어인 εικόνα(이코나)는 고대 그리스어나 현대 그리스어나 종교화뿐만 아니라 그림 자체를 의미한다. 참고로 그리스 원문을 번역하면 '천개의 단어로' 이야기한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콘에 들어있는 수많은 상징이 복음서에 쓰여진 내용들을 자세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3] L.우스펜스키,<정교회의 이콘신학>, 정교회출판사 2012, p.24 [4] 신명기 4장 15절 [5] 이 주제의 이콘은 서울 아현동 소재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 내부에도 그려져 있다. [6] 게오르기오스, 가톨릭에선 제오르지오라고 부르는 그 성인이다. [7] 마찬가지로 정교회 성당을 방문하면 먼저 입구에서 양초를 봉헌한 다음 앞에 모셔진 주보성인의 이콘에 친구하고 들어간다. [8] 정교회에서는 길바닥에 죽은 채 버려져 있는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는 것을 가장 큰 선행 중 하나라고 여긴다.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도 처형된 후 농부들이 수습해서 묻어주었다. [9] 가톨릭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 있는 긁힌 자국은 개신교도들의 반달리즘 때문이라고 한다. [10] P.30, <천주교와 개신교> 천주교 대구대교구 박도식 도미니코 신부, 가톨릭출판사. [11] 예수, 성모 마리아, 나자렛의 성 요셉 [12] 가장 흔한 것은 ‘중국에 간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가 눈 녹은 진흙탕을 갑작스런 충동으로 사진 찍었는데 현상해 보니 예수 초상이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검정 얼룩무늬로 그려진 예수 초상. # 심하면 1977년작 영화 〈나자렛 예수〉의 포스터에서 따온 예수 배우(로버트 파웰)의 사진을 모신 집도 상당히 많다... [13]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는데 이 사람은 소련 공산당 소속이고 무신론자이면서 교회를 다 때려잡던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가 아직 조지아인일 때 조지아 정교회를 믿긴 했었지만... (자세한 건 이오시프 스탈린 문서의 7번 문단과 이오시프 스탈린/평가 문서의 4번 문단 참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