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홍명보호(성인 1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555555,#aaaaaa |
성인 2013~2014
|
2013| 2014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 러시아전 · 알제리전 · 벨기에전) | ||
논란과 평가 | ||
[clearfix]
1. 개요
홍명보호(성인 1기)의 논란과 평가에 다룬 문서.2. 논란
|
2.1. 홍명보의 월드컵 직전 토지 매입
|
토지 매입 자체가 문제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인 자산에 관련된 문제고, 또 불법으로 저지른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 시점이면 다른 팀 감독들은 전부 분석 자료 모아 자료집 만들고 전술 짜느라 밤 새우고 있을 시점이었다. 태만했음을 부정하기 힘들고 결과마저 안 좋으니 욕 먹는건 당연지사.
1994 FIFA 월드컵 미국 때 4강 진출을 이루어낸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당시 선수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자유를 보장해주어서 다른 팀들이 의아해했고, 심지어는 여자들과의 데이트와 음주 등의 자유도 보장해주었다. 개인 시간을 어느 정도 보내는 것 가지고 무조건 비난하는 행동은 옳지 않다는 옹호 의견도 있다. 그러나 개인 사생활을 보내도 성과가 나오면 될 일이고 성과가 안 나오면 그 시간을 쪼개서 할애해야 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매일 있는 행사도 아니고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최대의 프로젝트라면 더 말 할 것도 없다. 비유하자면 평소에 공부 좀 해서 자신있던 학생이 시험 전날 놀고 성적 잘 받는 것과, 공부도 부족하고 시간도 없는데 시험 전날 사생활이라면서 여유 부릴거 다 부리고 시험 말아먹는건 같은 사생활을 즐겼어도 분명 다른 거다. 밑의 옹호/반박 문단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이 문제로 홍명보가 비판받은 건 사생활을 누릴 자유가 없어야 한다는게 아니다. 월드컵이 2달여 남았을 때 남들은 K리그 경기까지도 챙겨보고 있는데 홍명보는 알제리가 준비되지 않은 팀이라느니 했으면서 되레 개발살났으니 하는 말이다. 홍명보호에 동정표를 주는 사람들 상당수가 "시간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라는 부분이고, 이는 비판 측에서도 인정하는 점이지만, 홍명보는 그 없는 시간마저도 귀중하게 쓰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다.
축협에선 "계약서에 도장 찍으러 한 시간 정도 시간 낸게 전부"라고 해명했지만, 파주시에서 분당구까지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왕복만 해도 서너시간은 족히 걸리는 꽤 장거리다. 개인 사생활 정도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시간을 썼다는 의미이다.[1] 그냥 하루를 통으로 썼다고 봐야 한다. 가족과 식사를 하거나 잠깐 산책 나가는 정도라면 개인 사생활이란 말이라도 통하지만 하루를 통으로 날렸다면 사생활이라 하기도 궁색하다. 게다가 부동산 업주 말처럼 여러 번 보러 왔다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당연하지만, 수억원대에 달하는 땅을 한 군데, 한 번만 보고 구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엔트리 발표도 하기 전인데 시간 좀 낸게 어떠냐는 쉴드도 있지만, 그가 엔트리를 후다닥 제출해놓고 땅 보러 다닐 동안 홍명보가 승점자판기로나 취급하던 알제리의 바히드 할릴호지치 전 감독은 한국전 맞춤 전술을 만들기 위해 국대 경기는 물론 K리그 경기까지 일일이 챙겨보며 준비하고 있었다는게 알려져 제곱으로 까였다.[2] 결국 부동산 논란이 거세지며 여론의 비난 폭격을 받았고 얼마 안 있어 사퇴를 선언했다.
홍명보는 이후 월드컵 훈련 기간이 아닌 내 개인 시간에 봤고 계약은 대리인이 가서 했다고 해명했다. 홍명보는 해당 시간을 전적으로 훈련 기간이 아닌 개인의 사적 시간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명이 오히려 더 가관이다. 대표팀 감독이 원래 한 달에 열흘 정도 일하고 20일은 개인 시간을 보내는 자리라는데 이는 그간 홍명보호를 열심히 옹호하던 "시간이 부족했다."는 반박마저도 날려보내는 수준이다. 그 어떤 국대 감독의 기록을 봐도 1년에 2/3을 온전히 개인 시간으로 날려먹는 감독은 없다.[3] 국대 감독이 클럽 감독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널널한 것은 맞지만 홍명보가 땅을 산 시점은 월드컵이 코앞이었다. 평소에는 느긋하게 했어도 월드컵을 앞둔 때는 눈코뜰 새 없이 바빠야 정상인데 대회를 앞두고서 2/3을 놀았으면 그건 태업이다. 남들은 개인 시간까지 짜내면서 몰두하는 와중에 시간이 1년밖에 없었던 감독이 대회를 목전에 두고도 본인 시간 보낼 것 다 보내고 있었으니 결과가 어떻게 뻔하지 않았을까?
훗날 본인이 밝히길 당시 강남의 모 아파트에 살고있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주민들이 대표팀 경기에 대해서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며, 이러한 질문이 스트레스가 됐는지 자신은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시작했지만, 이번엔 가족들도 엘리베이터에서 이러한 질문을 받았다고 하며 이는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2.2. 의리 축구
|
|
- GK : #1 정성룡( 수원), #21 김승규( 울산), #23 이범영( 부산)
- DF : #2 김창수( 가시와 레이솔), #3 윤석영( QPR), #4 곽태휘( 알 힐랄 FC), #5 김영권( 광저우 에버그란데), #6 황석호( 산프레체 히로시마), #12 이용(울산), #20 홍정호( 아우크스부르크), #22 박주호( 마인츠)[4]
- MF : #7 김보경( 카디프), #8 하대성( 베이징 궈안), #9 손흥민( 레버쿠젠), #14 한국영(가시와 레이솔), #15 박종우( 광저우 푸리), #16 기성용( 스완지 시티), #17 이청용( 볼턴), #19 지동원( 도르트문트)
-
FW : #10
박주영(
아스날[5]), #11 이근호( 상주), #13 구자철(마인츠), #18 김신욱(울산)
이 23명의 선수들 중에서 14명이 2012 런던 올림픽 때 뛰었던 선수[6]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선수들 중에서 월드컵이 열릴 무렵까지 소속팀에서 제 몫을 해 주고 있는 선수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당초 홍명보 본인이 내세운 소속팀에서 활약하는 여부에 따라 국가대표팀에 선발하겠다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물론,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라지만, 본인이 내세운 원칙을 본인 스스로가 깨버리는 것은 국가 대표팀을 응원하는 축구팬은 물론이요, 소속팀에서 꾸준히 활약상을 올려 감독의 눈도장을 받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려는 다른 선수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처사나 다름 없다.
이 엔트리에 든 인물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인물은 바로 박주영인데, 당시 박주영은 아스날 FC에서 벤치만 달구고 있었고 그 벤치마저도 못 앉는 신세가 된 지도 오래였다. 임대 이적으로 간 왓포드 FC에서도 고작 1경기 선발 출장에 그쳐 실전 감각도 둔화되어 있었다. 최종 엔트리에 선발되기 전까지 박주영이 홍명보호에서 치른 A매치라고는 고작 2014년 3월에 열렸던 그리스와의 평가전 1경기 뿐인데, 그 1경기에서 골 좀 넣었다고 그 전까지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시험을 거쳤던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국가대표팀에 선발하기는 어폐가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그 전까지 김신욱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을 발탁했던 건 박주영을 발탁하기 위한 홍명보의 사전작업이었고 계획대로 이들이 별 신통치 못한 활약을 보이는 것 같으니 1년 여 동안 뜸을 들여왔던 박주영 발탁을 추진한 게 아니냐는 일종의 음모론도 나왔다.[7]
그 다음으로 논란이 된 인물은 윤석영인데, 윤석영은 QPR로 이적한 이후 해리 레드냅의 눈도장을 받는데 실패하여 벤치만 주야장천 달구고 있던 선수였다. 역시 실전 감각이 저하되어 있던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윤석영의 포지션인 좌측 풀백에는 이미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던 박주호라는 대안이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주호를 부상이 심하다는 이유로 탈락시키고[8] 실전 감각이 바닥을 치고 있었던 윤석영을 발탁시킨 건 빼도 박도 못할 의리 축구다. 더군다나 당시 박주호의 소속팀인 마인츠에서 박주호의 후보로 있었던 코스타리카의 윙백 후니오르 디아스는 코스타리카 국대에서 주전으로 뛰며 8강 진출을 이끌었다는 점을 볼 때 홍명보의 안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또한 황석호 역시 2012년 런던 올림픽 멤버이지만 소속팀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에서 조차 주전이 아니었다. 황석호가 월드컵 이후 현재까지 뛴 A매치는 4경기밖에 되질 않는데 그 4경기 안에 월드컵이 포함되어 있다. J리그 후보 수비수, A매치 3경기도 못 뛴 검증 안된 선수가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꿔봤을 월드컵 멤버로 뽑힌 것은 명백한 인맥 축구의 증거이다.
결국 이 같은 의리 축구는 5월 평가전에서부터 6월까지 한 달 동안 치렀던 5번의 A매치에서 1무 4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면서 그 말로를 알렸다. 이 5번의 A매치 중 첫 번째로 치렀던 튀니지와의 평가전에서 손흥민과 이청용을 제외한 나머지(특히 박주영)는 모두 팬들의 눈을 부패시키는 경기력을 보이며 0:1로 패했다.[9] 월드컵을 치르기 전 마지막으로 치른 가나와의 평가전에서도 수비진은 구멍이요, 공격진은 시망이라는 처참한 모습을 보이며 0:4로 개털렸다. 이렇게 개판 5분 전의 모습을 보였는데 월드컵에서라고 잘 할 리가 있나? 파비오 카펠로가 이끄는 러시아만이 지레 겁먹고 라인을 내려준 덕에 1:1 무승부를 거두었고[10], 그런 거 없이 라인 올리고 공격적으로 나섰던 알제리에게는 2:4로 대참패를 당했다. 그리고 이 2경기에서 박주영이 에이스는커녕 폐급 쓰레기에 불과했음을 전 축구팬들이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벨기에와의 경기에서도 그놈의 의리 축구를 못버려 0:1로 패했다.[11]
의리 축구가 남긴 교훈은 두 개가 있다.
첫째, 소속팀이 어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속팀에서 얼마만큼 활약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만일, 당시 엔트리에 들었던 선수들이 소속팀에서도 맹활약을 해서 누가 들어도 납득이 갈 만한 선발이었다면 의리 축구라는 조롱 따위는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 선수들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얇아져 있는 국대 스쿼드에 한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국대에 나오면 위험한 게 뻔히 보이는 선수들이 대거 엔트리에 발탁되었으니 이 선수들을 데리고 성적을 내겠다는 것 자체가 요행을 바라는 도박과 다름없다. 물론 월드컵 역사에서 이런 도박이 성공하는 경우가 있긴 있다. 하지만 대부분 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홍명보는 첫 기자회견 때 이를 직접 말했으면서 스스로 원칙을 깨고 망해버렸다.
둘째, 축구는 11명이 하는 것이라 원팀을 만들지 않으면 망한다. 무슨 말이냐면, 홍명보호의 의리 축구는 사실상 스위스 월드컵을 포함해서도 역대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한국 축구가 유럽파들도 어느 정도 생겼고 발전도 많이 되었다고 자평하고 있을 시기에 말이다. 기성용을 주축으로 한 젊은 선수들이 일으킨 최악의 집단 SNS 항명 사태로 인해 팀이 조각조각된 상태로 시작한 월드컵은, 경기 내용 면에서도 그야말로 조각조각, 활약할 선수들은 저희들끼리 알아서 활약하고 논란을 일으킨 선수들은 저희들끼리 알아서 자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대 최악의 SNS 집단 항명에 대한 대가를 조직력이 완벽히 실종된 축구로 국민들에게 보답해준 이 사건이 가져다준 교훈은, 지난대회의 프랑스처럼 원 팀이 되지 못한다면 처참하게 무너질 뿐이라는 것이다. 누가 어디서 뛰고 얼만큼 잘하는지가 하나의 문제라고 해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전체 선수단의 단결이다. 본인도 대표팀에 취임하면서 원팀을 강조했지만 결과는 원맨팀이었다.
