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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레스 사우스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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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레스 사우스게이트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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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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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21대
클럽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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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대

아스톤 빌라 FC 주장
앤디 타운센드
(1994~1997)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1997~2001)
폴 머슨
(2001~2002)
}}} ||
가레스 사우스게이트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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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잉글랜드의 축구 감독
파일:Gareth Southgate(England).png
<colbgcolor=#eeeeee> 이름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Gareth Southgate
본명 개러스 해럴드 사우스게이트
Gareth Harold Southgate
출생 1970년 9월 3일 ([age(1970-09-03)]세)
하트퍼드셔주 왓포드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 체중 80kg
직업 축구 선수 ( 센터백,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 선수 크리스탈 팰리스 FC (1989~1995)
아스톤 빌라 FC (1995~2001)
미들즈브러 FC (2001~2006)
감독 미들즈브러 FC (2006~2009)
잉글랜드 U-21 대표팀 (2013~2016)
잉글랜드 U-20 대표팀 (2014 / 감독 대행)
잉글랜드 대표팀 (2016 / 감독 대행)
잉글랜드 대표팀 (2016~2024)
국가대표 57경기 2골 ( 잉글랜드 / 1995~2004)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2.2. 국가대표
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
4.1. 미들즈브러 FC 감독4.2. 미들즈브러 이후4.3.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4.4. 잉글랜드 감독 이후
5. 전술 스타일
5.1. 장점5.2. 단점
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6.1.2. 개인 수상
6.2. 감독
6.2.1. 대회 기록6.2.2. 개인 수상
6.3. 수훈
7. 여담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층에 비해 신통치 않은 경기력과 성적을 거두던 잉글랜드 대표팀을 8년간 이끌면서 2018 러시아 월드컵 4위, 2회 연속 UEFA 유로 준우승을 기록했다. 잉글랜드를 오랫동안 좀먹던 선수들 간의 파벌을 뿌리뽑고 알프 램지[1], 바비 롭슨[2], 테리 베너블스[3] 이후 가장 높은 성적을 거뒀지만 그토록 갈망하던 트로피 획득에는 실패하며 명과 암을 지닌 지도자로 기억될 감독이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1989년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데뷔, 1995년에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였다.

2년 후에는 아스톤 빌라의 중앙 수비수로서 잉글랜드 리그컵 결승전에 출전하여 리즈 유나이티드를 제압하고 우승을 달성하였다.

이것이 2004년 미들즈브러에서 리그컵을 우승하기 전까지 그가 경험한 우승의 전부였다. 이후 아스톤 빌라가 부진한 성적을 거듭하자 다른 클럽에서 우승을 맛보기 위해 정식으로 구단에게 이적을 요청한 끝에 결국 2001년에 미들즈브러로 이적하였다.

2004년 주장 완장을 차고 미들즈브러를 이끌며 리그컵 결승에서 볼턴 원더러스에 2-1로 승리하여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2006년에는 UEFA컵 우승에 도전했으나 세비야에게 져 아쉽게 준우승했다. 이 시즌 이후, 사우스게이트는 미들즈브러의 감독이 되어 선수 생활을 끝냈다.

2.2. 국가대표

1995년 포르투갈과의 경기로 국가대표에 데뷔했다.

그에게 있어 자국에서 열렸던 유로 1996은 기억하기 싫은 대회이다. 당시 독일과의 4강전에서 승부차기 키커로 나섰으나 실축하는 바람에 잉글랜드의 결승전 진출을 무산시켰기 때문이다.[4]

이 때문에 국민들에게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되었고, 언론에서도 " 워터게이트, 화이트게이트, 사우스게이트"란 제목으로 조롱했다. 거기다 온갖 욕으로 지친 상태에서 집에 왔는데, 어머니마저 '실축하지 말지 그랬니.'라고 하는 바람에[5] 엄청난 충격을 받고 결국 비난을 못 견디고 가출까지 했는데, 그제서야 국민과 언론들이 지나쳤다는 걸 알고 사우스게이트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여론이 일어 다행스럽게도 귀가했다. 그리고 훗날 언론과 팬들이 욕한 게 뻘쭘해질 정도로 잉글랜드의 이때 이 성적은 졸지에 재평가가 시급한 성적으로 바뀐다.[6]

1998 FIFA 월드컵에서는 3경기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잉글랜드 대표팀은 16강전에서 아르헨티나와 접전 끝에 또 다시 승부차기로 패하고 만다.

