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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4-14 14:20:41

Na Sung Bum

[((틀:NC 다이노스/간략(외야수))]
나성범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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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KBO 리그 역대 골든 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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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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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모 해태
장효조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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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모 해태
이광은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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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돈 빙그레
이강돈 빙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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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철 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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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림 쌍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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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근 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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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수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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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 LG
손아섭 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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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로하스 주니어 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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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키움
홍창기 LG
포수 | 투수 | 1루수 | 2루수 | 3루수 | 유격수 | 외야수 | 지명타자 | 사랑의 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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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KBO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홈런왕
모상기( 삼성 라이온즈 2군) 나성범( 고양 다이노스) 안태영( 화성 히어로즈)

2012년 KBO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타점왕
모상기( 삼성 라이온즈 2군) 나성범( 고양 다이노스) 서상우( 상무 야구단)

보유 기록
한 경기 개인 최다 득점 6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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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범의 역임 직책 및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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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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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2012 2013~2014 2015~2016 2017 2018
김동건 이호준 이종욱
박석민 손시헌 손시헌 박석민
<rowcolor=#ffffff> 2019 2020~2021 2022 2023 2024
나성범 박민우 양의지
노진혁 양의지 손아섭 손아섭 박민우
<rowcolor=#ffffff> 2025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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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등번호 47번
팀 창단 나성범(2012~) 현역
}}} ||
파일:나성범타격.jpg
NC 다이노스 No.47
나성범(羅成範 / Na Sung-Bum)
생년월일 1989년 10월 3일 ([age(1989-10-03)]세)
체격 183cm, 100kg
출신지 광주광역시 남구
학력 광주 대성초 - 진흥중 - 광주진흥고 - 연세대[1]
포지션 투수[2] 중견수, 우익수[3]
투타 좌투좌타[4]
프로입단 2008년 신인드래프트 4라운드 전체 32번 ( LG)[5]
2012년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10번 ( NC)
소속팀 NC 다이노스 (2012~)
군복무 병역특례 예술체육요원
등장곡 드렁큰 타이거 - Monster
응원가 김건모 - My son[6]
구단 자체 제작 1 - 작사/작곡: 박은비[7]
구단 자체 제작 2 - 작사/작곡: 박은비[8] [9]
구단 자체 제작(2019) - 작사/작곡 : 김주일[10]
연봉 5억 5000만원[11] (27.9%↑, 2019년)
가족 부모님, 형 나성용, 배우자 박은비, 슬하 1남 1녀
종교 기독교 ( 생명의말씀선교회)

1. 개요2. 프로 이전
2.1. 어린 시절2.2. 고교 시절2.3. 대학 시절
2.3.1. 연고전
3. 프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별명6. 여담7. 연도별 성적

1. 개요

파일:external/ncdinos.firstmall.kr/54_1489423954_14015232_profile.jpg

NC 다이노스의 야구선수. 창원의 새로운 슈퍼스타[12]이자 NC 다이노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다.[13]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좌완 강속구 투수 유망주였지만 프로 입단 후 타자로 전향하여 국가대표까지 나갈 정도로 성공한 선수. 게다가 얼굴도 준수해서 많은 NC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산 아이돌을 맡고 있다[14].

2. 프로 이전

2.1. 어린 시절

1989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형인 나성용과는 두 살 터울[15]. 초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이 야구부에 들어갔으니 야구에 흥미를 가질 법 한데 본인은 로봇 같은 과학 쪽에 관심이 있었고 야구 쪽에는 흥미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달리기 대회에서 반 대표로 뛰었던 그의 빠른 발에 주목한 야구부 감독이 계속 설득하다가 건넨 만 원 때문에 야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이후 야구부 학생들이 맞는 것을 목격하고 하기 싫어하다가 부모님 때문에 하게 되었다.[16]

2.2. 고교 시절

고교시절에는 투수 이전에 외야수로서도 자주 출장했다.

2008년 드래프트에서 2차 4순위로 LG 트윈스에 지명되었으나 연세대학교에 진학하였다. LG가 싫어서 대학에 진학한 것이 아니라, 진학이 결정된 선수를 LG가 숫자 채우기 식으로 지명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당시 드래프트에서 LG 4순위부터는 모두 대학 진학이 결정된 선수를 지명한 것. [17]
이는 형 나성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둘 다 LG의 지명을 받았지만 연세대에 입학했다. 여러 인터뷰를 조합해 보면, 나씨 형제의 부모님도 만일 프로 야구선수가 안 될 경우 대신 교사라는 직장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에 대학에 갈 것을 원했고, 연대 진학이 결정된 상황에서 LG의 픽순위가 높지도 않았기 때문에 연대 진학을 결정한 듯하다.

