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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00:26:39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1. 개요2. 상세
2.1. 마약을 의미한 것인가?
3. 카를 마르크스가 처음 한 말인가?4. 마르크스 원전을 통한 이해
4.1. 마르크스의 종교 분석의 시작점4.2. 종교는 단순한 지배계급의 도구가 아니다4.3. 마르크스가 내린 결론
5. 부정적인 영향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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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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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Religion … ist das Opium des Volkes.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카를 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 법철학 강요(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를 비평하며 한 말.

프리드리히 엥겔스 1874년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루이 블랑키의 추종자들이 종교 금지를 내세우자 다소 조롱하는 투로 그런 금지는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고 오히려 " 박해는 달갑지 않은 신념을 부추기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라며 이를 일축했다. 쉽게 말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려고 들 테니 그냥 놔두라는 말이다.

이렇듯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종교를 부정하거나 금지하기는커녕 종교가 나라와 무관한 사적인 문제로 남아야 하고 종교의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볼셰비키의 정책이기도 했는데 블라디미르 레닌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설명했다.
나라는 종교에 관여하지 말아야 하며 종교 단체는 나라와 아무 관계도 없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종교를 아주 자유롭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종교가 없다는 것도, 즉 모든 사회주의자가 보통 그렇듯이 무신론자라는 것도 자유롭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을 이유로 시민을 차별하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공식 문서에 시민의 종교를 명기하는 것도 무조건 폐지돼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종교의 사회적 근원인 소외, 착취, 억압 등이 사라져서 종교가 점차 사멸하는 것만이 진정한 종교의 폐지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놓고 봤을 때 종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요소가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며 사회주의의 이상이 이루어지면 자연히 도태되어 사라질 구시대의 유물이자 악습으로 취급했지만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의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자 성직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며 종교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인용의 오류가 많이 발생하는 문장이다. 애당초 원전에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문장만 있는 게 아니라 "종교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탄식이며, 잔악한 세상의 정서이고, 영혼 없는 상태의 영혼이며, 결국 민중의 아편이다."라는 문장인데 맨 처음과 끝의 문장만 잘라서 사용되고 있다. 정작 마르크스주의의 기준에서 현실의 문화(종교를 포함한 모든 문화 자체가)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종속된 이데올로기이며 극복대상에 해당하며 종교는 일종의 노동자들의 소외로 인해 발생된 문화라는 견해도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며 종교 자체만을 부정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2. 상세