당시 최종 엔트리에 선발된 23명 중 10명이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로 구성되었을 정도로 유럽파들의 비중은 매우 높았다. 그러나 그 10명의 유럽파들 중에서 손흥민을 제외하고 월드컵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누가 있었는가? 오히려 홍명보로부터 B급 선수들[12]이라는 모욕을 들은 K리그 출신 김승규, 이근호, 김신욱의 활약이 더 돋보였다. 김승규는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7세이브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보였고, 이근호는 비록 벨기에전에서 결승골의 빌미를 제공하긴 했으나 러시아전과 알제리전에서 각각 1골, 1도움을 기록해 2경기에서 단 1개의 공격 포인트도 못 올린
국대 감독으로 발탁된 게 월드컵이 열리기 불과 1년 전이라 시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잘 아는 선수들로 꾸린 것이라는 쉴드도 있지만, 이런 쉴드도 궤변에 가깝다. 암만 시간이 부족하다고 해도 당시 홍명보호는 월드컵을 치르기 전까지 2013년에 10회, 2014년에 6회로 도합 16회의 평가전을 치렀다. 이 16회의 평가전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거기다 그 홍명보호가 한창 A매치를 치를 당시에는 유럽에서는 한창 리그가 진행 중인 시점이었다. 홍명보가 조금이라도 부지런했다면 이 16회의 평가전에서 나왔던 문제점을 보완, 수정할 수 있는 시간도 있었고 소속팀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누구인지 부진한 선수가 누구인지를 파악할 시간도 충분했다. 더군다나 전임 최강희 감독이 다양한 선수들을 국대에 소집하면서 충분한 데이터도 남겨주고 갔다.[14] 그런데도 발탁한 선수가 저 따위라면 그저 궤변이고 핑계에 가깝다. 또한 시간이 없는 것을 알고도 감독에 부임한건 홍명보 자신이다. 그 책임 또한 온전히 홍명보의 몫이란 뜻이다.
정 시간이 부족하고 자신의 실력이 없었다면 소속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들을 발탁하겠다는 자신의 원칙대로 했어야 했다.[15] 그랬는데도 1무 2패로 탈락했다면 축구팬들도 "우리의 실력이 부족해서 졌다."고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원칙 없이 감독 모가지를 날리고 보는 축협의 전근대적인 행태에 더 불만을 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홍명보는 당시 소속팀에서 맹활약하고 있던 이명주[16]나 박주호[17] 등을 외면했으며, 소속팀에서 못 팔아서 붙잡고 있었을 뿐인 박주영이나 윤석영 등을 끼고 앉았으니 저런 식의 쉴드는 그저 변명에 가깝다.
설령 자신이 함께해 왔던 선수들이 익숙해서 그들 위주로 팀을 꾸려야 했다면 최소한 그 선수들의 성향이 어떠한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 선수들에 맞는 맞춤형 전술을 개발하는 걸 게을리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에서 홍명보가 보여준 전술이라고는 오로지 4-2-3-1 포메이션에 볼 돌리기 지공 하나 뿐이었다. 러시아나 알제리, 벨기에는 각자 성향이 확연히 다른 팀임에도 불구하고 그 1개 전술로 우려먹는 것도 문제였지만 자신이 우려먹는 전술조차도 자신이 뽑은 선수들로 활용하기엔 매우 부적합한 전술이었다. 먼저 미드필드 진을 보자면 4-2-3-1에서 2에 해당하는 포지션에는 기성용과 한국영이 주로 호흡을 맞춰왔다. 그러나 기성용은 다들 알다시피 빌드 업 능력이 좋은 대신 수비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과거 허정무 감독이 기성용을 기용할 때에는 당시 최고의 파이터였던 김정우를 붙여줬고 김정우가 말도 안 되는 활동량을 과시하며 신나게 상대 선수들과 싸워댔던 데다 3의 자리에 있었던 박지성, 염기훈 등도 김정우가 받은 몰빵을 나눠받으면서 크게 문제점이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영은 김정우보다 파이팅 능력이 떨어지는 선수였고 3의 자리에 있었던 손흥민, 구자철, 이청용은 수비 가담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선수였기에 한국영 한 사람한테 엄청난 몰빵이 가해졌다. 한국영이 과부하가 걸리니 기성용은 결국 한국 팀을 무너뜨리는 뇌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4에 해당하는 수비진의 경우도 문제가 되는 것은 주전 센터백이다. 홍명보는 홍정호와 김영권을 주전으로 발탁했는데 이 두 사람은 모두 커맨더형 센터백이다. 센터백은 서로 다른 성향의 선수를 붙여 쓰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그래서 허정무도 남아공 월드컵에서 주전 센터백으로 커맨더 조용형과 파이터 이정수 조합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홍명보는 커맨더 둘을 센터백으로 내세우는 뻘짓을 저질렀고 같은 성향의 수비수 둘이 붙으니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18] 러시아전에서는 러시아가 공격에 소극적이어서 별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빠른 템포로 몰아치는 알제리 공격진 앞에서는 역할 분담이 되지 않으면서 자동문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당초 홍명보가 국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내세운 전술 스타일 자체가 압박과 역습이었는데 최종 수비라인에 파이터형 수비수 하나 없었고 중원에도 한국영의 수비 역할을 분담해줄 사람이 없었으니 어찌 압박이 되겠는가? 그리고 공격 전개를 기동력과 탈압박이 떨어지는 기성용의 발끝에만 의존하다 보니 역습 전개가 제대로 될 리도 없었다. 자신한테 익숙한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면 전술도 그 선수들에 적합한 전술을 꾸려야 하는데 그런 거 없이 자신이 잘 아는 전술에다 선수들을 끼워맞췄다. 그럼에도 일부 쉴드를 치는 사람들은 최강희에 의해 국대가 망가졌고 그런 팀을 복구하는데만 해도 시간이 걸리는데다가 월드컵 본선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는 어쩔수 없는 부분이라고 궤변을 놓는다. 물론 최강희도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최강희의 경우, 억지로 대표팀 감독에 취임하더라도, 임기내내 불편한 기색을 대 놓고 드러내 문제였을 뿐이지, 냉정하게 볼 때, 경기력은 홍명보호보다 최강희호가 훨씬 더 좋았다. 그 이전에 딕 아드보카트는 홍명보보다 훨씬 더 촉박한 시간에 국대를 맏았음에도 원정 최초 1승을 거두었고, 경기력 역시 홍명보호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더 좋았다.[19]
2.3. 신구 조화의 실패
홍명보호 평균나이 24.9세위 런던 올림픽 멤버들을 우대하던 기조의 연장선에 있는 비판점으로, 막 유망주를 벗어난 자원들의 대거 채용을 일삼은데다 2002 황금 멤버들의 물갈이 시기까지 겹치며 신규 자원들이 유독 많았던 엔트리로 거론된다. 정량적으로도 월드컵 참가국 중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이어 두번째로 평균 연령이 낮은 팀이었고, 감독 홍명보 본인 또한 당시 44세로, 크로아티아의 니코 코바치, 코트디부아르의 사브리 라무시(42세)에 이은 두 번째로 젊은 감독으로, 좋게 표현하자면 젊은 에너지가 가장 돋보이던 엔트리였다.
하지만 물갈이도 물갈이 나름이지 선수들의 구심축과 관록을 책임져야 할 고참 자원마저 전멸했을 지경으로서 신구 조화가 역대급으로 엉망이었던 엔트리로도 평가받고 있다. 단순 나이만이 아니라 이전 월드컵을 경험하던 자원은 고작 5명으로서 18인이 월드컵을 막 데뷔한 햇병아리들이었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부터 2회 이상 월드컵에 참여하던 선수는 박주영 고작 하나 뿐이었으며, 이마저도 입지상으로 대표팀에 영향력을 발휘할 만한 재목은 아니었다. 만 나이로 30대였던 선수는 곽태휘가 유일했지만, 정작 기용해놓고 단 한 번도 쓰질 않았던데다 만으로 29세였던 이근호가 군계일학급 활약을 보이면서 관록의 품격을 보여주며 어린 선수들의 초라함만 돋보일 뿐이었다.
이렇게 경험이 부족한 자원들만이 출전하느라 선수들의 구심점은 무게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낯설기만 한 필드 위 선수들은 허둥대기만 바빴다.
전후 월드컵 엔트리와도 비교되는데, 엔트리 중 월드컵을 2회 이상 경험한 베테랑들론 히딩크호의 황선홍과 홍명보, 허정무호의 박지성과 이영표, 신태용호의 기성용, 벤투호의 손흥민과 김영권 등등 관록을 책임질 멤버들은 반드시 한 명 이상은 꼭 존재했었다. 그나마 아드보카트호가 기존 노장들의 줄은퇴로 세대교체에 허덕이곤 했어도 이운재와 최진철[20] 등 성적과 관계없이 기강을 잡아줘야 할 인재 및 고참은 존재했기에 마냥 젊은 피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교훈을 각인시켜 주었다. 챔피언 독일도 마찬가지로 미로슬라프 클로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필립 람, 루카스 포돌스키 등 베테랑들이 팀을 안정적으로 인도시키는 활약상으로 신구 조화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21]
구자철의 주장 선정도 패착이었다 평가된다. 올림픽 대표팀의 주장 경력을 바탕으로 지정된 걸로 추정되지만, 만 25세라는 주장 치곤 다소 어린 나이였고, 또한 애당초 U-23과 A대표팀은 무게감부터가 다른 직책이다. 말미암아 주장으로서의 무게감과 임팩트가 없었던 건 물론이거니와 경기 내내 중압감에 시달리는 모습이 포착되고 말았다. 일각에선 차라리 직전 월드컵 주전이었던 기성용이나 이청용이 더 적합했을 것이란 의견도 보이는 중. 홍명보호의 퇴진 이후로 구자철에게 짊어버린 짐을 덜어내고자 취지에서 기성용으로 주장을 위임시켰고 보다 홀가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사실 2002년 거스 히딩크의 유산들이 대거 퇴장하던 시기였던데다 고참들도 대부분 부진에 시달리던 외부 사정도 참작할 필요도 있었다. 이전 월드컵의 터줏대감들이었던 박지성, 차두리, 이천수,[22] 김동진, 조재진, 이호, 김정우, 이영표, 설기현, 김남일 등등등 대부분이 은퇴나 부상, 슬럼프, 노쇠화 등 제각기의 이유들로 국대와는 멀어졌던 터라 믿을맨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던 것은 물론 이렇다 할 1류 재목도 딱히 없던 점도 사실이었다. 그보다 좀 아래 세대였던 박주영은 모두가 알다시피 완전히 맛이 가 버린 시점이었고, 이청용은 심각한 부상 뒤로 제대로 된 기량이 안 나왔다. 2010년의 영웅인 양박쌍용이 죄다 각자의 이유로 2014년에는 전혀 기동하지 못 했고, 그 사이 새로 키워낸 선수가 없었던 것이다.
홍명보로서도 이 비판을 마냥 좌시만 한 건 아니었는지 박지성을 국대로 복귀시키려는 삼고초려를 시도하는 나름의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 박지성은 이미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를 끝으로 국대 은퇴를 선언했고 13-14 시즌을 끝으로 클럽 커리어도 종결시킨 완전한 현역 은퇴 선수였음에도 캡틴 자원에 어지간히도 목말랐는 듯 싶다. 만일 성사되었더라면 은퇴 선수가 월드컵에서 뛰는 진광경이 생겨날 뻔했지만, 박지성의 무릎 부상 상태를 목도한 홍명보도 두손두발 다 들고 단념하면서 박지성의 복귀는 끝내 무산되었다. #
특히나 차두리의 부재 또한 상당히 아쉬었다는 감상평 또한 속출했다. 이전 평가전마다 차두리를 기용하며 이용 가치는 꾸준히도 어필했지마는 개인사로 인한 슬럼프에다 줄부상으로 실력을 증명할 기회는 없었고 최종 엔트리에선 결국 낙마했다. 인과관계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결정이었지만 정작 박주영 등에겐 이런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 직후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에선 차두리는 곽태휘와 함께 보란듯이 맹활약을 펼쳤고 맏형 역할로선 적임자였기에 그의 빈자리는 유난히도 거대했던 것이었다.
