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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31 12:30:43

제이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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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데이비스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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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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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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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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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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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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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20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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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두산 베어스
이종욱
두산 베어스
김현수
두산 베어스
박용택
LG 트윈스
이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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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011
김강민
SK 와이번스
김현수
두산 베어스
이종욱
두산 베어스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이용규
KIA 타이거즈
최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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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013
박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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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이용규
KIA 타이거즈
박용택
LG 트윈스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2014 2015
나성범
NC 다이노스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김현수
두산 베어스
나성범
NC 다이노스
유한준
넥센 히어로즈
2016 2017
김재환
두산 베어스
김주찬
KIA 타이거즈
최형우
KIA 타이거즈
버나디나
KIA 타이거즈
손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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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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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019
김재환
두산 베어스
이정후
넥센 히어로즈
전준우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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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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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히어로즈
2020 2021
로하스
kt wiz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김현수
LG 트윈스
구자욱
삼성 라이온즈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홍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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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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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나성범
KIA 타이거즈
구자욱
삼성 라이온즈
박건우
NC 다이노스
홍창기
LG 트윈스
1980·1990년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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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KBO 리그 득점왕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타자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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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안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양준혁
(1993~2010)
2007년 / 2318안타
전준호
(1991~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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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호
(1996~2015)
2012년 / 2100안타
이병규
(1997~2016)
2014년 / 2043안타
홍성흔
(1999~2016)
2015년 / 2046안타
박용택
(2002~2020)
2016년 / 2504안타
정성훈
(1999~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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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2001~2022)
2021년 / 2199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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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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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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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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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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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2001~2020)
2018년 / 311홈런
최정
(2005~)
2018년 / 458홈런
이대호
(2001~2022)
2019년 / 374홈런
최형우
(2002~)
2019년 / 373홈런
박병호
(2005~)
2020년 / 380홈런
강민호
(2004~)
2022년 / 319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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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도루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전준호
(1991~2009)
2005년 / 549도루
이종범
(1993~2011)
2009년 / 510도루
이대형
(2003~2019)
2017년 / 505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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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KBO 리그 투수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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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25번
김대헌
(1996~1998)
<colbgcolor=#000> 데이비스
(1999~2002)
이양기
(2003)
이양기
(2003)
데이비스
(2004~2006)
크루즈
(2007)
}}} ||
}}} ||
파일:jy97Kb9.jpg
제이 데이비스
Jay Davis
본명 제러드 제이 데이비스
Gerrod Jay Davis
출생 1969년 10월 3일 ([age(1970-10-03)]세)
일리노이주 시카고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오어 고등학교
신체 183cm, 83kg
포지션 중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89년 드래프트 12라운드 (전체 320번, NYM)
소속팀 한화 이글스 (1999~2002)
술탄네스 데 몬테레이 (2003)
코르도바 까뻬떼로스 (2003)
한화 이글스 (2004~2006)
세인트폴 세인츠 (2007)
아길라 데 베라크루즈 (2007)

1. 개요2. 선수 경력3. 이후4. 여담5. 연도별 성적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데이비스 3루 돌다.png
그의 상징인 거수경례 세리머니
한국프로야구에서만 7년 동안 뛴 외국인 타자로 한화 이글스의 대표적인 외국인 선수이자 타이론 우즈, 에릭 테임즈, 펠릭스 호세와 더불어 현재도 외국인 타자 이야기가 나오면 자주 언급되는 선수이다. 타격, 주루, 수비[1]가 모두 우수한 다재다능한 선수로 주 포지션은 중견수.

외국인 선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KBO 비율 스탯 집계 기준인 통산 3,000타석을 넘겼고, 통산 타율 3위, 장타율 3위[2]라는 기록을 남겼었다. 5시즌을 뛴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은 밀리지만 통산 경기수, 타석, 타수, 안타, 2루타, 타점, 득점, 루타수, 도루에서 외국인 선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탯티즈 WAR도 36.64로 2위인 우즈와 12가 넘는 차이를 벌린 1위다.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검은 독수리'와 더불어, 신라면을 좋아해서 한화팬들이 '남연이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화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인 선수로서 알려져 있다.

