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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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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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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s-2|{{{#a78329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김용남(야구)
( 군산상업고등학교)
김경문
(공주고등학교)
김호근
( 부산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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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82

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01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로고.svg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감독)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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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프리미어 12
은메달(감독)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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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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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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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류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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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베어스 등번호 22번
팀 창단 <colbgcolor=#c0281f> 김경문
(1982~1989)
결번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22번
김진한
(1989)
김경문
(1990)
박상일
(1995)
OB 베어스 등번호 22번
결번 김경문
(1991)
송명철
(1993~199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1번
결번 김경문
(1994~1996)
이용철
(1998~1999)
OB/ 두산 베어스 등번호 74번
유지훤
(1993~1997)
김경문
(1998~2011)
정명원
(2012~2013)
NC 다이노스 등번호 74번
팀 창단 김경문
(2012~2018)
한규식
(2019~2022)
}}} ||
}}} ||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1061317300260006100-001.jpg
김경문
金卿文 | Kim Kyung-Moon
출생 1958년 12월 11일[1] ([age(1958-12-11)]세)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구옥산초[2] - 부산동성중 - 공주고[3] - 고려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 OB 베어스 (1982~1989)
태평양 돌핀스 (1990)
OB 베어스 (1991)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2군 배터리코치 (1994~1996)[4]
삼성 라이온즈 1군 배터리코치 (1996)[5]
OB- 두산 베어스 1군 배터리코치 (1998~2003)
두산 베어스 감독 (2004~2011)[6]
NC 다이노스 감독 (2011~2018)[7][8]
ACL 다저스[9] 연수코치 (2022)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7~2008 / 2019~2021)
종교 불교

1. 개요2. 선수 경력
2.1. 연도별 주요 성적
3. 지도자 경력4. 스타일5. 별명6. 여담
6.1. 제2의 국민감독 후보(?)6.2. 포스트시즌 실패전문가6.3. 김성근 감독과의 관계6.4.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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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야구인.

프로야구 원년부터 OB 베어스에서 포수로 활약했으며, 은퇴 후 지도자가 되어 두산 베어스, NC 다이노스에서 감독을 역임하며 팀을 훌륭히 이끌었다. 또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우승을 이끌기도 했으며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다시 한번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 선수 경력

인천 출신이며,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학창 시절 이사를 자주 다녔다. 위로 형이 많아서[10] 어린 시절부터 형들과 야구를 하면서 배웠다고 한다. 인천송림초등학교에 다니다가 대구로 이사하여 야구 명문인 옥산초등학교로 전학하고 여기서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11] 이후 대구 경상중학교에 다니다가 가족들이 부산으로 이사하게 되어 부산 동성중으로 전학하게 된다.[12] 동성중 시절 한 학년 후배[13]였던 양상문과 선후배로 인연을 맺게 되었다. 훗날 양상문이 밝힌 바에 따르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김경문이 공주고로 오라고 권유도 했다고 한다.
파일:M98HTA8.jpg
공주고등학교 시절 김경문

부산 동성중을 졸업하고 부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당시 야구부를 재창단한 공주고등학교가 당시 야구 불모지였던 충청도에 선수층이 없어 외부 전학생들을 대거 모집하고 있었는데, 김경문에게도 숙식 및 학비 제공을 제시했다. 김경문 본인의 말에 따르면 부산고보다 공주고에서 주전 경쟁이 덜 할 것 같아서 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1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공주고로 스카우트되어 전학을 가면서 그의 야구 인생이 바뀌게 된다. 하지만 중간에 전학을 가는 바람에 전국대회에서 선수 이중등록이 되어 선수등록 취소라는 징계를 받게 되었고, 이때 김경문은 야구를 접을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김경문이 공주고로 전학 온 후에도 공주고는 계속 각지에서 선수를 모집했고, 야구부 해체설이 돌던 대구 대건고 야구부에서도 몇 명이 전학왔는데, 그중에 조범현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김경문이 먼저 와서 자리잡고 있고 성적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와 학교도 먼저 온 김경문을 더 편애하는 분위기도 있었기 때문에 조범현은 몇 개월만에 다시 대건고로 돌아갔다.[14]