2년 뒤 다시 유로 2000에 출전하지만, 3경기 중 단 한 경기에만 출전할 수 있었고, 잉글랜드는 수비 불안을 드러내며 1승 2패로 탈락한다.

2002 FIFA 월드컵에서도 대표팀 명단에 오르지만, 리오 퍼디난드 같은 쟁쟁한 후배 선수들이 치고 올라왔기 때문에 주전 자리에서 밀려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8강에서 잉글랜드가 브라질에 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2004년까지 국가대표 57경기에 나서 2골을 넣었다.

3. 플레이 스타일

크리스탈 팰리스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의 자리에서 뛰었으나, 아스톤 빌라로 이적한 뒤로는 중앙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하여 좋은 활약을 펼치며 잉글랜드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발이 빠른 수비수는 아니었으나 그의 강점은 게임 리딩능력과 섬세한 대인 마크 능력이었으며, 이러한 강점으로 그는 유로 1996, 1998 프랑스 월드컵, 유로 2000, 2002 한일 월드컵 때까지 잉글랜드 대표 명단에도 포함되는 등 꾸준히 국가대표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4. 지도자 경력

4.1. 미들즈브러 FC 감독

미들즈브러 FC 감독 시절.

UEFA 컵 결승전 직후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이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떠나자 그는 보로의 감독에 취임했다. 전 시즌까지 선수 생활을 했던 그는 전 시즌부터 맥클라렌에게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맥클라렌이 떠나자마자 바로 감독으로 선임된 것. 그런데 급하게 감독이 되어서 그런지 감독 자격증을 제대로 갖추지 못 하고 임시 자격증을 가지고 감독 데뷔를 한다.[7]

감독 커리어 데뷔전은 2006년 8월 19일 승격팀 레딩 FC 원정이었다. 이 경기에서 먼저 2-0으로 앞서고도 같은 경기에서 PL 데뷔전을 치른 설기현의 활약을 앞세운 레딩에 3-2 역전패를 당하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다행히 첫 승은 빨리 나왔는데 4일 후 디펜딩챔피언 첼시 FC를 불러들여 안드리 셰브첸코에 선제골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경기 종료 10분을 남기고 동점과 역전에 성공하며 짜릿한 지도자생활 첫 승리를 따냈다. 곧바로 다음경기에서 지난시즌 17위 팀이었던 포츠머스에 4-0 대패를 당하고 이후에도 승격팀 셰필드와 왓포드에 첫 승을 조공해주는 등 도깨비 팀의 명성을 이어갔다.

꽤나 불안한 시작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첫 시즌에 사우스게이트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미들즈브러의 당시 별명이 도깨비 팀일 정도로 성적이 매우 뒤죽박죽이던 팀인 만큼, 중상위권이 아닌 프리미어 리그 정착을 목표로 하는 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는 자신의 자리였던 센터백 자리에 첼시 FC에서 로베르트 후트를 영입하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먹튀로 전락한 유리몸 조나단 우드게이트를 임대 영입했다. 특히 우드게이트 영입은 우드게이트가 잘할까보다 얼마나 많이 뛸 수 있을까 팬들이 걱정했었지만 놀랍게도 우드게이트는 미들즈브러에서 상당히 많은 경기를 뛰며[8] 미들즈브러의 핵심 수비수가 되고 국가대표팀에 다시 뽑힐 정도였다. 결국 겨울 이적 시장에서 우드게이트를 완전 영입에 성공하여 자신의 자리를 완전히 메꾸는데 성공했다.[9]

그리고 2007년 1월 대한민국 이동국을 영입하며 화제를 일으켰다.

구단 성적이 아쉬운 상황에서 부진한 이동국을 주전으로 쓰지는 못했지만[10] 교체로 투입하는 모습을 보며 국내 네티즌들은 하라 타츠노리, 찰리 매뉴얼을 능가하는 생불이자 이 시대의 진정한 성인으로 불렀다.[11] 사실 그 이전에는 이름 때문에 남대문이라 불리곤 했다.

그는 모든 선수에게 신사적이고 부드러운 태도를 가지고 대했다. 특히 코치진이 전부 자기보다 선배들이라 오히려 자기가 굽신거렸다. 좋게 말하면 덕장,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추구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감독으로서의 카리스마, 즉 권위가 없었다.