2.3. 대학 시절

파일:external/coresos.phinf.naver.net/6hiUd01519qpekuuxity_qmnzh4.jpg
그 때 그 연대 킹카 시절 칠봉이??? 프로게이머인줄 기안84도 보인다

연세대에 입학한 2008년부터 4학년이 되는 2011년까지는 대학 야구리그에서 연세대 야구팀의 좌완 에이스였다. 지옥에서라도 데리고 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로서 이름을 날렸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계약 제의를 여러 차례 받기도 했다. 그런데 손을 뻗은 에이전트가 다름 아닌 마이너스의 손 다글렀쓰 조였다.[18] 결과적으로 천만다행.

대학리그 3년간의 방어율은 1학년 때 1.70, 2학년 때 2.92, 3학년 때 2.48이었으나 4학년 들어 방어율이 3점대까지 올라가는 급격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후술할 연고전에서의 활약 덕분에 연세대에서는 2000년대 이후 한정으로 신지애 다음으로 유명한 스포츠 선수 동문으로 손꼽힌다. 90년대까지 더 윗학번 선배들은 워낙 쟁쟁해서

2.3.1. 연고전

파일:external/coresos.phinf.naver.net/4jdUd015qchiejnqst97_qmnzh4.jpg
파일:external/chunchu.yonsei.ac.kr/10999_2454_48.jpg
연고전에서는 4년간 4경기 34 2/3이닝을 던져 2승 1패(1무)를 거두어 연대의 노예로 이름을 날렸다.

1학년 때부터 연대의 에이스였다. 2008 연고전에서부터 선발 등판, 3회초 대거 7득점한 타선의 지원에 힘입어 9이닝 완투 2자책점의 훌륭한 성적으로 9:2의 완승을 거둔다. 다음해 2009 연고전에서는 8회까지 3점만 내주는 호투를 펼쳤으나, 당시 고려대의 에이스였던 신정락(현 LG 트윈스 투수)도 호투하며 마지막까지 박빙으로 경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당시 양승호 고려대 감독의 대타 작전으로 9회초 무사에 연속 3루타와 단타를 맞고 4:5로 역전당해 완투패를 기록했다.

2009년 연고전은 나성범에게 있어 다른 의미로 안타까운 기억이기도 하다. 이 날 경기에서 나성범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 어깨를 크게 다쳤는데, 해당 경기는 물론 투수 생활을 마치는 날까지 이전의 구위를 회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성범은 4학년 시절에도 147~8km/h 의 공을 뿌리며 야구 월드컵 대표로 선발되었지만 150km/h를 넘나드는 대포알 직구는 그 날 이후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결과에는 나성범뿐만 아니라 연세대 코치진들의 책임도 있는데, 경기 중에 부상을 당한 나성범을 무리하게 완투시키려 했던 것이 바로 그 부분이다. 이 경기에서 나성범의 투구수는 150구를 넘어갔으며 부상을 당한 몸으로 그 정도의 전력투구를 시키는 것은 자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2010 연고전 야구에서는 경기 초반 만루에서 싹쓸이 2루타를 맞고 3실점하여 연세대의 패색이 짙어졌으나, 타선이 간신히 동점까지 쥐어짜내면서 간신히 3:3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린다. 그리고 7회 이후에는 지친 나머지 제구력이 시망이라 사사구를 남발하기도 했으나, 9회말 2사 만루에서 풀카운트 삼진으로 대타 김경도를 잡아내면서 4:4 무승부로 경기를 마무리했다.[19] 6회까지 0:3으로 지고 있던 연대 학생들은 이 야구 만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에 환호했으며, 고대 학생들은 말도 안 되는 결과에 아연실색하며 자교의 물타선을 욕했다.

