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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핀란드계 미국인은 핀란드인 출신 이민자의 혈통을 이어받은 미국인을 의미한다. 주로 1870년부터 1930년 사이에 러시아 제국령 핀란드 대공국에서 노르웨이 등을 거쳐 이민이 이루어졌다. 주로 루터교회를 믿고 있으며 1929년부로 이민이 제한된 이래 핀란드어가 가능한 인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2. 이민사
2.1. 스웨덴 제국에서 미 대륙으로의 이민
17세기 스웨덴에서는 델라웨어 강 일대에 뉘아 스베리예 식민지를 건설하였는데, 당시 핀란드는 스웨덴의 영토였고 약 50여 명 정도의 핀인들이 북아메리카에 정착하였다. 뉘아 스베리예 식민지는 이후 니우암스테르담 식민지로 흡수되었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뉘아 스베리예에 정착한 핀란드인들의 후손들은 초창기 미국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미국 독립선언에 참여한 사람 중 한 명인 존 모턴이 뉘아 스베리예 식민지에 정착한 핀란드인 이민자의 증손자로 알려졌다.2.2. 러시아 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나폴레옹 전쟁 중 벌어진 핀란드 전쟁으로 1809년 핀란드는 스웨덴 왕국에서 러시아 제국 영토로 넘어갔다. 핀란드는 러시아 제국 내에서 비교적 교육 수준과 식자율이 높은 지역이었고, 핀란드인 중에는 개신교(주로 루터교회)를 믿는 경우가 많아 스웨덴, 노르웨이 혹은 미국으로 이주하는 편이 오히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러시아 제국의 대도시로 이주하는 것보다 유리한 점도 있었다. 핀란드는 1년에 7개월, 러시아 제국의 북부는 평균적으로 8개월 정도가 겨울인데 비해, 미국의 북동부의 기후와 식생은 핀란드의 그것과 나름 유사하면서도 보다 온화한 기후인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1867년 핀란드에서 대기근이 발생하자 핀란드 중부의 빈곤한 외스테르보텐[1] 출신 농민 상당수가 노르웨이로 이주한 이후 다시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오늘날 핀란드계 미국인 인구 대다수는 1870년대부터 1929년 사이에 이주해온 핀란드인의 후손이다. 1860년부터 1914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러시아 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인구가 450만여 명에 달했는데 이들 중 7%가 핀란드인이었다. 1880년대 말에 이르면 미국에는 3만 6천여 명의 핀란드인들이 거주하였다. 여기에 핀란드 대공국이 러시아 본토와도 경쟁할 수 있는 힘을 가지자 경악하여 자치권을 박탈하면서 핀란드인들의 미국 이주는 증가하게 되었다. 1898~9년부로 러시아 제국에서 핀란드 대공국 내에서 핀란드어 사용 금지를 비롯한 러시아화 정책, 강제 징병 정책 등을 펼치자 핀란드 대공국 각지에서 소요가 발생하고 적지 않은 핀란드인들이 스웨덴 국경을 넘어서 러시아 밖으로 탈출하였다. 이미 1900년대가 되면 미국 내 핀란드계 인구는 15만여 명으로 수가 급증하였다.
초창기 이들의 주 정착지는 뉴욕시, 보스턴 등 동부 해안의 대도시들이었으나 이후 핀란드인 이민자들 상당수는 미국 중북부의 미네소타 및 미시간 주로[2] 일부는 캘리포니아 일대로 이주하였다. 1차대전 종료 이후 핀란드가 독립국이 되면서 외세의 탄압을 피해 망명해야 할 이유가 감소하고 결정적으로 미국에서 1929년 핀란드 출신 이민자들을 연 529명으로 제한하면서 핀란드계 미국인 유입 역사는 사실상 끝을 맺는다.
2.3. 핀란드 독립 이후
1920~30년대에는 오늘날의 러시아 내 카렐리야 공화국 일대의 카렐리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건설 과정에서 낚인[3] 핀란드계 미국인 일부가 핀란드가 아닌 소련의 카렐리야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한다. 소련 측 주장으로는 약 1만여 명 가까이 되는 핀란드인들이 미국에서 소련 카렐리야로 귀화하였다 하는데, 당시 핀란드는 이미 독립국가였고 카렐리야의 경우 상당수의 핀란드인들이 소련의 지배를 피해 핀란드로 이주하던 상황이었으므로 1만여 명은 과장된 수치로 보인다.3. 유명 인물
4. 관련 문서
[1]
외스테르보텐은
스웨덴어 지명으로 핀란드어로는
포흐얀마(Pohjanmaa).
[2]
미시간 주의 경우 특히 어퍼반도(Upper Peninsula)에 많이 정착했다.
[3]
그리고 이 당시 미국의 실업률이 높던 시절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