2.4. 급 나누기로 자국 리그와 선수 비하
|
K리그 선수들과 비교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K리그서 최고의 선수들이라면 유럽에서는 B급일 수밖에 없다. 떨어지는 선수들로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고민했다. 지난 1월에 있던 멕시코와 경기서 바꿔놓은 것이 사실이다. 0-4로 패할 때 이정도의 레벌이라면 남은 어쩔 수 없었다. 좋은 선수들이 모두 유럽에 나갔지만 경기에 나서지 못하지만 K리그 선수들과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
기자를 거치지 않은
온전한 발언 원문은 다음과 같다."예를 들면 우리나라에 A급 선수들이 있는데 이 선수들은 유럽에 나가면 거의 B급대 선수들이 있고요. 우리 K리그에 있는 선수들은 그 밑에 있는데 과연 잘하는 선수가 유럽에 나가서 경기를 하지 못하고 지금 그 선수들보다 조금 수준이 떨어지는 선수가 경기를 하고 있을 때 과연 이거를 어떻게 선수 구성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었고"
다시 말해 홍명보의 관점은:- 유럽에 진출한 한국의 A급 해외파 = (유럽 기준) B급
- 유럽에 진출하지 않은 K리거 = (그 B급보다 밑인) C급 이하
그렇다고 일관성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러시아전 때 교체 출장한 황석호는 J리그에서 벤치워머다. 유럽에서 뛰지도 않는, K리거도 아닌 선수를 썼다? 홍명보 스스로 말한 기준에 배치되는 선택이다. 유럽에서 주전으로 뛰던 박주호는 1분도 출장하지 못했고, 에이스 손흥민은 득점하고 MOM으로 뽑혀도 교체되어 나가기 일쑤였다.
결국 그가 말한 '원팀'은 ' 그들만의 리그'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홍명보 본인은 K리그와 J리그에서만 뛴 선수였기에 자신 또한 C급 선수라고 인정한 셈이 되었다.
2021년, 우습게도 본인이 C급 리그로 비하했던 K리그의 울산 현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고 FIFA 클럽 월드컵에 나가는 팀이지만 어쨌든 C급"이라며 홍명보의 이 발언을 조명하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홍명보 감독님, 'B급 발언' 해명하셨나요? 다만, 울산 현대를 리그 2연패로 올려놓은 이후에는 잘 언급되지 않는 편이다.
2.5. 음주가무 회식과 이과수 폭포 관광 취소 거짓말
|
3. 평가
3.1. 총론
아무리 주어진 시간이 부족했다고는 하나[23] 1년 동안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감독, 적어도 A대표팀 감독을 맡기에는 실력이 턱없이 모자랐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래도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운도 따라줬고 감독 자신이 최선을 다하기도 해서 동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를 냈지만[24] A대표팀은 올림픽 대표팀과는 레벨이 전혀 다르다. 더구나 홍명보는 동메달 이후로 감독 경험과 선수 파악도 전혀 없었고, 전술이 부족하면 선수를 뽑을 때 편견이라도 없어야 하는데 월드컵에 나설 때는 후술할 해외파/국내파 차별로 선수 기용까지 엉망으로 했으니 성공할래야 성공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비슷한 나이대 감독 대비 검증조차 덜 된 감독이었다고 보는게 맞다. 국가대표팀 경기는 1년에 클럽 경기보다 턱없이 부족한 수준인데, 홍명보는 한번도 클럽 감독을 맡아본 적 없이 연령대별 대표팀 감독직만 골라서 맡았다. 본인의 전술을 성인 무대에서 제대로 테스트 해 볼 기회도 많지 않았는데 올림픽 대표팀 경력 하나로 국대 감독이 된 셈이다.대한민국이 월드컵에 진출하면서 제일 쉬운 조 편성인 벨기에, 알제리, 러시아를 받고도 무승 조 꼴찌로 27등으로 탈락했다는 것으로 미뤄보아 홍명보의 능력을 알 수 있다. 코스타리카가 월드컵 2회 이상 우승을 달성한 강호들인 우루과이와 이탈리아를 연파해 죽음의 조 1위를 찍거나, 알제리가 이구동성으로 조별리그 탈락할 것이다라던 예측을 뒤엎고 16강에 진출해 독일의 간담을 서늘케 한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이렇게 브라질 월드컵에서 거하게 말아드셔서 당연히 경질되거나 물러날 줄 알았는데, 어이없게도 유임이 확정되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차범근이 중도경질되었던 사례와 조광래가 성적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례와 비교해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유임해 명예회복의 기회를 주겠다고 발표하자 홍명보 의리 축구에 이어 축구협회의 인맥 라인, 고대 라인 논란도 불거졌다.
그러나 유임 발표에 여론이 악화되고 각종 논란까지 발생하자 압력을 이기지 못한 축구협회가 결국 홍명보를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나게 함으로써 홍명보의 대표팀 커리어는 끝났다.
3.2. 불명예 퇴진의 배경과 이후
결국 이렇게 물러나는 순간까지 축빠들에게 실망감을 안기면서 홍명보는 2021년 울산 HD FC 감독으로 부임하기까지 국내로 컴백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때 차범근에 비견되던 대한민국 레전드의 멘탈이 이랬다는 것에 한국 축구팬들은 물론이고 특히 K리그 팬들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25] 구단 명예의 전당에 홍명보가 등재되어 있는 포항 스틸러스의 일부 팬들은 구단 홈페이지에 홍명보를 명예의 전당에서 당장 지우라는 요구를 하기까지 했다.[26]위의 충격적인 발언와 열하나회 관련 파벌 조성 사건까지 겹쳐져 사실상 기성용을 필두로 한 일명 해외파 파벌 조성 논란의 시발점이 사실은 홍명보가 아니었냐는 설까지 대두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보나 감독 본인의 언행으로 보나 당시 런던파라고 과하게 중용되던 유럽 리그 선수들에게 우월감을 심어준 장본인이 바로 홍명보 본인이 아니었냐는 것. 사실 원래부터 많이 나오는 설이기도 했고 엔트으리 논란과 K리거들의 납득할 수 없는 선발 탈락까지 겹쳐지며 많은 의혹을 받기도 했는데, 감독 본인이 대놓고 K리그를 엿먹이는 발언까지 저질러 버렸다.
그 와중에 박종우, 홍정호, 윤석영이 연달아 SNS에 홍명보 옹호로 보이는 글을 올리며 런던 파벌, 으리 논란에 불을 지폈다.
9월 평가전에서 그렇게 깔봤던 C급 선수들이 베네수엘라를 격파하고 우루과이와 대등한 경기를 하면서 홍명보의 판단이 완전히 틀렸음을 증명했다. 인터넷에서는 홍명보, 박주영, 정성룡이 TV로 경기를 보며 데꿀멍하는 합성 사진이 돌아다녔을 정도로 홍명보는 조롱받고 있는 신세다. 주영아 티비꺼라
거기다 임시 감독 신태용이 '나라면 월드컵에서 이렇게 했을 거다'며 홍명보를 비판했고[27], 이후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울리 슈틸리케는 브라질 월드컵 때 한국팀에 대해서 '너무 어린 팀이었다'며 제대로 된 고참들과 노장들을 기용하지 않은 전임자를 둘러 비판했다.
퇴임 이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스페인전 승부차기의 마지막 키커로 올라왔을 때 '이거 못 넣으면 이민가야 하나?'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고 밝혔는데, 감독으로서 성적 부진으로 결국 조국을 떠나고 만 듯 하다. 향후 행보를 결정하겠다고 하는데, K리그 비하 발언 때문이라도 단기간에 국내 복귀는 쉽지 않을 듯. 거기다 인맥 축구의 핵심이라고 주목받은 탓에 협회 내부의 행정직 일자리조차도 얻게 되기 힘들어졌다. 결국 중국에서 감독 생활을 하다가 2017년에야 지도자 생활을 포기하고 축구협회 행정직으로 들어갔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겨우 1년 남짓 된다는 점에서 자신만의 팀을 만들어 볼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축구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레전드 축구 영웅이 그저 헌신짝처럼 일찍 버려졌다는 것에서만큼은 분명히 아쉬움이 있다. 애초에 프로 구단을 이끈 적도 없던 경험 부족의 감독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이라는 높은 자리에 덜컥 임명했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 전 감독들에게 충분한 시간도 더 주지 않고 그저 동메달을 가져왔다는 결과 하나만 보고 부랴부랴 서두른 축협의 잘못도 있다.
그럼에도 홍명보는 지나치게 부족한 사람이었다. 디에고 마라도나, 마르코 반 바스텐, 또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로베르토 디 마테오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홍명보는 필설로 형용키 어려울 만큼 문제가 심각했다.[28] 이들 감독이 각기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첼시 감독으로 부임할 때 이들은 경험이 일천한 젊은 감독들이지만 위기에 처하고 분열되어 가는 팀을 구하기 위해 선임되었다. 선수들이 그 플레이를 직접 보고 자라 존경하는 레전드로서 팀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조직력과 정신력을 고취시키며 희생정신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 선임된 인물들이다. 마라도나는 탈락 위기에 몰린 아르헨티나를 기어코 남미 예선을 통과시켰고, 마르코 반 바스텐은 2002, 2004년 위기에 몰렸던 네덜란드를 다시금 정상 궤도로 올려놓았고, 디 마테오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일궈냈다.[29] 물론 이런 선임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며, 뉴캐슬을 강등에서 탈출시키지 못한 앨런 시어러 같은 경우도 있다.
홍명보는 이미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이라는 좋은 업적을 세웠고, 한국 축구계의 거두로서 특히 런던 올림픽파에 대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홍명보의 전술적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건 이미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드러난 바 축구협회에서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나 파벌놀이로 인해 막장의 구렁텅이에 떨어진 팀을 하나로 묶고 단속하는 역할로 선임하였을 것이다. 거기다 그 동안 축협에서는 홍명보에게 연령별 대표팀을 꾸준히 맡기면서 단계별 트레이닝 후 최종예선 통과 후에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언젠가는 발탁할 속내를 비춰왔다. 마침 홍명보가 그 동안 지도해 온 연령별 대표팀 선수들이 국가대표에서 주축이 되는 2014년 시점에 국가대표 감독 자리가 부재했기에 조금 빠르지만 동메달이라는 성과를 거두어 선수로서나 감독으로서나 국민 영웅이 된 홍명보를 선임하면 선수들도 만족하고 여론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실제로 선임 직후 홍명보는 동정표를 많이 받았으며, 결과가 안 좋아도 너무 비난하지는 말자는 여론이 다수였다. 그럼에도 오히려 앞장서서 파벌의 역성을 들어주며 그 선수들에게 묻어가는 팀 운영을 보여줬기에 결과적으로는 많은 이들이 크게 실망했다.
너무 짧은 시간, 일천한 경력 등은 축구협회의 파행적 행정을 탓할 이유가 될지는 몰라도 홍명보에게는 최소한의 면죄부도 되지 못하며 오히려 결과에 매몰되는 결과주의적 시각이다. 결과의 비참함과는 상관없이 홍명보는 그 자신에게 맡겨진 그가 능히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최소한의 임무조차 용기 있게 수행해내지 못했고, 팀의 도덕성과 스포츠맨쉽마저도 흔들었다.
여기까지의 국가대표팀 지도자 생활을 주제로 홍명보 본인이 학문적인 입장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썼고, 심사결과 통과가 되어 2016년 8월에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경험에 대한 자문화기술지(홍명보)를 클릭하면 고대 도서관에 소장된 원문 PDF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다. 특히 절반 이상은 쓸데없는 과거 내용 및 의미없는 표의 나열이고, 옆의 인덱스에서 연구 결과 항목 중 '새로운 시작 : 청소년 대표팀' 부분부터 보면 된다. 여기선 자서전처럼 읽히기 때문에 굉장히 빨리 읽을 수 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심사와 평가를 거치는 학위논문이다보니 무조건 자화자찬식의 단편적인 서술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기에 대한 비판을 성찰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일례로 자신의 장점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기사 및 책들을 인용하며 서술했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사실 외부의 비판 또는 누군가의 지적에 관해 성찰한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본인 스스로의 성찰을 통한 실패 원인 분석 및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영웅기적 서술만 남아 있다.
특히 일반적으로 크게 성찰할만한 부분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청소년 대표팀과 U-23 대표팀의 경우는 실패 - 성찰 - 성공의 스토리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국가대표팀, 특히 월드컵 대표팀 부분은 굉장히 내용이 빈약하다. 같이 뛰었던 코치와 선수들의 증언도 군데 군데 실려있다.[30] 최소한 그게 변명이건 어떻건 간에 국대 감독이라는 흔하지 않은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어차피 박사학위를 취득하려고 논문을 쓰는 입장이라면 다른 주제가 널려 있는데도 굳이 자신의 흑역사를 포함하여 외부자들은 알 수 없는 경험[31]과 고민을 담아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나름 냉정하게 성찰하는 것을 주제로 삼은 것은, 후대에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는 작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및 준비과정에서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린 비판들에 대한 인용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저 실패 이후의 자기 성찰만을 적어놓았다.