2011 연고전에서는 0:1로 지고 있던 2회 2사 1, 2루의 위기 상황에서 계투로 등판, 경기 종료까지 7 2/3이닝 동안 140구 이상 던지고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3:1로 승리를 챙겨 고려대학교 학생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경기 말부터 잠실구장 3루 측(고려대 응원석)에서는 "또 쟤 나왔냐?" "저건 사기야." 소리가 퍼져나왔다.(...) 부상으로 인해 선발출전이 어려웠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투구 내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빈번히 위기상황을 맞이했지만 직구의 구위를 바탕으로 꾸역꾸역 넘겼다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고대생들은 나성범이 아니라 자기 팀 빠따 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20]

흥미롭게도 이 날 경기에서 2회 부터 9회까지 마운드를 지켰던 나성범을 상대했던 고려대학교 투수는 3명으로, 두산베어스 1차지명 윤명준, SK와이번스 1차지명 문승원, 그리고 SK와이번스 임치영이었다. 대학 최정상 선발진들이 계투로 나오는 중요한 경기에서 비자책으로 승리를 거둔 나성범은 타자전향설이 불거진 시점에서 '투수로서의 가치하락' 이라는 의혹을 깨끗이 씻어냈다.

여담으로 2011 연고전 방송제(5회말 종료 후 진행)에서 고려대 방송국에서는 성동일의 현대스위스 광고를 더빙하여 "나성범은 아직도 직구밖에 모른다~" 라는 디스를 시전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대학교를 디스하면 디스했지 특정선수를 디스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으며, 그 정도로 나성범이 연고전 야구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고려대학교 타자들이 나성범의 직구를 공략하기 위해 합숙훈련 과정에서 피칭머신의 속도를 160에 맞춰놓고 연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성범의 역대 연고전 전적만 따지면
2008 9이닝 2실점 2자책 완투승
2009 9이닝 5실점 4자책 완투패
2010 9이닝 4실점 3자책 완투무승부
2011 7 2/3이닝 무실점 무자책 승
4경기 34 2/3이닝 ERA 2.34 2승 1패
...라는 어마어마한 전적을 기록했다.

나성범의 연고전 활약은 연세대와 고려대의 당시 전력차를 생각하면 더욱 빛을 발한다. 연세대학교에 나성범이 재학중이던 2008 ~ 2011년에 연세대학교에서 배출한 인지도 있는 프로선수는 그의 친형인 삼성 라이온즈 나성용, KT 위즈 (전 두산 베어스) 유민상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고려대학교 야구부는 당시 대학리그 최강으로 꼽혔으며, 나성범과 동기급인 선발 트로이카 임치영, 윤명준, 문승원과 나성범이 신입생이던 시절 30.1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던 대학리그 최고의 투수였던 신정락, 그리고 타선에는 김재율, 홍재호, 박세혁, 황정립, 김상호, 문상철 등 당시 대학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문승원과 윤명준은 1라운드 지명, 신정락은 2년 전 드래프트되긴 했지만 전체 1순위 지명) 그래서 김한중 총장은 나성범을 끌어안고 응원단상위로 올라가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여러분 우리 나성범 선수가 138구를 뿌리며 우리에게 승리를 으흐흑" 이라고...

3. 프로 경력

3.1. NC 다이노스

3.1.1. 지명과 타자 전향

파일:external/coresos.phinf.naver.net/7djUd015cejw1qf7braw_qmnzh4.jpg
지명 당시, 옆에는 박민우.

2012 신인드래프트에서 신생팀 NC 다이노스에 2라운드 전체 10순위로 입단을 하게 되었다.

대졸임을 감안해도 대어임이 분명했지만 1라운드 지명이 안 된 것은 드래프트 규정 때문으로 야구 규약 108조 2항에 따르면 고등학교때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았음에도 대학 진학을 한 경우 1라운드에서는 지명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나성범이 고교를 졸업할 당시에는 1차지명이 있었던 때라 규정이 '1차지명 불가'였는데 전면 드래프트로 바뀐 후 문구만 수정해 그대로 이어왔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규약을 확실히 개정할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크게 이슈화되지는 못했고 KBO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21] 어쨌거나 NC 입장에서는 넝쿨째 굴러온 호박인 셈.

사실 이 규정 때문에 원래 나성범은 2010 우승팀에 주는 포상이다라는 얘기가 야구 팬들 사이에 있었고, 덕분에 2010 시즌 우승팀인 SK 와이번스 팬들이 상당히 설렜지만 NC가 창단되면서 2라운드 우선 지명권이 NC에게 돌아가게 됨에 따라 망했어요.

