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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20:26:48

로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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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국의 행정 구역과 군구
(1789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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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망통-로크브륀 자유시 1861년 편입
41 탕드 백국 2차 세계대전 이후 편입
42 자르베르덴 백국 1793년 편입. 현 바랭
43 살름살름 공령 1793년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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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Lorra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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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d700><colcolor=#c4001a> 행정단위 레지옹
중심도시 메스
데모님 Lorrainer, Lorrainian
인구 2,349,816명(2012년)
면적 23,547㎢
데파르트망 4개

1. 개요2. 역사3. 경제4. 지리
4.1. 교통
5. 언어와 문화6. 주요 도시들7. 출신 인물8. 대중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프랑스어, 영어: Lorraine
독일어: Lotharingen
로렌어: Louréne
로렌 프랑크어: Lottringe

프랑스의 옛 지명이자 옛 레지옹. 프랑스 독일의 국경지역에 위치한 지방이었다. 현재는 상파뉴, 알자스와 함께 그랑테스트 레지옹을 이루고 있다. 과거 로렌의 데파르트망들은 아래와 같다: 주도는 메스였으며 지역 인구는 2020년 기준 2,349,816명, 그리고 면적은 23,547 제곱킬로미터이다.

2. 역사

로트링겐 혹은 로렌이라는 지명은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대제의 장손 로타리우스 1세의 이름을 따서 그의 영지에 붙여진 이름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긴 역사 동안 로트링겐(로렌)이 지칭하는 범위는 점차 축소되었다.

2.1. 로마 제국 프랑크 왕국

로마 제국의 당도 이전 로렌도 서, 중부 유럽의 대다수와 같이 켈트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기원전 1500년 경부터 알자스와 비슷한 시기에 켈트족의 치하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 제국이 당도한 것은 기원전 5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갈리아 전쟁 이후였고 로마 제국 치하에 오늘날 메스 베르됭과 같은 도시들의 모태가 되는 정착지가 생겨났다.

이후 훈족의 침공으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일어나자 프랑크족이 오늘날 로렌 지역을 차지하여 아우스트라시아 왕국을 수립하였고 이후 프랑크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프랑크 제국이 분할되자 로렌은 중프랑크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 중프랑크 왕국은 이후 더욱 분할될때 로렌은 로타링기아 왕국의 일부로 넘어갔다. 여담으로 "로타르의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 '로타링기아'라는 명칭은 로렌(로트링겐)의 어원이 된다. 참고로 이 '로타링기아 왕국'은 현대 로렌 뿐만이 아니라 저지대 국가에서 이탈리아 반도 북부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존재였다.

그리고 이 로타링기아는(그 안 로렌 공국과 함께) 이내 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독일 왕국->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2.2. 신성 로마 제국 로렌 공국 (959년 - 1766년)

로렌 공국 문서 참조.

2.3. 근대

1737년, 프랑스 왕국 합스부르크 제국의 거래로 프랑스가 로렌 공국( 로트링겐 공국)공작 프랑수아 에티엔 오스트리아 대공국 마리아 테레지아의 결혼을 승낙하는 조건으로 로렌 공국은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장인이자 왕비 마리아 레슈친스카의 부친으로 옛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인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에게 넘어갔다. 로렌 공국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 사후 프랑스에 병합되었으며 프란츠 1세 공국을 내준 보상으로 토스카나 대공국 대공이 되었다.

로렌 공국의 프랑스 합병 이후 이 지역에서는 프랑스화가 진행[1]되었으며 1769년에는 낭시 대학교가 세워졌고 낭시와 생디에는 주교좌가 되어 프랑스에 일부가 되어 갔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지역들이 뫼즈, 모젤, 뫼르트, 보주 데파르트망들로 행정 개혁이 있었다. 이와 같은 시기 1790년에는 로렌의 대표들이 로렌에 독일계 자치 데파르트망들의 수립을 요구하였으나 거부되었다. 이후 1871년까지 로렌의 역사는 프랑스 다른 지역들의 역사와 함께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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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로 넘어간 로렌 지역의 이 시기 역사에 대한 내용은 엘자스로트링겐 제국영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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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알자스-로렌 지도.png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전후의 데파르트망 변화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 제2제국이 패전하고 프랑크푸르트 조약이 체결되자 로렌의 일부[2]는 신생 독일 제국에 할양되고 남은 뫼르트와 모젤 데파르트망은 뫼르트에모젤(뫼르트와 모젤) 데파르트망으로 재구성되었다.[3]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직후, 할양된 엘자스로트링겐 제국영토에서는 프랑스 국적을 유지하고자 한 프랑스인들이 추방되어 로렌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메스에서만 약 2만 명이 떠났으며 이 시기 낭시는 인구를 두배로 불렸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로렌은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서부전선의 참호선이 로렌을 가로질렀고 베르됭 전투와 같은 대규모 전투들도 로렌 위에서 일어나면서 피해를 입었기 때문. 이러한 피해의 기억 때문인지 전후 전간기에 수복된 로렌의 독일-프랑스 국경에는 마지노선이 로렌 주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구축되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가 순식간에 항복하면서 1940년에 로렌은 알자스와 함께 나치 독일에 병합되었다. 이 결과로 병합된 모젤 데파르트망의 주민들은 나치 독일에 의해 징집당했다. 그리고 로렌은 1944년, 1945년이 돼서야 해방되었다.