특히 그 근거로 이 논문에는 알제리전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 사실 축구팬이라면 가장 궁금해할 부분이면서 동시에 홍명보호가 결국은 최악의 실패로 평가받게 된 원인이자 홍명보의 지도자 경력을 끝장낸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경기가 알제리전임은 어지간한 사람이면 알고 있는 사실이고 사실 이게 궁금해서 읽어보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홍명보가 정말로 자신의 지도자 경력을 통해서 무언가 후대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남긴다면 알제리전 패배 및 그 과정에 대한 분석이야 말로 핵심중의 핵심이어야만 했다. 그러한 반면교사를 통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분석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이야말로 논문으로의 가치를 지내게 하는 일인 것이다. 이 논문에는 알제리에 대한 얘기가 딱 세 번 나오는 첫 번째는 조편성 때, 두 번째는 인용, 세 번째는 패배를 당했다는 단순한 얘기 뿐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본인이 직접 생각해서 쓴 건 조편성과 패배당했다는 두 부분이고 조편성은 사실상 무의미한 부분이라고 보면 본인이 본인 손으로 알제리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패배당했다는 얘기 한 번에 불과하다. 문제는 정말 간단하게 패배했다는 내용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사실 이 논문 자체가 홍명보 본인의 대실패이자 커리어를 끝장낸 2014년 월드컵 대표팀에 대한 분량 자체가 적다. 구체적으로 언급된 알제리 관련 내용은 이 경기의 패배를 교훈 삼아 벨기에전을 잘 했다는 내용밖에 없다.
물론 논문의 주제는 지도자 경력 전반을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에 알제리전에 너무 많은 것을 할애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알제리전은 홍명보의 한국 축구 레전드로의 위상과 지도자로의 명성과 2002년에 받은 까임방지권까지 한꺼번에 날려버린 경기였기 때문에 정말 후대의 지도자들에게 반면교사의 내용을 남긴다면 알제리전에 대한 분석은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즉,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는 점이고, 알제리전에 대한 홍명보 스스로의 성찰과 반성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저 논문은 읽어봤자 시간낭비이자 불쏘시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32]
4. 옹호 對 반박
이렇게 까이고 있지만, 옹호하는 의견도 있다. 이 문단은 옹호 의견과 그에 반박하는 의견으로 나뉘어졌음을 알린다.-
원칙을 깨고
박주영을 뽑은 건 인맥 축구가 아닌가?
옹호: 인맥 축구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국 국가대표에 핵심 공격수가 없던 건 사실이다. 김동섭이나 김신욱 같이 K리그에서 잘 나가던 공격수도 기용을 해 왔으나, 소득은 별로 없었다. 마땅한 공격수가 없으므로 홍명보는 어쩔 수 없이 박주영을 시험하기 위해 불렀고 하필 그 경기에서 박주영이 맹활약을 했다. 물론 그 다음 경기부터는 쭉 죽을 쒔지만 다른 공격수들은 그 한 경기도 잘 하지 못했다. 마땅한 공격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했던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실패를 불렀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반박: 박주영이 딱 한 경기에서 잘 해줬다고 하지만 그 후는 쭉 죽을 쒔다. 과학적으로 생각해 볼 때 선수는 기계가 아니므로 당연히 경기력에 기복이 있는 것이다. 과학 연구와 실험에서도 표본의 숫자가 적으면 신뢰도가 적고 많으면 신뢰도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어떤 선수건 간에 극단적으로 적은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첫 경기에서의 결과를 근거로 선수를 판단하고 기회를 주는 것은 논리나 합리와는 거리가 있다. 박주영을 보면 알듯이 첫 경기만 잘 한 선수가 있는가 하면, 첫 경기에서 유독 경기력이 나쁜 선수도 있기 마련이다. 예전의 좋았던 기억과 합류 후 딱 한 경기만을 표본으로 삼는 것과, 소속팀에서 죽을 쑤고 있으면서 첫 경기를 제외한 다른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죽을 쑤는 것 중 무엇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하는가? 좋은 감독이라면 소속팀에서의 경기는 물론 합류 후의 훈련에서의 경기력을 바탕으로 선수의 기량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옹호 문단의 가장 핵심이 되는 논거이자 가장 많이 듣는 변호가, 바로 박주영을 어쩔 수 없이 썼다는 진술이다. 옹호하는 사람들은 홍명보가 그 외 K리그에서 잘 나갔던 공격수를 기용은 했으나 소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박주영이 당시 반드시 발탁해야만 할 선수였는지 객관적인 정보를 놓고 보면 명확하다.
첫째, 박주영의 클럽 경력이다. 월드컵은 2014년에 열렸고 박주영이 아스날 이적은 2011년에 했다. 이후 셀타 비고 임대, 아스날 복귀, 왓포드 임대를 전전하며 박주영은 11-12, 12-13, 13-14 세 시즌 간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한 것은 셀타 비고에서 교체 멤버로 26경기 소화한 것이 최다였고, 아스날과 왓포드 시절에는 시즌 3경기 출장하는 것도 힘겨웠다. 한 시즌에 저 정도 경기 숫자를 소화하는 선수가 과연 어쩔 수 없이 기용했어야만 하는 공격수인가? 게다가 홍명보는 국가대표 수석코치 노릇을 하던 시절 컨디션이나 팀 적응 등의 문제로 아시안컵에 나오기 싫다는 이동국을 몇 차례 찾아가 억지로 호출한 바 있다. 당시 이동국은 2번 연속 월드컵 불참 + 느지막한 나이 때문에 조바심을 내서 부상 회복을 완벽히 못하고 겨울 이적으로 영국에 진출해 교체 멤버 상태였다. 따라서 폼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반드시 전지훈련에 참가해서 문화 적응 + 팀 전술 적응 및 친목 + 체력 등 몸상태 끌어올리기가 긴급한 과제였다. 그런데 홍명보가 몇 번이나 찾아가 억지로 끌어낸 결과 2000 아시안컵 득점왕이자 2004 아시안컵에서도 경기당 1골을 기록한 이동국이 2007 아시안컵은 대회 무득점으로 그치며 한국 득점력은 엉망이 되었고, 미들즈브러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한 이동국의 해외 진출도 실패로 남고 말았다. 홍명보의 이런 전적을 볼 때 공격수의 폼을 판단하는 능력은 절대 감독감이라고 볼 수 없다. 정작 이동국의 폼은 저런 식으로 망쳐놓고, 박주영은 소속 팀이 없어서 훈련을 못 받자 월드컵 엔트리를 브라질 다음으로 빨리 제출해놓고 박주영을 불러다 개인 훈련을 시켜줬다.
둘째, 국대 공격수 현황이다. 홍명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대강 K리그라고 묶어서 말하지만, 일단 홍명보의 선수 감식안을 살펴봐야 한다. 홍명보가 박주영을 제외하고 소집했던 공격수들은 손흥민, 이근호, 김신욱, 김동섭, 조동건, 서동현이다. 손흥민은 이 시기 이후 윙어로 굳어졌고, 이근호 역시 윙어가 주포지션이다. 그렇다면 김신욱, 김동섭, 조동건, 서동현이 남는다. 김신욱은 2014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했고 이후로도 경기력이나 활용법에 논란은 있어도 어쨌든 제 컨디션을 유지한다면 국가대표에 반드시 필요한 옵션이라는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감한다. 이후로도 신태용호와 벤투호에서도 활약상을 떠나 발탁은 되었으니 어느 감독이 보나 국가대표감은 맞다. 문제는 이 외에 홍명보가 실험한 선수들인데 우선 조동건의 경우 성남과 수원에서 오래 뛰었지만, 교체와 주전을 넘나드는 정도의 선수였다. 2012~2013이 그나마 최고 정점을 찍던 시기였으나 그나마 선발 20게임 출전도 불가능한 선수였다. 2017년에는 수원에서도 밀려서 사간 도스로 이적했다. 김동섭의 경우도 그 시절 반짝한 선수로, 2014년부터 내리막을 찍기 시작해서, 2014년과 2015년 2년을 통틀어 1골을 기록했다. 2017년에는 2부 리그 경찰 축구단에서 주전 경쟁을 했다. 서동현은 10년이 넘는 커리어 기준 두자리수 이상 득점을 해본 시즌이 딱 두 시즌뿐인 공격수이다. 홍명보가 뽑았을 때가 딱 두 번뿐인 전성기 중 하나로, 2013년에는 5득점, 2014년에는 챌린지에서 7득점, 2015년에는 챌린지에서 4득점, 2016년에는 챌린지와 클래식을 넘나들며 총 2득점을 기록했다. 종합하자면 이 선수들은 2014년 월드컵을 기준으로도 그렇고, 그 이후로도 크게 성장하지 못 하여 절대 국가대표 레벨의 공격수가 아니다. 아예 국대급이 아닌 선수들을 뽑아놓고 사람이 없다고 어쩔 수 없이 박주영을 뽑았다는 주장은 어폐가 있다. 박주영을 뽑고 싶어서 일부러 엉뚱한 선수들을 뽑고 연막을 친 것인지, 아니면 선수 보는 눈이 정말로 없는 것인지 의문일 따름이다. 물론 이외에 K리그에서 걸출한 공격수가 많이 있었느냐 하면 그 부분에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최소한 박주영보다 경기수를 많이 소화하면서 폼을 유지한 K리그 득점 상위권 선수들은 분명 있었다.
-
대표팀 감독이 K리그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이 과연 적절한 행동인가?
옹호: 대표팀 감독의 자국 리그 비하는 좋지 않게 비춰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홍명보가 부임한 이후 K리거를 주축으로 출전한 동아시아컵에서는 2무 1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고, 미국에서의 전지 훈련은 오직 K리그 선수들로 진행했다. 그 결과는 똑같이 해외파가 빠진 미국과 맥시코에게는 완패하고 코스타리카에게는 1:0 승을 거두었다. 그러므로 감독이 K리거에 실망하는 건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으며, B급이라는 발언은 심했지만 월드컵 전의 평가전들에서 K리거들이 힘을 쓰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반박: 이 문서에서도 충분히 설명되어 있듯이 그 모든 경기들의 전술과 선수 선발은 참혹한 수준이었다. 바로 위에 박주영의 발탁 문제에도 나와 있듯이 홍명보 본인이 선수를 보는 안목이 없어서 애초에 국대급 아닌 선수들을 뽑았다. 심지어 어떤 경기는 평소에는 그런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홍명보 본인도 전술 실패를 인정했다. 본인 감독 수준이 낮아서 선수를 잘 활용하는 전술을 못 짜내는데, 선수 수준만 낮다고 울부짖으면 어쩌란 건가? 바로 후임을 맡은 슈틸리케는 부임 직후에 K리거들로도 훌륭한 경기력과 성과를 엮어냈었다. 슈틸리케에 대한 비판도 아시안컵 이후 선수 선발이 경직되고 전술이 경직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본인이 선수 보는 눈이 부족해서 좋은 선수를 발굴하지 못한 건데 실망이라니 당치도 않다. 거기다 K리그는 비하하면서 정작 실력 면에서 K리그보다 한 치도 나을게 없다고 평가받는 J리그 선수는 벤치멤버까지 중용했다.
무엇보다 알아야 할 점은 어떤 축구팬도 K리그 선수가 유럽에서 맹활약하는 선수만큼 활약 가능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해축빠들이 K리그를 비하하며 논점을 흐리는데, K리그를 옹호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조차도 유럽과 한국의 실력 격차는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월드컵 이전의 평가전에서 K리거가 힘을 쓰지 못 했기 때문에 실망했다는 말도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직으로서의 의무를 망각한 망언이란 것이다. 한국은 단 한 번도 필드플레이어를 전부 유럽파로 채워본 적이 없는 나라다. 하다못해 베스트 11도 전원이 유럽파였던 적이 없다. 좋으나 싫으나 K리그에서 좋은 선수 열심히 발굴해서 긁어모아야 엔트리가 완성되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런 나라에서 자국 리그의 수준이 C급이네 D급이네 하는 것에 의미가 어디 있는가? 원하는 선수 사올 수 있는 클럽 축구도 아니고 있는 현실에서 최선을 찾는 것이 국대 감독 역할이다. 심지어 히딩크호에는 유럽에 나간 선수 찾아보는 것이 더 어려웠고, 그 후로도 한국이 지금만큼 유럽 진출을 시도했던 적이 없다. 이전 감독들 모두 좋으나 싫으나 K리그에서 열심히 선수 발굴해서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대회에 나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자국 리그가 C급이라서 유럽에 있는 B급 선수를 썼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는 마치 있는 재료 가지고 적절히 요리하라고 했더니 냉장고에 1등급 한우가 없다고 칭얼대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실도피라는 의미이다. 거기에 평가전에서 K리그 선수들이 못했다고 급나누기를 정당화하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정작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제몫을 다한건 K리그 선수들이지 유럽파가 아니다. K리그 선수들이 B급이라 활약을 못 했다면, 아스날과 왓포드에 있었음에도 활약을 못 한 박주영은 EPL의 수준이 낮아서 그랬던 것인가? 결국 선수의 폼이 중요한 것이지 어느 리그에 있고 없고를 가지고 급을 나눌 수 없는 노릇이다. 2014년 월드컵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어디 소속된 선수들이었는지 뻔히 보고도 사퇴 기자회견에서 급나누기를 하는건 선수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것일 뿐더러 홍명보 본인도 K리그와 J리그에서밖에 뛰어본 적 없는 선수인 점을 생각해보면 자신 또한 C급 선수라고 인정하는 셈이다.
