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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텔스바흐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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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역대 수장 및 왕위요구자4. 기타5. 가문의 유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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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비텔스바흐 가문 문장.svg
파일:바이에른 비텔스바흐 가문 기본 문장.svg
비텔스바흐 가문의 문장

Haus Wittelsbach

독일 팔츠 바이에른을 지배한 가문.

두 명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배출하였다.

2. 역사

11세기 무렵 신성 로마 제국의 남부 지방을 통치하던 바벤베르크 가문의 분가로 시작했다. 본가인 바벤베르크 가문은 프랑스 왕국 카페 왕조와 같은 조상을 두고 있으며, 동프랑크 왕국 프랑켄 공작위를 하사받아 독일 땅에 정착한 분파였다. 즉, 까마득한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프랑스 왕국의 카페 왕조, 발루아 왕조, 부르봉 왕조와 먼 친척 관계가 된다. 다만 바벤베르크 가문은 위그 카페가 왕으로 등극하기도 이전 프랑크 왕국 로베르 왕조로부터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카페 왕조 계열로 여겨지는 것은 아니며, 천 년 전 조상이 같다는 정도이다.[1]

11세기에 오스트리아 공국을 통치하던 바벤베르크 가문의 친족으로서 오버바이에른에 터전을 잡고 세력을 키워나갔고, 1180년에 바이에른 궁정백이었던 오토 1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로부터 바이에른 공국[2]을 하사받아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오토 1세의 아들 루트비히 1세 공작은 결혼으로 1214년, 라인 궁정백령을 상속받아 세력을 확장하였다. 1314년 열린 황제선거에서 루트비히 4세 신성 로마 제국 독일왕으로 선출되면서 유럽의 명문가 반열에 올라섰다.[3]

루트비히 4세는 아스카니아 가문[4]의 브란덴부르크 가계가 단절되자 황제 선거권을 확보할 야심으로 브란덴부르크를 회수하여 자신의 아들들에게 분배하였으며, 에노 여백작 마르그리트와의 결혼을 통해 홀란트, 제일란트, 플란데런 저지대 국가까지 확보하여 권력을 확장하였다. 그러나 루트비히 4세는 생전에 그렇게도 갈등을 빚었던 형 루돌프의 아들들에게 라인 궁정백령을 주면서 비텔스바흐 가문은 팔츠계와 바이에른계로 갈라졌다. 루트비히 4세의 형 루돌프의 가계로 비교적 단일하게 상속되었던 팔츠계와 달리 루트비히 4세 사후 여러 자녀들에게 분할상속된 바이에른계는 심각하게 세력이 약화되었다. 결국 1356년의 금인칙서에서 팔츠와 달리 바이에른계는 선거권을 박탈당했으며 그나마 바이에른계가 선거권을 가지고 있던 브란덴부르크도 1371년, 카를 4세에게 빼앗겼다.

