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ϯⲙⲉⲧⲣⲉⲙⲛ̀ⲭⲏⲙⲓ ⲧⲙⲛ̄ⲧⲣⲙ̄ⲛ̄ⲕⲏⲙⲉ[1] |
|
콥트어 | |
언어 기본 정보 | |
주요사용지역 | 이집트 |
원어민 | 모국어 화자는 사실상 없음[2] |
어족 |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이집트어군 이집트어 콥트어 |
문자 | 콥트 문자 |
언어 코드 | |
ISO-639-1 | - |
ISO-639-2 | cop |
ISO-639-3 | cop |
주요 사용 지역 | |
영어 | Coptic language |
아랍어 | اللغة القبطية |
그리스어 | Κοπτική γλώσσα |
콥트 문자 |
[clearf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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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콥트어는 후기 이집트어이다. 고전 이집트어의 직접적인 후계 언어다.2. 역사
이집트는 아케메네스 제국, 알렉산드로스 대왕,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이집트 원주민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위축되고는 하였다. 그래서 콥트어가 사용될 시기에는 그리스어 등 외래어의 영향이 이집트에 강했으며, 페르시아어 등에 비해 언어가 활달히 사용되지 못했다. 행정이나 기록을 위한 언어로 그리스어 등이 대신 쓰이기도 했다. 그나마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신학적 논의와 철학적 토론을 위해서도 사용되고는 했다.이집트가 이슬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후로도 제2언어로 오랜 기간 쓰였지만, 12세기를 기점으로 점차 아랍어( 이집트 아랍어)로 대체되면서[3] 18세기부터는 콥트 정교회의 전례 언어나 학술언어로만 쓰고 실생활에서는 사어가 되었다. 그래서 평범한 이집트인들에게 종교언어나 학교에서 배우는 자기 조상들이 썼던 언어 가운데 하나로 취급을 받는다. 물론 공교육에서는 분량 문제 때문에 수박 겉핥기 식으로 언급되며, 보통은 대학 과정으로 취급한다.
후기 콥트어는 주로 약 14세기 이후의 보하이라 콥트어를 뜻한다.
그리스식 보하이라[4] 콥트어(Greco-Bohairic coptic)가 있다. 1850년 그리스 정교회와 콥트 정교회의 통일 운동 와중 콥트 정교회의 교황이던 키릴 4세가 현대 그리스어의 발음과 더 유사하도록 기존 보하이라 콥트어의 발음을 개혁하였는데, 이를 그리스식 보하이라 발음(Greco-Bohairic Pronunciation)이라고 부른다. 당시 콥트어는 이미 실생활에서는 사어가 되어 전례어로만 사용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맞서 1968년 당시 콥트 교황이던 셰누다 3세의 조력 하에 학자 에밀 마허(Emile Maher)가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옛 보하이라 발음에 기반한 콥트어를 재구하여 발표하였는데 이는 옛 보하이라 발음(Old Bohairic Pronunciation)이라고 부른다. 현대에는 그리스식 보하이라 발음이 더 보편적이며, 옛 보하이라 발음은 현재 소규모로 몇몇 수도원 및 연구원을 중심으로 사용된다.
3. 콥트 문자
대소문자 | 대응 숫자 | 대소문자 | 대응 숫자 | 대소문자 | 대응 숫자 | 대소문자 | 대응 숫자 |
Ⲁ/ⲁ | 1 | Ⲕ/ⲕ | 20 | Ⲩ/ⲩ | 400 | Ϭ/ϭ | - |
Ⲃ/ⲃ | 2 | Ⲗ/ⲗ | 30 | Ⲫ/ⲫ | 500 | Ϯ/ϯ | - |
Ⲅ/ⲅ | 3 | Ⲙ/ⲙ | 40 | Ⲭ/ⲭ | 600 | Ⳁ/ⳁ | 900 |
Ⲇ/ⲇ | 4 | Ⲛ/ⲛ | 50 | Ⲯ/ⲯ | 700 | ||
Ⲉ/ⲉ | 5 | Ⲝ/ⲝ | 60 | Ⲱ/ⲱ | 800 | ||
Ⲋ/ⲋ | 6 | Ⲟ/ⲟ | 70 | Ϣ/ϣ | - | ||
Ⲍ/ⲍ | 7 | Ⲡ/ⲡ | 80 | Ϥ/ϥ | 90 | ||
Ⲏ/ⲏ | 8 | Ⲣ/ⲣ | 100 | Ϧ/ϧ | - | ||
Ⲑ/ⲑ | 9 | Ⲥ/ⲥ | 200 | Ϩ/ϩ | - | ||
Ⲓ/ⲓ | 10 | Ⲧ/ⲧ | 300 | Ϫ/ϫ | - |
콥트 문자는 그리스 문자에 이집트어 특유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한 6-7개의 보충문자가 쓰였다.[5][6] 이집트는 고대 로마 제국의 영역에 포함된 이래 7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고, 이슬람 정복 후에도 12세기까지는 기독교인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그리스어에서 빌려온 단어들이 많다.[7] 콥트어는 아니지만 현대 아랍어 이집트 방언에서도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은 단어들이 상당 부분 남아있다.