마르크스 생전 아편은 널리 퍼진 마약이면서 동시에 진통제였다.[1] 마르크스가 종교에 대해 한 이야기는 단지 종교가 '고통에 대한 일시적인 위안을 준다는 것' 뿐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의 고통[2]을 감수하게 만들고 현 상태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굳이 진통제가 아닌 '아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의 약국만 가도 아편을 팔았고 '출근하기 전 아기에게 아편을 먹이세요!' 라는 광고가 대놓고 신문에 실리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마르크스가 헤겔법철학비판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말한 문맥을 보면 종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3]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투쟁은 간접적으로 종교를 정신적인 향기로 삼는 세상에 대한 투쟁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고통은 실제 고통에 대한 표현이면서 동시에 실제 고통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무자비한 세상의 본질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핵심이다. 그것은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에게 환상의 행복인 종교를 폐지하는 것은 인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들의 현재 상태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태를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초기 단계에는, 종교가 후광이 되어주는 눈물의 골짜기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종교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쇠사슬에 나 있는 상상 속의 꽃들을 잡아뽑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쇠사슬을 아무런 환상이나 위안 없이 견디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쇠사슬을 벗어던지고 살아있는 진짜 꽃을 잡게 하기 위해서이다. 종교에 대한 비판은 인간을 미몽에서 깨어나게 만들어, 환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각을 회복한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여 자신의 실체를 변화시킴으로써 스스로 진정한 태양 아래로 걸어나올 수 있게 한다."
위의 글의 의미는 명백하다. 종교가 주는 환상이 인간에게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있으므로 종교를 강하게 비판하고 투쟁해서 종교의 실체를 폭로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종교를 없애고 종교 없이도 행복한 환상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가 진통제라는 바람직한 도구라는 의미로 볼 수도 없고 종교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는 태도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마르크스 본인도 아편에 대해 관대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아편전쟁에 대해서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 기고한 글을 보더라도 아편은 마약(drug)으로서 일반적인 상품(goods)과는 구별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마르크스는 심지어 아편을 (poison)으로, 아편을 즐기는 것을 자살(suicide)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레닌 역시 종교가 다수의 사람들을 짓누르는 도구이며 종교가 주는 '천국에서의 안식'에 대한 환상 때문에 사람들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잃는 반면 부자들은 종교가 요구하는 값싼 자선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천국행 티켓을 거둬들일 뿐이라며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4] 레닌은 권력을 잡고 나서 명백하게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1922년에는 성직자들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려 그 결과로 14000~20000명의 성직자들이 실제로 처형되었다. 이를 러시아 정교회 조직과의 정쟁만으로 해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물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러시아 정교회지만 러시아의 소수민족들이 믿던 가톨릭 교회나 유대교, 이슬람, 티베트 불교, 그리고 샤머니즘 신앙도 마찬가지로 박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레닌과 볼셰비키가 종교를 박해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제 역사를 무시하고 '상상 속의 꽃들'로 도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일제강점기의 잡지인 개벽 제63호에 실린 '반기독교운동에 관하야'라는 글을 보면 이런 부분이 있다. (1925年)
70여년 전 파리 코뮌을 경험한 시대에 마르크스 엥겔스는 '종교는 인민을 아편중독자로 만드는 아편 독이다!'하여 크게는 종교의 기원과 종교의 폐해를 명확히 하여 과학적 메스로 종교가 인민에게 아편독이 되는 것을 표명했거니와 20년 전, 농민과 노동자의 천하가 된 러시아 청년들은 그 보다도 좀 방법이 달라서 "신을 사형집행한다"는 형식으로 신의 모형을 만들어 수레 위에 싣고 시가에 꺼내어 돌아다니면서 시위적으로 반종교운동을 하였다고 합니다.[5]
만해 한용운이 1938년 잡지 《삼천리》에 게재한 <반종교운동의 비판>이란 논설문의 일부분을 보자.
공산당은 그 유물론적 견지에서 종교를 아편이라 하고 신앙을 酩酊( 명정)이라 하야 일절 종교를 배격한다. 그 결과 10월 혁명 이후 곳 공산당의 종교압박 즉 반종교운동이 개시돼야 교회는 파괴되고 성상은 유린되고 다수의 승려는 학살되얏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고, 제국주의자들의 무기라는 교육을 귀가 닳도록" 가르쳤다고 증언하며 북한 정부가 '모든 종교는 아편이라고 교시하고 있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정신 이상자 취급을 받는다'고 말한다. # #

일제강점기에도 이미 이런 인식이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고[6] 탈북자들의 증언에서도 북한 정부가 주민에게 마르크스의 저 문장을 들어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지속적으로 주입시키고 있음이 명확하다. 그런데 남북분단 뒤에 남한으로 귀순한 어떤 특정 인물이 저 문장을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해석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잘못 인식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한국이 마르크스주의 연구가 그리 성행한 나라가 아니라고는 해도 마르크스주의 포럼이 2001년 이후 매년(2013년 기준으로 13회) 열릴 정도의 연구는 진행되고 있고 사회과학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전문분야로 삼는 사람의 수도 적지 않다. 그러면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평생을 바친 수십명의 학자들이 독일어 원전까지 읽어 가면서 일개 소설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줄 리도 없다.

철학자 강유원도 해석에 관한 논란에 대해 "마르크스의 말은 종교를 비판하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 짧게 답한 바 있다. 참고

사족이지만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에선 중국과 티베트의 관계가 험악해졌을 때 달라이 라마를 알현하러 온 중국군 장군이 달라이 라마의 훈훈한 덕담을 다 듣고 쌩까면서 "종교는 아편이오!"라고 한마디 한다.

2.1. 마약을 의미한 것인가?

Das religiöse Elend ist in einem der Ausdruck des wirklichen Elendes und in einem die Protestation gegen das wirkliche Elend. Die Religion ist der Seufzer der bedrängten Kreatur, das Gemüth einer herzlosen Welt, wie sie der Geist geistloser Zustände ist. Sie ist das Opium des Volks.
종교적 비참은 현실적 비참의 표현이자 현실적 비참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 인민 아편이다.
이를 오역이라고 하는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즉 이 말을 현대에 맞게 풀이하자면 종교는 인민의 진통제다 정도가 될 것이라는 게 오역이라는 쪽의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취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계열이 바로 IS(국제사회주의) 계열인데 이들은 종교는 여러 사회 현상 가운데 하나일 뿐 그 자체로는 가치 중립적이며 노동자들의 편을 드는 종교라면 지지하면서 연대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스탈린주의 마오주의처럼 종교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거부한다.

