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6:36:58

페드로 코스타

페드로 코스타[1]
Pedro Costa
파일:페드로 코스타.jpg
국적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포르투갈
출생 1958년 12월 30일([age(1958-12-30)]세)
포르투갈 리스본
부모 아버지 루이스 필리페 코스타[2]
학력 Escola Superior de Teatro e Cinema [3]
활동 1989년 – 현재
데뷔 1989년 장편 <O Sangue>

1. 개요2. 특징3. 필모그래피
3.1. 장편3.2. 단편3.3. 다큐멘터리
4. 기타

1. 개요

포르투갈의 영화/다큐멘터리 감독.

리스본 대학에 다니다가 영화전문학교인 'Escola Superior de Teatro e Cinema'로 전학한다. 이곳에서 안토니오 레이스, 파울루 호샤, 알베르토 세이사스 산토스 같은 포르투갈 대가에게 수업을 받았다. 그 후 몇몇 감독들의 조수로 일하다 1989년 <피(O Sangue)>로 영화세계에 입문하였다.

두번째 장편 <용암의 집(Casa de Lava)>을 만들고 세번째 장편<뼈(Osso)>에서부터 리스본의 빈민촌 폰타이냐스를 배경으로 빈민층의 삶에 초첨을 맞추기 시작해 폰타이냐스 3부작을 만들기 시작한다. 뼈의 주인공이었던 반다 두아르치를 그 다음 장편인 <반다의 방(No Quarto David Vanda)>에서 다시 같이 작업하여 2002년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게된다.

반다의 방이후 다큐멘터리 <당신의 숨겨진 미소는 어디에?(Ondo Jaz O Teu Sorvino?)>[4][5]를 제작, 연출하고 폰타냐이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행진하는 청춘(Colossal Youth)>[6]을 연출하여 2006년 칸 영화제 경쟁부분에 초청된다. 이 작품으로 그는 벤투라를 만나게 된다.

이 작품들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코스타는 다른 나라 거장들과 옴니버스 작품, 다큐 그리고 단편들을 찍는다. 2014년, 그는 거의 10년만에 벤투라가 주연을 한 신작 <호스 머니>를 연출하고 그 해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게된다.

2019년 비탈리나 바렐라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표범상을 수상했다.

2. 특징

영화광적인 인용, 때론 흑백까지 가는 무채색의 색감과 조명, 비전문 배우와 전문 배우가 뒤섞여있는 캐스팅, 과묵한 연기 지도, 장 마리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의 영화들에게 영향을 받은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모호한 경계, 소외된 자들에 대한 시선, 디지털 카메라 사용을 예로 들 수 있다. 1960년대 자국 포르투갈 뉴웨이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감독이기도 하다.[7] 영화판 사무엘 베케트라는 얘기도 자주 듣는다.

<피>만 해도 로베르 브레송의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아트하우스 영화였지만 <용암의 집>을 거쳐 <뼈>에서 작법이 확 달라지게 된다. 이전까진 전문 배우들이 참여한 픽션 영화였다면, <뼈>는 실제 빈민가 사람들을 기용해 그들의 삶을 모호한 톤으로 다루면서 픽션과 다큐멘터리 간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짜"같다는 고민을 하게 되고 때마침 등장한 디지털 카메라로 <뼈>의 등장 배우를 다시 내세워 찍은 <반다의 방>에서 지금과 같은 인장을 굳히게 된다.

비평가들과 영화광들의 굳건한 지지를 받는 감독이지만 대중성은 전무한지라 일반 관객들에게는 난해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3. 필모그래피

3.1. 장편

3.2. 단편

3.3. 다큐멘터리

4. 기타

상당한 수준의 음악광이다. 와이어의 Lowdown을 삽입하기도 했고 행진하는 청춘은 영 마블 자이언츠의 음반에서 이름을 따왔다. 선호하는 타입은 펑크 록이나 포스트 펑크인듯.

일본 도쿄조형대학에서 객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지지를 받아서인지 유달리 대접이 좋은 편이다.

한국에도 몇 차례 내한한 적이 있지만, 정식 개봉한 작품은 없다. 대신 영화제에서 자주 소개되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DVD로 <뼈>, <반다의 방>, <행진하는 젊음>[9]을 볼 수 있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한국에서 인지도가 시네필이 아니면 모르는 수준이라서 한국어 자막이 없다. 보고 싶다면 영어실력을 키우고 영자막을 트는 것을 추천한다. 정 한글 자막으로 볼려면 국내 시네마테크 상영관에서 상영해줄때 밖에 없다.

유운성 평론가가 밝히길, 불법 복제에 관대한 편이라고 한다. 자신의 영화를 불법 복제로 봐도 상관 없다고. [10] 실제로 인터뷰 등지에서 젊었을 적 음반이나 책 훔친 경험이 있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뽑은 21세기 영화 반다의 방 #

파일:pedrocosta19.jpg
2019년 비탈리나 바렐라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표범상을 수상했을 당시

의외로 맷 리브스 팬이다. 클로버필드,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더 배트맨을 좋아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1] 거의 대부분의 시네마테크와 영화제에서는 '페드로 코스타'라고 표기하고 있고 영화비평잡지 FILO 정도만이 '페드루 코스타'로 쓰고 있는 상황이나, 국립국어원 포르투갈어 표기법 및 그 용례에 따르면 'pedro'의 'o'는 강세가 없는 'o'이므로 '루'라고 표기하여야 한다. [2] 각본가 출신이다. 1990년에 이사벨 메디나라는 포르투갈 배우와 재혼한 것으로 보인다. [3] 리스본 대학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영화 영상 전문 학교이다. [4] 원래는 아르테 TV의 요청으로 제작된 다큐이다. 그가 존경하는 두 거장인 장-마리 스트라우브, 다니엘 위예가 <시칠리아!>의 촬영을 마치고 편집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이다. [5] 이 다큐는 극장용과 방송용 버전이 따로있다. 그리고 당.숨.미에서 사용되지 않은 6개의 장면들을 골라 새로운 맥락으로 편집된 단편 <여섯개의 바가텔(6 Bagatelas)>이 있다. [6] <대단한 젊음>이라고도 불린다. [7] 특히 트라스 우스 몽스트나 녹색의 해 같은 자국 다큐픽션 영화들의 영향에 많이 받았다. [8] 인터뷰에 따르면 장편 예고편 같은 느낌의 단편이라고 한다. [9] 이 세 영화는 크라이테리온에서 만든 세트이다. 참고로 행진하는 젊음은 한국어판 DVD가 생겨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10] 코스타는 비대중적인 노선 치고는 홈비디오가 잘 나오는 편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