2. 선수 경력

2.1. KBO 리그 진출 전

1989년 뉴욕 메츠에서 투수로 12라운드에 지명되어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마이너리그에서 뛸 적에는 코너 외야수였으며 파워는 거의 없고 발만 조금 빠른편인 마이너 레벨에서도 평범한 선수였다. 한국 진출 직전인 97,98년도에는 텍사스-루이지애나 리그에서 뛰면서 대활약하는데 특히 98년도에는 OPS 1.175의 놀라운 활약을 했다... 하지만 당시 해당 리그가 타고투저에다가 대부분 24세 이하 어린 선수들이 뛰던 리그라서 데이비스의 성적은 잘 봐줘야 상위 싱글A 정도 폭격한 수준이었다. 어쨌든 데이비스는 이 성적으로 한국리그에 이력서를 들이밀 수 있게 되었다.. 마이너리그시절 스탯

KBO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 중 한 명인데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경력은 없다. 데이비스는 미국 시절 AAA 레벨에서는 출장 기회가 드물었고, 대부분 AA, 독립리그, 멕시칸리그[3] 코너 외야수를 보며 2할 중반대에 10홈런도 넘기기 힘들어 하던 평범한 마이너리거였다. 이런 선수가 KBO에선 리그 최강의 홈런도둑, 저격수 중견수이면서 리딩히터급의 타율과 30-30이 가능한 대괴수가 되었으니, 용병 신분으로 KBO에서 잠재력이 터진 드문 케이스이다.

참고로 데이비스가 입단한 1999년에는 비록 2010년대 이후와 비교하면 외국인 선수의 네임밸류가 크게 떨어졌지만, 펠릭스 호세, 에드가 캐세레스, 브레트 바워스, 조지 카날리 같은 메이저리그 출신도 있었고, 찰스 스미스 같은 멕시칸 리그 홈런왕이자 마이너리그 올스타 출신도 있었다. 반면에 데이비스의 마이너기록은 AA에서 한 해 OPS .800이 제일 좋은 기록(위에 나온 텍사스-루이지애나 리그는 독립 리그다.)으로 마이너 기록만 보면 당시 용병 중에서도 거의 최하 수준이었다. 하지만 데이비스의 KBO 리그 성적은 펠릭스 호세만이 비교할만 하고 다른 메이저 출신 선수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뛰어났다.

1999시즌을 앞두고 펼쳐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도 데이비스는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1라운드 지명선수들은 메이저 리그 올스타 출신 펠릭스 호세를 필두로 대다수가 메이저 리그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었고 2라운드급 선수들 또한 마이너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검증된 선수들이었다. 데이비스의 경쟁력은 드래프트 참가 선수들 중 비교적 젊은 나이였다는 것 정도...[4]

그런데 대다수 팀들이 외면하던 데이비스를 유심히 지켜보던 감독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삼성 라이온즈 서정환 감독이었다. 이승엽 김기태 두 좌타 거포를 보좌할 우타자 찰스 스미스를 1라운드에 지명한 서정환 감독은[5] 2라운드로 제이 데이비스를 지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데이비스보다 더 빨리 뛰고 결정적으로 데이비스는 못 보는 센터 내야수[6]도 볼 수 있었던 빌리 홀을 지명하기로 결정을 바꾸었고[7] 결국 데이비스는 거의 최하위 순번이었던 한화 이글스에 지명되었다.

그런데 이 결정은 한화 이글스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2000년대 중반까지 한화를 먹여살리는 탁월한 선택이 된다. 당시 이희수 한화 이글스 감독은 용병 타자로 댄 로마이어를 점찍은 후, 나머지 한 명으로 그 때까지 '껄렁껄렁하다며' 다른 구단이 주목하지 않았던 데이비스를 지명한다. 독한 선수가 필요했다는 판단이었다고...