하지만 이 번역이 오역이라는 것에 대해서 재반박하는 의견도 있다. 종교를 진통제에 비유한 의도는 '병을 치료하는 수단이 아닌 단지 통증을 가라앉히는 수단' 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의 견해도 이 문서에 전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두가지 의견은 실질적으로 차이가 크지는 않다. 오역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도 종교가 이상적 대안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며 오역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도 마르크스가 종교를 만악의 근원이라고 말했다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9]

마르크스는 종교를 노동자 계급에게 일시적인 위안을 주는 수단에 불과한 것, 한계가 많은 것으로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인간해방의 대안이라고 보지는 않았으며 다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그 의견을 따랐다.[10] 그 점에서 마르크스는 종교에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종교가 만악의 근원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에 입각하면 당연한 결론이다. 즉 종교는 원인이 아닌 현상일 뿐이라고 보았으며 착취행위처럼 그 자체가 악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종교는 때로는 (한계가 분명한) 저항의 수단이기도 했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종교의 문제점을 종교생활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에 몰두하여 근본적인 사회혁명을 가로막는 것에서 찾은 것이다.

사실 마르크스 생전의 종교(특히 기독교)의 위상과 역할이 현대와 크게 달랐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마르크스의 어구를 현대사회에 문자 그대로 적용하려는 움직임은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가톨릭만 해도 20세기 초까지는 세속주의를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극단적인 교권주의, 기득권 세력이었으며[11] 유럽과 식민지 각국에서 피지배층을 억압하고 저항의 의지를 분쇄하는 데 크나큰 책임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가이자 이성을 중시하는 학자라면 종교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애사당초 아편이 진통제로 사용되기 시작한 거잖아?[12]

3. 카를 마르크스가 처음 한 말인가?

그러나 이런 말을 마르크스가 처음 했는지는 약간의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비슷한 말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Quoique la nature donne beaucoup à ton peuple, il jouit de peu. Mais ce n'est pas l'effet de son inaction ; cet engourdissement a sa source dans ta politique qui, pour tenir le peuple dans sa dépendance, lui ferme la porte des richesses ; d'après cela, son mal est sans remède, et l'état politique n'est pas dans une situation moins violente que le gouvernement civil, puisqu'il tire ses forces de sa faiblesse même. La crainte que tu as, Ferdinand, que l'on ne découvre ce que je te dis, te fait exiler les arts et les talents de ton royaume. Tu redoutes l'œil puissant du génie, voilà pourquoi tu favorises l'ignorance. C'est de l'opium que tu fais prendre à ton peuple, afin qu'engourdi par ce somnifère, il ne sente pas les plaies dont tu le déchires. Et voilà d'où vient que l'on ne trouve chez toi aucun des établissements qui donnent de grands hommes à la patrie : les récompenses dues au savoir y sont inconnues, et, comme il n'y a aucun honneur ni aucun profit à être savant, personne ne se soucie de le devenir.

자연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많은 것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이를 누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게으름 탓이 아닙니다. 이런 마비현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의존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당신의 통치방식에서 기인한 문제이고, 부(富)는 그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들의 고질병에는 어떤 약조차 무효하고, 나약한 중에서 강함을 찾으니, 체제가 민정(民政)만큼이나 난폭합니다. 페르디낭, 당신의 두려움, 내가 당신에게 말해준 것들이 들통나면 어쩌나 하는 그 두려움은, 당신의 왕국에서 예능(藝能)과 기능(技能)을 추방했습니다. 당신은 천재들의 날카로운 눈을 두려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무지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백성들에게 준 것은 아편입니다. 그 아편에 취해, 그들은 당신이 가하는 자신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인은 당신의 세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이곳에는 지식에 의한 보상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똑똑해져봤자 명예도 이득도 없으니 누구도 장래를 도모하지 않습니다.
《줄리엣 이야기 - 악덕의 번영》(Histoire de Juliette, ou les Prosperites du vice) 5부, 사드 후작, 1797년, 줄리엣이 국왕 페르디낭을 비난하는 장면
보다시피 인민의 아편 사드 후작이 먼저 소설에서 썼다.
Ihre sogenannte Religion wirkt blos, wie ein Opiat : reizend, betäubend, Schmerzen aus Schwäche stillend.
너희가 말하는 이른바 종교라는 것은 그저 아편 노릇을 할 뿐이다. 매혹하고, 마취시키고, 나약함에서 오는 고통을 잠재우는 노릇 말이다.
-《꽃가루》(Blütenstaub), 예명: 노발리스(Novalis) 본명: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 남작(Georg Friedrich Freiherr von Hardenberg), 1798년
이렇듯이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과 종교가 아편이라는 말이 모두 선례가 있다. 아마 카를 마르크스는 이 두 가지 말을 섞어 적절히 나타내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4. 마르크스 원전을 통한 이해

사실 아편이 마약이냐 진통제냐 같은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원전에서 마르크스가 어떻게 종교를 분석했느냐 하는 사실이다.

