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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트로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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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연방 제3대 육해군인민위원
레프 트로츠키
Лев Тро́цкий | Leon Trotsky
파일:레프 트로츠키의 모습.jpg
이름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
Лев Дави́дович Тро́цкий
Lev Davidovich Trotsky
본명 레프 "레이바" 다비도비치 브론시테인
(Лев "Ле́йба" Дави́дович Бронште́йн)[1]
출생 1879년 11월 7일[2]
러시아 제국 헤르손현 옐리사베트그라드군 야놉카
(現 우크라이나 키로보흐라드주 보브리네츠군 베레슬라우카)
사망 1940년 8월 21일 (향년 60세)
멕시코 멕시코시티 코요아칸
재임기간 러시아 SFSR 외무인민위원
1917년 11월 9일 ~ 1918년 3월 13일
러시아 SFSR 군사인민위원
1918년 3월 14일 ~ 1923년 11월 12일
초대 혁명군사위원장
1918년 9월 6일 ~ 1925년 1월 26일
제3대 육해군인민위원
1923년 11월 12일 ~ 1925년 1월 25일
서명 파일:레프 트로츠키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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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0000><colcolor=#ffe400,#ffe300> 부모 아버지 다비트 레온티예비치 브론시테인
어머니 안나 리보브나 브론시테인[3]
배우자 알렉산드라 소콜롭스카야 (1899년 ~ 1902년, 이혼)
나탈리야 세도바 (1903년 ~ 1940년)
자녀 아들 레프 세도프, 세르게이 세도프
딸 지나이다 볼코바, 니나 네벨손
종교 무종교 ( 무신론)
신장 174cm
주요 참전 러시아 내전
러시아 혁명
주요 서훈 적기훈장 }}}}}}}}}

1. 개요2. 생애3. 후예4. 평가5. 대표 저작6. 기타7. 대중매체에서
7.1. 역사서7.2. 소설7.3. 게임7.4. 만화7.5. 영화7.6. 드라마
8. 소속 정당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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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제국, 소비에트 연방 볼셰비키 계열 정치인, 혁명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사상적으로 트로츠키주의를 정립한 인물.

경력상으로는 10월 혁명의 주역으로, 붉은 군대의 창시자이자 지도자로서 소련 건설에 지대한 공적을 세웠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후계자로 거론될 정도였지만, 이오시프 스탈린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해 소련 공산당에서 제명되고 자신이 건국한 나라에서 추방당했다. 추방 이후 망명지를 옮겨 다니며 스탈린 체제를 비판하다 마지막 망명지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 하이메 라몬 메르카데르 델리오[4]에 의해 피살됐다.

사용한 가명으로는 페로(Перо, ' 깃펜'), 안티트 오토(Антид Ото),[5] 엘 세도프(Л. Седов), 스타리크(Старик, ' 노인')가 있으며, 한국에서는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나 '뜨로쯔끼'라는 표기로도 알려져 있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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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후예

한국에서는 운동권 조직 노동자연대(구 다함께)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모임으로 흔히 알려져 있으나, 사실 이쪽은 절대 본인들을 트로츠키주의로 정체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트로츠키의 구 소련 사회에 대한 관점을 갖다가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트로츠키의 공과를 확실히 구분하는 편.[6] 본인들을 정체화하기로는 그냥 마르크스주의라 그러고, 굳이 무슨무슨 분파에 드느냐고 묻는다면, 이쪽은 '토니 클리프주의'라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운동권 주류인 민족해방파( NL)나, 민중민주파( PD)에 다른 비주류다. 그나마 PD파와 좀 가까운 편이고, 얼마간의 교류가 있기는 하다. PD파는 아니라도 PD를 중심으로 한 범좌파를 따질 때면 노동자연대도 넣어주는 편. 대신 싸움질은 보통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NL-다함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점점이 조금은 있는 PD-다함께 사이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분당 이후에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긴 했는데, 이건 딱히 NL하고 마음이 맞아서라기보다는 자기 당을 만들 수 없기에 가장 세력이 큰 민주노동당에 남은 것이다. 그 후에 통합진보당까지 지지하긴 했는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이 터지고 나서는 그나마도 지지 철회하고 허공에 떠 있는 상태. 현재는 당에 소속되지는 않은 상태로, 은근히 정의당을 밀고 있는 분위기이다. 이들은 2000년대 이전에는 국제사회주의자들(International Socialists; IS)이라고 불렸다.[7]