팔츠계는 1400년, 루프레히트 3세 독일왕으로 선출되기는 했으나 오래가지 못했으며 루프레히트는 사후 팔츠 선제후국 본토는 맏아들 루트비히에게, 차남 요한[5]에게는 오버팔츠의 노이마르크트를, 3남 슈테판에게는 지메른-츠바이브뤼켄을, 막내 오토에게는 모스바흐를 분할상속하였다. 이 가운데 노이마르크트와 모스바흐는 금방 대가 끊겨 본가로 회수되었다. 지메른-츠바이브뤼켄은 슈테판의 장남 프리드리히의 지메른계와 3남 루트비히의 츠바이브뤼켄계로 갈라졌는데, 지메른계가 본가의 대가 끊어진 1559년부터 팔츠 선제후가 되었다. 팔츠계 비텔스바흐 가문의 직계는 종교 개혁 당시 선제후 프리드리히 2세와 조카 오토 하인리히 루터파로 개종했다가 지메른계의 프리드리히 3세[6] 칼뱅파로 개종했고, 프리드리히 3세의 아들 루트비히 6세는 다시 루터파로 개종했다가 루트비히 6세의 아들 프리드리히 4세는 다시 칼뱅파로 개종하는 등 팔츠 선제후의 종교적 성향이나 입장은 선제후 개인의 종교적 성향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바이에른계는 오버바이에른-브란덴부르크, 니더바이에른-저지대 국가계로 갈라졌다가 오버바이에른계는 상술했듯 1371년 브란덴부르크를 상실했다. 니더바이에른계는 다시 니더바이에른계와 저지대 국가계로 갈라졌고 저지대 국가는 에노의 자클린 부르고뉴 공국 선량공 필리프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단절되었다. 이렇게 여러 가계로 갈라졌던 바이에른계 비텔스바흐 가문은 루트비히 4세의 6대손인 오버바이에른계의 바이에른뮌헨 공작 알브레히트 4세에 의해 1503년 통합되었다. 바이에른계 비텔스바흐 가문 역시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개종하려 했으나 알브레히트 4세의 아들 빌헬름 4세가 가톨릭으로 남는다면 트리어나 쾰른 중 하나의 선제후를 보장해주겠다는 카를 5세의 회유에 넘어가 가톨릭으로 남았다. 빌헬름 4세의 아들 알브레히트 5세와 손자 빌헬름 5세의 대항종교개혁으로 바이에른계 비텔스바흐 가문은 엄격한 가톨릭 신앙을 유지했다. 카를 5세의 회유와 별개로[7] 1583년 쾰른 선제후 칼뱅파 개종으로 인해 터진 쾰른 전쟁에 개입하여 승리함으로써, 1761년까지 장기간 숙질계승의 형식으로 쾰른 선제후직을 바이에른계 비텔스바흐 가문에서 세습하였다.

이후 1618년 발생한 30년 전쟁 때 개신교도였던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가 보헤미아 개신교도들의 지지를 받아 보헤미아 왕국의 새로운 왕으로 선출되었다. 단 이틀 차이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된 前 보헤미아 국왕, 페르디난트 2세 합스부르크 가문의 공격[8]으로 보헤미아에서 쫓겨나면서 팔츠계 비텔스바흐 가문의 선제후 권리는 박탈당했고 바이에른계 비텔스바흐 가문[9]에 넘어갔갔다. 그러다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팔츠계 비텔스바흐 가문이 선제후 지위를 되찾으면서 선제후 가운데 한 가문에서 선제후직 3개를 유지했지만[10], 결국 1777년 바이에른 계통은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가 후사 없이 죽으면서 단절되었다.

팔츠계 또한 지메른 분가가 17세기 후반에 단절되면서 계승에 잡음이 생겨 팔츠 계승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혼란은 결국 팔츠-줄츠바흐 계열의 카를 테오도어[11]가 팔츠와 바이에른을 모두 물려받으며[12] 종결되었다. 카를 테오도어의 가장 가까운 남계 친척인 팔츠-츠바이브뤼켄 계열의 막시밀리안 요제프[13]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나폴레옹 전쟁 당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줄을 잘 서면서 팔츠-바이에른 선제후국은 바이에른 왕국으로 승격되었다.

단 1대로 그쳤지만(1440~1448) 팔츠 계통에서 덴마크를 중심으로 하는 칼마르 연합의 왕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한때 스웨덴 왕가이기도 했으며(1654~1720)[14], 신성 로마 제국 황제, 그리스 왕국의 국왕[15]까지 배출한 집안이다. 한국에 잘 알려진 네임드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인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여공작( 시씨)와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유명한 루트비히 2세가 있다.

3. 역대 수장 및 왕위요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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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현재의 가문 수장은 프란츠 폰 바이에른(1933~)이다.

4. 기타

루트비히 2세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여공작과 같은 미남미녀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대대로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이 유전병[16]으로 내려오고 있다.