마르크스의 종교 분석에 있어서 알아야 할 것은 첫째로 마르크스가 종교에 대해 "지배 계급의 도구"라는 환원론적 견해를 제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둘째, 마르크스의 종교분석에 있어서의 결론, 셋째로 마르크스주의는 종교활동의 금지를 전혀 암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 목차의 내용도 원전이 아닌 존 몰리뉴 등의 2차, 3차 대중저술들을 통한 간접인용 형식으로 마르크스철학의 종교분야를 서술하고 있으므로 더 깊이 있는 탐구를 위해서는 마르크스-엥겔스의 《On Religion》, 엥겔스의 《반뒤링론》" 레닌의 《Socialsim and Religion》 등의 원전을 읽으시는 편이 나을 것이다.

4.1. 마르크스의 종교 분석의 시작점

먼저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은 18세기 말엽부터 마르크스의 활동시기까지 종교비판을 전개한 학자들, 프랑스의 백과전서파나 다비스 슈트라우스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같은 청년 헤겔 학파의 주장을 대체로 수용하면서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헤겔 법철학 비판》의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최초로, 그리고 가장 풍부하게 종교 분석을 전개한다.
독일에서 종교 비판은 본질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종교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다.
포이어바흐의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그대로 이용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반종교적 비판의 기초는 인간이 종교를 만들지 종교가 인간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왜 인간이 종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느끼는가 하는 문제로 곧장 나아간다.
종교는 아직 역경을 딛고 자립하지 못한 인간이나 이미 자신을 다시 잃어버린 인간의 자기의식이자 자각이다. 그런데 인간은 세계의 바깥에 웅크린 추상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의 세계, 즉 나라, 사회다. 이 나라와 사회는 세계에 대한 전도된 의식인 종교를 만들어 낸다. 왜냐하면 이 나라와 사회가 전도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역사유물론적 종교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은 '소외'를 가리킨다. 인간이 종교를 만드는 이유는 자기 노동으로부터,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채, 비록 자신이 만들었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고 오히려 낯선 힘으로 자신을 지배하는 세계에 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해서 초월적 힘이나 힘들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상상하지만 사실 이런 초월적 힘이나 힘들은 인간의 두려움, 희망, 염원이 투사된 것일 뿐이다.

4.2. 종교는 단순한 지배계급의 도구가 아니다

마르크스는 다음으로 박사학위 논문 몇 개를 써도 될 만한 주제와 사상들을 단 하나의 문장에 담아 종교의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설명한다.
종교는 세계를 설명하는 일반 이론이고, 세계에 대한 백과사전식 개요이고, 이해하기 쉬운 세계의 이치이고, 세계의 정신적 체면이고, 세계의 열광이고, 세계에 대한 도덕적 승인이고, 세계를 근엄하게 보완하는 것이고, 어디서나 위안과 정당화를 제공하는 보편적 토대다.
여기서 이미 마르크스가 단순히 지배계급의 도구로 종교를 환원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란 것이 밝혀지며 더욱 유명하며 이 항목의 제목이 된 문장을 포함한 다음 구절에서는 더욱 분명히 밝혀진다.
종교적 고통은 현실의 불행의 표현이자 현실의 불행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천대받는 피조물의 한숨이고, 몰인정한 세계의 인정이고, 정신을 상실한 현실의 정신이다. 종교는 사람들의 아편이다.
이 구절에 비추어 보면 마르크스는 종교를 지배자들이 사람들을 기만하고 조종하는 수단으로만 이해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종교는 현재 상황에 타협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불행을 표현하고 이에 항의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마르크스는 이해하고 있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종교는 이 두 가지 모순된 구실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는 지배 수단으로서의 역할과 저항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모두 가졌고 다른 종교들도 비슷하다.