당시 김경문은 타격에서도 고교 탑클래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신생팀이 갑자기 뜨자 원래 충청도의 전통 야구 명문고였던 대전고가 여기에 크게 위협을 느끼고 경기 때 고의로 김경문의 머리를 배트로 강타해버린다. 김경문은 뇌진탕으로 쓰러졌고, 회복 후 포수로서의 기량은 여전히 변함없었지만 타격 능력은 이전보다 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김경문이 주축으로 활약한 공주고 야구부는 1977년 대통령배 야구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그로 인해 고려대학교[15]에 진학 할 수 있게 된다.
파일:external/2.bp.blogspot.com/8%25EC%259B%259416%25EC%259D%25BC4_00002.jpg
OB 베어스 현역 시절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OB 베어스의 창단 멤버로 프로에 입문했는데, 조범현도 동시에 OB에 입단하게 되었다. 공주고 출신 김경문은 OB의 충청도 연고지 출신 선수로 먼저 입단이 결정되었고, 충암고 출신 조범현은 MBC와의 서울 연고 2:1 드래프트로 선발되었다. 이렇게 원년부터 둘은 치열한 포지션 경쟁을 펼치게 되었다.
파일:attachment/IMG_0655.jpg

현역 시절 타격은 좋게 말하면 그저 그랬다. 사실 말이 좋아 그저 그랬다는 거지, 프로 10년간 통산 타격성적이 타율 0.220, 6홈런, 126타점에 불과했다. 고교 시절에 입은 뇌진탕을 감안하면 저 정도 성적이나마 낸 것도 나름대로 애를 쓴 거겠지만, 안타깝게도 타격 실력은 프로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16] 그러나 당시 주전경쟁을 하던 조범현은 김경문보다도 타격 능력이 바닥을 뚫고 있었고, 조범현과의 치열한 주전 경쟁은 김경문은 근소한 판정승으로 끝났다. 이는 출장 경기수에서 조범현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17] 김경문은 부족한 타격을 뛰어난 포수 수비력으로 메꾸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조범현이 도루 저지율이 매우 뛰어났다고 하지만 김경문 역시 훌륭한 수비형 포수였고, 1할대를 오가는 조범현보다 타격이 확실히 한 수 위에 있었기 때문에 조범현에 비해 확실한 비교우위의 툴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80년대 중반 OB에서 5년이나 감독을 역임했던 김성근이 고교 시절부터 양아들이라 불렸던 조범현을 선호했기에 조범현의 출장 기회가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김성근이 아닌 다른 감독이 부임했다면 조범현과 출장 경기수 차이를 더 크게 벌렸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OB에 있으면서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멤버로서 활약하면서 공을 받았던 선수다. 또 1988년 장호연의 공을 받으며 개막전 노히트노런을 경험하기도 했다. OB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당시 태평양 감독이던 김성근의 의중에 따라 1990년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되었지만 1년만에 다시 OB로 복귀했고 OB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파일:external/image.kmib.co.kr/201606211619_61160010720726_1.jpg
팀 후배 김태형과 함께. 이후 두 사람은 2015년 포스트시즌, 2016년 한국시리즈, 2017년 플레이오프까지 감독으로서 총 3번 대결했고, 모두 김태형 감독의 승리였다. 2016년 한국시리즈 직후 우승팀의 김태형 감독은 김경문 감독 앞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2.1.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OB 베어스 51 106 .217 23 4 0 0 6 10 2 7 .255 .266
1983 62 117 .205 24 4 1 2 12 13 2 12 .308 .277
1984 36 96 .240 23 6 0 0 5 8 5 9 .302 .305
1985 57 79 .190 15 3 0 0 3 7 1 13 .228 .301
1986 86 180 .183 33 7 0 0 11 10 0 12 .222 .233
1987 94 228 .263 60 4 0 2 26 22 2 21 .307 .325
1988 97 257 .261 67 14 0 1 26 19 2 11 .327 .288
1989 97 227 .211 48 9 0 0 22 19 2 15 .251 .259
<rowcolor=#ff9933>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0 태평양 돌핀스 63 91 .231 21 5 0 0 9 3 0 6 .286 .276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1 OB 베어스 57 113 .133 15 4 0 1 6 8 1 4 .195 .162
KBO 통산
(10시즌)
700 1494 .220 329 60 1 6 126 119 17 110 .274 .272