-
분당 땅 투기할 시간에 전술이나 짜야 했다
감독이 개인 시간에 자기 사생활한 게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이냐는 반박이 있다.[33] 그러나 홍명보는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에 땅을 보러 갔으므로, 그 점에서는 까여도 할 말이 없다. 당연히 까여야 하는 부분이다. 파주 - 분당간의 거리와 교통 상황을 고려하면 왕복 3~5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이며, 이는 최소한 오전이나 오후 업무 중 하나는 비웠다는 뜻이다. 감독 업무 중간에 짬을 내서 보러갔다는 이야기는 궤변일 뿐이다. 기본적인 토지 매매에 걸리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어떻게 생각해도 일을 제껴두고 땅 보러갔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토지 매매가 무슨 핸드폰 바꾸는 수준의 간단한 일도 아니고, 당연히 한 곳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토지를 물색해야 되고, 부동산도 몇날며칠을 자주 들락거리게 된다. 한 땅만 슥 보고 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자연히 그 문제에 시간을 더 쏟게 된다.
무엇보다 제 할일 다하고 남는 시간에 땅보러 다녔다면 모를까 과연 홍명보가 감독으로서 제 할일을 다했다고 할 수 있나?[34] 알제리 감독은 대한민국 대표팀 경기는 물론 K리그까지 챙겨보며 경기를 준비했다고 한다. 반면 홍명보는 "알제리 준비되지 않은 팀이다. 경기 다 안 봤다."[35] 같은 안일한 인터뷰나 하다가 개박살났다. 월드컵을 많이 남겨둔 시기라면 그나마 개인 사생활이라고 옹호할 수 있겠지만, 월드컵이 코앞에 닥쳐서 상대팀은 K리그 경기까지 분석을 하는데 본인은 땅을 보러 다녔다면 비판의 여지가 당연히 있다. 시험 일주일 전에 여가생활을 마음껏 즐기며 개인 사생활이라고 하다가 시험을 망쳤다면 변명할 여지가 있는가? 다른 팀의 감독과 선수들은 그 사생활까지 쥐어짜내서 전념하는게 월드컵이다. 매일 그런 감독생활을 했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월드컵 직전에는 그것에 전념해야 하지 않는가?
-
이렇게 쉬운 조에서 탈락하다니, 당연히 16강을 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옹호: 그 당시 한국 피파 랭킹을 보면 한국이 제일 낮다. 물론 월드컵전부터 꾸준히 랭킹이 낮아지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책임소재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2010년 이후 전임 감독들도 책임이 있으며, 전적으로 홍명보호만의 책임이라 할 수는 없다. 조별리그 통과 가능하다는 설도 언론의 설레발에 가까웠다. 다만, 홍명보호 자체도 상대들을 너무 얕보고 안일하게 대비한거 아니냐는 비판은 피해갈 수 없다.[36]
외신들도 대회 전에 한국의 탈락이 유력하다고 보았다. 조 편성도 신흥 강호 벨기에, 아프리카 신흥 강호 알제리, 전력이 비슷한 러시아였다. 그러나 이 조편성 자체가 역대급으로 꿀조였던 건 맞는 말이다. 당장 전부다 '신흥강호'라고 해둔 것만 봐도 알겠지만, 다른 조들은 쟁쟁한 전통의 강호들이 하나둘 이상은 반드시 끼어있고 특히 D조는 아예 전통의 강호가 셋이나 끼어있는데, 그들에 비해 한국이 속했던 H조가 가장 무난한 대진이였던 것은 분명하다. 다른 조의 대진과 각 조별로 경기 몇개씩만 훑어봐도 상대가 너무 강했다는 불평은 변명에 가까운 말이다.
반박: 당연하지만 탈락했다고 무조건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H조가 한국이 가볍게 16강을 갈 수 있는 꿀조라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축구를 알기는 하는 것인지 의심해야 하는 수준이니 이는 배제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홍명보호가 비판을 받는 이유가 단순히 성적 때문만이 아니라, 성적과 별개로 경기력 면에서 실패를 거두었기 때문인 것도 맞는 말이고, 이건 결과 지상주의를 떠나서 스포츠 선수라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할 문제다. 특히 이 질문은 그 당시 언론들이나 그 언론에 휘말린 네티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국대 축구를 비판적으로 본 사람들은 8강은 커녕 16강 진출도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일부 있기도 했다. 벨기에도 신흥 강호긴 하지만 그래도 유럽 예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서 약하다 보긴 힘들었고 러시아도 파비오 카펠로부터 선수층까지 얕보지 않았고, 알제리는 아는 게 부족하지만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에 승률 100%까지로 이긴다고는 보진 않았다. 물론 2-4완패로 갈거라고 생각은 못 했겠지만.
그리고 제대로 된 비교를 위해선 한국의 월드컵 역사를 제대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2002년 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2002년이 기적이지 한국의 제대로 된 위치를 알라고 일침을 날리곤 하는데, 1998, 1994, 1990, 1986 월드컵 등을 뒤돌아보면 선전한 과거들이 분명히 있다. 1990과 1998에서의 경기력과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1986, 1994 월드컵에서는 강팀들로 가득한 조에서 파란을 일으키는 등 2002년 일침 매니아들의 생각보다는 훨씬 잘했다. 경기력이 안 좋다는 1998년에도 감독이 중도 경질되는 참사 속에서 전력승부의 벨기에를 물고 늘어져 마지막 1무를 거두는 등 선수들이 유종의 미라도 거두려고 애를 썼으며 최소한 2014년 보다는 투지를 보여줬다. 1998년 벨기에와 황금세대라는 2014년 벨기에의 전력을 동일하게 비교하기는 당연히 힘들지만 2014년에 후반전 내내 10명으로 싸운 벨기에 상대로도 1:0으로 패했다. 하다못해, 그 1954년에도 어떻게 보면, 첫 진출에 상당히 선전한 케이스다. 일침 매니아들은 헝가리한테 0-9로 깨진 것이 선전한 거냐며, 비야냥거릴 수 있는데, 저 때의 헝가리는 지금은 크게 몰락해버린 탓에 잘 몰라서 그렇지 당시 최강인 잉글랜드마져 7-1로 도륙내던 최강팀이었다. 당시 한국은 정전 협정에 조인한 지 겨우 1년이 안 된 세계 최빈국이라 축구협회도 창설된 지 얼마 안 되었고, 비행기 티켓도 미리 준비 못 해서 미군 수송기를 얻어 타서 일본으로 간 다음 4개국을 거친 뒤에야 겨우 스위스에 도착하던 팀이었는데, 이 정도면 0-9로 패배한 것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한국이 약체팀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 번 정도는 고춧가루를 뿌릴 저력을 지녔던 국가대표팀이었고, 승리를 못 해도 감독이나 선수나 투지만큼은 보여줬다. 이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 한 홍명보호는 물타기의 여지 자체가 없다. 참고로 홍명보호는 역대 A매치 역대 최악의 승률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본격화된 2000년대 이후로 월드컵에서 1승도 못한 한국 대표팀은 홍명보호 뿐이다.
여담으로 한국이 속한 조의 알제리와 벨기에는 이후 16강에서도 나쁘지 않게 했다. 알제리는 대회 우승팀인 독일 상대로 연장 혈투를 했고[37] 벨기에는 북중미의 강호 미국을 연장 혈투 끝에 2:1로 이긴 후 8강에서 아르헨티나에게 패하였다. 아르헨티나가 해당 대회 준우승 팀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질만한 상대에게 졌다. 즉, 상대적으로 할만한 조였던 것은 맞지만, 세계 최고의 팀이 나오는 월드컵 답게 만만하지는 당연히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쭉 전술된 바와 같이 홍명보호가 단순히 16강을 못 가서 비판을 받는 것이 아니다.
-
홍명보의 인맥 축구가 한국 축구의 암흑기를 부른 것 아닌가?
옹호: 김진수를 처음 기용한 것도 홍명보이고, 런던 올림픽 멤버도 홍명보가 키운 선수들이고, 성공한 J리거들은 홍명보의 유산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1년의 시간을 주고 월드컵에서 성공하라는데, 과연 홍명보에게 새로운 선수를 실험할 시간이 충분했을까. 어쩔 수 없이 올림픽 멤버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홍명보의 선수 기용은 공평하고 납득이 가능했다.[38]
반박: 정작 월드컵 때 김진수는 부상으로 나오지도 못 했고, 당시 국대에 뽑힌 J리그 선수들은 대부분 주전이 아닌 벤치 맴버들이었다. 이들을 성공한 J리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2011 아시안컵 이후 국대 은퇴 선언한지 오래되었고 마음 바꿀 생각도 전혀 없었던 박지성을 계속해서 국대에 복귀시키겠다며 언플을 한 것도 충분히 논란거리였다. 그리고 잘 따지고 보면 홍명보가 발굴한 선수 중에 김진수나 홍명보호에서 처음 국대에 발탁된 이용을 제외하고는 이전부터 국대에서 뛰고 있던 선수들이지 홍명보가 온전히 발굴했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재차 되풀이하는 얘기지만 한국 축구의 자원이 부족한 것은 동의한다고 쳐도 그나마 그 부족한 자원 속에서 괜찮게 평가받는 선수들도 있는 마당에 조동건, 김동섭, 서동현 등 알아서 국가대표급이 아닌 선수들만 뽑아놓고 자원이 없다는 것은 웃긴 얘기다. 최강희도 후일 한국에서 뽑을 공격수는 이동국, 박주영, 김신욱밖에 없는게 현실이라면서 홍명보를 옹호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더라도 최소한 아시아 리그에서 최고로 우수한 공격수라도 뽑아 놓고 비교를 했다면 대중들도 납득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전술한 저 선수들은 K리그 내에서도 도무지 우수한 선수들이라 보기 어려웠단 것이다. 후임자인 슈틸리케도 2016년부터 선수 선발이 경직되었던 거지 2015년은 이용재, 이정협, 윤빛가람, 이종호, 정동호, 임창우, 이재성 등 끊임없이 괜찮아 보이는 자원들을 탐색하고 발굴했다. 손흥민조차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뽑은 홍명보와는 아무리 그래도 정도의 차이란 것이 있다. 물론 홍명보가 암흑기를 초래한 것은 아니지만, 김진수 발굴 말고는 별달리 비호를 받을 만큼 잘한 것도 없다. 또한 시간이 없었다고 하는데 결국 그것을 알고도 부임한 것은 홍명보 자신이다. 그에 대한 책임 또한 온전히 본인 몫이라는 것이다.