지명은 분명히 투수로 받았지만 2011년 가을캠프에서 타자 전향을 선언했다. 김경문 감독의 권유로 전향했다고 하며[22], 김경문 감독도 타자로서의 재능에 중점을 두고 지명했다고 한다. 물론 타자로서의 재능을 더 높게 본 것도 있겠지만, 부상 때문에 전성기 시절의 공을 못던지게 된 탓도 있을 듯하다. 대학리그에서의 스탯을 봐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방어율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외야수로도 자주 뛰었으며 대학리그에서도 타자로 자주 뛰어 스카우터들에게 컨택 능력과 장타력을 입증했기 때문에 전향에 큰 무리는 없다. NC가 작정하고 간판 타자로 키우기 위해 지명한 듯. 어쨌든 이 전향이 과연 성공일지 실패일지는 두고봐야 할 듯. 성공한다면 NC 입장에서도 훌륭한 3번 타자를 얻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1.2. 2012 시즌

2012년 퓨처스 리그 개막 이후 전반기 동안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훤칠한 외모에 재능까지 합쳐져 NC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후반기에 들어서는 약간 페이스가 쳐졌다. 그 이유는 상대팀들의 집중적인 견제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몸에 맞는 볼이 무려 33개일 정도로 몸에 맞는 볼이 자주 나온 것이 컸다. 퓨처스 리그 북부, 남부 통틀어 나성범 다음으로 몸에 맞는 볼이 많은 게 14개로 압도적인 1위다. 1군 기준으로 봐도 1위가 박석민의 27개. 마그넷정이라는 별명이 있는 최정이 21개인데 퓨처스에서 저 정도의 사구라면... 특히 장원준은 나성범이 홈런친 뒤 다음 타석에서 대놓고 빈볼을 던지기도 했다[23].

결국 시즌 초중반의 임팩트 있던 모습에 비해서는 다소 평범한 성적인 0.303, 홈런 16, 67타점, 29도루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팀 내 유일한 퓨처스리그 3할 타자로 활약했고, NC가 밀어주는 간판 타자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할수 있다.

3.1.3.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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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3성범2.jpg

타자 전향 2년, 1군 진입 1년차 만에 프로에서 의미있는 성적을 내며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4경기 404타수 98안타 14홈런 64타점 타출장 .243/.319/.416. 비록 팀 동료 이재학에게 신인왕을 내주긴 했으나 리그에서 주목 받은 신인 선수로 올라선 성공적인 시즌이 되었다.

3.1.4.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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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4성범.jpg

파일:external/img.sbs.co.kr/30000415650_700.jpg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당시

기대에 비해 조금은 아쉬웠던 지난 시즌을 뒤로하고 완벽히 자신의 가능성을 터뜨리며 1군 2년차 만에 3할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했다.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에도 승선하여 금메달까지 따내면서 병역 문제까지 해결. 시즌 최종 기록은 123경기 477타수 157안타 30홈런 101타점 타출장 .329/.400/.597. 시즌 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는 데뷔 첫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했다.

3.1.5.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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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5성범p.jpg

이 시즌부터는 강점인 어깨를 살리고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포지션을 우익수로 변경했다. 비율 스탯 자체는 지난 시즌보다 하락했으나 144경기 전 경기 출전과 함께 28개의 홈런과 23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20-20 클럽에 가입했다. 최종 성적은 144경기 564타수 184안타 28홈런 23도루 135타점 타출장 .326/.373/.553. 2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까지 얻어냈다.

한편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는 6:4로 뒤지고 있던 9회초 2사 상황에서 투수로 등판해 이닝을 끝낸 이후 9회말 2사에서는 타자로 나와 뜬공으로 물러나며 2015년 NC 다이노스의 마지막 투수이자 마지막 타자가 되었다.

3.1.6.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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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전 경기 출전과 함께 KBO 리그 역대 7번째 3년 연속 100타점을 달성했다. 하지만 후반기에는 김태군이 부럽지 않은 처참한 타격을 보여주며 타고투저의 리그 상황에도 불구하고 3할 턱걸이의 타율, OPS 0.885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게다가 삼진 1위까지.

3.1.7.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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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성범쓰리런.jpg

수비 도중 당한 손목 부상으로 인해 예년보다 20경기 정도를 결장했지만 비율 스탯에서 만큼은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특히 2014 시즌 OPS 0.998을 기록한 이후 계속해서 떨어지기만 하던 OPS였으나 드디어 1.000을 찍는데 성공했다.[24]

이와 함께 포스트시즌에서도 드디어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었는데, 2014~2016년 포스트시즌 통산 기록이 18경기 타율 .224에 1홈런 3타점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이번 시즌에는 10경기에 나서 4할의 타율에 4홈런 11타점을 기록했다. 2017년 이전의 포스트시즌 WAR은 투수로 0.1이닝 던졌을 때보다 낮았다는 점에서 얼마나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했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

3.1.8.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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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성범4년연속100득점.jpg
파일:나성범4년연속170안타.jpg

주전 선수드의 잦은 이탈과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으로 인해 팀은 창단 이후 최초로 꼴찌를 기록했으나 전 경기 출전 및 수비 최다 이닝을 기록하며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누적과 비율 스탯 모두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었고, 지난 시즌에 비해 무려 0.1이나 떨어진 .899의 OPS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홈런 역시 23개에 머물렀고 91타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100타점에도 실패.