등 수없이 많은 역사적 예시들이 이를 입증한다.[14]

4.3. 마르크스가 내린 결론

제일 처음 얘기한 바와 같이 마르크스가 이러한 분석에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따라서 종교에 반대하는 투쟁은 간접적으로 내세에 반대하는 투쟁이 되는데, 내세의 향기가 바로 종교다.
간단히 얘기해서 종교를 없애려면 세계를 변혁해서 사람들이 더는 종교에 의지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은유를 써서 길게 강조하면
사람들의 허구적 행복인 종교가 폐지되어야 사람들이 실제로 행복해질 것이다. 행복의 조건에 대한 허상을 버리라는 요구는 허상이 필요한 조건을 버리라는 요구다. 따라서 종교 비판은 종교가 후광 노릇을 하는 현세에 대한 맹아적 비판이다.
비판은 사슬에 꽂혀있던 가상의 꽃들을 뽑아냈다. 인간이 환상이나 위안 없는 사슬을 계속 차고 있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슬을 벗어 던지고 살아 있는 꽃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진리의 내세가 사라진 뒤에 현세의 진리를 확립하는 것은 역사의 과제다. 인간의 자기소외의 신성한 형태가 폭로된 뒤에 신성하지 않은 형태 속에 있는 자기소외를 폭로하는 것은 역사에 기여하는 철학의 당면 과제다. 따라서 천상에 대한 비판은 지상에 대한 비판으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법에 대한 비판으로, 신학에 대한 비판은 정치에 대한 비판으로 바뀐다.

5. 부정적인 영향

마르크스의 학문적 업적과 별개로 마르크스의 종교에 대한 관점은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종교인들이 희생된 원인을 제공하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들과 종파들을 고려하지 않고 싸잡아서 인민들을 현혹시킨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면서 평범한 종교인이나 인민들마저 학살한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의 추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일각에서는 종교계가 근본적으로 반공주의자가 될수 밖에 없는 보수적인 성향을 가져서 계급 투쟁의 일환으로 탄압당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물론 자발적으로 독재 정권이나 기득권층과 협력한 종교인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공산주의측의 학살로 인해 불가피하게 돌아선 경우도 많았다. 단적인 예로 스페인 내전 당시의 가톨릭 교회를 들수 있다. 당시 가톨릭 교회의 반동적인 모습이나 부패상은 교회의 고위층에 한정되었을 뿐 대다수의 종교인들은 같이 착취 당하고 고생하는 피지배계층에 가까웠다. 낭설과는 달리 교회가 소유한 땅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마르크스나 공산주의자들의 선동과 반대로 대다수의 일반 사제들은 민중들을 착취하거나 현혹하기는 커녕 그들과 동거동락하면서 이들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호소하는 모습들을 보였지만 이들조차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측의 맹목적인 혐오와 학살의 칼날을 피할수 없었다. 공화파측의 적색테러로 인해 수많은 교회들이 파괴되고 사제와 수녀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학살 당했다. 내전 이전에 3만명이었던 사제들 중 6800여명이 적색테러로 인해 학살당했고 공화파가 전쟁 후반까지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말라가 발렌시아 같은 지역에서는 50%에 달하는 사제들이 학살당했다.[15] 역시 기득권층과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차별받었던 스페인의 개신교 교회들마저 공화파측의 광신적인 종교 혐오로 인해 수없이 파괴되었다.

소련도 매우 악랄한 탄압과 학살을 일삼았는데 러시아 혁명이 갓 일어난 1918년에만 1만 2천여명에 달하는 사제들이 공산 정권에 의해 학살당했으며 전쟁 전 5만 5천여개에 달하던 교회들은 지속적으로 파괴되거나 탄압당한 끝에 문을 닫아 1927년에는 2만 9천여개로 줄어들었고 1939년에는 겨우 200-300여개의 교회만이 살아남았다.[16] 물론 러시아 제국 시절에 인민들을 착취하는 사제들도 존재했고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 편을 든 사제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17] 허나 교회 차원에서 한쪽을 지지하는 일은 없었다. 당시 총대주교였던 티혼은 백군 측을 축복하기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교회 조직의 정치적인 중립을 지킬 것을 명령했으며 내전 당시 볼셰비키의 종교인 학살 절대 다수는 적군측을 상대로 싸우기는 커녕 아무런 편도 안들거나 단순히 백군측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사제, 그리고 그들의 무고한 가족들에 집중되어 있었다.[18] 아무리 험난한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의견 표명을 한 사제들이나 그들의 무고한 가족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만행을 절대 계급투쟁이라는 미명으로 정당화 할수 없다. 소련 정부의 종교계 탄압은 내전 이후에도 꾸준하게 유지되었는데 이때쯤이면 러시아 정교회 러시아 제국 시절에 누렸던 모든 특권과 재산을 상실한 상태였뎐 데다 살아남기 위해 공산 정부에 어느 정도 협력까지 하면서 싹싹 빌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1917년과 1935년 사이의 기간 동안 9만 5천여명에 달하는 사제들과 수녀들이 학살당했고 탄압이 절정에 달했던 1937년-1941년에는 무려 10만여명이 총살되었다. 마르크스의 발언을 자기식으로 해석한 레닌과 그의 후계자들은 단순히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종교인을 탄압하는 것을 넘어 종교 자체를 절멸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19] 이를 일방적인 학살이나 제노사이드가 아닌 단순한 계급투쟁의 결과로 보는 것은 악의적인 왜곡에 불과하다.