오히려 진짜 트로츠키주의를 추구하는 쪽은 제4인터내셔널의 재건을 추구하면서 트로츠키의 입장을 거의 교조적일 정도로 철저하게 따르는 볼셰비키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쪽만큼 교조적이지는 않지만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 현장 투쟁 위원회(노건투)도 트로츠키주의를 표방한다. 다만 이쪽은 조직이 노동자연대만큼 크지가 않고, 집회장에서 눈에 띄게 활동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는 매우 낮다. 운동판에서 좀 굴러 본 사람 아니면 존재 자체를 모를 것이다. 정통 트로츠키주의도 아니고, 본인들을 트로츠키주의라 정체화하지도 않는 IST 조직이 대중들에게 트로츠키주의로 오해받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에서 정통 트로츠키주의의 입지가 약하다는 것을 뜻한다. 꼭 트로츠키주의뿐만이 아니라, 한국 운동판에서 레닌주의의 입지 자체가 아주 좁다.

이러한 이유로 정통 트로츠키주의를 표방하는 볼셰비키그룹은 다함께-노동자연대가 트로츠키주의를 표방[8]하는 걸 갖다가 가루가 되도록 깐다. 트로츠키 사상의 양대산맥은 '미완성 상태에서 이상하게 변질되어 버린 소련과 그 위성 국가들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그 변질의 주범이자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에 기생하는 기생충과도 같은 관료집단을 타도하기 위한 민중 혁명을 지지하는 것'인데, 소련과 그 위성 국가들을 방어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트로츠키주의의 아류라 할 수 있는 IST 노선이 남한에서는 이렇게 원조 트로츠키주의를 몰아내고 트로츠키주의의 대표주자 행세를 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북한과의 대결 구도 속에서 형성된 냉전 반공주의의 영향이고, 다른 하나는 IST가 IBT보다 먼저 들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IST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90년이었는데, IBT는 먼저 들어온 IST가 한참 신문도 발행하고 학습 모임도 열고 그러다가 국가보안법 탄압에 직면해서 최일붕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줄줄이 구속되던 시점인 1995년에야 들어왔다.

사회변혁노동자당도 트로츠키주의를 추구하는 당원들이 일부 섞여 있다. 여기는 온건한 트로츠키주의+유로코뮤니즘+딱히 트로츠키주의나 스탈린주의로서의 정체성을 갖지 않는 범(凡) 레닌주의자+신좌파 극단주의자들의 연합체이다. 출범 과정부터 다양한 단위들의 연합체로서 시작되었다.

국제적인 조직으로는 IS 이외에 제4인터내셔널 재건을 추구하는 IBT가 있다.[9] 한국에서는 기존 좌파세력[10]들의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대한 혐오가 그다지 없는 편이라서 저명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류 운동권(PD 세력)의 초청을 받아 한국에 강연을 오기도 했다. 예를 들어 운동권의 학습서인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을 쓴 영국의 알렉스 켈리니코스 같은 사람은 한국에 여러 차례 강연을 왔다. 반면에 좌익세력의 연합체인 독일의 좌파당(Die Linke)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참여하려고 했으나 주류 사회주의자들이 그들의 참여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서구 좌익세력 중에서도 주류는 아니지만 트로츠키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좀 된다.

종종 트로츠키주의자를 극소수라거나,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오해로, 실질적인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세력 규모는 주류 중 가장 비주류, 또는 비주류 중 가장 주류 정도는 된다. 세계 각지에 트로츠키주의를 표방하는 정치결사가 있고, 이들의 국제연대조직까지 있는 세력을 극소수 비주류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한 정통 사회주의자들과 극히 사이가 나쁘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옛날 이야기다. 일단 트로츠키주의와 불구대천의 원수인 스탈린주의가 정치적으로 완전히 파산한 상태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싫어할 만한 정통 사회주의자의 정체성 자체가 모호하다. 지금 각국의 공산당이나 사회주의 당[11]이 트로츠키주의 당과 사이가 나쁜 것은 다른 당 차리고 있으니까 습관적으로 싸우는 것에 가깝지,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 소련의 주도권이 살아 있던 당시의 서슬 퍼런 증오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정통 사회주의의 정체성을 레닌주의의 계승에서 찾는다면 오히려 트로츠키주의가 정통 사회주의의 계승자가 되고, 레닌주의 혹은 스탈린주의를 탈피한 각국 공산당, 사회당들[12]이 캐주얼 사회주의 당이 되는 수도 있다.

