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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경
1. 개요
이집트 상형문자로 쓴 파이윰
아랍어 : الفيوم
콥트어 : ̀Ⲫⲓⲟⲙ
그리스어 : Κροκοδειλόπολις / Ἀρσινόη
영어 : Faiyum / Fayum
이집트 중북부 파이윰 오아시스에 위치한 도시. 콥트어로 바다, 호수를 뜻한다. 카이로에서 서남쪽으로 80km 떨어져 있으며 인구는 약 60만명이다. 이집트에서 델타 지역 다음으로 비옥한 파이윰 오아이스에 위치한 까닭에 기원전 5천년부터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셰다트로 불렸는데, 악어 숭배 신앙의 중심지였다. 길들여진 성스러운 악어 페추코스[1]는 보석 장신구를 차고 신전에서 길러졌으며 죽으면 미라로 만들어져 안치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리스인들은 도시를 '악어의 도시'라는 뜻에서 크로코딜로폴리스라 지칭하였다.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들어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왕비의 이름을 따 아르시노에로 개칭하였다. 한편 화장을 선호한 로마 시대에도 이집트인들은 계속 미라를 만들고 목판에 사자의 얼굴을 그렸다. 파이윰 오아시스 일대에서는 그러한 유물이 상당수 발견되었다. 후기 로마시기 기독교의 도래 후 주교구가 설치되었고 사산 제국의 이집트 정복 (619-29년) 시에는 그 총독부가 설치되었다.
이슬람 정복 후에도 파이윰 오아시스는 이집트의 주요 곡창지대로 중시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마지막 칼리파 마르완 2세가 최후의 저항을 하다가 전사한 곳도 파이윰이었고, 10세기 초엽 파티마 왕조는 이집트 정복을 위해 파이윰을 근거지로 삼기도 하였다. 892년에는 저명한 유대 신학자 사디아 가온이 이곳에서 출생하였다. 중세 시기에 파이윰에는 바자르(시장), 모스크, 하맘(목욕탕) 등이 건설되었고 바흐르 유세프 운하를 통해 나일 강과 연결되었다. 도시를 관통하는 운하에는 수차와 방앗간이 있었고, 두 개의 다리가 놓였다.
현대 시가지 동부에는 기차역과 파이윰 대학교가 자리하며, 외곽 순환도로 내에서 도시가 확장되고 있다. 그밖에 관광지로 시가지 동남쪽 5km 지점에는 아멘호테프 3세의 피라미드로 유명한 하와라 유적지가 있고, 서쪽 70여 km 지점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고래 화석지 와디 알 히탄이 있다. 파이윰의 어원인 카룬 호수는 서북쪽 20km 지점에 있다.
2. 갤러리
파이윰에서 출토된 2세기 무덤 목판화들 |
15세기 맘루크 술탄 카이트베이의 모스크의 그의 부인 카완드 아슬바이가 세운 다리
19세기 중반 파이윰 묘사
서북쪽으로 20km 떨어진 카룬 호수
파이윰과 와디 히탄 사이의 와디 리얀 폭포
파이윰 시내의 물레방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