2007/08 시즌에는 비두카와 야쿠부 투톱이 나란히 팀을 떠나고 미도와 제레미 알리아디에르, 툰차이 산리, 루크 영, 게리 오닐 등을 새로 영입했다. 보로는 전반기 득점력 부족 문제로 15경기 2승에 그치며 강등권을 전전하였으나 16R에서 무패 1위를 달리던 아스날에 첫 패배를 안기고 포츠머스에 승리를 거두면서 강등권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겨울이적시장에서 득점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레디비지에 득점왕 출신의 브라질 국적 공격수 아폰소 알베스를 클럽 레코드로 영입하였다. 우드게이트가 겨울이적시장에서 토트넘으로 떠났지만 유망주 데이비드 위터가 등장하며 나름 수비는 괜찮았던 미들즈브러는 그럭저럭 강등권과는 거리를 둔 채 하위권에서 시즌을 보내다가 지난 시즌보다 한 단계 밑인 13위로 시즌을 마쳤다. 시즌 최종전에서는 홈에서 알베스가 해트트릭하면서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이 떠나는 분위기의 맨체스터 시티에 8:1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FA컵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8강에 올랐으나 2부리그 카디프 시티를 상대로 실망스러운 2:0 완패를 당하며 잘하면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12]

이동국이 계약 만료로 떠난 다음 해인 2008/09시즌 초반 잘 나가면서 상승세를 타나 싶었는데[13] 이후 엄청난 하락세[14]를 타며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그래도 스티브 깁슨 구단주는 그를 경질하지 않았다.

2009/2010 시즌 2부 리그에서 와신상담하며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의 진입을 다시 노렸으나, 이번에도 초반 상승세 이후로 하락세[15]를 타며 결국 깁슨 구단주의 뚜껑을 열리게 만들어 더비 카운티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한 직후 경질되었다.[16]

사실 사우스게이트 체제의 미들즈브러가 성적이 좋지 못 했다고만 평가하기 뭐한 게 미들즈브러는 원래 EPL과 챔피언쉽 리그를 왔다갔다하는 뒤죽박죽 성적의 팀이며 그나마 EPL에 안착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도 성적은 항상 중위권이었다. 맥클라렌이 팀을 UEFA 컵까지 끌고간 04/05 시즌에 7위를 기록했는데 이전에 미들즈브러가 EPL에서 10위 안에 들어간 시즌은 1950/1951 시즌이다. 사우스게이트 체제는 19위로 강등당한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면 12위, 13위로 맥클라렌 체제의 미들즈브러와 다를 바 없는 성적을 기록했으며 팀을 안정적으로 EPL에 잔류시켰다.

4.2. 미들즈브러 이후

영국방송국 ITV의 2010 FIFA 월드컵 프로그램에 아일랜드의 레전드 앤디 타운젠드와 함께 월드컵 유망주 몸값을 매겼는데 타운젠드가 박주영의 몸값으로 900만 파운드를 책정하자 너무 비싼 게 아니냐고 했다. 알겠지만 박주영은 2년후 아스날로 이적하나 처참하게 실패한다.

한국 유소년 지도자들이 참가한 지도자 컨퍼런스에서 이동국과의 인연으로 한국을 돕고싶다.라고 하며 다시 한번 생불인증을 했다.

4.3.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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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잉글랜드 감독 이후

2024-25 시즌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감독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나 거절했다. #

5. 전술 스타일

5.1. 장점

사우스게이트는 수비를 중요시하는 감독인 만큼, 대부분의 대회에서 3백을 활용하는데, 이러한 점이 유로 2020 대회에서 결승전인 이탈리아전까지는 필드골 실점 0점을 달성하는 강력한 수비 조직력을 자랑했다. 또한 실속이 없기로 유명했던 잉글랜드 대표팀의 세트피스 문제를 크게 개선했다. 다른 구기 종목의 전술 등을 가져와 축구에 적용하는 식으로 써먹었는데, 이것이 잘 맞아 떨어지면서 잉글랜드 대표팀은 이전과 달리 세트피스에서 굉장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리고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부임 후 일궈낸 가장 큰 자산이 있는데, 바로 선수들의 세대교체와 젊은 유망주의 발굴이다. 보로에서 실패를 겪은 이후 연령별 대표팀을 맡으면서 잉글랜드 국적의 유망주들을 잘 지도했고 여기서 유소년 선수들을 오랜 기간 지도한 것이 결국 성인 국가대표팀의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5.2. 단점