정통 사회주의자들은 트로츠키주의를 "극좌모험주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 "트로츠키주의자"라는 것은 사이비 혹은 프락치의 딱지였다. 중국-소련 간에 사이가 나빠지자, 니키타 흐루쇼프 마오쩌둥이 서로를 "저 자는 트로츠키주의자다!"라고 비난한 건 유명한 일화다. 공산주의/사회주의 정당이 야당인 서구권에서 트로츠키주의라는 개념은 확실히 '극좌모험주의'의 의미로 쓰이는데, 이는 공산당이나 사회당이 제도권 정치에 편입된 서유럽이나 일본 등에서 트로츠키를 표방하는 정당들이 주로 탈 제도권적인 극좌노선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산당에 의한 일당독재가 이뤄진 구 동구권 국가들에서 트로츠키주의자라는 표현은 사실 이념이나 정치노선과는 별로 상관없는 범용 욕설이다.[13] 내부의 적, 프락치, 배신자, 사이비 등 모두 통틀어서, 그냥 무척 나쁘고 싫어서 때려죽이고 싶은 놈인데 파시스트!부르주아지!라고 부를 수 없는 상대는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부르면 되는 거다. 굳이 차이를 두자면 전자는 대놓고 다른 진영을 욕할 때, 후자는 같은 좌파를 공격할 때 쓰는 단어라 생각하면 되겠다.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상대를 욕하는 것이 정치 사상과 별로 상관없는 것과 비슷하다는 이야기. 거의 아무 이유도 없이 욕먹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스탈린주의가 거의 찌그러져 버리다시피 한 한국에서는 노정협이나 노사과연에서 차분하게 노동자연대/볼셰비키그룹/노건투/변혁당 일부 등 범 트로츠키주의 단위들의 입장을 비판하는 정도이다. 중요한 떡밥이 투하되거나 정세상 중요한 터닝포인트다 싶을 때면 트로츠키주의고 스탈린주의고 따질 것 없이 연합으로 노동자 집회를 주관하는 경우도 있다. 트로츠키주의자와 스탈린주의자가 같이 마르크스주의 학습 모임을 갖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 트로츠키주의를 심하게 까는 쪽은 신좌파 계열과, 신좌파를 마르크스주의에 혼합시키고자 하는 신마르크스주의 계열[14]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신좌파 계열과 범 트로츠키주의 계열 운동권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버렸다.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상당수가 1960-70년대의 트로츠키주의 운동권 출신이다. 당장 신보수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어빙 크리스톨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격적 성향은 트로츠키의 사회주의적인 영구혁명론을 자유민주주의적 영구혁명론으로 번안한 탓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4. 평가