스튜어트 왕조 제임스 2세의 남계 후손을 '정통성 있는 스코틀랜드의 왕'[17]으로 떠받드는 자코바이트의 '왕'[18]이 비텔스바흐 가문의 현 수장이자 대표자인 프란츠 공이다. 다만 프란츠 공은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 그가 사망하면 동생인 막스 공이, 그 다음은 막스 공의 맏딸인 조피가 자코바이트의 수장으로 추대된다. 조피는 리히텐슈타인의 공작인 한스 아담 2세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알로이스 공세자의 아내로 차기 리히텐슈타인의 공작 부인이자 자코바이트의 추정 상속자라는 지위를 동시에 가지게 된다. 단, 비텔스바흐 가문은 살리카 법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자코바이트 계승권과는 별도로 가문의 수장은 프란츠 공과 막스 공의 6촌인 루이트폴트[19]가 이을 예정이다.

현재 자코바이트 계승권을 가지고 있는 비텔스바흐 가문이지만, 막상 영국 왕위계승법이 정립되었을 때 자코바이트에 대항한 정통 후계자 또한 비텔스바흐 가문이었다. 1701년 개정된 왕위 계승법에 따라 팔츠 선제후국 출신으로 하노버 선제후비였던 조피(1630~1714)가 왕위 계승자가 된 것이다. 잘만 하면 스튜어트와 하노버 사이의 징검다리 왕조로 비텔스바흐 가문의 여왕이 등극할 수도 있었겠지만, 조피는 이미 매우 고령이었기 때문에 만 84세의 나이로 앤 여왕보다 2개월 먼저 사망하여 여왕이 되지는 못했다. 이후 그녀의 아들인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가 조지 1세로 영국 왕위를 계승했다.

정작 현재 비텔스바흐 가문은 자코바이트 따위에 아무 관심이 없다. 바이에른 공작 프란츠조차도 "가설에 불과하며 우리 비텔스바흐 가문과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애초에 자코바이트 자체가 19세기 이후로 스튜어트 왕가의 적통의 단절로 인해 유럽 왕실 및 정계에서는 퇴물 취급당한 운동이며, 더욱이 작위 요구자 항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특정 가문이 무슨 작위를 자칭하는 것은 하나의 관습으로 여기며, 이들이 진지하게 그 작위를 법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를 대상으로 그 작위를 요구하는 자가 나타나도, 2022년 독일 쿠데타 모의의 주범인 하인리히 13세처럼 같은 가문 내 사람들에게조차 무시당할 뿐이다.[20] 작위 부활의 가능성이 실질적으로 없는 상황에서 그냥 가문의 혈통만 유지하는 수준에서 조용히 사는 걸 택하는 것이다.