-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우선 명확하게 할 부분은 홍명보호의 계약 기간인 1년 1개월, 382일은 길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임기 기간에서 히딩크호랑 별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건 거의 억지 비난에 가깝다. 히딩크의 계약 기간은 1년 6개월이었고 홍명보의 계약 기간은 1년 1개월이었기 때문에 4년에 한 번 월드컵 나가는 국가대표팀 감독 임기 중 5개월이면 큰 차이다. 히딩크는 K리그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역대급 지원을 보장받았고, 개최국이라 지역 예선을 거치지 않았기에 칼스버그컵, 두바이컵, 컨페더레이션스컵, 그 외 각종 친선전과 평가전, 해외 전지훈련까지 국가 차원에서 엄청난 지원을 해줬다.[39]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계약 기간보다 몇 경기나 치루며 담금질을 할 수 있었는가인데, 월드컵 본선 포함 히딩크호는 A매치 39경기를 했고 홍명보호는 19경기를 했다. 부임 기간이 고작 9개월인 아드보카트호도 20경기를 했기 때문에 홍병보에게 객관적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히딩크호 이후로 월드컵을 나간 감독 기준 이보다 짧은 것은 9개월, 286일인 아드보카트호 뿐이었는데, 아드보카트의 경우는 전임자인 본프레레가 팀을 어느 정도 완성시켜 놓고 월드컵 본선까지도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히딩크호의 4강 신화 이후 외국인 감독을 보는 눈만 높아진 여론때문에 시달리다가 자진사퇴해버린 경우라 아드보카트호는 본프레레호의 운영 기조에서 크게 바뀌지는 않았었다. 조광래-최강희를 거치며 팀 내부 기강부터 쑥대밭이 된 홍명보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거기다 2002년 맴버 중 주축 선수들을 상당수 보존하고 그들이 월드컵 본선에서 득점까지 한 아드보카트호와는 달리, 홍명보호는 2010년 16강의 주역인 양박쌍용을 포함해 이영표, 차두리 등 많은 고참 선수들이 은퇴하거나 폼이 하락했기에 선수풀도 절망적이었다. 즉, 이를 종합하면 객관적으로 시간이 홍명보에게 많이 주어진 것은 아니긴 했다. 물론 히딩크호 이후의 한국 감독 임기를 놓고 보면 1년 안팎이 태반이기는 한데, 이는 한국이 감독을 너무 자주 갈아치우는게 문제일 뿐이지 홍명보에게 객관적으로 시간이 많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전술한대로 월드컵 한 번 나가는데 중간에 감독을 두 번이나 이미 바꿨고, 심지어 전임자 최강희호때는 팀 내부 분위기도 개판이 되어 있어 파벌까지 생겨있었다. 전술 짤 시간도 부족한데 분위기마저 안 좋았으니, 자연스레 홍명보는 런던 올림픽 때부터 잘 알던 선수들 중심으로 잘 아는 전술을 구사하는 식으로 가게 되었다. 감독에게 시간과 능력이 부족했으니 그냥 잘 알던 선수들 위주로 최대한 활용해보자는 발상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없는 시간 안에서라도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라도 보였다면 최소한 여론에서 동정이라도 했을 것이다. 부임 시점 홍명보에 대한 여론이 결코 나쁘지는 않았다. 2002년 4강 신화 선수 시절을 거친 뒤 감독으로선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까지 따 왔으니, 이런 가능성을 지닌 젊은 감독을 굳이 급하게 데려와서 총알받이를 시켜야 하냐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월드컵에서 성적이 안 좋더라도 홍명보를 유임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부임 시기에는 많았다.[40] 그러나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시간이 없다는 사람이 땅을 보러 다니거나 알제리를 제대로 분석하지도 않는 등 불성실한 모습을 보였고, 귀국 인터뷰에서는 K리그 비하 발언까지 겹치면서 소수 있던 동정론까지 모조리 날려먹었다. 결정적으로 2014년 월드컵에서 홍명보보다 적은 시간을 받고 훨씬 좋은 성과를 낸 감독도 상당한 숫자였다. 아직 젊고 역량이 부족해서 다음 월드컵까지 바라보고 선임했다고 한다면[41], 최소한 언행에서는 조심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줬어야 했다. 심지어 퇴임 이후 인터뷰에선 국대 감독은 1달에 열흘만 일한다는 식의 말을 해 본인은 성실히 근무했다는 식의 핀트를 못 잡는 항변을 하면서 홍명보에 대한 동정여론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5. 신태용호와의 비교
슈틸리케호 이후 졸속 행정으로 신태용을 급하게 임명한 뒤 신태용호의 경기력이 바닥을 치자, 홍명보도 할만큼 했다는 재평가도 나오고 있다. 아시아 예선은 최강희, 월드컵 본선은 홍명보라는 괴상한 행정력을 보여준 축협 때문에 고생했다는 것으로, 슈틸리케호-신태용호에서 축협의 졸속 행정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자 홍명보도 신태용과 같은 희생자가 아니었냐는 것. 의리축구를 시전한 것도 1년도 채 안 남은 시간에서 결과를 내기 위해 자신의 전술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런던 올림픽 멤버 위주로 선발을 했다는 주장도 나오며, 결국 요지는 축협이 앞길이 창창한 젊은 지도자들을 망쳤다는 것이다.그러나 홍명보와 신태용은 상황이 많이 다른데, 신태용은 감독 선임 시점에서 홍명보보다 훨씬 자격을 갖춘 감독이다. 2009년 성남 일화 천마의 감독대행으로 시작하여 스페인 피스컵에서 스페인의 세비야FC와 0:0 무승부 승점 1점을 기록하는 이변을 일으켰고,[42] 감독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 2010 FIFA 클럽월드컵 4위, 2012 피스컵에서 잉글랜드의 선덜랜드 AFC를 격파하며 준우승을 기록하였고, 반면 홍명보는 코치 생활의 출발부터 코치 자격증도 없이 국가대표 코치 자리에 앉았으며, 이는 U-20월드컵을 감독으로서 지휘할 때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43] 중간에 행정가를 준비한다며 코치직을 파트타임이나 다름없는 형태로 보내기도 했다. 신태용도 2009년부터 성남 일화 천마 감독대행으로 시작했고, 홍명보도 2009년부터 U-20 감독으로 시작했으니 감독 경력은 큰 차이 없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으나, 1년에 몇 번 훈련을 소화하지도 않는 국가대표팀과 시즌 내내 수많은 경기를 소화하는 클럽을 지휘해 본 경험은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44] 하나라도 더 많은 경기를 지휘해봐야 하는 감독 생활 초창기를 홍명보는 놓친 셈이다.[45]
또한 홍명보 경력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지도자 생활의 시작부터 제대로 된 루트를 통해 수행한 것이 아니라 축구협회에서 강력하게 밀어주는 형태로 각 연령별 대표팀 코치-감독직만 골라서 수행했다는 점이다. 홍명보의 경력은 비슷한 연령대의 다른 감독들인 황선홍, 최용수 등과 비교해봐도 명확하게 이질적이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선임되기 위해서는 감독으로서 어떤 실적이 검증되어 있고, 또한 어떤 스타일의 축구를 추구하는지 등이 파악 가능해야 하는데 신태용, 황선홍, 최용수 등과 달리 홍명보는 이것이 안 된다. 실전 경기를 지휘해 본 경험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이기에 올림픽 동메달은 어떻게 달성 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데[46][47] 올림픽축구 당시에는 선수단의 폼, 거기에 병역특례라는 특혜와 홍명보는 그때까지 연령대별로 선수들을 파악하고 꾸준히 감독경험을 계속 높였으며, 동메달 결정전은 한일전을 자주 해본 일본전이 떨어지며 맞춤전술을 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유로 2008, 2010 월드컵, 유로2012에서 우승한 델보스케의 스페인도 2014 월드컵에서 참패로 탈락(23등)당하는 월드컵이라는 그야말로 축구계 최상위 실전 앞에서는 경험이 적었고 준비도 부족했다. 타국에서는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여 분석한 후 잘 짜놓은 계획에 따라 경기를 운영해 한국이라는 먹이를 잘 낚아챘다. 이와 반대로 홍명보는 올림픽 동메달 달성 이후 히딩크 러시아 안지 코치 활동을 제외하고 선수 파악도 없었고 감독 경험이 전혀 없었으며, 그냥 예상답안 하나만 준비해 온 다음 문제가 다르게 나와서 경기 흐름이 넘어가자 그 다음에는 경기 흐름을 되돌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못하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완전 실력이다. 물론 올림픽에서 3위를 달성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그 이후 감독경험과 선수 파악을 전혀 안했다는 것이다. 그거 바라볼 바에야 올림픽 금메달 감독이자, 한국으로 독일을 3:1로 첫 승리를 달성, 당시 난적 쿠웨이트를 격파하고 2006월드컵 본선 진출시킨 조 본프레레를 재선임 하는 것이 그래도 나은 일이었다.
홍명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 것은 이러한 점들과 맞물려 K리그 비하 발언이나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 땅이나 보러 다니는 등[48]의 문제가 같이 터져 나와서였다. 경기력 하나만 놓고 따질 문제가 아니다. 팀을 만드는 데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은 다수가 동의했겠으나, 그 부족한 시간 내에서 최선을 다 했는지를 보았을 때 홍명보호는 그 점이 부족했다. 최선을 다하였는데도 부족함이 있었다면 축구협회나 축구인들, 소수 축구 매니아들은 그나마 정상참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홍명보는 바히드 할릴호지치가 K리그까지 분석하는 월드컵 직전까지도 "대표팀 감독은 한 달에 열흘 정도 일하고 20일은 개인시간" 같은 소리를 하며 땅을 보러 다니는 등 없는 시간을 더 없게 만드는 행보부터 시작해 K리그 비하까지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당시에도 축협의 막장 행정력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홍명보에 대한 동정표가 적었던 이유는 홍명보가 자격증도 없이 부족한 경력으로 축협의 황태자 자리를 차지했으며, 그나마 수행한 감독직도 성심성의껏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신태용과 비교하며 동정표를 던질 이유는 없다. 신태용은 본인의 힘으로 성남 일화 당시부터 감독 경력을 쌓아 왔지만, 홍명보는 감독 생활의 출발부터 낙하산 인사였고, 그나마도 대표팀 감독직만 수행해서 실전 지휘 경험도 현저하게 적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축협 정치 라인을 제대로 타고 있던 인물이지 축협에게 희생당했다고 말하기도 뭐하다.
정리하자면 홍명보가 감독에 선임되는 과정은 신태용과 마찬가지로 동정할 여지가 있겠지만, 홍명보의 감독 경력 자체를 재평가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지도자 생활의 시작부터 문제가 있는 감독이었기 때문. 홍명보 같은 경우 황석호, 지동원, 윤석영, 김보경 등 런던 올림픽 출신 선수들과 손흥민, 기성용, 이청용 등 유럽파에만 의지했다. 그리고 당시 폼이 좋던 남태희, 박주호, 이근호 등 국내 리그 선수들, 그리고 타 리그 선수들을 외면하고 전술 역시 유연성이 없게도 4-2-3-1 전술만 고집했고, 그리고 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조차 제시하지 못했고, 전술을 짤 월드컵 기간 동안 땅이나 보러 다니거나 팀 관리도 못 하고 그리고 선수들과 전술을 실험할 평가전 기간 동안 실험조차 하지 못했다. 그 결과 크로아티아, 러시아, 페루, 일본, 중국, 호주, 가나, 튀니지, 스위스, 말리 등의 국가대표팀들이 이미 본선이 확정된 후 14회나 달하는 평가전을 가졌지만, 꼴랑 5승만 달성한 뒤 월드컵에서 벨기에, 알제리, 러시아 등의 21세기 세계대회 우승팀이 없는 조에서 승점 1점 1무 2패 월드컵 27위라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이후 최악의 월드컵 성적을 냈고, 그리고 자국 리그까지 비하하며 스스로 자멸을 했다.
반면 신태용 감독의 경우 이미 본선이 확정된 뒤에 선임된 홍명보와 달리 슈틸리케가 한국을 개막장으로 떨어뜨린 뒤에 선임되었고, 비록 월드컵 최종예선과 러시아, 모로코와의 10월 평가전까지 2무 2패로 고전했지만, 고집불통들의 울리 슈틸리케나 홍명보와 달리 자신의 부족함을 깨끗하게 인정하고[49] 코치진 보강을 요청하거나 전술을 바꾸는 노력 덕에 랭킹 11위 콜롬비아, 38위 세르비아와의 11월 평가전에서는 엄청난 경기력으로 1승 1무라는 호성적을 기록했고, 2017 일본 동아시안컵에서는 A매치에서 7년 동안 이기지 못하던 무려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의 일본을 4:1로 도쿄에서 철저히 격파하며,[50] 2006 월드컵 우승 감독 리피의 중국까지 제치고 동아시안컵을 우승[51]시키며 하반기를 3승 2무로 마무리하며 노답이던 국대를 그래도 희망적인 팀으로 바꾸어났다.