2.4. 현대

전후 로렌은 빠른 속도로 재건되어 20년간의 전후 프랑스 경제의 황금기 영광의 30년(Trente Glorieuses)의 과실을 톡톡히 누렸다. 과거 로렌을 독일과 프랑스의 분쟁지로 만들었던 로렌의 지하자원은 로렌을 프랑스 경제 제3의 축을 구성하게 만들었고 프랑스의 다른 산업 강세 지역들과 같이 인구학적 변동을 겪게 된다. 특히 이 당시 폴란드 이탈리아에서 이민자들이 와 정착하게 되면서 인구도 가파르게 성장했었고, 이 지역의 강한 경제를 대변하듯 프랑스의 고속철도 TGV의 두번째 연선이 놓은 곳도 로렌을 거쳐 파리 스트라스부르를 연결하는 노선이었다. 또한 알자스와 로렌의 철강과 독일 라인란트의 석탄의 거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세워진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와 후신인 유럽 공동체, 단일 시장을 통한 베네룩스 독일과의 무역으로 로렌은 톡톡히 이득을 보았다.

3. 경제

위의 지하자원에 대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 로렌은 산업활동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다만 현재는 광업이 약세를 띄면서 전자제품 등의 생산으로 경제를 재구성해나가는 추세에 있다. 또한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고 독일을 접하고 있는 위치에서 알 수 있듯 이 국가들과의 무역으로 이득을 무리는 지역이다. 로렌의 RGDP는 440억 유로로 프랑스 GDP의 3.4%에 달하며 ( 2016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을 기준으로) 26개 레지옹 중 8위에 올랐다.

4. 지리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3개국[4]을 접하는 레지옹이었다. 지역 대부분이 파리 분지에 들어가며 뫼즈강과 보주 산맥이 지난다.

4.1. 교통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지대이며 경제적으로 강세를 띄는 지역인 만큼 교통의 요지이다. 프랑스의 2번째 고속선인 LGV est (유럽고속선 동부선. 파리와 스트라스부르를 잇는다.)이 로렌을 지나며 A31과 같은 오토루트도 로렌을 지난다. 항공교통으로는 메츠 낭시 로렌 공항이 있다.

5. 언어와 문화

로렌은 알자스와 다르게 상당히 프랑스화 되었지만 한때 독일에 재편입되었던 모젤 데파르트망에서는 독일어 계통의 언어인 로렌 프랑크어도 (알자스의 알자스어 만큼은 아니지만) 상당수 쓰이고 로렌의 프랑스어 역시 독일어의 영향을 상당히 받아 '로렌어'라 불리는 지역의 사투리가 존재한다. 다만 프랑스의 다른 지역 언어들과 같이 대부분 표준 프랑스어로 대체되어 로렌 주민의 대다수는 표준 프랑스어를 유창히 구사한다.

6. 주요 도시들

7. 출신 인물

★표시는 모젤 데파르트망[6]이 출생지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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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중 매체에서


[1] 로렌의 프랑스화는 중세부터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당장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프랑수아 에티엔과 시동생 카를 알렉산더 공자도 프랑스어 사용자였다. [2] 뫼르트 일부와 모젤 대부분 [3] 뫼르트에모젤 데파르트망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도 데파르트망으로 유지되고 있다. [4]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 [5] 과거 로트링겐 공국의 수도였다. [6] 알자스-모젤의 일부로 여겨지는, 1871년 독일에 합병된 지역 [7] 출생 당시에도 독일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