기본적으로 코이네 그리스어 시절의 그리스 문자를 가져왔기 때문에 중세, 현대 그리스 문자와는 독음법이 조금 다르다. 특히 Η/η가 중세 및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i 음가로 통합된 반면에 콥트 문자에서는 장음 e[8]로 나타나며, Φ/φ의 경우도 중세 및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f 음을 내지만 콥트 문자 도입시기에는 ph로 발음되었던지라 콥트 문자에서 f 음가를 가진 글자가 추가되었다. 하지만 현대 교회 콥트어에서는 두 글자가 모두 f 음가로 통합되어 차이가 없다. 뒷부분에 붙은 ϧ와 ϩ는 연구개 마찰음과 성문 마찰음이다.
4. 방언
지역의 이름을 딴 방언이 있는데, 사이드, 보하이라 방언이 유명하다.사이드 방언(Sahidic coptic)은 이집트의 룩소르 지역에서 사용되던 콥트어의 일파로, 5세기 이후 상이집트 지역에서 표준어로 사용되었다.
보하이라 방언(Bohairic coptic)은 알렉산드리아를 위시한 나일 삼각주의 북서 지역에서 사용되던 콥트어의 일파로, 현 콥트 정교회의 공식 전례어이자 콥트 성경의 언어로 사용된다.
5. 오늘날의 모습
19세기부터 이집트에서 콥트어 부활 운동이 불었고, 콥트어를 배울 수 있는 학교나 교회도 상당수 있기 때문에, 현재는 콥트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종교 언어로 쓰이고 있다. 당장 옆나라인 이스라엘부터가 완전히 사어가 됐던 히브리어를 어거지로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듯이 콥트어 부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집트도 하려면 못할 것 없다는 생각인 듯하다. 그러나 이집트 아랍어가 이집트 내는 물론이고 아랍권 전역에서 어느 정도 대중문화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로 위상이 있으며, 콥트어를 배운다 해도 취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데다가[9] 그렇다고 콥트교인과 이슬람교 신도들이 생판 다른 언어를 쓰는 것도 아니므로 굳이 콥트어를 부활시켜서라도 의사소통을 시켜야 할 당위성이 떨어지는지라 콥트어의 부활 동력이 떨어진다. 타 아랍국가들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표준 아랍어를 쓰는 것이 더 이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콥트어를 배우는 사람은 주로 역사학도나 고고학도 학생들이 주 대상이며, 콥트교도 수가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니다 보니 수요가 나름대로 있는 편이다. 다른 나라의 역사학자들이나 고고학자들도 이집트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콥트어를 배우기도 한다. 특히 고대 이집트어의 직계 후손격 언어이다 보니 이집트 문명 당시의 이집트어를 재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다만 정작 본국 이집트 내에서는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등의 외국어에게 밀린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자국민의 의사소통보단 연구를 위해 배우는 외국인이 더 많다는 점에서 그리스어의 위치와 비슷하다.