선수 선발 역시 해외파만 총애하는 홍명보와 슈틸리케와 달리 지동원, 윤석영, 박주호, 홍정호, 이청용 등 경기에 제대로 뛰지 못하는 해외파 대신 김진수, 이재성, 김신욱, 최철순, 이승기, 홍철, 정우영, 김민재, 이창민, 김민우 등 비록 이름값이나 뛰는 리그가 아시아권이라도 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 위주로 선발하고 팀 운영 역시 비록 공격축구이지만 철학 없이 비효율적인 점유율 축구만 추구하던 슈틸리케와 홍명보와 달리 그래도 최소한 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있다. 전술 역시 4-2-3-1만 쓰던 홍명보나 슈틸리케와 달리 평가전 기간 동안 4-2-3-1, 3-5-2, 4-3-3, 4-4-2 등 다양하게 실험하며 대표팀에 최적화된 플랜A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선수들과 소통을 중시하는 탈권위주의 방식을 사용해 국대의 분위기를 바꾸었고 선수들의 능력과 분발을 잘 이끌어내는 편이다.
계속 대표팀에만 오면 겉돌던 손흥민을 토트넘 홋스퍼 FC에서처럼 톱으로 올려 손흥민을 부활시켰고, 파트너로 활동량이 좋은 이근호를 배치해 손흥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수비력이 좋은 고요한을 기성용 옆에 배치시켜 기성용의 약점인 수비를 전담케 했다. 똥크로스를 남발하던 김진수와 헤딩 셔틀로만 쓰여졌던 김신욱을 바꾸어 놓아 김진수는 날카로운 크로스를 날리는 풀백이 되었고, 김신욱은 신태용호에서 6골을 넣는 등, 계륵이던 둘을 국대의 또 다른 옵션이 되게 했다. 또한 3번째 골키퍼이던 조현우도 과감히 선발 출전시켜 조현우가 활약하면서 그동안 김진현 아니면 김승규 체제로 돌아가던 골키퍼 포지션의 경쟁도 일으켰다.
신예 수비수 김민재를 과감히 발탁, 곽태휘 이후 불안하던 중앙 수비 라인도 커버했다. 동시에 나이 때문에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하던 염기훈을 발탁해 중용함으로서 나이에 싱관없이 기량이 좋다면 언제든지 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또 연령별 대표팀에서 자신이 지도했던 리우 올림픽 출신이나 청소년 월드컵 출신들은 각 팀에서 핵심 주전인 권창훈, 이창민, 진성욱, 이찬동, 황희찬 정도를 제외하고는 뽑지 않고 제 포지션을 찾지 못하던 이재성을 제 포지션에 정착시켜 이청용의 역할이던 공수 연결고리를 맡겼다. 전술 짜고 상대팀을 분석할 시간에 땅이나 보러 다니던 홍명보와 달리, 신태용 감독의 경우 부인의 말에 따르면 코치와 선수들과 미팅을 가지거나 전술을 짜거나 상대팀을 분석하고 선수들을 보기 위해 출장을 가거나 경기장에 가서 집에 안 들어오는 일이 허다하고, 집에 들어와서도 상대팀 분석 및 대표팀 전술을 짜느라 본인한테는 신경을 안 써 서운해한다고 한다.
그리고 감독과 사이가 험악하던 선수들이 신태용 감독한테 안기거나 머리를 만지고 신태용 감독 역시 선수들과 스킨쉽을 하며 선수들과 관계가 좋다. 슈틸리케 감독이 위기에 빠진 그 순간에도 대충 뛰던 선수들이 신태용 감독이 위기에 빠지자 미친듯이 뛸 정도. 그리고 자국 리그를 비하한 홍명보와 달리 자국 리그를 극찬하며 팬들에게 월드컵이 끝나도 K리그를 사랑해 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월드컵 본선에서의 성적을 비교해봐도 둘의 차이는 명확해진다. 벨기에, 알제리, 러시아라는 손쉬운 조편성에서 대회 직전까지 16강 진출 가능성이 제법 높다고 봤으나 되레 1승도 못 거두고 승점 1점에 그치며, 조 최하위로 브라질월드컵 27위로 탈락한 감독과, 독일, 멕시코, 스웨덴이라는 상당히 어려운 조편성에서 3패가 확정적이라는 부정적인 전망[52]만 받아든데다가 주축 선수 상당수가 부상으로 인해 빠진 암담한 상황 속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 디펜딩 챔피언이자 2018 월드컵 예선 10전승 1위, 유로2016 4강, 2017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FIFA 랭킹 1위, 요아힘 뢰브 감독의 독일을 상대로 2:0으로 승리하고, 독일을 탈락시키며, 1승 2패 월드컵 19위를 기록한 신태용 감독과의 차이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또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에서 패배하기는 했어도 알제리 쇼크 수준의 폐급 경기력은 절대 아니었다.[53] 오히려 홍명보가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One Team, One Spirit, One Goal은 신태용호에서 제대로 구현되었다고 봐도 될 정도.
총평은 홍명보가 아무런 플랜 없이 국대를 운영하는 바람에 노답이던 국대를 더 노답으로 만든 반면에 신태용은 그래도 플랜을 가지고 대표팀을 운영한 덕에 노답이던 국대에 희망을 불어넣었다는 거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은 11월과 3월 평가전까지 다 합쳐서 도합 2승 1패를 기록하였으나 좋은 소리는 못 들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의 경우 11월과 3월 평가전을 다 합쳐서 1승 1무 2패를 기록하였으나, 경기 내용도 아쉬운 점은 있으나 선전했고, 가능성도 보여줬다.
[1]
서울특별시에서
수원시까지의 거리보다 먼 거리다. 일단 파주시는 서울특별시 북서쪽, 분당구는 서울특별시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서울특별시를 가로질러가거나 돌아가야 하는데,
헬리콥터라도 타지 않는 이상은 한 시간은 불가능하다. 하다 못해 직선으로 서울특별시를 가로질러 고속도로를 뚫어도 한 시간 내에 갔다오는 게 힘든 거리다.
[2]
대한민국 대표팀은 32개국 중
브라질 다음으로 참가국 중 두 번째로 빠르게 월드컵 엔트리를 제출했다. 선수간 경쟁 그딴 거 없이 일찌감치 결정해놨다는 얘기다.
[3]
국대를 소집하여 훈련하는 훈련 시간만 놓고 보면 1/3이라는 계산이 얼추 맞을 수 있지만, 그 이외의 시간을 죄다 개인 시간이라고 표현하진 않는다. 당연히 그 도중에도 선수 발굴, 전략 회의 등이 동반되며 특히 월드컵 직전 최종 엔트리가 제출되는 시점에는 당연히 상대팀 분석을 한다. 그래도 모자란 시간이다.
[4]
본래
김진수가 뽑혔으나, 부상 회복 속도가 더뎌서 어렵다고 판단 예비 엔트리에 있던 박주호가 대체 선발되었다.
[5]
대한축구협회의 결정. 월드컵이 진행 중인 시점에서 방출되어 사실상 무적(無籍, 소속이 없음)이었다. 중계에서는 임대갔던 팀인
왓포드로 표기되었으나, 실제로는 어느 팀의 소속도 아니었다.
[6]
홍정호와 한국영의 경우 런던 올림픽 최종 엔트리에는 들었으나, 본선에서는 대회 직전에 입은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
[7]
그러나 그 음모론이 결코 납득이 안 되는 것이 아닌 게 박주영이 뜬금없이
봉와직염이라는 부상으로 소속팀의 경기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기 귀국하였고, 홍명보는 박주영에게 피지컬 코치 이케다 세이고를 붙여
파주 NFC에서 1대1 개인지도를 시키는 초특급 황제훈련을 시켰기 때문이다.
[8]
그런데 박주호의 부상은 박주영과 같은 봉와직염이었다.
[9]
당시 튀니지는 시차 적응도 제대로 되지 않았을 뿐더러 월드컵 예선 탈락의 후유증으로 팀을 막 재건하는 단계에 있었다.
[10]
카펠로가 연막이 아니었을까 의심했을 수도 있고, 사실 이 시기 카펠로는 과거의 영광만이 남았던 감독이기도 했다.
[11]
후반전까지 잘 뛰고 있던 김신욱과 손흥민을 빼고 김보경과 지동원을 투입시켰는데, 문제는 김보경과 지동원도 오랫동안 소속팀에서 벤치 신세여서 체력도 바닥이고 실전 감각도 개판이었다는 거다. 실제로 그 둘은 벨기에전에 투입되고 몇 분 되지도 않아서 무슨 풀타임 소화한 선수들마냥 헥헥거리고 다녔다. 전방에서 압박을 해줘야 할 공격진들이 이따위들이니 벨기에는
스티븐 드푸르의 퇴장으로 10명이 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인을 끌어올려 공격적으로 나섰고 결국 이겨야 할 경기에서 패한 것이다. 아무리 벨기에가 당시 경기력이 뛰어났어도, 2군 상대로 45분을 10:11이었음에도 졌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12]
참고로, 실력 좋은 해외파를 위주로 베스트 11을 꾸린 그
조광래 감독도 공식 석상에서 선수들을 급으로 나누는 말은 하지 않았다.
[13]
유럽파 중에서 손흥민을 제외하고 성과를 남긴 인물을 찾자면 그나마 득점에는 성공한 구자철뿐이다. 기성용의 경우 상대방으로부터 집중견제 당했다는 변명은 있어도 결국 전혀 이겨내지 못해서 아무것도 못했다.
[14]
최강희 감독이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하기싫은 국대를 억지로 해서 불편한 기색을 대 놓고 드러낸 부분이지 해외파들에 대한 무시가 절대 아니다. 게다가 당시 약관에 불과했던 손흥민도 최종예선에서 6경기나 출전했다.
[15]
하지만 선수선발 원칙에는 무조건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건 없다. 절대적인 기준이 있더라도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기준을 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애초에 그 원칙을 정한 것은 홍명보 자신이며 누군가의 압력으로 원칙을 정했다는 증거도 없다. 차라리 그 발언을 안 했다면 그냥 홍명보의 안목이 좋지 않았다고 살짝만 비판받을 거리가 홍명보의 발언 때문에 큰 비난이 되어버린 것이다.
[16]
비단 이명주만이 아니라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가 더블을 달성하는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음에도 주역이던 이명주를 비롯한
황지수와
김승대조차 철저히 외면받았다. 홍명보의 노골적인 K리그 무시를 엿볼 수 있는 대목.
[17]
그나마 김진수의 낙마로 엔트리에 극적으로 들긴 했지만, 본선에선 단 한번도 기용한적 없었다.
[18]
심지어 월드컵 이후 김영권과 홍정호의 인터뷰에 의하면 두 선수 모두 부상을 안고 뛰었다고 한다. 같은 성향을 가진 데다 기량이 불완전하고 부상 때문에 폼까지 안 좋았던 선수들을 주야장천 주전으로 기용했다는 것이다.
[19]
그때도 대한민국 국대는 최종예선에서 사우디에게 두 번 모두 패하는 등, 최강희호보다도 상황이 훨씬 더 안 좋았다. 아드보카트는 그런데도 원정 최초 1승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20]
최진철은 이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 유일한
FIFA 월드컵 출전 경력이긴 했지만,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를 목전까지 이뤄내긴 했었고, 또한 나이와 실력을 겸비하는 위상으로 당당한 주전을 차지했던 명선수였다.
[21]
정작 이랬던 독일도
차기 월드컵에선 세대교체 실패와 과한 방심으로
조별리그에서 광탈하는 역대급 창피를 겪고 만다.
[22]
특히 이 쪽의 경우에는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복귀 후 중흥기를 누리던 터라 국대 복귀 가능성도 언론에서 점쳐지곤 했다.
#
[23]
이 때문에 선임 시점부터 지금까지 동정론이 있긴 하다. 최강희가 사실상 시한부 감독 선언을 하고서 부임했고 절대로 연임하지 않을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축구협회는 어련히 최강희가 때 되면 계속한다 하겠지 하는 무책임한 사고로 후임자를 1년 사이 전혀 물색하지 않았다가 최강희가 강하게 나오자 부랴부랴 홍명보를 끌어왔다.
[24]
그 팀은 아주 오래전부터 홍명보가 맡아서 키우던 연령별 대표팀이 23세가 되어나갔던 올림픽이었고 대다수가 어린 나이에도 A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즉 나름대로 황금세대인데 서로 합까지 잘 맞춰오던 팀이라 운까지 잘 맞아 좋은 성과를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홍명보가 A대표팀 감독이 되었을 때는 이미 전임감독들의 좌충우돌로 대표팀 자체가 개판 오분전이었으며 거기에 과거 자신이 잘 알던 선수들 위주로 맹목적으로 기용하게 된다. 이미 그들은 자신이 연령별 대표팀을 맡던 시절과 환경이나 컨디션이 모두 제각각이라 예전처럼 돌릴 수 없었고, 그러다보니 엔트으리 논란이 불거졌다.