독소전쟁 이후 스탈린이 종교 탄압을 크게 완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탄압은 미약하게나마 존재했다. 허나 흐루쇼프 시기에 정교회를 상대로 한 탄압이 다시 증가해서 2만 2천여개로 늘어났던 교회들의 숫자는 다시 7000여개로 줄어들었다. 사제들은 다시 수용소에 갇히거나 정신병자로 몰려 수감되었으며 정교회 신자들은 진급과 봉급 등에서 노골적인 차별을 받았다. 동독,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등에서는 표면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막으려고 했던 성차별, 인종차별, 민족차별과는 다르게 종교인들은 조직적인 차별을 받았고 정부가 직접 종교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을 주도했다.

급진적인 무신론, 반종교 이념은 비단 현실사회주의권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아나키즘 세력도 역사적으로 공유해 왔다.[20] 특히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제2공화국안 오히려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아나키스트 민병대들이 가톨릭 교회 방화, 성직자 학살에 열을 올린 반면 대외적인 이미지도 신경써야 되는 집권 여당이었던 사회노동당 정부가 오히려 자제를 촉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현실 공산권은 기본적으로 종교 탄압 정책을 일반적으로 밀었지만 정치적 필요나 여건에 따라 오히려 완급 조절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소련마저도 제2차 세계 대전 같은 격동기를 거치면서 정교회에 대한 박해를 완화할 수 밖에 없었고 독소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제3세계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와중에는 이슬람 박해를 완화할 수밖에 없었다. 북베트남 정권은 베트콩 시절부터 남베트남의 반체제 운동에 불교계의 참여가 상당히 크고 남베트남 응오딘디엠 대통령 가문과 측근들의 가톨릭이란 공공의 적이 있어 대충 직접적인 체제 비판은 하지 않는 선에서 불교계와 적당히 타협을 봤고 라오스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그나마 이웃 베트남과 비교해도 기본적인 식민지적 개발 자체도 너무 안 되어 공산주의고 나발이고 누가 정권을 잡던 간에 기본적으로 실무 관료를 할 수 있는 식자층 자체가 여전히 상좌부 불교 승려들뿐인지라 되려 공산정권이 불교계를 적극 포섭한 사례도 있다. 중남미도 20세기 초중반에는 멕시코 혁명 이후 혁명 정부가 반동적인 가톨릭계 상대로 크리스테로 전쟁이란 거대한 무장 반란까지 겪으면서 반종교 기조를 유지했지만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종교계와 가까워지는 성향을 보인다. 중남미는 원래 식민지 시절부터 식민당국, 유럽계 백인 정착자들 상대로 원주민이나 탈주노예들의 권익을 옹호하던 반체제 사제 집단의 전통도 강한지라 성직자들이 오히려 급진 좌익 혁명운동에 투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20세기 후반엔 해방신학이란 조류도 생기면서 연대의 여지도 더 커졌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만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본격적인 정치적 도전만 없으면 가톨릭계와 딱히 대립각을 새우지 않았으며 특히 카스트로 말년에는 혁신적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적극적으로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였고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권이나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도 해방신학계 쪽으로 가톨릭계를 포섭하려는 태도가 일반적이었다. 특히 21세기 들어와선 중남미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주로 친미 우파 성향 복음주의 개신교란 공적을 상대로 점점 더 중남미 좌파와 가톨릭계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듯한 모양새다.

하여튼 이러한 국가 무신론의 종교 박해 정책에 대해서 세속주의-좌파 진영 입장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참호전이 터지는 와중에 하느님의 복음으로 전쟁 이겨야 한다고 수입산 고급 촛대를 찾던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들과 소련 공산주의자들을 비교하며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눈이 찢어진 아시아인들이라 멸시당하던 러시아를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전세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피식민지 지식인들이 유학오는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지적했듯이 소련의 검열은 정교회 근본주의 나라였던 러시아 제국 시절보다 훨씬 더 빡빡했다는 반론도 있다.