3.1.9.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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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플레이 스타일

KBO 리그의 대표적인 5툴 플레이어 중 하나. 매년 3할 타율과 150안타 이상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컨택에, 20홈런 이상과 5할 이상의 장타율을 꾸준히 기록할 파워를 가졌다. 2014년에는 3할 30홈런 100타점도 기록해본 적 있으며, 20-20 클럽 기록도 갖고 있는 준족이다. 또한 투수로서 150km에 육박하는 공을 던질 수 있을 정도의 강견이며, 지금은 공격력을 살리기 위해 우익수로 전향을 했지만 2년 간 풀타임으로 중견수를 소화했던 수비를 갖춘 만능 선수이다.[25] 세이버메트릭스로 봐도 프로 데뷔 이후 스탯티즈 기준 통산 WAR이 28.44로 동시기 전체 야수 중 4위를 기록하고 있다.[26]

홈런을 치는 클린업 타자이지만 자기 뒤에 나왔던 예전 동료처럼 발이 매우 빨라서 내야안타도 많이 생산해낸다. 또한 병살타가 될만한 타구도 선행주자는 죽인 뒤 본인의 발로 어찌어찌 출루하는 경우도 꽤 있다.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릴 수 있는 타자치고는 발사각도 상당히 낮다. 인플레이 타구의 평균은 10도 근처에 머무르고 있으며, 잘맞은 타구의 대부분은 낮은 탄도에 아주 빠른 속도를 가진 라인 드라이브 타구이다. 나성범이 2014년 이후 30홈런을 치지 못하는 이유로 이 발사각을 꼽는 사람도 있다. 다만 빠른 발과 이 라이너 타구가 맞물려 상당히 높은 BABIP를 뽑아내고 있는데, 통산 BABIP가 3할 후반에 달하며 2017년에 기록한 .413의 BABIP은 역대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들 중 전체 1위의 기록이다.

통산 초구 타율 4할이 넘을 정도로 높고, 홈런도 전체 118개 중 22개나 쳤을 정도[27]로 상당히 공격적인 타자이다. 초구에 배트가 나갈 확률이 거의 반에 달하며, 사실 전체 스윙%가 50%를 넘길 정도로 상당히 공격적이다.

타석당 삼진 비율이 매년 20%[28] 정도로 높다. 삼진이 많은 유형의 타자이며, 특히 스윙 삼진, 그 중에서도 떨어지는 공에 많이 당했다. 그 반대로 볼넷을 얻어 내는 능력은 홈런 타자 치고는 굉장히 나쁘며, 그만큼 절망적인 BB/K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선구안을 조금씩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2014년 37.5%나 되었던 O-Swing%는 2015년 33.1%, 2016년 32.4%로 차츰 줄여나가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2016년 볼넷 수가 급격히 증가하며 종전 최고인 32개를 두 배나 뛰어넘는 67개를 기록했다. 그로 인해 볼삼비가 2015년(0.25)보다 배로 증가(0.49)했다. 순출루율도 2015년 .047에서 2016년 .079으로 늘었다. 하지만 2017년에는 이 지표들이 다시 하락했지고[29], 2018년엔 [30] 더욱 하락해 커리어 초반으로 다시 퇴보중이다.

타자 전향 이후 2014년에 정점을 찍었으나 해를 갈수록 OPS, wRC+ 등의 스탯이 약간씩 퇴보하고 있었다.[31][32]

좌타자지만 좌완 상대로 굉장히 강하다. 통산 우완 상대 타율보다 좌완 상대 타율이 더 높을정도.

체격이 아주 좋고 운동 능력이 훌륭한 툴덩어리라 추후 상위리그 진출을 노려 볼 수 있는 젊은 야수로서 넥센의 김하성, 삼성의 구자욱 등과 함께 첫 손에 꼽히는 선수이다. 약점은 위에도 쓰여 있듯이 선구안이다.