[25]
가장 악감정이 많은 포항도 새로 유입된 젊은 팬들은
이명주 사건 이전까지는 홍명보의 옛날 전력을 모르는 경우도 많이 있었고, 다른 K리그 구단 팬들도 1990년대 이전부터 봐 온 올드비가 아닌 이상 골수 포항 팬들에게는 그저 알음알음 들어서 아는 정도에 불과했다.
[26]
안 그래도 포항 팬들은
이명주의 월드컵 엔트리 탈락으로 홍명보 감독에 대해 상당히 예민해 있었고,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이적 건으로 인한 태업질+언플이 재차 조명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27]
신태용은 3년 뒤
홍명보가 그렇게 얕잡아봤다가 무너져버린 그 감독이 이끌던
다른 팀을
4:1로 박살냈고,
다음 월드컵에서는
홍명보보다 더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전 대회 우승팀을
2:0으로 박살낸 인물이다.
[28]
디에고 마라도나는 국가대표로 감독 데뷔, 마르코 반 바스텐은 유소년 팀에 잠깐 있다 감독 데뷔, 디 마테오는 대단할 것 없는 경력으로
첼시에 부임하고 감독 대행의 신분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맛보았다. 또한 디 마테오는 첼시
감독 대행을 맡기 전, 그러니까 첼시 수석 코치를 맡기 전에 2부 리그에 있던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감독을 맡아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시키고 한 동안 팀을 중위권에 안착시키는 나름 잠재력이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29]
이는 특히 의미가 있던 게 당시 첼시는 리그 6위로, 본래대로라면 다음 시즌에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없었다. 그러나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성공하면서 챔피언 자격으로 다음 시즌에도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30]
이해 당사자이기도 한 연구자 자신이 인터뷰 과정에 참여하면 왜곡될 수 있으므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선수, 코치와의 심층 인터뷰는 자기가 없이 다른 체육학 박사들이 대신 해줬음을 논문에서 밝히고 있다.
[31]
예를 들어 경기 직전에 선수단 미팅때 썼던 PPT 자료가 실려 있다.
[32]
참고로 선수들의 인터뷰를 딴 것도 있는데, 결국 좋은 경험이었다는 이미
이영표에 의해 대차게 욕먹은 얘기밖에 없으니 그야말로 불쏘시개 수준에 가깝다.
[33]
참고로
최강희도 비슷한 논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 해당 인터뷰에서 최강희는 그 외에도 대한민국에서 현재 뽑을 공격수는 이동국, 박주영, 김신욱 셋 뿐이라는게 슬픈 현실이라며 의리 축구가 아닌 어쩔 수 없이 잘 아는 선수를 뽑은 것이라며 변호했다.
거스 히딩크도 대표팀을 맡을 당시 골프를 치고 애인과 놀러다닌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적이 있었다.
[34]
오죽하면 홍명보는 반쯤 망하다시피 한 브라질 월드컵을 떠맡는 대가로 다음 월드컵까지 감독 자리를 보장받아 차분히 신변정리하던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있었을 정도였다.
[35]
기사를 요약하면 할릴호지치 감독은 한국전을 하루 앞두고 "한국 선수들을 몇 달간 분석했다. 월드컵 예선 경기와 친선 경기, 한국 리그팀(K리그) 경기까지 모두 살펴 봤다"며 "한국이 지난 몇 년간 어떤 경기를 했고, 어떻게 팀을 만들었는지 파악했다"고 말한 반면, 홍명보는 “(알제리 - 벨기에전 경기를 다 보지 못 했고) 알제리가 골을 넣어 1-0으로 앞선 상황까지 봤다”며 “알제리는 아직 완벽하게 준비된 팀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36]
짧았던 준비기간과 여러가지 장애물들이 있긴 했지만 알제리전에서 선수들과 기술위원회 본인들의 소감만 들어봐도 홍명보호 자체도 상대에 대해 지나치게 파악을 못하고 대비를 미흡하게 한 점이 있기도 하다.
[37]
다만, 알제리의 경우는 대회 최종 성적이 1승 1무 2패라 정확하게 홍명보호만 털어버리긴 했다.
[38]
차두리를 넣었어야 한다는 주장의 경우 선수 모집 당시 부상이었는데다 개인적 가정사 문제로 힘든 시간을 겪고 있었기에 논란이 있다.
[39]
국가대표팀은 기본적으로 클럽에서 폼이 좋은 선수를 뽑아다가 며칠 겨우 훈련하는 것이 전부다. 전지훈련도 큰 대회 앞두고나 겨우 할 수 있다. 이에 최강희도 국대가 자신과 안 맞는 이유로 한 달에 겨우 사나흘 훈련하고 실질적으로는 큰 대회나 장기 합숙 전까지 감독이 뻥을 치는 것에 불과하다며 시간도 없는데 무슨 전술 실험을 하겠냐고 거칠게 표현했다. 반면 히딩크호는 전술한대로 각종 대회에 참가하며 여러 전지훈련을 진행했고 와중에 K리그가 일정까지 조절해줘 여러 선수를 실험할 수 있었으니 이런 국가대표팀은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히딩크는 신예를 많이 발굴했다며 이후의 감독들은 무능력하고 게으르다는 식으로 폄하하곤 하는데, 애초에 감독으로서 실험할 기회 자체가 히딩크에게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을 간과한 주장이다. 물론 히딩크의 능력이 뛰어나고 적극적으로 여러 선수를 찾아다닌 것은 사실이지만.
[40]
실제로 나무위키의
홍명보호(성인 1기) 문서의 선임 과정 문단만 봐도 현실적인 얘기가 더 많이 적혀있지 홍명보 자체에 대한 비평은 적었다.
[41]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라는 이영표의 쓴소리도 있었지만, 냉정히 말해 조광래-최강희호 이후의 한국 대표팀 상황은 누가 부임하더라도 쉽지는 않았다. 저 말을 한 이영표 본인을 포함해 어느 감독이 오더라도 당시 전력이나 팀 케미스트리가 완전히 망가진 대표팀을 살리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42]
2009년 7월 스페인에서 개최한
2009 피스컵 안달루시아에 출전해서 유벤투스에게 0:3패하여 아쉽게 탈락했으나, 스페인의 세비야 FC와 0:0 무승부 승점 1점을 기록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43]
신태용도 클럽에서 전임 감독이 경질되며 급하게 자격증 없이 감독 대행으로 앉기는 했으나, 클럽팀에서 감독이 경질된 뒤 자격증이 없는 코치의 감독 대행 체제로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것과 국가대표팀의 신임 코치/감독을 애초부터 자격증 없는 사람으로 뽑아서 올림픽, 월드컵 등에 내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44]
괜히 유럽에서도 국대 감독보다 클럽 감독 연봉이 훨씬 센 게 아니다.
[45]
이는 홍명보가 월드컵 이후의 인터뷰에서 직접
"대표팀 감독은 한 달에 열흘 정도 일하고 20일은 개인시간" 이라고 밝혔다. 동년배 초년 감독들이 매주 경기를 준비하며 경험을 쌓는 동안 데뷔부터 대표팀 감독직만 골라서 수행한 홍명보는 1년의 2/3 가량을 개인 시간으로 보냈다는 소리다.
[46]
축구계에서 선수 평가하는 데 있어서 유럽, 남미 선수들이 올림픽 축구 메달을 경력으로 들이미는가?
파벨 네드베드가 올림픽 메달의 유무에 의해서 커리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는가? 애초에 메달이 있지도 않지만 땄다고 가정하더라도 아주 미세하게 덤 삼아서 움직일 뿐이다. 또한
리오넬 메시가 올림픽 메달을 땄지만 메시 커리어 평가하는데 있어서 누가 그걸 진지한 평가 요소로 들이미는가? 김신욱이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땄고 박주영은 논산 2를 시전했는데 그래서 박주영과 김신욱의 커리어 평가에 그 사실들이 유의미한 요소로 작용하는가? 기껏해야 박주영의 논산 2는 경기력적인 측면에서 논산 2와 같은 유형의 단점이 있다 수준이지 김신욱이 금메달 땄다고 더 쳐주는 건 없다. 애초에 해당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게 일본임을 생각해보자. 일본 축구의 위상이 16강 조별리그에서 스페인을 격파하고 올림픽 4위로 인해 드라마틱하게 상승하였는가? 당장 한국부터 4위 팀의 위상을 높게 쳐주지 않는데 3위 팀이라고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리가 없고, 유로2004 우승한 그리스도 독일,브라질과 같은 세계 우승후보로 평가 받지 못하는것이 세계의 벽이다.
[47]
다만 그렇다고 해서 올림픽, 아시안게임의 커리어를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것은 아니며, 김신욱의 예시는 다소 적절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김신욱의 커리어를 논할 때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부상으로 거의 활약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중요한 경기에서 활약하여 많은 득점을 올렸다면 다른 평가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다음 대회에서 MVP급의 활약을 보인
황의조는 자연스레 국가대표 원톱 스트라이커로 발돋움하였고, 이런 황의조를
FC 지롱댕 드 보르도로 영입한 것은 그를 이 대회에서 알게 된
파울루 소자 감독이었다. 아시안 게임에서 황의조를 눈 여겨본 소자가 대표팀 감독이자 선수 시절 동료였던
파울루 벤투에게 황의조에 대한 정보를 받고 직접 나서서 영입했다고 한다. 게다가 애초에 전제부터 이상한 비판인게 리오넬 메시나 독일,브라질은 애초에 한국과 위상자체가 다르다. 메시 같은 애들은 올림픽 메달 같은건 커리어로 쳐주지도 않는다? 이 말대로라면 손흥민 epl 득점왕도 별 의미가 없다. 메시는 득점왕이 문제가 아니라 발롱도르를 7개 탔다. 득점왕 1회쯤 커리어에서 지워버려도 메시의 위상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손흥민의 득점왕은 있으나 마나한 잡커리어에 불과한건가? 한국의 2002 월드컵 4강 신화도 아무 가치가 없다. 리오넬 메시가 2014 월드컵에서 mvp를 수상하고도 준우승이라 의미없다 자조한 판국에 그까짓 4강 따위가 뭐 대수인가? 올림픽 메달 따봤자 한국축구 위상이 변한건 없다? 그건 02년 4강(4위)도 마찬가지다. 그때 4강 갔다고 해서 한국이 8~4강 안정적으로 진출하는 강국으로 변하지도 않았고, 여전히 세계 축구계에서 한국은 강호로 쳐주지도 않는다. 그리스가 유로 2004 우승했다고 그리스를 독일, 스페인급 우승후보로 여기지 않는것 처럼 세상에는 월드컵 우승을 해도 아름다운 공격축구가 아니라며 툴툴대는 배불러터진 브라질도 있고, 또 월드컵에 나가는 그 자체만으로 온국민이 열광하는 나라도 있다. 한국 정도의 수준에 올림픽 동메달이면 충분히 쾌거가 맞다. 애초에 월드컵은커녕 아시안컵조차도 우승해본지 60년이 다 된 상황에서 결코 적지않은 성과다. 애초에 한국이 국가대항전에서 입상해본 사례 자체가 많지 않은데 동메달 하나 추가시킨건 상당한 성과가 맞다.
[48]
홍명보호 문서에도 기술되어 있지만, 땅을 보러 다니는 것은 절대로 하루 한두 시간만 낼 문제가 아니다.
이사를 갈 땅을 찾으려면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야 하고,
분당구 -
파주시 간 왕복 이동거리만 해도 서너 시간이 넘는다. 이걸 월드컵 코앞에 둔 일과 중에 했다는 말이다.
[49]
물론 신태용도 축구팬들이 걱정하는 수비 부분에서 4백 수비가 아닌 변형 3백 수비를 구사해서 평가전에서 여러 번 패배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변형 3백 수비를 고수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아 고집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50]
심지에 일본 1골은 페널티킥 골 이었다.
[51]
리피의 중국과 2:2무승부
[52]
벨기에가 강해졌다고는 하나 독일과 경기한다고 가정했을 때 벨기에가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다. 당장 2022년에도 벨기에는 1포트고 독일은 2포트인데 그래도 독일이 벨기에를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멕시코는 알제리와는 달리 7대회 연속 2라운드 진출이라는 무시무시한 팀으로 조별리그만 보자면 사실상 1.5포트로 2포트 최상위권이다. 스웨덴 또한 유럽예선 조편성의 불운 때문에 번번이 기회를 놓쳤지 러시아보다는 훨씬 강팀이다.
[53]
멕시코 선수
미겔 라윤이
이 경기 후 이 경기력이면 독일을 이길 수 있다고 칭찬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