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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008 ~ 1141년/1319년[1] 동안 중부 이란( 이스파한, 야즈드, 테헤란) 일대와 자그로스 산맥 지역을 다스린 사산왕조의 후계국중 한 국가이다.[2]존속기간 | 1008~1141 |
수도 | 이스파한 |
국가원수 | 아미르 |
주요 군주 | 알라 알 디올라 무함마드(1007~1041) |
종교 | 12이맘파 시아파 |
성립 이전 | 부와이 왕조, 바반드 왕조 |
멸망 이후 | 셀주크 왕조 |
2. 개요
3. 건국
11세기 초에 이란의 시아파 왕조인 부와이 왕조의 타바리스탄의 지도자엿던 파크르 알 다올라에겐 사이이드 시린이라는 바반드 왕조의 루스탐 2세의 딸인 아내가 있었고 그녀에게는 사촌동생으로 루스탐 두쉬만자야르가 있었다. 루스탐은 파크르 알 디올라에게 충성을 다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영토를 부여받는다. 이후 파크르의 아들 시대인 1007년쯤 루스탐이 사망하고 아들이자 부와이 왕조의 이스파한 주지사인 알라 알 다울라 무함마드가 작위를 물려 받으면서 별명에서 따라 카쿠이 왕조를 개창한다.3.1. 초대 가주 알라 알 다울라 무함마드의 치세
그는 매우 유능했고 당고모의 후광을 등에 업고 이스파한 주지사가 되어 다스렷다. 이후 다일람계 군장교에 의해 추방되기도 하나 곧 복위한다 이후 1024년 당고모의 자식인 부와이 왕조의 사마르로부터 하마단을 빼았고 그를 폐위했으며 2년뒤 1006년에 망한 본가의 친척이자 잔당과 연합해 반격해온 마즈드 알 디올라의 부와이-바반드 연합군을 대파하고 바반드 지도자를 감옥에 가뒀다. 이 사건으로 바반드 왕조는 잔당조차 사라져 40여년간 기록에서 사라진다 이후 그는 아바스 칼리파 알 카디르로 부터 신앙의 검이란 칭호를 받게 된다.이후, 가즈나의 공격을 받아 부와이왕조와 함께 패배하기도 했으나 가즈나 왕조가 공세종말점에 다다른 것도 있고 화해하는데 성공하였고 1041년 아나즈 왕조를 향한 공격을 감행하다 사망하고 그의 아들들이 직위를 계승한다.
3.2. 쇠퇴기
이후 장남이 이스파한을 차남이 하마단을 다스렸으나 셀주크 제국이 본격적으로 부와이 왕조를 공격하면서 휘말렸고 47년에 차남인 가르스프가 완패하며 하마단을 상실하고 도주하였다가 51년 사망했고 1051년에 셀주크 군대에게 이스파한을 1년여간 포위당한 끝에 함락당하며 짧은 독립이 끝났다. 셀주크 제국에게 대부분의 영토를 넘기는 대가로 야즈드 일대의 통치권을 인정받아 또 그럭저럭 셀주크의 수많은 봉신 중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으며 지냈다.3.3. 멸망
그러던 1141년, 호라산 지방에서 재기하던 아흐마드 산자르의 셀주크 동맹군에 편성되어 카트완 전투를 치렀는데 셀주크 - 카쿠이 연합군은 금나라에게 쫓겨난 요나라의 잔당이자 신흥 세력인 카라키타이( 서요)에게 대패를 당하여, 카쿠이 지도자 가르샤프는 전사하고, 산자르는 포로 신세가 되었다. 그 후로는 왕조가 단절되고 가르샤프 2세의 딸과 결혼한 야즈드 가문이 카쿠이왕조를 계승하였는데. 통치권이 야즈드 도시 자체로 한정되었고, 호라즘 왕조, 몽골 제국, 일 칸국등의 태수나 성주 노릇을 하다가 무자파르 왕조에게 1319년, 도시 통치권마저 뺏았기며 완전히 혈통이 사라지게 된다.한세기 반 전에 아바스 왕조의 제후국이던 둘라프 왕조와 상당히 비슷한 영토를 지니고 있었다.
바반드 왕조의 후손이기 때문에 카쿠이 왕조도 사산왕조의 후계국으로 분류할수 있겠다. 다만 카쿠이나 모계가문 모두 본가인 바반드보다 먼저 몰락했다.