사실 21세기에는 마르크스주의자들보다 우파, 반신론자, 과학만능주의자들이 더 종교에 적대적인 경우가 흔하며 오히려 좌파들은[21] 저러한 조류에 대해 경계를 표하면서 종교에 대해 우호적인 저술을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미국의 진보적 언론인인 크리스 헤지가 쓴 "나는 무신론자를 믿지 않는다(I Don't Believe in Atheists)"는 책의 제목만 봐도 직설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서구의 대안 우파들은 기독교 전통에 우호적인 경우가 많지만 일베저장소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는 대안 우파나 넷 우익들이 더 극단적인 반기독교 성향을 띄는 경우가 많다.[22]

구공산권이 거의 다 무너진 상황에서 특이한 경우라면 중국이다. 중국은 여전히 종교를 강렬하게 탄압하고 있는데 이것은 국가 무신론이라는 이념적 이유와 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세력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가 혼재되어 있다. 이는 중국의 유구한 전통인 민간 종교 조직이 반란군화되는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허나 중국 정부에 의해 탄압받는 종교 조직들이 대부분 사이비 종교에 가깝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현재 중국에서 통제받고 탄압받는 메이저 종교 조직들은 이슬람과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 계열과 티베트 등지에서 믿는 불교 계열인데 이들은 딱히 중국 정부에 반기를 든 적도 없고 사건사고를 일으킨 적도 드물다. 특히 중국의 이슬람 탄압은 악랄하기로 유명한데 이슬람 학자들을 대대적으로 감금하거나 살해하는 것은 물론 신장 재교육 캠프라는 강제 수용소까지 만들어서 신장 지역의 이슬람 교세를 현재진행형으로 말살하려고 들고 있다.[23] 그렇다고 이들이 딱히 테러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대부분 차별만을 반대하고 중국에 충성하는 시민들인데도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수감하고 탄압하는 중이다. 극소수의 극단주의 일파가 테러 사건을 일으키고 이것을 명목으로 중국 정부의 이슬람 말살 정책을 정당화 하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연좌제 옹호 궤변라고 보면 된다.

6. 기타

마르크스의 어록 중에서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와 유명세를 다투고 있으며 종교 비판에서는 프리드리히 니체 신은 죽었다와 쌍벽을 이루어 자주 인용되는 명언 중 하나다. 물론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도 비슷하다.

어쨌든 마르크스 사상의 근간은 철저한 유물론이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종교를 부정적인 의미에서 아편이라고 일컬었든 종교의 순기능을 얼마간 인정했든 최종적으로 추구한 바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마르크스 사상은 종교를 극복하고 종교를 통한 위안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기계의 신화로 유명한 사상가인 루이스 멈포드는 저 말을 뒤집어 현대에는 "아편이 인민의 종교가 되었다."고 하였다.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의 신앙의 옹호자 퀘스트를 하다 보면 옥센푸르트 대학의 학생들이 길가의 성지를 부수는 걸 볼 수 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옥센푸르트 대학의 프리드리히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는 모양이다. 위쳐란 걸 밝힌 뒤엔 괴물과 싸우다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하는 걸 봐선 누가 봐도 교수란 인간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패러디다.

특이하게도 공산주의 국가였던 남예멘 아프가니스탄(1987년 이후)은 국교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둘 다 까트, 아편 등 마약으로 유명한 나라다.

레이몽 아롱은 마르크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를 비틀어 '(마르크스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종교를 이용하여 인민의 고통과 호소를 무력화하는 사람들이 항상 문제지만 초대 기독교인들로서는 종교에 취해 현실의 문제를 도외시했다기보다는 종교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올바른 사회의 구현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 기독교는 일제강점기, 6.25 전쟁 당시 혹독한 고난을 견디기 위하여 현세에서 고난을 당하지만 장차 올 내세에서는 큰 행복을 누린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많이 전했는데 이것도 지나치면 말 그대로 시민의 마약의 요소가 된다.

사주, 무당, 굿 등은 현대에 와서 유교와 같은 맥락으로 종교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에서 예시로 볼 수 있다. 특히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청년들이 사주를 보거나 명리학을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신을 죽이는 방법에선 볼세비키 남매가 종교를 아편이라고 하는 대사를 한다.