2.2. 한화 이글스

파일:우승의 주역 데이비스.png
KBO 역사상 가장 장수한 용병 타자이며 역대 최고의 용병선수를 뽑을 때 반드시 언급되는 한화 이글스의 레전드이다. 979안타[8] 591타점으로 역대 외국용병 안타와 타점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KBO 통산 타율 .313으로 3000타석 이상 출전한 선수 중 통산 타율 역대 9위에 올라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9] 특히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홈런을 친 이후에 하는 거수경례 세레모니는 지금까지도 코치나 선수들에 의해 종종 전파되어오고 있다.

1999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해 2003년을 제외한 2006년까지 7년동안 한화에서 뛰어왔다. 입단 첫 해인 99년부터 30-30을 기록하며 또 다른 한화의 레전드 용병인 댄 로마이어와 함께 한화 이글스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냈고, 이후에도 기복없이 좋은 성적을 거두며 많은 사랑을 받은 용병 타자였다. 2002년 이후 계약을 끝내고 멕시코리그에서 1년을 보낸 뒤[10] 2004년 다시 한화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때부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예전같은 말썽을 부리지 않고[11] 성실한 선수로 재탄생하며 한화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다. 복귀 후에도 도루 갯수가 줄었을 뿐 타격면에서는 그래도 매년 20개 이상의 홈런과 3할을 넘나드는 타율을 기록했던 선수였다. [12]
특히 2005년에는 타율 2위와 출루율 2위, 장타율 3위에 홈런 4위의 기록으로 시즌 OPS가 0.958에 wRC+가 160.4나 되는 대단한 활약으로 커리어하이를 경신하며 첫 외야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는데, 이것은 2023년 현재까지도 한화 이글스의 마지막 외야 골든글러브 수상이다.[13] 심지어 2006년에는 리그가 굉장한 투고타저였음에도 21홈런을 때려내며 한국 나이 37살에 중견수로 wRC+ 147.3을 찍는 등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2006년 계약이 끝난 후 재계약을 하지 않았는데, 전년도에 비해 조금 떨어졌지만 여전히 준수한 성적이었음에도[14] 명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방출되었고, 여러 가지 뒷말을 낳았다.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많은 나이와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시리즈 타율 1할을 친 부진. 그 외에 약물검사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있고.. KBO를 떠나고 그 뒤 멕시칸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2008년 초에 은퇴했다.

멜 로하스 주니어 에릭 테임즈와 같이 단일시즌에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준 적은 없었지만 중견수로 매 시즌마다 wRC+를 130 이상 찍어내는 리그 최상위권 타자였다. 장타력이 있는 용병임에도 불구하고 풀타임 중견수로 뛰었고 내구성과 수비력이 좋아서 더욱 가치가 높은 선수였으며 30-30 클럽에 가입한 호타준족이기도 했다. [15] 특히 당시 전성기를 맞은 이영우 송지만이 각각 좌익수와 우익수에 있었기에 99~02년의 한화는 8개구단 최강의 외야진을 과시했다.

이러한 훌륭한 성적과 달리 상복은 불운한 선수였다. 상술했듯 99년에는 타고투저로 더 괴물같은 성적을 낸 외야수들이 많아서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지만, 2001년과 2006년에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왜 골글 수상을 실패했는지 이해가 어렵다. 데이비스의 2001년 타출장은 0.335/0.404/0.558에 30홈런 96타점으로 굉장히 좋았으며, 세이버까지 파고들면 wRC+가 145.8이나 된다. 그럼에도 한참 성적이 떨어지는 정수근 이병규(1974)에 밀려 수상에 실패했으며, 2006년에는 상술했듯 중견수로 wRC+ 147를 찍는 괴력을 보여줬음에도 한참 성적이 떨어지는 박한이에 밀려 수상에 실패했다.