선구안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선수로 브레이킹 볼, 개중에서도 특히 떨어지는 공에 매우 약한 모습이 자주 보인다. 약점이 매우 명확하고 이 부분만 개선되면 상위리그 진출을 노려볼 수 있다는 평가지만, 그걸 고치지 못한 채 몇 년간 성장이 정체되어 있고 대졸 야수로서 나이도 어느덧 30대에 진입. 기량 발전이 주춤해질 나이인지라 나성범은 원래 이 정도가 한계인 선수가 아니냐는 회의론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

2017년~18년 들어서는 BB/K나 장타력등, 타격에선 나성범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났던 박병호, 김현수, 이대호 등이 잇달아 MLB에서 실패를 맛보고 리턴함에 따라 그들보다 급수가 떨어지는 나성범의 MLB진출은 거의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물론 2017 시즌에는 BB/K가 개선되고 장타율, 출루율이 크게 개선되어 한 걸음 나아가는 데 성공하였으나 그마저도 박병호, 김현수의 진출 직전 성적에는 미치지 못한다. 더군다나 2018년엔 다시 성적이 퇴보하였다. 그리고 상위리그 진출을 논하기엔 나이도 늦은 감이 있다.[33] 이 기사를 보면 본인도 예전보다는 회의적으로 보는 듯 하다. 하지만 2018 시즌 중 스캇 보라스 에이전시 계약을 맺었고, 2019 시즌 이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MLB 진출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상위리그에서 통할 가능성은 낮아보이지만, KBO 수준에서는 충분히 먹히는 선구안이며, 다른 능력은 말할 것도 없는지라 현재 상태에서 더 성장하지 못하더라도 KBO에서는 충분히 좋은 외야수인 만큼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활약을 해 줄 것이다. 어쨌든 이러니저러니 말은 많아도 NC 다이노스에서 가장 잘하는 타자이며 제일 믿을 수 있는 타자다.

큰 체구로 뛰는 야구를 하는 데서 오는 부상의 위험이 커보이지만. 정작 2013년에 손바닥 유구골 골절로 1달, 2017년 손목 부상으로 보름 정도 빠진 것을 제외하면 잔부상도 걸린 적 없다. 15,16,18시즌 3시즌을 144경기 전경기 출장이라는 놀라운 기록도 남겼다. 이 정도면 금강불괴라 불러도 될 정도. 아무리 잘해도 경기에 나오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듯이, 이런 튼튼한 몸은 분명 나성범의 커다란 장점 중 하나이다.

5. 별명

'나'라는 성이 특이한 것도 있고 마지막 자인 '범'에도 찰지게 붙는 말이 많아서 웬만한건 갖다 붙이는 편이다. 나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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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육중한 몸으로 빠르게 전력질주하는 모습이 흡사 코끼리와 닮았다 하여 나끼리라고도 한다. 한 코치는 나끼리가 뛰는 모습에 땅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

6. 여담

7.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2 NC 다이노스 1군 기록 없음(NC 1군 미참가)
2013 104 404 .243 98 18 5 14 64 55 12 48 .319 .416
2014 123 477 .329 157
(5위)
28 5 30 101
(5위)
88 14 57 .400 .597
2015 144
(1위)
564 .326 184
(2위)
34 5 28 135
(4위)
112
(4위)
23 48 .373 .553
2016 144
(1위)
572 .309 177 37 2 22 113 116
(4위)
7 76 .388 .497
2017 125 498 .347
(4위)
173 42
(1위)
2 24 99 103 17 70 .415 .584
(5위)
2018 144
(1위)
556 .318 177
(5위)
36 3 23 91 110
(4위)
15 59 .381 .518
KBO 통산
(6시즌)
784 3071 .315 966 195 22 141 603 584 88 347 .381 .530

투수기록[4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15 NC 다이노스 1 0.1 0 0 0 0 0.00 1 0 0 3.00


