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東緖
1929년 7월 24일 ~ 2006년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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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행정학자. 한국 행정학의 최고 원로 중 하나.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를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2. 생애
1929년 경성 출생.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박정양의 손자로 태어났다. 경기중학교를 거쳐, 해방 후인 서울대학교의 마지막 예과[1]를 거쳐, 1953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학부 재학 중에는 정인흥에게 사사하여 행정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그의 지도 하에 인사행정을 주제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의 대한 교육 원조 계획인 미네소타 프로젝트(Minnesota Project)이 개시됨에 따라, 미네소타대로 유학, 1962년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 학위 취득 전인 1957년에는 법과대학 행정학 담당 교수로 임용되었고, 이후 신설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로 옮겨 정년 퇴임 전까지 재직하였다.[2]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창설 요원이기도 한 그는 학자로 활동하면서 정치학, 행정학계의 원로로 활동하였다. 1973년 한국행정학회 회장, 1978년 한국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서울대학교 퇴임 후인 1993년에는 정부 소속 행정쇄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민주화 이후 정부조직 개편을 비롯해 과도기 한국 정치행정의 방향 설정에 기여하였다. 2006년 별세.
3. 연구
1960년대에는 이른바 발전행정론을 적극적으로 한국 학계에 도입하여, 경제발전 및 행정 근대화에 필요한 요건을 타국과의 비교를 통해 제시하였다. 특히, 정인흥 등 선배 정치, 행정학자와 달리, 1970년대의 본격적인 경제 성장, 1980년대 말의 민주화 등을 현장에서 목격하면서, 단순 미국 이론의 유입에서 벗어나 한국 정치현상 및 행정현상의 설명을 본격적으로 시도할 수 있었다. 저서 역시 개론 교과서인 『행정학』(1962년)을 비롯해,『한국행정론』(1972년), 『한국행정의 발전』(1981년), 『한국행정의 쇄신 사례』(1998년), 『장관론』(2003년) 등 발전행정, 한국의 관료제 등에 대한 저서가 많다.
[1]
경성제국대학의 후신인 경성대학은 우선 예과를 선발한 다음, 2년제 예과를 거친 학생들이 3년제 학부과정을 진학하는 교육 체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이 예과 제도는 경성대학이 폐지되고 타
구제전문학교와 통합된 서울대학교가 설립되면서 폐지되는데, 박동서는 폐지 직전인 1946년 경성대학 예과(23회)에 합격하였다. 예과 23회 동기로는
신형식 전 건설부 장관, 고정간첩으로 적발된
고영복 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등이 있다.
[2]
초기에 행정대학원은 독립된 대학원이 아닌 법과대학의 부속기관이었으나, 1961년 이후 별도의 기관으로 분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