5. 가문의 유명인



[1] 다만 흔히 바벤베르크 가문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는 이 가설은 학자들이 로베르 가문과 관련 있는 프랑켄 바벤베르크와 오스트리아의 바벤베르크 사이의 연관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2] 작센의 하인리히 사자공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프리드리히 1세는 작센 공국은 해체시켰고, 바이에른 공국은 비텔스바흐 가문에게 수여했다. [3] 그러나 루트비히 4세의 외사촌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프리드리히(독일왕 알브레히트 1세의 차남)가 대립왕으로 선출되면서 초창기에는 혼란이 있었다. 결국 둘의 동시 선출을 계기로 카를 4세 금인 칙서 선제후 제도를 명문화하였다. [4] 안할트의 통치 가문으로 당시에는 작센 브란덴부르크까지 지배했다. [5] 아들 크리스토프 칼마르 연합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6]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작성에 이바지한 선제후이다. [7] 신성 로마 제국 황권은 대공위시대를 거치며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황제 자신의 직할령이 아니면 명령이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카를 5세의 신성 로마 제국 영지인 오스트리아 대공국은 동생 페르디난트 1세가 소유하고 있었으니 황권이 닿는 지역이 있을리가 없었다. [8] 황제의 영토를 침범했다는 명목으로 침공했다. [9] 당시 바이에른 공작 막시밀리안 1세는 페르디난트 2세와 잉골슈타트 대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동문지간이었다. [10] 다만 팔츠계와 바이에른계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트비히 4세 시절부터 상속 문제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고 금인칙서 제정과 종교 개혁으로 완전히 갈라서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11] 하이델베르크의 카를 테오도어 다리(Karl-Theodor-Brücke)가 이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2] 중간에 바이에른 계승 전쟁이 벌어지기는 했으나 이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월경지였던 외지오스트리아(Vorderösterreich)와 바이에른 선제후국의 니더바이에른을 바꾸려는 과정이 공개되면서 발발한 전쟁으로 카를 테오도어의 바이에른 상속 자체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지는 않았다. [13] 카를 테오도어의 손녀사위이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어권 국가에서는 살리카법을 고수했기 때문에 여계는 의미가 없었다. [14] 팔츠 계열 팔츠-츠바이브뤼켄 가문으로, 바사 왕조의 명군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외동딸, 크리스티나 여왕이 독신을 고수하여 그녀의 고종사촌, 즉 구스타브 아돌프의 조카 츠바이브뤼켄 궁정백 카를 구스타프에게 양위함으로써 스웨덴 왕위를 계승했다. [15] 그리스의 오톤. 이쪽은 1832년에 추대되어 1대 30년 만에 폐위되고 덴마크 글뤽스부르크 왕조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오톤에겐 자녀가 없었던 관계로 만약 그리스 비텔스바흐 왕조가 오톤 사후에도 계속 이어졌다면 오톤의 동생 루이트폴트가 그리스 왕위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은데, 루이트폴트의 장남이자 바이에른 왕국의 마지막 국왕인 루트비히 3세를 시작으로 루이트폴트의 후손들이 비텔스바흐 가문의 수장 자리를 계승하기 때문에 현 수장 프란츠는 그리스의 왕위 요구권도 가지고 있다. [16] 특히나 바이에른계 비텔스바흐 가문은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잦은 근친혼으로 인해 피가 썩 좋지는 못했다. [17] 및 잉글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프랑스의 왕이다. 노르만 왕조 윌리엄 1세 헨리 1세 이후로 잉글랜드 국왕이 노르망디 공국 공작을 겸하게 되었으므로 노르망디 공위 요구자이기도 하다. [18] 사실 이쪽도 남계 후손이 세 번이나 끊겼다. 1807년에 헨리 베네딕트 스튜어트가 사망한 뒤로는 나중에 이탈리아를 통일하는 사르데냐 왕국 사보이아 가문으로 갔다가, 사보이아 가문의 직계가 단절되면서 1840년에는 여계를 통해 합스부르크 왕조(본가가 아니라, 모데나 레조 공국의 합스부르크에스테 분가)로 갔다가, 이 가문도 남계후손이 단절되면서 다시 여계를 통해 1919년에 비텔스바흐 가문에게 자코바이트의 계승권이 넘어갔다. 다만 헨리 베네딕트 스튜어트가 사망한 뒤로 이 가계의 후계자들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위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최근 이루어졌던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 때문에 비텔스바흐 가문의 후손이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는게 가능하냐는 주제로 영국 신문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자코바이트의 주장대로라면 현 가문의 수장인 프란츠 공이 프랜시스 2세로서 정통성이 있다. [19] 프란츠 공의 증조부인 루트비히 3세의 3남 프란츠 왕자의 장남 루트비히의 아들이다. 루이트폴트의 어머니가 프란츠 공과 막스 공의 아버지 알브레히트의 이복여동생이기 때문에, 고종사촌이기도 하다. [20] 물론 왕정복고 여론이 드높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부정선거와 표적수사로 인해 억울하게 복고의 기회를 놓친 알바니아 레카 1세의 경우는 여론의 지지를 받는 편이고, 간혹 왕정복고 여론이 높거나 복고론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있다면 실질적으로 복고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상당히 예외적인 사례에 가깝다. [21] 루이 14세의 아들이다. [22] 루이 14세의 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