6. 간단한 회화
현재는 교회 전례에서만 쓰이고 있다. 아래의 표현은 일상에서 쓰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서 쓰이거나 언어 연구 과정에서 찾을 수 있는 표현이다. 다만 상이집트의 아시우트의 경우 1860년대까지도 콥트어만 쓰는 마을도 있었다고 하며, 여전히 상이집트에는 콥트인이 많이 산다.안녕하세요! | ⲛⲟϥⲣⲓ! 누프라! |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인사) | Ⲛⲁⲛⲉ ⲧⲟⲟⲩⲓ. 나나 두아. |
좋은 점심입니다. (점심인사) | Ⲛⲁⲛⲉ ⲉϩⲟⲟⲩ. 나나 아후. |
좋은 밤입니다. (저녁인사) | Ⲛⲁⲛⲉ ⲉϫⲱⲣϩ. 나나 아규르흐. |
잘 가!(작별 인사) | Ⲟⲩϫⲁⲓ! 우갸이! |
감사합니다. | Ϣⲉⲡϩⲙⲟⲧ. 샤브흐무드. |
천만에요. | Ⲙⲙⲟⲛϩⲗⲓ. 암문흘라. |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습니다! | Ⲡⲓⲭⲣⲓⲥⲧⲟⲥ ⲁϥⲙⲁⲥϥ! 바크리스두스 아프마스프! (성탄절 인사) |
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 Ϧⲉⲛ ⲟⲩⲙⲉⲑⲙⲏⲓ ⲁϥⲙⲁⲥϥ! 한 우마드마 아프마스프! (위 인사에 대한 대답) |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 Ⲡⲓⲭⲣⲓⲥⲧⲟⲥ ⲁϥⲧⲟⲛϥ! 바크리스두스 아프둔프! (부활절 인사) |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 Ϧⲉⲛ ⲟⲩⲙⲉⲑⲙⲏⲓ ⲁϥⲧⲟⲛϥ! 한 우마드마 아프둔프! (위 인사에 대한 대답)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Ⲛⲟϥⲣⲓ ⲣⲟⲙⲡⲓ ⲙ̀ⲃⲉⲣⲓ. 누프라 룸바 암바라. |
7. 들어보기
콥트어 주님의 기도
콥트어 성가 '평화의 임금' (Ⲡ̀ⲟⲩⲣⲟ; 아부루). 이 성가에서는 반주악기로 시스트럼이라는 악기를 사용한다. 고대 이집트 때부터 사용되어 온 유서 깊은 악기로 오늘날에도 콥트교회 전례에서 쓰인다.
콥트어 시편(148, 149, 150편) 독송. 영상에 콥트 이콘과 더불어 콥트어가 적혀 있기 때문에 발음 대조하기에 용이하다. 거의 절반은 그리스어와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콥트어로 부르는 이집트 국가. 콥트어 가사를 먼저 부르고 아랍어 가사를 나중에 부른다.
[1]
콥트어로 이 언어를 지칭하는 명칭은 방언에 따라 둘로 나뉜다. 두 단어에서
ⲭⲏⲙⲓ(케미), 혹은 ⲕⲏⲙⲉ(끼메) 부분이 콥트어로 이집트를 가리키는 단어이며, 콥트어 및
고전 이집트어는 수식어가 피수식어 뒤에 오는 언어이다.
[2]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교회 슬라브어와 비슷한 경우이다.
[3]
아랍어라고 해도
이집트 방언은 콥트어의 영향과 시대상에 따른 변화로 표준 아랍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4]
영어에서는 'bohaira'를
데모님으로 'bohairic'이라고 한다.
[5]
이 보충문자는 이집트 민중문자에서 기원한 문자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의 힌트가 되었다.
[6]
또한 글자목록을 보면 'u'음가에 해당하는 글자가 없는데, 이는 그리스어와 마찬가지로 ⲟⲩ/ου 합자로 표기되기 때문이다.
[7]
의외로 이슬람화 이후로도 꽤나 오랜 기간 동안 이집트에서 그리스어가 학문용어 등으로 쓰여왔다. 그래서 이슬람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중세 시기에 고대 그리스 서적들을 아랍어로 대거 번역할 수 있었고, 아랍권의 문화와 과학기술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아랍어로 번역된 서적은 서유럽으로도 수출되어 서유럽의 과학기술 발달이나 철학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8]
전기 콥트어 기준, 후기 콥트어에선 a로 통합되었다.
[9]
애초에 콥트어 부활 운동의 중요한 전범으로 꼽히는 히브리어의 부활이 성공한 배경에는 현대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탄생이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언어(
유대 제어)를 사용하던 유대인들이 새로 건국된 이스라엘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중립적인 공용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 공용어로 (부활 운동의 성과가 상당히 축적되어 있던) 히브리어가 채택되면서 공용-상용 언어로서 히브리어의 부활이 이루어진 것이다. 즉, 하나의 국가와 그 국가 단위의 필요성이 히브리어 부활에 강력한 동력을 공급한 것이다. 이 정도의 동력을 공급해 줄 주체나 계기가 없는 이상 콥트어의 부활 운동은 힘든 과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