3. 지도자 경력

파일:헹가래김경문.jpg
김경문의 지도자 경력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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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김경문/지도자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007년 2008년 2019년 2021년
}}}}}}}}} ||

4.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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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별명

가장 많이 불리는 별명은 김경문의 '문'(moon) 자를 딴 감독 또는 세일러문이라 부른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달감독을 줄여 달감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좋은 페넌트레이스 성적을 내면서도 가장 중요한 우승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해서 콩경문이라고도 불리며, 삽질을 할 때는 돌경문 소리도 나온다. 2011년 시즌 중도에 사퇴한 이후의 행보 때문에 두산 팬들에게는 통갱문(통수+김경문), 런경문이라고 불린다.

호구라는 별명도 있는데, 이는 김성근에게 2007, 2008년 우승을 2년 연속으로 조공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SK 왕조의 1등 공신이라며 솩전드라 불리기도 한다. 그 외에도 간통[18]이라는 감동님의 바리에이션이 있지만, 위에서 말한 돌경문이나 (가을)호구 등이 더 쓰인다. 과거 선수 시절에는 영화배우 실베스타 스텔론 씨와 닮아서 별명이 람보였다.

장성우 사건으로 NC 다이노스 갤러리 등지에서 비가 오면 돌아버린다+ 감동님 해서 비동님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투수 혹사에 관해서도 김성근의 뒤를 잇는 콩이기에, 혹사 관련 논쟁에서는 세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잡은 경기를 쉴새없이 등판한 구원을 굳이 올려서 점수를 퍼주고 패하는 경기가 속출하자, 킬경문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6. 여담

6.1. 제2의 국민감독 후보(?)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예선 7전 전승 포함 도합 9전 전승으로 팀을 금메달로 이끌었으며, 예선 및 준결승에서 대타 성공률이 50%를 기록하면서 작두 탄 김경문( 기사보기)이 되었다. 이 때부터는 김인식 감독에 이은 국민 감독의 재목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일단 KBO 리그 페넌트 레이스 KBO 한국시리즈 우승경력이 없는 것이 아쉽다.[19]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기간이 2007년, 2008년, 2019년, 2020년으로 김응룡(1977~1980, 2000), 김인식(2002, 2006, 2009, 2015, 2017)에 이어 세 번째로 오랫동안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인물이며 주성노(12연승)에 이어 두번재로 오랜 기간 연승(10연승) 기록을 보유한 감독이기도 하다.