수비 조직력은 잘 다졌다는 평을 받았으나 그에 비해 공격 전술은 허접하다는 평이 많다. 세트피스 능력을 개선하여 세트피스가 그간 약점이던 잉글랜드가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결정력이 급상승하긴 했으나, 문제는 필드골이 적다는 것. 이 문제는 부임 초기인 러시아 월드컵 때에도 지적받던 단점이었다. 더구나 현재 잉글랜드는 해리 케인, 라힘 스털링, 필 포든 같은 정상급 공격수들이 넘치며 이들 외에도 정상급 유망주들이 즐비한데, 이들을 여럿 데리고도 최근 네이션스 리그를 무승으로 마감하고 마지막 경기였던 9월 27일 독일전을 제외하면 필드골이 0골이다. 이는 사우스게이트가 수비적인 안정성을 강조하지만, 공격전술을 공격수들의 재량에 맡기다보니 소속팀이 다른 선수들이 공격 작업에서 합이 맞지 않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간혹 선수들을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기용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는 오른쪽 풀백인 트리피어를 왼쪽 풀백이나 윙백으로 자주 기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이 경우 4백에서 풀백은 워커나 제임스가, 3백에서 윙백은 제임스가 본다. 역발 윙백을 기용해 재미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위협적인 오른발 킥이 주무기인 트리피어를 인버티드 윙백으로 쓰는 시도는 공격적으로 어떠한 재미도 보지 못했다. 그 밖에도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메이슨 마운트를 윙어로 고립시켜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팬들의 가장 큰 불만 사항은 선수 기용 및 발탁 시 선수 개개인의 폼을 무시하고 자신의 고집대로만 발탁하는 것이다. 선수 기용과 발탁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라지만, 사우스게이트는 선수들의 최근 폼이 나빠도 자신이 고집하는 선수만을 발탁 및 기용하는 성향이 강하다.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해리 매과이어인데, 2018 러시아 월드컵부터 유로 2020까지 사우스게이트 체제의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이후 소속팀에서 최악의 폼을 보이면서 주전 자리를 완전히 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이 아닌 이상 항상 발탁되었고, 이는 최근 네이션스리그 대회의 독일전에서 매과이어가 PK를 내 주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한 레스터의 제임스 메디슨이 매 시즌 꾸준한 폼을 보이고 있음에도 2019년 11월 유로 예선을 이후로 한 번도 발탁하지 않았다. 특히나 22-23 시즌에서 메디슨이 아주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9월 A매치에도 소집되지 않은 걸로 보아 월드컵에서도 발탁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이 외에도 소속팀에서 벤치 멤버이자 유리몸인 칼빈 필립스를 주전으로 기용하는 걸로 보아 사우스게이트가 얼마나 고집불통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결과가 좋아서 유임 가능성이 높다.

2023년 9월 A매치 명단에도 매과이어와 필립스, 헨더슨을 포함시키고 라힘 스털링, 제임스 워드프라우스, 재러드 보언, 벤 화이트 등을 발탁하지 않아 여전히 선수 발탁에 있어서 부정적인 시선이 매우 많다. 10월 A매치 명단에서 드디어 보언이 발탁되었으나 스털링, 워드프라우스, 화이트 등은 여전히 발탁하지 않았고, 이미 부상을 당한 상태인 부카요 사카를 그대로 발탁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변함 없이 매과이어, 필립스, 헨더슨은 발탁되었다.