트로츠키에 대한 당시의 평가가 '혁명의 영웅'과 '빨갱이 악마'로 갈린 것처럼, 현대의 평가 역시 두 갈래로 크게 갈려 논란중에 있다.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트로츠키를 둡체크 너지, 티토 등과 함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의 상징으로 내세우지만,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스탈린이라는 악마와 싸우다 죽었기에 비판에서 벗어난 또 다른 악마라고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폴란드 출신 유대인 아이작 도이처는 3부작 전기 "무장한 예언자", "무장해제된 예언자", "추방된 예언자"를 저술해 이후 서구 좌파의 트로츠키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전기는 시종일관 착한 트로츠키가 사악한 스탈린의 계략에 빠져 권력을 잃고 암살당했다고 묘사하고 있으며, 스탈린이 주도한 소련 공산당의 독재정치에 질린 서구 좌파들 중에는 대안으로 트로츠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나온 소련 장성 출신 역사가 드미트리 볼코고노프의 전기와 2014년 국내에 정발된 영국 역사학자 로버트 서비스의 전기는 트로츠키를 그저 권력을 잡지 못한 또다른 스탈린 쯤으로 묘사하고 있다. 볼코고노프(1928-1995)는 소련군 장성 출신으로 정치장교이자 심리전 담당을 했다. 하지만 소련 체제가 흔들리자 가장 먼저 사상전향을 하고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보좌관을 하면서 소련 공산당과 소련의 디스에 앞장섰다. 이 사람은 역사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소련 붕괴 시기부터 옐친 시절에 써낸 책들은 딱히 학문적인 측면보다는 소련 체제가 감추고 싶었던 흑역사들을 들춰내면서 쓴 역사적 휘그주의[15]의 일종이다. 볼코고노프의 전기는 그의 많은 저작들이 그러했듯이 대중적으로는 인기를 끌었지만 새로울 것이 없었으며 증거가 부족한 비판을 일삼아 학계에선 큰 충격을 주지 못했는데 서비스의 전기는 트로츠키를 정교하게 까내렸고 이 때문에 수많은 트로츠키주의자가 서비스의 전기에 항의했고, 반박서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 소책자, 《로버트 서비스의 트로츠키 왜곡에 대한 비판》은 국내에서도 번역하여 노동자연대에서 출판했다. 하지만 스탈린이 10월 혁명을 배반하고 과거 레닌주의와 단절하였다는 60년대의 수정주의는[16] 이미 1980년대 아치 게티, 쉴라 피츠패트릭 등의 2세대 수정주의가 등장하면서 이미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고 스탈린을 레닌주의의 계승자, 트로츠키의 본질 역시 스탈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기존 인식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연구는 활발히 나오고 있다. 서비스가 공화당 성향 후버 연구소 소속이라 못 믿겠다는 비난도 있었다. 그러나 서비스는 2004~2005년에 문서고를 이용하기 위해 후버 연구소에 있었고, 구 소련 시절에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교환연구원으로 다녀오고 1998년부터 옥스퍼드 대학 교수를 지내는 사람이다. 러시아 혁명 수정주의의 대표적 학자인 알렉산더 라비노비치도 책 서문에서 후버 연구소에 감사를 표명하고 있다. 그리고 대표적 수정주의 학자의 서적들인 '스티븐 A. 스미스 , 러시아 혁명 1917년에서 네프까지', '알렉산더 라비노비치, 1917년 러시아 혁명'을 번역한 류한수 교수가 추천하는 전문서적중 일부가 바로 로버트 서비스의 서적이다.[17]

2010년 대 이후로도 스티븐 코트킨, 노경덕 등에게서 스탈린-트로츠키 논쟁과 트로츠키의 혁명관, 국가관을 탐독한 연구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며 이러한 연구들은 트로츠키의 구상과 스탈린의 구상이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로버트 서비스의 정치적 성향을 문제시하기도 그런게, 본질적인 정책이란 면에서 스탈린이 오히려 트로츠키를 때려죽이려고 들면서도 트로츠키의 방식에서 많을 부분을 따왔다는 점은 비단 냉전기 서방의 반공우파 성향 학자들 뿐만 아니라 그 한창 이전부터 좌파 내에서 주구장창 싸우던 아나키즘, 좌파공산주의 같은 진영에서도 줄곧 하던 주장이다.

또한 이러한 세간의 평가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 역시 상당히 흥미롭다. 소련 내부의 강압적 실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극소수의 고립된 트로츠키주의자를 제외하면 트로츠키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소련의 실상이 조금씩 드러날수록 트로츠키에 대한 관심도 늘어가고, 바르샤바 조약군의 프라하 침공에 반발한 서유럽의 좌파 대학생들이 대거 트로츠키주의로 전향하면서 소련과 스탈린주의의 대안으로써의 트로츠키주의, 즉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의 상징인 트로츠키주의가 탄생하였고[18], 이후 정치세력화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제도화된 기존의 공산주의/사회주의 정당과는 차별화된 나름의 노선을 걸어왔다. 소련의 붕괴 이후에는 이전까지 스탈린주의의 반대항으로써 받아들여지던 트로츠키주의가 오히려 스탈린주의와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음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좌파 중에서도 생겨나고 있지만 우파들 중에서도 생겨나고 있는데, 이는 소련 붕괴 이후 새로운 주적을 찾으려는 시도의 결과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반대로 소련 붕괴의 영향으로 근본적 사회 변화를 고민하는 사람들 중 트로츠키주의에 관심을 돌리는 사람이 있다. 서구권 공산당 이름을 달고 있는 정당들은 개량주의 정당으로 우경화한 경우가 많고, 스탈린주의를 추구하는 정파들은 남한의 전국노동자정치협회나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조선로동당에서 보듯이 스탈린주의를 고수하는 사람들이다.