2019 WBSC 프리미어 12 대표팀을 이끈 수장이기도 한데 준우승을 거두며 2020 도쿄 올림픽 야구에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일부에서는 한일전의 대패와 대만전 대패를 근거로 조기 경질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과격한 주장이다. 전임 감독이던 선동열 전 감독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대표팀 엔트리 논란과 더불어 자카르타 쇼크라는 참사를 맞으며 입방아에 올랐고 결국 국정감사에서 인격모욕까지 당한 후 자진 사퇴하는 등 대표팀 분위기가 매우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기존 목표였던 도쿄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한 감독을 경질하자고 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같이 대만에게 패배한 전임감독인 선동열보다는 낫다는 평이 많았다[20]. 선동열 감독의 경우 이해가 가지 않는 선수선발로 논란이 되었으며, 대만의 실업 야구 선수인 우셩펑에게 지고 게다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땄지만 동호회 수준인 홍콩 대표팀에게 3점이나 주는 등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김경문 감독 역시 김재환이나 박세혁, 원종현 같은 선수 선발에 있어서 논란이 있었지만 김재환을 제외하고는 정규시즌 성적이 괜찮았기 때문에 여지가 있고 거의 대부분을 젋은 선수 위주로 그리고 성적을 위주로 뽑았기 때문에 크게 논란이 되진 않았다. 또 아시안게임 논란으로 분위기가 뒤숭숭 할때 이정후, 김하성, 이영하, 조상우, 고우석 등 젊은 선수들을 과감히 등용하며 야구대표팀의 분위기를 재정비 시킨 뒤 선동열 감독이 상대했던 아시아권 국가들보다 훨씬 강한 미국, 캐나다, 쿠바, 멕시코 같은 상대들을 안정적으로 꺾으며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가져왔기 때문에 도쿄올림픽만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면 비록 KBO 우승경력은 없어도 제2의 국민감독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1년 연기된 2020 도쿄올림픽으로 접어들면서 이해가지 않는 엔트리 기용과[21][22][23]본선에 들어가서는 부진한 2루수 김혜성의 대타, 대수비자원으로 주 포지션이 2루수인 최주환을 계속 벤치에 박아두면서, 3루수 자원인 황재균을 2루 대수비로 기용하는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 불가능한 운영을 보여주며[24] 선동열 감독이 재평가 되는 분위기다. 결국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부진한 양의지를 4번 타순에 고정하고 실책으로 흔들린 고우석을 교체하지 않아 3실점을 내주는 경기 운영으로 5:2로 경기를 내줬다. # 고우석의 실점 전까진 2대2로 동점을 유지하고 있었고 경기를 승리하면 며칠 뒤의 결승전으로 진출해 무조건 메달을 확정짓는 상황에 모든 전력을 쏟아부을망정 갑자기 이번 경기를 질 것으로 생각하고 내일 경기도 생각해야 한다며 투수를 교체하지 않아 일본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어처구니없는 경기를 펼쳤다. # #

6.2. 포스트시즌 실패전문가

콩경문, 돌경문이라 불리는 이유는 좋은 페넌트레이스 성적에도 불구하고 포스트시즌에서 감독 부임 이래 계속 물을 먹은 것을 빗대어 부르는 것이다.

2004년은 플옵에서 1승 먼저 했지만 그 후로 3패해서 탈락, 2005년은 KS에서 4패 스윕패로 탈락, 2007년은 KS에서 2승 먼저 했지만 4연패로 탈락[25], 2008년은 KS에서 1승 후 4패로 탈락, 2009년은 PO에서 2승 후 3패로 탈락, 2010년은 PO에서 2승 3패로 탈락, 2014년은 준PO에서 1승 3패로 탈락, 2015년은 PO에서 2승 3패로 탈락, 2016년은 KS에서 4패 스윕패로 탈락, 2017년은 PO에서 1승후 3연패로 탈락.

특히, 한국시리즈 진출을 4번 할 동안 잠실 경기 전적이 0승 10패. 잠실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경기는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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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3년여간 포스트 시즌에서 만난 SK팬들+대부분의 야갤러에게는 우리편이라는 의미로 솩경문이라고도 불린다. 오죽하면 SK에는 레전드가 없다고 까대는 야갤러들 마저도, 김경문이 SK 유니폼을 입은 합성사진을 올리면 모두 얄짤없이 솩전드라고 인정할 정도다.

2010년 포스트시즌에는 파생별명으로 호구로 불린다. 두산이 포스트시즌에서 이길 때마다 두산을 기다리는 SK 김성근 감독의 입장에서 호구 오능가?라는 유행어가 야갤에서 유행했다. 하지만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을 오가는 혈전 끝에 결국 호구는 오지 못했다. 그리고 야갤러들의 걱정대로 2010년 한국시리즈는 망했다.

2004년 플레이오프에서 3연패, 2005, 2007년, 2008년, 2016년 4년간 한국시리즈에서 4연패로 탈락(2005년 4연패, 2007년 2승 후 4연패, 2008년 1승 후 4연패, 2016년 4연패). 이후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게 2승 후 3연패하여 탈락. 이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팬들의 지적도 있으나, 워낙 지지층이 두터워서 게시판 등에서 이 점을 지적하면 대체로 실드치는 글들이 따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010년에는 스윕 징크스는 깼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 무관의 한은 풀었지만,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1사 만루 역전패 위기에 처했을때는 본인도 '난 영원히 우승은 못하나 보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고 한다.

