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로이스 프린츠[1] 하인리히 13세 Heinrich XIII. Prinz Reu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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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하인리히 13세 프린츠 로이스 추 쾨스트리츠 Heinrich XIII. Prinz Reuß zu Köstritz |
출생 | 1951년 12월 4일 ([age(1951-12-04)]세) |
서독
헤센
다름슈타트 베테라우 뷔딩겐 (現 독일 헤센 다름슈타트 베테라우 뷔딩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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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
아버지 하인리히 1세 프린츠 로이스 추 쾨스트리츠[2](1910 ~ 1982) 어머니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보이츨라바 페오도라 여공작[3](1918 ~ 2019) |
형제자매 |
누나 페오도라 형 하인리히 8세, 하인리히 9세, 하인리히 10세 남동생 하인리히 15세 |
배우자 | 수잔 도크트 잘랄리[4] |
자녀 |
딸 엘레나[5] 아들 하인리히 27세[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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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2년 독일 쿠데타 모의 주동자 중 한 명. 과거 독일 제국의 제후 중 하나인 로이스 가문의 후손이다.하인리히 로이스(Heinrich Reuß)라는 호칭은 잘못된 것이다. 이 가문은 모든 남성 구성원들의 이름이 하인리히다.[7] 로이스(Reuß) 가문 출신이지만 방계인 데다 본인 스스로 2009년에 가문과 멀리했다. 5남 1녀 중 4남으로, 프린츠(Prinz)[8]를 자처하고 있다.[9]
어머니 쪽으로는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와 네덜란드 국왕 빌럼알렉산더르와 7촌간이다.
2. 생애
1951년 12월 4일 서독 헤센 뷔딩거에서 태어났다.프랑크푸르트에서 뷔로 프린츠 로이스(Büro Prinz Reuß)라는 부동산 업체[10]에서 근무했으며 발포주 생산업체에서도 근무했다.
음모론에 심취해 반유대주의적 발언들을 해 왔으며 극우 단체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이 속국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2019년에는 디지털 비즈니스 회담에서 로스차일드 가문과 프리메이슨이 20세기에 있었던 모든 전쟁을 주관했다는 극우, 음모론적인 발언을 다시 했고 2022년 8월에는 라이히스뷔르거와 관련된 정치인이 벌인 파티에 참석한 뒤 현장에 있던 기자를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스 가문의 수장인 하인리히 14세[11]는 하인리히 13세가 방계일 뿐이며 음모론에 빠져 있는 정신질환자라고 비난했다. #
사건 발생 직후 하인리히 14세는 중부독일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하인리히 13세의 행동이 가문에게 "재앙적"인 영향을 미쳤고 하인리히 13세가 테러단의 주모자로 지목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전처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딸 엘레나는 다운 증후군 환자이다. #
2.1. 2022년 독일 쿠데타 모의 주도
2022년 12월 7일 독일에서 쿠데타 계획을 주동한 혐의로 프랑크푸르트의 자택에서 체포되었는데 이는 독일을 위한 대안 소속의 전 독일 연방의회 의원이자 베를린 지방법원 판사인 비르기트 말자크빙케만(Birgit Malsack-Winkemann) 등과 함께 라이히스뷔르거 운동 지지자들의 주장대로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인 1871년의 독일 제국으로 회귀하고 하인리히 13세를 카이저 하인리히 빌헬름 1세[12]로 옹립하는 계획이었다. 이후 현지 시간 2024년 5월 21일 관련 재판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되었고 그 역시 법정에 출석했다. #
[1]
독일의 Prinz는 통치 제후가 아니라 군주 가문의 후손에게 수여되는 작위이며 왕의 직계존속인 ‘왕자’나 그외 왕가의 자손을 뜻하는 ‘왕손’과 같은 뉘앙스지만 로이스는 왕가가 아닌 후작가이기 때문에 한 단계 다운그레이드한 공자,
공손(公孫) 정도가 마땅하다. 하인리히 13세는 로이스 후작위(Fürst Reuß)의 계승권자도 아니며 하다못해 이 인간의 아버지가 Fürst였으면 "후작 영식"이라도 될텐데 아버지도 Prinz다. 봉토를 가진 작위에 혈통이 닿으려면 이 자의 아버지
프린츠 하인리히를 입양한
에르브프린츠(공세자) 하인리히 45세의 아버지
하인리히 27세 후작까지 3대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인리히 13세의 Prinz는 "후작의 증손자" 정도가 적당하다. 그나마도 재산 관리를 목적으로 한 입양으로 입적되었기 때문에 혈통을 따지기 시작하면 한참 더 멀어진다. 모계로 따지면 어머니가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의 손녀고 덴마크, 네덜란드 왕실과 미약하게나마 혈연관계가 이어지지만
독일어권의 작위는 부계로만 상속되므로 큰 의미는 없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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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2세의 손녀로
덴마크의 알렉산드리네 왕비,
독일 제국의 체칠리에 황태자비,
율리아나 여왕의 친사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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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89년 결혼. 성씨(Doukht Jaladi)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독일어 위키백과의 Stammliste des Hauses Reuß 문서에 따르면 1956년
테헤란에서 태어난 이란계다.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시점은 미상이다.
[5]
1989년 출생이다.
[6]
1991년 출생이다.
[7]
따라서 다른 가문에서는 군주에게나 붙는 '~세'가 상시 사용되며 이 가문은 1세기마다 새로 1세부터 셈을 하므로 '하인리히 13세'도 한 세기마다
동명이인이 있다.
로이스그라이츠 후국의 실제 후작이었던
하인리히 13세(재위: 1800년 ~ 1817년)가 대표적이다.
[8]
위에서 설명했듯 정확한 번역명이 없다.
[9]
독일은 공화국으로서 작위를 인정하지 않고 성명의 일부로만 인정하고 있다.
[10]
이름을 봐서는 가문 소유 부동산을 관리하는 업체인 듯하다.
[11]
13세와는 10촌 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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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카이저로 옹립하려고 했다고 하지만 독일 제국의 제후국에 불과한 로이스 후국, 그것도 방계의 방계에 후작위 계승권자조차도 아닌 하인리히 13세의 위치상
정통성이 0%에 가까우므로 신빙성이 적다. 다만 일부 지지자들이 앞선 명칭으로 부르긴 했다.
호르티 미클로시식 섭정으로 옹립하려고 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