[1] 오늘날에도 아편 성분은 가장 강한 진통제로 쓰이고 있고, 병원에서 수술 후에 꽂아주는 무통주사도 마약 성분이 기반이다. [2] 특히 자본주의의 모순 [3] 위쪽 해석의 해당 부분과 비교해 보기 바란다. 영어 위키백과 '인민의 아편' 항목 age-of-the-sage 페이지 참고. [4] 원문: Religion is one of the forms of spiritual oppression which everywhere weighs down heavily upon the masses of the people, over burdened by their perpetual work for others, by want and isolation. Impotence of the exploited classes in their struggle against the exploiters just as inevitably gives rise to the belief in a better life after death as impotence of the savage in his battle with nature gives rise to belief in gods, devils, miracles, and the like. Those who toil and live in want all their lives are taught by religion to be submissive and patient while here on earth, and to take comfort in the hope of a heavenly reward. But those who live by the labor of others are taught by religion to practice charity while on earth, thus offering them a very cheap way of justifying their entire existence as exploiters and selling them at a moderate price tickets to well-being in heaven. Religion is opium for the people. Religion is a sort of spiritual booze, in which the slaves of capital drown their human image, their demand for a life more or less worthy of man. [5] 원본: 70여 년전 파리콤뮨을 경험한 시대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종교는 인민을 아편중독환자로 만드는 아편독이다!』하여 만히는 종교의 기원과 종교의 폐해을 명정히 하여 과학적 메스로 종교가 인민의게 아편독이 되는 것을 표명하엿거니와 20년전, 농민과 노동자의 천하가 된 노국청년들은 그 보담도 좀 방법이 달러서 『신을 사형집행한다』은 형식으로 신의 모형을 만드러 수래 우에 실고 시가에 끄집고 도라다니면서 시위적으로 반종교운동을 하엿다 합듸다. [6] 일제강점기에 출간된 신문 잡지나 서적 등을 찾아보면 위에 인용된 내용 외에도 마르크스의 저 말을 인용해 종교를 비판하거나 이 말을 들어 공산주의를 비판한다든가 하는 식의 글을 매우 쉽게 찾을 수 있다. [7]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마르크스는 무신론자로서 종교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단 힘든 마음을 위로 하는 하나의 방편으로서는 존중하는 쪽으로 말했다 해석할 수도 있다. [8] 여기서의 치료제란 사회적 모순에 대한 근본적 수정, 즉 혁명을 뜻한다. [9] 이런 사고방식은 오히려 리처드 도킨스 등 우파적 반신론자들의 생각에 가깝다. [10] 물론 마르크스주의와 종교를 결합시킨 사회주의 운동도 있다. 마르크스는 무신론자였지만 마르크스주의는 반드시 무신론을 전제로 해야 할 필요는 없다. [11]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개신교나 다른 종파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12] 우리가 흔히 전쟁영화에서 많이 봤을 진통제 모르핀이 아편을 정제해서 만들었으며 헤로인 역시 부작용 없는 모르핀 대용 진통제로 개발되었다. 특히 요즘 많이 들리는 펜타닐도 진통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13] 루터를 후원한 세력은 작센 선제후를 포함한 신교로 개종한 귀족이었다. [14] 다만 전세계적으로 전자가 주류에 가깝고 후자가 비주류 계열에 속하는 경향이 강하다. [15] Cueva, Julio de la. “Religious Persecution, Anticlerical Tradition and Revolution: On Atrocities against the Clergy during the Spanish Civil War.” Journal of Contemporary History 33, no. 3 (1998) [16] Davis, Nathaniel. “The Russian Orthodox Church: Opportunity and Trouble.” Communist and Post-Communist Studies 29, no. 3 (1996) [17] 사실 이것도 스페인 내전 때처럼 볼셰비키들이 공개적으로 교회를 비난하고 탄압해 대니 자업자득이었다. 사제들도 전부 반동 귀족들 편만 든 게 아니라서 케렌스키 같은 자유주의 세력과 협력한 사제들도 있았다. [18] Dimitry V. Pospielovsky. A History of Soviet Atheism in Theory, and Practice, and the Believer, vol 1: A History of Marxist-Leninist Atheism and Soviet Anti-Religious Policies, St Martin's Press, New York (1987) [19] John Anderson, Religion, State and Politics in the Soviet Union and Successor Stat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20] 다만 아나키즘의 역사에서 톨스토이, 엘륄 등의 기독교 아나키즘도 중요한 조류이기 때문에 아나키즘이 반드시 무신론, 반종교 혹은 반신론이라고 볼 수는 없다. [21] 사실 실제 활동의 차원에서는 종교적 성향의 좌파가 적지 않다. 한국의 1970년대 노동운동도 거의 개신교에 기반한 것이다. [22]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당시에도 일단은 생명이 우선이라고 주장한 것은 개신교계를 제외하면 좌파 세력이 대부분이었다. [23] 상술했듯이 이는 종교적인 이유보다 민족 말살이라는 목적이 더 크지만 위구르족의 민족성에서 유독 이슬람을 집중적으로 탄압하기 때문에 종교 탄압이 아니라고 볼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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