그러나 데이비스라는 걸출한 외국인 선수를 보유했다는 데 안심한 한화 구단은 중견수를 볼 수 있는 외야수 수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렇게 리빌딩을 소홀히 한 결과, 그 후폭풍이 계속 이어져 노장 강동우라든가, KIA 시절 코너 외야만 보던 김경언이라든가 추승우 같은 선수들에게 중견수 자리를 맡기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선수의 잘못은 아닌 전적으로 리빌딩에 소홀했던 구단의 책임이다. 결국 중견수는 2014년 FA 이용규를 영입하기 전까지 한화의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다만 이용규도 영입 당시 29살이었던만큼 그리 오래 활약하지는 못했으며, [16] 2차 FA 계약 후 구단과의 마찰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리는 등 논란 끝에 2020 시즌 후 키움으로 이적했다. 문제는 이용규가 외야 한자리를 차지하는 동안 마찬가지로 이용규를 대체할 외야수를 육성하지 못한 까닭에 2023시즌 현재까지도 한화의 외야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내야진과 포수와는 달리 아직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남아 있다.

3. 이후

이인영 한화 스카우트 대리의 글에 따르면 제이 데이비스의 근황은 그리 밝지는 않은 듯 하며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고교 진학을 앞둔 아들이 농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아들로 알려진 앤서니 데이비스 주니어의 아버지는 당연히 앤서니 데이비스 시니어다. 아들이 그가 아니라 다른 선수인 듯 하다. 이인영 대리의 글에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고 하는데, 앤서니 데이비스는 이미 University of Kentucky로 진학을 확정한 고등학교 3학년생이다. 이후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를 거쳐 현재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소속의 파워 포워드로 활동 중이다.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는 박동희 기자 때문. 이 앤서니 데이비스가 어느 정도의 대선수로 성장했는지를 아는 현 시점에서 보면 참 우스운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기사에 의하면 이혼 후 위자료 등으로 인한 생활고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소문만 무성했는데 롤링스 히터스라는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 15세 이하 타격/주루코치를 하다가 현재는 그만둔 상태다.

4. 여담

파일:데이비스우산.jpg
* 1999년 10월 8일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원정경기에서 삼성 vs 한화 전에서 이승엽의 홈런성 타구를 잡아냈다가 홈 관중들에게 물병, 우산 등의 오물 투척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이승엽은 아시아 최다 홈런 타이 기록인 55호 홈런을 하나 남겨 두고 있었으며 해당 홈런볼에 삼성상용차 트럭까지 경품으로 걸렸기 때문에[18] 홈런볼을 잡으려 잠자리채 등을 잔뜩 들고 온 관중들이 많았고, 이 날 경기 결과로 매직리그 1위 삼성과 2위 한화의 순위가 바뀔 수도 있었다. 이런 판국에 홈런성 타구를 잡아 버린 데이비스가 애꿎은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데이비스는 능청스럽게 관중이 던진 우산을 주워서 썼고, 이것이 가끔 회자되는 데이비스 우산 사건이다. # 사실 당시 영상의 리플레이 상으로도 볼 수 있듯이 해당 타구는 궤적 상 펜스에 맞고 떨어지는 공이었기 때문에 데이비스가 잡아냈든 아니든 애초에 홈런이 될 가능성이 없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9 한화 130 525 .328 172
(3위)
31 3 30 106 93 35
(5위)
46 .570 .370
2000 107 419 .334
(5위)
140 29 1 22 80 72 21 27 .566 .367
2001 130 496 .335
(5위)
166
(2위)
21 0 30
(4위)
96 95
(4위)
15 62 .558 .404
2002 115 404 .287 116 23 1 21 72 56 14 50 .505 .364
2004 119 440 .291 128 26 1 19 77 70 9 64 .484 .378
2005 118 431 .323
(2위)
139
(3위)
24 0 24
(4위)
86
(4위)
90
(1위)
7 70 .545
(3위)
.412
(2위)
2006 117 415 .284 118 21 0 21
(3위)
74
(5위)
62 7 59 .487
(3위)
.370
KBO 통산
(7시즌)
836 3130 .313
(5위)
979 175 6 167 591 538 108 378 .533
(3위)
.383

통산 타율 0.313, 출루율 0.383, 장타율 0.533, OPS 0.915를 기록했다.

