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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드푸에 소재한 고대 이집트의 신전. 카르나크 신전이나 룩소르 신전에 비하면 유명도는 덜하지만, 압도적으로 뛰어난 보존 상태 덕분에 나름 인지도가 있는 사원이다. 카르나크 신전에 이어 고대 이집트에서 2번째로 거대한 신전이기도 하다. 모시는 신은 왕권의 신 호루스다.2. 역사
고대 이집트 시절의 3D 복원도. 당시에는 색색이 채색이 되어 있어 매우 화려했다.
인근의 덴데라 신전, 에스나 신전, 콤 옴보 신전처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지어졌다. 원래 에드푸 신전이 있던 자리에는 이집트 신왕국 시절의 큼직한 사원이 있었는데, 프톨레마이오스 3세 시절인 기원전 237년 8월에 이를 개축하고 확장하기 시작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사원 개축의 첫 삽을 뜬 건 프톨레마이오스 3세였지만 워낙 공사가 오래 걸리다보니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된 건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재위기인 기원전 57년이었다고.
고대 이집트인들은 에드푸 신전이 세워진 자리가 세트와 호루스의 최후의 대결이 일어난 장소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 곳은 이집트 중왕국, 신왕국 시절부터 일찍이 호루스 신앙의 중심지였고 매년마다 축제를 벌이는 등 상당히 번성한 종교 중심지였던 것이다. 이같은 전통은 신왕국을 거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도 쭉 이어져 내려갔다. 신관들은 매년마다 인근 덴데라 신전과 함께 장대한 의식을 치렀다. 이집트 신화에서 호루스와 하토르는 서로 부부 사이인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날을 잡아 덴데라의 하토르 신전에 안치되어 있던 하토르의 여신상을 꺼내와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으로 옮겨와 밤을 보내게 했다. 이 행사는 고대 이집트에서도 손꼽힐만큼 거대한 의식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번성하던 에드푸 신전도 테오도시우스 1세의 이교도 박해와 기독교 유입으로 인해 몰락했다. 기독교도들은 고대 이집트 신앙을 우상숭배라 여겼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로마 제국 차원에서 이집트 신전들에 엄청난 탄압이 이루어졌기 때문.[1] 결국 시간이 흐르며 에드푸 신전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졌고, 신전은 거대한 모래 둔덕 속에 묻히고야 만다. 수 천년의 세월이 흐르며 12m에 달하는 모래가 신전 위에 층층이 쌓였고, 사람들은 그 위에 가옥을 짓고 살기까지 했다. 이후 1,000년 넘게 에드푸 신전은 모래 속에 묻혀있었다.[2]
1798년 나폴레옹의 원정대가 이집트를 침공했을 때도 에드푸 신전은 모래 속에 묻힌 상태여서 주탑 맨 위쪽 끄트머리만 간신히 보일 정도였다는 말이 있다. 그러다가 1860년 프랑스 출신 이집트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처음으로 에드푸 신전을 발굴해내기 시작했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에드푸 신전을 덮던 모래를 모조리 제거해내는 데 성공했다. 에드푸 신전은 그 이래로 현재까지 에드푸와 상이집트 지방의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이자 관광 명소로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 워낙에 보존이 깔끔하게 잘되어 있어 신전에 관심이 많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기 때문이다. 인기가 매우 좋아서 나일 강 유람선들이 이 곳에 자주 들르기도 한다.
3. 구조
가장 안쪽의 성소. 돌로 깎은 태양 방주 모형이 있다. | 다열주홀의 모습. 건물의 천장까지 그대로 보존된 사례는 흔치 않다. |
첫 번째 다열주홀의 정면에는 호루스와 하토르를 기리는 이미지가 있으며, 신전의 문 양 옆에는 호루스를 매로 묘사한 10피트 높이의 신상이 있었다. 다만 오른쪽 신상은 현재 파괴되어 사라진 상태. 입구를 지나 다열주홀에 들어서면 빛의 조화 덕분에 확실히 느낌이 달라진다. 수백 년에 걸쳐 지어진 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빛의 투사와 각도를 자세히 조절해서 내부에 실제로 들어가면 굉장히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주변에 빼곡한 상형문자들이 신비로움을 더해줘서 영화에서나 보던 고대 이집트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홀 내부에는 서쪽에 작은 방이 하나 있고, 동쪽에는 신관들이 대기하거나 문서를 정리하던 도서관이 있다. 이 다열주홀 내부 전체에 히에로글리프가 새겨져 있는데, 대표적으로 신전을 처음 창건할 적에 공양을 드리는 모습도 새겨져 있으니 살펴보면 좋다.
다열주홀 너머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다열주홀이 하나 더 있다. 이 다열주홀을 따라가면 우물이 하나 나오는데, 고대 이집트 시절에는 이 우물에서 떠올린 물을 성수라고 여겨 마시거나 신상에 바르곤 했다. 고고학자들이 성분을 조사해본 결과 나일 강의 물이라고.[4] 다열주홀의 서쪽에는 매일 호루스의 동상에 기름을 바르는 데 사용되는 연고와 향수 제조법이 벽에 새겨진 작은 연구실과 제물을 보관하는 보물실로 가는 문이 있다.
두 번째 다열주홀 너머에는 제물을 바치던 방이 있고, 문지방을 넘어가면 마침내 신상이 있던 성소가 나온다. 이 성소는 넥타네보 2세가 화강암으로 지었고, 신전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장소이기도 하다. 성소에는 대략 높이 60cm 정도의 금박을 입한 목조 호루스 신상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 사제들이 매일마다 신상을 향유로 씻어내리고 신을 대하듯이 극진히 모셨을 것이다. 성소 자체는 예배당과 방으로 둘러싸여 북향하는 모습이다. 주위에는 시계 방향으로 민 신에게 바쳐진 예배당, 호루스의 옷이 보관되었을 방, 신의 왕좌가 놓여있던 방 등이 있다. 성소 주위에는 라 신이 태양 방주를 타고 하늘을 항해하는 모습, 누트 여신의 모습 따위를 화려하게 새겨놓았다. 축제날에 호루스의 동상이 태양빛을 쬘 수 있도록 신전 테라스 밖으로 신상을 꺼내는 모습도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