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

6.1.2. 개인 수상

6.2. 감독

6.2.1. 대회 기록

6.2.2. 개인 수상

6.3. 수훈

7. 여담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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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우승 [2]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4강 [3] UEFA 유로 1996 4강 [4] 후술되어 있지만 이 때의 경험이 감독이 된 이후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콜롬비아와의 16강전 당시 승부차기를 준비할 때 많은 자극제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1번 선수부터 23번 선수까지 사전에 미리 다 정해두고 준비시켰을 정도라고. 그리고 그 결과는 잉글랜드의 월드컵 사상 첫 승부차기 승리라는 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유로 2020 이탈리아와의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프로 무대에서 PK를 차본 적 없는 부카요 사카를 5번 키커로 내세우는 병크를 터트렸고, 결국 사카가 실축하면서 유로 준우승에 그치게 된다. [5] 가족마저 그러면 되나 싶지만 당시엔 가족마저도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6]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이전까지 잉글랜드가 거둔 메이저 대회에서의 마지막 4강이다. 그 오르지 못한 고지를 자신이 감독으로 국가대표팀을 이끌면서 멋지게 설욕한다. [7] 다행히도 자격증은 1년 뒤에 취득한다. [8] 부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장기 부상은 없었다. [9] 이후, 우드게이트는 다음 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서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하는데 이 때, 우드게이트는 주전 센터백이 되었고 칼링컵에서 첼시를 무너뜨리는 결승골로 팀의 컵 우승에 기여하며 완전히 부활하는 듯 했지만 유리몸이 다시 재발하여 결국 후보로 내려갔고 미들즈브러도 급격히 수비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10] 이 시기에 미들즈브러의 투 톱인 마크 비두카 - 야쿠부 조합이 상당히 좋은 활약을 보였기에 이동국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사우스게이트가 영입하려 했던 이동국은 십자인대 부상 전의 이동국이었다. 부상 전 절정의 경기력을 보이던 이동국이라면 충분히 매력 있는 선수였다. 십자인대 부상이 운동 능력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한데 이동국은 부상 이후 경기 감각도 찾지 못한 채 급히 진출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이클 오언, 라다멜 팔카오 같은 최정상급 선수들조차 이 부상 이후 끝내 부상 전 기량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모습만을 보였을 정도의 치명적인 부상이다. 이동국 역시 EPL에서는 물론이고 K리그로 복귀한 직후에도 예전 같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뒤 전북으로 사실상 방출 트레이드되었고 그제서야 어느 정도 이전 기량을 회복하였다. 십자인대 부상을 재활 끝에 극복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후유증이 바로 주력과 민첩성의 저하, 일상생활 속에서도 갑작스레 나타나는 통증 등이다. 도무지 빨리 뛸래야 뛸 수가 없다고 한다. [11] 이후에도 한국 기자를 만나면 이동국 잘 있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기량을 회복해서 잘 뛰고 있다는 말을 듣고 분명 그럴 줄 알았다며 기뻐했다고. 참고로 이동국 방출 결정 당시 혼자서 끝까지 방출에 반대하였으며, 방출 강행 시에는 본인도 감독직에서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비두카, 야쿠부와는 다른 유형의 스타일을 지닌 이동국이었기에 보로 공격진 뎁스를 한단계 끌어올려줄 만한 영입이었다. 실제로 당시 이동국은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며(2006년 월드컵에서 조재진이 경쟁자인 이동국의 부재를 아쉬워할 정도였다.), 사우스게이트 감독도 이동국의 실력에 확신을 가졌던 것도 사실인 듯 하다. 근데 그놈의 부상 악령이 이동국과 사우스게이트의 계획을 다 망쳐버렸다. [12] 이해 FA컵 4강에 프리미어리그 팀은 8강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은 포츠머스 FC 단 한 팀밖에 없었다. 나머지 세 팀은 웨스트 브롬위치, 반즐리 FC, 카디프 시티 FC다. [13] 8월 토트넘과 스토크를 꺾고 2승 1패를 거두면서 8월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4] 11월 9일 아스톤 빌라 원정에서 승리한 이후 이듬해 2월 28일 리버풀 FC와의 홈경기까지 리그 14경기 무승 행진을 이어갔는데 그것도 6무 8패였다. 비두카와 야쿠부의 이적 이후 고민덩어리였던 공격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구단 역사상 최고의 이적료인 무려 1,270만 파운드를 들여 영입한 네덜란드 리그 득점왕 출신 스트라이커 아폰소 알베스가 리그 4골에 그치며 제대로 먹튀짓을 했다. 당시에 구단 서랍속 동전까지 닥닥 긁어모아 샀다는 농담이 나돌 정도로 팀의 운명을 걸고 행한 영입이었다. [15] 초반 상승세를 주도한 툰차이 산리와 로베르트 후트가 이적마감 직전 스토크 시티로 이적하며 생긴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16] 후임 감독으로 셀틱 FC에서 명장이었던 고든 스트라칸이 왔으나 기존 선수들을 이적시키고 SPL 출신 선수들로 채워넣다가 막장 성적을 찍으며 물러나야 했다. [17] 재킷, 바지, 조끼를 모두 갖춰 입는 형식 [18] 다만 퍼디난드는 박지성에게서 똥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건 정말 좋은 문화라고 말할 정도로 구식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19] 데이비드 베컴, 프랭크 램파드, 리오 퍼디난드, 스티븐 제라드, 존 테리 등 당시 잉글랜드 국대 내에 선수들을 아우를 수 있는 주장감이 상당히 많았는데도 화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꽤 문제가 컸다. 국대에서 라이벌 팀 선수들끼리는 말도 안 했다는 말도 있을 정도고, 심지어는 각 소속팀별로 식사를 따로 하는 추태를 벌였다는 것이 밝혀졌을 정도이니. 비슷하게 지역 감정이 심했던 스페인 국대가 카를레스 푸욜 이케르 카시야스의 적극적인 중재로 어떻게든 화합을 이루자 성적이 급격히 상승한 것과 대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