5. 대표 저작

6. 기타

7. 대중매체에서

7.1. 역사서

7.2. 소설

7.3. 게임

7.4. 만화

7.5. 영화

7.6. 드라마

8.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1898 - 1903
볼셰비키 1917 - 1932

[[소련 공산당|]]
1918 - 1927
스위스 사회민주당 ? - ?
제4인터내셔널 1938 - 1940 사망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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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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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 최고회의의 임명동의안이 없었으나
사실상 외무장관 직책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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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크라이나어: Лейба Давидович Бронштейн (레이바 다비도비치 브론시테인)
이디시어: לייבל ברוינשטיין (레이바 브로인슈테인)
영어: Lev "Leyba" Davidovich Bronshteyn
[2] 1990년 초만 해도 여러 학습용 서적(금성출판사나 삼성당 같은 곳에서 낸)에선 1877년 생으로 나오기도 했다. [3] 혼전성은 '지보톱스카야(Животовская)'. [4] Jaime Ramón Mercader del Río (1913–1978) [5] 이탈리아어 안티도토(antidoto, '해독제')에서 유래함. [6] 물론 노동자 연대가 트로츠키를 좋아하고, 자주 인용하는건 사실이다. [7] 남한 국제사회주의자들(ISSK)는 1990년에 창립된 비합법 지하조직이다. 국가보안법을 내세운 국가 탄압으로 인해 수 차례 대규모 구속 사태에 직면한 바 있고, 1999년에 공식적으로 조직을 해소하였다. 이후 지하조직 노선을 청산하고 대중 노선으로 전환하여 2000년에 민주노동당 학생그룹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하여 다함께(2001~2012)-노동자연대다함께(2012~2014)-노동자연대(2014~)로 이어지고 있다. [8] 예를 들어 노동자연대 가판에서 파는 소책자에는 '삐딱이들을 위한 트로츠키 가이드'가 있고, 이 조직의 실질적인 지도자 격인 최일붕은 한동안 '한국 최초의 트로츠키주의자'로 소개된 바 있다. [9] 제 4 인터내셔널은 트로츠키 자신이 창설한 조직이고 소련을 퇴보한 노동자 국가로 보지만, IS(또는 IST)는 트로츠키 사후 자생적 트로츠키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으로서 소련이 처음부터 노동자 국가가 아니라 국가에 의한 자본주의 체제였다고 보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10] 영국, 프랑스, 독일 등지에선 기존 진보-좌파세력들은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대한 인식이 전통적으로 안 좋다. 예를 들어 영국의 주류 진보정당인 노동당과 비주류 트로츠키주의 정당인 사회주의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은 원수지간이다. 옛날 소련이 건재했던 시절부터 활동하던 노년층은 옛날 구소련의 프로파간다에 영향을 받은 면도 있지만 이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늙어죽거나 은퇴했고, 사실 이런 냉전기 지정학적 큰 구도보단 서구권 좌파판 내부 운동권 문화에서 생긴 문제가 더 크다. 트로츠키주의 단체들은 좌파판 밖에선 공산주의자들 전반이 주로 한다고 욕먹는, 처음에는 어디 좋은 의도나 순수한 공감인양 이런 저런 시민단체나 운동 단체에 가입해 놓고 알게모르게 자신들만의 파벌질로 자기 계파 사람들만 꽉 채워 놓은 다음 조직 전체를 도둑질해 버리는 운동권 쁘락치, 정치적 도둑질이 상당히 심했다. 이런 어설픈 침투전략이 통할 리가 없는 영국 노동당 같은 거대 정당 상대로도 이런 짓을 시도하다가 오히려 80년대 대처리즘 시절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세력 전체가 위축되는 사고도 많이 쳤다. 