사실 감독으로서 한국시리즈 우승만 못해서 그렇지 절대 콩라인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KBO 리그 원년 OB의 우승 당시 주전 포수였다.

1982년 원년 OB베어스 우승 당시 주전 포수 - 선수시절 우승
2001년 두산 베어스 한국시리즈 우승당시 코치 - 코치시절 우승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감독으로 금메달 - 감독으로 국제대회 우승

한국시리즈만 우승하면 오히려 선수, 코치, 국가대표, 프로팀 감독으로 우승을 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김경문과 가장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류중일. 코치로서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감독으로서 2011-2014년 통합 4연패와 2014 인천AG에서 금메달 등등 지도자로서는 모든 영광을 얻었지만 정작 선수 시절에는 삼성 라이온즈가 지독한 준우승 징크스에 시달리는 바람에 한번도 한국시리즈 우승[27]을 경험하지 못했다. 다만 류중일이야 다시 현역으로 뛸 일이 없지만 김경문은 큰 삽질만 없으면 무난하게 감독 커리어를 이어갈것으로 보인다.

현역 때 팀 내 포수 라이벌이였던 조범현 감독은 김경문 감독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1982년 OB 선수 시절의 원년 우승, 2002년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 코치로 우승, 2009년 KIA 타이거즈 감독 우승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 거기에 더불어서 2010년도에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국제대회까지 우승하며 한국프로야구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두산 감독에서 물러난 뒤 이런 호구 이미지는 한동안 존재감을 보이지 않았지만 2014년 준플레이오프로 인해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삽질하던 박민우, 이종욱의 기용, 1차전 이재학 선발카드, 4차전 잘치던 권희동 대신 박민우 대타카드, 7회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잡고 쳐맞고 있는 원종현, 이민호를 내리지 않는 점 등 이해가 안가는 기용과 함께 경험 부족으로 1승 3패로 패퇴하면서 가을야구 호구설이 다시 확인되었다. 지금까지는 상대가 산전수전 다 겪은 김성근 감독이었지만, 이번 상대였던 양상문 감독의 경우는 감독 커리어 첫 포스트 시즌이었다. 그나마도 각축 끝에 진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털리고 탈락한 것이어서 타팀팬들은 물론이고 NC팬들 사이에서도 이쯤되면 진짜 문제있는 거 아니냐는 불만도 나올 정도였다. 물론 이 때야 선수단 대부분이 처음 포스트시즌에 나가는지라 감독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삼성 라이온즈와 정규리그 1위를 두고 끝까지 경쟁하다가 겨우 2게임 반차로 아슬아슬한 2위를 거머쥔 2015년, 역시나 첫 포스트시즌을 치르던 김태형 감독의 두산 베어스에게 패승승패패로 완파당했다. NC가 이긴 2차전에서는 여러 과감한[28] 작전이 성공하여 이겼고 3차전은 선발 손민한의 호투에 힘입어서 어마어마한 점수차의 대승리를 거두었다. NC가 패배한 1차전에는 더스틴 니퍼트의 압도적인 구위에 팀 타자들이 아무 것도 못했고, 그 니퍼트를 4차전에 다시 만났을 때도 니퍼트가 완봉승 뒤 3일 휴식 후 7이닝 무실점을 시전하는 동안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스무스하게 발렸다.