중견수로서 수비실력도 매우 뛰어나 KBO의 용병, 국내선수 통틀어 역대급 외야수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투수 출신다운 강견을 자랑해 매년 보살 순위에도 빠지지 않고 들어갔었다. 한화에서 뛴 7년간 단 한번도 sWAR 4.0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을 정도로 꾸준했으며, 성격도 좋았던[20] 장수 외인의 표본 같은 선수.

참고로 KBO는 통산 3000타석 이상을 기록한 타자 기준으로 통산 순위를 집계하는데 외국인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데이비스만 포함되어 있다.

데이비스가 선수로 뛰던 시절은 투고타저 시절이라[21] 2010년대 중반 이후 타고투저 시절을 기준으로 하면 클래식 스탯이 그렇게까지 대단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데 세이버 스탯으로 보면 가장 클래식 성적이 나쁜 해인 마지막 2006년조차 wRC+(조정득점생산력)는 147.3이고 WAR은 4.98이다.[22] 게다가 스탯티즈가 부정확하게나마 수비 스탯을 반영하기 시작한건 2014년부터라서 KBO 최고수준이었던 데이비스의 수비력은 승리기여도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2016년 비교적 좋은 활약을 했다고 평가받는 윌린 로사리오의 wRC+가 131.0이고 WAR은 3.01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좋은 활약을 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이상 스탯티즈 기준)