게다가 2010년대 전후로 음습하고 운동권 내부 폐쇄성으로 인해 뒤늦게야 폭로된 평당원들 상대로 저지른 간부들의 권력형 성범죄도 SWP 본진인 영국과 호주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전력이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서구 좌파 정치판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음습하고 폐쇄적인 사이비종교에 가까운 집단스런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11] 당이 없는 경우에는 운동 단위가 된다. 한국에 이러한 운동 단위로는 스탈린주의를 표방하는 노동자 정치 협의회(노정협)와 노동사회과학 연구소(노사과연)이 있다. 실제로 노정협에서 발간하는 노동자 정치 신문을 보면 가장 많이 까이는 단체 1위가 노동자연대고, 2위가 변혁당이다. [12] 이것을 유로코뮤니즘이라 하는데, 이미 1970년대부터 서유럽 공산당들 사이에서 시작된 풍조이다. [13] 위에 예시로 나온 흐루쇼프와 마오쩌둥 간의 논쟁을 보더라도, 흐루쇼프는 마오쩌둥을 극좌모험주의자라고 불렀고, 마오쩌둥은 흐루쇼프를 우파수정주의자라고 받아쳤다. 그런데 양쪽 다 상대를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불렀다. [14] 전국학생행진과 사회진보연대, 변혁당 중앙당과 학생위원회가 이런 경향이 있고, 노동자연대에서 갈라져 나온 다른 세상을 위한 연대(구 변혁재장전)는 더욱 두드러진다. [15] Whiggism, 즉, 현재 시점을 '바른 상태'로 보면서 모든 과거를 부정하는 역사철학의 한 갈래. 조선시대 펴낸 고려사의 공민왕 이후 부분이 바로 이런 식의 서술이라고 볼 수 있다. [16] 사실 미국과 유럽의 1960년대 자체가 68운동의 영항으로 사상적 혼란이 크게 일어난 만큼 트로츠키 동정론이 힘을 얻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스탈린주의에 대한 염증과, 자본주의의 반감에 대해 제3의 길을 찾다보니, 스탈린에 의해 시종일관 비난받던 트로츠키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고 생각하게 된 것. [17] 박종철출판사에서 출간한 '러시아 혁명 1917년에서 네프까지' 번역판에서 류한수 교수가 제시한 '더 읽을 거리' 참고 [18] 물론 공정하게 말한다면 이 당시의 학생들이 이상화한 트로츠키주의가 실제 트로츠키의 이념과 같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19] 유대인들은 해산물 중 비늘 없는 것은 먹으면 안 된다. [20] 물론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의 대등한 연방 국가로서 이스라엘을 지지한 것이지 유대인들의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승인한 것은 아니긴 했다. [21] 출처: 10월 혁명을 옹호하며(1932) [22] 그의 회고록에선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내 아버지는 러시아 내전 당시 당신의 아들이 트로츠키란 이유로 백군에게 탄압당하셨고 적군에게는 부농이란 이유로 비판당하셨다." [23] 스탈린은 조지아 출신이었고 고향에선 시인이었지만 러시아어는 그리 잘 하지 못해서 러시아어로 말을 할 때면 되도록 짧게 했다고 한다. 실제로 남겨진 자료를 통해 분석한 스탈린의 러시아어 구사 능력은 대략 고등학생 정도 수준으로,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언어를 주된 도구로 사용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는 부족한 수준이었다고 여겨진다. [24] 통상적인 정치장교의 역할에서 감시역할을 뺀 것. [25] 세르게이의 딸은 스탈린 시대에 살아남아 1979년까지 소련에서 살다가 1979년 소련이 유대인들의 이주를 허가할 때 출국 허가를 받아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트로츠키의 외손녀(첫째 딸의 딸)도 스탈린 시대에 살아남아 흐루쇼프 시대에 복권되었다. [26] 아마 요제프 멩겔레의 이야기가 와전된 듯 싶다. 