하지만 대망의 5차전에서는 초반 2대0 리드를 잡았으나, 2차전 완투승 후 피로가 누적되어 계속해서 정타를 맞는 재크 스튜어트에게 그 놈의 믿음의 야구를 또 다시 시전하다가 5회 초, 4회 말을 4구로 지워버린[29][30] 두산 선발 장원준에게 보답하는 듯한 두산 타자들의 김재호 2루타 - 정수빈 1타점 2루타 - 허경민 안타 - 민병헌 볼넷 - 김현수 2타점 2루타로 5타석 연속 출루를 기록하면서 스튜어트는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못 잡은 상태에서 3점을 내리 쳐맞고 멸망, 여기에다 경기 마지막에 나성범을 마운드에 올리면서 지명타자를 소멸시키는 쓰로잉까지 보여주며 가을야구에서 또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시리즈 내내 부진했던 이종욱을 끝까지 믿고 3번, 6번타자로 기용한 실책이 결과적으로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또한 두산에 비해 상당히 두꺼웠던 불펜 뎁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태형 감독이 이현승의 2이닝, 3이닝 세이브라는 신의 한수로 불펜 약점을 커버한 데 비하면, 질적 양적으로 우세한 불펜이 있음에도 5차전에서 선발 스튜어트를 끝까지 믿었던 그의 선택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16년에도 팀에서 박석민을 영입하면서 나테이박이라는 강타선을 바탕으로 시즌 전 우승 전력이라는 평가를 들었지만, 선발진의 부진과 승부조작 홍역을 맞으면서 1위 두산과는 9게임차로 페넌트레이스 2위에 그쳤다. 그나마 플레이오프에서 LG를 3대 1로 이기면서 2년 전의 복수에 성공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4경기 2득점이라는 졸전 끝에 친정팀인 두산에게 우승 트로피를 또 헌납했다. 2017년에도 감독 생애 처음으로 업셋까지 하면서 또 두산을 만났지만, 또 이번에는 4경기 50실점이라는 기록으로 두산에게 맛집 단골이 되었다.

이렇게 프로팀 감독만 15년 가까이 하면서 가을야구에 10번 진출하여 시리즈를 19번이나 치렀고, 한국시리즈도 4번이나 갔지만 우승을 한 적은 한번도 없다. 또한 페넌트레이스 우승 경력 자체도 한 번도 없다. 감독 커리어는 우승 억제기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두산은 그가 떠나고 난 4년 뒤, 2015 PO KS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었고 이후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며 2016년과 2019년 KBO 페넌트레이스 &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심지어 신생팀이었던 NC도 창단 10년만이자 KBO 데뷔 8년만인 2020 시즌 첫 KBO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한국시리즈에 4번이나 도전한 만큼 본인도 우승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지만 매번 그 기회를 날렸고 결국에는 남 좋은 일만 시켜준 꼴이 되었다.

이 문서 이 문서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결국엔 부실한 선발진과 본인이 정규시즌 때 혹사당한 불펜들로 인한 것이 김경문 감독의 발목을 매번 잡은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의외로 업셋을 한 적도 1번밖에 없지만, 업셋은 2번밖에 당하지 않은 걸로 봐선 가을호구가 아닌 제 전력대로 결과를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내용처럼 단기전에 약한 게 아니라 장기전 운용을 애초에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6.3. 김성근 감독과의 관계