[1] 체육교육학과(2008학번) [2] 후술하겠지만 대학 시절까지는 유망한 좌완 파이어볼러였다. 프로 입단 이후에는 외야수로 전향. 그러나 2015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는 투수로 등판했다! 0.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방어율 0점대 투수의 위엄을 선보였다. 여담으로 나성범이 선호하는 등번호인 47번은 좌완투수가 다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LG 트윈스의 투수코치인 이상훈 톰 글래빈을 존경해 그 의미로 47번을 달았으며 코치로 복귀한 이후에도 계속 47번을 달고 있다. 이외의 KBO 리그의 다른 팀에선 한화 이글스 권혁, SK 와이번스 박희수, kt 위즈 박세진, KIA 타이거즈 정용운까지 10개 구단 중에서 5개 구단의 선수가 좌완 투수로서 47번을 달고 있다. 또한 나성범은 대학 시절부터 47번을 달고 활약했었던 좌완투수이기도 했다(4학년 때만 21번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나성범에게도 47번이 자신에게 의미있는 번호일 수도 있다. [3] 데뷔 이후 2014년까지는 붙박이 중견수로 활약했으나 2015년부터 우익수로 전향했다. 그 이후에는 WBSC 프리미어 12나 2017년 8월 15일 경기에서 중견수로 출장한 것이 전부. [4] 등록상으론 좌투좌타이지만 필요시에는 내야수로서 오른손으로도 던질 수도 있다고 한다. [5] 연세대학교 입학으로 인해 지명권 소멸. 지명 당시에도 대학 입학이 확정적이었기에, LG는 당시 스카우터였던 이분의 삽질로 인해 귀중한 픽을 날려버리는 실수를 하게 되었다. LG갔으면 못하다가 다른팀가서 탈G효과가 터졌을수도 [6] 나~ 나~나 성범~ 나는 다이노스 나성범~ 나는 다이노스 나성범~ NC 나성범~ (X2) [7] NC의 홈런타자 나성범 오늘도 홈런치네 (어이!어이!어이!) NC의 홈런타자 나성범 다이노스에 승리 위해 (어이!어이!어이!) 날려버려(안타!) 날려버려(홈런!) 다이노스 나성범 [8] 나나나나나 나나나나성범x2 다이노스의 나성범 오오오 날려라 홈런 오오오오오오오오오 승리를 위해x2게임에서 들어본 브금같다. [9] 두 응원가 모두 나성범 선수의 부인이 직접 작사/작곡했다. [10] NC의 나성범 워어어어어 승리를 위하여 워어 NC의 나성범 NC의 나성범 워어어어어 승리를 위하여 워어 NC의 나성범 나! 성! 범! [11] KBO 리그 8년차 최고 연봉. 종전 기록은 2002년 이승엽의 4억 1000만원. [12] 비슷한 슈퍼스타 후보로 창원 LG 세이커스 김종규가 있다. 근데 아무래도 프로야구 프로농구의 흥행 차이가 크다 보니 창원에서도 김종규보단 확실히 인지도가 높다. 뭐 창원은 농구도 인기가 많은 곳이긴 하지만. [13] 구단이 1군 데뷔 전부터 프랜차이즈 스타로 밀어주었고, 나성범도 그 기대에 부응했다. [14] 유니폼 판매량도 매번 팀 내 1등이기 때문에, 엔갤에서는 나성범 유니폼을 교복이라 지칭한다. 인터넷에서 굳이 사실인지 검증할 필요도 없이 당장 야구장 가보면 나성범 마킹이 가장 많다. 과장 좀 보태면 NC 팬이라면 나성범 유니폼을 한 벌씩은 다 갖고 있다고 할 정도. 엥? 난 구창모 유니폼 하나가 끝인데? 마산아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선수기도 하다. 마! 성범이, 니 얼굴 딱 봐놨다! 오늘 함 볼끼다! [15] 나성용이 빠른 생일이나 부상으로 유급 경력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한 살 터울이라 봐도 무방하다. [16] 2009년 정기전호 인터뷰. # [17] 다만 5순위 노진용은 진학을 번복하고 입단.그때 대학 갔으면 갤진용 사건도 없었을 거고 그걸로 찍혀서 27살에 야구를 접지도 않았을 텐데 [18] 재미교포 더글라스 조(한국명 조동윤)는 구대성이 2005년 뉴욕 메츠에 있었을 때의 에이전트로, 당시 구대성의 연봉 일부를 본인이 착취했다는 소문과 과거 안산 돔구장 사업에서 미국인 투자자와의 계약불이행 사건 등 에이전시 계에서 평이 나쁘기로 유명하다. 더글라스 조에 관한 더 자세한 것은 해당 기사 참조. [19] 연고전 역시 대학리그 경기에 포함되기 때문에 연장은 하지 않는다. [20] 오죽하면 산전수전 다 겪은 고대생들도 얼마나 어이가 없었으면...괜찮아 Y대생들은 이미 멘탈 백 번 나갔어 [21] 해당 부분은 1차지명 부활과 함께 복구되어 110조 2항으로 이전. [22] 면담 당시 자신이 투수를 해야 하는 이유를 A4 3장에 적어갔으나 한마디도 못하고 설득당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막상 본인은 2014년 5월 20일 경기 전 인터뷰에서 이를 부정했다. 