멩겔레는 나치가 패망하자 신분을 숨기고 남미로 도주했는데 자신을 받아준 친나치인사의 부인과 불륜을 벌이는 배은망덕한 짓을 저질렀다. [27] 체제의 배반자, 염소 수염, 안경, 유대인 속성을 보유하고 있다. [28] 스탈린이 어렸을 때 스탈린의 부모가 그루지야에서 일어나는 탄압을 피하고자 그루지야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래서 스탈린은 'Joe Steele'이라는 이름의 미국인으로 살아가게 된 것. [29] 역사의 변화로 레닌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공산주의 연구를 하느라 스탈린하고 레닌이 만나지 못했다. [30] 실제로 트로츠키주의 스탈린주의는 비슷한면이 매우 많다. [31] 그나마 트로츠키 특유의 소심함 때문에 숙청된 사람은 적었다. [32] 원 역사에서 레프 트로츠키가 1940년 멕시코에서 암살당한 직후 1918년에 다시 눈을 뜬 것이었다. [33] 다만 부하린 루트보다는 쉬운 편. 트로츠키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반란 가능 지역을 넓힐 수 있고, 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와 같은 주요 도시들과 가깝기 때문에 딱히 국력도 그렇게 소진되지는 않는 편이다. 거기다 군대도 붉은 군대의 다수가 트로츠키의 군대로 오기 때문에 난이도는 더더욱 쉽다. [34] 정치력에 페널티를 주는 특성이 달려 있고 업그레이드를 해야 겨우 본전을 뽑는 수준. [35] 이때 육군참모총장으로 영입할 수도 있는데 공산주의 지지도가 오르지만 무려 군사 조직력을 8%나 올려주기에 성능은 좋은 편이다. [36] 1차대전 가스공격 중 방독면 고장으로 전사 [37] 소아마비 악화로 사망 [38] 암살 [39] 국민당 봉기에 참가했다 사망 [40] 트로츠키의 본명을 영어화한 것. [41] 이쪽은 굉장히 자칭 전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생계획을 7단계로 세워놨는데 1단계-혁명 기초 닦기, 2단계-(되도록이면 이름이 알렉산드라[48])인 연상 여자랑 결혼하기, 3단계-??, 4단계-21살때까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AKA 레닌) 만나기(서두르자), 5단계-추방당하기, 6단계- 추방에서 돌아오기, 7단계-(되도록이면 따뜻한 곳에서)암살당하기 라던가, 신문기사랑 트로츠키 관련서적을 모아놓고 이탈리아 공산당기가 벽에 걸려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그런데 정작 모습은 키 큰 안토니오 그람시 닮았다. [42] 레닌을 다룬 "혁명과 악마"도 같이 방영되었는데, 시청률에서 트로츠키가 훨씬 앞섰다고 한다. [43] 콘스탄틴 하벤스키도 유대계이다 [44] 레닌도 모계가 유대계다. [45] 물론 레닌-트로츠키가 반목한 시기도 있었지만 반대로 두 사람이 가까웠던 시기의 트로츠키는 '레닌의 곤봉' 이라고 불릴 정도로 레닌의 맹렬한 지지자로 활동했으며, 두 사람이 껄끄러운 관계가 된 시기에도 노선이나 방법론의 차이로 갈등한 정도이지 서로를 적대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른 부분을 다 떠나서, 죽음을 눈앞에 둔 레닌의 유언장 내용을 보면 트로츠키는 "중앙위원회에 가장 적합한 인물", 즉 레닌의 후계자로써 소련의 최고지도자가 되기에 가장 적절한 인물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즉 트로츠키를 레닌주의자가 아닌 독자적 정파의 수장으로 보고 적대시하거나 배척한 다른 레닌주의자 고참 볼셰비키들과는 달리 레닌 자신은 트로츠키를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할 정도로 우호적인 입장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트로츠키 역시 러시아 혁명 성공 이후에는 자신을 명백하게 '레닌주의자'로 규정했다. [46] 작중에서는 실제로 사용한 가명인 프랭크 잭슨으로만 나오며 본명은 나오지 않는다. [47] 푸틴 본인은 소련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심장이 없다.는 등 소련 시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발언을 했고, 대조국전쟁 기념일을 성대하게 챙기는 등의 행보를 보이지만 이는 러시아인들의 소련 시절의 향수를 자극해 애국심을 고양하고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애당초 푸틴의 저 발언 뒤에는 "소련이 돌아오길 바라는 자는 머리가 없다."라는 반공적인 주장이 따라붙으며, 그외에도 소련과 공산주의에 부정적인 발언도 많이 했다.


[48] 트로츠키 첫번째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