파일:attachment/opop11.jpg
참된 약속
두 사람의 관계는 흔히 악연으로 묘사되고 있다. 2007년부터 SK와 두산의 라이벌 구도 속에 두 감독간에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6.4. 그 외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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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1월 1일 [2] 인천송림초에서 전학. [3] 부산고에서 전학 [4] ~8월 4일 [5] 8월 5일~ [6] 6월 12일~ [7] 2011년 8월 31일~2018년 6월 2일 [8] 2018년 6월 3일을 끝으로 감독직에선 자진사퇴 했으나 잔여 시즌동안 고문직을 맡았다. 선동열의 선례 등을 볼 때 사실상 잔여연봉을 챙겨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9]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루키 [10] 8형제 중 막내 # 첫째 형과는 17살 차이가 난다고. 김경문의 모친은 1917년생이다. [11] 같이 활약했던 직속후배로 김성래가 있는데 프로에 와선 코치와 선수로 재회했다. [12] 같은 재단의 부산동성고는 배구부로 유명하다. 부산동성중은 학생수 감소로 2005년 폐교됐다. [13] 김경문은 1958년생인데 1년을 유급해서 1959년생과 동기며, 양상문은 1961년생인데 1년을 조기입학해서 1960년생과 동기이다. [14] 이후 알다시피 조범현은 대건고가 결국 해체되면서 다시 충암고로 옮기게 되었다. [15] 동기로는 박종훈 한 학년 아래로 양상문이 있었으며, 방장 시절에는 여드름으로 고생하던 신입생 방졸 선동열을 데리고 피부과에 간 일화도 있다. # [16] 야구친구의 2014년 3월 6일자 상식과는 조금 다른 야구 이야기 코너에 의하면 김경문이 500경기 이상 출전했던 은퇴 선수들 중 타율이 가장 낮은 '역대 최악의 타자 10위'라고 한다. [17] 역대 통산 최저 타율 2위가 바로 조범현(0.201), 1위는 염경엽(0.195). [18]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2차례 간통 혐의로 고소당한 걸 빗대서 붙은 별명. 소문으로는 이혼 3번, 간통 4번을 했다고 한다. 다만 KBO에서 간통이라고 하면 대부분 이 사람을 떠올리는 관계로 사실상 사장된 별명. 참고로, 삼성은 김경문이 코치로 재임했던 기간인 94 ~ 96년 도에 1차 암흑기를 겪는다. 물론 전체적인 책임자는 김성근이다. [19] 당장에 국민감독으로 불리는 김인식 감독은 한국시리즈 2회 우승 - 2회 준우승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20] 적어도 도쿄올림픽 전까지는 [21] 엔트리 발표시점에서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로 자리잡은 정은원, 역시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불펜으로 성장한 강재민, 통산 홈런 2위이자, 리그 홈런 1위이자 대체불가 3루수인 최정의 미발탁 [22] 특히나 정은원과 강재민은 '코로나 음주게이트' 로 인해 대표팀에서 하차한 본인들과 같은 유형들인 박민우, 한현희의 대체자원으로써도 외면받았다. [23] 도쿄올림픽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우타거포에 대한 부재고, 감독 역시 최종 엔트리를 발표하며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진하게 드러냈는데 그러면서 리그 홈런 1위이자, 3루수 공수지표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던 최정을 제외시킨 건 그야말로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24] 최주환의 부상 이야기가 있으나 시즌 초부터 달고다닌 부상부위였고, 충분히 교체시한이 있었음에도 그냥 데려갔다면 그야말로 국정감사 시즌2가 열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25] 한국시리즈 사상 첫 2연승 후 4연패 기록이기도 하다. [26] 2005년 VS 삼성 2패, 2007년 VS SK 3패, 2008년 VS SK 3패, 2016년 VS 두산 2패. [27] 페넌트 우승은 데뷔시즌이던 1987년에 한번 경험했지만 최종보스 해태 타이거즈를 못 넘었다. [28] 번트 앤 슬래시와 런 앤 히트, 하나라도 실패했다면 감독이 욕만 먹었을 엄청난 작전들이다. [29] 손시헌 초구 2루수 뜬공 - 지석훈 초구 2루수 뜬공 - 김태군 2구 중견수 뜬공 [30] 이게 결정적이었다. 스튜어트가 4회에 양의지에게 홈런을 맞는 등 불안했는데, 4회 말이 단 4구로 끝나버리면서 스튜어트는 페이스 조절에 치명타를 맞게 되었다. [31] 참고로 김경문은 김인식이 두산 감독을 맡던 시절 그의 밑에서 배터리코치를 5년간 맡았고, 김인식이 물러나자 다음 감독으로 승진했다. [32] 이 당시만 해도 포수들은 헬멧을 쓰지 않고 그냥 야구모자를 뒤집어 썼다. 당연히 외부 충격에 약할 수밖에 없던 환경. 고의로 머리를 향해 스윙을 한 것도 있지만, 포수 헬멧이 없어서 사고가 더 커진 셈. 프로와 아마를 막론하고 포수들에게 헬멧이 지급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33] 알다시피 시즌 초에는 76세의 김성근이 최연장자 감독이었지만, 박종훈 단장에게 욕설을 하고 경질당하면서 김경문이 최고령 감독이 되었다. [34] 이 때문에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2016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으로 시카고 컵스를 밀어주기도 했다. 물론 컵스의 상징이 곰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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