6. 관련 문서


[1] 수비가 뛰어난 선수인 것은 분명하지만 역대 중견수 중 최고급이냐면 그 정도는 아니다. 투수 출신이라 그런지 타구판단이 좀 늦었고, 잔실수도 있었기 때문. 대신 발이 빨라서 수비 범위가 매우 넓었고, 총알같은 송구가 있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는 뛰어난 중견수라는 건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2] KBO에 타고투저 열풍이 불었던 2010년대 중반까지 10년 넘게 3위를 유지하다가 자리를 넘겨주었다. 타율은 장효조 양준혁에 이은 기록, 장타율은 이승엽 심정수에 이은 기록이었다. [3] 당시 멕시칸 리그는 AAA 소속이긴 했지만 MLB 구단과 제휴를 맺은 것도 아니고 MLB의 유망주 팜과 연관이 없어서 그냥 독립 리그나 마찬가지였다. 리그 수준도 다른 AAA 리그에 비해 떨어지는 AA 정도로 취급받았다. [4]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쌩쌩한 AAAA급 용병이 오는 현재 프로야구와는 달리 당시엔 한물 간 왕년의 메이저리거 또는 마이너리그 죽돌이들이 많았기에 평균 연령이 높았었다. [5] 찰스 스미스는 사전접촉 의혹도 있었다. [6] 당시 삼성은 거포에만 집중하던 나머지 2루수, 유격수가 부족했다. 주전( 정경배, 김태균)이야 있었지만 백업이나 플래툰 등으로 돌릴 수 있는 여분의 선수가 부족했다는 거다. [7] 당시 센터 내야수가 정경배, 김태균, 그나마 써먹을 수 있던 백업 내야수로는 은퇴를 코앞에 두었던 류중일 정도밖에 없던 데다가 김재걸은 군 복무를 하고 있었던 상황인지라 서정환 감독의 이러한 결정은 당시로써는 현명한 선택이었으나, 문제는 홀이 예상외로 수비를 너무 못했다. 빠른 발의 이점을 살려 중견수로 전환시켰지만 외야도 수비를 못해 나중에는 주로 대주자 등으로 나갔다. [8] 2003년에도 활약했다면 1000안타까지도 기록할 수 있었다. [9] 이 기록을 깰 가능성이 보이는 외국인 용병들은 보통 NPB나 메이저리그로 진출을 꾀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 2002 시즌 후 감독으로 부임한 유승안 당시 코치에게 체벌당해서 재계약을 거부했다는 설이 있다. 참고 자료 [11] 원래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로 입단 초기에는 꽤나 말썽을 부리기도 했으나, 유승안 前 감독에게 체벌을 당한 후 쫄아서 그렇게 됐다는 설이 있다. [12] 실제로 중견수 한정 세이버 스탯을 살펴보면 WAR나 wRC+에서 박재홍, 라뱅 이병규와 동급. [13] 많은 사람들이 99시즌의 30-30의 임팩트 때문에 99년을 커리어하이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극심한 타고투저 시절에 기록한 성적이라 시즌 wRC+는 138로 KBO 통산 wRC+인 142보다도 낮다. 실제로도 이병규(1974), 심정수, 펠릭스 호세 등 그보다 월등한 성적을 거둔 외야수 경쟁자들이 많아 골든글러브 수상은 실패했다 [14] 어디까지나 타율을 중심으로 보는 구시대적 관점으로 봤을 때 준수하다는 것이며, 시즌 wrc+가 147.3이라면 역대급 중견수 시즌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실제로 06 데이비스는 단일시즌 wrc+ 18위이다. [15] 다만 통산 도루성공률은 66%도 되지 않으며, 99년에도 35도루 18실패로 현재 기준에서보면 팀에게 손해를 끼치는 도루이다. [16] 이마저도 어깨부상의 여파로 14시즌에는 내내 지명타자로만 뛰었고, 또 다른 외국인 펠릭스 피에로 중견수 문제를 해결했다. [17] 지금은 해외와 국내의 신라면의 맛의 차이가 크진 않지만(맵기의 차이는 약간이나마 있다) 당시에는 맵기를 크게 약하게 해서 해외에 내놓았기 때문의 맛의 차이가 컸다. 데이비스는 매운 맛을 좋아했던 듯. [18] 대형 트럭일 리는 없고 아마 야무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홍보를 줄기차게 했지만 실상은 내구 등의 기본기가 매우 좋지 않았던 실패작이었다. [19] 출시때부터 선수카드가 본명이었다. 그리고 그의 타격폼은 온전히 있기 때문에 올드팬들은 데이비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0] 성격이 순했다는 뜻이 아니라 야구 외적인 잡음이 없고 다른나라, 팀원들과의 융화에 문제가 없었다는 말. 성격 자체는 다혈질이라 심판판정에 불만이 있으면 맹렬히 항의하는 걸로도 유명했다. 다만, 2004년 복귀 이후는 불같은 성격도 많이 누그러졌다. 승부욕이 아주 강해서 팀 훈련 당시 항상 가장 먼저 나와서 훈련했다. 김인식 감독과 특히 사이가 좋았는데 '아빠'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21] 특히 06년은 굉장한 투고타저 시즌이었다. 이 해 준우승한, 그리고 데이비스가 소속된 팀이었던 한화에는 규정타석 3할타자가 없었고, 리그 전체에도 규정타석 3할타자가 5명. 이대호, 이용규, 이택근, 장성호, 양준혁이 전부였다. [22] WAR은 대체 수준 대비 승리 기여라서 얼마나 팀 승리에 기여를 했냐는 것을 말하는데, 데이비스가 선수시절에는 KBO리그의 경기수가 133/126게임이라 144게임 기준인 2010년대 중반 이후보다 WAR 수치가 적게 나온다. 데이비스의 말년 기록을 WAR/144로 조정하면 5.695이다. 이것은 2017년 대활약한 윌린 로사리오의 WAR 5.26보다도 위라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