본 영상에서 3분에 나온다. [23] 세리머니가 과해서 1군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는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과연 이 정도의 세리머니가 1군에서 이러면 안되는 정도인지는 영상을 보고 판단해주시길 바란다. 이 당시 일부 롯데팬들은 오히려 장원준의 행위를 옹호하는 추태를 벌이기도 했다.그리고 2017년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으로 이적한 장원준에게 잠실구장 백스크린을 때리는 투런 홈런을 때려낸다 [24] 나성범의 2017 시즌 출루율은 0.4153297...로 반올림하면 0.415가 되며, 장타율은 0.5843373...으로 반올림하면 0.584가 된다. 여기서 반올림 된 기록을 그대로 합치면 0.999가 되지만, 실제 기록을 합치면 0.9996671...이 되므로 합계를 낸 이후 반올림을 하면 1.000이 된다. KBO 기록실에서는 전자, 스탯티즈에서는 후자로 표기하고 있다. [25] 나성범의 수비 RAA는 데뷔 시즌부터 꾸준히 플러스를 기록하는 중. 덕분에 WAR 등등의 종합 지표에서 굉장한 이득을 보고 있다. [26] 물론 외국인 선수들과 본인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박병호, 강정호, 김현수 등등이 KBO 리그에 없었던 것도 있다. [27] 2017 시즌 종료 기준. [28] 2013년 20.7%, 2014년 23.9%, 2015년 20.4%, 2016년 20.8%, 2017년 20.7%. 2018년 21.1% [29] 순출루율 0.68, 볼넷/삼진 0.41 [30] 순출루율 0.62, 볼넷/삼진 0.34 [31] 이런 이유로 2016 시즌까지 엔갤 등 팬덤에서는 팀 내에서 출루율이 높은 박석민, 에릭 테임즈, 박민우 등을 나성범 자리인 3번에 놓고 나성범을 5번으로 내리자는 주장도 꽤 나온다. 실제로 2015년에는 표본 차이가 꽤 나지만 3번보다 5번에서 훨씬 더 우수한 비율스탯을 기록했다. [32] 다만 기동력을 중시하는 김경문 감독의 특성상 나성범이 박석민과 순서를 바꿔 5번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2015 시즌 5번으로 기용한 이유도 나성범 위주라기보다는 김경문 감독이 기동력을 살리기 위해 이종욱, 김종호, 박민우로 구성된 3인 테이블 세터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거 포스트시즌 때 썼다가 망해서 그 뒤로는 잘 안 쓴다. 2017 시즌에는 모창민, 권희동 등등 본인보다 출루율과 주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타자들이 많이 나오는 관계로 대부분 경기를 3번으로 출전했으나, 다른 팀원들이 부상으로 자주 빠지면서 4번으로도 많이 나왔고, 강한 2번타자를 목적으로 가끔씩 2번으로 배치돼 재미를 보는 경우도 종종 나왔다. [33] 포스팅 시스템을 노리기 위해 7시즌을 채우면 우리 나이로 31세, FA로는 32세까지 기다려야 한다. [34] 물론 실제 이름의 한자는 그렇지 않다. 나성범 이름의 실제 한자는 成範 [35] 유독 나성범의 타석 때 상대팀의 실책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송승준이 공을 놓친다든가, 최희섭이 공을 못 찾는다든가... [36] 8과 관련된 일이 많이 생겨서 붙은 별명. 예를 들어 8월 8일 8회에 홈런을 친다던가... [37] 대놓고 갈매기 [38] 물론 실제 한자 이름은 다르다. 형 성용은 成容, 동생 성범은 成範이 맞는 이름이다.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39] 이름에서 '性'자는 '성품'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절대 쎾스의 의미가 아니다. [40] 해당 술자리가 연고전 후의 연세대 야구부 뒷풀이라면 나성범이 술을 안 마시지만 술자리에 갔다는 것이 이해 가능. 원래 연고전 경기가 끝나면 운동부는 자기네끼리 뒤풀이한다. 연세대 기준 농구부의 경우는 공식 서포터즈가 있다보니 서포터즈 멤버들도 거기 참여한다. [41] 물론 내야수도 사정은 마찬가지. 그나마 손주인 정도. 외야수는 그 외에 김성욱 정도가 사실상 끝이고, 백업 정도로 넓혀보면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대주자가 계신다. [42] 2015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5차전 구원투수로 등판한 내용으로 정규시즌 기록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